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사과,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가 되다 .7] 귀농후 16년째 사과농사 최상길씨...경쟁력 있는 품종·앞선 재배기술…초보 귀농인이 사과 선도농업인으로

  • 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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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9-08 08:14  |  수정 2021-09-08 08:18  |  발행일 2021-09-08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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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오전 경북 청송군 현서면 월정리 청송사과물빛농원에서 최상길·박미정씨 부부가 사과를 수확하고 있다.

귀농은 말처럼 쉽지 않다. 많은 이들이 귀농을 꿈꾸고 도전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철저한 준비와 꾸준한 노력이 없으면 제 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농촌에 성공적으로 정착해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는 이들을 보면 남다른 비결이 있다. '사과의 고장' 경북 청송으로 귀농해 16년째 사과를 재배하는 최상길(54)씨도 그중 한 명이다. '청송사과,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가 되다' 7편에서는 초보 귀농인에서 사과 선도농업인으로 변신한 최씨의 이야기를 다룬다.

도시서 사업하다 마흔살 넘어 귀농
부사 대신 감홍·황금진 재배 승부수
다축·밀식재배 등 최신 기술도 접목
2만8천여㎡ 과수원 벤치마킹 줄이어
택배 이용 직거래로 소비자와 소통


#1. 남들과 다른 품종으로 승부수

청송이라고 모든 지역이 '오지'는 아니다. 청송 남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현서면은 의성·군위·영천과 경계를 이룬다. 대구에서도 차를 타고 1시간 남짓(70㎞)이면 다다른다.

현서면 월정리에 있는 청송사과물빛농원에 도착하자 넓은 과수원이 눈 앞에 드러난다. 사과가 먹음직스럽게 익어 가는 중이다. 농원 한쪽에 자리잡은 저온 창고 안에는 갓 수확한 홍로가 수북하다.

"사과 농사는 물과 빛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물빛농원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아내 박미정(50)씨와 함께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던 최상길씨가 웃으며 말했다.

최씨가 재배하는 사과 품종은 청송지역 일반 농가와는 좀 다르다. 중·만생종인 감홍과 시나노 골드를 주력으로 키운다. 청송에서 생산되는 사과의 70%가 만생종 후지(부사)인 걸 감안하면 의외의 선택이다.

감홍은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1992년 최종 개발한 국내 육성품종이다. 스퍼어리 브레이즈에 스퍼 골든 딜리셔스를 교배했다. 과실 무게는 350~400g, 장원형에 선홍색을 띤다. 특유의 향기가 있고 식미가 매우 우수하다.

시나노 골드는 일본 나가노현 과수시험장에서 골든 딜리셔스에 천추를 교배해 개발한 품종이다.

300g 정도 무게에 과형은 원~장원형, 과피색은 녹색~황색이다. 과즙이 많아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에 대한 감각이 좋다. 청송군이 몇 년 전부터 '황금진'이라는 브랜드로 밀고 있는 사과 품종이기도 하다.

최씨는 추석 전에 수확해 팔 수 있는 중생종인 홍로와 아리수 품종도 재배한다. 홍로는 국내에서 육성된 최초의 사과품종이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스퍼어리 브레이즈에 스퍼 골든 딜리셔스를 교배해 1988년 최종 개발했다. 농홍색의 원추형 모양에 과실 무게는 300g 정도다. 육질이 단단해 식감이 좋다. 아리수도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개발한 품종이다. 양광에 천추를 교배해 과실 무게는 280~300g, 과형은 동그랗고 홍색을 띤다. 기온이 높은 곳에서도 착색이 잘되는 특징이 있다.

최씨는 "재배할 사과 품종을 고민하다가 나만의 독창적인 브랜드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농한 후발주자인 셈인데 이미 많이 키우는 부사보다는 감홍이 오히려 경쟁력이 있을 것 같아 주력 품종으로 결정했다"며 "감홍은 신맛도 있지만 당도가 워낙 높아 상쇄된다. 마니아층이 있어 주문하는 이들이 꽤 있다"고 귀띔했다.

최씨는 사과를 공판장이나 농협에 팔기도 하지만 주로 택배를 이용한 직거래를 많이 한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농산물 직거래는 품질과 신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뤄지기 어렵다. 그는 "처음에는 지인들 소개로 사과 직거래를 시작했다"며 "소비자가 계속 사과를 찾게 하려면 결국 품질이 좋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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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사과물빛농원 저온창고에서 최상길·박미정씨 부부가 사과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2. 40대에 사업 접고 귀농에 도전

최씨의 고향은 청송군 현서면과 가까운 영천시 금호읍이다. 그는 30대까지 구미 등지에서 사업을 했다. 그럭저럭 돈은 좀 벌었지만 사람을 상대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40세가 넘은 나이에 귀농에 도전하게 됐다.

그는 귀농을 준비하며 영천에서 연습 삼아 포도와 복숭아, 자두 등을 재배했다. 이후 청송 부남면에 사는 친구에게 땅을 빌려 청송에서 처음으로 사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최씨의 아버지도 과거 영천에서 사과농사를 지었는데, 당시 농사일을 도왔던 것이 도움이 됐다. 결국 최씨는 13년 전 사업을 완전히 정리하고 현서면에서 전업 사과농부로 완전히 변신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청송은 사과 농사를 짓기 정말 좋은 지역이었다. 특히 현서면은 해발 400m인 고지대라 일교차가 커서 품질이 좋은 사과가 열렸다. 또 주변이 보현산 등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태풍이나 바람 등 자연재해의 영향도 적고 강수량도 적당했다.

또 최씨가 사과 농사꾼으로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서면 주민들의 도움도 컸다. 당시 현서면 주민들은 귀농인 공부방을 마련해 최씨와 같은 귀농인들에게 농사와 관련된 노하우를 가르쳐줬다. 원주민들이 멘토링을 자처한 셈이다.

최씨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청송군농업기술센터 사과대학부터 군위에 있는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연구소, 경북대 사과연구소 등 사과 재배 기술을 익힐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십수 년간 노하우가 쌓여 이제는 사과 재배 비법을 전수해 주는 위치가 됐다. 초보 귀농인에서 사과 재배 선도 농사꾼으로 변모한 것이다. 조그맣게 시작했던 과수원도 2만8천99㎡(8천500평)로 늘었다.

그는 "사업하던 때보다 사과농사를 짓는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며 "사업이든 농사든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 "재배 기술 공부는 기본 중 기본"

최씨의 농원은 청송군에서도 알아주는 사과 재배 선도 농가다. 최씨는 특히 다축(多軸)이나 밀식(密植) 재배에 관심이 많다. 관련 기술이 새로 나오면 늘 적극적으로 먼저 배운다. 그만큼 전문 지식을 갖추고 있어 종종 강연을 하기도 한다. 지난 7월23일에도 청송군농업기술센터에서 한국농촌지도자 청송군연합회 회원들을 상대로 고밀식 사과 재배 기술을 강의했다. 또 그의 과수원에는 다른 지역 농민들이 견학을 오기도 한다. 벤치마킹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다.

최씨는 "내가 운영하는 과수원에는 11년, 6년, 4년, 2년, 1년차 등 사과나무의 연식이 다양한데 최근에 심은 것일수록 재식(栽植) 거리가 가깝다"며 "사과나무를 심은 시기에 따라 초밀식재배 정도의 차이와 변화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농민들이 오면 보여주고 설명하기 좋다"고 말했다.

밀식 재배는 사과나무 간 간격을 좁혀 심는 기술이다. 사과 수확량도 늘어나고 동선이 짧아져 농사일이 수월해진다. 재배 기술이 계속 발전해 초밀식으로 사과를 재배하는 추세다. 다축 재배는 사과나무 아랫부분에서 가지를 여러 개 뽑아 올려 마치 한 뿌리에서 여러 개의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만드는 재배 방법이다. 작업이 쉬워 노동 효율성이 높다. 과거에는 사과나무를 심은 지 10년 또는 7년이 지나야 사과 수확이 가능했는데, 최근에는 기술 발전으로 이듬해부터 사과 수확이 가능하다.

끝으로 최씨는 "사과농사라는 게 열심히만 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운도 좋아야 하고 재배 기술을 잘 익혀 농사에 잘 접목해야 한다"며 "물론 매뉴얼이 있지만 변수가 많기 때문에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여러 상황에 잘 대처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글·사진=김일우〈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전 영남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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