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상공업의 어제와 오늘 .3] 조선 4대 名酒 과하주, 고성산 금광 물로 빚어…일제강점기 日에 수출한 '조선 4대 명주'

  • 박현주
  • |
  • 입력 2022-03-22   |  발행일 2022-03-22 제9면   |  수정 2022-03-22 07:36
여산 호산춘·한산 소곡주·홍천 백주와
조선 4대 명주로 봄에 빚어 가을까지 거뜬
진상품·사대부가에 판매 목적 주조 눈길
공물로 부과 양 많자 샘 묻어버렸단 說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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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과하주가 있게 한 원천으로 보존되고 있는 과하천 전경. <김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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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천 내부 모습. <김천시 제공>

'여름을 능히 넘기는 술' 과하주(過夏酒)는 봄에 청주(淸酒)로 빚어 주정분이 높은 소주를 섞지 않고도 가을까지 갈 정도로 보존성이 우수한 김천의 토속주다. 밝고 투명한 황갈색에다 곡주 특유의 향기와 감미(甘味)·산미(酸味)가 어우러져 시각·후각·미각을 자극하는 일품 음식이다. 여산 호산춘, 한산 소곡주, 홍천 백주와 함께 조선 4대 명주(名酒)로 꼽혔다. 몇몇 곳에서는 가양주(家釀酒)로도 만들었지만, 주요 공물(貢物)로 매겨진 김천 과하주는 숙련된 주조(酒造)기술자들에 의해 대량 생산돼 수요를 충당하는 등 일찍부터 상업성이 확보된 김천의 전략 상품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술의 주원료인 쌀 집산지에다 광역교통망 기반의 주조업이 전성기를 구가했다.

◆과하주 유래와 특성

"옛날에 금이 나는 샘이 있어 김천(金泉)이라 했다. 그 샘의 물로 술을 빚으면 맛이 향기로웠기 때문에 주천(酒泉)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곳의 토착민들이 금(金) 캐는 부역(賦役)을 두려워한 나머지 샘을 묻어버려 지금은 그 장소를 알 수 없다. 다만 김천의 과하주는 이름이 온 나라에 확산돼 다른 지방 사람들이 그 방법을 금릉(金陵) 사람에게 배워가지만, 그 맛이 본토의 술만 같지 못하니 물이 타처(他處)와 유별(有別)하기 때문일 것이다. 무릇 물산이란 각각 의토(宜土·재배하거나 생산하기에 적합한 땅)가 있는 것이다."

여이명(呂以鳴·1650~1737)은 1718년 저술한 금릉승람(金陵勝覽)을 통해 주천(현재 과하천) 샘물로 빚는 김천 과하주의 우수성을 전하고 있다. 김천 과하주와 얽힌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의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이여송이 우연히 주천 물맛을 보고는 "주취안(주천(酒泉)·일명 금천(金泉)으로, 간쑤성 주취안현에 있다)의 것과 같다. (김천의) 지형도 금릉(金陵·지금의 장쑤성 난징)과 흡사하다"고 평가했고, 여기에서 지명 '금릉'과 '주천'이 유래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일신라 경덕왕 재위기에 금산현으로 명명됐고, 고려 전기에 역참제도를 정비하면서 역명(驛名)이 샘의 이름과 같은 김천역(金泉驛)으로 설치됐다는 기록이 있는 반면, 이여송 일화는 임진왜란(1592~1598년)을 배경으로 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토착민들이 금을 캐기 힘들거나, 공물로 부과되는 과하주 양이 너무 많아 샘을 메웠다는 설도 김천의 특산물인 금과 과하주의 명성을 더하기 위한 후세 사람들의 얘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천시 평화남산동 고성산 자락의 주천은 과하천(경북도 문화재자료 제228호)으로 개명돼 보존되고 있다.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은 "옛날에 고성산 금광에서 나는 차가우면서 단맛이 도는 물로 술을 빚었더니 한여름에도 그 맛이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며 "김천 과하주는 다른 지방의 민속주 대부분이 가문의 술(가양주)로 전승된 것과는 달리 궁중 진상과 특수 고객층에 대한 판매를 목적으로 주조된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하주의 명성은 1882년(고종 19) 과하천에 세운 '금릉주천(金陵酒泉)'이란 표석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1935년 조선주조협회가 발간한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는 "과하주는 미림주(味淋酒·찹쌀지에밥에 소주와 누룩을 섞어 빚은 후 찌꺼기를 짜낸 술로 증류식 소주 맛과 고급스러운 단맛이 특징)로 주정분 30도 내외와 13~14도 등 두 가지가 있다. 김천에서 생산되는 과하주는 13~14도로 유명하다"며 "김천 과하주는 같은 비율로 섞은 찹쌀 고두밥과 우량품 누룩을 찧어 만든 빵 모양의 덩이를 항아리에 넣고 밀봉한 상태에서 약 1개월간 숙성 후 용수(술이나 장을 거르는 데 쓰는 기구)에 걸러낸다. 좋은 술로 칭찬받을 만하다. 김천은 수질이 양조에 적합하며, 특히 김천 과하주는 300여 년 전부터 알려진 유명한 산품(産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다른 곳의 과하주는 보존 방법으로 청주에 소주를 섞어 알코올 함량을 높였으나 김천 과하주는 순수한 청주다. 김천과하주 문화재지정 조사보고서에는 "찹쌀 고두밥을 국화(황국)와 쑥을 깔아둔 볏짚 위에서 식힌다. 이후 누룩 성분이 우러난 물로 고두밥을 떡으로 만들어 항아리에 넣고 한지로 밀봉한 다음 15~18℃의 양조실에서 46일 이상 발효시켜 정주를 얻는다"고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의 과하주

고급 곡물인 찹쌀이 주원료인 과하주는 애초부터 지배계급을 위한 술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 이전까지는 관청(김산군)의 엄격한 통제 속에 진상품 내지는 사대부가(士大夫家)에 판매할 목적으로 주조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하주는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판매망과 고객층을 전국 단위로 확대하는 등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대한제국 말기 세수 확보 차원에서 도입한 주세법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한층 강화돼 시행된다.

식민지 유지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일제의 주세법은 가양주도 제조 허가 없이는 만들 수 없게 하는 등 모든 국민이 간접세를 물지 않고는 술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가혹했다.

이에 앞서 통합 곡자회사를 설립해 주조에 필수적인 누룩 공급권을 장악함으로써 원천적으로 밀주(密酒) 생산을 봉쇄했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1926년 김천누룩조합을 설립한 데 이어 1928년 6월에는 과하주를 포함해 김천의 47개 주류제조업체를 통폐합한 김천주조주식회사(최초의 한일합작회사)를 설립함으로써 활발했던 김천의 주류산업에서 기생한 주류세와 판매수익 등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김천주조는 조선주조사에서 "본사는 창립 이래 김천 과하주를 양조해 왔고, 특히 원료를 정선해 품질을 향상하며 대량생산을 통해 싼값에 공급함으로써 매년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송 사무국장은 "당시 김천주조주식회사의 주류 생산량은 과하주, 막걸리, 약주, 소주 등에 걸쳐 연간 87만1천200ℓ정도로, 단일 지역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라며 "특히 과하주와 약주는 자체 보급망과 김천장의 도매점을 통해 전국에 판매되며 수요가 급증했다. 일본으로 수출도 됐다"고 말했다. 김천주조회사는 당시 전국 최대 규모의 양조장(825㎥)과 최신설비를 갖추고 연간 매출액 10만엔(1931년 기준)을 기록할 정도로 호황을 누린 것으로 나타난다.

◆현재의 김천 과하주

광복이 되고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식량 정책 등에 의해 만들 수 없었던 김천 과하주는 '서울올림픽'을 유치한 1980년대 초반 '전국 1시·군 1특산물' 정책에 의해 부활의 길을 찾았으나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며 술의 주재료인 쌀을 전략 물자화하면서 주조가 금지된 과하주는 광복 이후 정부 수립과 6·25 등의 혼란기를 거치며 주조기술자들이 각지로 흩어지는 등 명맥이 끊긴 상태였다.

과하주 복원은 당시 치과 의사로, 김천문화원장으로 활동한 고(故) 송재성 선생(대한민국 식품명인 제8호)에 의해 시도됐다. 그는 1981년 과하주가 김천 특산물로 지정되자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유일한 주조기술자로부터 전수한 주조비법을 활용했지만 복원이 쉽지 않았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1986년 드디어 완벽히 복원하기에 이른다. 1987년 경북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받은 김천 과하주는 현재 선생의 차남 송강호(대한민국 식품명인 제17호)씨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자문=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 참고문헌=김천 과하주, 디지털김천문화대전,
조선주조사, 가노 야스마사 저 김천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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