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배은정<소설가> |
글도 집도 짓는다고 말한다. '짓는다'는 재료를 들여 만든다는 의미이다. 집의 설계는 글의 개요이고 건축 재료는 글감에 해당한다. 잘 구운 벽돌을 쌓아 올리듯이 문장을 차곡차곡 얹어가는 과정도 유사하다. 건축은 여럿이 하나를 만들지만, 글은 오로지 혼자만의 작업이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집 짓고 골병든다는 말이 있다. 무슨 건축상을 탈 만큼 멋들어진 집을 지은 작가를 알고 있다. 공사 내내 글을 한 줄도 안 쓰다가 완공이 돼서야 원고를 탈고한 것처럼 '이래 봬도 집 지은 작가'라고 으스댔다.
집 지을 능력이 없는 나는 대신 텐트를 친다. '친다'는 건 무엇을 펴서 벌이거나 벽을 둘러 세우거나 쌓는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짓는 일보다 하수다.
그렇다고 만만히 보지 마시라. 서너 시간을 끙끙댄 나 같은 초보도 있다. 세상 평평한 나무 데크에 백패킹용 경량 텐트를 치는데도 말이다. 노을 지는 언덕에서 촬영된 사진에 혹해서 구입한 텐트였다. 밤새 술잔치를 벌이던 이웃 텐트를 만난 뒤로 승용차 트렁크에 처박힌 신세였다. 지인의 캠핑에 초대받아 기분 좋게 두런거린 시간이 없었다면 엄두도 안 냈을 재도전이었다. 분명히 치기 쉬운 텐트였는데 수월했다는 기억만 있을 뿐, 짧디짧은 사용 설명서가 암호문과 다름없었다. 폴대를 색깔 별로 끼우기만 되는데도 어긋나기만 했다. 햇빛이라도 피할 생각으로 그늘막 설치로 선회했지만 어설프게 세운 폴대가 트리플 악셀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피겨 선수처럼 넘어졌다. 폴대가 쓰러지면서 내는 금속음이 산울림이 되어 번지는 바람에 옆 텐트에 민망할 정도였다.
결국 널브러진 천 조각을 내버려 두고 때려치울 심사로 느티나무 아래 의자를 폈다. 패잔병처럼 몸을 축 늘어뜨리고 앉으니 그제야 겹겹이 병풍처럼 이어진 산세가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불자 '후드득' 느티나무 가지에서 열매가 쏟아져 내렸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도 이 작은 열매에서 비롯됐음이다. 이 풍경을 아름답다는 형용사 없이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우여곡절 끝에 텐트를 쳤지만, 글은 제대로 짓고 싶어 짓는 일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다.
여담이지만 다음 날 텐트를 걷는 시간은 치는 시간의 반의 반도 안 되었고 다음 캠핑에서는 괄목할 속도로 텐트를 쳤다. 배은정<소설가>

배은정 소설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