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 518, 언론통폐합…적반하장 전두환, 사망으로 끝끝내 사죄 못받았다

  • 정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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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3   |  발행일 2021-11-24 제3면   |  수정 2021-11-24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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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향년 90세로 사망한 23일 서울 마포구 세브란스병원 신촌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앞 전광판에 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전두환 전 대통령은 23일 90세를 일기로 숨질 때까지 수많은 자신의 과오에 대해 일말의 사과나 반성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시민사회 및 정치권은 전 전 대통령이 자신의 과오에 대해 궤변으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때로는 적반하장의 '막말'을 일삼았다는 점에 분노하고 있다.

1931년 1월 23일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난 전 전 대통령은 1955년 육사 11기로 졸업한 뒤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만들고 출세 가도를 달렸다. 이후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데 이어 정권 찬탈을 위한 '12·12 군사 쿠데타'를 주도했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전 전 대통령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으며, 1988년 초까지 신군부 독재 역사를 쓰며 11·12대 대통령을 지냈다. 퇴임 후 내란과 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국회 5공비리·5.18 특위가 그를 1989년 12월 증인으로 불렀을 때는 변명으로 점철한 발표문만 읽고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퇴장해 야유를 받은 바 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내란과 5·18의 책임자로 처음 법정에 섰지만, 그는 여전히 진압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당시 사건을 '좌파 세력의 준동'으로 규정했다. 재판 과정에서 "억울하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고 말한 것은 그의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내 준 대목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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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전 전 대통령은 '5·18 유혈 진압' 피고인으로 처벌을 받은 이후인 2003년에도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라고 말해 공분을 샀다.

뇌물수수 혐의에 유죄가 확정돼 2천205억원의 추징금 납부를 명령받았을 때는 "예금자산이 29만원 밖에 없다"며 버티기로 일관했다.

그는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광주시민들에 대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란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8년 광주지법에서 재판이 진행될 당시 알츠하이머 투병 사실을 공개하며 1년여간 출석을 거부하다 법원이 구인장을 발부하고서야 2019년 3월 처음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불복해 항소했고 오는 29일 결심 공판이 예정된 상황이었다.

전 전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5·18 관련 두 번째 사법 단죄는 결국 마무리되지 못했다. 지난 8월 9일 광주지방법원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사실상 공개석상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5일에는 항소심 재판에 불참한 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 앞을 꼿꼿한 자세로 산책하는 모습이 언론의 사진에 포착되기도 했다.

전 전 대통령은 끝내 5·18 유혈진압에 대한 사과를 남기지 않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생전에 가족들을 통해서라도 5·18 사태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명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23일 사망으로 수많은 역사적 과오에 대한 전 전 대통령의 사과와 반성은 이제 끝내 들을 수 없게 됐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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