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눈물을 희망으로' .1] 프롤로그
해외이주 韓人의 삶 그 두번째 이야기
181개국 718만4천872명. 2013년 기준 대한민국 인구의 13%, 남북한 합친 인구의 10%에 이르는 수가 해외에 살고 있다. UN회원국이 190여개국이라면, 우리 동포는 사실상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셈이다. 이 중 외국국적(해당국가 시민권자)의 동포는 471만2천126명. 국적이 다른 한민족도 65%에 이른다.
우리 민족의 이산(離散),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됐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하와이로 떠난 것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에는 어쩔 수 없이 일본과 중국, 사할린으로 떠나야 했다. 6·25전쟁 이후에는 전쟁고아와 입양 등 시대의 아픔을 안고 고국을 떠났다.
영남일보는 광복 70주년인 지난해 12회에 걸쳐 대구·경북디아스포라의 시대적 아픔, 1세대와 1.5세대가 가진 고국에 대한 그리움, 그들에게 여전히 광복의 기쁨을 안겨주지 못한 현실을 짚었다. ‘광복 70+1주년’을 맞은 올해에는 그들이 눈물로 뿌리내린 씨앗이 이제 묘목을 거쳐 큰 나무로 각국에 자리 잡아가고 있는 이후 세대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또 다른 희망을 말하고자 한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눈물로 점철된 아픈 이주史 딛고특유의 근면성과 교육열로 성공법조·의료·언론 등 전문가 활약美·中·유럽 등 곳곳서 주류 편입국회의원 등 정계서도 큰 영향력‘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슬픔의 역사다. 먹고살 게 없어서, 나라를 빼앗겨서 강제로 고국을 등져야 했다. 그리고 1945년 광복 이후 이어진 6·25전쟁으로 황폐해진 고국 땅에서 희망을 찾지 못해 또다시 낯선 땅으로 떠났다. 광복 70년, 눈물로 시작된 재외한인 역사도 이제는 뿌리를 내렸다. 아픔으로 시작한 이민은 이제 희망을 꿈꾸기에 충분한 상황이 됐다. 전문가들은 “역사와 시대적 아픔이 있었지만, 이제 재외한인은 대한민국을 더 크게 만들어줄 든든한 존재”라면서 “이들과 함께 대한민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일을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눈물로 시작된 코리안 디아스포라5일 국가기록원의 재외한인역사 자료에 따르면, 첫째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1860년대부터 1910년까지다. 구한말의 농민과 노동자들이 기근, 빈곤, 압정을 피해 중국, 러시아, 하와이로 이주했다. 이후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의 한인 이주는 1902~1903년부터 시작돼 7천226명이 고국을 등졌다. 이들 대부분이 20대 총각이었던 탓에 이들과 결혼하기 위해 1천여명의 한인 여성이 1924년까지 하와이로 건너가 이민 가정을 꾸렸다. 하와이 이민자들은 사진만 보고 이들과 결혼했다고 해 이들을 ‘사진신부’라고도 불렀다. 둘째는 1910년부터 광복을 맞은 1945년까지다. 토지와 생산수단을 빼앗긴 농민과 노동자들이 만주와 일본으로 이주했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2년 만주국을 건설한 일본은 이 지역 개발을 위해 우리 민족을 집단 이주시켰다. 그 결과 1930년대 후반 만주지역의 한인인구는 50만명에 이르렀다.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을 계기로 대규모의 한인들은 광산과 전쟁터로 끌려갔고, 재일한인의 규모는 급속히 증가해 광복 전 230만명에 이르렀다.셋째 시기는 1945년부터 1962년(정부가 이민정책을 처음으로 수립한 해)까지다. 6·25전쟁 전후 발생한 전쟁고아, 미군과 결혼한 여성, 혼혈아, 학생 등이 입양, 유학 등의 목적으로 미국 또는 캐나다로 이주했다. 1950년부터 1964년까지 6천여명의 여성이 미군의 배우자로 미국에 갔고, 같은 시기 5천여명의 아동이 전쟁고아, 혼혈아, 입양아로 미국으로 떠났다. 마지막 시기는 1962년부터 현재까지다. 1962년 한국정부는 남미, 서유럽, 중동, 북미로 집단이민과 계약이민을 시작했다. 이민정책의 근본 목적은 잉여인구를 외국으로 내보내 인구압력을 줄이고 해외 교포들이 송금하는 외화를 벌기 위한 것. 1963년 브라질로 103명의 농업 이민자들이 출발한 게 최초의 집단이민이다. 유럽은 1960년대 독일로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들을 중심으로, 유학생과 주재원들을 중심으로 이민사회를 형성했다.◆ 아픔에서 피워낸 희망, 그리고 미래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아픔으로 시작됐지만 150년가량의 세월이 지나면서 그곳에 새로운 또 하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 재외 한인들은 근면과 성실성, 그리고 높은 교육열을 바탕으로 해당 국가와 지역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국회의원 6명을 비롯해 주의원, 시장 등 선거를 통한 선출직에 당선돼 활동하는 동포정치인도 80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재외한인에 대한 이질감이 커져가고 있는 만큼 하루라도 빨리 이들과의 유대강화에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2014년 닐슨코리아가 서울과 대구·부산·대전·광주 4대 광역시의 성인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인 66.9%가 “해외이민 1세대의 자녀로 해외 국적을 가진 동포 2세를 한국인이거나 한국인에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재외동포 3세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39%만이 “한국인으로 여긴다”고 답했다. 재외동포재단 관계자는 “초기 이민세대는 언어의 장벽 등으로 해당 국가 주류사회 진출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양질의 교육을 받고 현지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우리 동포 차세대들은 교육, 법조, 의료, 언론, 예체능, 패션 등 각종 분야에서 전문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면서 “우리 동포의 활동은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활발해지고 그만큼 이들의 영향력도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201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