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잔인한 복고…부르카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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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06   |  발행일 2021-09-06 제27면   |  수정 2021-09-06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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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논설위원

부르카(이슬람 여성의 전통의상)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이란 영화 '칸다하르'를 통해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아프가니스탄 내전 중에 조국을 탈출한 여성이 탈레반 폭정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려는 여동생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렸다. 제목인 칸다하르는 탈레반의 본거지다. 여주인공은 칸다하르로 가는 길에 아프가니스탄 출신 노인의 부인으로 위장한다. 여기서 그가 입었던 옷이 부르카다. 온몸을 덮어쓴 부르카 덕에 그는 정체를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부르카는 여성 통제와 폭력의 상징이다. 1996~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탈레반은 여성 교육 금지 등 극단적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며 부르카 착용을 강제했다. 탈레반이 국제사회에서 비난받는 데에는 여성 인권 탄압 영향도 컸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점령한 후 부르카 판매가 폭증했다고 한다. 이슬람 여성은 옷으로 얼굴이나 신체를 가리고 다닌다. 국가에 따라 형태가 다른데, 머리를 둘러싼 두건 같은 히잡,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으로 감싸는 부르카 등 다양하다. 이 중 부르카가 가장 폐쇄적인 복장이다. 전신을 천으로 덮어쓰고 사물을 겨우 분간할 수 있도록 눈 부위만 망사로 가렸다. 이렇다 보니 좌우를 살피기가 어렵고 코, 입을 가려 호흡이 불편하다. 여성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옷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등에서는 부르카 착용을 금지한다.

하지만 패션을 통한 여성 억압은 100여 년 전만 해도 세계 많은 나라에서 흔하게 벌어진 일이었다. 19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코르셋이 대표적이다. 가는 허리를 만들기 위해 착용하던 코르셋 때문에 골격이 변형되고 장기기능까지 손상됐다. 중국 명·청 시대에 유행했던 전족도 마찬가지다. 전족은 여자아이의 발을 작게 하려고 헝겊으로 꽁꽁 묶어 성장을 멈추게 하던 풍습이다. "작은 발을 가지려면 한 항아리의 눈물을 쏟아야 한다"라는 말이 고통을 알게 한다. 이만이 아니다. 프랑스를 구한 영웅 잔 다르크가 화형을 당할 때 죄목 중 하나는 '남장'이었다. 남성용 재킷과 반바지를 입은 게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 같은 폭력적 패션은 여성을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에 순응하도록 세뇌했다.

여성의 해방과 지위 상승은 패션의 자유와 궤를 같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여성의 바지 착용이 이상할 게 없지만, 과거에 바지는 남성 전유물이었다. 프랑스엔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바지 착용을 금지하는 판탈롱 법까지 있었다. 폐쇄적인 패션에 혁명을 가져온 이가 코코 샤넬이다. 그는 여성용 바지를 최초로 만들었고 땅에 끌렸던 치맛단도 무릎 정도로 과감히 쳐냈다.

최근 세계적으로 확산 중인 '자기 몸 긍정주의(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도 여성 패션에 자유를 주고 있다. 이 흐름의 하나가 '노(NO)브라' 운동이다. 여성을 불편하게 했던 복장이 거의 사라진 현대에도 브래지어는 살아남았다. 편한 옷이 대세가 되면서 이마저 벗어 던진 노브라 족이 늘고 있다.

구속에서 자유를 향해가는 여성의 패션 흐름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부르카 부활은 가슴 아픈 일이다. 탈레반 재점령 후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이 총살됐다는 소식도 들리니 부르카가 이젠 생존을 위한 옷이 됐다. 돌고 도는 게 패션이지만 부르카의 부활은 잔인한 복고 유행이다. 영화 칸다하르의 주인공 말대로다. "난 항상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감옥을 피해왔지만, 오늘은 그 감옥들 하나하나에 다시 갇힌다." 부르카를 다시 입은 여성의 모습이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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