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개딸도 싫고 용산도 싫다면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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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4-04 06:52  |  수정 2024-04-04 06:53  |  발행일 2024-04-04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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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4·10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조급해진 모양이다. 정치권의 언사가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2찍' '탄핵' '개 같이 정치' '쓰레기 같은 말'. 낯 뜨거운 발언이 거리낌 없이 쏟아진다. 이런 혐오와 증오의 발언에 강성 지지층은 오히려 환호한다. 국민을 분열시키는 팬덤 정치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 다투어 '사이다 발언'과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쏟아내는 이유다. 이들에게 중도 확장을 통한 외연 확대라는 정치의 목표는 애당초 관심 밖이다. 새로운 인물도 새로운 비전도 없이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갈라치기 정치로 일주일 뒤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까.

사실 중도층은 모호해 보이기는 하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집단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혹자는 "선거와 전쟁에 중도와 산토끼는 없다. 집토끼들 간의 싸움이고 집토끼들이 실망해 투표장에 안 나오면 진다"는 주장을 한다. 더 나아가 "중도는 실체가 없는 허상이고 중도층을 공략해야 선거에서 이긴다는 말도 맞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쟁점 사안에 대해 정확히 중간 지점을 추구하는 일은 비현실적이다. 중도란 모든 이슈에 보통이라는 정확히 중간값의 응답을 보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어떤 이슈에는 찬성하고 다른 이슈에는 반대 응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모든 이슈에 일관된 성향을 보이는 중도층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부자 감세는 반대하지만, 국가의 시장 규제는 찬성할 수 있고 낙태는 허용해야 하지만, 여성가족부는 폐지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윤석열'이 싫다고 '이재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와 선거에서 이런 중도의 힘은 세다. 거대 양당 체제가 굳건하고 정치 양극화가 극심한 한국 정치에서는 더욱 더 그렇다. 정의하기 어렵고 모호하나 분명히 존재하는 중도층의 움직임에 따라 선거 판세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실리적으로 지지를 바꿔가며 투표하는 유권자들에 의해 선거 결과는 달라졌다.

최근 세 번의 선거(한국리서치 설문조사)에서 정치 참여에 적극적인 중도층 3명 중 1명(34%)은 한 번 이상 투표 정당(후보)을 바꿨다. 정치 이해 수준과 관심이 높은 중도층이 존재하고, 특정 정당을 강하게 지지하지 않는 중도층의 성향이 '스윙보터'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전체 유권자 중 부동층 유권자는 600만명을 넘을 것(리서치앤리서치 설문조사)으로 분석됐다.

여야 모두 30~40%의 지지층만 결집해선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더군다나 5% 미만의 격차로 승부가 갈리는 격전지가 수두룩하다.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중도층을 잡겠다면 혐오와 증오의 언사를 쏟아낼 게 아니라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과 목표가 엇갈릴 때, 갈등과 대립이 불거질 때, 정치는 타협과 협의로 길을 내야 한다. 어렵고 힘들지만 그렇게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

혐오와 증오에 기대어 선거에서 이긴다고 한들 '개딸'과 '태극기 부대'에 휘둘리는 정치가 내 삶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그러므로 '개딸'도 '용산'도 싫다며 투표하지 않는다면 내 삶도 우리 정치도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도'의 선택과 실천만 남았다.

이은경 한국스토리텔링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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