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속에 숨겨진 역사와 문화 .44] 버즘나무와 야곱

  • 입력 2005-11-03   |  발행일 2005-11-03 제28면   |  수정 2005-11-03
야곱에 큰 富를 안겨준 나무
[나무속에 숨겨진 역사와 문화 .44] 버즘나무와 야곱

관찰은 공부의 핵심이다. 어떻게 관찰하느냐에 따라 이해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무에 대한 관찰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에게 아직 버즘나무는 낯설지만 플라타너스는 익숙하다. 플라타너스는 학명에 등장하는 이름이고, 버즘나무는 우리나라 이름이다. 북한에서는 방울나무로 부른다. 플라타너스(Platanus)는 그리스어로 잎이 '넓다'는 뜻이다. 이는 이 나무의 잎을 강조한 이름이다.

사실 이 나무의 잎은 상당히 넓다. 중국에서 버즘나무를 법국오동(法國梧桐)으로 부르는 것도 잎을 강조한 것이다. 법국은 프랑스에 대한 음역이다. 그러나 한국과 북한에서는 학명처럼 잎을 강조하지 않았다. 버즘나무는 이 나무의 껍질이 버짐을 닮아 붙인 이름이다. 방울나무는 이 나무의 열매가 방울처럼 생겨 붙인 이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즘나무는 양버즘나무이다.

성경 창세기 30장에도 버즘나무가 등장한다. "야곱은 미루나무와 복숭아나무와 플라타너스의 푸른 가지를 꺾어 흰 줄무늬가 나게 껍질을 벗겼다. 야곱은 껍질을 벗긴 그 가지를 물 먹이는 구유 안에 세워 놓고 양떼가 와서 그것을 보면서 물을 먹게 했다. 양들은 물을 먹으러 와서 거기에서 교미하였다.

양들은 그 나뭇가지 앞에서 교미한 후 줄무늬가 있거나 얼룩진 새끼를 낳았다. 야곱은 그런 양 새끼들을 가려 놓았다. 라반의 양떼 가운데 줄무늬가 있거나 검은 것은 그 양떼에서 가려내었다. 야곱은 이렇게 자기 양떼를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가려내었다.

그런데 야곱은 양떼 중 튼튼한 것이 교미할 때만 그 나뭇가지를 구유 안에 세워놓았다. 결국 약한 새끼들은 라반이 차지하였고, 튼튼한 것은 야곱이 차지하였다. 이에 야곱은 큰 부자가 되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 얘기도 버즘나무의 껍질이 어떤 모양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버즘나무는 현재 우리나라 가로수 중 가장 많다. 이처럼 버즘나무를 가로수로 심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 나무가 먼지와 매연에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나무를 한자로 토양을 정화시키는 나무, 즉 '정토수(淨土樹)'라 부르기도 한다. 이 나무를 가로수로 삼은 역사는 아주 길다.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5세기경에 버즘나무를 가로수로 삼았다. 우리나라의 버즘나무 가로수 중에는 단연 영화 '만추'의 촬영장소이기도 했던 청주 톨게이트의 입구가 으뜸일 것이다. 지난 여름 비오는 날 이곳 버즘나무 '터널'을 지나간 기억이 새롭다. 나는 그곳에서 김현승의 시 '플라타너스'를 읊을 수 있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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