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벚꽃 미학적 포장…욱일승천기·기미가요 집단적 세뇌…‘軍國의 추억’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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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8-31   |  발행일 2012-08-31 제35면   |  수정 2012-08-31
군국주의 상징물 집착하는 ‘참 무서운 이웃’

일본의 극우파 군국주의 야욕은 너무나 미학적으로 포장돼 있다. 그래서 일반인들에겐 안 보인다. 너무 곱고 섬세하고 미려(美麗)한 민족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점입흉경(漸入凶境)’이다. 일본 왕실의 문장인 ‘국화’와 가미카제 특공대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벚꽃’, 군국주의의 대표 휘장으로 알려진 ‘욱일승천기와 일장기’, 그리고 천황지상주의를 주입시킨 일본 국가 ‘기미가요’에 숨겨진 일본의 위악성을 들춰본다.

◆국화

일본에는 두 개의 국화(國花)가 있다. 바로 일왕을 위한 국화와 국민을 위한 벚꽃이다. 국화는 일왕의 문장이고 도쿠가와 막부 때는 접시꽃이었다.

일본 왕실의 문장은 ‘기쿠카몬쇼(菊花紋章)’, 혹은 ‘십육변팔중표국문(十六弁八重表菊紋·꽃잎이 16개임을 의미)’이라 한다. 줄여서 기쿠카몬(菊花紋), 혹은 ‘기쿠몬(菊紋)’이라 한다. 1192년부터 시작된 무사전성기 가마쿠라 시대의 고토바 상왕(後鳥羽上王)이 국화를 좋아해 자신을 나타내는 징표로 사용하면서 왕실의 문장으로 정착된다.

공식적으로 일본 왕실의 문장이 된 것은 1869년 태정관포령에 의해서다. 이때 십륙변팔중표국문과 일왕 이외 왕족의 문장으로써 국화잎이 14개인 십사변일중이국문(十四弁一重裏菊紋)이 각각 정해진다. 1871년엔 왕족이 아닌 자가 국화문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된다. 그후 일본 여권 표지 문장은 물론 야마토 전함(大和戰艦) 등 일본제국 군함 뱃머리에도 붙여져 있었다.

◆벚꽃

벚꽃은 아름답지만 일본인에겐 참 정치·군사적인 꽃이다. 일본 군국주의를 지탱하는 핵심 아이콘이다.

일본 군사정권은 침략전쟁에 벚꽃을 끌어들였다. 이데올로기로 코팅된 벚꽃은 일본과 식민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다. ‘일왕을 위해 사쿠라 꽃잎처럼 지라’는 젊은 생명들을 앗아간 무서운 주문이었다. 벚꽃은 군대와 함께 행진했다.

벚나무는 100년전 일제에 의해 심어졌고, 광복 이후 베어져나간다. 벚꽃이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탓. 그런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진해 벚꽃도, 전군가도의 벚꽃도 뽑혀나간 자리에 다시 심어졌다. 우리나라 국회 주변에도 뿌리내렸다.

류순열 세계일보 논설위원이 펴낸 ‘벚꽃의 비밀’(에세이 퍼브리싱 펴냄)에 따르면 한국 벚꽃 인프라 구축은 1960년대 들어 재일교포와 일본인이 대거 기증에 나선 결과였단다. 일본의 기업인, 언론인 등 영향력 있는 일본인과 일본 기업들이 기증에 참여했다. 재일본동경진해유지회의 묘목 기증 기록은 진해 벚꽃의 비밀을 풀어준다. 진해 웅천향토문화연구회 황정덕 회장의 소장 자료에 따르면 1966~80년대 중반 재일교포와 일본인들이 벚나무 묘목 약 6만그루를 진해시에 기증했다. 협찬 기업은 <주>후지쓰, 도쿄항공, 일본컨설턴트협회 등 9개 기업·단체였다.

이승만 집권 시절 벚꽃은 찬밥 신세였다. 벚꽃 관리 예산은 삭감됐다. 벚꽃이 부활한 건 박정희 정권 들어서다. 박 대통령은 벚꽃을 좋아했다. 진해, 서울 강변북로에 벚꽃을 심으라고 지시도 했다.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여의도는 전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뜻대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 국회 뒷길의 벚꽃은 미국 워싱턴 포토맥 강변의 모방이다. 포토맥 강변의 벚꽃은 카쓰라·태프트 밀약과 관련이 깊다. 미국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해준, 즉 한국 사망증명서에 날인해준 밀약이다. 더욱이 최근 미국 뉴저지주 팰리세이즈파크시에 세워진 위안부 추모비에 대해 일본이 철거를 요구하면서 벚나무 기증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과거사를 덮는 조건으로 벚나무를 선물하겠다는 말이다.

일본 벚나무의 조상은 제주도란 게 정설이 돼버렸다.

현재 일본이 세계에 자랑삼는 벚꽃 품종은 ‘소메이요시노(染井吉野)’. 일본 식물학자들은 이 ‘소메이요시노’ 품종이 에도(江戶, 1603∼1867)시대 말기 나라땅의 요시노산(吉野山)에서 등장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33년 일본의 저명한 식물학자 고이즈미 겐이치(小泉源一)는 ‘일본 사쿠라의 한국 기원론’을 발표해 화제가 됐다. 1908년 프랑스인 타퀘 신부는 한라산에서 ‘왕벚나무(소메이요시노)’ 한 그루를 발견했다. 그 후 독일의 식물학자 퀘흐네 교수도 제주도로 건너와 1912년 한라산 관음사 위쪽에서 왕벚나무를 확인하고 학명도 처음 지어 유럽 학계에 정식으로 보고했다. 일제 강점기였던 당시 일본이 그 사실을 알고 곧 왕벚나무 종자를 채집해 가져가기 시작한 것이 소메이요시노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 일장기와 욱일승천기

세계 229개국 가운데 태양을 국기에 그려 넣은 나라는 필리핀, 튀니지, 그린란드 등 17개국.

일본 국기의 법률적 명칭은 일장기(日章旗·니쇼키)지만, 일반적으로 ‘히노마루(日の丸)’라고 부른다.

히노마루가 만들어진 것은 1855년. 쇄국정책으로 일관하던 에도(江戶) 막부가 1854년 미일(美日)화친조약을 체결하고 문호를 개방한 뒤 일본 선박을 외국 선박과 구별할 수 있는 표시가 필요해 흰 바탕에 태양을 한가운데 넣은 기를 선박에 단 것이 시작이다.

이후 히노마루는 상선규칙에 국기로 규정해 일본 선박의 국적 표시기로 사용했다. 그 이후 일제가 군국주의로 나가면서 군사용 국기를 더 만든다. 한가운데 태양에서 16개의 햇살이 퍼져 나가는 모양의 ‘욱일기(旭日旗·일명 욱일승천기·대동아기)’를 제작한다. 패망 후 일본군이 해산하고 일본국 헌법에 따라 자위 목적으로 창설된 해상자위대가 1952년부터 구 일본 해군이 사용하던 16줄기의 햇살을 가진 욱일기를 다시 군기로 제정한다. 현재 육상자위대 또한 구 일본군이 사용하던 욱일기를 변형한 8줄기의 햇살을 가진 욱일기를 사용하고 있어 사실상 일본에 두 개의 국기가 공존하는 셈이다.

같은 군국주의 국가였던 나치 독일(1945년 5월8일 붕괴)과 이탈리아 왕국(1946년 6월12일 붕괴)은 패전으로 국기·국가·국장을 변경했다.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 이탈리아 왕국 사보이 왕가의 ‘방패십자’는 모두 국기와 국가, 국장에서 사라졌다.

◆ 기미가요

일본 국가는 ‘기미가요(君が代)’라고 한다. 애국가와 달리 가사가 아주 짧은데 ‘일왕의 세상이 1000대로, 8000대로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 돼서 이끼가 낄 때까지’라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기미가요는 ‘일왕의 세상(시대)’이란 뜻이다. 가사는 고금단가집에 나온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메이지 시대 독일인 궁중악사 프란츠 에케르트가 작곡했다. ‘기미(君)’는 시가(詩歌)에선 ‘그대’ ‘님’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기미가요에서는 일반적으로 일왕을 뜻한다.

1880년 에케르트는 일본 해군으로부터 국가를 작곡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멜로디를 하나 선택한 뒤 유럽의 악기에 맞는 화음으로 재구성하였다. 그리하여 탄생된 기미가요는 1880년 11월3일 일왕의 생일잔치때 일본 왕궁에서 처음으로 공개되고 1889년 정식 국가로 제정됐다. 하지만 패전 이후 폐지됐다가 1999년 국기와 국가에 대한 법률제정으로 다시 부활된다. 흥미롭게도 일본 국가를 작곡한 에케르트는 대한제국으로 건너와 애국가도 작곡한다.

그런데 최근 일본에선 공립학교 졸업식과 입학식에서 히노마루(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기립 제창을 반대하는 교직원에 대한 처분을 강화하고, 기미가요 기립 제창을 의무화하는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처음으로 나타나는 등 우경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1999년 8월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내각은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을 정식으로 제정했고, 이어 도쿄도 등 각 교육위원회는 2003년 10월 각 공립학교에 졸업식 등에서 기미가요 제창 시 교직원의 기립 및 제창을 의무화하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일본 문부과학성 집계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09년까지 졸업식 등에서 기미가요 제창 시 기립 거부, 피아노 반주 거부 등으로 징계처분을 받은 교직원 수는 전국적으로 1천143명에 달한다. 매년 100여 명이 처분을 받은 셈으로 대부분이 교사다. 이 가운데 도쿄도 소속이 433명으로 약 40%. 그동안 전국 각지에서 375명이 징계처분취소 등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근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는 ‘입학·졸업식 때 일어나서 국가를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한 것은 부당하다’며 도쿄 공립고교 교직원 169명이 낸 소송에서 ‘학교 규율이나 질서를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무겁지 않은 범위에서 징계 처분을 하는 것은 재량권 범위 내’라고 판결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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