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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겸<원불교 대구경북교구 사무국장> |
'에피소드 1'. 필자가 초등학교 때의 일이었다. 당시의 호구조사(戶口調査)를 위한 설문지를 써 갔던 기억이 있다. 그 안의 질문 중에 고민되는 내용이 있었는데, 그건 종교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 기타로 표시되는 종교란에 나는 불교라고 표시해야 하나, 기타로 표시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원불교 교당을 다녔기 때문에 원불교로 써야 하지만, 원불교 기재란이 따로 없기에 '기타'로 표시해야 하는데, 어린 마음에 다른 친구들과 다른 종교를 가졌다는 사실 자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거 같다. 비주류에 속하기 싫었던 것이다.
'에피소드 2'. 고등학교 때의 일이었다. 남자친구들끼리 유행했던 놀이 중의 하나가 오락실 게임이었다. 나는 비교적 조용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던,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친구들과의 대결하는 게임에서 비교적 고수(?)라고 불리던 친구들을 한 명씩 물리치고 이기면서 어느덧 게임 잘하는 사람으로 분류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왠지 친구들 사이에서 주류가 된 듯한 심경으로 으쓱했던 기억이 있다.
세상을 살면서 어떤 조직에 속해 일을 해나가면서 나는 주류에 속하는가, 비주류에 속하는가. 주류(主流)는 원래는 '강물 따위의 원줄기가 되는 큰 흐름'이라는 뜻으로 조직이나 단체의 내부에서 다수파를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가능하면 주류에 속해서 스스로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 별 어려움, 걸림 없이 진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보자. 주류와 비주류라는 구분을 어떻게 정확하게 나눌 수 있을까. 정치에서 보수, 중도, 진보로 나누는 것, 경제에서 부자인 사람과 중산층, 가난한 사람을 칼로 무를 베듯이 딱 나눌 수 있는 것인가. 예를 들어 1천만원을 가진 사람이 가난한가, 부유한가.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큰돈이라 이야기하고, 부자인 사람은 그냥 적당한 돈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100만원을 가진 사람은 1천만원이 많고, 1억원 이상을 가진 사람은 1천만원이 적다고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 사람의 현재 상황과 평소 가진 생각에 따라 많다고도, 적다고도 할 수 있는 상대적인 구분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기준 자체를 세밀하게 쪼개다 보면 주류와 비주류라는 구분이 없어지게 된다. 기준이라는 것은 단지 구분하기 위함이지, 차별이나 급을 나누기 위한 것은 아니다. 현실 생활 속에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젊은 세대일수록 그런 생각이 더 들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이 나누는 기준과 그에 따라 연결되는 나의 평소 생각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 세상을 살면서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은 나 자신을 좌절하게 만들 수 있는 요소인 동시에 또 다시 나를 분발하게 만드는 감사한 것이 될 수 있다. 더운 날씨에 계속되는 장마에도 오늘 하루를 은혜롭고 감사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찾아보자.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애쓰고 있을 모든 사람에게 지면을 통해서나마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본다. 신지겸<원불교 대구경북교구 사무국장>

신지겸 원불교 대구경북교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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