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되거나 사라진 대구의 영화관…2000년대부터 대형 배급사 소속 극장에 밀려

  • 정지윤
  • |
  • 입력 2023-09-08 19:02  |  수정 2023-09-09 12:46  |  발행일 2023-09-11 제3면
[사라져가는 대구경북 삶의 기록 시즌2] <2>대구 토종 브랜드 영화관
1938년 문을 연 한일극장 2012년 'CGV대구한일'로 통합
아카데미시네마 통합 후에도 코로나19로 영업 중단되기도 해
마지막까지 남은 만경관도 경영난로 합병돼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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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한일극장 모습. <영남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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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한일극장 모습.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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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2월부터 '한일극장'에서 'CGV대구한일'로 이름을 변경했다. <영남일보 DB>

현재 대구에는 'CGV' '롯데시네마' 등 대형 배급사 소속 극장이 자리 잡고 있다.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다양한 지역 토종 브랜드 영화관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부터 대형 배급사 소속 극장들이 대구에 진출하면서 위기를 맞이했다. 결국 자신들만의 색깔을 내세우며 운영 중이던 토종 브랜드 영화관들은 통합되거나 문을 닫게 됐다.

대구의 대표적인 영화관을 생각하면 '한일극장'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한일극장은 '대구백화점' '중앙파출소'와 동성로의 약속 장소로도 유명하다. 한일극장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938년 '키네마구락부'로 출발해 광복 후에는 '문화극장' '키네마' 등 명칭 변경이 이뤄졌다. 6·25전쟁 당시에는 서울의 국립중앙극장을 대체할 '임시 국립중앙극장'으로 사용됐다.

한일극장 이름을 사용하게 된 건 지난 1957년이다. 지난 1966년부터 본격적인 영화 전문관으로 사용됐다. 지난 1996년에는 건물을 허물고 복합상업건물을 지어 지난 2002년 '씨네시티 한일'로 재개관했다. 그러나 지난 2012년 12월 리모델링을 마치고 'CGV대구한일'로 CGV에 통합됐다. 당시 한일극장은 "대형 배급사 소속 복합상영관과의 경쟁이 어렵다는 판단에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CGV대구한일은 이름이 변경된 이후에도 여전히 한일극장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 한일극장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봤다는 이규민(32)씨는 "초등학생 때 '달마야 놀자'를 한일극장에서 친구들과 처음으로 봤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에는 1층에도 매표소가 있고 건물 안에도 있는 등 관객들이 많았다"면서 "CGV한일극장으로 부르기보다 한일극장으로 부르는 게 여전히 익숙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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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아카데미극장 모습.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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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CGV아카데미가 운영을 중단했다. <영남일보DB>

봉준호 감독이 어린시절 '로보트 태권브이'를 봤다고 잘 알려진 '아카데미시네마'도 대구의 토종 브랜드 영화관이었다. 지난 1961년 중구 남일동 동성로 입구에 문을 연 아카데미시네마의 당시 명칭은 '아카데미극장'이었다. 개관 후 지역의 단관극장으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후 대구에 멀티플렉스 시대가 열리자 지난 2001년 6개 관으로 리모델링 후 아카데미시네마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후 지난 2004년에는 다시 11개 관으로 확장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아카데미시네마도 결국 경영난을 피하지는 못했다. 지난 2009년 문을 닫게 된 것. 문을 닫은 지 약 2년만인 지난 2011년 롯데시네마가 아카데미를 인수해 '롯데시네마 대구아케데미'로 다시 문을 열게 된다. 지난 2014년에는 CGV가 인수해 'CGV대구아카데미점'으로 바뀌었다. CGV대구아카데미도 한차례 고비가 있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지난 2020년 10월 영업을 중단한 것. 다행히 지난 2021년 4월부터 영업을 재개해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최모(여·40)씨는 "남편과 첫 데이트를 한 장소가 아카데미시네마였다. 이후에도 둘이서 자주 심야 영화를 보러 갔다"면서 "코로나19때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아쉬운 마음이 컸다. 운영을 이어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계속 영화관이 이어지기 위해서 자주 찾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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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만경관 모습.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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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4월 만경관이 영업 종료를 알렸다. 이후 롯데시네마 '프리미엄 만경'으로 운영 중이다. 영남일보 DB

가장 마지막까지 대구 향토 극장으로 남았던 '만경관'의 경우 지난 2018년 4월 문을 닫았다. 만경관은 지난 1922년 대구에 조선인 자본으로 세워진 최초의 극장이다. 6·25전쟁 때에는 피난만의 수용소로 사용됐다. 지난 1986년에는 지역 최초로 '2개의 복합관'을 개관했다. 만경관은 지난 1990년대 후반까지 대구에서 가장 관람객이 많은 극장으로 지역민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지난 2002년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 상영관을 개관했다.

그러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진출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지난 2013년에는 15개 상영관 2천300석을 9개 상영관 859석으로 줄이는 등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나섰다. 그럼에도 결국 경영난으로 문을 닫게 됐다. 이후 롯데시네마와 합병을 통해 '프리미엄 만경'으로 운영 중이다. 김희숙(여·61)씨는 "우리 시절 당시 최고의 영화관은 만경관이었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무조건 만경관을 찾았다"면서 "자녀들과도 종종 영화관을 찾았다. 생각해보면 영화관을 갈 때마다 인원이 줄어들었던 거 같다. 아무래도 동성로 중앙 거리와 거리가 있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은 것이 경영난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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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 중앙시네마는 지난 2007년 문을 닫았다. 지난 2008년 문을 닫은 중앙시네마 모습. <영남일보 DB>

통합돼 운영 중인 영화관도 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영화관도 있다. 지난 1997년 중구 남일동에 문을 연 '중앙시네마'는 대구 '최초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었다. 아케데미시네마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어 영화관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다. 중앙시네마 역시 대형 배급사 소속 극장들의 등장으로 지난 2007년 10월 결국 문을 닫았다. 한동안 건물에는 '중앙시네마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만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었으나, 결국 사라지게 됐다. 이대한(37)씨는 "어린 시절 온라인 예매보다 오프라인 예매가 더 익숙해 아카데미를 갔다가 자리가 없음 중앙시네마로 뛰어갔던 기억이 있다"면서 "폐관 후에도 중앙시네마 옆을 지나면서 언제쯤 문을 열까 늘 궁금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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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2년 문을 연 동성아트홀은 한 차례 폐관 후 문을 열었지만 지난해 공식적으로 폐관 절차를 밟았다. 지난 2017년 동성아트홀 모습. <영남일보 DB>

예술영화 극장도 경영난의 어려움을 피하지 못했다. 대구 중구 동성로에 위치했던 '동성아트홀'은 지난 1992년 오픈했다. 매년 500여 편의 세계 예술영화가 상영됐다. 대구시와 영화진흥위원회 지원금과 극장 수익 등으로 운영을 지속했다. 그러나 지난 2015년 한 차례 폐관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지난 2017년 광개토병원이 인수했다. 그러나 코로나19, 건물 노후화, 건물 계약 등의 문제로 지난 2021년 11월 잠정 휴관에 들어갔다. 이후 지난해 9월 공식적으로 폐관 절차를 밟았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대구경북의 사라지거나 희미해져가는 생활·문화를 기록하는 '사라져가는 대구경북 삶의 기록'이 재정비를 마친 후 시즌2로 돌아왔습니다. 시즌2에서는 유통·문화·명칭의 변화 등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소중한 기억들을 기록하려고 합니다. 대구콘서트하우스·구 대구시민회관의 명칭 변경 전후와 관련한 기억이 있으신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또 대구 지역 토종 영화관 브랜드였던 '한일극장' '중앙시네마' '아카테미 극장' 등 영화관과의 추억이 담긴 일화, 대구의 공공의료기관이었던 '적십자병원', 대형마트 '까르푸' '홈플러스 1호점'과 관련한 기록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독자여러분과 함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라져가는 삶의 기억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추억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연락(yooni@yeongnam.com)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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