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별신굿·어부의 삶 엿보는 마을 언덕 위 '기원 박물관'
포항시 계원1리에 지붕 없는 박물관 콘셉트는 '기원(祈願)박물관'이다.동해안 별신굿 관련 일지, 문헌, 마을의 당집, 당나무(금솔) 등을 집적해 바다를 향한 어촌 사람들의 기원의 역사와 어부들의 삶을 전시하는 대중적인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언덕에 자리 잡은 노인회관 앞 창고가 마을 박물관의 가장 좋은 위치로 보인다. 포구로 내려가면 곰솔(당나무), 작은 당산목, 마을공동작업장과 이어진다. 마을 박물관에 머구리 등 어업 도구와 별신굿 과정 등을 전시하면 좋은 관광자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계원포구 앞 작은 굿당, 마을 입구, 등대 앞 공터 등도 좋은 관광포인트가 될 수 있다. 바다 한편에는 얕은 곳이 있어 머구리와 해녀의 체험관광도 가능하다. 마을에서 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장기읍성, 장기유배문화 체험촌(우암 송시열, 다산 정약용 등 조선시대에만 200여 명이 유배 옮), 덕림서원, 장기향교, 장기척화비(병인양요와 신미양요 후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 금산서원, 포항 초롱구비마을(사계절 바다체험), 장바우어촌체험마을 등을 관광할 수 있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포항시 장기면 계원1리 주변에는 장기읍성 등 관광지도 많다. 장기에는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왔던 곳으로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이 조성돼 있다.
2023.10.12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 〈2〉 포항시 장기면 계원1리-동해안 별신굿
한때 120가구 왕성한 어업 '부촌' 일궈10여가구만 남아 해녀 활동, 생계 유지어촌 수호신 모시는 '동제' 별신굿 전통마을 존속 위한 동력자원 등 지원 절실포항 감포읍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구룡포 쪽으로 가다 보면 양포항 못 미쳐 도로 아래 조그만 마을이 하나 숨겨져 있다. 장기면 계원1리는 해안도로 밑에 마을이 형성돼 있어 지나치기 쉽지만 조그만 포구와 등대가 있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추석을 앞두고 마을을 찾았을 때 너무 한적하고 조용해 놀랐다. 마을 한가운데 정자에 어르신들이 없었다면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라 착각할 정도로 인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마을 정자로 다가가니 어르신들이 반갑게 맞는다. 미리 약속을 하고 온 터라 김용조 계원1리 이장과 머구리를 오래하신 전영득(75) 할아버지, 김실근(80) 마을개발위원이 담소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었다."여기 볼 거도 없는데 무슨 취재할 게 있다고…."어르신들은 마을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한숨을 지었다. 계원1리는 한때 주변 어촌마을 가운데 소득이 둘째로 많은 부촌이었지만 지금은 10여 가구에서 해녀들이 해산물을 수확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여기서 보면 마을이 예쁘잖아. 항구를 중심으로 언덕에 100여 가구가 살았어. 마을 뒤에 국민(초등)학교를 설치할 정도로 교육열도 높았어. 이제 자식들은 다 떠나고 우리 노인들만 남아있지…." 김용조 마을이장은 "옛날부터 전복과 성게, 자연산 미역이 좋고 많이 나와 마을 사람들이 풍족하게 살았다"면서 "부산 기장미역하고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미역은 알아줬다"고 말했다.어르신들의 마을 자랑이 끝없이 이어진다.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평생을 살아온 어촌마을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한때 어업활동이 번창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동제(洞祭)인 동해안 별신굿 전통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동해안 별신굿은 동해안의 어촌 마을에서 마을의 수호신을 모시고 마을의 평화와 안녕, 풍요와 다산, 배를 타는 선원들의 안전을 빌기 위해 무당들을 청해다가 벌이는 대규모 굿이다. 풍어제, 풍어굿, 골매기당제라고도 하는 동해안 별신굿은 1년 또는 2~3년마다 열린다. 굿을 하는 시기는 마을마다 다르나 대체로 3∼5월, 9∼10월 사이에 주로 거행된다. 동해안 별신굿은 굿에서 추는 춤이 다양하고 익살스러운 대화와 몸짓 등 오락성이 강하다. 계원1리는 2년마다 5월 말~6월 초 사이에 동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계원1리는 1952년부터 작성된 동제 장부가 대대로 물려내려 올 정도로 동해안 별신굿은 유명하다. 찬조금 기록부터 행사 참여자 명단까지 꼼꼼히 기록해서 지난 역사를 알 뿐만 아니라 동제 때 어떤 절차에 따라 어떻게 치러졌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어장 수입이 줄어들면서 마을의 공동살림살이도 어려워지고 있지만 포항시의 지원을 받아 마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어촌마을 쇠락과 함께 동해안 별신굿 하는 마을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계원1리 동제는 이제 동해안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예전 동해안 별신굿은 마을의 가장 신성한 의식이고 큰 행사였어. 몇 달을 빈틈없이 준비하고 성대하게 치렀지. 바다 어업활동의 무사기원을 빌고 풍어를 바랐지."수십 년간 이 마을 동해안 별신굿이 열릴 때마다 찾아서 자료를 기록하고 영상을 담아온 김신효(한국국악협회 대구시지회장) 박사는 "계원1리를 주목하게 된 계기는 동해안 별신굿이 이루어지는 기본적인 조건들을 잘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면서 "마을 주민들의 화합을 이끌어 내는 소중한 민속 자원"이라고 말했다.하지만 계원1리도 시대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인구감소에다 어업자원이 고갈되면서 젊은이들은 대부분 외지로 떠나고 해녀들만 고향을 지키고 있는 조용한 포구로 바뀌었다. 이날 마을 정자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해녀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참이었다. 60~70대인 해녀할머니들은 오전 7~8시쯤 바다로 나가면 오후 1~2시가 돼야 뭍으로 올라온다.한 해녀할머니는 "바다가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야간 불법조업이라도 막아주면 그래도 좀 나아질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어촌을 지키면서 머구리와 해녀들이 하나둘 사라져가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 더 이상 어업활동을 할 수 없는 어촌이 될까 걱정이 됐다.이날 잠수부를 동원해 바다목장에 잡초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돌아온 엄동락 계원어촌계장은 "계원1리 어장은 주변에서 가장 크다. 자연산 미역과 전복이 인기 좋았다. 그러다 양식미역과 전복이 나오고 바다도 고갈되면서 지금은 많이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어장에 해산물이 풍부할 때는 이 마을에 120가구가 살았다고 한다. 김실근(80) 마을개발위원은 "몇 년 전 뉴딜사업으로 해녀박물관을 건립하려고 했는데 사업선정이 안돼서 지금은 마을발전의 동력이 떨어진 상태"라면서 "마을이 사라지지 않도록 행정당국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포항시 장기면 계원1리는 한때 주변 어촌 가운데 손에 꼽히는 부자마을이었으나 어족 자원이 고갈되면서 한적한 어촌으로 변했다. 계원1리 마을회관에서 바라본 동해안 전경.계원1리 마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수령 500년 넘은 소나무인 곰솔의 웅장한 자태.
[MZ취향저격 Travel In Daegu]<상>놀 게 뭐 있냐고?…다녀보니 '대구는 꿀잼도시'
"대구에 놀게 뭐 있냐?"단순 궁금증일 수도, 대구 관광을 무시하는 발언일 수도 있는 이 말에, 영남일보 수습기자 3명이 뭉쳤다. 2주간 기사 발제도 제쳐놓고, 대구 이곳저곳을 누빈 우리.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대구는 꿀잼도시"라고.◆낭만 동성로콘셉트 빈티지숍부터 SPA브랜드숍까지공방서 기념품 만들고 스파크랜드서 놀고◆젊음과 낭만의 거리 '동성로'MZ세대의 여행에 '쇼핑'이 빠질 수 없다. 쇼핑이라는 단어가 광범위하게 들리기도 한다. 작은 기념품부터 백화점의 명품까지 모두 다 쇼핑할 거리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취향만큼 종류도 참 다양하다. 쇼핑으로 모두를 만족시킬 곳이 어디 있을까? 작은 빈티지숍부터 대형백화점까지 있는 곳, 동성로로 오면 된다.동성로는 대구 쇼핑의 성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에 들어서는 순간 다양한 콘셉트의 빈티지숍부터 SPA브랜드숍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타지에서 왔다면 각종 브랜드숍의 큰 규모에 놀랄 수도 있다. 실제로 부산에서 왔다는 백모(여·22)씨는 "매장 규모가 부산보다 훨씬 더 큰 것 같아 놀랐다"고 말했다.특히 지난달 22일 무려 5층 규모의 '무신사 스탠다드'가 동성로 한복판에 입성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입점 사흘 만에 방문객 3만명을 넘어섰다. 화려한 조명이 나오는 '라이브 피팅룸' 등을 앞세워 MZ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다.동성로 거리에서 조금만 걸으면 '더 현대'가 나온다. 대구 '더 현대'의 특징은 SNS를 중심으로 인기몰이한 브랜드들이 지하에 다수 입점해 있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가 가기에 딱이다.쇼핑을 어느 정도 했다면 동성로 내 공방에서 '원데이클래스'로 기념품을 직접 만들어보자. 향수, 테라리움(작은 대구 만들기) 등을 직접 만들며 색다른 체험도 하면서 추억이 깃든 기념품을 가져갈 수 있다. 동성로의 또 다른 볼거리와 놀 거리는 '스파크랜드'에 다 있다. 7층 높이의 건물에 관람차가 돌아가 대구 도심의 야경을 한눈에 만끽할 수 있다. 노래방까지 설치된 관람차 안에서 낭만적인 체험을 해보자. 이에 더해 좀비VR(가상현실), 레이저 서바이벌, 트램펄린, 롤러스케이트 등 취향에 맞게 재밌는 체험을 골라 할 수도 있다.해가 지고 배에서 "꼬르록" 소리가 나면 동성로 인근 '교동'으로 향하면 된다. 현지인 인증 맛집이 다양하게 손님을 맞는다. '레트로 감성'을 한껏 풍기는 교동시장의 풍경과 자연스레 이어지는 감성 술집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오래된 상점 옆에 '힙'한 맛집들이 어우러지면서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가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장관 전망대앞산 중턱 전망대 한눈에 대구시내 전경해넘이 전망대 상반기에만 18만명 방문◆천고마비의 계절 가을엔 앞산 공원 전망대 가을을 맞아 산들이 하나둘 붉은색 옷을 껴입기 시작한다. 가을이면 선선한 날씨에 색이 바뀌어 아름답게 변한 자연을 만끽하고자 산을 찾는 등산객들로 가득하다. 대구는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분지로 팔공산, 와룡산, 앞산 등 등산객에게 사랑받는 산들을 가진 도시다. 그중에서 앞산은 등산코스뿐만 아니라 트래킹 코스, 전망대, 카페거리 등 볼거리, 먹을거리가 많아서 더 다양한 연령대가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앞산의 대표적인 명소인 앞산 공원 전망대는 중턱에 있어 광활하게 펼쳐진 대구 시내 전경을 시원하게 볼 수 있다. 앞산 전망대까지는 여러 등산로 코스를 통해 걸어가거나 1만2천원(대인 기준)을 주고 케이블카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다.앞산 케이블카는 주말 기준 오전 10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운행한다. 등산이 쉽지 않은 저녁 시간에도 케이블카를 타고 야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앞산 케이블카 입구 바로 앞에는 시내버스정류장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뚜벅이들도 쉽게 오갈 수 있는 착한 관광코스다. 자연을 만끽하고 싶은데 등산보다는 조금 가볍게 걷고 싶다면, 앞산의 자락길 트래킹 코스도 추천한다. 앞산 자락길 코스는 △메타세콰이어길(0.9㎞·18분) △맨발산책길(0.9㎞·18분) △이팝나무길(2.3㎞·50분) △호국 선열의 길(1.1㎞·22분) △꽃무릇길(1.3㎞·26분) △소원성취길(1.1㎞·22분) 등 모두 6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대략 20분에서 1시간 이내로 걸을 수 있는 코스여서 초보자 '등린이'들도 쉽고 안전하게 자연을 즐길 수 있다. 일몰과 함께 아름다운 대구의 경관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앞산 해넘이 전망대'가 제격이다. 앞산 해넘이 전망대는 2020년 8월 앞산 빨래터 공원에 조성됐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상반기에만 약 18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전망대 앞에 있는 빨래터 공원에서 앞산 별자리 이야기 터널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앞산 맛 둘레길, 앞산 카페거리, 안지랑 곱창 골목으로 연결된다. 해넘이 전망대 구경 후 맛있는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먹고 가지 않을 수 없다. ◆환상 곱창골목100m 거리 점포 50여 개…가게마다 특색2인분 시켜도 불판 가득 부담없는 먹거리◆'대구=곱창, 곱창=안지랑'…곱창골목 대구에 여행을 와서 10미(味) 중 하나인 막창과 곱창을 안 먹고 가면 섭섭하다. 안지랑 곱창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끝도 없이 늘어선 곱창 가게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연탄에 구수하게 구워지는 곱창 냄새와 화려한 조명이 특유의 정겨운 분위기를 풍긴다. 가게마다 곱창·막창과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들로 붐벼 시끌벅적해 마치 야시장에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대구 관광실태조사에 따르면 대구를 방문한 관광객이 추천하고 싶은 음식 1위로 곱창·막창(14.6%)이 꼽혔다. 다음으로 갈비찜(4.6%), 비빔밥(4.1%)이 뒤를 이었다. 이곳에선 대구 곱창·막창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100m가 넘는 거리에 50여 개 점포가 늘어서 있는데, 가게마다 다 특색이 있다. 수십 년간 쌓인 노하우로 곱창·막창의 누린내를 잡는 방법이 다르다. 특히 곱창·막창을 먹다 보면 '막장'이라 불리는 특제 소스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가게마다 '막장'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 때문에 막장 맛을 비교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젊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끄는 골목으로도 유명하다. 2인분만 시켜도 불판에 가득 나오는 곱창·막창 세트는 '착한 가격'이라 대학생들이 먹기에도 부담이 적다. 이곳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곱창·막창에 소주 한잔이면 모든 시름을 잊기에 충분하다. 밤늦게까지 젊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이유이기도 하다. 취재진이 찾은 날 곱창을 굽던 사장 최원목씨는 "손님의 60%가 청년층일 정도로 젊음의 거리가 따로 없다. 그만큼 늘 활기도 넘친다"고 했다. 박영민 수습기자 ympark@yeongnam.com 김태강 수습기자 tk11633@yeongnam.com 박지현 수습기자 lozpjh@yeongnam.com대구 남구 '앞산 해넘이 전망대'에서는 아름다운 노을과 함께 대구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대구 중구 동성로에 있는 '스파크랜드' 관람차 풍경. 다양한 즐길거리로 시끌벅적하다. 박영민 수습기자지난달 24일 대구 중구 동성로에 새로 입점한 '무신사 스탠다드' 앞 쇼핑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박영민 수습기자대구 앞산 중턱에 위치한 '앞산공원 전망대'. 토끼동상과 함께 대구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평일 저녁 대구 남구 안지랑 곱창골목은 퇴근 후 곱창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늘 붐빈다. 김태강 수습기자
이날치·윤도현 밴드 등 출연…칠곡군민 화합·세계 평화기원 콘서트 15일 개막
이번 주말 '호국의 도시' 경북 칠곡의 가을밤이 인기 가수들의 아름다운 멜로디로 물든다. 경북도와 칠곡군이 주최하고,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이 주관하는 '2023 칠곡군민 화합 세계 평화기원 콘서트(칠곡 피스 뮤직 페스티벌)'가 오는 15일 오후 4시부터 밤 9시까지 석적읍 칠곡보 생태공원 평화의무대에서 열린다. 이날 콘서트는 '제10회 낙동강 세계평화 문화 대축전 & 제14회 낙동강지구 전투 전승행사'의 마지막 날 대미를 장식하는 폐막공연으로 진행된다. 가을밤 정취가 선명하게 느껴지는 칠곡보 생태공원 야외무대의 특성을 살려 관객 모두가 호응하면서 함께 즐기는 공연이 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간 전쟁 등 세계 안보 정세가 위협을 받고있는 가운데 6·25전쟁의 아픔을 이겨낸 호국의 도시 칠곡 군민이 다시 한번 화합해 세계 평화를 기원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또 코로나로 수년간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군민에게 힐링의 시간을 갖게하고, 예술성 높은 무대 공연을 즐기는 문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자리이다. 출연진 구성도 평화축전의 주제와 어울리도록 대중적인 인지도와 친밀도가 높은 뮤지션으로 선정했다. 이날치, 노브레인, 박정현, 다이나믹 듀오, 윤도현 밴드 등 국내 정상급 인기 가수들이 출동해 진한 감동을 선사할 계획이다. 콘서트 초반부는 이날치와 노브레인이 활력 넘치는 곡들로 무대 분위기를 달구고, 중반부에서는 박정현과 다이나믹 듀오가 출연해 칠곡의 가을밤과 잘 어울리는 감성적인 곡들로 분위기를 변화시킬 예정이다. 박정현은 'Someone like you' '꿈에', 다이나믹 듀오는 '죽일놈' '뱀' 등의 곡을 준비했다. 후반부는 윤도현 밴드가 '잊을게' '사랑했나봐' 등 히트곡을 열창하며 관객 모두가 화합하는 무대를 연출해 콘서트를 마무리한다. 콘서트가 끝나는 밤 9시부터는 낙동강 세계평화 문화 대축전의 여운을 느끼면서 내년 축제를 기약하는 불꽃쇼가 화려하게 펼쳐진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평화의 본고장 칠곡에서 세계 평화기원 콘서트를 즐기면서 군민을 비롯한 참가자 모두 화합과 평화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종진기자영남일보 스토리텔링연구원이 주관하는 '2023 칠곡군민 화합 세계 평화기원 콘서트' 포스터.
2023.10.11
[세계로 가는 청정관광1번지 산소카페 청송 .9] 아이스클라이밍 메카 '청송 얼음골'
콱 찍고, 싹 걸고, 휙 날고, 탁 미끄러지고, 쓱 떨어진다. 빙벽을 타고 오르는 이는 저이인데 두근두근 내 몸에 힘이 바짝 든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기도 한다. 마침내 빙벽의 정상에 다다르면 환호의 아쉬움과 함께 모든 긴장이 한순간 풀리지만 짜릿한 흥분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들은 빙벽을 '겨울 산의 꽃', 빙벽 등반을 '겨울 등반의 꽃'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얼어붙은 빙벽을 산이 써 내려간 한 편의 시(詩)라고 했다. 시를 음미하듯, 시를 쓰듯, 꽃을 탐하듯, 꽃을 피우듯, 빙벽을 오르는 일에는 서슬 퍼런 낭만이 있다.◆얼음골 아이스클라이밍 경기장 청송 주왕산의 남쪽, 영덕 바다로 향하는 산길을 달리면 비교적 느슨하던 산길이 내룡리를 지나면서 좁고 깊게 휘휘 돌아나간다. 그러다 갑자기 원을 그리듯 급하게 휘돌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거대한 암벽 하나가 길을 막아선다. 누구든 멈출 수밖에 없는 이곳은 청송 얼음골이다. 한여름 기온이 높아지면 얼음이 어는 기이한 골짜기, 얼음골은 청송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지질 명소이기도 하다. 길 막은 암벽은 높이 62m로 탕건봉이라 불린다. 모양새가 말총을 길게 줄 세워 뜬 탕건과 닮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1999년 5월 청송군은 탕건봉 수직 벽에 인공폭포를 설치했다. 이 폭포는 여름내 시원하게 쏟아지다가 겨울이면 거대한 빙폭이 된다. 그러면 모험과 스릴을 즐기려는 등반가들이 얼어붙은 폭포를 오르기 위해 이곳으로 몰려든다. 빙벽 등반이란 등반 장비를 갖추고 얼음벽을 오르는 행위다. 자신이 오르는 곳이 곧 길이 된다. 빙벽은 한번 얼어서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날씨에 따라 날마다 해마다 다르게 녹고 얼기 때문에 빙벽을 오르는 것은 항상 새로운 일이기도 하다. 탕건봉에서 약 500m 떨어진 골짜기에도 거대한 빙벽이 있고 그 앞에는 특수 제작된 국제 규모의 아이스클라이밍 전용 경기장이 아찔한 높이로 서 있다. 겨울이면 이곳에서 전국 아이스클라이밍 선수권대회와 아이스클라이밍 국가대표 선발전,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과 아시아선수권 대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산악부문 아이스클라이밍 경기 등이 열린다. 봄, 여름, 가을철에는 빙벽 등반 장비를 이용해 자연암벽과 인공 구조물을 혼합 등반하는 '드라이툴링' 대회도 개최하고 있다. 경기장 앞에는 지상 3층 규모의 청송 아이스클라이밍센터가 자리한다. 내부에는 운영본부 사무실, 사진 전시장과 프레스센터, 4-D체험장, 로커룸, 샤워장, 화장실, 농산물 홍보 및 판매장, 특산물 전시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실내외 관람석이 설치되어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관람 환경을 제공한다. 멋진 빙벽을 두고 왜 인공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 얼음은 기후나 환경으로 인한 제한이 많고 선수들의 출전 순서에 따라 상태가 달라진다. 빙질의 차이는 순위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동일한 루트에서 진행할 경우 공정한 평가가 불가능하다. 청송 얼음골에 조성된 아이스클라이밍 경기장과 부대시설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얼음골 탕건봉 62m 높이 암벽스릴 즐기는 겨울 등반가 성지인근 클라이밍 전용 경기장은아시아 지역 최초 월드컵 열려세계대회 기준으로 꼽히기도◆국제산악연맹이 인정한 세계 최고의 대회스포츠 경기로서 아이스클라이밍의 시작은 1912년 이탈리아 쿠르마이어 지방의 브렌바 빙하에서다. 이후 러시아, 프랑스,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다가 2000년 이탈리아의 코르티나 대회에서 국제적인 월드컵 경기로 발전, 2002년부터 국제산악연맹(UIAA)이 주관해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는 2009년부터 프랑스의 쿠르슈벨과 이탈리아 코르티나, 오스트리아의 피츠탈, 러시아의 키로프 등 유럽의 4개 지역을 순회하면서 매년 열리고 있으며 아시아지역에서는 2011년 대한민국 청송 얼음골에서 처음으로 열렸다.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은 세계랭킹에 올라있는 전 세계 유명 선수들이 참여하는 대회다. 2011년부터 5년간 청송 얼음골에서 매년 열린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는 세계인들의 관심과 이목을 끌었다. 이후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재유치가 확정되었고 다시 2025년까지 재연장되면서 청송군은 명실상부한 빙벽 등반의 성지이자 산악 스포츠 메카로 자리 잡게 됐다. 지난 '2020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의 대회장 자격으로 참석한 국제산악연맹(UIAA) 부회장 졸자르갈 반즈락크(Zoljargal Banzragch)는 인터뷰에서 "운영팀 조직이나 미디어 관리, 경기 진행 등의 수준이 매우 뛰어나다. UIAA는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을 전 세계 월드컵 대회의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2023 청송 UIAA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2023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지난 1월13일 금요일부터 15일 일요일까지 사흘간 열렸다. 현재 UIAA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은 국제산악연맹(UIAA)·아시아산악연맹(UAAA)·<사>대한산악연맹(KAF)이 공동 주최하고, 청송군과 경북도산악협회에서 공동 주관하며, 문화체육관광부·경북도·대한체육회·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서 후원하고 있다. 종별은 남자 일반부와 여자 일반부로 나뉘어 있고 종목으로는 아이스클라이밍 리드와 스피드 경기가 있다. 참가 자격은 매 시즌 UIAA 아이스클라이밍 라이선스를 취득한 만 16세 이상 각국의 남녀 선수들이다. 대회기간 중에는 청송꽃돌전시, 청송백자 전시, 관광 및 특산물 홍보와 청송사과 시식코너, AR기념사진촬영 이벤트 등 누구나 보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부대행사도 열린다.독특한 환경과 장비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먼저 인공 벽에 부착되어 있는 돌 모양의 장치는 '홀드'다. 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에서 예선전 홀드는 청색, 준결승에는 은색, 결승에는 금색 홀드를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다. 밧줄에 연결되어 늘어뜨려져 있는 클립 모양의 고리는 '퀵 드로우', 샌드백처럼 매달린 커다란 원통형의 얼음덩어리는 '아이스캔디'다. 선수들이 양손에 들고 있는 낫과 같은 장비는 아이스 클라이밍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스바일'이다. 신발은 바닥창이 구부러지지 않는 빙벽 등반 전용이어야 하며 신발에 부착하는 곰 발톱 같은 금속 장비는 미끄러짐을 방지하는 것으로 '크램폰'이라 부른다. 크램폰의 앞쪽 날을 사용해 벽을 찍으며 이동하는 '키킹', 한쪽 다리를 반대쪽 다리에 올려 4자 모양으로 교차시키고 한쪽 팔을 홀드처럼 이용하는 '피겨 포', 한쪽 다리를 같은 쪽 팔 위에 올려 숫자 9 모양을 만드는 '피겨 나인' 등의 동작을 알아두는 것도 좋다. 대회 종목인 '리드'는 '난이도' 종목이라고도 하며 정해진 루트를 주어진 시간 안에 등반하는 경기다. 안전 장치인 로프를 설치된 퀵 드로우에 끼워가면서 세팅된 홀드를 아이스바일을 이용해 타고 올라가 완등 지점까지 클라이밍 한다. 미끄러운 아이스캔디도 리드 종목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난 덩어리다. 한 번 떨어지면 다음 기회는 없다. '스피드' 종목은 말 그대로 육상처럼 스피드를 겨루는 경기다. 두 명의 선수가 똑같이 세팅된 두 개의 벽을 각각 타고 누가 더 빠른 시간 안에 완등하는가를 겨룬다. 등반 경기가 펼쳐지는 벽 뒤쪽에는 루트세팅 공간이 있다. 루트세터들은 선수들의 명단을 확인하고 루트 수를 결정한다. 선수들의 실력을 파악하고 있어야 공정한 루트를 만들 수 있다. 특히 특정인의 신체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루트를 만들지 않도록 홀드 간의 거리를 신중히 결정한다. 루트세터는 직접 등반을 하며 선수들의 안전과 적절한 경기를 위해 수차례에 걸쳐 홀드와 등반라인의 아주 미세한 부분까지도 검증을 거친다. 월드컵 경기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이 기량을 가리기 때문에 고난도의 루트가 주를 이룬다.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수가 경기 루트에서 흥미와 진지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등반자의 긴장감은 지켜보는 이들에게도 온전히 전해지기 때문에 선수와 관중들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도 루트세터들의 일이다. 이러한 조율능력은 루트세터가 가져야 할 중요한 역량이며 다년간의 경험과 감각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의 루트세터들은 한국만의 루트 스타일을 발전시켰고 이는 조금씩 유럽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경기 첫날인 13일에는 선수등록과 테크니컬 미팅·개회식이 있었고, 이튿날 남녀 리드 예선과 준결선에 이어 15일에는 종목별 결선과 시상식 등 순으로 진행됐다.결승에 진출한 선수가 한 명 한 명 소개될 때마다 관중석을 꽉 채운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선수의 등반이 시작되면 이내 경기장의 관중들도 몰입하여 선수의 한 동작 한 동작마다 호흡을 함께한다. 마지막 선수가 등반을 이어가면 경기장의 열기는 절정의 끝에 다다른다. 그는 톱 홀드에 아이스바일을 거는 순간 허공을 가르며 떨어진다. 탄성과 환호와 축하의 박수가 터진다. 2024년 겨울 산에 꽃 피는 날이 머지않았다.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청송 아이스클라이밍 경기장에서 'UIAA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에 참가한 외국인 선수가 아이스바일을 이용해 등반하고 있다. 청송은 2011년부터 매년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 대회를 열고 있는 세계 빙벽 등반의 성지이자 산악 스포츠 메카다. 〈영남일보DB〉청송 아이스클라이밍 전용 경기장의 모습. 〈청송군 제공〉
[지붕 없는 마을 박물관 해외 사례] 지역 전체 박물관화…日 아사히마을 주민 대부분 학예사 능력 갖춰 활동도
◆일본 아사히마치 박물관일본 야마가타현 니시무라야마군에 위치한 아사히마치 에코뮤지엄(https://asahimachi-kanko.jp/detail/?no=10777)은 지자체에서 1991년 마을 장기발전계획의 하나로 에코 뮤지엄 개념을 도입했다. 2000년 아사히마을 에코뮤지엄이 공식 출범했고 활동가들과 주민들이 지역문화, 자연환경, 문화 등에 대해 스스로 자긍심을 갖고 삶을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를 구축했다. 지역 전체를 지붕 없는 박물관화 하고 주민 대부분이 학예사 능력을 갖도록 했다. 2004년 6월에 오픈한 창유관(創遊館)은 지역 17개 에코뮤지엄의 중심시설로 도서실, 문화센터, 회의실 등의 시설이 있다. 17개 에코뮤지엄은 사과농원, 공기사원(신사), 숙박시설, 포도와인공장인 와인성 등이다. 운영은 지자체에서 관리한다. ◆프랑스 브레스 부르기뇽 박물관프랑스에서 시작된 에코뮤지엄은 프랑스의 역사, 즉 전통에 대한 애착심, 농촌과 농산물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 등의 가치관과 맞물려 있다. 대표적인 것이 브레스 부르기뇽 박물관(http://www.ecomusee-bresse71.fr/)이다.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프랑슈 콩테 지역의 피에르 드 브레스 (Pierre de Bresse)의 도성을 중심으로 설립됐다. 브레스 부르기뇽 지역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연구·보존하고 관광 자원화하자는 목적이었다. 지역의 건축물, 유물, 유적,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 등을 수집하고 알리면서 지역정체성을 이해하고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거점 박물관 1곳, 위성박물관 5곳에 방앗간, 기와공장, 기름판매소, 대장간 등을 연결해 관광루트로 개발했다.◆영국 플로든 1513 박물관1513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접경지에서 일어난 플로든전투를 테마로 한 전쟁유산형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2013년 플로든전투 500주년 기념으로 '플로든 1513 에코뮤지엄'(https://www.flodden1513ecomuseum.org/)을 만들었다. 건립을 위해 뉴캐슬대학의 국제 문화유산연구센터와 협력해 이해관계자 리스트 작성 후 '플로든 500 운영위원회'를 결성하고 여러 이벤트를 통해 지역사회 참여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운영위원회에서 주민들에게 자신만의 '플로든 프로젝트'를 추진하도록 지원한 결과 2011년까지 90개의 프로젝트가 정리됐다.현재 플로든 전투와 관련된 장소, 기념물 등을 관리하고 있다. 영국 전통 유산 복권 펀드 약 88만파운드를 모금해 고고학, 문서 연구, 교육 프로젝트, 전시, 기념행사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LEADER와 헤리티지 로터리 펀드의 재정지원을 받고 있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프랑스 브레스 부르기뇽 에코뮤지엄 시설 중 하나인 빵의 집에 어린이들이 견학을 하고 있다.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1〉 지속가능한 마을 생태계 구축
마을이 사라지고 있다. 농촌마을에는 폐가가 늘고 있으며 마을 전체가 아무도 살지 않는 유령마을도 많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경북의 자연마을은 2015년 9천210개였으나 불과 5년 뒤인 2020년에는 7천446개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재 경북의 마을은 고령화, 빈 공간화 촉진, 빈곤화가 지속돼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마을의 소멸은 중장년 세대에게는 삶의 추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소중한 유무형 문화자원을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경북의 마을은 저마다의 소중한 추억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수천 년 이상 우리 민족의 삶의 터전으로 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마을의 가치를 다시 재조명하고 우리 삶 속으로 끌어올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영남일보는 대구경북학회와 함께 마을의 가치를 재조명해보는 '경북의 마을-지붕 없는 박물관' 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기획취재는 지면반영과 함께 마을의 전경을 담을 동영상을 함께 제작해 외국어로 번역해 유튜브에 업로드할 예정이다.저마다 소중한 추억·역사 간직한 마을방치해두면 어느 순간 사라질지 몰라자발적 커뮤니티 형성·주민 교육 필수마을상품 기획 등 콘텐츠 개발 힘써야◆마을의 가치마을은 인위적인 도시공간과는 다른 가치를 지닌다. 초기 대부분의 마을은 지형을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마을은 유무형 자원의 보고로 마을전체가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높은 곳이 많다. 산업화 이전까지 삶의 주된 터전으로서의 기능에 충실했다면 이제는 마을을 새롭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마을이 본래의 기능, 원초적 역할은 다했다고 할지라도 보존하고 가치를 복원해야 할 마을들도 많다. 주마간산식으로 지나치면 이 마을, 저 마을이 같아 보이지만 마을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가치는 다 다르다.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스토리텔링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마을이다. 마을이 해가 갈수록 무서운 기세로 사라져가고 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 아직은 더 많다. 비록 젊은이들이 많이 떠났지만 건전한 커뮤니티가 형성돼 아직도 마을을 가꾸고 있는 주민들이 많으며, 삶의 터전으로서 소중한 마을이 많다.경북의 마을은 역사문화를 통한 자기실현, 자연환경에 대한 경외, 인간 삶의 존중, 산업 및 전쟁의 다이내믹한 문화 등 문화자본으로서의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 마을 붕괴, 지역소멸의 위기 상황에서 삶의 거주공간이자 자연생태역사문화의 현장인 마을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지속 가능한 마을을 위한 정책적 판단이 필요한 시기인 것이다. ◆관광자원화 가능한가하지만 이런 마을들도 그냥 방치해 두면 어느 순간 사라질지 모른다. 인구감소와 산업화·도시화로 순환구조(생태계)가 무너져 지속 가능한 마을은 손에 꼽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경북의 마을은 역사문화, 생활문화, 자연친화성, 문화재 등 관광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관광자원으로서 마을의 가치를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들이다.전 세계 관광트렌드 또한 바뀌고 있다. 세계 유명 대형 박물관 중심 관광이 숙지고 지역주민의 삶과 문화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일상공간에 대한 여행 수요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관광지 단순 방문과 관람보다 기억에 남는 경험과 체험, 참가 등 여행지에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체험형 관광이 새로운 관광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깊은 산골짜기와 유유히 흐르는 강과 계곡을 배경으로 형성된 경북의 마을은 빼어난 자연 경관과 다양한 마을 유산들로 가득 채워진 문화 집합체로서 최고의 관광지이자 문화뮤지엄이라 할 수 있다. 마을 그 자체가 박물관인 것이다.◆전통 박물관전통적인 박물관은 가치가 높은 유산을 그 현장에서 분리해 박물관에 소장한다. 박물관 건물 안에 유물 중심의 보존과 전시가 큰 역할을 한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박물관 유물을 전문가의 관점에서 공개하고 전시하는 공적 기능을 하는 것이 전통박물관의 모습이다. 이 같은 박물관과 미술관은 아직도 그 역할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부유층의 전유물이다. 개인 컬렉션 등을 통해 일부 부유층에만 공개되는 등 권위적이며, 주로 도시에 사는 엘리트를 위한 공간으로 인식된다.이들 박물관은 18세기 말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면서 공공박물관이 탄생한다. 초창기 공공박물관은 계몽과 교육이 주요 목적이었고 제국주의를 거치며 국가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역할을 하고 있다.◆에코 뮤지엄(Eco Museum)에코뮤지엄은 1973년 조르주 앙리 리비에르(Georges Henri Riviere)가 프랑스의 지역 상황과 지역 주민의 삶에 지역 민속학을 접목해 인간, 자연, 지역유산을 박물관의 범주로 만든 개념이다. 생태를 의미하는 에콜로지(ecology)의 접두사 에코(eco)와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로 탄생했다. 지역재생운동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중핵 자원인 거점 박물관, 분포된 유산의 거점 공간인 위성박물관, 지역의 자원과 유산을 발견하는 탐방로 등이 조성돼, 지역의 건축물과 역사문화유산, 자연경관, 주민의 경험과 기억, 네트워크 등 유·무형의 유산을 내외부인을 대상으로 전시했다.지역 주민들의 주도적인 참여로 지역 유산의 수집, 보존, 조사, 연구, 기획, 실행하는 보존 기관으로써 연구소,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어 한 지역주민이 지역전문가로서 역량을 축적하는 유의미한 박물관이기도 하다.◆지역 공동체박물관공동체박물관(Community Museum)은 지역의 낙후된 건축물의 재생과 기존 박물관의 문턱을 낮춘 신개념 박물관이다. 생활환경 개선을 넘어 문화, 복지, 교육 등의 변화 및 지역주민의 참여를 통한 지속 가능한 공동체 조성을 중요시하며 주민의 자생적 경쟁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지역의 고유성을 존중하고 지역 주민의 삶을 바탕으로 하며, 마을의 유휴공간을 활용해 전시, 체험 등이 이루어진다. 지역 주민의 삶과 의견, 이를 반영하고 제작하는 문화기획자와 예술가 등의 협업으로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자 지역의 다목적 커뮤니티 공간으로 급부상했다. 1967년 설립된 미국 아나코스티아 커뮤니티뮤지엄(Anacostia Community Museum)이 대표적이다. 당시 마을 내 오래된 극장을 개조하여 전시시설로 활용했다. 지역 내 공동체의 다층적 의미와 공동체박물관의 역할 변화, 지역사회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등 지역의 문화유산과 지역 이슈를 다루는 박물관으로 성장했다.◆지붕 없는 마을박물관정부나 지자체에서 박물관 건물을 짓고 공무원을 파견해 관리하는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전혀 다른 주민주도 박물관이 지붕 없는 마을박물관의 특징이다. 지붕 없는 마을박물관은 마을과 박물관의 융복합적 모델이다. 에코뮤지엄의 핵심 기능인 지역 유산(Heritage), 주민 참여(Participation), 박물관 활동(Museum) 등의 3요소를 확대·진화한 것으로 지속 가능한 마을 발전을 지향한다. 에코뮤지엄(Eco Museum)과 공동체박물관(Community Museum) 기능에 지역주민의 자발적 커뮤니티 기능을 중요시하는 한국형 박물관 모델이라 할만하다. 지붕 없는 마을 박물관은 마을의 자연환경, 경관, 사이트, 문화재, 문화유산, 문화 공간, 생태 공간, 생활공간, 마을산업(상업) 및 특산품, 적정기술(음식, 농업, 어업 등), 역사적 공간, 지역공동체 등 유·무형의 유산(Village Heritage)을 현지 보존한다.또 마을 이해를 시작으로 정체성 확립과 마을의 고유한 유산에 대한 역사성, 자긍심 고취 등 주민 스스로 지역 공동체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Resident Participation)하도록 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을 주민이 박물관 활동의 중심이 되어 유산의 현지 보존 및 관리, 박물관 콘텐츠를 기획하도록 했다.마을 관광(Village Tourism)도 주민 주도하의 관광 활성화 기획 및 공유 경제 실현으로 지속 가능한 마을 생태계를 구축하자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서 마을의 자발적 커뮤니티 형성은 필수적이다. 마을 주민, 지역 학생, 참여자 등을 대상으로 마을박물관 학교(교육)를 운영해 마을박물관 주민 학예사 양성 교육, 자료 인덱스 교육, 카페(셰프) 교육, 마을 상품 기획 및 경제 교육 등을 추진하도록 했다.박승희(영남대 교수) 대구경북학회 회장은 "지붕 없는 마을 박물관은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 되는 공간적 전환과 더불어 대중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마을을 지향한다"면서 "마을 주민이 주체가 돼 마을유산을 보존하고 지역사회의 발전과 관광, 교육 등을 함께 도모함으로써 마을의 대중화를 실현하는 지속 가능한 마을박물관으로의 위상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경북의 마을 가운데는 보존해야 할 유무형 유산과 빼어난 자연환경을 가진 곳이 많다. 소중한 추억과 역사를 가진 마을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속가능한 생태계 구축을 위해 지붕 없는 박물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포항시 장기읍성에서 바라본 농촌마을 전경.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Ⅱ 대구경북 생존보고서] 워케이션 경험해 보니…부산 '더휴일×데스커 워케이션 센터'
지난 5일 오후 부산 영도구에 위치한 '더휴일×데스커 워케이션 센터'를 찾았다. 여러 가지 종류의 테이블 중 바다를 향해 있는 개인용 책상에 짐을 풀고 노트북을 꺼냈다.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다 책상 앞 통유리창으로 고개를 들자 반짝이는 바닷물이 넘실대는 항구와 줄지어 정박된 선박들이 두 눈에 꽉 차게 담겼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서 '물멍'(물을 보며 멍하니 있는 것)하기 안성맞춤이었다. 바다를 감싸는 육지에 들어선 고층 빌딩들과 대교가 병풍처럼 펼쳐졌다. 대도시이면서 바다를 끼고 있는 부산에서 경험하는 이색적인 풍경이다.'물멍' 가능 공유오피스 제공자연+도심 인프라 함께 즐겨평소보다 집중이 잘 된다고 느껴진 건 '기분 탓'만은 아니었다. 일상에서 벗어나 마주한 색다른 환경이 매일 하던 업무마저 설레게 했다. 일의 능률도 올랐다. 커피를 들고 사무실 앞 바닷길을 따라 산책하는 것도 피로감을 풀고 머리를 맑게 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다. 사무실 책상 배열과 창문 밖 풍경, '부장님' 등 주변 인물들은 바뀌었지만, 사무 및 회의에 필요한 기기와 비품은 기존 사무실과 다름없이 제공됐다. 원격 소통을 위한 화상회의 등을 할 수 있도록 1인용 부스도 마련돼 있었다. IT업계 종사자 홍모(31·서울)씨는 "회사 공지를 보고 일행 3명과 함께 3일간 체험하러 왔다"며 "일을 하면서도 휴가를 보내는 듯한 기분이다. 즐겁다"고 활짝 웃었다. 더휴일×데스커 워케이션 센터의 일 평균 이용자는 15명 정도다. 올해 1월 개소할 때는 주로 IT기업이나 스타트업 종사자들이 이용했지만, 점점 다양한 업종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센터의 김대섭 매니저는 이용객들이 '지역과의 관계'를 만들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한 추억을 만들면서 지역에 대한 애착이 생기면 부산으로의 생활인구 유입이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매니저는 "관광지도 주중에는 방문객 수가 현저히 적다"며 "워케이션은 '주중 비수기'를 메우고 지역 소비가 일어나게 한다.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지역 소비 활성화에 워케이션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센터 이용객들은 점심 식사와 커피를 영도구에서 하고, 퇴근 후에는 인근 남포동부터 해운대·광안리 등 유명 관광지를 찾는다. 대구와 가까운 부산은 소멸위기 지역을 워케이션 공간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받는 지자체인 동구, 중구, 서구, 영도구, 금정구에서 워케이션 지형을 넓혀 나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Ⅱ 대구경북 생존보고서] 워케이션 경험해 보니…제주 세화리 '질그랭이 거점센터'
제주도는 워케이션 대표지역이다. 특히 제주 동쪽 해변 마을에 위치한 질그랭이거점센터(제주시 구좌읍 세화리)는 '워케이션의 성지'로 불린다. 질그랭이거점센터는 2020년 문을 열었다. 당초 피로연장, 예식장 등으로 운영하기 위해 '세화리 종합복지타운'으로 2008년 만들어졌지만 청년들의 결혼이 적은 탓에 제대로 운영이 안 됐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에 선정, 리모델링을 거쳐 거점센터로 거듭나게 됐다.올해 대상·현대 1천여명 예약마을 상권활성화 등 긍정 변화질그랭이거점센터 1층에는 세화리사무소와 여행자센터, 2층에는 카페 477+, 3층은 공유오피스, 4층은 숙박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3층에 있는 공유오피스가 워케이션의 핵심 공간이다. 지난해에만 600여 명이 다녀갔다. 올해는 이미 1천명이 예약해 마감된 상황이다. 대상웰라이프, 현대중공업 등의 기업 직원들이 찾고 있다. 이용객들은 평균 4박 5일 정도 머물면서 워케이션을 경험한다.다른 워케이션 지역에 비해 질그랭이거점센터가 눈에 띄는 건 이용객에게 마을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질그랭이거점센터는 2019년에 결성된 '세화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한다. 워케이션 참가자들은 마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해녀투어, 노르딕워킹, 다랑쉬웰니스투어 등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또 '세화 웰컴킷트' '맛집 엽서' '슬리퍼존 지도' 등을 통해 마을을 즐길 수 있게 했다.질그랭이거점센터 활성화는 세화리 마을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고 있다. '상권 활성화'가 대표적이다. 월요일마다 진행하는 '네트워킹 식사자리' 프로그램으로 가게마다 월 정산 금액이 200여만 원 가까이 발생하고 있다. 맛집 엽서 관련 가게들을 방문하는 이용객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인구 증가'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2012년 1천960명이던 세화리 인구는 지난해 2천258명으로 10년 사이 15.2% 증가했다. 전국 대부분 농어촌 마을 주민 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Ⅱ 대구경북 생존보고서] '생활인구'로 지방소멸 위기 넘는다…'워케이션' 활성화 박차
새 피가 돌아야 몸이 건강해지듯 새로운 인구가 들어와야 마을에 활력이 생긴다. 영남일보는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2부를 시작한다. '대구경북 생존보고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대구경북이 소멸 위기를 딛고 활력 넘치는 공동체를 만드는 방안을 모색한다. 전문가들의 진단을 토대로 대구경북이 나아가야 할 길을 찾고자 한다. 생활인구 개념과 워케이션 전략을 소개하고 새 인구 유입을 위한 산업 및 청년 정책, 도시 브랜드 전략을 논의할 예정이다. 오는 11월 말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를 주제로 세미나도 열 계획이다.대한민국의 인구는 2019년 11월부터 45개월째 내리 자연 감소하고 있다. 대구경북(TK) 역시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은 자연 감소 지역이다. 인구 절벽 위기를 맞아 '새로운 인구 개념'이 등장했다. 기존 주민등록상의 인구가 아니더라도 지역에 장시간 체류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까지 지역 인구로 보는 '생활인구'가 도입을 앞두고 있다. 한정된 인구를 놓고 지역 간 인구 유치 경쟁이 사실상 시작된 상황에서, 지역의 활력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인구감소지역 통근·통학하면생활인구로 집계…올 7곳 시범하루 3시간 월 1회 이상 요건에'워케이션' 통한 인구유입 전략경북 등 9개 지자체 사업 경쟁◆이동성·실생활 반영한 생활인구현행 등록인구는 인구의 단기간 이동성을 반영할 수 없는 만큼 효과적인 인구 정책이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경산에 자택이 있지만 대구시에 위치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경우 광역자치단체가 달라 경제인구에 대한 집계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장단기 파견 근무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등록 주소지는 서울이지만 주거는 물론 식료품 구매 등 핵심 경제생활은 대구에서 할 경우, 현행 등록인구 제도에서는 실제 행정 수요를 반영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사정으로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인구감소지역지원특별법을 통해 생활인구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생활인구는 주민등록인구 및 외국인등록인구 외에 지역에 체류하는 인구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교통·통신이 발달함에 따라 이동성과 활동성이 늘어난 생활유형을 반영하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통신사와 협업을 통해 생활 인구를 분석하기도 했다. 휴대전화 통신 신호 정보를 분석한 결과 2017년 기준 서울에서 생활하는 인구가 서울시 주민으로 등록된 인구보다 138만명가량 많은 1천151만명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주민등록상 서울 인구는 2010년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지만 생활인구는 계속 증가 추세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법령을 통해 정한 생활인구 요건은 기존 주민등록법에 등록된 사람에다 2가지가 더 포함된다. 통근·통학·관광 등의 목적으로 주민등록지 외 지역을 방문해 하루 3시간 이상 머무는 횟수가 월 1회 이상인 사람, 외국인의 경우 외국인등록을 하거나 국내거소신고를 한 사람도 해당 지역의 생활인구로 집계되도록 했다. 산정 주기는 월 단위이며 성별, 연령대별, 체류일수별, 내·외국인별 생활인구 등이 집계될 전망이다. 다만 모든 지역을 집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에 따라 지정된 인구감소지역으로 한정된다. 올해 영천을 포함해 인구감소지역(7개)을 대상으로 생활인구를 시범적으로 산정해 진행되고 있으며 연말 공개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전체 인구감소지역(89개)으로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행정안전부 측은 "국가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생활인구는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생활인구 확대에 '워케이션' 경쟁행안부는 생활인구 늘리기 위한 시범 사업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워케이션(Workation)을 비롯해 두 지역 살아보기, 로컬유학 생활인프라 조성, 은퇴자 공동체마을 조성, 청년복합공간 조성 등이다. 학계 및 지자체에서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워케이션의 활성화다. 우리나라보다 인구 소멸이 먼저 시작된 일본은 정주인구 유입정책의 한계를 '관계인구' 전략을 통해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러한 전략의 일종으로 워케이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합친 신조어로 일과 관광 모두를 병행할 수 있는 새로운 근무방식을 뜻한다. 최근에는 휴가지에서의 근무라는 개념으로 국내 일부 대기업 및 IT 기업들 위주로 시행되고 있다. 제주도 등에서 유행한 '한 달 살기'도 워케이션의 한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는 프리랜서 또는 재택·원격근무가 가능한 직종에서 할 수 있는 근무 방식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활성화만 된다면 생활인구 증대는 물론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평가다. 일본의 경우 워케이션 장소를 지역 내 빈 건물이나 사무실 등 유휴공간을 재생시켜 활용하고 있다. 호텔이나 리조트 등 같은 숙박 인프라가 부족할 경우 지자체의 빈집 개선을 통한 활용 등 다양한 사업으로의 확대가 가능한 게 특징이다. 또 외부인들이 장기간 워케이션 장소에 머물게 됨으로써 지역과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생활인구 확대 및 향후 '인구 유치'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정부도 워케이션 활성화를 위해 비용을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워케이션에 대한 지자체의 유치 경쟁도 시작된 상황이다. 17개 시·도 중 경북을 포함한 9개 지자체가 관련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한국문화관광연구원 김성윤 부연구위원은 "지금은 워케이션이 1주일 정도 기업에서 '복지'나 '출장'의 차원으로 인식되지만 업무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는다면 지역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워케이션(worcation)은 단순 원격근무를 넘어 일과 관광 모두를 병행할 수 있는 새로운 근무형태로 지역 활성화 방안, 특히 생활인구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Ⅱ 대구경북 생존보고서] 농촌풍경 보며 '일쉼동체'…수도권 사무직 '경북스테이' 각광
워케이션을 활용한 '생활인구' 확보를 위해 경북도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올 초 경북도는 '2023 인구대반전 프로젝트 추진 계획'과 함께 대도시 주민들의 지역 체류를 장려하는 경북 스테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제2 생활 거점에 경북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도록 '1시·군-1생활인구' 특화 방안을 필두로 경북형 작은 정원(클라인가르텐), 두 지역 살기 기반 조성을 순차적으로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경북도가 경북문화관광공사와 함께 올해 처음 선보인 '경북형 워케이션'은 수도권 사무직군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한적한 농촌에서 업무와 휴가를 동시에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평가다.경주에서 경북형 워케이션 상품을 운영 중인 권유진 디어멘데이 대표는 "서울이나 판교에서 활동하는 IT 업계 종사자분들이 주로 2박3일, 많게는 6박7일까지 머물다 간다"라며 "관광이나 외식 비중이 상당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경북도는 의성과 경주, 포항, 문경을 중심으로 13개의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농촌에선 논·밭뷰(view) 워케이션을, 해안가에선 바다를 활용한 자연 속 공유오피스와 숙박시설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올해 첫선을 보인 경북형 워케이션 상품은 출시 3개월 만에 전체 판매의 60% 이상 이뤄졌다.경북도는 현재 경북형 워케이션 상품 온라인 기획전, 사업 설명회, 기업 인사담당자 대상 팸투어 등을 기획하며 생활 인구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주석기자 farbrother@yeongnam.com경북 문경에 위치한 경북형 워케이션 공유오피스 화수헌.
[경산 뉴 파노라마 .8] 뛰어난 정주 여건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던 경산에 대규모 주거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대부터다. 1992년 옥산1지구(51만㎡)를 필두로 옥산2지구(1993년·33만㎡), 임당지구(1998년·42만㎡), 사동1지구(2000년·60만㎡), 사동2지구(2008년·93만㎡), 신대·부적지구(2009년·45만㎡), 하양지구(2019년·48만㎡) 등이 잇따라 들어섰다. 대규모 주거지역 개발로 경산시 인구는 꾸준히 늘어 2018년 26만명을 돌파했다. 경북에서 셋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급성장한 것이다. 경산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살기 좋은 도시'를 꿈꾸고 있다. '경산 뉴 파노라마' 8편에서는 갈수록 개선되고 있는 경산의 정주여건에 대해 소개한다.◆쾌적한 환경을 갖춘 주택지구들대구도시철도 2호선 사월역 3번 출구를 나와 동쪽으로 300m만 걸어가면 오른편에 신도시가 나온다. 전체 면적이 축구장 11개 정도(24만여 평)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다. 높게 솟은 고층 아파트 사이로 병원과 식당, 대형마트 등 각종 편의시설을 비롯해 공원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깔끔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춘 전형적인 신도시, '중산제1지구'의 모습이다.중산제1지구는 큰 저수지인 중산지를 가운데 두고 원형으로 조성 중에 있다. 중산지 주변은 근린공원으로 꾸며져 있고, 성암산(해발 472.3m) 자락에 위치해 매우 친환경적인 공간이다. 대형마트와 인접해 있고 소방서와 초등학교도 품고 있다. 앞으로 공공도서관과 학교들이 잇따라 들어설 예정이다. 중산제1지구는 전체 면적 중 주거용지는 2.29%에 불과하다. 준주거용지(26.19%)를 합쳐도 30%가 안 된다. 나머지 45.93%는 공원과 녹지, 광장, 주차장, 학교, 공공청사, 공공업무시설 등 공공시설용지다. 이 외에 문화 및 집회시설(0.80%)과 사회복지시설(1.31%)도 기타시설용지로 들어간다.위치적 조건도 뛰어나다. 서쪽에는 대구 사월지구, 동쪽으로는 경산 정평·중산지구와 경산 옥산2지구, 남쪽으로는 경산 옥산1지구가 인접해 있다. 즉 대구와 경산을 잇는 주거밀집지역의 중심지다. 그만큼 교통 편의성과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사월역, 정평역과 인접해 있고 남서쪽으로는 신대구부산 고속도로, 동쪽으로는 경부선 철도가 지난다. 교육, 환경, 교통, 시설 등 수준 높은 생활을 위한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셈이다.중산제1지구 계획인구 2만1천여명공원·병원·학교·대형마트 들어서경산대임공공주택지구도 조성 추진2025년 완공되면 1만124가구 입주교통인프라 확충 등 정주여건 개선도시철 연결·종축고속화도로 추진경산 중산동 일원에 시가지조성사업으로 조성되고 있는 중산제1지구 사업은 전체 면적 80만5천759.4㎡, 총사업비 7천282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도시 개발 프로젝트다. 장래 계획인구만 2만1천342명(9천279가구), 경산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수준이다. 중산제1지구는 1999년 12월 시가지조성사업 상세계획구역으로 결정되며 사업이 추진됐다. 이듬해 1월 시가지조성사업 상세계획이 마련됐고, 2005년 10월부터 순차적으로 공사가 하나둘 마무리되고 있다. 1단계 사업에 이어 2-Ⅰ단계, 2-Ⅱ 단계 사업도 각각 2017년, 2021년에 완공된 것. 마지막으로 남은 2-Ⅲ 단계 사업은 2028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 중이다.경산의 대규모 주택지구 사업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임당역 북쪽 경산 대평동과 임당동 일원에 '경산대임 공공주택지구'를 조성 중에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전체 면적은 167만3천141㎡로 중산제1지구의 두 배에 달한다. 완공되면 1만124가구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갖게 된다. 경산대임 공공주택지구 개발 사업은 2025년 12월 마무리될 예정이다.◆경산시의 다양한 정주여건 개선 노력지난해 7월 취임한 조현일 경산시장은 5대 시정 목표 중 '살고 싶은 도시환경'을 첫째로 내세울 만큼 정주여건 개선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관련 공약만 22가지다.그 가운데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은 교통 인프라 확대다. 실제 경산시는 '경산전철시대 조성'과 '종축고속화도로 건설'을 5대 핵심과제로 선정했다. 전철시대 조성은 대구도시철도 1, 2호선을 진량으로 연장해 두 노선을 순환선으로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다. 더불어 대구도시철도 3호선 경산 연장도 포함돼 있다.대구와 경산은 경제·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하나의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다. 대구도시철도 연결은 이를 더욱 가속화했다. 대구도시철도는 1998년 5월 1호선(진천~안심·24.9㎞), 20015년 10월 2호선(문양~사월·28.0㎞), 2015년 4월 3호선(칠곡경대병원~용지·23.95㎞)이 완전 개통됐다.대구도시철도가 경산까지 연장된 것은 2012년 9월이다. 2호선 경산 연장구간(사월~영남대·3.3㎞)이 개통되며 대구도시철도는 경산까지 운행에 돌입했다. 2호선에 이어 1호선도 경산 연장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내년 12월 말이면 안심~하양 구간이 정식으로 개통된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 안심~하양 연장은 안심역에서 경산 하양읍 하양역까지 8.89㎞를 잇는 사업이다. 전체 구간 중 0.7㎞를 제외하고는 모두 지상으로 건설된다. 정거장은 대구 동구 사복동, 하양읍 부호리, 하양읍 금락리 등 3곳에 들어설 예정이다.사업이 완료되면 안심에서 하양까지 10분 이내에 접근이 가능해진다. 경일대, 대구가톨릭대, 대구대, 호산대 등에 다니는 학생들과 진량산단 등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교통 편의성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종축고속화도로 건설은 쉽게 말해 경산을 남북으로 잇는 도로망을 만드는 것이다. 경산시는 이 사업을 통해 △청통와촌IC 연결도로 △경산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 △국도 대체도로(남산~하양) △국도 대체도로(남천~남산) △남천 하이패스IC를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해 지역 핵심 교통망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지역 내 이동 편의성을 높이고, 물류산업 경쟁력도 한층 향상시킬 수 있다.이외에도 주민들의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방안도 다채롭다. 대표적인 것이 남천 자연생태하천 조성과 경산향교 주변 도시숲 조성, 주민참여 도시재생사업 추진 등이다. 경산하수처리장 고농도 악취방지시설 구축, 탄소중립·친환경버스 도입, 음식물류 폐기물 감량기 설치, 가축 분뇨 배출 제로화 시스템 구축 등은 친환경적인 주거환경을 위한 정책이다.경산시는 또 반려동물 인구 1천만명 시대를 맞아 대구대 안에 유기동물을 보호할 수 있는 행복동물복지 치유센터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장동훈 경산시 도로철도과장은 "대구도시철도 2호선에 이어 1호선까지 경산 연장이 이뤄지면 주민들의 교통 편의가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외에도 경산의 숙원사업인 대구도시철도 추가 연장과 종축 고속화도로 건설 등도 조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추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 기자 zone5@yeongnam.com경산 중산 제1근린공원 너머로 고층 아파트가 늘어선 '중산제1지구' 모습이 보인다. 대구와 경산을 잇는 주거밀집 지역의 중심지에 위치한 중산제1지구는 깔끔하고 쾌적한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다.중산제1지구에는 병원, 학원, 음식점 등 상업시설도 잘 갖춰져 있다.중산제1지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조성된 수생 비오톱(생태 정원).경산 중산 제2근린공원 내 거울연못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2023.10.10
[노벨문학상 산책]- 베르그손 '창조적 진화'
철학자가 노벨문학상을 받기란 매우 드문 일이고, 그마저도 1964년 수상을 거부한 장폴 사르트르가 마지막이었다.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중 철학자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은 루돌프 크리스토프 오이켄(1908년 수상), 버트런드 러셀(1950년 수상), 앞서 말한 사르트르, 그리고 우리가 오늘 이야기할 앙리 베르그손(1927년 수상), 단 네 사람뿐이다.그런데 철학자가 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리 영예로운 일이 아닐 수 있다. 철학자는 엄밀한 논리와 보편적 개념 체계로 현실 세계를 해명하는 반면, 예술가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허구의 세계를 창조한다. 그러니 문학상을 받은 철학자란 한눈파는 철학자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노벨문학상을 받은 네 철학자 중에서 특히 베르그손은 철학과 예술이라는 상반된 인간의 정신 활동을 무리 없이 융합했다. 노벨문학상 위원회는 그에게 상을 수여하는 이유로 베르그손의 "풍부하고 생생한 생각들, 그리고 이 생각들을 표현하는 뛰어난 솜씨"를 들었다. 이 함축적인 평가에 따르면, 베르그손은 철학자로서 풍부하고 생생한 생각들을 품었을 뿐 아니라 이 생각들을 언어적으로 표현해내는 데에도 탁월했다.사실 베르그손의 철학에서 이 두 가지, 곧 생각과 언어적 표현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1859년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자 출신의 음악가 아버지와 영국계 유대인 출신의 어머니가 이룬 가정에서 출생한 베르그손은 프랑스 파리의 엘리트 교육 코스를 밟으면서 성장한다. 그는 과학적 재능이 뛰어났음에도 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서, 인문계 최상위 대학인 고등사범대학 졸업 후 클레르몽페랑의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첫 번째 저작이 될 박사학위논문을 작성한다. 1889년 출간된 이 논문에는 '의식의 직접 소여들에 관한 시론'이라는 다소 길고 학술적인 제목이 붙었다. 이 제목은, 훗날 영어 번역본을 출간하면서 작품의 주제 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시간과 자유의지'라는 제목으로 바뀌게 된다.이 책의 중심 주장은, 무수한 감정과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서로 뒤엉키며 이어지는 우리 마음의 내적 흐름이야말로 진정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획일적으로 모두에게 똑같은 속도로 흐르는 시계의 시간은 인위적 약속의 산물에 불과하다. 베르그손은 각자가 경험한 과거의 체험들이 현재의 경험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과거와 현재가 각자의 삶 속에서 얼마나 분리될 수 없게 연속되어 있는지를 정묘하게 서술한다. 이 저작에서 독자는 고통의 감각에서부터 깊은 사랑의 감정에 이르는 다양한 의식 상태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접하게 된다. 베르그손이 '지속'이라고 일컫는 진정한 시간 개념은 바로 우리 인간의 의식적 경험에 대한 거의 예술가적인 묘사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고 전달 가능한 것이다. 마치 소설가가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몇 개의 낱말들을 통해서 인물의 감정을 독자 스스로 경험하도록 유도하듯이 말이다. 베르그손의 새로운 철학적 관념들은 그에 부응하는 새로운 언어적 표현 방식에 의해서만 드러낼 수 있는 것이었다. 베르그손은 철학이 과학과 같은 엄밀한 방법을 따르며 실증적인 경험 증거들에 근거해 진보하는 학문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못지않게 철학은 예술과 같이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구체적인 경험을 최대한 언어 안에 담아내는 창조성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학적 사유로 포착한 세계의 규칙성과 엄밀성을 배경으로 할 때 그러한 과학적 사유를 벗어나는 섬세한 정신과 생명의 차원이 어렴풋이 전경에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베르그손의 철학은 과학의 틀을 빠져나가는 정신과 생명의 모습을 독창적인 예술적 감수성으로 감지하고 그려낸다. 그는 20세기에 과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철학 모델을 창안한 것이다.이러한 철학관이 가장 높은 완성도에 이른 저작이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인 1907년작 '창조적 진화'다. 이 책의 제목 자체가 이미 이 책이 제기하는 철학적 도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당대에 한창 논쟁 중이던 다윈의 진화론을 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과학적 진화론이 가진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진화론이 말하는 대로 생명체들은 지구상에서 진화한 것들이며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베르그손은 생명 진화란 다양한 생명체들이 주어진 환경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적응 과정이라는 진화론의 주장에는 반대한다. 생명체들은 환경의 제약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새로운 생명 형태들을 창조하며, 생명 진화의 과정 전체는 무기 물질을 가로질러 세계 안에 자유를 도입하려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들을 무기 물질에서부터 시작하는 진화의 산물로 보면서도 생명의 본질 자체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물질에 저항하면서 물질 안에서 자유의 경향을 실현하는 독립적인 힘으로 본 것이다. 생명의 진화는 인간 의식의 지속처럼 창조와 새로움을 향하는 경향성이라는 이 저작의 주장은, 당대의 과학적 진화론보다 한 발 앞서 나아가며 자유로운 생명,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고전적인 관념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이러한 생명의 창조적 운동을 포착하기 위해서 베르그손은 여러 가지 언어적 이미지들을 동원한다. 무수한 생명체들을 가로지르는 단일한 생명적 본질의 전체적 운동을 도약, 곧 뜀뛰기로 표현하기도 하고, 물질과 생명의 대립적인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쇳가루를 가로지르는 보이지 않는 손의 이미지를 동원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물질적 우주를 창조한 가장 근원적인 생명의 본질은 여기저기 틈이 나 있는 용기에서 분출하는 수증기 가닥들로 형상화된다. 러셀은 이 저작을 두고 경멸의 의미를 담아 철학 저서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시라고 말한 바 있는데(정작 이렇게 말한 러셀 자신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였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보다 긍정적인 의미를 담아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는 근대 자연 과학의 성취 위에서 그려낸 장대한 우주적 서사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창조적 진화'는 베르그손이 무명의 젊은 학자이던 시절 발췌 번역하여 출간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근대적 언어로 다시 쓴 저작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당대의 진화론과 생물학의 과학적 성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도 이러한 과학이 말해주지 못하는 생명의 본질을 철학적으로 논구하는 이 저작은 베르그손을 단박에 세계적인 철학자로 만들어 주었다. 박사학위논문과 두 번째 저작인 '물질과 기억'(1896)을 통해 프랑스의 신진 철학자 그룹 선두에 있었던 그는 '창조적 진화'를 통해 당대의 대표적인 철학자로 철학사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베르그손이 당대 진화론에 맞서 내세운 여러 실증적 논변들은 현대 생물학과 진화론의 수준에서 논박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창조적 진화'의 실증적, 논리적 논변들이 힘을 잃고 나면 남는 것은 그저 우아한 표현들로 포장한 근거 없는 몽상적 사변들이 아닐까? 이러한 신랄한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그와 함께 어쩌면 이 저작의 여전히 살아 있는 핵심을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과거의 틀린 철학 이론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문제를 던진다는 점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저작이다. 철학과 문학을 종합한 이 책이 발휘하는 강력한 설득력을 어떻게 현대과학의 성취들 위에서 갱신하고 계승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제기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으로 남아 있다. 주재형 교수는 프랑스 파리에서 베르그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단국대 철학과에 재직 중이다. 현재 단국대 철학과에서 '생활과 철학' '서양근대철학' '형이상학' '윤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프랑스 근현대 철학사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한편 현대과학의 수준에 걸맞은 새로운 우주론 형이상학의 구축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철학연구회 총무이사, 한국프랑스철학회 총무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단국대 철학연구소 '철학논고'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역서로 '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문학과지성사, 2008, 공역), '현대 프랑스 철학' (길, 2014), 저서로 '철학, 혁명을 말하다'(이학사, 2018, 공저), '서양근대교육철학'(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공저), '푸코와 철학자들'(민음사, 2023, 공저)이 있으며, '베르그손의 순수 기억의 존재 양태에 대하여'(2016), '들뢰즈와 형이상학의 정초'(2017), '데리다: 진리의 탈구축'(2020), '러브크래프트와 철학: 반우주로서 생명'(2021), '노화의 자연경제'(2022) 등의 논문을 썼다.주재형 교수 (단국대)
2023.10.06
[무한 상상과 도전 정신으로 시대를 주도하는 상주 .1] 농업 혁신 거점도시
▶시리즈를 시작하며저력 있는 역사도시 상주가 시대 흐름에 발맞춰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미래 산업을 주도할 2차전지 클러스터 산업단지를 발판삼아 첨단산업 도시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 또 정보통신기술(ICT)을 비롯한 과학기술을 접목시킨 스마트 농업의 저변 확대를 통해 국내 농업 혁신 거점도시로 거듭난다는 목표도 세웠다. 양질의 일자리가 넘치는 청년들이 살고 싶은 도시, 지속 가능한 성장이 보장된 도시, 앞으로 상주시가 만들어나갈 미래 모습이다. 영남일보는 오늘부터 격주로 '무한 상상과 도전 정신으로 시대를 주도하는 상주' 시리즈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면적 42.7㏊ 스마트팜 2021년 완공청년창업보육센터·실증단지 등 갖춰교육·경영·창농·주거 원스톱 지원농업 인구 2만6천명 전국 일곱번째지난해 농특산물 30여개 나라 수출상주는 예로부터 한국 농업의 중심이었다. 일찍이 벼농사와 양잠업이 발달했고, 지금도 배와 포도 등 다양한 농특산물이 전 세계로 수출된다. 최근에는 스마트팜 혁신밸리가 조성되면서 국내 농업 혁신의 최전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시리즈 첫 편에서는 상주 농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소개한다.◆ 농업 혁신의 중심 스마트팜 혁신밸리상주 동쪽 중부내륙고속도로와 낙동강 사이 사벌국면 일원에는 한국 농업의 미래를 유추해 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면적만 42.7㏊에 달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스마트팜이다. 상주시는 2018년 전북 김제, 전남 고흥, 경남 밀양과 함께 전국 4대 스마트팜 혁신밸리로 선정된 바 있다.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2021년 12월 준공됐다. 2021년 9월 청년창업보육센터를 시작으로 청년 임대형 스마트팜 A동, 실증단지, 혁신밸리 지원센터, 청년 임대형 스마트팜 B동, 청년농촌보금자리, 청년 임대형 스마트팜 C동이 잇따라 완성됐다. 내년에는 문화거리 등이 추가로 들어선다. 국내 스마트팜 혁신밸리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에서는 농업과 관련한 교육, 경영, 창농, 주거까지 농업인에게 필요한 지원이 원스톱(One-Stop)으로 이뤄진다. 그중에서도 스마트 농업 교육이 핵심을 이룬다. 첨단 기술과 정보통신을 활용한 농업 기술의 확대·보급을 위해서다. 최근 세계 농업은 각종 센서를 이용해 농축산물의 생장, 생육 단계부터 온도·습도·CO2 등의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 병충해 등의 피해를 막는 것은 물론 네트워크, 분석 소프트웨어, 스마트기기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추세다. 노동집약형 산업이자 자연 환경에 의존성이 높은 한계를 극복 가능하기 때문이다.스마트팜 전문인력 육성은 청년창업보육센터가 도맡고 있다. 청년창업보육센터는 경영실습장(1.91㏊)과 이론실습장(0.17㏊) 등 2.27㏊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현장 위주의 실습을 통한 체계적인 교육을 진행한다. 이를 통해 매년 만 18세 이상~39세 이하 청년 52명이 스마트 농업 전문가로 거듭나게 된다.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의 첨단 농업기술은 이미 입소문이 났다. 미래 농업에 관심 있는 다양한 기관·단체들이 찾아와 견학 명소로 자리매김한 상태다.임대 경영도 혁신밸리의 주요 기능이다. 임대형 스마트팜의 온실 규모만 12.75㏊에 이른다. 5.75㏊는 청년을 위한 임대형 스마트팜이고, 나머지 7㏊는 기존 농업인에게 임대하고 있다. 임대형 스마트팜은 온실과 히트펌프, 양액시스템, 지열펌프, 축열조, 폐양액 회수저장고 등을 갖추고 있다. 임대기간은 최대 3년이다.스마트팜의 주요 재배작물은 딸기, 토마토, 멜론, 오이다. 이외에도 농업용 로봇, 병해충 연구, 플랜트 수출이 특화전략으로 설정돼 있다.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 내 실증단지에는 시설재, 기계장치, 농업로봇, 병해충 진단 솔루션 등의 일을 하는 기업, 기관, 대학, 연구소 등이 입주해 있다. 이곳에선 스마트팜 제품과 기술의 품질을 향상시켜 사업화를 촉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스마트팜 재배 작물의 경쟁력을 높이는 중추적인 역할을 실증단지가 맡고 있는 셈이다.혁신밸리 지원센터도 주요 시설 중 하나다. 지원센터 1층에는 R&D 라운지, 오픈강의실, 실증장비실, 카페 및 식당이 위치한다. 2층은 빅데이터센터, R&D연구실, 공용제작실, 회의실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 내에는 청년 농부를 위한 주거지원 시설도 갖춰져 있다.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만 18~39세 청년 가구에게는 '청년농촌보금자리' 입주 자격이 주어지는데 월 임대료가 8만원~24만원, 보증금은 500만원~2천200만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더욱이 청년농촌보금자리에는 공유형 주방과 북카페, 공동육아실 등이 있는 커뮤니티센터도 마련돼 있어 호응도가 높은 편이다. 거주기간은 2년 단위로 최대 6년. 상주 농업의 혁신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지난해 3월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 근처인 상주시 모동면에 한국미래농업고등학교가 문을 연 데 이어 2026년 하반기에는 경북도농업기술원이 사벌국면으로 이전한다. 인재 양성과 농업 기술 향상 등 다양한 방면에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 국내 농업 혁신을 이끌고 있는 상주경북 서북쪽 내륙에 위치한 상주는 낙동강 상류를 끼고 있어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온난해 일찍부터 농경과 목축이 발달했다. 넓은 평야, 적당한 강우량, 풍부한 일조량 등은 상주 농업 발달에 최적의 조건이었다. 더욱이 백두대간의 도움으로 자연재해마저 적었다.천혜 환경을 바탕으로 상주는 농업의 고장으로 이름났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로 농업이 꽃피었다. 삼백은 본래 쌀, 목화, 누에고치를 뜻했는데 지금은 곶감이 목화를 대신하고 있다. 조선 전기 경상도 전체를 관할하던 경상감영(慶尙監營)이 위치해 있었던 것을 보면 당시 상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상주는 현재도 농가 수, 농업인구, 농지면적 등 모든 지표에서 전국 탑 10에 드는 농업도시다. 상주 전체 면적은 1천254.78㎢으로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여섯 번째로 넓고, 농지면적 역시 2만4천849㏊로 전국에서 여섯 번째 규모다. 농가는 1만2천582가구로 전국에서 네 번째, 농업인구(2만6천146명)는 일곱 번째다. 상주의 감 생산량은 전국 1위며 쌀과 배, 시설오이, 양봉 등의 생산량은 경북 1위다. 현재 상주의 농특산물은 쌀, 곶감, 사과, 포도, 배, 복숭아, 오이 등 손에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상주의 한 해 농업 총생산액만 1조원이 훌쩍 넘는다. 경북에서 농특산물 수출이 가장 많은 상주는 한국 농특산물 수출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베트남과 미국 등 30여 개 나라에 모두 372억원어치(4천564t)의 농특산물을 수출했다. 상주 농특산물 수출을 이끄는 품종은 포도(151억원·736t)와 배(111억원·3천73t)다.상주시는 농특산물 수출 확대를 위해 2017년부터 해외 주요 도시에 상주시 해외 홍보관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 홍보관은 뉴질랜드, 대만, 베트남, 독일, 프랑스, 몽골, 홍콩 등 7개 국가의 10개 도시에 모두 12곳이 운영되고 있다.상주시는 2025년까지 '농산물 종합물류단지'를 만들 계획이다. 각지에 흩어져있는 노후화된 도매시설을 모아 15만㎡ 규모의 자동화 종합물류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상주시는 농특산물 집하, 패키징, 공판 등 전통적인 공판장의 기능에 유통, 교육, 문화 기능까지 더할 예정이다.상주시는 매년 엄청난 규모의 농업·농촌 예산을 집행하며 농업을 지원한다. 올해 상주시의 농업·농촌 예산은 2천억원으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최대 규모다. 이에 그치지 않고 올해부터 2026년까지 4년 동안 스마트 농업 육성, 농촌 소득작물 발굴, 청년농업 활성화 등에 모두 1조원이 넘는 농업·농촌 예산을 편성해 투입할 심산이다. 김영록 상주시 농업정책과장은 "기존 농업 분야별 지원사업을 보강하고 스마트 농업 등 첨단농업 육성사업을 적극 발굴해 청년 농부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해 농업에 종사할 수 있는 농업 혁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말했다. 글=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 기자 zone5@yeongnam.com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 청년창업보육센터 교육생들이 경영형 실습온실에서 딸기모종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는 면적만 42.7㏊에 달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지능화 농장이다.실증단지와 유리온실 등을 갖춘 상주 스마트팜 혁신밸리 전경.스마트팜 혁신밸리 직원이 빅데이터관제실 상황판을 보고 있다.매년 가을이면 상주 곳곳에서 곶감을 만드는 작업이 이뤄진다.
[별 따라 이야기 따라 영양에 취하다 .8] 영양의 석탑들
탑은 묘였다. 석가모니를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이었다. 불상은 더 많은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기 위해 나타났다. 절집은 탑과 불상을 위해, 그것에 예배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러나 절집이 사라진 탑, 절집보다 작아진 탑, 논 가운데 혼자 서있는 탑, 마을의 한가운데서 집들에 둘러싸인 탑, 천변의 풀밭에서 나날이 늙어가는 탑에서 보이는 것은 탑이 아니다. 그것은 간절한 기원, 지극한 정성, 무수한 발자국 소리다. 그것은 살아있었던 사람들의 것이고, 현재적이지는 않지만 실재하는 오래된 호흡이며,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 하나의 증여가 되어 돌아오는 현재다. 국보 187호 산해리 오층모전석탑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 조성 추정보물 610호 현리삼층석탑 9세기 건립12지신상·8부중상·사천왕상 등 새겨현리 모전석탑, 감실 당초문양 특이◆ 입암면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신구리 삼층석탑, 신사리 석탑첩첩으로 둘러싼 검푸른 산들은 그리 높지 않으면서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장엄하다. 소리도 없이 흐르는 강물은 소쇄하고 물가의 대지는 텅 비어 넓게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 국보 187호인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이 자리한다. 진입하면서 바라보면 자연의 스케일 때문에 그리 크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탑의 위용은 압도적이다. 산과 물과 대지로 둘러싸인 고요한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듯 팽팽하고 조밀한 시선이다. 바람마저도 저 시선의 언저리를 맴돌다 떠날 것 같다.산과 물의 골짜기라는 산해리의 반변천 변이다. 마을 이름이 봉감(鳳甘)이어서 이 탑은 오래전부터 봉감탑이라 불렸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현존하는 모전석탑과 전탑 대부분이 긴 시간 동안 파손되고 결실되어 그 원모습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참 귀하다. 무엇보다도 이 탑은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 해체되고 연구되고 복원된 유일한 탑이라 한다. 탑은 굉장히 크다. 높이는 11.3m, 초층의 너비는 3m가 넘는다. 토석을 섞어 만든 단층기단 위에 2단의 탑신 받침을 쌓고 수성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5층의 탑신을 쌓아 올렸다. 1층의 탑신에는 화강암 테두리의 문이 남쪽으로 열려 있다. 속은 어두워 보이지 않지만 직사각형의 방이라 한다. 사리함이 있었을 듯한데 함의 조각만 발견되었을 뿐 사리구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석탑 주변에서 기왓장과 청자 조각들이 많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에 저 모전석탑의 규모에 맞는 큰 절집이 있었을 법하나 그에 대한 기록이나 전해오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 반변천 물길을 거슬러 북쪽으로 오르면 입암면 소재지인 신구리에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84호인 '영양 신구리 삼층석탑'이 자리한다. 조금은 한산한 신구2리의 마을 안, 조선 중기에 지어진 약산당 바로 앞이다. 2층의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소박한 모습으로 신라 시대의 것으로 여겨진다. 1층 탑신석 상부에는 직사각형 사리공이 있었으나 사리 장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옆에는 마멸이 심한 불상 하나가 앉아 있다. 작고, 훼손이 심한 데다 보수의 흔적마저 보인다. 석탑과 석불좌상은 마치 보리수 아래의 싯다르타 같다. 반변천 서편 신사리 새골마을 입구에도 작은 석탑이 있다. 그저 '영양 신사리 석탑'이라고 불리는 이 탑은 훼손된 탑신부 부재들을 이리저리 쌓아 놓아 간신히 돌탑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고 건립 연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새골은 고대부터 마을이 형성되었고 배산인 부용봉에는 산성의 흔적도 남아 있다. 석탑은 마을의 선두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 제 모습은 잃었지만 여전히 강건해 보인다. 흩어진 부재를 수습해 쌓아 올린 이는 누구였을까. ◆ 영양읍 현리 오층모전석탑, 현리 삼층석탑, 화천동 삼층석탑반변천을 거슬러 올라 영양 읍내로 들어서기 직전에 현리라는 마을이 있다. 원래 영양현의 읍치였던 곳으로 예전에는 현동이라 불렀다. 천의 남쪽은 현2리, 북쪽은 현1리다. 현2리 반변천 변에 오층의 모전석탑이 자리한다. '영양 현리 오층모전석탑'이다. 석재를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축조한 이 탑은 통일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모서리 돌들이 둥글고 부드러워 시간의 흔적이려니 했는데 그리 치석한 것이라 한다. 1층의 탑신 남쪽에 감실이 있고 안에는 최근에 모신 듯한 부처님이 앉아 계신다. 감실의 문설주에 새겨져 있는 당초문양이 특이하다. 일제 강점기 때는 4층 일부까지 남아 있었다 한다. 이후 2층까지만 남아 있던 것을 1979년경에 5층으로 복원했다. 해체복원과정에서 일부 변형되었지만 봉감탑과 같은 재료를 사용했고 같은 양식을 계승하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최근 보물 2천69호로 지정됐다.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용주사의 말사인 영성사(永成寺)가 이 탑을 지키고 있다. 현리 오층모전석탑에서 반변천 너머 들판을 바라보면 영양로 고가도로의 다리 사이로 쓸쓸하게 서 있는 삼층석탑이 보인다. 보물 610호인 '영양 현리 삼층석탑'이다. 탑의 높이는 4.27m로 아담하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아래층 기단에는 12지신상, 위층 기단에는 8부중상, 1층 탑신에는 사천왕상이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구성과 조각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삼층석탑에서 150여m 떨어진 곳에는 2.1m 높이의 당간지주가 하나 서 있다. 둘이어야 하는데 하나다. 장대를 꽂는 구멍이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깊게 파였다. 주변에 신라와 고려 시대의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저 너른 들판이 옛 절집의 규모를 상상케 한다. 현리의 동쪽으로 반변천의 지류인 화원천을 따라가면 대천리 지나 화천리다. 뒷산에서 흘러내리는 골짜기의 물이 화원천으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천 따라 200여m를 들어가면 몇 채의 민가에 둘러싸인 삼층석탑이 있다. 보물 609호인 '영양 화천리 삼층석탑'이다. 이 탑은 현리 삼층석탑과 '쌍둥이 탑'으로 불린다. 축조연대와 조각장식, 전체적인 모양 등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한 석공의 손에서 두 탑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화천리는 영양읍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가의 마을이다. 고개를 넘어 고을과 고을을 오가던 많은 사람들의 걸음이 이 탑 앞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탑신에 새겨진 사천왕이 발밑에 악귀를 꽉 딛고 서 있다.◆ 영양읍 삼지리 모전석탑과 일월면 용화리 삼층석탑영양읍 북쪽에 삼지리가 있다. 세 개의 연못이 있어 '삼지'다. 아주 오래전 연못은 반변천이었으나 어느 날 천지가 변하여 못이 되었고, 또 어느 날 못에는 연꽃이 피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뒷산 중턱에 신라 시대 고찰인 영혈사가 있었다고 전한다. 절집은 400여 년 전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연대암이 들어섰다.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사월(沙月) 조임(趙任)이 임진왜란 이후 지은 암자다. 암자 뒤편에는 자연 석굴이 있는데 '영혈(靈穴)'이라는 샘이 솟는다. 18세기 초의 기록에 따르면 영혈에서 기우제를 올렸는데 영양의 진산인 일월산보다 먼저 제를 올리는 영험한 샘이었다고 한다. 암자의 오른쪽 절벽 끝 햇살이 스며드는 자리에 전탑이 서 있다. 과거 영혈사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기록이 없어 '삼지리 모전석탑'으로 불린다. 삼국통일 이전에 만들어진 호신불이라 하니 탑은 천년도 더 된 셈이다. 높이는 3.14m로 원래 3층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2층까지만 남아 있다. 1962년 탑을 수리할 때 감실 바닥에서 4좌의 금불동이 발견됐다고 하는데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다. 1998년의 해체 보수 때는 석재 사리함과 사리 1과가 출토되었다. 탑은 오랜 세월 풍화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지만 여전히 당당하다. 탑에서 연지가 내려다보인다. 연지에는 지금도 신라 시대의 연인 법수홍련이 피어난다. 이제 더욱 북쪽으로 거슬러 반변천이 시작되는 일월산으로 향한다. 일월산의 북쪽과 서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가 만나 반변천을 이루는 깊은 골짜기에 옛날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용들이 모두 뜻을 이루어 하늘로 올라간 뒤 골짜기에는 용화사(龍化寺)라는 절이 지어졌다. 지금은 전설과 오래된 탑만이 남아 있는 그곳이 오늘날 일월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의 마지막 마을인 '용화리'다. 탑은 길가의 밭 한가운데에 서 있다. '용화리 삼층석탑'이다.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으로 네 개의 판석을 세워 조립한 기단석 위에 높이 3.41m로 올라 있다. 상륜부는 없어졌지만 안정감 있는 단아한 모양이다. 용화리 삼층석탑을 떠올릴 때마다 푸른 밭의 가장자리에 나 있던 탑으로 가는 희미한 길이 떠오른다. 그 길에 서면 탑은 바다에서 솟은 듯했고, 마당 넉넉한 집에서 들려오던 고추 쏟아붓는 소리가 파도 소리 같았다.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참고=영양군. 한국학중앙연구원. 국립문화재연구소.영양군 입암면 산해리의 반변천 변에 자리한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8세기 중엽 통일신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우리나라 학자들에 의해 해체되고 연구되고 복원된 유일한 탑이다.영양 현리 삼층석탑영양 삼지리 모전석탑영양 현리 오층모전석탑
2023.10.05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경북대 '내년도 의대 모집정원' 학칙개정안, 법제심의위·학장회의 통과
"더 미루기 힘들어"…계명대·영남대 의대, 13일부터 임상실습 수업
많이 본 뉴스
오늘의운세
닭띠 5월 9일 ( 음 4월 2일 )(오늘의 띠별 운세) (생년월일 운세)
영남생생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