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134만 뷰 기록한 감동의 졸업 연설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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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24 06:56  |  수정 2024-01-24 17:31  |  발행일 2024-01-24 제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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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동부지역본부장
"민지가 하늘나라로 떠나던 날, 저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왜 현대 의학은 이 아이를 살리지 못했을까. 저는 오랜 방황 끝에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현대 의학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결국 과학기술에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저는 다시 과학자가 되어 그 답을 찾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결국 과학기술이기에 우리의 꿈들은 세상의 지평을 넓히고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것입니다."

의사 과학자인 차유진 박사의 카이스트 졸업생 대표 연설이다. 카이스트에 입학해서 의학전문대학원을 거쳐 공학박사로 졸업하기까지 19년. 한때 의사라는 안락한 현실과 타협했던 차 박사는 자신의 첫 환자이던 11세 민지의 죽음 이후 먼 길을 돌아 의사 과학자가 됐다. 유튜브에 올라온 차 박사의 4분짜리 졸업 연설은 조회 수 134만 뷰를 넘었고, 1만5천여 개의 좋아요와 900여 개 감동의 댓글이 달렸다. 더불어 '의사 과학자'라는 차 박사의 직업도 관심을 받았다.

의사 과학자는 의사면허(MD)와 박사학위(PhD)를 모두 취득한 과학자를 말한다.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과학적 연구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역량까지 갖춘 박사급 인재로, 임상 현장의 수요를 연구 개발로 연결하는 핵심 인력이다. 최근 25년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37%가 의사 과학자이며 세계적인 제약회사의 대표과학책임자의 70%가 의사 과학자라 한다.

미국 의과대학 졸업생의 3.7% 정도는 의사 과학자의 길을 걷는다. 매년 배출되는 의사 과학자 수도 1천700여 명에 이른다. 미국은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의사 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매년 1조원의 예산을 투입해오고 있다. 한국의 의대 졸업생 중 의사 과학자는 약 1.6%로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정부 차원의 의사 과학자 지원 사업도 2019년에서야 시작됐다.

하지만 의사 과학자 수를 늘린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인 정책적·재정적 지원이 없다면 언제든 임상의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지속 가능한 의사 과학자 양성을 위해 과학·의학이 융합된 새로운 교육과정의 연구중심 의대 설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포항시와 포스텍은 국가 핵심 산업인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과 열악한 지방 의료 여건 개선을 위해 연구중심 의대와 스마트병원 설립을 2018년부터 추진해 왔다. 국내 최초 공학 기반의 연구중심 의대와 함께 500병상 규모의 첨단 의료시스템을 도입한 스마트병원도 동시에 설립한다는 구상이다. 이미 포스텍 연구중심 의대 신설을 위한 서명운동에 30만5천여 명이 동참했을 만큼 포항시민들의 열망도 뜨겁다.

현재 18년째 동결된 의대 입학 정원을 늘리는 논의가 한창이다. 기존 의대에 정원을 조금씩 늘려주는 방식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늘어나는 정원의 일정 부분을 미래 혁신 기술에 투자하겠다는 의미로 연구중심 의대를 출범시킴으로써 정부의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오산업을 반도체를 능가하는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키우고 그 중심에 설 의사 과학자를 양성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기존 체제로는 의사 과학자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고 앞으로도 쉽지 않다는 현실을 직시하면 답은 나와 있다. 

이은경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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