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일본의 미래는?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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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02   |  발행일 2021-08-02 제27면   |  수정 2021-08-0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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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논설위원

2년 전 악몽이 되살아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2년 만에 일본 공공시설에 다시 전시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개막 후 얼마 되지 않아 중단됐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초 아이치현 '시민갤러리 사카에'에서 열린 '우리들의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에 김서경·김운성 부부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됐다. 이 작품은 2019년에 열린 '아이치 트리엔날레'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에서 선보였으나 우익 세력의 거센 반발로 전시가 사흘 만에 중단됐다.

표현의 부자유전은 일본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주제를 다룬 문제작을 모은 기획전이다. 일본인이 불편해하는 역사를 직시하도록 촉구하는 작품들이 많아 전시 때마다 큰 어려움을 겪었다. 물론 이번 전시회도 우익세력의 방해로 준비가 쉽지 않았다. 전시실 사용을 허가받는 데만 3개월여 걸렸다. 어렵게 막을 올린 전시는 결국 개최 사흘 만에 중단됐다. 전시장으로 폭죽 추정 물질이 배송됐는데 테러 시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2년 전의 일을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 사태를 보면서 같은 전범 국가이지만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는 독일과 일본을 다시 주목하게 된다. 독일 베를린 중심에는 '홀로코스트 학살 피해 유대인 추모관'이 있다. 나치의 범죄는 물론 독일의 2차 세계대전 책임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시설이다. 유대인 수백만 명을 희생시키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과오는 감추거나 지우고 싶은 역사일 것이다. 그런데도 독일은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있었다. 추모관은 19세기 이후 전쟁에 승리한 독일이 개선문으로 사용한, 즉 독일의 영광과 승리를 나타내는 '브란덴부르크 문' 부근에 있다. 독일의 영광은 물론 과오도 잊지 말자는 의미일 것이다. 끝없이 반성하고 사죄하는 독일의 모습에 전 세계는 용서를 보였다.

하지만 일본은 어떤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반성은커녕 객관적 증거마저 부정하고 왜곡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최근에는 미국의 한 친일 학자까지 내세워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역사 왜곡을 시도했다. 이 와중에 다시 평화의 소녀상이 문제가 됐다. 일본군 위안부만큼이나 평화의 소녀상도 그동안 큰 시련을 겪었다. 2012년 도쿄도미술관 전시에 출품됐다가 '정치적 표현물'이라는 이유로 철거됐다. 2019년 아이치 트리엔날레와 올해 전시 중단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소녀상을 작품이 아닌 정치적 상징물로 본 것이다. 세계 미술사를 보면 역사적 아픔을 소재로 한 예술작품은 많다. 로댕의 대표작 '칼레의 시민',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 등도 아픈 역사를 담았다.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연이어 중단돼 안타깝지만 세계미술역사를 보며 그나마 위안을 찾을 수 있다. 비난받았던 전시가 오히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전시로 기록된 예는 많다. 독일 나치정당은 불온하고 위험한 작품들을 골라 '퇴폐미술전'을 열고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고흐, 고갱, 칸딘스키 등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이들이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라. 오히려 그 전시가 이들의 이름을 빛나게 했다.

영국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이 대화를 통해 미래를 만들어간다. 결국 역사를 잊은 나라에는 미래도 없다. 과거와의 대화를 단절한 일본의 미래는 어떨까.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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