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포르투갈 리스본 벨렘 지구, 대항해시대 찬란함 고스란히…마누엘 양식 건축물 낭만 더해

  • 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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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18   |  발행일 2022-03-18 제36면   |  수정 2022-03-18 08:52

발견기념비
엔리케의 아프리카 탐험을 기념해 세운 '발견기념비'.

오늘은 리스본 벨렘 지구로 향했다. 포르투갈이 바다를 향해 일찍이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베리아반도 서쪽 끝이라는 지리적 조건 때문이었다. 땅은 좁고 바다는 넓었다. 바다는 장벽이기도 하지만 드나드는 문이기도 했다. 그 바다에 대한 열망을 직접 실천한 해양왕 엔리케 덕분에 포르투갈은 물론 유럽 전체가 대항해시대의 막을 열었다. 벨렘 지구의 발견기념비는 그러한 대항해시대와 엔리케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포르투갈의 왕자 엔리케(1394~1460)는 유럽 각국의 항해가, 천문학자, 조선공, 지도제작자 등을 불러들여 항해 기기를 개발하고 선박을 개량하여 아프리카를 탐험했다. 그리고 적도를 넘어 세네갈, 카보 베르데, 기니 해안, 시에라리온까지 도달하였다. 


이러한 그의 원정은 이후 브라질을 식민지로 만드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마침내 해양왕으로 불리게 되었다. 1960년은 엔리케 사망 500주년이었다. 그것을 기념하여 세운 것이 '발견기념비'이다. 기념비가 세워진 곳은 바스코 다 가마가 항해를 떠났다는 바로 그 자리다. 범선 '카라벨' 모양을 한 53m 높이의 이 기념비에는 수많은 인물이 조각되어 있다. 

뱃머리 맨 앞에는 해양왕 엔리케가 서 있고, 그 뒤를 바스코 다 가마, 서사시인 카몽이스를 비롯한 많은 모험가와 천문학자, 선교사가 따르고 있다. 기념비가 서 있는 광장 대리석 바닥에는 전성기 당시 포르투갈이 지배하던 나라들을 표시한 세계전도가 당시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었다.

엔리케의 뒤에 서 있는 바스코 다 가마도 대항해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애덤 스미스는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항해와 함께 그의 인도 항해를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꼽았다. 그는 1497년 6월에 리스본을 떠나 그해 11월에 희망봉을 돌고, 이듬해 5월20일에 인도 서해안의 캘리컷에 상륙했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후추를 싣고 1499년 리스본으로 돌아와 큰 이익을 남기며 국민적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인도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악마였다. 1502년 다시 인도에 간 그는 도시를 파괴하고 무슬림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1998년은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캘리컷 해안에 상륙한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인도와 포르투갈에서는 각각 전혀 다른 기념행사를 했다. 리스본에서는 17.2㎞나 되는 바스코 다 가마 다리를 세우고 대대적인 축하 행사를 벌였으나, 인도에서는 그의 인형을 만들어 불태우고 검은 깃발을 올리며 항의 행진을 했다. 역사는 이렇게 다르게 읽힌다.

벨렘탑
벨렘탑.

발견기념비 광장 서쪽에는 벨렘탑이 있다. 물 위에 앉은 나비라거나 테주강의 귀부인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7년간의 공사 끝에 1521년에 완성된 마누엘 양식의 3층 탑이다. 아름다운 3층 테라스는 옛날 왕족의 거실로 사용되었고, 2층에는 항해의 안전을 수호하는 '벨렘의 마리아상'이 서 있다. 

벨렘탑은 여러 가지 역할을 했다. 선박 출입을 감시하는 요새이기도 했고, 탐험대의 전진기지이기도 했다. 바다를 향하는 탐험가들이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건물이기도 하고, 돌아와 처음으로 보는 건물이기도 했다. 바다를 오고 가는 이들에게 벨렘탑은 리스본의 얼굴이었다.

이 탑은 테주강이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지점, 강과 바다가 만나는 물속에 세웠다. 지금은 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물 위로 나왔지만 처음 지었을 때는 1층이 물이 차올랐다 빠지곤 했다. 스페인이 지배하던 시절부터 19세기 초까지 정치범 감옥으로 사용했던 1층은 조수간만의 차이로 차올랐다 빠지는 물로써 죄인들을 자연 고문했던 것으로도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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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가 300m에 달하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전경.

벨렘탑 맞은 편에는 리스본의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있다. 이곳은 원래 해양왕 엔리케가 세운 산타 마리아 예배당이었으며, 바스코 다 가마도 역사적인 출정 전야에 이곳을 찾아 기도했다고 한다. 


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 원정에 성공하자 마누엘 1세는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수도원을 증축하기 시작했다. 이 수도원은 100년 가까이 증축을 거듭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길이가 약 300m에 이르는 웅장하고 화려한 외관을 갖고 있으며, 2층짜리 건물로 설계되어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건물로 평가받았다. 또한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세계에서 마누엘 양식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건물로 알려져 있다.

수도원의 산타마리아 성당 파사드 가운데에는 마누엘 1세와 왕비 마리아, 성 제로니무스, 세례 요한 등의 조각상이 있고, 남문 회랑에는 후기 고딕 마누엘 양식을 대표하는 조각상 24개가 세워져 있다. 또 수도원 왕실 묘지에는 마누엘 1세 부부 외에 국민시인 카몽이스의 유해도 안치되어 있다. 카몽이스가 1572년에 발표한 '우스 루지아다스'라는 서사시는 '포르투갈 국민의 정신적인 성서'로 불린다. 

이 작품은 인도 항로 발견과 바스코 다 가마의 첫 번째 원정을 축으로 한 극적인 줄거리를 부각시켜 포르투갈의 역사와 신화를 엮어 그 영웅적 위업을 높이 찬양하는 애국적 대서사시이다. 왕년의 대국 포르투갈의 위대함과 작자의 애국심이 전편에 넘쳐흐르고 있다.


해양왕 엔리케 사후 500주년 기념비
범선 '카라벨' 형상 수많은 인물 조각
광장 대리석 바닥엔 세계전도 새겨져
포르투갈 지배국 표시 당시 영광 재현

서쪽엔 물 위 앉은 나비 같은 '벨렘탑'
테주강의 귀부인으로 불릴만큼 우아
맞은 편 위치한 '제로니무스 수도원'
100년 증축 거듭 웅장한 외관 자랑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왔다면, 아니 리스본에 왔다면 반드시 들러야 하는 에그타르트 맛집이 있다. 그곳은 파스테이스 드 벨렘이라는 이름의 가게로, 1837년 개업하여 5대째 이어지고 있는 리스본의 노포이다. '파스테이스'는 '파스텔'의 복수형으로,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파이 같은 빵을 말하므로 가게 이름은 '벨렘의 파이'라는 뜻이라 하겠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흔히 '나타'라고 부르며, 우리에게는 에그타르트로 알려져 있다. 겉은 페스츄리처럼 바싹하지만 속은 계란의 부드러움이 녹아들어 있어서, 바싹함과 부드러움의 극단적인 두 맛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이런 맛있는 에그타르트가 탄생한 것은 제로니무스 수도원 덕분이라고 한다. 200여 년 전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수도복을 빳빳하게 다리기 위해 계란 흰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일종의 풀 먹이는 작업인데, 풀 대신 계란 흰자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흰자만 사용하다 보니 자연히 노른자가 남게 되었고, 그 노른자를 활용하기 위해 에그타르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수도원의 음식이었던 에그타르트가 시중에 나오게 된 것은 1820년 스페인에서 시작된 자유주의 혁명 때문이다. 당시 이 혁명으로 인해 대부분의 수도원과 수녀원이 문을 닫게 되었고, 이곳 제로니무스 수도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도원을 떠난 수녀들이 생계를 위해 수도원에서 만들어 먹던 에그타르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가게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바로 옆에 있다. 위치 덕분이었는지 수녀들의 에그타르트 레시피를 전수한 주인이 원래 사탕수수 정제 공장이었던 이곳을 개조하여 지금의 빵집을 열었다고 한다. 파스테이스 드 벨렘은 매일매일 신선한 에그타르트를 만들 뿐 아니라 맛도 변함없이 균일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일명 '비밀의 방'에서 옛날부터 이어진 전통 방식과 레시피를 이용하기 때문이란다. 리스본에 와서 이 집을 들르지 않았다면 리스본에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리스본을 대표하는 맛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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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X 팩토리 그라피티.

리스본 벨렘 지구는 오래된 리스본 속에서 오래된 맛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여행지였다. 그러고 나니 새로운 리스본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났다. 시간이 되면 꼭 가보고 싶었던 젊은이들의 공간 LX 팩토리를 들렀다. 


이곳은 낡은 공업단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구조화한 곳이다. 서울의 성수동이나 베이징의 798예술구, 뉴욕의 첼시 마켓처럼 폐공장을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도심 재생의 세계적 트렌드이다. 이곳도 그 전형을 따른 것으로 보이는데, 이 지역의 특징을 살려 나름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지역의 그라피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칠레의 발파라이소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라보카 지구의 강렬한 남미 그라피티와는 달리 섬세하고 예술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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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예술 공방, 카페, 레스토랑, 편집숍, 서점, 기념품 가게 등 다양한 상권이 형성되어 젊은이들이 북적거렸다. 가게마다 익스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았고, 내부로 들어가면 또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발길을 잡았다. 


그 공간들을 메우고 있는 상품들도 예사롭지 않았고, 디자인도 트렌디하여 눈길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래된 도시 속에서 새로운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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