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우리땅’ 의 정광태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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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05-18   |  발행일 2012-05-18 제34면   |  수정 2012-05-18
코미디 프로그램서 부른 노래가 ‘국민가요’ 돼
뗏목으로 헤엄으로 울릉도∼독도 횡단 등 참여
“日서 비자거부해 ‘쪽바리 새끼’ 욕 퍼부었더니
대사관 직원들 미동도 안해…섬뜩한 민족 절감”
‘독도는 우리땅’ 의 정광태
30년간 40여차례 독도를 다녀올 정도로 ‘독도수호파’인 정광태씨는 82년 ‘독도는 우리땅’ 한 곡 때문에 독도운동가 외길인생을 걷고 있다.

그냥 독도 노래 부르는 ‘그렇고 그런’ 가수인 줄 알았다.

그런데 죄송하게도 아니었다. 그는 지난 30년간 ‘ONLY 독도’만 외치며 독도애국지사처럼 비분강개형으로 살고 있었다. 전화번호에 들어가 있는 숫자 ‘815’. 외출할 때는 반드시 태극기가 부착된 옷만 고집한다. 프로필 사진에도 항상 태극기가 섞인다. 남들에겐 신파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에겐 ‘신념’이다.

83년부터 명예 울릉군수이며, 지금까지 무려 40여차례 독도를 다녀온 올해 58세의 가수 정광태.

“남들은 제가 독도 특수 때문에 엄청 부자가 됐을거라 믿는다. 또 어떤 이는 ‘광태 너는 독도 때문에 밥 먹고 살잖아’라고 비아냥거릴 때도 있다. 그럼 속으로 ‘임마, 독도는 절대 돈을 가져다 주지 않아, 그래서 독도가 거룩한 거야’라고 독백한다.”

만약 그가 독도를 마케팅으로 이용했더라면 그런 지적에 발끈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독도 외길인생’이라서 그런지 편견과 오해, 시기와 질투를 너끈히 극복한다. 개그맨이었던 그가 어느 날 ‘독립군’으로 변신한 계기는 뭘까?

◆독도는 우리땅 태동 비화

처음부터 ‘독도주의자’가 된 건 아니다. 우연히 만난 한 곡의 노래가 그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독도는 우리땅’의 태동 배경이 궁금하다.

“참 우습다. 그 노래는 ‘KBS유머1번지’에서 첫 선을 보였다. 당시 라디오 PD였던 박인호씨가 곡을 주었다. 나와 임하룡, 장두석 등 4명이 나온 ‘웃기는 노래, 웃기지 않는 노래’ 코너에서 불렀다. 난 이순신장군처럼 칼을 차고 출연했다. 그런데 그 노래를 유심히 지켜본 대성음반측이 음반취입을 제안했다. KBS별관에서 제작자와 미팅 약속이 돼 있었는데 당시 나보다 훨씬 바빴던 셋은 먼저 가버리고 나만 혼자 남아 음반을 취입했다. 그때 반주는 엄인호씨가 이끄는 신촌블루스가 담당했다. 82년 6월20일 발매되자마자 대박이 난다. 다음해 KBS신인가수상까지 받는다.”

- 노래 한곡 때문에 독도운동가로 변신한 것 같다.

“이듬해 노래 덕분에 경북경찰청 초청으로 접안시설도 없는 독도를 방문한다. 그땐 민간인은 독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한데 독도경비대에서 날 위해 예포를 쏘더라. 너무 감격적이었다. 독도 방문하면서 예포를 선물받은 건 아마 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은 고인이 된 홍순칠 독도의용대장이 감사패도 주더라. 가슴이 뜨거워졌다. 내 삶을 독도를 위해 헌신하자고 결심한다. 숙명이었다.”

- 이후 여러가지 독도행사를 전개한 것 같다.

“2000년 뗏목을 타고 독도수호대와 함께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갔다. 가기 전에 그 배를 여의도 공원에서 1개월간 전시했다. 독도가 우리의 생활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2004년에는 나 때문에 생긴 독도사랑회(회장 길종성)의 도움으로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수영을 했다. 모두 45명이 28시간 릴레이를 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높았던 파도가 수영중에는 너무 잠잠했다는 사실이다. 천지신명도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를 알아준 거라고 본다. 다음해는 33명의 여전사를 선발해 이들을 독도까지 헤엄치도록 했다.”

◆ 일본 입국 비자까지 거부당해

-한때 일본한테 미움을 샀는지 일본 비자까지 거부당했다더라.

“89년 SBS 리포터 자격으로 추석특집을 촬영하기 위해 일본 대사관에 비자를 신청했는데 다른 사람은 나오는데 나만 거부하더라. 발끈했다. 그래서 그 자리서 ‘쪽바리새끼~’라면서 욕설을 마구 퍼부어댔다. 그런데 대사관 관계자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자기 일만 하는 걸 보면서 일본이 정말 섬뜩한 민족이란 걸 절감했다. 그 일 때문에 미국영주권도 포기하고 독도로 본적을 옮긴다. 나로선 독도를 위한 전면전에 돌입한 거다.”

- ‘독도는 우리땅’ 이후 계속 히트곡을 낸 것 같다.

“지금까지 모두 4장의 앨범을 냈다. 84년 ‘힘내라 힘’ ‘도요새의 비밀’, 85년은‘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으로 시작되는 ‘김치 주제가’, 2001년 ‘아름다운 독도’, 김흥국씨와 ‘독도로 날아간 호랑나비’도 불렀다. 지난해 국상현이 작곡하고 내가 작사한 ‘독도는 한국땅’을 발표했는데 현재 내 휴대폰 컬러링도 그 노래다.”

(전 국민이 독도홍보대사가 되는 그 날까지를 외치는 그가 ‘정광태표 독도헌사(獨島獻辭)’를 날린다.)

‘명명백백한 자국 영토도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여기 영토를 잃고 잃어 한반도 좁은 땅덩이에 정착한 민족이 있다. 그 민족의 선조들은 광활한 만주벌판을 거친 숨결로 호령하던 당당한 기마민족이었다. 오늘 그 민족이 주인된 도리를 다하지 못해 또 하나의 영토를 빼앗기려 하고 있다. 훗날 그의 후손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부끄러운 선조를 가졌다고….’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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