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vs 3시간'…시청습관 맞춘 콘텐츠 길이로 승부

  • 윤용섭
  • |
  • 입력 2022-11-24 07:21  |  수정 2022-11-24 07:25  |  발행일 2022-11-24 제14면
영상시장서 전략이 된 러닝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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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환경의 변화에 따른 차별화된 러닝타임이 하나의 중요한 전략이 되고 있다. 장르의 특성과 변화하는 시청 습관 등을 고려한 결과인데, 30분 내외의 짧은 드라마부터 3시간이 넘는 영화까지 소비자가 각자의 방식대로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러닝타임을 조절하며 관람 문화에 발맞추고 있다. 더는 창작자가 정해준 길이대로 콘텐츠를 시청하지 않는, 능동적이고 스마트한 감상법을 추구하는 소비자를 위한 러닝타임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미드폼 드라마 분량 줄여 집중도↑
예능은 긴 러닝타임으로 제작 추세
출연진 감정선 충실히 담는 데 초점

영화도 길어져 2시간 훌쩍 넘긴 분량
티켓 가격 상승에 맞게 만족도 높여
콘텐츠 완성도가 더 중요하단 분석도

◆미드폼 드라마와 롱폼 예능

최근 '욘더' '몸값' '청춘 블라썸' 등 30분 내외의 짧은 드라마들이 속속 시청자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의 부상으로 미드폼 드라마를 모바일로 시청하는 것이 익숙해진 지 오래지만 빠른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가볍고 일상적인 소재가 아닌, 묵직한 주제의 장르물까지 러닝타임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10월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욘더'는 총 6부작으로 제작된 미드폼 드라마다. 매회 러닝타임이 25∼30분 내외로 짧지만 총 분량이 약 3시간30분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긴 호흡의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욘더'는 '존엄한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뤘다. "진입장벽이 높을 것 같다"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시청자들은 시간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나 오히려 집중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연출을 맡은 이준익 감독은 "요즘은 영상이 짧아지는 추세"라며 "기존 영화와 드라마의 포맷을 시리즈로 전환하면서 좀 더 과감한 시도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명의 단편영화를 원작으로 한 '몸값' 역시 회당 분량이 30분이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갇힌 세 사람의 사투를 그린 이 작품은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와 빨려 드는 듯한 몰입감으로 긴박감과 현장감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몸값'을 연출한 전우성 감독은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진행됐으면 좋겠다는 구상이 기본적으로 있었다"며 "기존 장르물과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까 고심하면서 원테이크 촬영을 택했다"고 말했다. 청춘들의 풋풋한 로맨스와 미스터리 등 다채로운 요소를 녹여내 "짜임새 있다"는 평을 받은 '청춘 블라썸' 또한 30분 내외의 미드폼 드라마다.

반면 예능은 긴 러닝타임을 선호하는 추세다. 엠넷의 '스트릿 맨 파이터'는 한 회 분량이 120분, 티빙의 '환승연애'는 최고 188분에 달한다. 하지만 시청자는 러닝타임에 부담감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좋다"는 반응이다. 유튜브와 OTT로 영상을 보는 데 익숙해진 시청자가 즐기고 싶은 부분에 집중해 빨리 감기와 배속 시청으로 입맛에 맞게 재생속도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승연애'를 연출한 이진주 PD는 "덕분에 출연진의 감정선을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며 "예능은 드라마와 달리 지루하다고 해당 장면을 삭제하면 연쇄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담는 데 초점을 맞추게 되고, 그러다 보니 러닝타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긴 러닝타임을 고수하는 극장가 기대작

그렇다면 영화는 어떨까. 올해 극장가에 걸린 영화들은 대부분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에 기획·제작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러닝타임이 길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한국영화 기대작 '외계인'(142분), '비상선언'(140분), '공조2'(129분) 등이 2시간을 훌쩍 넘겼고, 할리우드 대작들의 경우에는 이보다 훨씬 긴 러닝타임을 택했다. 최근 개봉한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는 161분, 오는 12월 개봉하는 '아바타: 물의 길'의 러닝타임은 무려 190분에 달한다.

미드폼 영상의 전성기에 긴 러닝타임을 택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영화 관계자들은 영화의 장르적 특성과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과거 작품들을 살펴보면 러닝타임이 긴 영화는 판타지나 역사극인 경우가 많았다. 러닝타임이 222분인 '아라비아의 로렌스', 197분인 '닥터 지바고', 194분인 '타이타닉', 201분인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등의 사례처럼 긴 러닝타임이 소비자의 관점에서 더 크고, 강하고, 긴 인상을 남긴다고 본 것이다. 더불어 최근 영화 티켓 가격이 상승하면서 작품 선택이 신중해진 관객에게 긴 시간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목할 건 콘텐츠의 길이가 아닌 완성도다. 리서치 기관 스크린 엔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화를 선택할 때 '러닝타임을 참고한다'고 답한 응답자(52%) 중에서 44%는 영화 티켓을 구매할 때의 기준이 러닝타임이 아니라 '얼마나 영화를 보고 싶은지에 달려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러닝타임을 고려하는 사람 중 38%는 120분을 넘어가는 영화를 선택하는 것을 주저했고, 57%가 150분 이상 상영되는 영화의 선택을 주저했다. 응답자의 45%는 영화가 너무 길다는 말을 들으면 영화가 덜 흥미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영화 관람객 중 절반가량이 표를 구입하기 전에 영화의 상영 시간을 확인하며 젊은 관객일수록 그런 경향이 더 강했다.

대중문화평론가 김광원은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주의력이 얼마나 지속되는지가 아니라 개개인에게 도달하는 콘텐츠의 양과 환경"이라며 "집에서 원하는 때에 일시 중지 버튼을 누르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환경에서 보는 것과 극장에서 긴 러닝타임의 신작을 관람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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