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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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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가볼 만한 곳 -힐링 여행] 이월드…연인과 친구와 잊지 못할 인생샷 성지…환상적인 동화 세상속 꿈·사랑·축제
전국 3대 테마파크인 대구 이월드. 연평균 입장객 250만명을 자랑하는 수도권 이남에서 가장 규모가 큰 테마파크다. 30여 종의 놀이기구가 제공하는 짜릿한 경험과 함께 끊이지 않는 공연, 오감을 충족시키는 체험 거리가 가득한 꿈, 사랑, 축제의 공간이다.대구관광뷰로가 밝힌 대구 인생샷 촬영 명소 1위로 선정되기도 한 이월드에는 42만9천㎡(13만평)을 가득 채운 포토존들이 가는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입구부터 셔터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하며 고객들에게는 잊지 못할 '인생샷 성지'로 이미 입소문이 나 있다.이월드는 낮월드와 밤월드로 나눠진다. 사계절 내내 빛나는 830만개의 전구조명이 이월드를 마법사처럼 은하수로 바꿔놓는다. 알록달록 반짝거리는 이색적인 테마파크의 야경은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로맨틱한 야경 덕에 이월드는 밤 데이트 명소로도 입소문이 자자하다. 이를 즐기기 위해 대구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커플들이 특별한 하루를 보내기 위해 매년 이월드를 찾고 있다. 83타워에서 대구 시역의 불빛을 360도로 완상하다 보면 세상의 불빛이 여기로 다 모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스카이 레스토랑에서 프러포즈 하는 이들이 적잖다.대구 최대 벚꽃 명소로도 알려진 이월드는 전국에서 가장 이른 벚꽃을 즐길 수 있는 핫플레이스다. 여의도 윤중로보다 세 배 많은 벚나무군. 그 터널을 파고드는 빨간 런던 버스는 너무나 이국적이었다.여름에는 파크 내 곳곳에서 좀비들이 출몰한다. 일명 여름 특집 호러 이벤트인 '좀비스프래쉬'. 오싹한 추억을 선사한다. 그뿐만 아니라, '아쿠아 판타지쇼'에 가면 36대의 초대형 물대포가 쏟아내는 40t의 물폭탄과 함께 온 가족이 물총을 난사하며 세상에서 가장 싱그러운 웃음을 지을 것이다.가을에는 해바라기, 코스모스, 핑크뮬리, 팜파스, 갈대 등 다양한 꽃을 감상하고 포토존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1만6천㎡ 규모의 '인생 꽃 사진관'이 개최된다. 이월드 하면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놀이기구 맛집'. 2019년 새롭게 론칭한 전국 최대 높이의 '스카이드롭'은 '고공심장충격기'란 별명을 가질 정도로 아찔한 경험을 선사한다. 예능 벌칙 기종으로 유명한 '메가스윙'과 각종 롤러코스터는 젊은 세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인기 기종이다. 도심 속에서 즐기는 케이블카인 스카이웨이와 회전목마 등의 가족형 놀이기구들은 행복과 사랑의 분위기를 잘 나타낸다.이월드는 각종 즐길 거리와 함께 미각과 후각을 즐겁게 하는 먹거리들로 가득 차 있다. 닭꼬치, 츄러스, 팝콘 등은 이월드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인기 간식거리. 각종 스트리트 푸드뿐만 아니라 온 가족의 입맛을 사로잡는 레스토랑 음식들이 테마파크 내 가득하다. 타워 78층에 위치한 '뉴욕뉴욕'은 대구 유일의 회전 레스토랑으로 대구 도심 전체의 전망을 보며 즐기는 분위기 있고 럭셔리한 한 끼를 만끽할 수 있다.이월드를 방문한 사람들은 하루 만에 이월드의 모든 것을 다 즐기기에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한다. 365일 축제가 끊이지 않는 이월드는 낮과 밤을 꽉 채운 콘텐츠들로 기억에 남을 추억들을 선사하고 있으며 꼭 가봐야 하는 인생관광지로 추천된다. 오는 26일, 8월6일 밤 9시 8분간 모두 1만여 발의 불꽃이 터진다. 매주 토요일에도 불꽃쇼가 이어진다. 자세한 행사내용은 이월드 인스타그램 @eworld.official 또는 이월드 페이스북 페이지를 참조. 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드론으로 상공에서 내려다 본 이월드의 황홀한 야간 전경. 〈이월드 제공〉이월드를 찾은 사람들이 놀이기구를 즐기고 있다. 〈이월드 제공〉
[대구 가볼 만한 곳 -힐링 여행 ] 바르미&인터불고호텔…낮엔 커피 밤엔 술 한잔 '낮잔에 밤별소'
Hi, 2022 Vacanes! 삶은 '일과 쉼의 맥동드라마' 아닐까. 일은 돈(자본)을 가져다줘 생계를 살찌우지만 소득에 세금이 따라붙듯 덩달아 피로와 스트레스가 치석처럼 들러붙게 된다. 일의 부하(負荷) 그리고 쉼의 충전(充電), 그것의 안배? 중용만큼이나 맥점을 잡기 어렵다. 그 중심을 잘 잡을 줄 아는 사람이 결국 더 많이 벌고도 불안한자 보다 상대적으로 덜 벌고도 더 풍성한 평화·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하지만 대다수 우리의 나날은 일인지 쉼인지 분간이 안 된다. 자칫 '워크홀릭'의 덫에 빠져든다. 일과 쉼은 결국 잘 놂으로 연결되고 그래야만 숨이 편해지고 맘이 순행하는 것이다. 초 단위로 벌겋게 단 가마솥 같은 도로를 신호등 무시하고 질주해야 겨우 목구멍에 풀칠을 할 수 있는 배달·배송·택배·퀵맨 같은 팍팍한 일상의 소시민에겐 언감생심, 꿈 같은 언설일 수도 있다.어쨌든 휴가철이 다가왔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지옥'으로 추락했던 놀이동산, 테마파크, 호텔, 풀빌라, 워터파크, 자연휴양림, 수목원, 캠핑촌…. 하지만 지금은 즐거운 비명을 질러댈 준비를 하고 있다. 앤데믹 국면과 맞물리면서 간만에 부활된 '바캉스특수몰이' 탓이다.매년 대구의 바캉스 시즌을 쥐락펴락하는 4인방 힐링 스페이스는 어딜까? 바르미 인터불고호텔, 리조트 스파밸리 워터파크, 수성관광호텔 인피니티 리조트, 그리고 한강 이남 놀이동산의 끝판왕으로 평가받는 이월드 정도. 서로 자기들만의 독특한 전략과 새로운 즐길·볼거리를 개발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대구지역에서 최초 5성급 호텔인 바르미 인터불고호텔. 이 호텔은 바르미샤브샤브n, 바르미스시뷔페 등 전국 15개 직영매장을 운영하는 <주>즐거운 세상이 2015년 인수한 계열사. 지난 4월에 호텔등급평가에서 최고등급인 5성을 연속 획득했다. 예전 별관 야외수영장이 있던 자리에 새롭게 만들어진 '웨딩파크빌리지'와 '웨딩인터빌리지' 두 곳의 웨딩홀은 금호강과 팔공산을 배경으로 대형폭포 및 잔디광장, 연못 등을 품고 있어 최고 웨딩 성지로 급부상했다.오픈 이후 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지역 최고의 맛집으로 불리어 오는 '더뷔페 앳 인터불고'에는 150여 가지 음식이 깔린다. 양갈비와 스테이크·민물장어는 기본이고 완도에서 당일 채취해 올라온 전복과 싱싱한 참다랑어 등 10만원대 명품 해산물의 향연을 6만원대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가성비 좋은 뷔페로 입소문이 난 상태, 주말에는 예약이 없으면 이용이 힘들 정도다. 바캉스시즌과 인기 짱인 존이 있다. '낮잔에 밤별소'이다. 기자도 지난 토요일 거기를 찾았다. 낮에는 커피, 밤에는 술 한 잔이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한다. 폭포 앞 테라스에서 호텔 쪽을 바라본다. 뭔지 모를 이국적 풍광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다. 거기서 사진 한 컷을 낚았다. 밤이 깊어지기 시작할 때 여기 오면 잔디광장 해물포차촌을 품을 수 있다. 신선한 조개를 숯불에 구워 먹는 호캉스의 멋과 맛, 지갑의 바닥을 보여줘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한우 한마리 피자(한우 피자 600)'도 인기상승 중, 통밀 도우에 한우를 사용하면서도 할인가인 3만원대에 즐길 수 있다. 한정판매라서 사전 예약은 필수. '바르미&인터불고호텔'이라는 배달 전용앱도 이용해보시길. 바르미샤브샤브·스시뷔페와 더 뷔페 앳 인터불고 등 바르미가 운영하고 있는 식음 매장을 이용하는 고객 대상인 이 앱은 저렴한 가격에 알찬 메뉴로 구성해 호평을 받는다. 고객이 직접 픽업 시 10% 할인. 경품 이벤트는 오는 31일까지 진행 중이다. 대상매장 이용 전 바르미&인터불고 앱을 설치, 가입하면 된다. 매일 2회 34명을 추첨, 다양한 혜택을 준다. 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낮에는 커피 한잔의 우아함, 밤에는 술 한잔의 정취가 교차하는 인터불고호텔 하절기 잔디광장 옆 핫존인 '낮잔에 밤별소'.〈바르미&인터불고호텔 제공〉야외 미니골프장과 맞물린 바르미 인터불고호텔 신관 전경.〈바르미&인터불고호텔 제공〉
[대구 가볼 만한 곳-힐링여행] 호텔 수성…'夏夏 好好(하하 호호)'…뜨겁게 즐겨라
호텔수성, 달구벌 100년을 품다.대구시 관광과 등록 1호 업소는 1964년 12월 수성관광호텔. 1960년 한국관광공사 전신이었던 교통부가 속리산 등 전국 유명관광지에 관영 호텔을 짓기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60년 즈음에 현재 수성관광호텔 주차장 자리에 3층 규모의 대구호텔이 탄생했다. 대구에 내려온 고 박정희 대통령은 꼭 수성관광호텔 로열 스위트룸격인 202호에 투숙했다. 그런 수성관광호텔이 매머드급 리모델링 작업을 끝내고 2012년 7월 명품 스파리조트 '호텔수성'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급기야 2016년 4월부터 3년6개월에 걸쳐 대대적인 신관 증축공사가 진행돼 2019년 11월 그랜드오픈을 하게 된다. 연면적 1만3천500㎡, 신관과 본관 합쳐 모두 181개의 객실, 신관 114개 객실에는 미니 온천풀이 들어서 있다. 밤이 되면 한마디로 '전광후록(前光後綠)'의 형세다. 앞에는 수성못의 기막힌 야경, 그리고 뒤에는 비슬산의 지맥이 팔조령을 딛고 법이산으로 들이치는 그 숲속에 테라스처럼 들어 앉아 있기 때문이다. 얼핏 스위스의 어느 호반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여기에 한 번도 오지 않은 사람들은 그걸 예감하기 힘들 것이다. 호텔 수성이 너무 달라진 탓이다. 초대형 볼링장 '볼링홀릭', 기술집약적 놀이공간 'CJ 4D PLEX', 컨벤션홀(수성스퀘어) 루프톱에 있는 '범퍼보트', 그리고 거대한 규모의 컨벤션홀과 웨딩홀, 음식점과 카페, 의류숍, 문화예술 공연, 국제회의, 세미나, 전시, 명품관 등이 잘 갖춰져 있다. 이미 고바슨커피, 크래프트한스, 미즈미, 참한상, 중식당 칭밍, 뉴욕바닷가재, 스페인클럽 등이 입점해 있다.규모답게 초대형 주차장이 완비 되어 약 1천200대가 동시에 주차 가능하다. 도심 심장부에 위치하여 지역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승용차, 도시철도 3호선 등으로 20분 이내에 접근할 수 있다.폭염의 나날, 요즘 선남선녀의 이목은 신관 '루프톱 인피니티 온천 풀'로 자꾸 쏠린다. 남녀 대온천 사우나, 4계절 전천후인 각종 이벤트 노천탕과 수영장, 대형 피트니스 센터, 레스토랑, 회원 전용 라운지, 전망대, 힐링 산책로 등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신관 최고층 인피니티 풀은 '워터 파라다이스'라 할 정도로 국내 최대 규모(108m)의 사이즈를 구현해놓았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인피니티 풀'로 유명한 곳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 그에 비견될 만한 경관이라는 게 호텔 수성 측 설명이다. 청정 맥반석 암반 지하 1천4m에서 용출되는 온천수를 전 객실과 그 부대시설에 공급하고 있다. 발치에 수성못이 보이고 팔을 뒤로 젖히면 법이산 숲의 바람이 손에 걸리고, 작열하는 태양, 그리고 원색의 비치파라솔, 팔등신의 움직임, 그리고 레몬즙처럼 터지는 웃음소리, 여기는 어디? 남태평양 어느 야자수 그늘 밑의 부티크 리조트가 아니라 호텔 수성이다.대구시, 수성구청과 협약을 맺고 수성못 일대에 '수성호수의 밤' 미디어아트&가상 현실을 구현할 수 있는 1천300석의 수상공연장이 건립되면 이 일대에 더 많은 이들이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수성호수 부지에 두산스포츠 시설을 2023년 6월까지 신설, 농구장 1면, 풋살장 2면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호텔수성의 신관 최고층 인피니티 풀은 '워터 파라다이스'라 할 정도로 국내 최대 규모(108m)의 사이즈를 구현해 놓았다. 하늘과 맞닿아 있는 '인피니티 풀'로 유명한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 호텔에 비견될 만한 경관이다. 〈호텔수성 제공〉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호텔수성 옥상에 자리한 루프톱 온천 수영장. 〈호텔수성 제공〉
[동대구로에서] 폰다이트(Phoneddite)
어느 날이었다. 사람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이 마법의 기기가 쥐어져 있었다. 집과 차, 심지어 결혼과 직장은 없어도 어찌 견디겠는데 '이게 없으면 절대 안 되지'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또 하나의 '만국공용어'였다.'스마트폰'(이하 폰) 이란 창세기가 열린 걸까. '폰 없으면 삶도 없다'고 여긴다. 폰에 살고 폰에 죽는 '폰생폰사'의 시대. 성경·불경·코란은 달라도 폰은 동일하다. 누군가는 폰을 신(神)이라 여긴다. '갓폰(Godphone)'.사람은 떠나도 이놈만은 떠나지 않는다. 머지않아 관 안에 부장품으로 들어갈 것 같다. 덕분에 추억의 사진 앨범도 사라지고 있다. 파일로만 존재하는 내 이미지. 폰이 사라지면 나의 실존도 사라지는 셈.'폰질'을 잘하면 단숨에 거부가 된다. 예전에는 공장이 갑이었는데 이젠 폰이 갑이다. 수도공고 출신의 김봉진, 그는 네이버에 입사했다가 바로 퇴사. 가구 디자인 사업을 말아먹고 마지막 회심의 일격으로 던진 배달의 민족이 대박 나 10년도 안 돼 억만장자가 된다. 예전에는 차근차근 부자였는데 이제는 '단숨에 부자시대'다. 폰은 마법사이다. 지구 반대편 어느 도시라도 인공위성의 눈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책에 없는 세계사의 이면을 고수로부터 전해 들을 수 있다. 책에도 없는 생활의 달인의 깨알 정보도 무궁무진하다. 대학은 날로 초조하다. 하지만 폰이 주는 인문학은 휘발성이 강하다. 떠벌리기만 하지 진중함은 없다. 폰족들의 댓글인문학과 카피인문학. 무엇이 내 지식인지 분간 못한다. 주장과 해석만 난무할 뿐…. 폰의 담론을 '절대적 진리'라 여기고 자기와 동일시한다. 결국 특정 유튜버의 프레임이 '덫'이 된다. 그게 '좀비지식' 아닌가.빅데이터를 제어하는 구글 AI가 지금 이 순간도 개인별 취향에 맞는 동영상을 눈앞에 데려다준다.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주인이 주는 모이(콘텐츠)를 잘 받아먹는 가금류 같다고나 할까? 아무튼 폰으로 인해 이제 더 이상 도시도 없고 농촌도 없다. 걸어가다가도 문득, 누워 자다가도 문득 쳐다보는 저 심원한 액정화면, e메일,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블로그 등이 위성처럼 내 주위를 돈다. 저놈을 굳이 '빅브라더(Bigbrother)'라고 풍자할 이유도 없다. 지옥과 천국이 달리 존재하지 않는다. 폰 안에 다 들어있다.세상의 부는 폰과 연결된 IT(SNS) 재벌한테 집중된다. 흥미롭게도 폰이 등장하면서 '청춘경제'는 결딴 국면이다. 결혼·직장·집도 포기. 어느 날 자신의 불행이 폰 때문이라고 우긴다면? 1811년 영국에서 일어난 기계파괴운동인 '르다이트(Luddite)'와 같은 '폰다이트'가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폰 때문에 '폰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거로 합세, 국가와 대기업 상대로 천문학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헌법소원 같은 것 말이다. 폰이 인류의 희망이겠지만 어쩜 절망만 남기는 신 판도라 박스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춘호 주말섹션부장 겸 전문기자
[첫 / 날] 등단 50주년 맞는 이동순 시인…닿지 못한 것을 향한 끝없는 결핍의 여정
이동순 시인. 6·25전쟁 때 김천에서 태어났고 올해 시력 50년을 맞는다. 197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마왕의 잠'이 당선돼 시인이 됐고 그동안 21권의 시집을 포함, 73권의 책을 냈다. 73세의 나이에 다시 문학청년의 습작기의 심정으로 돌아왔다. 어린 시절은 암울했다. 전쟁 중 어머니가 타계한다. 오래 '어머니의 부재'에 시달린다. 그게 되레 시의 원천이 된 셈. 1978년 28세에 대학교수가 되어 2015년까지 41년간 교수 생활을 했다. 등단 직후에는 '1973' '반시(反詩)' '자유시' 등 각종 동인지 활동을 펼친다. 지난 4월에 시집 '고요의 이유'(애지)가 나왔다. 등단 50주년 기념 시집이다. 초기는 김춘수류의 깔끔하고 단정한 스타일, 뒤에 김수영의 기운이 스며들어 결과적으로는 김춘수·김수영 통합스타일을 지향한다. 그러다가 단재 신채호(1880~1936)의 의기와 정신에 경도되어 역사주의적 관점의 중요성을 품게 된다. 군 복무 시절 탄약을 관리하며 느낀 시적 고뇌와 탐색이 녹아든 게 첫 시집 '개밥풀'(창비·1980). '물의 노래'(실천문학사·1983)에 담긴 장시 '물의 노래'는 안동댐 수몰민들의 애환 이야기이다. 이를 위해 각종 장비를 갖고 안동댐 주변을 직접 발로 답사를 했다. 베트남전을 한국현대사와 연결시켜 탐색했던 '미스사이공'(랜덤하우스중앙·2005), 몽골을 직접 답사하며 그곳 풍물을 한국인의 문화인류학적 시적 인식으로 정착시킨 '발견의 기쁨'(시학사·2009), 일종의 로컬풍물시집이랄 수 있는 '묵호'(시학사·2011), 고려인들의 비참한 생활을 다루었던 '강제이주열차'(창비·2019), 독도의 존재성과 역사성을 다룬 '독도의 푸른 밤'(실천문학사·2020)으로 이어졌다. 세상사가 '이동순 표 발효'를 거쳐 시로 태어났다. 이 과정에 "1923년에 돌아가신 독립투사 조부(이명균)의 은근한 추동이 있었던 듯하다"고 술회했다. 2003년에 민족서사시 '홍범도(洪範圖)'(전5부작10권), 분단시대의 매몰문학이던 백석(1912~1996)의 시작품을 수집 정리해서 '백석시전집'(창비·1987)으로 낸다. 특히 '백석시전집'의 발간은 큰 의미를 지닌다. 이후 백석 시인의 연인 김자야(1916~1999) 여사와의 10여 년 교유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백석문학상 운영도 그의 제의로 성사된다. 어느 날 전통가요 연구가로 변한다. 퇴직 후에는 무려 8개의 방송프로그램까지 맡았었다. 그 가운데서 최근에 종료한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 라디오프로 '남북이 같이 부르는 노래' '시로 만나는 남과 북'은 2011년부터 11년 진행했다. 이 프로는 북한으로 송출되는 프로였다. 대구MBC에서는 매주 50분 분량의 라디오 정규프로그램을 맡아서 5년간이나 MC로 활동하기도 했다. 옛 가수들의 생애사에도 관심을 가져서 옛 신문과 잡지, 각종 기록을 철저히 뒤져 채규엽, 강홍식, 전옥 등 50명가량의 가수 연대기를 상세히 정리했다. 조만간 '한국근대대중가수열전'(소명출판· 720쪽), 예전에 발표한 서사시 '홍범도'를 새롭게 정리한 홍범도 평전 '나, 홍범도'(한길사· 900쪽)도 광복절 직전, 각종 편지를 묶은 '빨간 우체통'(한길사) 등 올해 무려 5권이 쏟아지듯 발간된다. 그가 그동안 펼쳐온 한 시대 구간의 정리랄 수 있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등단 50주년을 기념해 펴낸 시집 '고요의 이유'.
[이춘호기자의 뮤직로드]광주 통기타라이브클럽(2) 광주라이브클럽 어제와 오늘...전국 유일 통기타 거리로 울림…임을 위한 행진곡 '광주포크' 부상
사직골 2대 주인 정용주. 남도소리까지 잘하는 그는 타고난 남도사내다. 15번째 이사를 한 끝에 10년 전 동명동 농장다리 초입에서 '산울림'을 오픈했다. 이 공간은 사직골과는 좀 떨어져 있다. 무인도 같아 더 통기타스럽다. 80년대 대학가 통기타 동아리 연습실 같은 분위기. 스피커 사운드보다 생목소리와 생 기타의 하모니를 더 존중한다. 누가 선창하면 다른 손님들이 재빨리 화음을 넣는다. 사직골 통기타쟁이들의 맏형격이고 지리산 도인들의 영원한 친구이기도 한 그가 이 업소를 운명처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노래 한 소절로 그 시절의 가슴과 추억이 소환된다면 매일 적자라도 이 공간을 지키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전 사직골 같지 않다는 소리도 들린다. 80년대에는 모든 가게에서 통기타로 연주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피아노와 반주기를 함께 사용하는 곳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민주화 시절에는 통기타가 대세였지만 지금은 욕망이 달라졌다. 너무나 다양한 노래가 난무하고 업소 영업을 위한 반주기가 필요악으로 확산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최근에는 용봉동에 반주기 음반을 앞세운 주점형 통기타업소가 새로운 지형도를 만들고 있다. 아무튼 사직골과 용봉동은 현재 광주 라이브클럽의 양대 축으로 진군하고 있다.1980년대 모든 가게가 통기타로 연주현재는 피아노·반주기 함께 사용 변화1세대 이장순·국소남 듀엣 활동 인기광주 MBC 별밤, 포크 뮤지션 등용문대학가요제 스타 싱어송라이터 박문옥포크음악제·금요콘서트 이어지며 명성◆광주만의 포크라인'광주 포크'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흐름이다. 서울 미사리 통기타촌이 붕괴될 즈음 광주의 사직골은 전국 유일의 통기타거리로 부상한다. 광주포크는 5·18민주화운동을 통해 '항거의 대명사'로 진화했다. 광주 정신의 한 파생물이 바로 '광주포크'다. 김종률의 '임을 위한 행진곡'도 광주의 산물이다. 이 곡은 1982년 카세트테이프로 처음 녹음된다. 20여 명의 광주 운동권 멤버가 함께 부른, 어쩜 시민들에 의해 완성된 저항가요다. 김종률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전남대 상대를 다녔다. 광주포크의 1세대는 단연 이장순(작고)과 국소남(전남일보를 통해 '통기타는 영원하다'란 광주 포크뮤직의 연대기를 기획시리즈로 연재)이다. 70대인 둘은 72년부터 6년간 광주의 대표적 포크 듀엣으로 활동한다. 이장순은 충장로의 DJ가 있는 여러 음악 카페에서 노래를 많이 불러 통기타 따라부르기 붐을 일으킨다. 광주 포크의 양대 견인차가 있다. 바로 광주MBC 별이 빛나는 밤에와 전일방송 VOC 전일가요제였다. 소수옥이 밤 11시부터 2시간 진행한 '별밤'은 포크 뮤지션의 등용문이었다. 거기에는 얼마 전 타계한 DJ 이용환 등이 힘을 보탰고 매주 토요일 공개 라이브무대에 웬만한 기타쟁이는 다 노크했다. 그들은 광주 별밤가족으로 통했다.한 획을 그은 건 전일방송이 1978년 출범시킨 지방 첫 대학가요제인 'VOC대학가요제'(일명 전일가요제). 전국적 인기를 누린 김만준의 '모모', 하성관의 '빙빙빙', 김종률의 '소나기' 등이다. 김종률은 내친김에 대학가요제에 출전한다. 3회 때 '영랑과 강진'이란 노래로 은상을 받는다. 81년에는 정오차가 MBC대학가요제에서 '바윗돌'로 대상을 차지한다. 바윗돌은 '5·18 망자의 묘석'을 의미한다.이 흐름은 전남대 노래패 '선율', 광주대 '메아리', 조선대 '함성'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된다. 거기서 파생돼 나온 노래동아리가 '꼬두메'와 '도레미' 등이다. 문화공동체 '꼬두메'는 1985년 탄생한다. '광주만의 음악을 하자'는 뜻에서 이름도 무등산 자락 마을인 '꼬두메'로 했다. 한보리, 김순곤, 배창희, 장현우, 여균수 등이 북구 운암동 2평 남짓한 라면 가게에서 막걸리에 목을 축이며 '노래운동'을 시작했다.포크의 흐름을 주도한 주인공이 있다. 광주 첫 대학가요제 스타 싱어송라이터 박문옥(달빛통맹 초대 광주 측 대표)이다. 그는 77년 제1회 MBC대학가요제에서 3인조 포크트리오 소리모아 리더로 '저녁 무렵'을 불러 동상을 차지한다. 1985년 꼬두메가 용틀임 할 즈음 광주포크라인이 구체적으로 형성된다. 그때 사직골에서 자주 불리던 노래가 있었다. 김원중이 불러 히트 친 배창희 작곡의 '바위섬', 박태홍이 작곡한 '짜장면' 등이다. 이 흐름이 '광주대학가요 입상자 옴니버스 앨범'으로 정리된다. 이때 신상균, 소리모아, 김정식(2회 대학가요제 은상 수상), 김종률, '바윗돌'로 유명한 정오차 등 5명이 호출된다. 정오차는 나중에 빠진다. 대신 들어간 사람이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원중. 이때 '예향의 젊은 선율'이란 음반이 나온다. 김원중 첫 독집 등 이 모든 작업을 박문옥이 다 연출한다. 뒤를 이어 2014년 '광주사직국제포크음악제'가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과 재단법인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행사를 주도한다.2019년 아시아문화전당 근처에 있는 '카페미술관 금요라이브콘서트'가 요즘 새로운 열기를 더한다. 김석·정은주 부부치과 원장이 포크뮤지션을 위해 자신의 건물 1층을 공연장으로, 2층을 미술관으로 꾸며놓은 것이다. 현재까지 대구의 김종락, 심상명 등을 포함 50팀이 공연을 했다.◆광주포크의 전설 6인방현재 사직동 통기타 거리에 포크 전설 6인을 상징하는 점묘화 기법의 철판이제작돼 부착돼 있지만 외지 방문객은 잘 모르고 지나친다. 이장순·국소남·정용주·박문옥·한보리(바위섬을 작곡한 배창희의 형, 원래 본명은 배경희)·김원중이다.2012년 3월16일, 그중 한 사내가 죽는다. 이장순이다. 64세에 대장암으로 타계한 것이다. 그는 화두 중 하나였던 '한국 가요사'를 '전라도닷컴'에 연재했다. '이장순의 이야기로 쓰는 한국가요사'이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정용주·한종면·강형원이 '광주 통기타음악이여 영원하라'를 다짐하면서 이 거리 터줏대감 격인 사직골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사직골 라이브클럽 쥔장들이 햇빛촌 앞에서 단합을 위한 거리음악회를 하고 있다.2017년 사직골 통기타카페 업소 주인이 모여 만든 옴니버스 CD '사직길 연가'.2014년 처음 열린 '광주사직국제포크음악제' 포스터.광주 통기타카페의 어제와 오늘의 진솔한 40여년 연대기를 품고 있는 사직동 통기타거리 초입 전경.새로운 감각의 통기타음악을 2019년부터 선보이고 있는 아시아문화전당 근처 '카페미술관'. 매주 금요일 오후 8시 라이브공연을 한다. 입장료는 무료.
[이춘호기자의 뮤직로드]광주 통기타라이브클럽(1)... 5·18 아픈 기억을 달래다 빛고을 '사직골 연가'
광주는 예향(藝鄕)답게 국내 포크음악계에 우뚝한 족적을 남긴 이들이 적잖다. '작은새' '이름 모를 소녀' 등을 남기고 요절한 김정호(담양 출신), '직녀에게'를 작곡한 박문옥, '바위섬'을 부른 김원중, 조용필의 히트작 '고추잠자리' '바람의 노래' 등의 작사가 김순곤,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전일가요제를 연 전일방송의 1회(78년) 대상 '모모'를 부른 김만준, 3회 대상은 '빙빙빙'을 부른 하성관인데 모두 광주에서 대박 나서 전국구 히트곡이 된다. 그런 광주와 대구가 손을 잡고 2016년 달빛통맹(대구광주 통기타동맹)을 성사시킨 건 국내 포크문화 발전의 한 변곡점이랄 수 있다.기자도 달빛통맹 광주 콘서트 때문에 광주를 적잖게 방문해 그곳 뮤지션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두 도시의 음악이 조금 차이가 있다. 대구 포크가 스킬적인 측면에 공을 들인다면 광주는 포크 본연의 가사와 울림에 포인트를 많이 둔다. 기자가 그동안 가장 부러워한 공간이 있다. 사직골 아래 자리를 잡은 '사직동 통기타거리'였다. 한때 사직공원이 깃들었던 사직골은 대구의 달성공원 같은 데라 보면 된다. 벚꽃이 멋있었고 수영장·동물원도 있었고 후에는 광주KBS 방송국, 지금은 다양한 공연문화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융복합적으로 만날 수 있는 다목적 공연 허브 구실을 한다. 바로 그 산자락 옆 비탈길에 10개의 통기타 라이브클럽이 오순도순 모여 산다. 햇빛촌(박종태), 기타등등(양학태), 산울림(김종민), 노래발자국(유이랑), 사직골(강형원), 트윈폴리오(김태준), 설화(강숙향), 한종면의 음악 이야기, 뭉게구름(정영보), 작은 음악회(주권기) 등이다. 놀랍게도 지난 코로나19 악몽 속에서도 굳건히 버텼다. 단 한 업소도 백기를 들지 않았다. 주인 모두 통기타 가수다. 아무튼 사직골 주인들이 몇 년 전 힘을 합쳐 '사직골 연가'란 옴니버스 음반까지 출시하기도 했다. 최근 바로 옆 양림동 '펭귄마을'이 전국적 관광지로 사랑을 받으면서 사직골 거리는 더 큰 시너지효과를 일으키고 있다.기자는 지난주 목요일 통기타거리 복판에 있는 이 거리의 터줏대감 같은 클럽 사직골에서 3명의 통기타 가수를 만났다. 2002년 첫 앨범에 수록된 '지리산'이 반응이 좋아 '지리산 가수'로 불리는 육자배기 풍의 몸짓이 인상적인 정용주, 여기에서 클럽을 운영하는 한종면과 사직골 강형원 사장이다. 셋은 촬영을 위해 추억의 통기타 명곡을 연주했다. 구름보다 더 아련하게 감정을 이어갔다. 사직골은 5·18의 아픈 기억을 달래던 1982~83년에 태어났다. 1호 업소는 현재 사직골이다. 한 할머니가 차렸던 호프하우스였다. 방송국 관계자들이 자주 들르는 참새방앗간 같은 호프하우스였다. 그 집 주인 할머니는 통기타 가수에게는 어머니로 통했다. 연주자들이 업장 내에 통기타를 하나둘 갖다 놓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통기타하우스로 성장하게 된다. 사직골은 추억스럽다. 자그마한 기와집 한 채. 통기타라이브 민속주점 같다. 일부 업소는 다양한 음악을 소화하기 위해 반주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아직 대다수 주인 맘대로 반주기 없이 자기 레퍼토리를 불러도 호응해주는 '충성 단골' 때문에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사직골 주인도 많이 바뀌었다. 2대는 정용주, 다음은 임인식, 박문옥, 박상선, 신상균, 10년 전 현재 사장이 인수를 한다. 5월이 되면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 등 민중·노동·투쟁가요가 신청곡으로 들어온다. 그게 이 거리만의 특징이다. 5년 전 남구청이 주도해 거리 리모델링이 진행됐다. 초입에 상징물과 업소 주인 사진과 프로필, 추구하는 음악까지 정리해 벽에 붙여 놓았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이춘호기자의 뮤직로드]광주 통기타라이브클럽(2)에서 계속됩니다.5·18의 아픈 기억을 달래면서 1983년 사직공원 아래서 호프하우스로 탄생한 사직골. 광주 통기타라이브클럽의 원조랄 수 있다. 초대 사장은 몇 년 전 작고한 할머니였고 그 뒤 정용주 등 6명의 사장이 줄을 잇는다. 10년 전 7대 사장 강형원이 여기를 지키고 있다. 광주 통기타 문화를 추억하기 위해 3명의 포크 뮤지션이 사직골 가게 앞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 왼쪽부터 한종면·정용주·강형원.사직동 통기타거리 조형물.
디포리 등 다섯가지 해물로 만든 육수…원본에 가까운 진주냉면 맛본다
김 원장이 사라진 진주냉면을 찾아 재현한 지가 벌써 23년이 되었다. 당시 재현된 진주냉면은 재료비가 너무 들어가 대중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해삼, 전복, 석이버섯 등은 생략하고 육전만 올렸다. 몇 년 전에는 최상의 면발을 연구하다가 대구에서 닭살냉면을 출시하기도 했다. 면발은 달라진 입맛을 염두에 뒀고 고명은 원형에 충실했다. 다시 진주냉면의 신지평이 서울에서 열렸다. 약식이 아니라 원본에 가까운 진주냉면을 재현한 것. 서울 용산 대통령실 인근 서울지방원호청 정문 옆 '민옥(民屋)'이란 상호로 '1999 진주냉면'을 만들었다. 디포리 등 다섯 가지 해물로 만든 육수, 그리고 메밀·고구마전분·닭가슴살을 섞어 면발을 만들고, 고명으로 전복·해삼·목이버섯·육전·오이·무김치를 올렸다. 모르긴 해도 현재 유통 중인 냉면 중 가장 푸짐한 버전일 것 같다. 진주비빔밥이 너무 화려해 '꽃밥(花飯)'이란 별명을 갖게 된 것처럼. 민옥은 조만간 대구에도 진출할 모양이다. 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서울 용산구 지방 원호청 정문 옆에 문을 연 '민옥.'
[김영복·이춘호 '한식 삼천리'] 진주냉면 재현기... 해산물·육전 푸짐한 고명 '1999 진주냉면' 되살리다
진주냉면을 찾아서기생 많은 진주 옥봉동 냉면집 성행배달 많아 남자 하인 3~4명 두기도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 그는 진주냉면의 연대기를 현지 조사를 통해 치밀하게 엮어나갔다. 1999년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조사한 바로는 1800년 말에 진주목의 숙수(熟手) 한 분이 관영(官營)에서 나와 옥봉동 개울가에서 진주냉면을 뽑기 시작했다고 한다.당시 진주 시내에는 미색과 재색이 뛰어난 관아 소속 진주 기생이 적잖았다. 그들과 맞물려 돌아갔던 숙수(요리사)들은 조선이 망하면서 권번과 요정으로 나와 그들만의 기생문화를 발달시킨다. 이들은 돈 많은 왜인이나 지주 등 한량들과 함께 기생놀이를 하고 야심한 밤에 냉면집을 찾아 냉면을 밤참으로 먹었다고 한다.특히 요정이 많고 기생이 많이 살던 진주시 옥봉동과 가까운 냉면집들이 장사가 잘됐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기생문화와 냉면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당시 기생뿐만 아니라 일반 부유한 가정집에서도 냉면을 배달시켜 먹어 냉면집에는 배달을 주로 하는 남자 하인들이 서너 명씩 있었다고 한다.1939년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병주의 장편소설 '지리산'에는 진주냉면을 좋아하는 일본인 교사 구사마에 대한 대목이 나온다. '한 줌밖에 안 되는 메밀국수에 볶은 고기를 가늘게 썰어 넣어 배와 생강으로 맛을 여민 육수로 된 이른바 진주냉면이 구사마의 호물(好物)이었다. "이 냉면 기가 막혀!" 구사마는 냉면 두 그릇을 먹곤 "진주를 떠나면 영영 이 맛있는 냉면을 못 먹게 될 텐데…"하고 숙연히 한숨을 지었다'는 구절이다.김 원장이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의 민속전통'을 읽고 진주냉면을 찾아 나선 것은 1999년이다. 이 책에 '냉면 중 제일로 여기는 것은 평양냉면과 진주냉면이다'란 기록 때문이다.'조선의 민속전통'은 해방 이전의 자료를 바탕으로 북한 평양에서 1994년에 발행한 책이다. 한양대 고 이성우 교수가 쓴 '한국의 조리문화사'에는 '옛날부터 찡하다는 표현의 평양냉면이 유명하였지만 이 평양냉면에 견줄 만한 진주냉면은 남국적인 맛으로 유명했다'는 구절이 있다.옥봉동 냉면촌60년대 중반까지 7~8개 업소 성업큰 화재로 점포 소실, 점차 사라져60년대 중반까지 옥봉동을 중심으로 수정식당, 평화식당, 은하식당 등 7~8개 업소가 성업 중이었다. 옛날에는 이러한 식당들이 하인을 두고 직접 배달을 했다고 한다.1961년 1월3일자 경향신문 기사에 '두 군인이 옥신각신타 살인'이라는 기사가 눈에 띈다. 이 기사에 진주시 장백동 '은하 냉면옥'이 등장한다. 이 식당 장남 배두선 일병이 살해된 내용이다. 60년대 초까지 진주에서 진주냉면 장사를 했다는 근거다.그러나 1884년 진주상무사로 개설된 이래 1966년 2월6일 밤 9시쯤 진주 시내 중앙공설시장 4구 일광상회와 대동지업사 부근에서 원인불명의 화재가 발생하여 순식간에 수백 점포가 맹렬한 불길 속에 휩싸여 버렸다. 약 3시간에 걸쳐 때마침 불어오는 강한 서북풍과 동북풍으로 47동 447개의 점포가 전소된다. 그 이후 진주냉면은 1960년대 중반 진주지역에서 사라졌다.진주냉면 자료를 보고 진주냉면의 흔적을 찾아 김 원장은 진주, 사천, 의령 등 냉면집을 다니며 하루에 5~6그릇을 먹어 봤으나 '진주냉면'이라고 특정할 만한 집은 한 집도 없었다.그러던 중 중앙시장 나무전거리 '평화식당(당시 냉면집)'에서 마지막으로 일했던 김점순(당시 61세)을 만난다. 사라진 진주냉면을 찾는다는 소문이 나면서 1928년부터 자기의 어머니가 진주냉면 집을 했다는 상봉동 거주 김양훈(당시 81세) 할머니, 수정식당 주방에서 일했던 정태호(당시 71세)씨 등을 만나게 된다. 강수영(1909년 출생)씨는 1900년도 초 어머니인 순흥 안씨인 안장금 할머니가 수영이네 집으로 불리는 진주냉면집을 운영하다 '수영식당'으로 상호를 변경해 운영해 왔다고 진주시 상봉동 거주 강대백(당시 83세)씨가 증언했다.진주냉면 재현동치미 국물 대신 멸치장국으로 육수쇠고기 편육 무친 후 삶아 국물 내기도당시 부산방송(현 KNN)과 함께 평화식당의 김점순 아주머니·강수영 할머니·정태호 할아버지를 모시고 각자가 아는 '진주냉면'을 만들어 보라고 부탁한 후 공통점을 정리해 사라진 '진주냉면'을 재현해 냈다.평양냉면이 동치미국물을 사용했다면 진주냉면은 동치미국물 대신 거제, 남해, 사천 등지에서 잡히는 죽방멸치를 이용한 '멸치장국'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특이한 것은 멸치장국을 끓일 때, 멸치의 잡내를 없애기 위해 동이나 무쇠를 불에 벌겋게 달궜다가 끓는 장국에 넣었다. 순간적으로 높은 온도로 가열하여 멸치의 잡내를 없애는 '순간가열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멸치장국을 기본으로 하여 각 집마다 첨가하는 재료와 육수의 맛이 조금씩 달랐다.예를 들어 평화식당 계열의 김점순은 멸치장국을 만들 때 멸치, 개발(바지락), 건홍합, 마른명태, 표고버섯 등을 넣고, 재래식 간장으로 간을 맞추며 만들었다. 수영식당 계열인 정태호는 멸치와 재래식 간장을, 1928년부터 자기의 어머니가 진주냉면을 했다는 상봉동 거주 김양훈은 멸치와 양파를 넣고 재래식 간장으로 간을 했다. 한편 이 사람들 모두 쇠고기의 사태살 또는 정강이 살을 푹 고아 기름을 건져 내며 육수를 내 멸치장국으로 빛깔과 맛을 맞추었다.그런데 여기서 김점순·정태호는 쇠고기 덩어리 살을 넣어 삶는데, 김양훈은 쇠고기를 잘게 편육으로 하여 마늘을 빻아 재래식 간장으로 양념한 후 쇠고기 편육을 무쳐 두었다가 이것을 삶아 육수를 만들었다. 김점순은 꾸미로 김장배추김치를 그대로 잘게 썰어 얹고 배·오이를 채 썰어 얹고, 계란 황백 지단과 깨소금을 얹어 내놓았다. 진주냉면의 특징순 메밀·고구마 전분 물에 개어 반죽꾸미에 김장김치·전복·해삼·석이버섯김 원장은 이 과정에 진주냉면의 공통된 특징을 알게 되었다. 첫째 순 메밀에 고구마 전분을 물에 개어 이 전분 물로 메밀 반죽을 하여 면발을 뽑는다는 것이다. 둘째 쇠고기 육수에 멸치장국으로 육수의 빛깔과 맛을 낸다는 것이다. 셋째 김장배추김치를 채 썰어 꾸미로 얹는다는 것이다. 넷째 진주지방의 제사음식으로 만들어 먹던 쇠고기 육전이 꾸미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복·해삼·석이버섯을 데쳐 채를 썰어 냉면 꾸미로 올렸다고도 한다. 이러한 다섯 가지의 특징이 진주냉면의 원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형이 훼손된 냉면은 진주냉면이라 할 수가 없으며, 이 원형을 중심으로 맛이나 모양을 내기 위해 추가되어 조리된 냉면은 모두 진주냉면이라 할 수가 있다.그는 이 내용을 가지고 2000년 6월쯤 신안동에 있는 '갑을가든'에서 진주냉면을 재현했고 그 사실이 KBS 뉴스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뒤이어 '하연옥 진주냉면'이 등장한다. 하연옥의 친정 아버지(고 하거홍)는 고아로 자라 진주 중앙시장의 식당 종업원으로 전전하다 1945년 하거홍(당시 24세)과 황덕이(당시 17세)는 '부산식육식당'을 창업 하여 소국밥, 비빔밥, 돼지수육 등의 음식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2000년 김 원장이 진주냉면을 찾아다닐 때는 현 하연옥은 진주 서부시장에서 부산식육식당이라는 상호로 국밥, 수육, 평양냉면을 팔고 있었다. 2005년 서부시장의 부산식육식당을 '진주냉면'으로 상호 변경을 하라는 권고와 함께 그가 재현한 레시피를 주고 함께 메뉴 개발을 한 것이 지금의 하연옥 진주냉면이다. 그 외 오빠나 언니들이 하는 진주냉면은 하연옥으로부터 전수한 것이다. 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지난 23년간 명맥이 끊어졌던 진주냉면을 찾아 다닌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원장. 그가 식당 관계자 증언, 자료 조사 등을 통해 재현한 '1999진주냉면'.진주냉면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쳤다. 몇 년 전 닭 앞가슴살 가루를 섞어 만든 '닭살냉면'을 대구에서 론칭했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김 원장은 그때 연구한 면발을 계승한 더 진화된 형태의 1999 진주냉면을 재현하기에 이른다.
[김동욱의 낚시시대/손맛] 광어 다운샷 낚시...무의도~소무의도~해녀도 전역서 미터급 대광어 포악한 입질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생선회를 꼽자면 아마 광어가 첫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낚시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광어회만큼은 즐기는 사람이 많다.수도권 낚시꾼 특히 바다 루어낚시를 즐기는 꾼들의 출조 계획표를 보면 5월에는 '광어 다운샷'이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지금 국민 생선회 광어를, 그것도 자연산 광어를 맛볼 수 있는 황금 시즌이 열리고 있다. 나는 영종도 남서쪽 끝에서 무의도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작은 포구를 찾았다. 잠진도 선착장. 광어 다운샷 출조를 하는 영종도 라이즈호(선장 박경식)에 오른 시각은 오전 5시 30분. 새벽바람이 살짝 불고 있긴 하지만 바다는 비교적 잔잔한 편이다."잘 나오는 편은 아니에요. 어제와 그제 조과는 6~7마리 정도. 씨알은 50㎝ 전후급이 많아요."박 선장은 인천권에서 대광어 열풍이 불던 4~5년 전보다 조황이 주춤하다고 말한다.표층수온 13.3℃ 1시간여 4마리 올려 수심 20m바닥 입질후 떠오른 대광어꼬리지느러미 끝이 75㎝ 눈금 가리켜묵직한 느낌의 밑걸림 "또 큰놈이네"녀석 힘에 목줄 터졌지만 뜰채에 쏙6월초 다운샷 포인트 올라가는 수온 산란 끝낸 묵직한 광어들 대거 입질◆어제 오후 마릿수 히트했던 곳7~8명의 꾼들을 태운 라이즈호는 선착장을 미끄럽게 빠져나간다. 30분 정도 달린 배가 도착한 곳은 소무의도 남쪽 해녀도 앞."어제 종일 부진하다가 오후 늦게 여기서 다 입질을 받았어요."박 선장은 어제 오후에 찾아낸 포인트 상황이 계속 유지된다면 오늘 오전에도 여기서 입질을 받을 확률이 높다고 본 거다.박 선장의 '촉'은 정확했다. "히트~!"왼쪽 선미에 있는 정철훈씨의 일성이다. 펄이 들어간 빨간색 웜을 내려 수심 19m 바닥에서 입질을 받았다. 이윽고 수면에 올라온 녀석은 50㎝ 정도 되는 광어. 스타트가 좋다. 15분 후 이번에는 뱃머리에서 히트 소리가 들린다. 라이즈호 단골꾼 김안국씨가 비슷한 씨알의 광어를 낚아낸다. 이번에도 펄이 들어간 빨간색 웜에 반응했다.곧이어 선실 오른쪽에 있는 이원식씨와 오른쪽 뱃머리에서 아들 건희(13)군과 함께 채비를 내리던 한상열씨도 입질을 받는다.라이즈호는 이렇게 첫 포인트에서 불과 1시간 동안 4마리의 광어를 올렸다. 이날 어탐기에 찍힌 표층 수온은 13.3℃. 그런데 바람의 방향이 바뀐다. 남동풍이 불기 시작한다. 살짝 불안해지는 조짐. 박 선장은 키를 잡고 소무의도 쪽으로 올라간다. 여기서 꾼들을 모두 오른쪽으로 옮긴다."한쪽으로 늘어서서 흘려볼게요."배 오른쪽을 바람 부는 방향으로 돌려놓고 꾼들의 채비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거다. 조류는 1.2노트의 속도로 흐르고 있다.◆허옇고 커다란 빨래판 불쑥여기서 김안국씨와 이원식씨가 한두 마리씩 광어 입질을 받는다. 씨알은 고만고만하다. 50㎝ 전후급. 마릿수 입질은 큰 불만이 없지만 낚이는 씨알이 아쉽다. 그런데 이때…."우와~! 이건 힘 좀 쓰는데…."뱃머리 오른쪽에 있는 배광진씨가 배 밑으로 빨려 들어갈 듯 휘어진 낚싯대를 세우며 버티고 있다. 수심 20m 바닥에서 받은 입질이다. 낚싯대 휨새를 본 박 선장은 바로 뜰채를 챙겨 들었다. 이건 대광어라는 걸 직감한 것."천천히, 천천히…."박 선장이 배광진씨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릴을 감는 배광진씨의 오른손에 힘이 들어간다. 수심 20m. 그리 깊지 않은 포인트인데, 녀석의 정체를 확인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이윽고 수면 가까이 올라온 놈. 허연 배를 뒤집는다. "우와~ 크다, 커~!" "대광어네, 대광어~!"옆에서 랜딩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꾼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른다."퍼드덕~, 퍼덕~!"수면 위로 올라온 광어, 자신의 눈앞에 커다란 뜰채가 보이자 마지막 몸부림을 친다. 이윽고 뜰채 속으로 쑥 들어간 녀석. 뜰채 안이 좁다는 듯, 빨래판 몸통을 아치 모양으로 굽히며 체념한다.박 선장이 뜰채에서 꺼낸 광어를 갑판 위 테이블 줄자에 눕혀본다. 꼬리지느러미 끝이 75㎝ 눈금을 가리킨다."광진이 오늘 인생 고기 낚았네."옆에 있던 친구 김안국씨가 부러운 눈으로 축하한다. 비록 미터급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인천권에서 보기 드문 씨알이 출몰한 거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점심 식사를 한 후 다시 해녀도 쪽으로 옮겨 오전 그 자리에서 또 한 번의 축포가 터진다. "뭐지…?" 선실에서 후방 카메라를 보던 박 선장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왼쪽 선미로 나간다. 정철훈씨가 한껏 휜 낚싯대를 들고 버티고 있다. ◆미터급 대광어를 노리는 꾼들"밑걸림 아니야, 감아보세요."오늘 가장 먼저 입질을 받았던 정철훈씨는 묵직한 느낌을 밑걸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명 초릿대가 쿡쿡 처박고 있다. 천천히 돌아가는 릴 스풀에 원줄이 감겨 들어간다. "와~! 이것도 큰 놈이네~!"좀 전 배광진씨가 낚았던 것과 비슷한 씨알의 광어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천천히…."박 선장의 뜰채가 물속으로 내려간다. 이때…."탁~!" 정철훈씨가 들고 있던 낚싯대가 하늘을 향해 쭉 펴진다. 목줄이 터진 거다. 광어는…, 그러나 운이 없던 이 녀석. 박 선장이 받치고 있던 뜰채의 망속으로 쑥 들어간다. 계측자 위에 올려본 녀석의 꼬리지느러미는 아쉽게도 70㎝ 눈금에는 미치지 못한다.이후 라이즈호는 무의도·소무의도·해녀도 해상을 돌며 드문드문 입질을 받았다. 김안국씨는 뱃머리에서 이날 혼자 7마리의 광어를 낚았고, 선실 오른쪽 이원식씨도 3~4마리 입질을 받았다. 최근 들어 가장 호황이었다.6월 초 지금 인천권 광어 다운샷 포인트의 수온은 하루하루 올라가고 있다. 지금부터는 산란을 끝낸 광어들의 포악한 입질이 이어질 것이다. 참고로 광어의 포획 금지 체장은 35㎝ 이하이다. ▶출조 문의 | 영종도 라이즈호 010-9156-8299 risefishing.sunsang24.com월간낚시21 기자 penandpower@naver.com소무의도 해역 수심 20m권에서 대광어를 낚은 배광진씨.박경식(오른쪽) 선장이 채비가 서툰 꾼에게 다운샷 채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이원식씨가 씨알 좋은 광어를 랜딩하고 있다.
[첫 / 날] 퍼포머로 변신한 시인 박진형
줄잡아 50년, 시를 쓰고 있다. 1985년 '매일신문'으로 등단했다. 20대부터 그림을 좋아하다 자연스레 화가들과 어울려 다녔다. 2002년 무렵부터 퍼포먼스에 경도된다. '김천국제퍼포먼스아트페스티벌'이었다. 그 결과가 제4시집 '퍼포먼스'(2007·만인사간)다. 시집 '퍼포먼스'에 영감을 준 작가들은 국내에서 이건용, 도지호, 홍오봉, 황민수, 김석환, 심홍재, 윤명국, 이상진, 조성진, 박미루, 서승희, 김은미, 배희권, 고경옥, 리홍재, 박원식, 김헌근 등이다. "퍼포먼스는 몸의 축제이다. 퍼포먼스는 그 어떤 예술보다도 시적(詩的)이다. 퍼포먼스는 20세기의 미래주의, 다다, 액션페인팅, 플럭서스, 누보레알리즘, 해프닝 등 다양한 실험과 변용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의 예술운동은 한결같이 전통적 인식과 관습을 거부한다. 예술이란 기존 가치에 대한 반역이다. 좋든 싫든 퍼포먼스는 이제 중요한 예술 장르의 하나로 자리매김되고 있다."2004년 5월29일 고령 박곡의 화가 이규목 화실 뜰에서 윤명국의 퍼포먼스 '풀밭 위의 퍼포먼스'가 열렸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해를 배경으로 넥타이까지 점잖게 맨 정장의 윤명국은 초록 물감 한 동이를 머리부터 확 뒤집어썼다. 관객들은 예상하지 못한 충격을 받는다. 그걸 보며 '풀밭 위의 사랑'이란 시를 썼다. 올해 서예가 일사 석용진을 기획·디자인 책임자로 앞세워 또 하나의 시집을 패대기쳤다. '물생간(物生間)'이다. 제3차 세계대전 같은 코로나19 팬데믹, 시인으로서 2년 반이 넘게 견디며 아수라의 캄캄지옥 같은 역사를 증언한 셈이다. 이 시집은 '듣다, 보다, 느끼다' 세 파트로 나뉘어 있다. 듣다는 코로나19의 타임라인을 따라간 세간(世間)의 시, 보다는 출세간(出世間)인 번뇌시도장, 느끼다는 퍼포먼스 시극으로 오도간(悟道間)의 세계랄 수 있다. 나에게서 출발하여 나로 완성되는 깨달음의 인생 3진법으로 구성했다.'님하, 도셔오소서!'는 퍼포먼스 시극(詩劇)이다. 구한말 쇠퇴한 조선불교의 중흥조인 경허 선사가 천장암에 머문 추운 겨울날 밥을 빌러 온 문둥이 여인을 선방에 불러들여서 열흘간 함께 지낸 이야기를 시극으로 꾸며본 것이다. 말미에 '누진다초점의 시'란 형식으로 자신과의 대담도 마련했다. 그는 "퍼포먼스가 10년 넘게 행위예술을 보고 시화했다면, 이번에는 코로나19의 시편 속에 퍼포먼스 시를 다시 불러들여 한바탕 시의 퍼포먼스를 벌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미지와 의미의 중첩과 얽힘, 그리고 병치·충돌·간섭·상응…. 그는 이 시집을 두고 "블랙홀 속에 빨려 들어갔다 새로 태어난 초신성 같다"고 고백했다. 새로운 박진형, 그 '변곡점'이랄까? 글=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2018년 1월20일 대구미술관 1층 어미홀에서 열린 한국행위예술 50년 아카이브 개막 퍼포먼스에 출연한 박진형 시인의 퍼포먼스 작품 '박진형 반가사유하는 의자'.올해 나온 제7시집 '물생간' 표지.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달빛통맹' (2) 영호남 싱어송라이터 6개팀 6개色 어쿠스틱한 맛 살린 '포크 잔치'
◆달빛통맹 달빛통맹은 가물가물 꺼져만 가고 있는 '한국 포크 종 다양성'을 위한 최후의 보루 같다.2016년 대구와 광주의 포크뮤직을 기반으로 하는 싱어송라이터를 축으로 결성된 달빛포크협회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일부 '달빛동맹'과 혼동하기도 한다. 달빛통맹은 '달구벌 빛고을 통기타 동맹'의 약자로 영남일보가 주최하고 2016년 9월23일 발족한 '달빛포크협회'가 주관하며 대구시가 후원하는 행사이다. 로컬 뮤지션의 입지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는 점을 중시, 대구시와 광주시가 손을 잡고 양 지역 싱어송라이터를 위한 다양한 공연무대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런 형태의 도시 간 포크 잔치는 달빛통맹이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향후 각 도시와 포크연대를 위한 다양한 부대행사를 연결해나갈 방침이다.지난 코로나 국면에서는 비대면 유튜브 녹화 버전으로 공연을 이어갔고 올해 거리 제한이 풀리게 돼 온·오프라인의 공연을 기획하게 됐다. 특히 SNS 세상을 겨냥한 대구와 광주의 공연 실황은 향후 달빛통맹 대구TV와 달빛통맹 광주TV에 업로드된다.특히 대구 지역 통기타 문화 확산을 위해 아마추어 통기타 동호회원과 포크 뮤지션과의 상생 포크팅도 개최한다. 이를 위해 오는 7월3일 오후 4시 방천시장 김광석그리기길 야외공연장에서 10개 팀(시기동/신폴/서태영/이소담/이철호/정해구·김혜우/구태진/손영찬/황성재/전영미)이 '버스킹 소풍 가는 날'이란 주제로 포크문화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갖는다. 여수에서 활동하고 있는 혼성듀엣 '별이와 택이'도 우정출연한다.향후 대구와 광주가 합동으로 달빛통맹 주제가를 작곡하는 것은 물론 '대구·광주 포크사' 책자 출간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대구와 광주의 역대 포크 뮤지션 전수조사 구술작업도 진행 중이다. 또한 지역 포크싱어의 연대를 위한 교두보로 달빛 라이브포크주막, 부정기적으로 다양한 포크 및 찾아가는 버스킹 무대도 연중무휴 진행되고 있다. 이런 게 잘 추진된다면 대구와 광주에 '달빛포크홀'도 동시 건립될 수 있을 것이다.◆올해 출연팀 면면지난 4일 수성구 범물동 가락스튜디오에서 열린 제7회 달빛통맹 대구콘서트. 그동안 밴드 음악에 중점을 많이 두었는데 올해부터 포크 음악의 생명이랄 수 있는 통기타의 어쿠스틱한 맛을 더욱 증폭시켰다. 참가한 6개 팀 모두 어쿠스틱하고 각기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있었다.대구 '주진과 콩심는 아이들'. 리더 주진씨. 그는 현재 수성구 지산동 목련시장 근처에서 라이브클럽 스타일의 막창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대구의 첫 포크 듀엣으로 1980년 '여자의 행복이란'(오아시스 음반)으로 데뷔를 했다. 제1회 MBC대학가요제 수상작인 '꿈나라'를 작사·작곡하기도 했다. 서울 생활을 접고 대구로 내려온 그는 추억의 팝 명곡을 자기 스타일로 불러 그걸 CD로 하우스레코딩하기도 했다. 이날 건반을 맡은 유진씨는 지역에서 잔뼈가 굵은 피아노 반주 싱어. 여자의 행복이란·꿈나라·키사스 키사스 키사스를 불렀다.광주 '김상운 밴드'가녀리고 쓸쓸한 보이스를 가진 김상운 리더. 그는 기타를 잡은 안휴, 건반 파트 문수희와 함께 2021년 첫 앨범 타이틀 곡인 '벚꽃 날린다'와 너의 노래는·한돌의 '쓸쓸한 사람'을 불렀다. 그는 광주의 싱어송라이터. 1992년 제주 MBC '별이 빛나는 밤에'에 고정출연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했다. 이후 KBS '추억찾기콘서트', 5·18 상설 음악회 등에서 공연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그의 강점은 포크음악의 서정성이다. 지난해 5곡의 자작곡을 모아 첫 앨범을 출시했다.대구 '이산 밴드' 1994년부터 창작과 공연 활동을 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박성운과 30년 경력의 사물연주를 베이스로 국내외에서 활약을 보이는 퓨전타악그룹 'HATA' 대표인 박성후가 의기투합해 만든 것이다. 이들은 이날 그런날·떠나며·Graham nash의 'Teach your chidren'을 불렀다. 국악 포크의 한 면모를 보여줬다. 박성후는 이날 6현 우쿨렐레인 '기타렐레'란 악기도 선보였다.광주 '한신희 밴드'건반 정소영, 퍼커션 강보승, 훌라 댄스 파트의 이미선과 함께 공연을 짠 한신희. 2018년 첫 자작곡 음반 발매를 시작으로 음악에 몰입. 2013년부터 하와이 기타인 우쿨렐레를 연주해 오고 있다. 하와이노래인 '멜레(Mele)'를 국내에 알리기 위해 한국어 번안에도 치중하고 있다. 이날 마지막에 하와이 댄서 차림으로 나온 이미선이 'kA ULUWEHI O KE KAI(카울루베히오케카이/하와이어 노래)' 연주에 멋진 이국적 춤사위를 보여줘 큰 호응을 얻었다.대구 4인조 혼성 어쿠스틱 밴드 '가을정원'.'봄날의 설렘으로 다가와 가을날 추억으로 새겨지다. 대구를 노래하는', 4인조 감성어쿠스틱 밴드 '가을정원'. 보컬 김가영, 통기타 최주민, 베이스 최준형, 바이올린 황가빈으로 짜여 있다. 잠잠·1200원·김광석의 곡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말랑말랑하고 싱그럽게 불렀다.광주 '거봉밴드'이날 출연자 중 가장 핫한 포스를 보여준 김거봉. 노랗게 물들인 레게 버전의 헤어 스타일을 가진 그는 드러머 임태산과 베이시스트 최선영과 함께 2010년 3인조 '거봉밴드'를 만들었다. 이날 손시향이 부른 추억의 명곡 '이별의 종착역'을 자신만의 블루스 라인으로 편곡했다. 팔천블루스·나는 누구인가를 불렀다. 팔천블루스는 웃고 울고픈, 가사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짠한 노래다. 어느 한 해, 그가 받은 1년 저작권료가 딸랑 8천원, 그래서 자기가 '연봉 8천원짜리 뮤지션임'을 블루스 톤으로 풍자했다. 이후 1만원짜리 연봉 뮤지션으로 발전(?)하고 싶단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2016년 대구와 광주 포크 뮤지션을 위한 상생프로젝트로 탄생한 달빛포크협회 산하 달빛통맹(달구벌 빛고을 통기타 동맹) 제7회 대구콘서트가 지난 4일 수성구 범물동 가락스튜디오에서 공연 관계자와 시민 참관객 등 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성료됐다. 공연 직후 공연자와 관계자가 무대에 앉아 기념촬영을 했다.2022년 제7회 달빛통맹 대구콘서트 포스터.2016년 달빛통맹 광주 측이 대구 측에 선물로 건넨 '임을위한 행진곡(원본)' 복사본 악보. 작곡자 김종률씨가 직접 갱지에 작곡한 귀한 자료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달빛통맹' (1) 대구·광주 통기타 화합…'달빛통맹' 화음 속으로
◆포크뮤직을 위한 프롤로그포크뮤직(FOLKMUSIC)! 모르긴 해도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불멸할 것 같다. 그 힘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얍삽하지 않고 당당하고 다소간 준엄하다. 본령이니깐 '곁가지'를 들고 까불지도 않는다. 스스로 뿌리임을 외치는 '야생적 고백'이랄 수 있다. 그래서 포크 뮤지션에게는 중앙도 지방도 없다. 그들은 스스로 '소우주'라 여기고 시대와 한판 걸판지게 놀다 간다. 그들은 시대의 통점(痛點)과 동고동락한다. 시대가 울면 그의 노래도 운다. 그들은 문화예술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시그널'이기도 하다.그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고 삼킨다. 그래서 통곡이 아니라 '독백'이거나 '오열'에 가깝다. 주장이 아니라 '고백'에 가깝다. 음정보다 음과 음 사이, 그 행간을 더 존중한다. 절대 음을 갖고 까불거리며 놀지 않는다. 정중하고 진지하고 고백적이다. 관객한테 끌려가지 않고 끌고 간다. 그게 포크 뮤지션만의 존재감이랄 수 있다.하지만 지금 얼마나 많은 이 나라 음악쟁이들이 음을 갖고 호들갑을 떠는가? 너무 현란하다. 너무 잘 부른다. 일종의 '질병' 같다. 잘 부르는데…, 그건 귀를 호강시키는 짓 같다. 가슴을 넘어 영혼을 힐링시키기에는 너무 역부족이다. 과도한 감정 낭비, 그리고 몇 옥타브를 넘나드는 작렬하는 음정들. 그게 과연 음악일까 싶다. 어떨 때는 그게 '차력(借力)' 같다.그들은 음을 능멸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음으로 바벨탑을 쌓으려는 저의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가수, 슈스K 등 지난 10년간 지속된 음악 오디션 프로에서 포크 뮤지션이 감지한 건 저 프로들이 진정 이 나라 음악 문화의 신지평을 넓혀간다기보다 또 다른 '자본의 횡포' 아닐까 싶다. 시청률을 담보로 한 특정 방송프로의 '뮤지션 착취' 같은…. 트로트의 재발견, 국악의 퓨전화, 래퍼와 힙합의 재해석 등의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 아직 뒷골목에서 통기타 하나 들고 자기를 노래하는 포크 뮤지션에게 과연 저 무대의 존재 이유가 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루이 암스트롱이 '재즈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그건 그의 명성에 가려진 재즈의 슬픈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사실 그가 활동했던 시기의 재즈는 백인의 댄스뮤직 백 밴드로 전락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여긴 재즈계의 안중근·김구 같은 자가 등장한다. 그들이 바로 찰리 파커,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디지 길레스피 같은 쿨재즈 대가들이다. 엔터테이너 같은 재즈에서 벗어나 연주 위주, 본연의 재즈로 스며든 것이다. 미국 남부 목화농장 흑인 노예가 일궈낸 블루스를 기반으로 재즈란 새로운 영토를 일궈나간 것이다. 그게 훗날 전 세계 포크뮤직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답은 포크뮤직이야 민족과 국가의 '소울(SOUL)'이 담긴, 전통음악의 흐름이 바로 각 나라의 포크뮤직. 그 포크 뮤지션은 대다수 통기타, 전자기타처럼 전기를 통해 음원을 비틀거나 증폭시키지 않고 통기타의 어쿠스틱 한 원음의 기운을 존중한다. 그들에겐 가창력보다 가사에 담긴 시대적 저항 정신에 무게중심이 더 실리게 된다. 대다수 포크 뮤지션은 싱어송라이터. 가사, 작곡, 그리고 노래를 혼자 빚어낸다. 그들은 '감정(필)'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영혼의 '울림'에 더 치중한다. 자신들은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여긴다. 자신이 느끼는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의 무엇이 잘못됐는지, 그 불편한 심정을 가사와 곡으로 풀어낸다. 그들은 자본과도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모든 게 자본 위주로 돌아가지만 그들은 힘은 들어도 굳이 그 흐름에 편승하기 싫어한다. 결혼하고 가족을 갖게 되어도 성실한 가장이 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이혼을 하거나 평생 독신으로 일관하는 이들도 적잖다. 그런 전사급 포크 뮤지션을 취미 수준의 통기타쟁이와 혼동하는 이가 많다. 외길 포크 뮤지션, 형극의 길이고 도저하고 치열한 포크 정신을 가진 자만이 임종 때까지 그 섬뜩한 짓을 할 수가 있다. 예전 군부독재, 폭압적 철권정치 하에서는 포크뮤직이 민중·노동·저항가요로 돌변한다. 광주에서 태동한 '임을 위한 행진곡'(백기완 작사/김종률 작곡), 그리고 한때 국민가요가 되었던 '아침이슬'(김민기 작사·작곡)도 다 그런 연고를 갖고 있다. 기자도 2016년 달빛통맹 1회 광주콘서트 때 박문옥 광주 측 대표로부터 김종률 작곡가가 갱지에 작성해놓았던 '임을 위한 행진곡'(작곡 원본) 복사본 액자를 선물로 받았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그래픽=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달빛통맹' (2)에서 계속됩니다.대구 '이산 밴드'광주 '김상운 밴드'광주 '한신희 밴드'대구 4인조 혼성 어쿠스틱 밴드 '가을정원'광주 '거봉밴드'대구 '주진과 콩심는 아이들'
[첫/날] 시인 박병수
그는 '사막을 건넌 나비'다. 그리고 그는 비극의 징조를 읽어내는 '사이렌'의 사내. 창녕과 마산을 거쳐 지금은 부산에 닻을 내리고 공사판을 돌며 시만 품고 술추렴이나 하면서 일상을 그럭저럭 견디고 산다. 험악한 일터 때문에 마흔에 '절벽' 끄트머리로 내몰렸다. 이승과 인연을 끊어보려고도 했다. 아내와도 부부의 연도 몇 번이나 지옥을 오르내렸다. 모든 걸 다 잃고 나서야 동면 중이었던 그만의 시(詩)가 그를 구원한다.그는 오만하고 거만하고 그리고 배짱이 두둑하다. 사내 냄새가 난다. 남몰래 죽음만큼 책을 파고들었다. 국내에선 이렇다 할만한 작가가 보이지 않았단다. 시인으로는 보들레르, 랭보, 엘리어트 정도, 소설도 '까르마조프가의 사람들'을 잉태한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정도라야 직성이 풀렸다. 늘 늑대처럼 혼자 울음의 습작기를 거친다. 하지만 어떤 시인이 되겠다는 야심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문예지 현대시의 원구식 시인과의 인연으로 2009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시사사)'를 통해 등단한다. 이후 10년간 창세기 같은 시를 적어나갔다. 그 암울하고 써늘하면서도 신화적 상상계를 가진 범상치 않은 그의 시를 본 창연 출판사 임창연 발행인이 창연기획시선 1권으로 묶어 처녀 시집을 발간한다. 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싸늘했다. 지금도 그는 혼자 거북이처럼 삭막한 문단의 변방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암울하고 써늘하면서도신화적 상상계를 가진 범상치 않은 詩…처녀 시집 발간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싸늘 그는 혼자 거북이처럼 삭막한 문단의 변방을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첫 시집 서문에 그는 스스로를 '초장, 중장, 그리고 종장 모두가 암흑이 되어버린 사내'라고 규정했다. 읽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시가 괴기스럽고 한없이 허무적이다. 흡사 부산 출신 강은교 시인의 첫 시집 '풀잎', 박기영과 장정일 2인 시집 '성 아침'을 연상시킨다. 시집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아마겟돈의 검은 비가 내리는 지난날을 그는 검정 불같은 시어로 녹여버렸다. 질풍노도로 치닫던 그의 문학적 번민 시기를 총정리한 '사금' 같았다. 지방에서 펴낸 시집이라 그랬을까? 아직 평단의 관심은 무관심 그 자체다.그가 작가노트를 보내왔다.'아무리 희미해진 흉터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잊힌 상처나 상실의 흔적만이 아닐 것이다. 식은밥을 삼키면 식은밥이, 울음을 삼키면 울음이 마중 나오는 게 내 몸의 구조란 것을 시를 쓰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나는 흉터 밖과 흉터 안 두 개의 세계에 나누어져 살고 있다. 한밤중에 창을 통해서 본 하늘은 어둡고 깊은 구멍이다. 가장 먼 세계의 정체가 신앙이 아닌 구멍인 까닭도 불편하다. 초식동물은 풀이 가장 무성한 시기에 새끼를 낳는다고들 하는데 풀이 가장 무성한 그 시기에 어린 나는 초식동물을 부러워했었고 나이 든 지금의 나는 죽음에 대하여도 생각한다. 흉터 속 깊숙이 삿된 호흡을 불어넣으며 식물처럼 곱게 살다간 존재들을 떠올리면 어떤 꽃은 필 때부터 질 때까지 흰 꽃이었다. 또다시 저녁이다. 석양 한 조각의 크기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며 비로소 나는 흉터를 어루만지는 사람임이 분명하다. 시의 관대함에 또 하루를 맡긴다.'빙하기 얼음에 갇혀 있던 그가 부활한 매머드의 입김처럼 보였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이춘호 전문기자의 푸드 블로그] 나물전문점 '양가네가든'…전국 15곳서 공수한 나물거리 '산천을 담은 밥상'
채소와 나물. 묘한 차이가 있다. 채소는 '트로트', 나물은 '포크송' 같다. 채소는 '개', 나물은 '고양이' 같다. 채소는 이미 인간의 품에서 일심동체가 되어버렸다. 상추, 쑥갓, 열무, 무, 배추…. 매년 파종 시기가 되면 꽃집, 종묘 가게 앞에는 별별 모종이 다 진열된다. 채소는 이미 '국민표'랄 정도로 대중적이 돼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야성(野性)'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봄을 주름잡는 달래·냉이·씀바귀·쑥·두릅·가죽나물·고사리·머위·곰취·참나물 등은 왠지 모르게 부족한 원기를 채워줄 것 같다. ◆나물줌마를 찾아서언젠가부터 민들레, 쑥부쟁이, 개망초꽃, 방가지똥, 광대나물, 곰보배추, 소루쟁이 등 들녘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잡초 같은 숨은 나물의 명칭과 캐는 법, 요리하는 법, 독초와 구별하는 법 등을 알려주는 들판 심마니 버전의 유튜버들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인간과의 관계망이 척박해지는 걸 야생초·산야초·반려식물 공부로 돌파하는 이들이 많다. 전국에 이런저런 나물 전문점이 적잖게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무늬만 나물집인 경우가 상당수다. 나물 종류도 일천하고 상당히 상투적이다. 나물의 물성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 산하에 종횡무진 피어나는 나물을 체계적으로 확보, 그 물성에 맞는 저장법과 요리법을 간직한 그런 고수식당이 정말 찾기 힘들어졌다. 나물도 철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영업을 하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봄이 여름으로 건너가는 이즈음, 나물쟁이 같은 식당을 찾아봤다.그런데 우연찮게 팔공산 자락을 품은 대구와 경산과의 경계에 있는 '양가네가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물줌마'로 불리는 양수조(59) 사장은 남편 김충원, 아들 김동률(31), 딸 김나영(24), 양사장의 동생, 바쁠 때는 조카까지 알바로 나서 가업을 지키고 있다.양 여사의 친정 조모가 전주에서는 꽤 유명한 약방집 딸이었는데 그분을 통해 남도음식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28세에 결혼을 했다. 1991년 7월 동구 불로동에서 '양씨네식당'을 오픈했다. 처음부터 나물 외길의 삶은 아니었다. 돼지갈비 전문점이었다. 3년 정도 하다가 나름 장사가 괜찮아 가게를 좀 더 키운다. '양가네가든'이 된다. 소, 오리, 닭도 키웠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시절, 광우병에 이어 설상가상 조류인플루엔자까지, 2개의 대형태풍에 식당은 쑥대밭이 돼버린다. 망연자실,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조모의 신의 한수그런데 친정 조모가 '신의 한 수'를 알려준다. 이후 그런 파동에 휩싸이지 않으려면 '나물밥집'이 괜찮을 것 같으니 한 번 해보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게 해서 2008년 처음으로 '산채정식'을 개발해 낸다. 다행히 동구 진인동 팔공산 자락에 괜찮은 문중 땅이 있었다. 거기에서도 꽤 풍족한 나물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양이 부족해 전국에 수소문해서 제대로 된 나물 구매 시스템을 갖춰야만 했다. 영양 일월산, 영천 보현산, 영주 소백산, 팔공산 일원 등 전국의 15군데에서 다양한 나물 매입루트를 형성한다.수급 시기는 3월 말~6월 말.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생나물거리와 말린 뒤 해를 넘겨서도 먹을 수 있는 묵나물(17종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법도 알게 된다. 식당 앞에도 나물군락지를 조성했다. 화살촉나물(일명 훈잎), 고추나물(일명 절춘잎), 다래순, 뽕잎, 단풍취, 병풍취, 우산나물, 이팝나물, 대나물, 호래비꽃대(일명 젓가락나물), 비비추…. 집단 재배를 위해 울릉도 취나물(참취), 오가피나무, 원추리, 두릅과 엄나무 등도 심었다. ◆나물의 향연양 여사가 진두지휘, 직접 황홀하기까지 한 나물밥상을 차렸다. 기자도 이런 밥상은 처음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나물의 향연이었다. 얼추 30여 종의 나물이 총출동했다. 처음 온 손님들은 일상에서 듣지도 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한 별스러운 나물에 탄성을 연발한다. '평생 이렇게 많은 밥상이 올라온 식당은 처음이다. 이 나물은 잡초인 줄 알았는데 식용이라니…', 나물에 대한 다양한 예찬과 호기심을 연발한다. 그런 반응이 이 식당을 반석에 올려놓게 된 건지도 모른다.가죽나물, 미나리, 이팝나무, 아주까리, 비름나물, 산취, 고사리, 부지깽이, 참나물, 다래, 갯방풍, 땅두릅, 어수리, 엄나무, 분재나물, 명이나물, 참취, 오가피, 두릅, 거리대, 곤달비….방풍나물, 감자, 비트, 김, 아까시꽃, 고추, 냉이, 연근 등 10가지 재료로 부각을 만들기도 한다. 장류는 당연히 직접 담그는 걸 원칙으로 한다. 단골이 탐을 내는 게 이 집 묵은 김치다. 김장철에는 사들인 배추가 작은 언덕을 이룬다. 고추장, 된장, 간장 그리고 김치, 이건 이 집의 수호신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흔들리면 나물맛도 흔들리기 마련. 9년 된 된장은 세월을 품은 탓인지 중식당 춘장처럼 거무튀튀하다. 밥과 쌍으로 붙어 다니는 국도 절기마다 다르다. 봄철에는 '산나물어수리나물국과 쑥국', 여름에는 '참나물국', 가을에는 특히 단골로부터 인기 짱인 '송이무국'이 특미로 올라온다. 특히 가을철에는 버섯나라로 돌변한다. 송이, 능이, 싸리, 국더덕이, 망태버섯…. 정말 귀한 송이 장아찌도 비장의 무기다. 송이향 스며든 간장에 참기름 한 방울 넣어 밥을 비벼 먹어도 좋을 것 같다.2월만 한숨 돌릴 수 있다. 식구는 이 식당에서 숙식한다. 양 여사는 오전 5시에 기상. 그래도 신이 난다. 장남이 가업을 잇겠다고 선뜻 나선 것. 경주 위덕대 호텔조리학과를 나와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근처 JW 메리어트 호텔 주방부에서 재직 중 어머니 부름을 받고 바로 짐을 쌌다. 딸은 동아대 화학과 출신, 약대생의 길로 가다가 식당일로 유턴을 해 버렸다 아버지는 주방, 어머니는 홀, 아들은 홀과 주방 사이, 동생은 카운터를 맞고 있다. 최강 '패밀리 파워'를 자랑한다. 양 여사 파이팅! 경산시 와촌로 팔공로 2길11. 낮 12시~ 밤 10시30분. 매월 둘째·넷째 수요일 휴무. 산채정식 1만원. (053)851-6127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1991년 7월 동구 불로동에서 '양씨네식당'을 오픈했다가 광우병, 조류인플루엔자 파동 때문에 나물전문점으로 터닝한 팔공산 양가네가든. 이 집은 이 땅에서 나오는 웬만한 나물 30여 종을 생채, 묵나물, 국 등 다양한 요리를 통해 새로운 식감을 느끼게 해준다. 나물박사가 된 양수조 사장이 남편 김충원과 가업을 이은 아들 김동률 사이에서 양가네 나물 엄지척을 하고 있다.죽나물, 미나리, 이팝나무, 아주까리, 비름나물, 산취, 고사리, 부지깽이, 참나물, 다래, 갯방풍, 땅두릅, 어수리, 엄나무, 분재나물, 명이나물, 참취, 오가피, 두릅, 거리대, 곤달비…. 게다가 별미로 등장하는 10가지 부각류(방풍나물, 감자, 비트, 김, 아까시꽃, 고추, 냉이, 연근 등), 장아찌류 등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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