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연극 '햄릿' 리뷰…완벽한 비극·미장센으로부터 느낀 카타르시스
비극의 매력은 카타르시스에 있다. 카타르시스: 감정의 정화. 아리스토텔레스는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비극을 관람할 때의 체험을 카타르시스의 주된 내용으로 삼았다. 그는 인간이 한계까지 내몰리면 환희에 이르게 되는 점을 관찰했다. 이성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돼 쾌감을 느끼고, 그러면서 인간의 영혼이 한 차원 더 고양된다고 봤다. 절체절명의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인물은 참혹하게 아름답다. 오직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 인물의 표정은 숭고하게 다가온다. 국립극단의 연극 '햄릿'이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다. 작중 배경은 12세기 덴마크왕국 엘시노어성이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주제로 끝없이 변주되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대구 수성아트피아 무대에 오른 국립극단의 '햄릿'도 현대적인 얼굴로 각색돼 동시대성이 보였다. 원작에서 남성으로 묘사된 햄릿은 공주로 변신했다. 상대 역인 오필리어도 남성으로 무대에 올랐고, 햄릿의 측근 인물들의 성별도 고르게 분배됐다. 17세기 원작이 쓰인 당시 만연한 가부장적 세계관도 수정됐다. 성별을 구분 짓고 여성의 정조를 강조하는 차별적 표현이 삭제됐다. 대표적으로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는 햄릿의 대사가 "약한 자여,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로 변경됐다. 화려한 비유가 이어지는 셰익스피어 특유의 대사와 달리 직설적이고 단호한 대사도 두드러진다. 할 말만 정확하게 하는 텍스트로 바뀌면서 멘트 하나하나에 더욱 힘이 실려 있었다. "착한 공주는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악한 공주는 뭐든지 할 수 있지." 클로디어스는 그의 형인 햄릿의 아버지를 죽여 왕위에 오른다. 형의 아내마저 탐내 결혼한다. 햄릿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빼앗은 삼촌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다만 원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햄릿이 악해지기로 마음먹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가족 복수극이 아니다. 권력 암투극 성격이 짙다. 죽음은 복수가 되고 복수는 왕권 차지를 위한 야망과 겹쳐 보인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왕이 될 때까지 화해나 자비, 반성 따위는 없다. 인간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묘한 자신감과 더불어 한편으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자괴감만 엿보일 뿐이다. 그리스 비극의 파토스마저 남루해지는 완벽한 비극이다. 미장센은 이봉련(햄릿役)의 파격적인 연기 및 신랄한 분위기와 대조되게 아름답다. '물'이 핵심 역할을 하는데, 무대 가운데에 고인 물과 천정에서 거세게 내리는 빗속에서 인물들은 사투를 벌인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와 빛까지 조화롭게 더해져 몽환적이지만 그곳은 죽음의 공간이 된다. 아름다운 광경이 완벽한 비극과 대비돼 더 기괴하면서 아름답고, 여기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햄릿의 죽음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이유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clip20240821154907 국립극단의 연극 '햄릿' 출연진. 가운데가 햄릿 역을 맡은 이봉련 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