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해양영토 확장 ‘병적인 집착’…448만㎢ 세계7위의 의미

  • 입력 2012-08-31   |  발행일 2012-08-31 제35면   |  수정 201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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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역사는 개국과 쇄국, 해양지향과 내국지향 그 반복의 연속이었다.’

아사히신문 저널리스트 후나바시 요이치의 지적은 그들의 역사를 한 마디로 함축함에 모자람이 없다. 도쿠가와 막부의 내국지향 시대가 조종을 울리고, 1853년 에도만 우라가(浦賀) 앞바다에 미국 페리 제독이 이끄는 4척의 흑선이 나타남으로서 일본은 쇄국의 꿈을 버리고 세계를 향해 문을 열었다.

1876년, 일본은 도쿄로부터 1천㎞ 떨어져 있으며 하와이 주민들이 이주해 사는 포경선 식량기지 오가사와라제도를 자국령으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3년 후 1879년에는 오키나와에 있는 류큐국을 강제로 합병해버렸다. 1896년에는 1천800㎞나 떨어진 높이 약 9m, 면적 1.51㎢(약 46만평)의 미나미토리시마(南鳥島)에 개척단을 파견하여 2년 후에는 일장기를 꽂고 일본 영토의 최동단임을 선언했다. 미나미토리시마의 흡수로 일본은 그들의 국토 면적보다 훨씬 넓은 43만㎢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확보하게 되었다. 일본은 이 미나미토리시마에 대한 영유권 논쟁을 아예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활주로를 만들고 자위대를 배치해두고 있다.

일본 바다영토 확장 야욕은 오키노토리시마(沖ノ鳥島)에서 그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본 도쿄로부터 1천740㎞ 떨어진 오키노토리시마는 16세기 처음 유럽인 더글라스에 의해 발견되어 ‘더글라스 암초’ 또는 스페인어로 ‘페레스 벨라’로 불렸는데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31년 자국령으로 선언해버렸다. 만조 시에는 거의 물에 잠기고 수면 위로 70㎝ 가량 돌출하는 바위 2개만 남는 산호초이다. 하와이 대학의 국제법 학자 존 M. 반디케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킹사이즈 침대보다 결코 크지 않은 두 개의 침식 돌출물로 거기서 스스로 경제생활을 지속할 수 없고, 살기에 적합 하지 않은 암초’일 따름인 곳이다.

이런 2개의 암초 주변에 일본 정부는 1987년 테트라콘과 콘크리트를 쏟아 부어 이미 헬기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일본은 오키노토리시마를 영토로서 섬이라고 주장하면서 주변 43만㎢를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선포하고 2008년 11월 UN대륙붕한계위원회에 대륙붕 한계 연장을 신청한다. 또 국제사회로부터 확실하게 섬으로 인정받기 위해 750억엔(약 1조원)을 들여 항만과 도로, 해저자원개발시설을 추진하고 있다. 주변국에서 오키노토리시마가 섬이 아니라고 반발하자 자체 경제활동이 가능한 시설을 만들어 민간인이 상주할 수 있도록 의도한 것.

이에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는 2012년 4월 오키노토리시마(沖ノ鳥島)를 섬으로 인정하고, 주변 해역 17만㎢를 포함해 5개 지역 31만㎢의 대륙붕에 대해 일본에 개발권이 있음을 인정하여 그들의 주장대로 일본의 최남단으로 확인받게 된 것이다. 31만㎢면 일본 국토면적의 약 80%, 남북한 면적의 1.5배나 되는 넓이다.

그들의 현재 영토경계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한반도 면적 22만㎢, 일본 국토면적은 38만㎢, 하지만 그들의 바다면적은 448만㎢에 달한다.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친 면적의 20배를 웃돈다. 일본에 비해 영토면적이 25배나 넓은 중국의 해양영토 면적 387만㎢보다도 훨씬 넓다. 이로써 일본은 세계에서 7번째로 넓은 나라가 된다.

이게 일본의 해양영토 집착증의 결과다. 그들의 북방 4개섬, 조어도, 나아가 독도에 대한 야욕이 어느 날 갑자기 중단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전충진 <한국복지사이버대 독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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