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정현 (설치미술작가) |
삶의 여백, 앞만 보며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는 삶의 여백은 낭비이고 사치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학창 시절 과제로 '빡빡이'를 쓰듯, 낭비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배워왔던 우리는 여백 없이 살아왔다. 앞서나가야 할 것 같은 강박감으로 성장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자신을 질책하기도 하고, 성장이 멈추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는 불안감과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완벽해지고 싶은 욕심, 실패가 두려워 생긴 결정장애,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이런 압박감은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그림자처럼 불안함도 늘 함께했다. 어쩌면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의 작품에서 여백을 먼저 의식하고 구상을 해왔을지 모른다.
평면 작업, 설치작품, 건축에서조차도 '여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왔지만 나는 삶에서는 여백이 그렇게 많지 않다. 작품활동을 하기 위해 시작한 아르바이트에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또 다른 책임감이 나의 삶에서 얼마 남지 않은 여백마저 채워 버리게 되었다. 텅 빈 공간이 우리의 삶에서 필요하듯, 정신적인 여백이 소중해지는 시기가 나에게 온 것 같다.
삶의 여백이 절실하다가도,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된 텅 빈 여백에 당혹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원치 않은 여백으로만 채워진 삶의 '공허함', 그런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며 가벼운 즐거움만을 추구하다 보면 공허함 속에 더 큰 공허함을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여백이 필요한 삶, 여백을 채워야 하는 삶, 나는 그 '삶'이 이우환 작가의 작품 속 당당히 자리 잡은 '점'으로 느껴진다. 화려하지 않은 점 하나가 여백의 지루함을 오히려 '울림'과 '감동'으로 완성시키는 이우환의 작품처럼,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나의 삶도 감동적일 수 있을 것만 같다.
박정현<설치미술작가>

박정현 설치미술작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