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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설 체육팀장 |
고1이었던 우리는 K의 수업을 듣기 전, 일종의 선입견을 가졌던 셈이었다. 드디어 첫 수업,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전보됐던 그는 입시터널에 막 들어선 새내기 고교생처럼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개념 설명에 이어 문제 풀이가 시작되면 물 흐르듯 강의에 집중하지 못했다. 교수법은 서툴렀다. 교재와 칠판을 번갈아 보느라 흐름이 끊겼다.
시간은 흘러갔고, 우리는 그렇게 K의 수학 시간에 적응하는 듯했다. 한번은 여러 수학 개념들을 한꺼번에 활용해 푸는 문제였는데, 칠판 빼곡하게 풀이과정을 써내려갔다. 그때, 정적을 깨는 한 친구의 기습 질문. 참다 못한, 불만이 섞인 음성이었다.
"선생님, 그렇게 풀어서 언제 다 풀어요?" 동시에 60명 넘는 학생들의 깔깔대는 웃음 소리. 하지만 K의 대답이 걸작이다. 선생님은 "그래, 그렇제? 이렇게 풀어서 언제 다 풀겠노? 네 말이 맞다"고 인정했다. 이어 "다음 수업 올 때, 쉽게 푸는 방법 가르쳐줄게. 오늘은 개념만 이해하고 넘어가자"고 양해를 구했다. 다음 시간, K는 약속을 지켰다.
비슷한 상황은 계속 연출됐다. K가 쩔쩔매며 문제풀이를 하면 어떤 이는 조소를, 누군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수업을 포기한 채 자율학습을 하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봐"하며 끊임없이 주문하던 K를 생각하면 뭉클하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런 K에게 모르는 수학 문제를 질문하는 학생들이 줄을 섰다. 다음 수업 종이 칠 때까지 교단 옆에 서서 학생들과 같이 문제를 풀이하는 일이 허다했다. 교무실, 그의 책상 옆에는 수학 문제집을 든 학생들이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진풍경이었다. 질문자가 없을 땐 마치 수험생처럼 수학문제에 매달렸다. K는 우리에게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기어코 배워야만 한다는 것을 몸소 가르쳐줬다.
K가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걸어가던 뒷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금테 돋보기 안경을 쓴 그는 말 그대로 책에 코를 박고 더듬더듬 노인처럼 갔다. 학생들이 불러도, 인사를 해도 모른 채 공부를 했다.
책상에 펼쳐진 그의 교재를 본 적 있다. 여백 없이 빼곡하게 풀이과정을 연습하고 또 연습한 흔적. 모든 학생들이 그의 교재를 한번쯤 보았고, 보았다면 뭔가 느꼈을 것 같다.
수업은 날이 갈수록 매끄러워졌다. 잘 못하더라도 노력하면 결국 실력은 향상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선생님이어서 그랬을까. 학생들은 겉으로 K를 무시했지만 속으론 달랐다. 학년 말쯤,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유행했다. 'K만큼만 노력하자. 다 된다.'
가르침은 지식을 전수하는 행위를 초월한다. 어른으로서 끝끝내 책임을 다하며 결코 품격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스승의 날'은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며 가르침을 줬던 그러한 스승들을 기억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그런 스승, 그런 어른은 어쩌면 지금도 우리의 곁을 지키고 있거나 지나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 모습은 스승이 아니더라도 어떤 어른,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부디, 그들에게 감사의 한 마디 전할 수 있는 축복의 5월을 맞이하시길.이효설 체육팀장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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