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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정〈소설가〉 |
종일 무겁던 하늘에서 빗방울이 투두둑 떨어졌다. 예매한 야구 표를 취소할까 고민하다 우비를 챙겨 나섰다. 폭우가 내릴 거란 장사꾼의 말이 마지막 남은 우비를 해치우려는 상술만은 아니었다. 빗줄기는 굵어졌지만 경기는 계속됐다. '약속의 땅' 포항구장은 추락한 홈팀의 반등을 꿈꾸는 팬들이 몰렸다. 티케팅이 늦었던 나는 3루 내야석이었고 원정팀 응원석이라 빈자리가 많았다.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승부 경쟁도 치열하지만 관중석에서 주고받는 응원전은 더욱 뜨거웠다. 시속 130㎞가 넘는 공이 구장을 휘젓는 동안 그 작은 공이 뭐라고 함성과 탄성이 교차하며 희비가 엇갈렸다.
경기 관람보다 야구장 치맥에 진심인 내 눈에 서로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은 커플이 들어왔다. 양 팀이 공격권과 방어권을 나눠 갖는 동안 둘은 투닥거렸다. 경기는 승부를 가르는 일이고 이기는 쪽이 있으면 지는 쪽이 있으므로. 실점과 득점, 실책과 기회가 오갈 때마다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하면 다른 이는 어깨가 늘어졌다. 그 반대가 되기도 했지만 응원석의 극명한 온도 차는 없었다. 그들만의 반복되는 몸짓 때문이었다. 환호한 다음에는 상대의 등을 툭 쳐주거나, 축 늘어진 어깨를 감싸 안거나, 우스꽝스러운 동작으로 응원했다. 그리니 승패를 떠나 즐거울 수밖에 없다. 경기장에선 한 팀만 이기지만 관중석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누구나 이기는 경기는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승부를 갈라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평가의 말들이 난무하고 서열을 따지는데 지나치게 에너지를 쏟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모두가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누구도 지지 않는 경기는 어떨까? '이기는 것'과 '지지 않는 것'이 그게 그거 같아도 분명히 다르다. 패배자도 탁 털고 일어나 "이만하면 공정한 한 판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결과. 비록 졌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면 누구도 지지 않았다. 세상 모든 곳이 치열한 경기장일 필요는 없다. 승패와 상관없는 그라운드가 더 많아지기를. 비를 맞아도 즐거웠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닌가. 배은정〈소설가〉

배은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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