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가 지역을 바꾼다] "한국은 살기 좋지만, 미래가 불투명해요"

  •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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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6-18  |  수정 2024-06-17 19:45  |  발행일 2024-06-18 제5면
'고급인력' 이란 출신 이잣·인도 출신 고피의 지적
유연하지 못한 정책·폐쇄적 사회 환경 안타까워 해
"여름휴가를 받아 3일만에 이란에 다녀올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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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대구 달서구 계명대 첨단사업지원센터에 있는 의료 예후 예측 기술 솔루션 기업인 바이오 링크에서 이잣씨(왼쪽)와 고피씨가 AI를 활용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박지현기자 lozpjh@yeongnam.com

"다들 한국은 살기 좋은 나라라고 했지만, 주변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하나 둘 안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다른 나라로 떠났어요".

대구의 인공지능(AI) 기반 의료 솔루션 기업 ㈜바이오링크(대표 홍정호)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란 출신 이잣(39) 씨와 인도 출신 고피(36) 씨의 말이다.


이잣 씨는 AI 개발자로 연구(E3) 비자를 받고 한국에서 8년째 체류 중이다. 2016년 광주 조선대에서 박사 학위를 딴 뒤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디지스트)에서 박사후연구원(Post-Doc) 3년 과정을 밟기 위해 대구로 왔다. 그는 바이오링크에서 메디컬 데이터와 CT 사진 등을 기반으로 AI를 활용해 다양한 질병의 예후를 예측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숙련공'(E7) 비자를 가진 고피씨는 웹 개발과 데이터 프로세싱 등 업무를 수행 중이다. 2022년 한국에 들어온 그는 영남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인 아내와 함께 대구에서 살고있다.
'고급 인력'인 두 사람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유연하지 못한 정책들과 폐쇄적인 사회 환경을 안타까워 한다.


이잣 씨는 "대구경북은 서울보다 살기 편하다. 덜 붐비고, 주거비용 등 생활 필수 비용들이 수도권에 비해 적게 든다는 점에서 만족한다"면서도 외국인이 오랫동안 정착할 만한 환경을 갖췄는 지에 대해선 의문을 나타냈다. 그는 "대구경북 주민들은 외국인에 대해 거리감을 많이 두는 편"이라며 "서울이나 수도권에 비해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환경이고, 외국인에게도 개방(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고피 씨 역시 "외국인들은 대구에 어떤 일자리가 있는지, 어떤 생활 환경을 갖추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며 "지역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고, 외국인 수도 적다 보니 커뮤니티 형성도 활발하지 않다"고 했다.


지자체와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정책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우수인력 확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인재들이 오래 거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이잣 씨는 "많은 나라들이 자국에서 2~3년을 살면 영주권을 주는데 나 같은 경우 한국에서 8년을 살았는데도 주기적으로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며 "오랜 기간 열심히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데도 별다른 혜택은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런 상황이 해결되지 않다 보니 주변의 AI엔지니어들은 이미 한국을 벗어나 호주, 미국, 캐나다 등지로 떠났다. 호주의 경우 과학자나 연구진 등에게는 비교적 쉽게 영주권을 준다"며 "평소 한국이 살기 좋다고 말해왔던 그들이지만 자신은 물론 아이들의 '미래가 없는'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나 역시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다면 새로운 터전을 찾을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근무 환경의 개선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했다. 고피 씨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근로자에게 주어지는 출산 휴가가 유럽과 인도보다 짧다. 남자에게는 고작 열흘간 휴가를 주는데, 아내와 아이를 돌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잣 씨는 "여름 휴가의 경우 다른 나라는 한 달씩 쉬게 해 주는데 한국은 이런 부분에서 유연하지 못하다. (이란까지) 고작 3일 만에 왔다 갔다 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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