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사과에 대한 모독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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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24   |  발행일 2021-05-24 제27면   |  수정 2021-05-24 07:13

과일 중에 사과를 무척 좋아한다. '매일 사과 한 개를 먹으면 의사는 빵을 구걸하게 된다'는 서양속담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상큼한 단맛 또한 일품이다. 떨어진 입맛을 북돋워 주고 식사 후 텁텁한 입안을 상쾌하게 해준다. 우리 지역 특산물이라 더욱 마음이 가는지도 모른다.

사과는 풍부한 이야깃거리도 있다. 사과만큼 인류와 얽히고설킨 역사를 만든 과일이 있을까. 흔히 세계 역사상 유명한 3대 사과로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의 사과'를 꼽는다. 이브의 사과로 인해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과 관련해서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이 법칙을 떠올렸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미술애호가는 세잔의 사과를 좋아한다. 세잔은 눈에 보이는 것을 그려왔던 과거 기법에서 벗어나 사물의 본질을 화폭에 담으려 했다. 세계미술사를 바꾼 획기적인 사건이다. 세잔은 사과에서 사물의 본질을 찾았다.

세상을 바꾼 여덟 가지 사과 이야기를 다룬 책 '꿈꾸는 사과'에서는 더 많은 멋진 사과를 만날 수 있다. 우리 시대 혁신 기업의 상징인 애플사의 사과, 자유를 향한 의지와 혁명정신이 담긴 '빌헬름 텔'(실러의 희곡)의 사과 등이 있다. 사과는 역사 발전의 결정적인 고비마다 선택됐다. 사과가 얼마나 인류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는지 잘 보여준다.

최근 사과가 구설에 올랐다. 싱싱한 사과가 아니라 썩은 사과 이야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TV의 한 드라마 대사를 인용해 검찰 조직을 '썩은 사과'에 비유했다. 대사의 요지는 반은 썩고 반은 안 썩은 사과가 있다면 이는 반쯤 썩은 사과가 아니라 썩은 사과라는 것이다. 갑자기 사과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도 진정성 있는 사과(謝過)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받던 그가 몸에 좋은 사과를 조직을 썩게 하는 사과로 둔갑시켰다. 귤과 달리 사과는 썩은 부위만 도려내면 먹을 수 있다. 사과의 또 다른 장점이다. 그에게 허탈감을 느낀 시민 1천618명이 민사소송까지 냈는데 정작 누구를 비난하는가.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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