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상공업의 어제와 오늘 .7] 잠사산업... 뽕나무 시배지 남면 부상리에 가야의 음악가 우륵 이야기 전해

  •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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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6   |  발행일 2022-05-17 제9면   |  수정 2022-05-16 14:26
1968년 양천동에 한능생사 창립...2001년까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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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시골집 마당에서 원단을 이어 붙이는, 일명 '홀치기'를 하고 있다. 김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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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에게 먹일 뽕잎을 따고 있는 여성들. 김천시 제공

1·2·3차 산업을 아우르는 잠사업(양잠과 그 가공에 관한 사업의 퉁칭)은 일제강점기와 국가 압축 성장기를 거치며 김천에서 번성했다. 특히 별도의 농지가 없어도 가능했던 양잠은 산간지역 농가 대부분의 주요 소득원이었고, 대규모의 제사공장은 시민 수백 명을 고용한 가운데 지역의 수출산업을 이끄는 등 지역경제의 한 축으로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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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누에에게 뽕잎을 주고 있다. <김천시 제공>

◆김천 잠사업 역사
우리나라 양잠의 역사(3천여 년)를 참고하면 김천에도 일찍부터 양잠이 보급됐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록으로는 김천시 남면 부상리(扶桑里)가 뽕나무 시배지(始培地)다. 뽕나무밭이 많은 마을이라 지명에 '뽕나무 상(桑)'자를 넣었다는 부상리에는 실제 전통 현악기인 가야금을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가야의 음악가 우륵의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520년에 대가야의 가실왕에게 발탁된 우륵은 대가야에 속한 12개 지역을 상징하는 가야금 연주곡 12곡(가야금부·伽倻琴賦)을 작곡하면서 부상리에서 생산된 명주실로만 가야금 줄을 맸다고 한다. 1970년 고령에서 발견된 '산천유집(山泉遺集)'에 기록된 사실이다.


지금도 부상리에는 뽕나무밭에서 유래된 '번데기들'이 있다. 지례면 가잠리(현 가좌리)와 대항면 복전리도 오랜 옛날부터 양잠이 활발했던 마을로 전해진다.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부터 정부 차원에서 잠사업을 권장했다. 고구려 동명왕, 백제 온조왕, 신라 혁거세왕 등 각국 시조들이 농상(農桑·농업과 양잠)을 권장했으며, 백제 초고왕(재위 166~214) 때는 양잠·직조법을 일본에 전파함으로써 잠사업의 기틀을 마련해 줬다. 이후 고려와 조선 시대를 지나며 잠사업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됐으나 갑오경장(1894년) 이후에는 되레 일본으로부터 신품종 누에와 뽕나무를 들여왔다.


안타깝지만 김천의 잠사업 기록은 일제강점기부터나 찾을 수 있다. 경북연선발전지(慶北沿線發展誌)는 "김천군의 잠업은 역사적으로 기록할만한 자료가 없으나 신라시대에는 꽤 성했던 것 같다. 총독부 정치 이후 당국의 지도와 장려에 따라 크게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1914년 일제는 김천의 양잠 농가에 세잠누에(유충때 세 번 자고, 세 번 허물을 벗는 누에)를 보급하고, 1919년에는 1대 교잡종 사육을 장려하는 과정을 거치며 모든 누에 품종을 단일화했다. 이 결과 김천의 누에고치 생산량은 1908년 2.7t에 불과했으나 1919년에 57.9t으로 늘고, 1930년에는 780t으로 급증했다. 뽕나무 재배면적도 확대됐다.


일본인들은 김천의 양잠 경쟁력으로 △뽕나무 재배에 적합한 토질과 저렴한 지가(地價) △습하지 않고 적정 기온이 유지되는 온돌방 사육 △풍부한 노동력과 저렴한 인건비 △누에 사육기(봄·가을)의 적정한 기후 등 다습한 일본보다는 훨씬 좋은 사육환경을 꼽았다. 일제는 우량 잠종(蠶種)을 일괄 공급하는 한편 재상장려원(栽桑奬勵員)을 두고 뽕나무를 심을 적합한 땅을 선정해 식재 후 2년간 영농기술을 지도하고, 면별로 양잠 교육을 하는 등 세밀히 관리했다. 이후 김천은 상주· 안동과 함께 경북의 대표적인 누에고치 생산지로 발돋움했다.


앞서 일본인에 의한 사립 양잠전습소가 금릉면에 설립(1912)돼 양잠 농가에서 수강생을 선발해 6개월간 뽕나무 재배 및 잠종 제조법 등을 가르쳤다. 1915년 은사수산비(恩賜授産費·천왕 하사금으로 추정됨)로 전습소를 매입, 은사수산양잠견습소로 개명하는 한편 황금동으로 이전해 성주군과 공동 운영했다. 이후 김천양잠전습소(1918), 김천군 농회 양잠전습소(1920)로 개명했고, 김천여자양잠전습소로 전환한 1923년부터는 김천·경주·영일·청도·고령 등 5개 지역에서 여성 강습생만 모집했다. 이 같은 정책 배경에는 식민지 지배체제 확립과 농업을 통한 수탈의 목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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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누에고치 공판장 전경. <김천시 제공>

◆압축 성장기의 잠사업
정부의 제 1·2·3차 '잠업 증산 5개년 계획'이 추진된 1962~1976년은 우리나라 잠사업이 근대산업으로 자리를 잡는 과정이었으며, 김천의 잠사업도 크게 성장했다. 이때 정부는 100억원을 투입해 뽕나무 묘목 구입대금 80%를 보조하는 한편 비료도 무상 지원했다. 또, 잠실 건립비를 보조금과 융자금으로 충당했다. 생산된 누에고치는 공동판매제를 적용, 사업 구역을 배정받은 제사공장이 정부의 고시가격(1963년 시행)으로 수매하게 했다.


이에 힘입어 1960년 누에고치 188t(뽕밭 687ha), 생사 생산 1t에 머물던 김천의 잠사업은 1965년, 누에고치 716t(뽕밭 1천203ha)에다 생사 2t을 생산하는 등 성장을 거듭해 1986년에는 누에고치 2천207t(뽕밭 4천706ha)을 생산하며 정점을 찍는다. 1965~1975년에는 1만여 농가에서 누에를 쳤고, 생산량은 경북도에서 2위였다.


당시 금릉군 잠업지도사였던 문광식(77)씨는 "양잠은 농가에 여러 가지 혜택을 줬다. 우선 1년에 두 차례(춘잠과 추잠)인 누에고치 공판 시기가 중·고생 자녀의 공납금을 낼 때이며,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에 각각 한 달씩 노력해 벼농사보다 2~3배 높은 소득을 올렸다"며 "농촌에서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논과 밭두렁 비탈면에 심은 뽕나무만으로도 누에를 칠 수 있었으니, 농지 활용도를 높이는 차원에서도 권장됐다"고 설명했다.
문씨는 "당시 누에고치 주생산지는 지례 5개면(구성·지례·부항·대덕·증산면)과 조마면이었고, 이곳의 생산량이 강원도 전체 생산량보다 많았다"며 "면별로 한두 곳씩의 공판장 개장 기간은 10~15일 정도며, 농협은 농산물 검사소 직원이 매긴 누에고치 등급과 중량에 따른 금액을 지급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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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능생사 조업 전경. <김천문화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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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한능생사 전경. <김천문화원 제공>

◆한능생사주식회사
1968년 김천시 양천동에 창립된 한능생사는 김천 전역과 선산군 일부 지역, 상주시 공성면을 누에고치 수매권역으로 정부로부터 배정받아 사업을 펼쳤다. 고(故) 이병춘 창업주는 청도 출신으로, 상주농잠고를 나와 경북도 잠업검사소 소장과 식산국장을 역임한 잠사 행정가로서 양잠이 활발한 김천을 찾아 창업했다.


한능생사가 폐업(2001)할 때까지 근무한 권용목(59)씨는 "초기에는 주로 누에고치에서 생사를 뽑는 제사(製絲), 이를 7~8가닥씩 묶는 합사(合絲), 실을 꼬는 연사(撚絲) 상태에서 일본으로 수출했다"며 "그러다 1970년대 초반을 지나며 제직(製織·천을 짜는 일)을 했고, 기모노·넥타이·스카프 원단을 생산해 실과 함께 수출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는 호황이었으나, 이후 중국과 베트남의 저가품 공세에다 급격한 인건비 상승 등으로 채산성이 크게 악화됐다. 이 무렵부터 농가에서도 양잠을 기피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제사업체들은 1974년 일본의 '생사수입규제조처'로 수출품을 생사에서 견연사(絹撚絲)와 견직물 등으로 다양화하고 수출국도 늘려 갔다.


한능생사는 1975년 무렵 직원 331명과 당시의 최신 생산설비를 통해 1일 평균 생사 450kg과 견연사 600kg을 생산했다. 이병춘 창업주는 일찍이 자신의 아호를 딴 만정장학회를 설립하는 한편 김천 중앙고 신축부지(2만6천400㎡)를 기증하는 등 후학 양성에 크게 이바지했다.

박현주기자 hjpark@yeongnam.com

자문=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 

▨ 참고문헌=한국민족문화대백과· 금릉군지· 쓰지 스테조 저 경북연선발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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