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실에서 벗어나 독립 '동전노래방의 귀환'

  • 입력 2010-05-28   |  발행일 2010-05-28 제34면   |  수정 2010-05-28
왜 인기있나?…심시간·강의 빌때 시간때우기 그만…밥값 내기용으로도 딱좋아요
누가 오나…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작곡 전공 학생들은 숙제 하러 자주 온다?
현재 대구 노래방 얼마나 되나?…초기 노래방 기계엔 OO이 없었다
오락실에서 벗어나 독립

'별사탕 하늘' 보신 적 있습니까.

햇살이 눈부신 날, 단풍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고개를 들면 마치 별사탕같은 하늘이 눈에 쏙 들어온답니다. 일상의 틀 안에서 이리저리 쫓기다보면 이렇게 작은 '한눈 팔기'도 못하게 되는 게 현실이죠.

한눈 팔기, 국어사전에서는 '마땅히 볼 데를 보지 아니하고 딴 데를 보는 일'이라고 정의내리고 있어요. 한눈 팔기를 올바르지 못한 행동인 듯 풀이해 놓고 있지요. 하지만 가끔 긍정적으로 딴 데를 보는 '한눈'은 인생에 꼭 필요한 활력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잘 노는 사람이 공부도 잘 하고 일도 잘 한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한눈 팔지 않고 고속도로마냥 인생을 내달리는 것보다는 때론 '한박자' 쉬며, 하늘 한번 보고 소리 한번 지르는 게 더 멀리 가는 지름길일 수 있지요. 휴식같고 놀이같은 한눈은 삶을 더 풍요롭고 창의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정신적 안락도 가져다 줄 수 있으니까요.

1991년, 한국인을 일상의 피로에서 화끈하게 도피시켜준 '쉼표'의 대표주자가 부산 동아대 앞에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바로 노래방이었지요. 이후 단군 이래 최고의 속도로 한국인의 대표 놀이문화로 등극하는 저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시험 끝난 학생도, 업무에 찌든 직장인도, 집안 일에 지친 아줌마도 모두 노래방에서 한 곡조 뽑으며 일상의 피로를 툴툴 털어냈습니다. 4천만명의 스트레스 해소처이자, 놀이터였지요.

그런데 혹시 노래방의 원조가 동전노래방이라는 사실 아십니까. 부산 동아대 앞의 그 노래방은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노래를 부르는 식이었습니다. 요즘은 시간제 노래방이 대세를 이루지만, 최근 대구 동성로와 지역 대학가에 동전노래방이 단일 아이템으로 하나둘 생겨나고 있습니다. 동전노래방의 귀환인 셈이지요. 이번주 위클리포유에서는 그 실태와 대구 노래방의 이모저모에 대해 조명해봤습니다.


◇ '독립형 동전노래방' 동성로에도 진출

최근 대구 동성로에 '동전노래연습장' '코인노래방'이라는 간판이 크게 내걸린 곳이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은 오락실 귀퉁이에 노래방 기계를 몇대 들여놓은 일명 '오래방'(오락실과 노래방의 합성어) 형태로 동전노래연습장(이후 동전노래방)이 명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이제 오락실에서 당당히 독립해 보다 넓은 규모에서 동전노래방을 단일 아이템으로 오픈하고 있는 것이다.

노래방 혁명의 시초 격인 1991년 부산 동아대 앞에서 문을 연 노래방이 500원짜리 동전을 놓고 노래를 부르는 식이었으니, 이른바 '동전노래방의 귀환'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동성로에 최근 오픈한 동전노래방은 오래방보다 좀 더 확장되고 독립된 형태가 있고, 노래연습장의 법규에 맞추면서 시간제가 아닌 동전노래방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다.

지난달 중순 2·28기념중앙공원 인근에 문을 연 '필통동전노래연습장'의 최영근 사장(51)은 "지역 대학가에서는 3~4년 전부터 오락실에 부속된 형태가 아닌 독립된 형태나 규모가 큰 동전노래방이 생겨났다. 많게는 4~5곳의 동전노래방이 있는 대학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던 게 이제는 동성로에까지 옮겨온 것"이라며 "얼마 전 지역 대학가 앞에 우리 가게를 벤치마킹해 동전노래방을 오픈하고 싶다며 가게를 둘러보고 간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 동전노래방 컴백 이유는

그렇다면 왜 동전노래방이 오래방을 넘어 독립된 신규 형태로 다시 컴백했을까.

우선 청소년을 중심으로 해 건전하고 쾌적한 노래방을 찾는 소비자의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3주 전 동성로에 오픈한 오래방의 확대형인 '쁘디 오디션 코인노래방'의 김주식 점장은 "이곳은 술·담배가 안되고 밤 10시 이후에 청소년 출입이 금지된다. 청소년들이 건전하게 스트레스를 풀 휴식공간으로, 계속적으로 고객 수요가 있어서 하나둘 생기는 것 같다"고 밝혔다.

시간제 노래방에 비해 인건비가 적게 들고 관리가 수월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최영근 사장은 "우리 가게는 노래연습장 규정에 맞추면서 동전노래방 형태를 취했는데, 작은 방을 여러개 만들다보니 투자비가 시간제 노래방에 비해 2배 가량 들었다. 그래도 동전노래방은 인건비가 적게 들고 관리가 수월해 고령자나 명퇴자의 일자리로 적합한 것 같아 오픈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동식 부스 노래방 기계인 센스를 개발한 DS미디어의 이병용 대표는 "부스 노래방이 따라야하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규정이 작년에 다소 완화됐다. 그런 외부적 요인과 저가로 창업할 만한 아이템으로 부스 노래방이 적합하다고 여기는 창업자 증가 등의 요인이 결합돼 동전노래방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 300원의 행복

동전노래방의 이용료는 1곡에 300~500원, 3~4곡에 1천원이다. 적게는 300원만 있으면 3.3㎡(1평) 가량의 독립된 공간에서 신나게 노래 한곡을 뽑을 수 있는 동전노래방. 이곳을 찾는 고객은 10~20대에서 30~50대 등 의외로 연령층이 다양하다. 6~7명이나 가족 단위 고객이 있는가 하면 홀로족 고객도 많다. 특이하게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과제를 위해 찾기도 한다고. 김주식 점장은 "USB를 이용해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를 바로 다운받은 뒤 휴대폰 벨소리 등으로 활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집에서 반주없이 부른 노래를 USB에 담아와 노래방 기계에 꽂으면 반주와 함께 들리는 기능이 있어 작곡 전공 학생들이 과제를 하러 오기도 한다"고 설명해줬다.

하지만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을 따르는 부스형 동전노래방의 경우는 대개 초·중·고등학생이나 20대 초반의 대학생이 많이 찾고, 노래연습장 규정에 따라 오픈하는 동전노래방은 야간 영업이 가능하므로 청소년 고객도 있지만 20대 아베크족(젊은 한 쌍의 남녀)이나 30대 등 성인 고객의 비중이 더 높다고 했다.

다양한 고객이 찾는 만큼 동전노래방의 인기 비결도 가지각색이다.

그래도 무엇보다 가장 큰 인기 비결은 저렴한 비용으로 쉽고 편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 21일 친구들과 함께 점심식사 후 코인노래방에 들렀다는 김승곤·이정훈·김규동·정용철·김호한군(15)은 "쉬는 날 돈 없을 때 자주 찾는다. 짧은 시간에 가볍게 성적 스트레스 등을 풀고 갈 수 있어 좋다. 동전노래방에 그냥 잠시 들러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여러 친구들과 시간제 노래방을 가기 전에 혼자 신곡 연습을 위해 찾는 사람도 많고, 대학생의 경우 공강 시간에 기분 전환 삼아 잠깐 들르기도 한다고 했다. 그외에 내기를 하러 동전노래방을 찾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대학교 4학년 휴학 중인 김승우씨(25)는 "친구들과 동전노래방에서 노래 한 곡씩 부른 뒤 점수가 낮은 사람이 밥이나 술을 사는 내기를 할 때가 있다. 당구 내기를 하는 것보다 짧은 시간 내에 빨리 끝낼 수 있어 간편해 종종 이용한다"고 말했다.


# 대구 노래방 20년史 '소소한 궁금증'

대구의 노래연습장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일 대구시노래연습장업협회를 찾았다.

박흥식 대구시노래연습장업협회장에 따르면 현재 대구에 있는 노래연습장은 2천700여곳 존재한다. 대구에서 최초로 노래방이 오픈한 곳은 1991년 동성로. 올해로 대구 노래방 역사가 딱 20주년이 되는 것이다.

대구에 노래방 기계가 들어올 때부터 노래방 관련업을 했다는 신동욱 대구시노래연습장업협회 남구지회장은 "1991년 영풍전자의 가정용 '아싸' 기계를 들여와서 대구 교동시장에서 영업용으로 손을 봐 노래방에 판매했다"며 "그때는 가정용을 영업용 노래방 기계로 수리해주는 교동시장의 업체가 일손이 부족해 기계를 판매하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노래방 기계는 자막도 없었다. 그러다 자막이 있는 기계를 들였고 자막도 작은 글씨에서 큰 글씨로 바뀌었다.

노래방 기계의 선두주자인 영풍전자의 아싸에 이어 대흥전자의 아리랑이 대구에 들어온다. 이후 현재 노래반주기 시장의 양대산맥인 금영과 태진이 후발주자로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그런데 대구에서는 금영이 태진보다 단연 우세. 1996년 무렵, 육성 코러스를 삽입한 금영의 '코러스 88'이 대구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게 됐기 때문이다.

박흥식 협회장은 "대구에서는 금영 아니면 장사가 안된다는 말이 나오는 정도"라며 "고객이 한번 익숙해진 기계를 계속 찾는 경향이 있어 대구에서는 노래방 기계의 99%가 금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전성기를 보낸 대구의 노래연습장은 IMF 환란위기, 주점·찜질방·PC방에 노래방 기계 설치, 노래방 도우미 등장과 단속 등의 영향으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신동욱 지회장은 "전성기 때는 노래연습장의 문만 열어둬도 하루 평균 10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2003년까지도 그나마 괜찮았는데 그후 점차 대구의 노래연습장이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몇해 전부터는 '카페같은 노래방' '온돌 노래방' 등 노래방을 깨끗하고 이색적으로 꾸며 변신을 시도하는 업체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편, 대구시노래연습장업협회는 2002년 무렵부터 3년 정도 자체 신문을 발행한 바 있고, 1999년 5월부터 히로시마 가라오케협회와 결연을 맺어 교류해오다 2008년쯤부터 대구 노래연습장 업의 쇠락으로 교류를 중지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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