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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호 (갤러리제이원 실장) |
그런데 개인마다 시간차를 지각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중에서도 뇌의 예측력 차이에 주목해보자. 뇌는 실제보다 먼저 행동을 예측하고 감각을 보정해 주기 때문에, 예측력이 뛰어난 사람은 시간차를 더 적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말을 덜 들어도 이해가 된다거나, 착시 현상이 실제로 우리가 겪는 뇌의 예측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가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이라고 생각하는 감각들은, 이미 뇌가 예상한 것을 감각이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예측이 틀리다면, 우리는 놀란다. 예상하지 못한 색, 소리, 구조, 의미 같은 것들, 익숙한 듯 낯선 조형과 서사, 틀린 듯 보이지만 아름답게 느껴지는 왜곡들. 그 충격에서 우리는 감동을 받고, 생각을 멈추며, 새로운 상상을 시작한다. 이런 예상치 못한 낯섦은 예술의 오래된 전략 중 하나다.
예측이 너무 정확해지면, 익숙함이 된다. 지속된 익숙함은 감각의 둔화를 불러오고, 몸과 마음이 무뎌질 수 있다. 익숙함에 감각이 마비되고 상상이 꺼져 가는 것, 그것이 인간의 끝은 아닐까. 그렇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상상하며 감각을 일깨워야 한다.
문제는, 뇌는 예측에 무감각해져 가는데 우리는 자극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SNS는 우리의 예측을 뚫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해 간다. 그렇게 감각은 무뎌진다. 웬만한 건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다 비슷해 보인다. 그래서 더 센 자극만을 찾게 된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세상을 놀라게 하기 위해 계속 더 자극적인 것을 만들어야 하는가? SNS, 미디어, 광고는 강한 이미지로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려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예술가들도 무의식적으로 '내가 더 자극적인 걸 만들어야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압박을 받기 쉽다.
그러나 자극적이라는 것이 반드시 더 강력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는 무감한 감각을 흔들기 위해 소리치고, 누군가는 과잉된 감각을 진정시키기 위해 침묵을 선택한다. 예술가는 어디를 자극해야 마비된 감각이 돌아올지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박관호<갤러리제이원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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