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욱의 시선] 대구와 삼성, 그리고 이건희미술관

  • 김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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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6-25 16:23  |  수정 2021-06-25 16:33
-이건희 생가, 삼성상회 터
-복원된 삼성상회 건물까지
-삼성이 탄생한 고향 대구에
-이건희 미술관이 들어서야
-고인의 유지를 잘 받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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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욱 교육인재개발원장

대구상공회의소 입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촉구하는 서명을 어떻게 하는 지 안내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국내 경제계가 이재용 사면을 촉구하고 있는 만큼, 플래카드에 대구상의가 삼성을 향해 던지는 특별한 메시지가 담긴 것은 아니다.

하지만 11년 전, 대구상의는 삼성을 향해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다. 2010년 2월, 대구상의는 대구시와 함께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했다. 당시 대구 북구의 옛 제일모직(삼성그룹 계열사) 부지에서 이병철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또 대구 중구 인교동의 삼성상회터를 삼성기념공간으로 조성했다. 이병철 창업주는 1938년 인교동에서 삼성상회(삼성물산의 전신)을 열어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게 삼성그룹의 시작이다.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를 거치면서 IMF외환위기때 삼성상용차 퇴출 과정에서 빚어졌던 대구와 삼성의 소원했던 관계는 회복됐다. 외환위기때 삼성그룹이 대구에 본사를 뒀던 상용차 사업을 포기하자, 대구에서는 삼성불매운동에다 이건희 화형식까지 벌어졌다. 이에 삼성은 대구에 서운한 감정을 가지면서, 대구와는 멀어졌었다.

100주년 기념 행사때 이재용 부회장이나 가족이 참석하지는 않았다. 대신 삼성그룹 수뇌부가 대거 참석했다. 삼성 수뇌부는 비공개 간담회에서 대구사회에 감사함을 표시하기 위해서라도 삼성이 대구에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100주년 기념행사때 대구시나 대구상의가 삼성의 대구투자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삼성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길 기대했다.

100주년 기념 행사 이후 삼성은 대구에 예전보다는 많은 관심을 보였다. 2011년에 열린 대구세계육성선수권 대회때 삼성전자가 메인 스폰서를 맡았다. 또 같은 해 삼성전자가 50% 투자한 LED소재업체인 SSLM이 성서5차단지에 입주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옛 제일모직 부지에 조성된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내에 삼성상회 건물을 복원해, 삼성의 고향이 대구라는 점을 알렸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국정 화두였던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가 들어선 것처럼 비쳐지는데다,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수감되면서, 삼성상회 건물은 지금까지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복원된 삼성상회 건물은 일반인에게 공개될 것이고, 글로벌 기업 삼성의 모태가 된 곳이라며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대구에 대한 삼성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건희 회장 유족이 고인이 생전에 소장했던 2만3천여 작품을 정부에 기증하면서, 정부가 이건희 미술관을 어디에 건립할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기증한 작품의 가치가 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돼, 이건희 미술관 자체가 관광명소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삼성의 대규모 투자만큼 경제적·문화적 파급효과가 있는 게 이건희 미술관 건립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때문에 대구시를 비롯한 20여개 지방자치단체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나섰다. 특히 대구시는 2천500억원에 이르는 이건희 미술관 건립비용까지 부담하겠다고 밝혔고, 대구상의 등 민간단체는 건립비용 모금운동에 나섰다.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하려는 대구사회의 의지가 높다는 뜻이다.


민족시인 이상화의 형 이상정을 비롯, 이여성·이인성· 이쾌대 등 수많은 미술가들이 대구에서 태어났거나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대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건희 미술관이 대구에 들어선다고 미술학적 측면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이건희 회장의 뜻이 대구에 있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본다. 자신이 태어났고, 자신이 글로벌 기업으로 만든 삼성이 태동했던 곳에서 자신의 애장품이 보관되며 전시되길 바랄 것이다. 이건희 생가, 삼성상회터, 복원된 삼성상회 건물이 있는 대구에 이건희 미술관이 들어서야 삼성의 역사가 잘 보존될 것이다. 동시에 이건희 회장의 유지를 가장 잘 받드는 일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이는 2010년 이병철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때 삼성이 대구사회에 졌던 마음의 빚을 갚는 길이기도 하다.  

김진욱 <교육인재개발원장 겸 CEO 아카데미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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