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엔 우리는 모두 MR 헤드셋을 쓰고 있을 지도

  • 손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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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12  |  수정 2023-06-12 09:26  |  발행일 2023-06-12 제12면
초감각형 헤드셋 출시로 당긴 XR 불씨

망한 메타버스를 XR이 되살릴 수 있을까?

고가와 배터리 한계가 대중화 장애물
10년 뒤엔 우리는 모두 MR 헤드셋을 쓰고 있을 지도
애플 비전 프로. 애플 제공
10년 뒤엔 우리는 모두 MR 헤드셋을 쓰고 있을 지도
애플 비전 프로. 애플 제공
10년 뒤엔 우리는 모두 MR 헤드셋을 쓰고 있을 지도
'레디 플레이어 원'에선 모든 사람들이 고글을 쓰고 가상현실 속을 헤맨다.지금은 낯선 이 모습은 10년 뒤엔 현실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네이버 영화 스틸컷

2018년 3월 가상현실(VR)을 전면에 내세운 블록버스터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이 개봉했다. 세계적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4억 달러)을 넘긴 5억8천2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감독 이름값과 수많은 카메오, 좋은 평가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기술 진보로 탄생한 새로운 문법의 영화가 관객의 구미를 당겼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신드롬으로 이어지는 못했다. 당시 영화는 게임과 영화의 경계를 단숨에 허물고 관객을 유혹하는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5년여 만에 초(超)실감형 기술·서비스는 다시 세상을 들썩이게 했다.

◆ 초감각형 헤드셋 출시로 당긴 불씨
애플은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 열린 연례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를 공개했다. 이 MR 헤드셋은 지난 7년간 1천명이 넘는 엔지니어를 투입시켜 개발한 성과물이다. 애플의 비전 프로는 내년 미국에서 3천499달러(약 456만원)에 먼저 출시된다. 애플은 비전 프로를 '최초의 공간 컴퓨터'라 표현했다.

비전 프로의 기기 조작은 눈동자와 손동작, 목소리로 가능하다. 12개 카메라와 5개 센서, 6개 마이크는 실시간으로 사용자의 움직임을 추적한다. 또 고성능 시선 추적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가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빠르게 확인한다. 고속 카메라와 눈에 보이지 않는 조명 패턴(LED 링)을 통해 사용자의 실시간 반응을 파악해 반영한다. 2천300만 픽셀의 초고해상도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를 적용, 가상 세계에 대한 몰입감을 높였다.

가상현실에 먼저 불씨를 당긴 건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2014년 가상현실 기기 전문 업체인 '오큘러스'를 인수했다. 이후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지난해 10월 출시된 오큘러스 퀘스트2는 VR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최신 기기다. 하지만 기술적 한계는 대중화를 막는 장애물이었다. 양손에 컨트롤러를 쥐고 사용하거나 기기 앞면에 달린 카메라로 손 모양을 인식해야 하는 탓이다. 손동작 인식률은 컨트롤러에 비해선 그리 높지 않다. 키보드를 조작할 때 한 글자 한 글자 일일이 눌러주는 동작을 하는 것도 불편했다.하지만 애플 비전 프로는 이 같은 불편을 최소화하고 사용 편의를 극대화했다.

관건은 증강현실(AR)과 VR, 혼합현실(MR) 등 다양한 초실감형 기술·서비스를 포괄하는 확장현실(XR) 시장이 확대될 것인가 여부다. 메타버스는 2021년과 지난해 열풍이 불었지만 올 들어 시들해졌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메타버스 이용 현황 및 이용자 특성'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국민의 메타버스 이용률은 4.2%(전체 응답자 9천941명 중 417명)에 불과했다. 연령대별로는 6~10세 미만 이용률(20.1%)이 가장 높았고, 이어 10대(19.1%), 20대(8.2%), 30대(3.1%), 40대(2.5%) 순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이용률이 낮았다. 이용자는 대부분 '동물의 숲' 26.9%, '제페토' 26.6%, '마인크래프트' 19.9%, '로블록스' 16.2% 등 게임 기반 플랫폼을 이용했다. '메타폴리스(3.7%)' '게더타운(1.2%)' 등 가상 오피스나 교육 기반 플랫폼 이용률은 5%를 밑돌았다.
◆ 휘청이는 메타버스를 XR이 되살릴까?
KISDI 조사 결과는 이용자 기반 확대가 어려운 메타버스의 고질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실제 어린이,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사업 확장을 기대했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이미 하나둘 손을 떼고 있다. 월트디즈니는 지난 3월 전담 부서를 해체했고, 메타의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는 메타버스에 대해선 한 마디 언급없이 "대부분 시간을 인공지능(AI)에 쏟고 있다"고 말했다.

비전 프로가 XR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켜 삼성전자가 구글·퀄컴과 구축할 XR 생태계가 어떤 모습일지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빠르면 올연말즘 공개하기로 한 신규 XR 기기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새 XR 기기는 퀄컴 칩세트와 구글 운영체제(OS)를 탑재해 강력한 신개념 기능을 구현한다고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에서 구글, 퀄컴과 XR 생태계 구축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메타 역시 애플의 '비전 프로' 공개 전 VR 헤드셋 '퀘스트3'의 하반기 출시를 발표했다. 하지만 XR 시장이 정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점은 변수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AR·VR 헤드셋 출하량이 745만 대로 전년 대비 18.2% 줄고, 2025년까지 AR·VR 헤드셋 시장의 성장 궤도가 일정 부분 한계에 부딪힐 것으로 전망했다. 애플 비전 프로의 내년 출하량도 20만∼30만 대 수준으로 예상했다.

◆ 로그인 순간, 모든 것은 현실이 될지도
일단 테크 업계와 월가에선 애플 비전 프로가 메타버스를 즉시 부활시키긴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비전 프로가 워낙 고가인 탓이다. 애플도 비전 프로가 바로 흥행할 것으로 보진 않는다.

블룸버그는 "애플은 이 헤드셋의 판매량을 첫 해 90만대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애플의 도전으로 MR 헤드셋 시장에 변동이 생길 지 여부가 관심사다. 애플은 브랜드 가치가 높고 충성 고객층이 두텁다. 그런 애플이 본격 나서면서 가상현실 기기 시장이 다시 뜨거워질 수 있다는 것.

기술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지 가늠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2007년 아이폰이 공개됐을 때 대중화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가격이 500달러라고요? 전액 보조금이 지원되나요? 약정인가요? 비즈니스 고객에겐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키보드가 없으니까요"라고 했다. 비전 프로에 대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좋기는 하지만 쓸모가 있을까'란 회의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3천499달러라는 가격은 메타의 퀘스트3 가격(499달러)의 7배 이상 차이가 난다.

아직 메타버스 대중화는 시기상조일 수도 있다. 불편한 헤드셋 크기와 배터리의 한계는 걸림돌이다. 건축과 의료 등 산업용에는 적용 가능할지 몰라도 게임에는 가상현실 안경이 얇은 선글라스 크기로 줄어들어야 큰 불편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문제 역시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적용하기 어렵다. 30분도 안 돼 고개가 아파 오고 어지러움 증세를 느끼면 이용률을 높일 수 없다.

'레디 플레리어 원' 속 2045년,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닭장처럼 켜켜이 쌓아 올린 빈민촌 컨테이너 안에서 사람들이 고글을 쓰고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곧 일상이 될 수도 있다.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다.

손선우기자 sunwo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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