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라쇼몽 효과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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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23   |  발행일 2021-09-23 제23면   |  수정 2021-09-23 07:11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가 찍은 영화 '라쇼몽'은 19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수작이다. 한 사무라이의 죽음을 두고 네 명의 진술이 모두 엇갈리는 상황을 다뤘다. 산적이 사무라이를 죽이고 그 아내를 겁탈한 게 팩트였지만 진술은 판이했다. 같은 경험일지라도 모두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하면서 본질을 달리 인식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라쇼몽 효과'라고 한다.

같은 경험을 해도 경험자의 생각·입장에 따라 사실이 달리 해석되는 경우는 흔하다. 2년 전의 조국 사태를 비롯해 경제계의 최저임금·주52시간제, 최근의 언론중재법까지 동일 사안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이 사회적 논쟁거리가 됐다. 이유는 있다. 팩트는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데 객관적 자료가 100% 객관적일 수 없다. 자료의 진위, 취사선택의 가능성 등이 객관성을 흔든다. 인지 능력의 한계로 수많은 자료를 다 확인하기도 힘들다. 대략적인 경험치와 기억으로 해석한다. 인간은 자기중심적 공감 능력을 가져 기억도 왜곡될 수 있다.

최근 개막한 대구사진비엔날레의 메인 포스터가 '베끼기 논란'에 휩싸였다. 주제전 '누락된 의제-37.5 아래' 포스터의 사진이 지난해 서울 한 갤러리에서 선보인 외국 사진작가의 개인전 포스터 사진과 같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제전 큐레이터와 예술감독은 "같은 사진 작품이라도 크로핑(사진 등의 불필요한 부분 다듬기)이 더 돼 문제가 없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 같은 경우가 있다" "같은 포스터란 것을 알았지만, 이번 전시의 정체성에 맞아서 선택한 거라 문제 될 것이 없다"라고 각각 해명했다. 하지만 사진·미술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 "대구의 수치"라며 비판했다.

서로 다른 주장에 대한 시비를 가리긴 쉽지 않다. 그래도 "대구사진비엔날레가 전 세계 사진예술의 흐름을 선도하는 국제전시인데, 서울 상업화랑에서 이미 사용한 전시 포스터를 재탕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한 작가의 비판은 가슴에 와닿는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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