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상화시인상] 심사평 "일상·이웃을 시적 도반으로 삼은 70년대생 시인의 인생 통찰 돋보여"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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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12-11  |  수정 2024-12-11 07:59  |  발행일 2024-12-11 제16면

[제38회 상화시인상] 심사평 일상·이웃을 시적 도반으로 삼은 70년대생 시인의 인생 통찰 돋보여
지난달 29일 영남일보 회의실에서 열린 제38회 상화시인상 본심 심사에서 심사위원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송종규 시인, 김춘식 문학평론가, 이문재 시인)이 본심에 올라온 시집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올해 예심을 거쳐 상화 시인상 본심에 올라온 시인은 총 여섯 분이었습니다.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을 통해 여러 권의 시집을 출간했고 이미 그 문학적 세계에 대해서 여러 차례 인정된 바가 있을 뿐 아니라 여타의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을 지닌 분들이 다수여서 본심 과정에서 수상자를 선정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 점은 달리 말하면, 본심 대상자 중 누가 수상을 하더라도 수상자로서 그 문학적 성취에 부족함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심사위원들은 이 점을 중요하게 여겨 심사평에서 수상자 외의 본심 대상자를 일일이 밝히고 거론하지는 않기로 했습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있었고 각 시인들의 문학세계의 장단점에 대한 이견을 서로 주고받았지만, 이런 논의는 심사를 위한 것일 뿐이므로 이미 자신의 문학적 세계를 갖춘 기성 시인에게 그 작품의 좋고 나쁨을 심사평에서 거론하는 것은 본심의 대상이었지만 아쉽게 수상자로 선정되지 않은 시인들에게도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본심 대상 작품의 대체적인 경향을 말하면, 각각의 문학세계가 다양하지만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는 최근 시의 화법에 비교적 가까운 시들로서 일상의 다양한 소재에 대한 환유와 자유 연상을 다채롭게 구상하는 경향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교적 정통적인 방식으로 일상의 체험과 시적 관찰을 자신의 개성적 문체로 쓰는 경우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이 두 경향 자체에 대한 평가에서 우열을 두지는 않았지만, 언어 표현이 좋은 반면 상대적으로 시적 구성의 통일성이 취약해 보이는 두 권의 시집을 일단 논의에서 제외하였습니다. 노련한 화법으로 일상적 관찰을 통해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작품도 있었고, 자연과 반도시, 농업의 세계를 그린 작품도 있었습니다. 또, 다양한 예술적 지식과 교양의 세계를 모자이크 하면서 일상의 세계를 유니크하게 통찰하는 작품, 자신 주변의 사건과 일상을 모두 시적인 화두로 변화시키며 시적 통찰을 수행하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이들 다양한 작품의 장점과 성취에 대해 모두 높이 평가했지만 최종적인 합의는 한 권의 시집으로 일치했습니다.

수상작 박판식 시인의 '나는 내 인생에 시원한 구멍을 내고 싶다'는 도시 변두리 정서를 그 바탕에 지닌 70년대생 시인의 '인생'에 대한 통찰이면서 동시에 '시인'과 '생활인' 사이의 균열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시 속에서 비애에 잠기지만 동시에 그 비애의 감정을 측은한 시선으로 다시 성찰합니다. 그의 시에 아포리즘 같은 깨달음의 문장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돌발적인 표현은 삶의 딜레마를 화두로 삼고 있는 그의 시적 성찰이 시작되는 지점이면서 동시에 도달하는 지점입니다. 그의 시는 화두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해서 화두에 대한 깨달음과 다시 되풀이되는 물음으로 순환합니다. 이전의 시 작품에는 이런 그의 시가 주로 환상과 상상의 영역을 더 많이 담고 있었다면 이번 시집은 그가 몸 담고 있는 일상과 이웃을 시적 도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시인의 말의 한 구절 "죽음을 통보받은 사람의 재담에 우리는 울다가 웃다가/꽤나 속이 쓰라렸다,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는/그가 나이롱환자인지 우리가 나이롱환자인지/모르게 되는 경이의 순간이 있다"는 말처럼 그의 시는 '경이의 순간'에 대한 발견이고 그런 경이를 품은 삶에 대한 정직한 질투이면서 헌사로 보입니다. 심사위원들은 시인의 시적 성취뿐만 아니라 이런 시에 대한 진정성의 측면을 높이 평가하여 박판식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했습니다.

수상자 박판식 시인에게 깊은 격려와 축하를 보냅니다.

▨ 본심 심사위원= 이문재·송종규 시인, 김춘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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