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인(人)의 장막

  • 조진범
  • |
  • 입력 2022-02-16 22:00  |  수정 2022-02-16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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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매입한 대구 달성군 전원주택 전경. 영남일보DB

2004년 3월 12일, 대한민국 국회는 난장판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때문이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국회 본회의장 국회의장석을 봉쇄했다. 탄핵안의 가결을 막기 위해 '인(人)의 장막'을 쳤다. 야당 의원들은 경호원을 동원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끌어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끌려나가면서 울부짖었다.

인의 장막은 실체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로 나뉜다. 실체적 의미는 물리적인 침입이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실제로 사람들이 장막을 만들었을 경우이다. 일부 인사가 권력자로 향하는 언로(言路)를 독점했을 땐 비유적 의미로 사용된다. 인의 장막은 '철의 장막'(Iron Curtain)에서 파생된 용어로 추정된다. 철의 장막은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이 처음 말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에서 연설을 하면서 종전 후 냉전시대를 철의 장막에 비유했다.

요즘 정치권에서 인의 장막은 비유적 의미로만 사용된다.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되면서 물리적인 인의 장막은 사실상 사라졌다. 통상 최고 권력자가 잘못 판단할 때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있다고 비판한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에게 모두 적용되는 용어가 아닐까 싶다. 인의 장막에 가리게 되면 권력자는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간신들이 제공하는 정보에만 의존하면서 판단력을 잃게 된다. 건전한 비판은 비난으로 들린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남탓'으로 돌리게 된다. 간신들은 권력자의 믿음을 배경으로 삼아 호가호위(狐假虎威)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인의 장막에 갇혔다. '문고리에 휘둘린 식물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비선실세 의혹 등으로 대한민국 대통령 최초로 탄핵되고, 구속되는 아픔까지 겪었다. 신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돼 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은 퇴원 후 대구 달성군에 머무를 예정이다.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에 사저를 마련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고향에서 여생을 보내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사저의 위치가 문제다. 외부인의 시선에 쉽게 노출돼 사생활 보호에 취약하다. 실제 사저 인근에 고층아파트가 우뚝 서 있다. 마음만 먹으면 사저를 관찰할 수 있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은 대중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스타일이 아니다. 정치인으로 활동할 때 '신비주의'라는 꼬리표까지 붙었을 정도이다. 달성 정치권의 한 인사는 "달성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바닥 정치'를 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런 박 전 대통령이 하필 사방팔방 탁 트인 곳에 사저를 마련했을까. 상당히 고급스럽기도 하다. 사저에 방 8개, 엘리베이터가 2대 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인사들은 "박 전 대통령의 뜻이 아닐 것이다"라며 고개를 젓는다. 박 전 대통령을 내세워 이득을 취하려는 일부 인사에게 이용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걱정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진실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그나저나 인의 장막 논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박 전 대통령이다. 실로 안타깝다.


조진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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