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피플]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배용 이사장

  • 김수영,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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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2-02  |  수정 2021-06-27 14:24  |  발행일 2020-12-02 제12면
"퇴계 가르침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서원의 선한 영향력 계승해야"

이배용
지난해 한국의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배용 이사장은 도산서원의 사진을 보여 주며 "서원은 교육 유산이자 건축 유산으로 그 가치가 뛰어나다"며 "서원에서 앞으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지난해 7월 전 국민을 기쁘게 한 소식이 들려왔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서원 9곳이 등재의 영광을 안았다. 그중 5곳(대구 도동서원, 경북 영주 소수서원·경주 옥산서원·안동 도산서원·병산서원)이 대구경북에 있다. 이는 선비의 고장인 대구경북의 위상을 다시 확인하게 했다. 지역민은 자긍심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재〉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배용(73· 전 이화여대 총장) 이사장은 한국의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에 올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로 꼽힌다. 도산서원운영위원회는 그 공로를 인정해 지난 9월 도산서원 향사의 초헌관을 맡겼다. 한국에서 여성이 초헌관에 뽑힌 것은 처음이었다.

▶향사에서 초헌관을 맡아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한국 유교 600년, 서원 500년 역사에서 여성이 최초로 초헌관에 임명됐다. 남녀차별이 있었던 조선시대에 교육은 물론 외부활동에서도 여성은 제한을 받았다. 유교의 중심인 제향 역시 남성이 주도했다. 초헌관은 단순히 신위에 첫 술잔을 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향사를 책임지고 이끌어간다. 임무가 막중하다. 서원 운영위에서 학덕·공적 등을 두루 심의해 뽑는다. 초헌관에 임명된 것은 한국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까지 10년 가까이 노력한 공로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금녀의 벽을 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진두지휘했다. 서원에 대한 깊은 애정이 바탕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2010년부터 2년 동안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전임 위원장은 경제학자라서 경제 브랜드의 위상을 올리는 데 중점을 뒀다. 나는 역사학자이니까 문화 브랜드를 높이는 데 초점을 뒀다. 우리 전통에 대한 정보·지식이 많은 만큼 효과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교육 유산이자 건축 유산인 서원에 관심을 가졌다. 국가브랜드위원장으로 있을 때부터 관련 학계 학자, 유림, 문화재청 인사 등과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준비를 체계적으로 했다."


국가브랜드위원장 재직때 세계유산 등재 체계적 준비
대구경북 서원 5곳 '겸손·절제의 선비정신' 잘 보여줘
한복·한식 등 전통문화 간직 宗家도 세계에 알리고파
여성자원 특출한 재능 있어…남녀 서로 존중·상생해야



▶우리 서원의 가치는.

"서원은 1543년 한국 최초로 영주 백운동서원(소수서원)이 세워진 후 500년 가까이 지속해온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 자산이자 정신문화의 산실이다. 겸손과 절제를 추구하는 선비정신, 자연과 더불어 심신을 수양하고 학문을 연구해온 중요한 곳이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정신문화로 선비정신을 꼽는다. 서원은 선비를 길러냈던 곳이다. 이번 세계문화유산에 대구경북의 서원 5곳이 지정됐다. 대구경북의 선비정신을 잘 보여준다."

▶중국에도 서원이 있다.

"서원은 중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중국에서 들어온 성리학과 서원의 전통을 한국이 중국보다 더 잘 지키고 있다. 중국은 우리보다 서원의 수는 많다. 하지만 서원이 주로 도심에 있고 과거시험을 공부했다. 한국의 서원은 자연과 함께 있으며 출세가 아닌 인격 공부에 초점을 둔다. 중국 서원은 공자를 배향하지만, 한국 서원은 각 지역의 성현을 배향하는 점도 다르다. 지역의 존경받는 인물을 배향하기 때문에 지역에 대한 자긍심을 북돋우고 결속력을 다지는 효과도 있다."

▶서원을 한국 대표 문화유산으로 발전시키려면.

"서원의 핵심 기능은 제향과 강학이다. 현재 제향의 전통은 잘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교육적 측면에서 아쉽다. 학생은 물론 성인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발해야 한다. 예절·고전 등을 배우는 것은 올바른 인성교육에 꼭 필요하다. 우리의 정신문화를 되살린다는 점에서 국가 지원도 절실하다. 서원은 관광적 가치 또한 크다. 역사관, 홍보관, 교육관 등이 건립돼야 효과를 낸다."

▶서원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정신문화가 있고 이 문화를 이어가는 데 서원이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근대화 이후 서양 학문에만 몰두했다. 퇴계 이황의 가르침이 한국 서원의 정신을 잘 보여준다. 퇴계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부가 있다면 나누고 베풀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벼슬자리에 오르면 정의롭고 정직해야 한다. 이런 선한 영향력을 계승할 필요가 있다."

▶2018년 우리 전통사찰인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리기도 했다. 사찰·서원에 이어 앞으로 세계에 알릴 문화유산이 있다면.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등 7개 사찰이 등재됐다. 사찰은 한국 불교 건축의 아름다움을 잘 보존하고 있다. 다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고 싶은 것은 종가다. 사라지면 다시 복구가 안 되는 게 전통이다. 종가는 유지하기가 어렵고 경제 개발 논리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종가는 세계에 없는 우리만의 전통이다. 한옥의 아름다움은 물론 한복·한식 등 전통문화를 잘 담고 있다."

▶여성교육과 여성사를 오래 공부했다. 양성평등이 많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는 남성 중심의 틀이 견고하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졌지만 아직도 많은 분야에서 여성은 소수다. 여성에게 '주전자 정신'을 가지라 하고 싶다. 소수이지만 당당한 주인의식, 나만의 경쟁력이 되는 전문성, 내가 소속한 곳이나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라는 의미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내면서 여성리더십을 키우는데도 열정을 쏟았다.

"여성에게 '어머니리더십'을 강조해왔다. 어머니 같은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심지가 굳고 줏대와 의지가 있는 것이 어머니리더십의 핵심이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물결 같은 힘을 가진 여성이 21세기를 선도한다."

▶최근에는 남성 혐오, 여성 혐오 등 남녀대결 양상이 심화하고 있는데.

"대학에서 오랫동안 여성을 가르쳤기 때문에 여성 자원의 우수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특출한 재능은 있는데 협력의 힘이 조금 아쉽다. 이젠 좋은 나무로 자라는데 그치지 않고 숲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협력이 큰 역할을 한다. 여성끼리는 물론 남성과의 상생도 중요하다. 서로 존중하고 인정하며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논설위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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