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상공업의 어제와 오늘 .1] 김천 상공업의 토대…조선때 도성 가는 진상품 관리하던 김천道驛엔 직원만 1천여명

  •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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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22   |  발행일 2022-02-22 제9면   |  수정 2022-02-22 07:36
김천 6개역·대구 등 17개 속역 거느려
국가 예산 없이 방대한 역둔전 소유
농업·정미소 등 영리활동 운영비 조달
자체 형성 시장에 상인·특산물도 몰려
경상·전라·충청 三道 아울러 급속 확장
평양·개성·강경·대구와 '조선 5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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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서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비는 1900년대 초반의 김천장 모습. <김천시 제공>

경북에서 대구 다음에 시(市)로 승격된 김천은 국가 경제가 압축 성장기에 돌입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경북 서부권 중심지로서 북부권 일대와 경남 서부권 및 전북·충북 일부 지역까지 아우르는 교통과 상업 중심도시의 면모를 유지했다.

김천의 탁월한 시장기능은 빼어난 입지적 여건에서 비롯됐다. 김천은 경상·전라·충청의 내륙교통 요충지로, 고려 때 개설된 역이 조선 초기에는 17곳에 이를 정도로 일찍이 사통팔달의 교통망이 구축됐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전국적으로 장시가 활성화되면서 편리한 교통을 기반으로 경쟁력 있는 상권을 구축했다.

시장기능은 개화기 이전부터 일제강점기가 끝나기까지 100여 년에 걸쳐 절정기를 이룬다. 이 기간에 김천장은 조선 5대 시장(평양·개성·강경·김천·대구)의 하나일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김천장은 국가 산업화 과정에서 쇠락의 길을 걷는다. 교통 기반이 확충되면서 굳이 김천장을 찾을 이유가 없게 된 데다 상권 내의 인구가 급속히 대도시로 유출된 데 따른 현상이다.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던 농기계 산업도 동력을 잃었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조짐이 있다. 김천에 산업단지가 조성되고 대기업 공장이 입주하는 등 다시 활력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김천시가 직접 개발한 대규모 산업단지(1~4차)를 통한 기업 유치, 남부내륙철도 건설과 대구권 광역철도 김천 연장 운행 등은 김천 발전의 추동력이 되고 있다.

이번 연재에서는 8회에 걸쳐 이 같은 김천의 상공업 역사를 훑어보고 이를 토대로 김천의 새로운 미래를 모색해 본다.

◆ 천혜의 지리적 특성

낙동강 지류인 감천은 김천의 젖줄이다. 1991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고목마을에서 출토된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의 유적과 유물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감천 주변에 모여 살았음을 방증한다.

김천의 역사시대는 감천을 끼고 평야가 발달한 개령·감문면 일대를 기반으로 일어선 삼한 시대 소국 감문국(甘文國)으로부터 시작됐으나 서기 231년 신라 전신인 사로국에 병합됐다.

김천은 예로부터 지정학적 이점으로 국경을 통한 문물의 교류가 활발했지만 입지적 여건으로 전쟁의 참화도 잦았던 곳이다. 서기 562년 대가야가 신라에 병합되기 이전까지는 고구려(충북 옥천), 백제(전북 무풍), 가야(경북 성주) 등과 접경이었고, 통일신라 이전에는 신라·백제·고구려 삼국(三國)의 접경으로 불교가 고구려로부터 신라에 유입(418년)되는 창구가 되기도 했다. 아도화상은 선산과 김천에 각각 창건한 도리사와 직지사를 포교의 전진기지로 삼아 신라에 불교를 전파, 꽃피우게 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 총후방사령부가 개령면에, 6·25전쟁 당시 북한군 후방사령부가 시내에 있었던 사실에서도 교통요충지로서의 김천 가치를 가늠할 수가 있다. 김천은 6·25전쟁에서 북한군 후방사령부를 겨냥한 미군의 집중 폭격으로 온 시가지가 소실되는 등 참혹한 전란을 겪었다.

◆ 본격적인 시장경제의 도입

고려시대 사료(史料)에 따르면 김천에는 김천역(김산현), 작내역(지례현), 추풍역(어모현), 부상역(개령현), 장곡역(지례현) 등 5개 역이 있었다. 이들 역은 경산부도(京山府道·성주)에서 관할하는 속역(屬驛)이었다.

이후 조선조 세종 때 있었던 '44도역(道驛)-538속역체제' 개편에서 김천도역(金泉道驛·지방철도청 역할)이 되면서 남산동 전역과 황금·평화·성내동 일대를 부지로 하는 초대형 역이 들어섰다. 김천도역은 추풍·문산·부상역(금산군), 양천역(개령현), 작내·장곡역(지례현) 등 김천지역 6개 역과 대구, 성주, 구미, 고령 등 17개 속역을 거느렸다.

세조 때는 함양· 거창· 합천 등 경남에 설치된 역을 포함해 21개 역을, 영조 때는 19개 역을 관할하는 등 19세기 말까지 삼남(三南)의 교통과 통신망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당시 경상우도에 속한 김천역은 부산에서 서울을 잇는 국가 기간 교통·통신망의 상당 구간을 관리했다.

이처럼 대규모인 김천도역은 김천에 본격적인 시장경제가 도입되는 역할을 했다. 당시 김천도역처럼 전국 각지의 거점 역은 통신, 도로 관리 등의 업무 외에도 도성으로 가는 진상품을 관리했다. 거점 역은 각지에서 올라온 진상품을 창고에 모아뒀다가 정해진 날에 도성으로 보냈고, 이 과정에서 장부상 수량에 맞춰 지역 상인들에게 부족한 물건은 매입해 보충하고 남는 물건은 매각하는 등 상행위를 했다.

당시 김천도역은 직원이 1천여 명으로, 국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지 않는 대신 방대한 역둔전(驛屯田)을 소유하고 농업과 상업(정미소) 등의 영리활동을 통해 운영비를 조달했다. 자체 생산만으로도 하나의 시장을 형성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생산성은 자연스럽게 역을 중심으로 장시가 들어서게 했고, 여기에다 잘 닦인 사통팔달의 역로(驛路·현재 국도 3~4호선)는 원거리 상인들과 각지의 특산물이 수요가 있는 김천장으로 모여들게 하는 등 선순환 구조의 시장경제 체제가 형성되게 했다. 용호동 일대 백사장에 개장된 김천장은 감천 변을 따라 급속히 확장돼 갔다.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은 "당시 전국 25개 도역 가운데 규모가 5위권에 들었던 김천도역은 '김천장'이 전국 5대 시장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원동력이 됐다"며 "경상·충청·전라도가 이용하는 큰 장이어서 '삼도장(三道場)'으로도 불리던 김천장은 1949년 김천시가 경북 두 번째 시로 승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 전국적 명성의 특화 산업

일제강점기 초기 통계자료에 따르면 김천의 전체 가구수 2천930호 가운데 상업에 종사한 가구는 665호, 공업에 종사한 가구가 225호다. 거의 대부분이 농사를 지었던 전통사회 특성을 고려하면 김천의 상공업 종사자 비중이 상당히 높다는 것과 시장경제의 활성화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김천은 일찍부터 축산업, 유기산업, 과하주로 대표되는 양조업 등이 특화된 고장이었다. 황금동 약물래기 일대에 번성한 유기산업은 가내수공업 형태의 공방이 30여 곳이나 됐고, 그 명성은 '안성 유기'에 버금갈 정도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경부선과 경북선 철도 분기점으로, 각지에서 생산된 벼의 집산지가 됨으로써 도정 공장이 368곳에 이르는 등 도정업이 신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김천시장의 역동성은 일본인들의 발길도 끌어들였다. 1905년 경부선철도 개통을 전후해 부산에서 이주해 온 이들은 집단거주지역(혼마치·本町)을 형성했다. 1926년 통계를 보면 김천 인구 1만3천명 가운데 일본인이 1천981명이나 됐다.

일본인의 집단 이주로 양과자가 새로운 김천특산물이 되는 계기가 됐다. 그들이 생과자와 과자를 만들어 내다팔자 김천사람들은 엿으로 양과자를 만들었다. 이후 일본인들은 2차 세계대전으로 과자 원료인 쌀과 사탕을 구할 수 없게 됐고, 김천사람들은 잡곡으로 양과자를 만들어 삼남 일대에 공급하며 전국적인 명물이 되게 했다.

농기구 제조는 광복 이후 특화된 산업이다. 제초기 등 단순한 농기구에서부터 6·25전쟁 후 생산한 족답식 탈곡기가 전국에 공급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20여 개의 업체가 수요를 충당할 수 없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자문=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 참고문헌= 김천시사·김천상공회의소 105년사

■글 싣는 순서
2 김천장 전성기의 풍경
3 조선 4대 명주(名酒) 과하주
4 김천에 불어닥친 노다지(금광업) 열풍
5 전국적인 명성의 우시장과 축산업
6 첨단 농기계산업의 본산
7 잠사산업과 갈포산업
8 특화된 유기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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