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타워] 위험한 언론중재법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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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26   |  발행일 2021-08-26 제23면   |  수정 2021-08-26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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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정치부장

언론에 대한 징벌적 배상을 명시한 언론중재법이 기어이 국회 문턱을 넘을 모양이다. 여당이 '언론 개혁'의 명분으로 발의한 언론중재법은 '고의 또는 중과실'로, 거기에 더해 '악의적으로' 보도할 경우 언론에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논란의 핵심은 '법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가'이며 부수적으로는 '입법 의도가 순수한가'이다. 법을 둘러싼 쟁점별 논란은 차치하고, 언론의 자유라는 틀에서만 봐도 언론중재법은 위험하다. 입법 과정에서 감지되는 집권 여당의 무모함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행동심리학 이론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부당하거나 부도덕한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면 그는 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고 본능적으로 느낀다. 부당하거나 부도덕한 피해를 준 대상에 대해서는 강한 반발심을 갖게 된다. 그 반발심이 대상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때로는 그것이 폭력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개인의 차원을 벗어나 집단·조직으로 확대될 때 비이성적 행동들은 더욱더 쉽게 나타날 수 있다. 자신들이 가진 가치가 최고의 선이라고 믿고 심지어 폭력까지 정당화한다는 주장이다.

안타깝게도 조국 사태, 윤미향 사건, 원전 수사, 검찰개혁 과정에서 여당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에서 우리는 이런 위험을 느꼈다. 권력 투쟁에서 이겨 모든 것을 가진 집단이 보인 행동치고는 서툴렀다.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사실 검증 차원에서 나온 조국 가족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은 논외로 하더라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전 감사원장에 대한 반사적인 지지가 여론으로 나타났다. 그런 상황을 겪고도 그 칼을 버리지 않는다. 발의된 언론개정법은 자신들이 바라보는 언론의 모습을 투영한다. 한국의 언론은 적폐라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와 책임의 한계, 즉 언론자유의 허용 범위는 역사적으로 늘 논쟁거리였다. 대부분 민주 국가에서는 언론자유 존중의 틀에서 그 논쟁을 녹여 왔다. 언론의 책임을 묻는 법보다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을 헌법 조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언론의 존재와 활동을 긍정적으로 보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를 가장 존중해야 할 민주 세력이 부정 편향의 언론중재법을 내놓은 것이 기이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언론 활동에 대한 평가를 디지털적으로 '1'과 '0'으로 판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많은 층위에서 다양한 시각 틀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언론이 진실을 보도하고 있다는 명제에 대한 사회적 판정은 대체로 '그렇지 않다'로 결론난 지 오래다. 담론적으로 보면, 현대로 이행하면서 절대 진리의 개념이 무너진 탓이 크다. 진리의 상대성, 다른 관점의 인정, 기계적 중립성의 모호함 등의 흐름도 한몫한다. 그래서 누구도 진실을 주장할 수 있고, 말하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사고가 더욱 지배적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혁명으로 인한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은 이를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했다.

전체적인 틀에서 언론 규제는 이제 불가능한 영역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헌법상 보장된 개인의 의사 표현의 자유이자 그것이 사회적 공론장 구성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는 강해졌다. 세계적으로도 가짜 뉴스가 문제가 되고 있지만, 그것을 제한하는 법률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형법과 민법으로도 언론 과실의 책임을 묻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현실이다.
이은경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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