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인 듯 칼인 참 무서운 이웃, 日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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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8-31   |  발행일 2012-08-31 제33면   |  수정 2012-08-31
20120831

‘일본’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나라가 있다.

천황을 신과 동격으로 믿고 그 신을 위해 ‘덴노헤이카 반자이(天皇陛下萬歲)’란 구호를 외치며 기꺼이 자살비행을 한 가미카제 특공대.

연합군이 일본을 접수할 때 벌떼같이 항전할 것 같았는데 하루 아침에 얌전한 바둑이처럼 알아서 기어버린 국민들.

이 이율배반적 섬나라 민족성을 미국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즉각 정신분석에 돌입한다.

미국 전쟁공보청 해외정보 책임자로 일하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887~1948)는 국무부로부터 일본의 국민성에 대한 연구를 의뢰받는다. 그 결과물이 1946년 출간된 그 유명한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이다.

일본은 겉으로 국화처럼 평화로워 보이면서도 때가 되면 칼처럼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일본 정신의 핵은 ‘와(和)’다. 국화와 칼의 포장지는 ‘대화혼(大和魂·야마토마다시이)’.

한국의 한(恨)과 비슷한 일본의 와(和)사상을 주창한 건 604년 아스카 문화를 연 쇼토쿠(聖德) 태자다. ‘와’를 분석하면 일본이 보인다.

현대 일본의 기본틀은 에도시대(1603~1867)에 갖춰진다. 철저하게 계급사회여서 튀면 죽는다. 북한의 오호담당제처럼 5가구가 공동책임을 진다. 세금도 5가구가 공동으로 낸다. 실수하는 약자는 집단 따돌림(이지메)을 당해 축출된다. 이지메 역시 와의 산물이다. 여기서 자기분수가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섬겨지게 된다. 자기에게 허용된 범위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부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다닌니 메이와쿠오 가케루나(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을 하면 안 된다)’를 각인시킨다. 미리 상대방 맘을 헤아리는 걸 ‘기쿠바리’라 한다.

‘이치닌마에(一人前)’는 ‘한 사람에게 맡겨진 몫’을 말한다. 내 것 네 것 계산이 분명한 상업사회였던 일본에선 신용과 정직은 최고 덕목이다. 자녀들은 결혼할 때까지 부모 집에 살지만, 취직하면 부모에게 생활비를 내야 한다. 자식이 결혼 후에도 부모한테 손을 벌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자연 국민들이 규격화된 인격체로 굳어진다. 그래서 속 맘을 직설적으로 내쏟지 못한다. 진심을 속으로 감추는 ‘혼내(本音)’와 겉마음인 ‘다테마에(立前)’가 양립한다. 계약할 의사가 없으면서도 상대를 배려해서 그 제품이 탁월하다고 칭찬해준다. 대화할 때도 ‘나루호도(그렇구먼)’라면서 맞장구를 잘 쳐준다. 일본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은 그걸 상대가 자길 인정한다는 걸로 착각한다.

와문화는 자연 ‘온(恩)’문화를 낳는다. 한국의 ‘정(情)’쯤으로 보면 된다. 그래서 ‘오카에시(답례)’ 문화가 득세한다. 세계 최고의 연하장 문화가 정착된다. 1997년 일본 우정성 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모두 32장의 연하장을 보냈다고 한다.

겉으로 드러난 일본은 ‘초록동색’.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제각각. 자기 영역만 지켜야 되니 사람들은 안으로만 깊이 파고든다. 그래서 ‘오타쿠(마니아)’가 유난히 많은 것이다. 여기서 싹싹하고 나긋나긋한 일본 특유의 친절한 행동인‘ 야사시’도 태어난다.

‘이이토코토리’란 말이 있다. ‘스스로 만든 틀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에게 이로운 것은 자유롭게 받아들이라’는 쇼토쿠 태자의 가르침이다. 이는 종교는 물론 모든 분야에 해당된다.

이걸 바탕으로 ‘습합사상(習合思想)’이 태어난다. 자연 남의 걸 일본 걸로 만드는 데 귀재가 된다. 승용차 조수석 천장 손잡이도 일본의 아이디어.

‘잇쇼겐메이(一生懸名)’란 말도 일본근성을 단적으로 알려준다. 1700년대초 극심한 불황이 그걸 잉태시킨다. 사상가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은 ‘일 자체가 수행’이라면서 대가없는 노동의 소중함을 가르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다. 더 나아가 ‘세키몬 신키쿠(石門心學)’신드롬을 몰고온다. 이로인해 임금에 상관없이 대부분 시간을 일에 집중하는 문화가 형성됐고 명품이 태어날 수 있었다.

한국 관광객은 일본의 친절과 장인정신에 연신 감탄한다. 그건 일본의 꽃(외형)만 본 것이다. 속에 숨은 칼은 역사교과서 왜곡과 극우파의 망언 같은 데서 엿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에 승리한 미군이 일본 칼에다 자물쇠를 채워놓았다. 그런데 최근 일본 극우파는 그 칼을 군국용(軍國用)으로 쥐기 위해 쥐도 새도 모르게 칼집에서 빼내고 있다.

일본이 한국을 또 침공하지 않을까?

그럴리는 만무하겠지만 우리가 고려해 볼 수 있는‘최악의 한일전쟁 시나리오’를 통해 ‘자주필승국방’의 필요성을 되새겨본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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