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꿈속의 가상세계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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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5 06:55  |  수정 2024-01-15 06:55  |  발행일 2024-01-15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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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석윤 논설위원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인 장자(莊子)가 어느 날 제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지난밤 꿈에 나비가 돼 꽃 사이를 날아다녔는데 내가 나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내가 된 꿈을 지금 꾸고 있는 것인가?" 장자의 '제물편'에 나오는 호접몽(胡蝶夢) 이야기다. 알다시피 장자가 강조한 건 나비가 아니다. 자면서 꾸는 꿈속 세상처럼 현실의 삶도 꿈일 수 있음을 알려 준 것이다.

수많은 성현들의 가르침도 이와 비슷하다. 세상은 꿈과 같고, 이슬과 같고, 안개와 같다고 했다. 인생이 실제보다 환영에 가깝다는 것. 그럴 듯도 싶다. 자면서 꾸는 꿈도 그때는 너무 현실 같다. 그게 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깨어나 보면 모든 게 신기루였다. 꿈에선 나조차도 따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 사물, 풍경처럼 그냥 꿈속의 '한 장면'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현실세계는 다를까. 어쩌면 우리는 눈 뜬 상태로 꿈을 꾸는 건 아닐까.

인생이 꿈이라는 건 수긍하기가 쉽지 않다. 오감으로 체험하는 물질세계가 너무나 생생하지 않은가. 불교에선 색즉시공(色卽是空)이란 말로 물질의 실체가 없음을 설파하지만, 과학적 사고로 무장한 사람들에겐 그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다. 하지만 그 '과학적 사고'란 게 사실 한물간 것이다. 근본부터가 잘못됐다. 현대의 양자역학은 '색즉시공'을 과학적으로 증명한다. 이중슬릿 실험이란 게 있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아름다운 실험으로 꼽힌다. 결론만 요약하면 이렇다. 빛과 전자는 실험자들이 지켜보면 입자, 그렇지 않으면 파동으로 움직인다. 전자는 물질의 최소 단위다. 즉 물질이란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란 것이다. 두 상태를 구분 짓는 건 오로지 '관찰'이라는 행위다. 이른바 '관찰자 효과'다. 이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이 있다. "내가 달을 보지 않으면 달은 없는 것인가?" 양자역학자들의 대답은 "사실상 그렇다"이다. 우주 만물은 텅 빈 상태로 인간이 의식할 때만 현현(顯現)된다는 것이다.

현실세계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건 양자역학자만이 아니다. 세계 최고 갑부 일론 머스크도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믿는다. "이 세상이 가상현실이 아닐 확률은 10억분의 1"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큰둥하다. 대부분 "그래서 뭐?"라는 식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행복하게 사는 게 중요하지 가상세계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 그래서 인류는 또 하나의 멋진 가상세계를 만들고 있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호모데우스(신적인 인간)'의 전능으로 디지털 유토피아를 창조 중이다. AR, VR, 홀로그래피 기술을 통합한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가 대표적이다. 게임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사회·경제·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현실세계와 유사한 활동이 이뤄진다. 사람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메타버스에서 더 오래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가상세계의 또 다른 한 축은 AI(인공지능)이다. AI의 진화 속도는 너무 빨라 겁이 날 정도다. AI는 인류에게 풍요와 즐거움을 주지만 한편으론 위협적인 존재다. 가짜뉴스와 범죄에 악용되기도 한다. 어쨌건 AI는 이미 인간을 뛰어넘었다. 신이 되는 건 인간이 아니라 AI일 것이란 예측도 많다. 꿈속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꿈(가상) 세계, 그 미래가 궁금하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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