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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소설가〉 |
스코틀랜드에서는 매년 1월25일 축제가 열린다. '국민 시인' 로버트 번스의 생일을 기려 모두 노래하고 춤춘다. 번스는 '올드 랭 사인'의 노랫말을 쓴 시인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잉글랜드에 맞설 민족적 자존심을 번스가 세워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올드 랭 사인'을 강소천 시 '작별'의 내용으로 기억한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어디 간들 잊으리오 두터운 우리 정/ 다시 만날 그날 위해 노래를 부르자."
하지만 번스의 시 세계는 '작별'처럼 단순 서정에 머무르지 않는다. 번스가 스코틀랜드인들의 민족적 자존심으로 추앙받는 데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올드 랭 사인'이 한때 우리나라에서 애국가로 사랑받았다는 사실도 그 점을 말해 준다.
번스 시 '아무리 그래도'에서 그의 문학적 정체성을 단적으로 증언해주는 한 구절을 읽어본다.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그날은 다가오네, 아무리 그래도/ 온 세상 모든 사람과 사람이/ 아무래도 결국은 형제가 될 날이."
번스는 1796년 7월21일 세상을 떠났다. 1759년 1월25일 출생했으니 겨우 37세에 머문 짧은 삶이었다. 세상에 우연이 많듯이, 7월21일은 미국 문호 헤밍웨이(1899)와 우리나라 풍자소설의 대가 채만식(1902)이 태어난 날이기도 하다.
채만식 소설에 '태평천하'가 있다. 일본제국주의 지배하의 한반도를 태평천하로 인식하는 대지주이자 고리대금업자 윤직원이 주인공이다. 윤직원은 나라가 망하기 전 "우리만 빼고 다 망해라!" 하고 부르짖었던 인물이다.
윤직원의 부르짖음은 '자신한테 불리한 세상에 대한 격분된 저주'였다. 그는 "그날은 다가오네, 아무리 그래도/ 온 세상 모든 사람과 사람이/ 아무래도 결국은 형제가 될 날이"라고 노래한 번스와 아주 정반대 가치관의 소유자였다.
소설 끝에 이르면, 윤직원이 그토록 기대했던 손자가 일본에서 구속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윤직원은 '발광을 했는가 싶게' 부르짖는다. "만석꾼 집 자식이, 세상 망칠 사회주의 패에 가담을 하다니! 죽일 놈! 죽일 놈!"
번스는 필연을 노래했다. 소설 '태평천하'는 손자의 피체를 통해 윤직원이 몰락의 길로 접어들 것을 암시한다. 분명한 점은 윤직원의 최후를 우연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으면 번스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못할 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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