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탐하다 봄의 전령사 매화 (2)…300년 사찰 곁에서 정갈하고 기품있는 자태…맑고 붉은빛에 한참을 취하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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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2-25   |  발행일 2022-02-25 제34면   |  수정 2022-02-25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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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의 각황전 옆 홍매(2017년 3월 31일). 지금의 각황전 건립 때(1702) 심은 홍매로 매화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 고매다.

선암사에는 오래된 고매들이 특히 많다. 원통전 앞 백매(천연기념물 제488호)는 600년 정도 된 고매로, 지금도 온전한 형태의 나무 전체가 건강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보기 드물게 큰 이 매화나무는 꽃이 매우 성글게 피어 더욱 고귀하게 보인다. 그 옆 무우전 돌담을 따라 수백 년 된 홍매와 백매 20여 그루가 봄만 되면 진하고 맑은 향기를 뿜어낸다. 선암사의 한 스님은 선암사 매화나무들이 한창 꽃을 피우면 멀리 떨어진 선암사 입구에만 들어서도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고불매(古佛梅)'라 불리는 백양사 홍매는 수령이 350년 정도로 추정된다. 담홍색 꽃을 피운다. 1863년에 절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을 때, 100m쯤 떨어진 옛 백양사 터에 있던 홍매와 백매 한 그루씩 같이 옮겨 심었다. 백매는 죽어 버리고 지금의 홍매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1947년에 백양사 고불총림(古佛叢林)을 결성하면서 '고불매'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통도사의 '자장매(慈藏梅)'는 수령 350년이 넘은 홍매다. 1650년을 전후한 시기에 통도사 스님들이 사찰을 창건한 자장율사의 큰 뜻을 기리기 위해 심은 나무라고 전한다. 이 자장매는 다른 산사의 고매보다 일찍 꽃을 피우기 때문에 매화 애호가들의 발길을 다른 매화보다 먼저 끌어들이는 주인공이 되고 있다. 통도사에도 자장매뿐만 아니라 매화나무가 곳곳에 있다.

처음 피는 매화 찾아 나서는 '탐매'
선암사 입구부터 향기뿜는 600년 백매
백양사 '古佛梅'라 불리는 350년 홍매
화엄사 검은빛 돌 정도로 붉은 흑매

선비들의 최고급 취미 활동 탐매행
이른봄 홀로 꽃 피우며 그윽한 향기
가난한 김홍도 거금 들여 매화 구입
퇴계 이황, 107수 달하는 매화시 남겨
운명 전에 "매화분에 물 주라" 당부

◆화엄사 탐매의 즐거움

올해는 어느 고매를 찾아볼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가장 많이 찾았던 고매는 화엄사 홍매와 선암사 매화다. 몇 해 전 화엄사 홍매를 찾았던 때의 감흥을 떠올려본다.

화엄사 각황전 옆 홍매는 홍매화이지만 꽃의 빛깔이 검은빛이 돌 정도로 붉어 '흑매'라는 이름도 붙었다. 제때 맞춰 가서 그 자태와 향기를 온전히 만끽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매화였다.

매화와 산수유 꽃만 보이는 이른 봄날, 화엄사를 찾았다. 화엄사에는 매화나무가 곳곳에 있다. 각황전 홍매에게 가기 전, 그 아래 청풍당(淸風堂) 담장 앞 홍매가 먼저 반갑게 맞았다.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홍매는 맑고 청초한 연분홍빛이었다. 담장 밖 화단에 자연스럽게 자란 고목 매화나무에 꽃을 피운 모습이라, 소박하면서도 친근한 맛과 멋이 좋았다.

각황전 홍매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발길을 돌려 각황전으로 향하는데, 맞은편에 백매화가 눈에 들어왔다. 만월당(滿月堂) 앞마당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매화에게 다가갔다. 나무 모양이 아름답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향기는 최고였다. 백매도 꽃이 한창이었다. 향기가 너무 좋아 한참 동안 향기를 즐기며, 한낮이었지만 보름달 뜬 밤 만월당 마루에 앉아 백매와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각황전으로 다시 향했다. 보제루를 돌아 대웅전 앞마당에 올라서자, 멀리 각황전 홍매가 눈에 들어왔다. 300년이 넘은, 우리나라 최대·최고(最古) 사찰 목조 전각인 각황전 옆에 붉은 꽃을 피우고 있는 홍매의 모습을 멀리서 보니 연꽃봉오리가 연상되기도 했다. 각황전 앞 계단을 올라 홍매를 마주했다.

각황전과 영산전 사이에 서 있는 이 홍매는 매화나무로서는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자태의 고목이다. 특히 꽃의 빛깔이 압권이었다. 꽃이 핏빛의 붉은 색이지만, 탁하지 않고 맑은 빛이었다. 이처럼 맑게 붉은 색의 홍매는 본 적이 없다. 거기다가 꽃잎도 다섯 개의 홑꽃이었다. 작으면서도 정갈하고 기품 있는 매화였다. 요즘 주위에서 많이 보는, 꽃잎이 많고 빛깔도 탁한 홍매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단청 없는 목조건물인 각황전과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나무 모양이나 생태도 다른 매화와 달랐다. 나뭇가지는 부드럽고 적당히 늘어져 매우 아름다웠다.

매화를 보고 또 봤다. 각황전을 배경으로 해서 보고 뒷산의 동백숲에 겹쳐 보기도 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보기도 하며 마음껏 감상했다. 다행히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아 탐매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만개할 때는 더 좋을 것 같아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희열 넘치는 탐매의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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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차규선 작 '매화초옥도'. 매화를 사랑하는 작가가 매화를 좋아하는 이에게 그려준 작품으로, 조선때 화가인 고람 전기의 유명한 작품 '매화초옥도'를 모티브로 그렸다.

◆옛사람들의 매화 사랑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매화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은 옛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사람보다 더했던 모양이다. 특히 선비들 중에는 가장 일찍 피는 매화를 찾아 벅찬 감흥을 맛보려고 눈길을 헤치며 나서는 이들이 많았다. 이처럼 처음 피기 시작하는 매화를 찾아 나서는 것을 '탐매'라 했다. 매화가 본격적으로 피는 때 매화의 명소를 찾아 즐기는 것은 관매(觀梅)·상매(賞梅)라 했다. 탐매행은 선비들의 최고급 취미활동이었다.

매화는 이른 봄 모든 초목이 움츠리고 있을 때 홀로 아름다운 꽃을 피워 맑고 그윽한 향기를 퍼뜨린다. 이런 매화의 성품은 지조와 절개, 맑음 등 군자가 추구하는 덕목과 상통하는 것이어서 선비들은 누구나 매화를 특히 좋아하고 그 성품을 닮고자 했다.

매화를 지극히 사랑해 호까지 매월당(梅月堂)이라 지은 김시습은 이른 봄이면 언제나 매화를 찾아 산속을 헤맸다 한다. 그가 남긴, 탐매를 주제로 한 한시 중 한 수다.

'크고 작은 가지마다 휘도록 눈이 쌓였건만(大枝小枝雪千堆)/ 따뜻함을 알아차려 차례대로 피어나네(溫暖應知次第開)/ 옥골의 곧은 혼은 비록 말이 없어도(玉骨貞魂雖不語)/ 남쪽 가지 봄뜻 따라 먼저 꽃망울을 틔우네(南條春意取先胚).'

◆김홍도와 이황의 일화

'단원 김홍도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또한 도량이 넓고 성격이 활달했다. 그는 술을 매우 좋아하였으며, 성격이 부드러운 가운데 소탈하여 사람들은 그를 신선 같은 인물이라 불렀다. 김홍도는 살림이 늘 가난해서 아침저녁으로 끼니 걱정을 하는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좋은 매화 한 그루를 보고, 그것을 사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돈이 없어 살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그의 그림을 원하는 사람이 찾아와 그림값으로 3천 냥을 주고 갔다. 단원은 그중 2천 냥으로 매화를 사고 8백 냥으로 술 여러 말을 사다가 친구들을 불러 매화를 감상하며 술을 마시고 시를 읊었다. 그 술자리를 '매화음(梅花飮)'이라 했다. 그리고 남은 돈 200냥으로 쌀과 나무를 집에 들였으나 하루 지낼 것밖에 안 되었다.'

문인화가인 우봉(又峯) 조희룡(1797~1859)이 남긴 '호산외사(壺山外史)' 등에 나오는 내용이다. 단원의 매화 사랑을 알 만한 이야기다.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홍매도' 등 매화 그림을 즐겨 그린 조희룡도 지독한 매화 애호가였다.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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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암자인 연기암 마당에 있는 백매.(2019년 3월 14일)

'나는 매화에 대한 편벽(偏僻)이 있다. 스스로 큰 매화 그림 병풍(梅花大屛)을 그려 침실에 두르고, 매화를 읊은 시가 새겨져 있는 벼루(梅花詩境硯)를 쓰고, 먹은 매화서옥장연(梅花書屋藏烟)을 쓴다. 매화를 읊은 시 100수를 짓고 내가 거처하는 곳에 매화백영루(梅花百詠樓)라는 편액을 단 것은 매화를 사랑하는 내 뜻에 마땅한 일이지 갑자기 이룬 것이 아니다. 시를 읊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편차(梅花片茶)를 달여 마셨다.'

퇴계 이황의 매화 사랑 또한 유명하다. 107수에 달하는 매화시를 지은 이황은 운명하기 몇 시간 전 시중을 드는 사람에게 "매화분에 물을 주도록 해라"고 했다. 음력 12월8일 오후 6시경에 별세했는데, 당시 그의 방 윗목에는 그가 애완하던 매화분이 놓여 있었고, 매화분에는 몇 개의 꽃망울이 금방 향기를 터뜨릴 듯이 부풀어 있었다.

'내 평생 즐겨 하는 것이 많으나 매화를 지독하게 좋아한다(我生多癖酷好梅)'고 한 이황은 설사를 만나 방에 냄새가 나게 되자 "매형(梅兄)에게 미안하다"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한 뒤, 환기를 시키고 화분을 다시 정갈하게 씻도록 하기도 했다.

이황은 매화가 한창이면 밖에 나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매화를 완상했다. 그의 시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읊고 있다.

'나막신 신고 뜰을 거니노라니 달이 사람을 쫓아오네/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기를 잊었더니/ 옷 가득 향기 스미고 달그림자 몸에 닿네.'

매화는 단순히 봄소식을 일찍 전해주는 향기로운 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에게는 득도의 기연(奇緣)을 선사하는 꽃이기도 했다. 이것을 알게 하는 대표적인 시로 무명의 비구니가 지었다는 오도송 '심춘(尋春)'이라는 시가 있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다녔지만 봄은 보지 못하고/ 짚신 발로 온 산을 헤매며 구름만 밟고 다녔네/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 봄은 가지 끝에 이미 한창이더라.'

매화를 소재로 한 선시 하나를 더 소개한다. 고려 후기 스님인 진각 혜심이 편찬한 '선문염송(禪門拈頌)'에 나오는 시다.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 주련 글귀이기도 하다.

'서리 바람 땅을 휩싸며 마른 풀뿌리 쓸지만/ 봄이 벌써 온 걸 그 누가 알리요/ 고갯마루 매화만이 그 소식 알리려고/ 가지 하나 홀로 눈 속에서 피었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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