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Ⅱ 대구경북 생존보고서] 경북형 K-U시티 '주목'
경북도는 지역 청년들이 머물 수 있는 대학 중심의 '미니 신도시'를 만드는 경북형 'K-U시티'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경북도가 추진하는 지방소멸 위기 극복 7대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각 시·군의 주요 사업을 학교와 기업, 주거단지와 연계해 평범한 사람도 수도권 못지않은 생활 인프라를 누릴 수 있도록 구상됐다. 대학(University)을 통해 지역 전략 산업을 명품화(Unique)하여 청년(Youth) 중심의 공간(City for You)을 조성한다는 취지다. 경북에 유입된 청년이 지역에서 대학을 나와 유망 기업에 취업을 하고 지역 정착해 생활하는 정주 도시를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올해 초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청년들이 지방에서 서울과 같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올해 말까지 22개 시·군에 경북도, K-U시티를 조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북도에 따르면 이달 말 기준 △포항시-포스텍-2차전 △구미시-금오공대-반도체 △의성군-영남대-세포배양 △봉화군-대구가톨릭대-바이오메디 △울릉군-한동대-글로벌그린 △청송군-대구가톨릭대-항노화 등 6개 시·군과 U시티 협약을 완료했다. 협약에 따라 포항에선 포스코케미칼·에코프로·에너지머티리얼즈가, 구미에는 SK실트론·LG이노텍·삼성SDI가 U시티 사업에 참여한다. 대표적인 인구소멸 지역인 봉화·청송·영양(일병 BYC) 지역에선 청년들이 교촌에 취직해 치킨 소스 원료를 생산하게 된다. 내년부터 글로벌그린 U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한동대 방청록 기획처장은 "본교 학부생 10~20여명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울릉군 글로벌그린 U시티 시범 학기제를 운영할 계획"이라며 "프로젝트 참여 학생들은 울릉군에서 관련 기업과 소통하고 별도로 학점을 취득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북형 K-U시티에 거주하는 청년에게는 교육·주거·복지를 아우르는 혜택이 제공된다. 지역 대학 전략 학과 학생들에게는 등록금 전액을 무상지원하고 졸업 후에는 전략기업 취업을 알선한다. 전략 기업 취업자에게는 2년 후 대기업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며, 주거안정지원금 명목으로 10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아파트 또는 주택 임차료 등을 지원한다. 또한, 결혼 시 결혼 장려금 5천만 원을 5년간 분할 지급하고, 향후 돌봄 패키지에 따라 산후조리 도우미와 119 아이행복 돌봄터 등을 지원해 청년들의 육아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간다는 복안이다. 박성수 경북도 지방시대정책국장은 "경북형 U시티는 중앙 정부의 사업을 따내는 그동안의 형태에서 벗어나 지방에서 주도적으로 시스템을 만들고 중앙 정부에 모자란 부분을 건의하는 형태로 운영된다"라며 "내년에는 학생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U시티 시스템을 완비하면 수도권 못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주석기자 farbrother@yeongnam.com경북도가 추진하는 경북형 K-U시티 현황.경북도 제공경북 청송군 임업연수원에서 지난 7월 열린 '청송군 항노화 U시티' 추진을 위한 인력양성 협약을 체결한 경북도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북도 제공
2023.10.31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Ⅱ 대구경북 생존보고서] "일자리가 없어요" 대구 청년의 하소연
#대구가 고향이고 경북대 졸업생인 김민준(28) 씨는 서울에 정착, 기상학 관련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대기과학을 전공했지만, 지역에서는 전공을 살릴 수 있는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떠날 수밖에 없었다. 김 씨는 "대구 일자리 생태계는 제조업과 생산 쪽에 치중돼 있다"며 "대구에도 지금과 같은 조건의 일자리가 생긴다면 대구로 돌아올 의향이 있다. 대구는 일자리 문제만 해결된다면 교통, 생활 인프라, 인구 밀집도 등 다른 건 모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생활 모든 부분에서 서울보다 괜찮다"고 했다. #대구에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우모(19) 군은 현재 경기권의 한 IT기업에서 실습 중이다. 졸업하고 나서도 수도권에서 정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우군은 "대부분 학생들 관심이 서울과 수도권에 있다"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강남과 판교에 몰려 있는 스타트업들이다. 임금도 연차가 쌓일수록 지역 기업들과 수도권 기업들의 격차가 커지는 것 같다"고 했다. 대구 청년들이 대구를 떠나는 가장 큰 원인은 '일자리' 때문이다. 김 씨처럼 대구에 정착하고 싶었지만, 일자리가 '없어서' 떠나는 청년이 있고, 우군처럼 일자리의 질과 수도권이 제공하는 환경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어서 떠나는 청년도 적지 않다. 최근 윤권근 대구시의원의 제안으로 '대구시 청년 일자리·주거정책 평가 및 개선 방향 연구'를 수행해 온 한국정부학회(계명대 성영태, 최종민, 임태경 교수)는 지난 24일 중간보고회에서 대구 거주 20~39세 남녀 2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구직활동에 있어 어려운 점을 묻는 질문에 45.0%의 청년이 '좋은 조건의 기업 부족'을 꼽았다. '경험 경력 및 스펙 부족'이 22.5%, '일자리 자체의 부족'이 15.0%로 나타났다. 성영태 교수는 "조사 결과 연고지가 대구인 청년층은 대구를 떠나 타 지역으로 이주할 의지가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지역 청년 급여 수준을 간접적으로 보조해주거나, 주거지원정책 등 실수요자인 청년들이 희망하는 정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사단법인 지역균형발전포럼이 개최한 '청년이 머무는 도시, 대구 만들기' 포럼에서 심대현 대구시 산업단지 정책자문관은 '미스매칭' 문제를 대구의 일자리 문제를 가중시키는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심 자문관은 "구직자가 원하는 보상의 불일치, 회사가 원하는 인재의 직무역량 불일치, 상호 간 정보 미스매칭 등 총 3가지 미스매칭 문제가 있다"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책임이기도 하다. 대구에도 복리후생이 잘 돼 있는 괜찮은 기업이 많은데, 그 정보를 구직자들이 구할 수 없으니 수도권으로 옮겨가게 된다"고 분석했다. 청년이 머무르는 대구의 산업단지를 만들기 위한 대책과 관련, 심 자문관은 "구조고도화 사업을 통한 정주여건 마련에 힘써야 한다"며 "그런 요건을 갖추기 위한 기숙사형 오피스텔 건립 등은 현재의 정부 정책을 잘 활용하거나 제도개선을 통해서라도 정책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시는 청년 고용 활성화와 지역경제 활력 도모를 위해 지역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31일 밝혔다. 만 39세 이하 미취업 청년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대구시와 9개 구·군이 지역 상황에 맞게 설계해 행정안전부 공모를 거쳐 추진하는 사업이다. 대구시는 신규 및 기선정된 85개 사업을 수행하고 있고, 2천400여명의 지역 청년과 80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미래차 부품소재 혁신인재 양성, 인문계열 졸업 청년 취업 경로 전환 지원, 스타트업 지원, 디지털 콘텐츠 기업 청년 채용지원 사업 등 취·창업 지원 및 기업 지원책이 세워져 있다. 대구시 고용노동정책과 관계자는 "올해 전국 7개 특·광역시 중 최대, 전국 2번째 규모"라며 "청년 재직자의 역외 유출을 막고 중소기업 장기재직 유도를 위해 청년 그린 내일채움공제 정책도 중점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지난 10월 16~17일 대구시와 대구직업전문학교가 지역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 참여 청년들과 기업 대표가 함께하는 네트워킹 워크숍을 개최했다. 대구시 제공
소멸극복 필요조건은 '청년'…청년 없으면 기업도 출산도 휘청
최근 지역 소멸을 위한 논의는 '청년'에 맞춰지고 있다. 과거에는 인구문제를 단순히 '저출산'으로 바라봤지만, 청년의 수도권 유출로 인한 지역 위기가 인구 문제의 시작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인구는 줄고 지역 소멸은 가시화되지만, 수도권 거주 인구는 전체의 50%를 넘어 매년 0.2%포인트씩 늘어나면서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 심화에 따라 청년층은 일자리나 교육 등에서 조건이 좋은 수도권으로 이동하게 되고, 지방대학의 역할과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20~30대가 빠져나가면 인구 고령화를 가속화시켜 지역의 활력이 감소될 뿐아니라 지역의 경제 역량이 취약해지고, 기업도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청년이 없다면 '출산'도 있을 수 없다. 청년의 수도권 쏠림이 지역 소멸을 가속화 시키는 핵심 요인인 셈이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의성에서 열린 인구정책포럼에서 "(인구 위기를) 처음에는 저출산으로 보고 아이 더 낳기 운동, 다음에는 인구 이동에서 답을 찾으려고 귀촌귀농을 택했다. 하지만 이제 청년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고 청년의 삶에 대한 정책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지역 소멸과 맞닿은 인구 문제가 저출산이 아닌 지방 청년의 수도권 유출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이 대구경북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이나 일자리를 비롯한 '기회'가 수도권에 더 많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이 대부분인 지역의 기업 형태나 전국 평균에 비해 10% 정도 낮은 임금 등의 조건에 비춰봤을 때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는 '메리트'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대학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2024학년도 대입 수시모집에서도 수도권과 지방 간의 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도 서울권 대학의 경쟁률은 상승한 반면, 대구경북을 비롯한 지방 대학의 하락세는 두드러졌다.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방대학을 졸업한 학생이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지역의 특성을 살린 정책이 나와야 한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청년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구시는 청년 고용 활성화와 지역경제 활력 도모를 위해 지역 주도형 청년 일자리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경북도는 '경북형 K-U 시티'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이 지역에 머물 수 있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정수희 덕성여대 교수는 "지방 도시에서 청년의 존속 여부는 우리에게 닥친 생존 문제가 됐다"면서 "우선 지역에서 청년의 수요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지역에 젊은 크리에이터를 유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명절 기간 동대구역에서 부모가 대구를 떠나는 자녀에게 인사하고 있는 모습. 대구에서 거주하고 있지만 취업 등을 위해 지역을 떠나는 청년 층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영남일보DB21일 대구 북구 영진전문대학교 백호체육관에서 열린 '영진 취업박람회'를 찾은 한 구직자가 기업 채용 정보를 보고 있다. 영남일보DB
대구 향토백화점의 양대산맥 '대구백화점 본점' '동아백화점 본점'…대기업 백화점 진출 등으로 문 닫아
대구에는 다양한 백화점이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동구 신천동에 위치한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중구 계산동에 있는 '더현대 대구' 등 인기 백화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메이저 백화점들의 인기 전에는 향토백화점인 '대구백화점' '동아백화점' 등이 소비자들을 사로잡았었다. 해당 백화점들은 상권을 형성하는 등 대구 유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경영난 등으로 인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구백화점 본점은 지난 1969년에 중구 동성로 중심에 세워졌다. 대구 최초 10층 건물이었으며,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현대식 백화점이었다. 대구 시민들에게는 '대백'으로 불리기도 했다. 또 '중앙파출소' '동성로 시계탑' '한일극장 앞' 등과 동성로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했다. 직장인 이민지(여·31)씨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 동성로에서 만날 때면 만남의 장소는 무조건 대구백화점 본점이었다. 입구 앞에는 지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늘 가득했다"면서 "더운 여름날이면 1층 매장에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인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고 포옹하는 모습 등을 봤던 기억도 생각난다"고 회상했다.과거 대구백화점 본점은 대기업 백화점과의 경쟁에서도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난 1973년 신세계백화점이 대구점을 열었으나, 3년여 만에 철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선 지속해서 매출이 감소했다. 지난 2011년 더현대 대구가 인근에 개점하면서 매출이 하락했다. 이후 지난 2016년에는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이 오픈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김모(여·55)씨는 "새로운 백화점이 대구에 진출하면서 대구백화점 본점은 잘 가지 않았다. 다른 백화점에서 더 다양한 브랜드와 문화들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면서 "문을 닫을 줄 알았으면 미리 자주 갔어야 했다. 폐점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추억이 많은 만큼 요즘도 동성로를 지날 때면 멍하니 쳐다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결국 대구백화점 본점은 경영 악화와 코로나19 직격탄으로 지난 2021년 6월을 끝으로 잠정적 휴업에 들어갔다. 당시 마지막 영업소식을 들은 대구 시민들이 백화점을 찾아 인증샷 등을 남기기도 했다. 대구백화점 본점이 잠정적 휴점에 들어간 지 약 2년 4개월이 지났지만, 다시 '활성화' 되길 원하는 바람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침체기에 접어든 동성로 상권을 부활시키기 위해선 대구백화점 본점 활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동성로 상인 A씨는 "동성로 상권 위축의 경우 대구백화점 폐점이 영향을 많이 줬다. 백화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주변에 상권들이 함께 위축된 것"이라면서 "하루빨리 대구백화점 활성화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했다. 대구백화점과 함께 향토 백화점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던 '동아백화점 본점(동아아울렛 본점)'도 문을 닫았다. 동아백화점 본점은 '동백'으로도 불렸다. 또 '대구백화점은 월요일 휴무, 동아백화점은 화요일 휴무'를 의미하는 '대월동화'는 단어도 대구 시민들에게는 유명했다. 강동우(58)씨는 "대백과 동백을 모르면 대구 사람이 아니다. 명절,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 특별한 날이면 해당 백화점에 사람들로 늘 가득했다"면서 "지금이야 신세계백화점 등이 유명하지만 과거에는 대백과 동백이 대구 유통을 이끌었다"고 했다.동아백화점 본점의 경우 지난 1972년 9월 지역 건설사인 화성산업이 유통 사업에 진출하며 중구 동문동에 문을 열었다. 지난 1984년 반월당 역 인근에 위치한 동아백화점 쇼핑점이 개점하기까지 중심 역할을 했다. 이후 2010년에는 화성산업이 유통부분인 동아백화점을 이랜드에 매각하면서 '동아아울렛'으로 명칭과 업종을 변경해 영업을 이어왔다. 장미희(여·62)씨는 "아울렛으로 변경되면서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할 수 있었다. 이월 상품들을 60~70% 할인받을 수 있었다"면서 "알뜰하게 옷을 사고 싶을 때면 늘 동아아울렛을 찾았다. 나중에 갈수록 손님이 줄어들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인근에 있던 스포츠 전문매장 다수가 문을 닫는 등 일대 상권이 침체하면서 매출 감소가 이어졌다. 재도약을 위해 지난 2013년 1월에는 새 단장을 하기도 했으나 기대만큼 매출이 이어지지는 못했다. 결국 지난 2020년 2월 영업 부진 속에 동아백화점 본점은 폐점하게 됐다. 직장인 박모(여·35)씨는 "부모님의 옷을 구매하러 동아백화점 본점에 어릴 적 갔던 기억이 있다. 동아백화점 다른 지점보다 낡고 사람도 별로 없어 조용한 백화점으로 불렀었다"면서 "지역의 향토 백화점들이 사라지는 대구의 역사, 대구 시민들의 추억이 사라지는 거 같아 아쉽다"고 했다.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사라져가는 대구경북 삶의 기록'은 대구경북의 사라지거나 희미해져 가는 생활·문화 등을 기록하는 코너입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라져가는 삶의 기억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추억으로 만들고자 기획됐습니다. 지난 8월 '홈플러스 1호점·까르푸'로 시작한 <시즌2>는 이번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재정비를 통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시즌3>로 돌아오려고 합니다. 새로운 시즌을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시즌에서 함께 기억하고 싶은 추억, 기록하고 싶은 삶의 현장이 있으신 분은 이메일(yooni@yeongnam.com)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지난 2021년 6월을 끝으로 '대구백화점 본점'이 잠정적 휴업에 들어갔다. 대구백화점의 등장과 함께 동성로는 대구 상권의 중심이 된다. 대구백화점 제공1970년대 대구백화점 본점 모습. 영남일보 DB'대구백화점 본점' 앞은 대표적인 동성로 만남의 장소였다. 사진은 대구백화점 본 잠정적 휴업 전 모습. 대구백화점 본점 잠정적 휴업 전 고별전 모습. 동아백화점 본점(동아아울렛 본점 모습. 지난 2013년 동아백화점 본점은 재도약을 위해 새 단장을 했으나 기대만큼 매출이 이어지지 못했다. 사진은 동아백화점 본점 새단장 모습.
XMZ 세대별 대구의 대표 장소는?…'동성로·김광석거리' '고정적인 장소 없어'
세대마다 유행하는 음식, 장소 등은 변화한다. 상권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바뀐다. 버스, 도시철도, 렌터카 등 이용할 수 있는 교통편에 따라 유행하는 장소가 달라지기도 한다. 또 새로운 전자기기, 인터넷 발전 등도 변화를 만든다. 대구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세대별 대표하는 장소가 달라졌다.◆X세대의 대표 장소 '동성로'…영화, 쇼핑, 음식점 등이 밀집'X세대(1965년생~1979년생)'의 대표적인 장소는 '동성로'다. 영화관, 쇼핑몰, 음식점 등 다양한 장소가 밀집돼 있었기 때문이다. X세대는 "동성로가 가장 핫 플레이스였다. 동성로에 가면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었다"면서 "당시에는 동성로라고 부르기보단 '시내' 간다고 했다. 데이트, 친구 약속 등을 정할 때면 시내에서 만나자고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했다.이들이 동성로에서 주로 즐겼던 건 '쇼핑'과 '영화 관람'이다. 인터넷 쇼핑이 활성화되지 않다 보니 당시 '밀레오레' '갤러리 존' 등은 쇼핑하러 온 X세대들로 가득했다. 영화관 역시 사람들로 북적였다. X세대는 "요즘은 동네마다 영화관들이 있다. 과거에는 동성로에 나와야지 영화를 볼 수 있었다"면서 "영화관 별로도 상영하는 영화가 다르기도 해서 골라보는 재미도 있었다. 심야 영화가 끝나는 시간이 시내버스 막차를 탈 수 있는 시간으로 조정된 것으로 안다"고 했다.젊은 세대에 인기 장소로 떠오르는 '팔공산' '수성못' '앞산' 등은 X세대의 대표 장소는 아니었다. 교통편이 불편해 쉽게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X세대는 "자신의 차가 없다면 팔공산, 앞산 등은 가기가 어려운 장소였다"면서 "대중교통으로 이동하기 쉬운 곳이 동성로였다. 동성로에서 교동이나 약전골목 등으로도 넘어가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만남의 장소는 '중앙파출소' '대구백화점 앞' '동성로 시계탑'이었다. X세대는 "중앙파출소, 대구백화점 앞, 시계탑은 약속이 시작되는 장소다. 해당 장소에 나가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했다"고 설명했다. ◆M세대 '김광석거리'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아…카페, 사랑의 자물쇠 등 1980년에서 1994년에 태어난 'M세대'의 대표 장소도 '동성로'였다. 이들도 중앙파출소, 대구백화점 앞 등에서 만나 영화관, 쇼핑, 음식점 등 문화를 즐겼다. 다른 핫 플레이스는 '김광석거리'였다. 당시 페이스북 등 SNS상에서 김광석 거리가 알려지면서 이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 동성로에서 김광석거리까지 도보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도 인기 장소가 되는 요소였다. M세대는 "SNS에 김광석거리에 위치한 카페, 간식 등이 떠오르면서 반드시 가야 하는 장소가 됐다"면서 "동성로에서 20~30분 정도 걸어서 이동하기도 편해 자주 갈 수 있었다"고 했다. 김광석거리에서 꼭 해야 하는 리스트 중에선 '사랑의 자물쇠' 달기가 있었다. 당시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 등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서울 남산에 올라 자물쇠를 다는 모습이 자주 나오면서 인기를 얻게 된 것. M세대는 "사랑의 자물쇠를 달기 위해 서울 남산까지 갈 수는 없으니 김광석거리에서 했었다"면서 "연인과 헤어지지 말자고 자물쇠에 글자를 적어 달았던 기억이 있다"고 설명했다.이들에게는 '카페'도 대표 장소다. '민들레영토' '캔모아' 등이 M세대에 인기를 얻은 것. M세대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동성로에 민들레영토가 있었다. 입장비인 '문화비'를 내고 민들레영토에서 친구들과 자주 놀았다"면서 "캔모아도 M세대의 대표 카페다. 메뉴 주문 시 기본적으로 나오는 토스트, 생크림이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Z세대 '고정적인 장소' 없어…각자 특색에 맞게 선택해"고정적인 만남의 장소는 없다. 가고자 하는 식당, 카페 등 주소를 공유하면 해당 자소에서 바로 모인다"Z세대(1995년생~2012년생)의 경우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가 없다. 스마트폰 상용화로 약속 장소를 쉽게 전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Z세대는 "메신저를 통해 카페, 식당 등 가고자 하는 주소를 공유하고 바로 모이는 경우가 대다수다"면서 "특정 장소에서 만나 식당까지 걸어가는 게 종종 어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했다.이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는 '앞산 카페거리' '삼덕동' 등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에 올릴 사진 등을 남기기 위해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보다는 특색 있는 '개인 카페'를 찾기 때문이다. 또 교통편이 불편해 잘 찾지 못했던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쏘카' 등 카셰어링 서비스 활성화로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고 있다. Z세대는 "인스타그램에서 앞산 카페거리 관련 해시태그는 40만 건이 넘는다. 예쁜 카페가 많아 자주 찾는다. 삼덕동 역시 특색있는 술집이 모여있어 인기가 많다"면서 "개인차가 없으면 쏘카 등을 빌려서 가면 되니 이동 편도 부담이 없다"고 했다.이외에도 '두류공원의 야외음악당' '봉산문화거리' '동대구역 건너' '교동' 등 다양한 장소가 인기 장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과거와 다르게 특정 장소를 자주 모이기보단 여러 곳을 다녀보는 것을 선호한다고 설명한다. Z세대는 "대구 곳곳을 다니는 거 같다. SNS에서 유명한 곳 중 예쁘고 특색있는 곳이라면 가게 된다"면서 "각자가 원하는 장소의 분위기와 느낌도 달라 만남의 장소도 다양하다 "고 했다.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이형일기자 hilee@yeongnam.com조민희 인턴기자 alsgml0656@yeongnam.comXMZ세대별 대구 대표 장소. 조민희 인턴기자 alsgml0656@yeongnam.comX세대 대표 만남의 장소 '중앙파출소' 모습. 조민희 인턴기자 alsgml0656@yeongnam.com영화관, 쇼핑몰 등이 밀집된 동성로는 X세대의 대표 장소다. 사진은 한일극장 모습. 영남일보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대별 대표 장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형일기자 hilee@yeongnam.com대구백화점 앞은 X와 M세대의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다. 김광석거리가 SNS에 등장하면서 M세대들의 대표 장소로 자리 잡았다. 영남일보 DBZ세대에게 앞산 카페거리가 인기 장소로 떠올랐다. 사진은 앞산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찍은 전경. 이형일기자 hilee@yeongnam.com교동 등 Z세대는 각자 특색에 맞게 다양한 장소를 선택한다. 동대구역 건너에는 카페, 음식점 등이 모여있다. Z세대에게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는 중이다. 영남일보 유튜브 콘텐츠 '젠톡 4편_대구 대표 장소' 촬영 모습. 이형일기자 hilee@yeongnam.com
2023.10.27
[김대욱 큐레이터와 함께 '考古 go! go!'] 옛사람들의 치아 건강과 질병
옛사람들의 치아는 당시 사람들의 구강 상태를 평가하고 이를 통해 음식물의 섭취 양상과 식이 습관을 복원하는 데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지금까지 치아의 병리적 지표들을 통해 개체의 성과 연령, 지위에 따른 유병률의 차이나 식료 섭취, 식이 습관의 변화에 대한 공시적·통시적 관점에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임당유적에서 출토된 인골에서는 충치와 생전 치아 결실, 농양 등의 치아 병리 지표를 통해 삼국시대 경산에 살았던 사람들의 치아 건강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자.임당유적서 출토 58명에 흔적질병·영양불량일 때 발생하는'에나멜 형성부전증' 병변 확인가장 오래된 질병 중 하나 '충치'유병률 5.79%…옆면에 발생도치아 마모는 주로 여성서 확인치아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치아 표면에 가로줄이 생겨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가로줄은 치아가 자라는 동안 질병이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아 생리적 스트레스가 발생할 때 에나멜 분비가 중단되어 치아머리의 표면에 생기는 에나멜상의 결함인데 이를 에나멜 형성부전증(enamel hypoplasia)이라고 한다. 이는 옛사람 뼈에서 흔히 확인되는 병변 중 하나이며, 치아의 특성상 한번 생기면 영원히 없어지지 않아 옛 집단의 성장기 스트레스를 연구할 때 자주 이용된다. 임당유적 출토 인골에서는 58명의 치아에 이 가로줄이 남아있었다.(사진1)기원후 5세기 말 즈음에 축조된 조영EⅡ-2호묘의 순장자 치아를 살펴보면 하악골 우측의 제3대구치가 맹출되지 않았으며 하악골 좌측의 제3대구치는 맹출 중이었다. 대퇴골과 경골의 성장이 완료되지 않아 골단과 골간 사이의 골단판이 완전히 붙지 않았으며 천골의 성장이 완료되지 않아 골체가 분리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순장자의 나이는 15~18세 정도로 추정 가능하며 개체의 성장이 완료되지 않아 성별은 추정하기 어려웠다. 이 순장자의 치아에서도 선형의 에나멜 형성부전증(사진2)뿐만 아니라 생전 치아결실(좌측 제1소구치)과 충치(사진3)도 확인되었다. 사람들의 가장 흔한 치아질환이 충치(caries)인데 충치는 치아 우식증이라고도 부르며 선사시대 이전부터 발견되는 가장 오래된 질병 중 하나이다. 입안에 서식하는 세균에 의해 설탕, 전분 등이 분해되면서 생기는 산(acid)에 의해 치아의 표면을 덮고 있는 에나멜이 손상되어 생기는 질병이다. 충치의 유병률은 근대 사회에 와서 급격히 증가하였으며, 이는 당분 및 탄수화물 섭취 등과 같은 식생활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임당유적에서 출토된 치아 중 분석된 치아 1천485개 중에서 충치가 확인된 치아는 86개로, 충치 유병률은 5.79%로 확인되었다. 여기에서 남성의 유병률은 4.89%, 여성은 6.15%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다소 높은 유병률을 보였다.(사진4~6) 대개 음식을 씹은 면, 즉 치아의 윗면과 아랫면에 충치가 발생하는 것이 많은데 특이하게 치아의 옆면에 충치가 발생하는 경우도 확인된다.(사진7)농양은 주로 충치나 치아의 심한 마모 또는 외상으로 인해 치아의 에나멜과 상아질이라고 하는 구조가 손상되면서 치아속질(치수)이 노출되고 그 공간까지 세균이 침투하게 되면서 이틀뼈(치조골)에 구멍이 발생하는 증상이다. 고고학 유적에서 출토되는 사람 뼈의 농양은 주로 충치와 극심한 마모, 외상에 의한 치아속질공간 노출이 가장 큰 원인으로 파악된다. 임당유적에서 출토된 치아 중 분석 대상이 된 전체 치아 못박이관절 1천144개 중에서 농양이 확인된 부위는 단 8개로, 농양 유병률은 0.7%로 확인되었다. 여기에서 남성의 유병률은 1.01%, 여성은 0.48%였다.(사진8~9)충치가 치아속질공간을 침범하면서 염증성 반응이 나타나 충치와 농양, 그리고 생전 치아 결실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치주질환으로 인한 잇몸의 염증이 이틀뼈까지 확장되고 치주염이 심해지면서 생전 치아 결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고고학 유적에서 출토된 사람 뼈 집단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생전 치아 결실은 질감이 거친 음식물의 잦은 섭취로 인한 치아의 극심한 마모, 영양 부족에 의한 질병, 문화적 관습에 의한 발치 풍습, 외상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보고된 바 있다.(사진10~11) 임당유적에서 출토된 치아 중 분석된 전체 치아 못박이관절 1천144개 중에서 생전 치아 결실이 확인된 부위는 88개로, 생전 치아 결실 유병률은 7.69%로 확인되었다. 여기에서 남성은 10.81%, 여성은 3.8%였고 성 추정 불가 범주는 6.11%로 나타났다.그런가 하면 치아에 붙은 치태와 기타 물질이 굳어져 석회화된 치석이 확인되는 사례도 있다.(사진12~13) 최근에는 이 치석을 분석하여 당시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음식을 추적한다고 하니 앞으로 이러한 분야의 기술 발전도 기다려 볼 만하다. 앞서 소개한 치아의 병리적 분석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특정 치아의 마모나 기형적인 요소도 발견된다. 치아 마모는 4~8세 정도의 어린아이의 윗 앞니의 안쪽 면(사진14), 21~35세 여성의 윗 앞니의 안쪽 면(사진15), 41~60세 정도의 여성(적)의 아래 앞니(사진16) 등에서 확인되는데 어린아이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주로 여성에게서 확인되는 특징이 있다. 또한 4~8세 정도의 어린아이의 치아는 치아 두 개의 뿌리가 붙어 있는 선천적 치아 기형(사진17)이 확인되기도 한다.이상으로 고고학 발굴 현장에서 출토된 사람 치아를 통해 옛사람들의 질병을 추적하여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하였다. 앞으로도 체질(생물)인류학, 해부학, 분자유전학, 법의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옛사람들의 삶을 더욱 생생하게 복원하고자 한다. 김대욱 큐레이터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김대욱 큐레이터 영남대박물관 학예연구원
[경북,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열다 .10·(끝)] 이철우 경북도지사 인터뷰 "SMR·원자력수소 국가산단 제 모습 갖추면 경북 미래 100년 밝힐 것"
세계적으로 에너지 인플레이션과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원자력이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도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원자력 발전 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영남일보는 국내 원자력 발전 산업의 중심인 경북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한 '경북,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열다' 시리즈를 9차례에 걸쳐 연재했다. 시리즈를 통해 국내 원자력 발전 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도 다뤘다. 또 경북에 들어서는 경주 소형모듈 원자로(SMR·Small Modular Reactor) 국가산업단지와 울진 원자력 수소 국가산업단지를 소개하고, 관련 기업 육성과 인재 양성 등에 대해서도 조명했다. 시리즈를 마치며 이철우 경북도지사에게 지역 원자력 발전 산업의 현황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이번 시리즈를 간략하게 평가한다면."지난 3월부터 9회에 걸쳐 진행된 시리즈는 흥미 그 이상이었다. 원자력의 역사, 주요 인프라, 인력 양성, 원전 산업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제를 다뤄 아주 유익한 기사로 회자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올해 3월에 선정된 경주 SMR 국가산업단지와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의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내 도민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 앞으로 원자력 관련 기업의 투자유치를 대폭 끌어내는데 좋은 자료로 활용되리라 기대한다."▶경북은 국내 원자력 발전 산업의 중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역사가 깊다."경북의 첫 원전인 경주 월성 1호기의 상업 운전은 1983년 4월22일부터 시작됐다. 벌써 40년이다. 이후 1988년 9월 울진의 한울 1호기, 1989년 9월 한울 2호기가 가동되며 현재까지 모두 12기의 원전이 우리 경북에서 정상 가동 중이다. 또 원전을 설계하는 한국전력기술이 2015년 김천에, 건설과 운영을 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 2016년 경주에, 폐기물을 관리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까지 2017년 경주에 자리를 잡았다. 이로써 경북은 원전의 설계, 건설과 운영, 폐기물 처리까지 원전 운영의 전주기 인프라를 갖춘 국내 최대 원자력 집적지가 됐다. 현재 발전설비용량 기준으로 경북이 전국에서 3위인 1만7천38㎿를 차지하고 있고, 원자력은 1만1천400㎿로 1위인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원자력 발전 산업에서 경북이 갖춘 경쟁력은 어떤 것들이 있나. "현재 전국의 가동 원전은 모두 25기다. 이 중 12기가 경북에 있다. 또 설계에서 건설·운영, 폐기물 처리를 담당하는 주요 공공기관이 경북 지역에 밀집해 있다. 특히 포스텍·한국원자력마이스터고 등에서 배출되는 우수 인력, 경주 문무대왕과학연구소 등의 우수한 연구 인프라, 한국전력기술·한국수력원자력·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의 원전 운영 노하우는 어느 지역도 따라올 수 없는 경북만의 특별한 경쟁력이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경주 SMR 국가산업단지와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가 정상 추진되어 제 모습을 갖춘다면 경북의 미래 100년이 밝아지고 후손들도 아무런 걱정 없이 지방에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전쟁과 에너지 인플레이션, 급속한 기후변화 등 요인으로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데."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적자는 472억달러였다. 가장 큰 원인은 원유, 가스 등 1천908억달러의 에너지 수입 때문이었다. 최선의 해결책은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자력을 활용한 전력을 많이 생산해서 에너지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탈원전 정책 폐기와 원자력산업 생태계 강화라는 국정과제를 도출했다. 우리 경북에 있어 가장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해 신한울 1호기가 준공되고, 최근 신한울 3·4호기의 건설이 재개된 것은 원전생태계 복원의 신호탄이었다. 그 덕택에 우리나라와 지역의 원전 생태계는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으며 정상 궤도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경주와 울진이 원자력 관련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됐다.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게 되나. "지난 3월 SMR와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는 당시 전국 최다 국가산업단지 선정이라는 쾌거도 있지만,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국가전략산업 육성을 확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더욱더 기쁘다. 함께 뜻을 모아주신 도민과 국회의원, 시장·군수, 도의원 등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을 먼저 전하고 싶다. 경주 SMR 국가산업단지는 문무대왕과학연구소의 SMR 기술개발과 연계해 제조·소부장 산업 육성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이는 미·중·러 등 강대국이 이끄는 630조원 규모의 세계 SMR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또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업단지에서는 상용원전과 고온 가스로를 활용한 청정수소의 대량생산과 연구개발(R&D) 등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는 안정적인 수소 생산은 물론 공급 기반도 촘촘히 갖추게 되어 경북이 수소경제의 메카로 거듭날 것이라 믿는다. 이로써 원자력과 원자력수소 분야의 연구와 기업, 인재가 함께 어우러지는 대한민국 핵심 거점이 바로 경북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도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경북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이다. 특히 산업화에 꼭 필요한 안정적 전력 공급으로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끌겠다는 사명감으로 기피 시설인 원전과 관련 시설을 수용하는 등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왔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 도민들의 수용과 인내·협조가 있어 가능했다. 다시 한번 도민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원자력은 이제 국가 에너지 안보에 있어 아주 중요한 동력원이다. 세계 시장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국내 원자력 산업 육성을 위해 아낌없는 지원과 노력을 펼쳐 나가겠다. 도민들께서도 여기에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정리=김일우〈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 연구위원〉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주 소형모듈 원자로 국가산단과 울진 원자력수소 국가산단이 지역의 새로운 경제 성장 엔진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영남일보 DB〉
2023.10.26
[세계로 가는 청정관광1번지 산소카페 청송 .11] 덕천마을 송소고택·송정고택·초전댁
벚나무 가로수 길에 푸른 그늘이 맑다. 길가 숲속에는 연못과 정자가 버드나무 몇 그루에 안겨 아늑하다. 가로수 길의 끄트머리에서 조산무더기를 지나면 환하게 마을이 열린다. 사방 산이다. 마을 앞으로 천이 흐르고 마을의 한가운데는 넉넉한 들이다. 기와를 인 집들은 낮은 산 아래에서 남쪽을 바라본다. 반듯한 흙돌담이 여유로운 골목길을 만들고, 크고 작은 텃밭마다 씻은 듯한 푸성귀들이 단정하다. 깨끗한 마당과 수아한 화단 너머 섬세한 문살이 성정을 드러내고 윤나는 마루에 어린 햇빛과 바람이 매화와 같은 운치를 그린다. 산처럼 오래된 나무들과 신성을 지키는 솟대들이 일러주기를, 이 마을에는 고려의 마지막 날 불사이군의 결의를 지키고자 두문동으로 들어간 악은(岳隱) 심원부(沈元符)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고 한다. 이곳은 슬로시티 청송의 덕천마을, 청송심씨(靑松沈氏)의 본향이다.1880년 건립 송소고택 국가중요민속자료솟을대문에 오세창이 쓴 '송소고장' 현판숙박체험·고택음악회 공간으로도 활용이웃한 송정고택 1914년 심상광이 건립1806년 건축 초전댁 아담한 자태 친근감◆송소고택 마을의 중심에 아흔아홉 칸 옛집인 송소고택이 있다. 조선시대 만석꾼이란 호칭으로도 모자라 '이만석꾼'이라 불렸던 송소(松韶) 심호택(沈琥澤)이 1880년경 지은 집이다. 송소고택은 대문채, 안채, 별채,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방앗간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간은 구분되어 있으며 건물마다 독립된 마당이 있다. 대문을 포함해 12개나 되는 문과 조르라니 줄지어 선 장독들, 세 개나 되는 우물이 집의 규모를 말해준다. 여인들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 주는 헛담(내외담)과 여인들의 눈이 되어 준 구멍담, 그리고 기와로 장식한 아기자기 예쁜 담에서 유교사회 여인들의 삶을 슬쩍 느낀다. 고아한 화단에는 은행나무, 단풍나무, 옥매화, 향나무, 전나무 등의 잘생긴 나무들과 온갖 화초가 아취를 자아내고 팔각무늬 문과 빗살무늬 교창, 띠살문, 용자살문 등 다양한 형태의 문살에서 섬세한 솜씨를 가늠한다. 안채의 다락과 사랑의 반침은 언제나 궁금하다.심원부의 후손 중 영조 때 사람 심처대(沈處大)가 있다. 그는 선대가 살던 덕천마을에서 분가해 파천면 지경리 호박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가난했지만 성실했고 효성이 지극해 매일 덕천마을의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거르지 않았다. 어느 날 문안 길에 그는 눈밭에 쓰러진 노스님을 구하게 된다. 이후 심처대 집안의 가세는 나날이 좋아져 만석에까지 이르렀고, 무려 9대에 걸쳐 만석의 부를 누렸다. 광복 이전까지만 해도 '청송에서 대구까지 가려면 심부자 땅을 밟지 않고는 못 간다'는 말이 있었을 정도였다. 심처대의 7대손이 송소 심호택이다. 그는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마을로 이거하면서 송소고택을 지었다. 13년간 수십 명의 인부가 집 앞 움막에서 먹고 자며 집을 지었고, 이 집 대문 여는 삐거덕 소리로 마을의 아침이 열렸다고 한다. 심호택을 99칸이나 되는 거대 주택을 지은 단순 거부로 여겨서는 안 된다. 심호택은 구한말 전국에서 벌어진 의병활동에 많은 군자금을 소문 없이 지원했고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청송 일대에 취지서를 돌려 나라를 구하는 일에 모두 동참하자고 호소한 지사였다. 광복 이후 심호택의 아들 심상원과 그의 아들 심운섭은 가히 선구적이라 할 수 있는 중대한 결정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소유하고 있던 땅의 대부분을 소작농들에게 분배함으로써 지역에서 최초로 자작농이 창설되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이로써 심부자는 '부자'를 내려놓았다. 솟을대문에 송소고장(松韶古莊)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고장(古莊)은 고택(古宅)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한말의 독립 운동가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서예가 오세창(吳世昌)의 글씨다. 집은 1979년부터 25년 정도 비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사이 도둑이 대청마루의 팔각무늬 문까지 뜯어 갔고 풀이 사람 키만큼 자랐다고 한다. 지금 송소고택에는 심처대의 11대손이 산다. 주인 내외가 매일 기름칠로 청소하는 집은 강건하고 윤기가 난다. 송소고택은 오늘날 전통문화 숙박체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큰사랑채, 작은사랑채, 책방, 누마루방, 안사랑방, 찬모방, 별채, 행랑 등 13개의 객실이 있다. 고택에서는 연중 3, 4회 고택음악회가 열리며 떡메치기, 다도, 전통혼례, 청송사과따기 등의 체험도 진행하고 있다. 송소고택은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한국관광의 별 숙박부문 대상을 수상했으며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2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송정고택송소고택의 왼쪽에는 송정고택이 이웃한다. 심호택의 차남인 송정(松庭) 심상광(沈相光)의 집으로 1914년에 지어졌다. 심상광은 일제강점기 때 안동 도산서원장, 병산서원장, 청송향교 전교 등을 지낸 유학자로 지금도 매년 유생들이 송정학계를 열고 있다고 한다. 송정고택은 송소고택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협문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안채, 사랑채, 대문간채가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를 보여 주는 조선 후기 상류층의 전통 가옥이다. 특히 순량한 정원과 양지바른 뒤뜰 우물가의 장독대와 멋진 향나무가 마음을 빼앗는다. 집안 곳곳에는 꽃이 그려진 고무신과 신비로운 청송 꽃돌로 조각한 두꺼비들이 앉아 있다. 방 안이나 마루에 놓여있는 오래된 가구들은 대부분 선조 때부터 실제로 사용해 오던 것들이라 한다. 마루에 오우당(五友堂) 편액이 걸려 있다. 의친왕의 글씨다. 사랑채에는 독립 운동가이자 초대 국무총리를 지냈던 철기(鐵驥) 이범석(李範奭) 장군이 종종 찾아와 머물렀다고 한다. 송정고택 뒤편 산으로 오르는 오솔길은 철기 장군이 거닐던 산책로다. 언덕바지의 큰 소나무에 기대어 내려다보면 송정고택과 덕천마을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덕천마을의 고택들은 대부분 개방되어 있다. 대문이 아예 없는 집도 수두룩하다. 송정고택의 솟을대문도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 사람들이 와서 마당을 밟아 주면 땅이 다져져 풀이 안 난단다. 활짝 대문 열린 마당에 꾹, 꾹, 걸음을 보탠다. 착한 삽살개가 졸랑졸랑 이방인의 걸음을 쫓는다. 송정고택 또한 전통문화 숙박체험이 가능하며 경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초전댁덕천마을의 깊숙한 자리에 초전댁(草田宅)이 있다. 첫눈에 친근한 감정이 드는 집이다. 정면 출입문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큰사랑, 왼쪽에 고방과 작은사랑, 외양간(현재 창고)이 연접해 있는데 안채가 '∩'자형으로 이어져 전체적으로 튼 '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경북 북부 지방 양반 가옥의 평면 구성으로 청송지역 주거 건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큰사랑은 2칸의 사랑방과 2칸의 사랑마루로 구성되어 있고 마루 전면의 기둥이 당시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원주다. 건물의 남쪽과 동쪽으로 토담이 있고 담장을 따라 화단이 곱다. 건물 오른쪽에는 예부터 사용해온 오래된 우물이 남아 있고 집 앞에는 작은 논밭이 펼쳐져 있다. 저절로 피어난 어여쁜 꽃들도 정성으로 가꾸는 화초도 모두 소박하고 순정하다.초전댁은 1806년에 청송심씨 석촌공파(石村公派) 17세인 심덕활(沈德活)이 건립했다. 심덕활은 자신의 셋째 아들인 심헌문(沈憲文)을 요절한 아우 심덕종(沈德宗)의 집에 양자로 보냈는데 헌문의 네 번째 돌을 기념하여 이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1900년에 21세인 심의해(沈宣海)가 고택을 보수했다. 안채 마루의 판문 속으로 보이는 뒤뜰은 그림 같고 사각의 작은 안마당에는 밤마다 우주가 내려앉는다. 처음 집을 지은 이의 마음과 대대로 보살펴온 마음이 더해져 애틋하다. 초전댁은 현재 전통문화 숙박 체험 시설로 활용되고 있으며 경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청송군 파천면 덕천마을 중심에 자리 잡은 송소고택의 풍경. 송소고택은 조선시대 '이만석꾼'이라 불렸던 송소 심호택이 1880년경 지은 집으로 대문채, 안채, 별채, 큰 사랑채, 작은 사랑채, 방앗간채, 사당 등으로 구성돼 있다.심호택 차남이 조성한 송정고택은 송소고택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초전댁은 청송지역 주거 건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손꼽힌다.
2023.10.25
운문사 앞뜰 '처진 소나무' 전설…봄·가을엔 막걸리 뿌려주기도
청도 금천면 임당1리에서 차로 20분 거리에는 운문면 신원리에 위치한 '운문사'가 있다. 운문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9 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다. 여성 스님들이 수도하는 비구니 사찰로도 유명하다. 운문사의 경우 남쪽은 운문산, 북동쪽은 호거산, 서쪽은 억산과 장군봉이 돌아가며 절을 감싸고 있다. 사찰 앞뜰에 있는 '처진 소나무'도 매력적인 관람 요소다. 매년 봄·가을에는 뿌리 둘레에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려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처진 소나무의 수령은 약 500년 정도다. 나무의 높이는 6m, 가슴 높이 둘레는 2.9m, 밑동의 둘레는 3.45m 등이다. 처진 소나무의 경우 유래는 명확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한 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소나무가 자랐다는 설, 한 스님이 절에 잠깐 머물면서 시든 소나무 가지를 땅에 꽂아 두고 생명을 불어넣는 주문을 외워 살려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운문사 인근에는 '운문토속먹거리촌'이 자리 잡고 있다. 먹거리촌은 운문사에 온 관광객들에게 마을 사람들이 난전에서 음식 등을 판매한 것에서 시작됐다. 이후 공영주차장과 집단시설지구를 만들고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먹거리촌의 주메뉴는 파전, 산채비빔밥, 민물 잡어 매운탕, 동동주 등이다. 정지윤기자운문사에 있는 '처진 소나무'. 매년 봄·가을에는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려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 <5>청도군 금천면 임당1리
지난 13일 '경북 청도 금천면 임당1리' 곳곳에는 감나무가 심겨 있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임당1리는 까치산 아래 계곡에 형성된 마을이다. 동쪽 뒤는 산으로 막혀있고 서쪽에는 들이 펼쳐져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곳곳에 그려진 벽화도 마을 풍경과 잘 어울렸다. 마을에 있는 역사적 장소들도 도보로 이동할 수 있었다. 가을 풍경과 잘 어울리는 임당1리를 한 줄로 정리하면 '넉넉한 인심이 있는 마을'이다. 영남일보 취재진이 마을에 들어서자 감을 선물해주는 주민도 있었다. 또 "홍시나 감이 먹고 싶으면 주워가면 된다"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오니 좋다" 등 외지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마을 초상 돕는 상포계도 이어져400여년간 내시 가계 '운림고택'궁궐쪽 북향에 배치 역사적 가치흙담 따라 걷다 마주한 강림서당왜병 격퇴 父子 기리는 임호서원◆임당1리 특징 '큰 마을' '협동 정신'과거 임당1리는 450여 가구가 모여있는 매우 큰 마을이었다. 1972년에 문을 연 임호국민학교에는 한 학년에 반이 2개가 있었다. 해당 학교는 1995년까지 23년간 운영됐으며 졸업생 482명을 배출했다. 김남구(58) 임당1리 이장은 "1970년대까지는 온 마을이 사람들로 넘쳐났다"면서 "당시 시골 마을에 초등학교가 있으면 인구가 많다는 뜻이었다. 한 학년에 반이 2개나 있었다는 건 정말 큰 마을이었다는 의미"라고 했다.마을의 다른 특징은 '협동심'이다. 마을 주민 25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경로회 회원이다.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 서로를 돕기 위한 '상포계' 등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박희상(78) 임당1리 경로회장은 "마을 평균 연령은 70대 이상으로 높지만, 협동 정신은 여전히 굳건하다"면서 "과거부터 마을 주민들 간 계모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이어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운림고택마을에는 특별한 가치와 역사가 있는 '운림고택'이 위치하고 있다. 해당 고택은 '내시종택' '김씨고택' 등으로도 불린다. 운림고택은 조선 후기 궁중 내시였던 김일준(金馹俊, 1863∼1945)이 19세기 후반에 지은 주택이다. 역사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 1988년에는 경북도 민속자료로, 2005년에는 국가민속문화재 제245호로 지정됐다. 운림고택은 임진왜란 전부터 400여 년 동안 내시 가계(內侍 家系)가 이어져 온 곳이다. 해당 고택의 가계는 양자를 들이고 부인을 맞아들인 뒤 궁중으로 들여보내 내시 생활을 하도록 했다. 17대 김문선(1881~1953)에 이르러서 직첩(職牒,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장)만 받았을 뿐 내시 생활은 하지 않았다. 18대 이후부터 정상적인 부자(父子) 관계가 이뤄졌다. 해당 가문은 광복 이전 독립군에게 자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또 마을 하천인 '글방천 제방공사'를 주도하는 등 임당1리 발전에도 기여했다.박 경로회장은 "운림고택은 건축학적으로도 가치가 큰 건물이다. 안채의 좌향이 궁궐이 있는 북향으로 배치돼 있는 등 공간 구성이 일반 백성의 살림집에서 볼 수 없는 구조"라면서 "대형 곳간이 2채나 있어 지난날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림서당·임호서원임당1리에는 역사가 담긴 장소들을 만날 수 있다. 운림고택에서 나와 흙담을 따라 걷다 보면 '강림서당'이 있다. 1872년에 지어진 '강림서당'의 당시 이름은 '강림재'다. 1984년 강림서당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강림서당은 조선 초 왜구 본거지인 대마도를 공격해 공을 세운 박위 장군의 12세손인 박후종 선생과 형제 2위를 추모하는 서당이다. 현재 강림서당은 후손 총회, 연례 제사 등 후손들의 정례행사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마을 입구 인근에는 '임호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임호서원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박경신(朴慶新, 1539~1594)과 쌍둥이 아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920년에 지어졌다. 박경신은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고향인 청도에서 두 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왜병을 물리쳤다. 전쟁 후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훈돼 임호서원에 배향됐다.임호서원은 산형 대문(山形大門) 형태의 외삼문, 강당인 삼우정, 내삼문인 경의문, 사당인 경의사, 보물 전시각 경의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과거 경의관에는 조선 시대 주요한 보물들이 보관되기도 했었다. 서원 정당 안쪽 윗단에는 경의사가 위치해 있다. 경의사는 박경신과 두 아들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다. 매년 음력 3월12일 유림에서 제사를 봉행하고 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조민희 인턴기자 alsgml0656@yeongnam.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운림고택'의 전경. 운림고택은 '내시종택' '김씨고택' 등으로도 불린다. 박희상 임당1리 경로회장이 마을에 대해 설명 중이다.'강림서당' 내부 모습. 박후종 선생과 형제 2위를 추모하는 서당이다. 〈인터넷뉴스부>임당1리 전경. 곳곳에 그려진 벽화도 마을과 잘 어울렸다.
[김희대 박사의 '똑똑한 스마트시티·따뜻한 공동체'] 시민파워 높이는 스마트시티
인터넷을 포함한 모든 스마트시티 기술은 치명적 약점에 노출되어 있다. 1982년 인터넷표준 프로토콜이 개발되고 1995년에 상업용 시장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그 혁신성과 가능성에 환호했다. 전자메일과 화상통화로 멀리 떨어진 사람을 연결하고, 소셜 네트워크와 온라인쇼핑 사이트를 통해 사회경제적 가치를 확대할 수 있으며, 여론수렴, 온라인 투표, 전자의회, 전자공청회와 같은 전자민주주의를 구현하여 시민파워(Civil Power)를 확대한다는 기대감이 고조되었다. 의회, 정부, 법원, 언론과 함께 제5부의 권력으로 불리는 시민파워는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와 함께 꾸준히 성장해 왔지만, 시간적·공간적 비효율성으로 인해 대의 민주주의를 통해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은 이러한 대의제를 벗어나 시민들의 자율적이고 직접적인 통치권 행사를 도울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인터넷이 민주주의를 확장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는 낙관론과 전혀 상반된 결과를 가져왔다. 인터넷 공간은 포퓰리즘과 흥미 위주의 정보공유 장소로 변질되었다. 왜곡과 선동, 가짜뉴스가 범람하며, 현실 민주주의 한계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獨 베를린 공간 설계 활성화 시민 아이디어 온라인 소통가로수 관리·자전거 인프라자율적 개입 하며 권력 행사디지털 새 가치 확장 못하면불평등 위계 강화 수단 전락 지금까지 스마트시티는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희소한 도시 자원을 최적으로 관리한다는 기술의 효율성 가치에 집중하여 왔다. 즉, 스마트시티를 주도하는 정부나 거대 자본과 기술을 집약한 기업이 스마트시티 기술을 사용하여 '권력이동(Power Shift)' 같은 새로운 가치로 확장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한다. 스마트시티는 시민에게 편의성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로 기술과 데이터를 결합하여 도시 미래를 예측하고 예측된 미래에 상응하는 통치규범을 강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캠프가 불법으로 수집한 5천만명의 개인 심리정보를 활용한 사례는 스마트시티 기술이 기존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스마트시티가 기술을 넘어 새로운 가치로 확장하지 못한다면 스마트시티 기술은 정부와 시민의 불평등한 위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빅데이터, 도처에 있는 센서와 사물인터넷망, 생체인식기술 등을 결합하면 스마트시티는 시민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얻는다. 시민은 다수 사람이 사용하는 스마트시티 서비스를 같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나약하고 무기력한 주체다. 스마트시티가 이렇게 통치 수단으로 전이되는 상황에 대하여 광운대 도승연 교수는 '감시와 처벌'을 쓴 미셸 푸코의 말을 빌려와 '스마트시티로 구현된 현대 도시는 새로운 형태의 거대한 판옵티콘(Panopticon, 원형 감옥)'이라고 경고한다. 스마트시티가 시민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는 내재적 가능성에서 자유로우려면, 기술로 도시문제를 해결한다는 효용성 가치를 넘어 시민권력을 확장하고 인간과 기술이 공존한다는 새로운 가치체계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즉 도시의 다양한 사회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도록 행정체계를 지원하며, 도시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시민의 권리행사와 통치활동을 지원하는 스마트시티의 새로운 역할이 요구된다.스마트시티의 가치 확장은 도시경제에도 이득이다. 근대 도시국가는 산업혁명으로 증가한 생산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균일한 품질로 생산하는 평균(mean)적인 인력 공급이 중요해졌다. 근대 공공교육의 투자목표는 산업에 필요한 평균인력 양성이다. 도시 행정의 대상 집단도 평균을 중심으로 일정 편차 범위에 있는 시민들이다. 행정권력의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는 평균시민집단을 규정하고 측정하는 것이다.이제 산업시대는 저물고 디지털 전환이라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평균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고, 도시의 복잡성은 증가했다. 새로운 형태의 도시문제들이 증가하고 도시 관리비용도 대규모로 늘어났다. 사회경제학은 시민참여를 통해 도시를 공동 관리하고 공동책임성을 높임으로써 도시가 지불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최근 여러 도시에서 기술 낙관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스마트시티의 가치를 새롭게 확대하려는 현상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들은 도시를 '효율적인 도시 행정, 균형 잡힌 권력배분, 지속 가능한 공간, 창발적인 혁신환경'으로 규정하고 이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스마트시티의 확장된 쓰임새를 강조한다.이런 관점에서 스마트시티 베를린은 시사점이 크다. 2015년 스마트시티 전략(Smart City Strategie Berlin)을 공포할 때만 해도, 베를린은 다른 도시들처럼 도시가 직면한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이내 기술을 가진 기업과 개발 자금을 다루는 정부 사이에서 시민이 주도권을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시민 행복을 위한 도시를 설계한다면서 정작 의사결정 구조에 시민은 소외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2020년 '기술'이 아닌 '사람'에 중점을 두고 '다시 시작하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새롭게 시작한 스마트시티는 도시 공간을 설계하고 실험하는 모든 단계에 시민참여가 핵심이다. 베를린시는 시민참여를 활성화하기 위해 인종과 연령, 서로 다른 교육 수준, 이주 경험의 유무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을 무작위로 뽑아서 '디지털 베를린 시의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직접 프로젝트에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 'mein.berlin'을 구축하여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구성했다. 베를린시는 시민주도 스마트시티를 운영하기 위해 '시티랩 베를린'이라는 조직을 설립했다. 시티랩 베를린은 개방형 데이터를 활용해 베를린 거리의 가로수에 시민이 직접 효율적으로 물을 주는 '기스 덴 키쯔(Gieß den Kiez)' 플랫폼을 개발하고, 베를린시 정부와 시민이 소통하며 자전거와 관련된 데이터와 인프라를 구축해 가는 '픽스마이베를린(FixMyBerlin)'을 추진하는 등 시민이 자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다양한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이제 스마트시티가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스마트시티를 구현함에 있어 시민이 개입하고 주도하도록 권력을 이양하고 이에 필요한 시민훈련에 투자해야 한다. 시민의 디지털 마인드를 높이고, 인간과 기술의 공존하는 '인간을 닮은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시민에게 권한을 이양하는 것이 가장 투자회수율이 높은 선택이다. 행정 권력이 모든 것을 책임진다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사회적 관리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스마트시티 기술로 완전하고 대등한 시민 권력을 확보하거나 이상적인 도시공동체를 구현한다는 것은 끝끝내 도달할 수 없는 미완의 꿈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의 민주적 쓰임새와 인간과 기술이 함께 진화하며 도시문제를 해결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수고가 없다면 스마트시티는 그저 '텅 빈 목적지'를 향해 갈 공산이 크다. 파우스트의 말처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야말로 최선의 방법이다. <대구테크노파크 글로벌협력센터장>베를린은 2020년 '기술'이 아닌 '사람'에 중점을 두고 '다시 시작하는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다시 시작하는 스마트시티(베를린) 이미지. 베를린시 정부와 시민이 소통하며 자전거와 관련된 데이터와 인프라를 구축해 가는 '픽스마이베를린(FixMyBerlin)'. 시티랩 베를린은 개방형 데이터를 활용해 베를린 거리의 가로수에 시민이 직접 효율적으로 물을 주는 '기스 덴 키쯔(Gieß den Kiez)' 플랫폼을 개발했다. 김희대 (대구테크노파크 글로벌협력센터장)
2023.10.20
[무한 상상과 도전 정신으로 시대를 주도하는 상주 .2] K-콘텐츠 도시를 꿈꾸다
한국의 대표적인 농업도시로 유명한 상주는 오랜 농업의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역사문화 콘텐츠를 갖고 있다. 백두대간과 낙동강을 품고 있어 자연경관마저 수려하다. 지역 곳곳에 아름다운 비경을 숨겨놓은 곳이 바로 상주다. 상주는 천혜의 자연과 역사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K-콘텐츠 도시'로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는 '모자'라는 콘텐츠를 활용해 대규모 국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무한 상상과 도전 정신으로 시대를 주도하는 상주' 2편에서는 농업도시를 넘어 K-콘텐츠 도시로 도약을 꿈꾸는 상주에 대해 소개한다.◆삼백의 고장서 열리는 '상주세계모자페스티벌'각양각색의 모자를 쓴 배우들이 무대에 등장했다. 무대 배경에 설치된 대형 미디어스크린에는 쉴 새 없이 화려한 이미지가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크레인에 매달려 공중에서 무대로 내려온 배우들은 불꽃을 내뿜고, 수많은 드론들은 가을밤 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드론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하트·모자 등 모양을 그려내자 무대에서는 형형색색의 폭죽이 터지며 밤하늘을 수놓았다. 지난 13일 저녁 상주 태평성대경상감영공원 일원에서 열린 '상주세계모자페스티벌' 개막식 주제공연의 풍경이다.올해 처음 시작된 상주세계모자페스티벌이 지난 13~15일 사흘간의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첫 행사지만 포항국제불빛축제,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등과도 견줄 만큼 대규모로 치러졌다. 국내에서 '모자'를 콘텐츠로 내세워 국제 행사를 연 것은 상주가 처음이다. 이색적인 이번 축제에는 무려 10만명이 행사장을 찾았다. 축제 기간에는 '제11회 상주전국한우축제'도 같이 열려 즐거움을 더했다. 지난 13~15일 모자축제 10만명 다녀가…다양한 볼거리 큰 호응관광公 'K-컬처관광이벤트 100선' 선정 지속가능한 축제 기대천혜의 자연·풍부한 역사문화콘텐츠…'K-콘텐츠 도시' 급부상KBS·tvN 드라마 잇따라 촬영…관광명소·농특산물 널리 알려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불린다. 쌀, 목화, 누에고치의 주산지로 명성을 얻었다. 지금은 목화 대신 곶감이 삼백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상주는 아직도 누에고치를 이용해 만드는 전통섬유인 명주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함창읍에 가면 함창명주테마파크와 함창명주박물관, 한국한복진흥원을 둘러보며 한국의 전통 복식문화를 한눈에 접할 수 있다. 한국인은 예부터 전통의복의 하나로 모자를 중요시해 왔다. 지금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모자를 생산하는 국가다. 이에 상주는 '모자'를 콘텐츠로 한 축제를 기획하게 됐다. 상주세계모자페스티벌은 행사 전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1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K-컬처 관광이벤트 100선'에 선정된 것. '2023~2024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외국인이 즐길 수 있는 K-컬처 중의 하나로 당당히 인정받은 셈이다. 상주세계모자페스티벌은 경북도와 상주시가 함께 주최하고, 상주시축제추진위원회와 한국한복진흥원이 공동 주관했다. 특히 '모자축제로 초대 Hat'과 '모돌이 도전 Hat' '세계모자 프린지페스티벌' '올해의 모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관람객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폐막식 일정 중 '올해의 모자'도 관중 호응도가 높았다. 축제장 내 큰 모자, 예쁜 모자, 특별한 모자 그리고 올해의 모자를 관객들의 현장 투표로 선정해 수상작을 가렸다.윤재웅 상주시 축제추진위원장은 "국내 최초 모자축제를 통해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만들어가고자 했다"며 "내년에는 올해의 축제를 보완해 지속가능한 축제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농업 도시를 넘어 'K-콘텐츠' 도시로상주는 동쪽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서쪽에는 백두대간이 우뚝 솟아 있다. 명산과 큰 강을 품은 만큼 아름다운 명소도 많다. 낙동강을 따라서는 경천섬공원, 회상나루관광지, 경천대국민관광지 등 전망이 좋은 명소가 늘어서 있고,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과 상주자전거박물관 등도 위치해 주말이면 가족단위 여행객들로 붐빈다.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산줄기는 소백산을 거쳐 상주에서 속리산에 이른다. 속리산이라고 하면 충북 보은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데, 주요 봉우리인 천왕봉(해발 1천58m), 비로봉(해발 1천32m), 문장대(해발 1천54m) 등은 모두 상주에 속해 있다. 충북 영동과 상주의 경계를 이루는 백화산(해발 933m)도 관광 명소로 빼놓을 수 없다. 높은 산과 골짜기는 수려한 경관을 만들어낸다. 굽이치는 계곡과 폭포, 기암, 우거진 숲, 청량한 공기 등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상주는 유구한 농업의 역사만큼이나 많은 역사문화 콘텐츠를 갖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검지다. 공검지는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 제천 의림지와 함께 삼한시대 4대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또 고대 상주 함창읍에 존재했던 고령가야의 흔적도 전 고령가야왕릉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외에도 후삼국시대 견훤이 지었다는 견훤산성, 고려시대 몽골제국의 침입을 막아낸 금돌산성도 일부가 여전히 존재한다.상주 도심에는 조선시대 경상도 전체를 관할하던 경상감영도 복원돼 있다. 감영을 예전 모습 그대로 복원한 곳은 상주가 거의 유일하다.상주시는 이 같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 콘텐츠를 널리 알리면서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드라마나 영화 산업과 연계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다양한 영상물의 촬영지로 거듭나 K-콘텐츠 도시로 경쟁력을 갖추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성과로 올해 8월부터 방영되고 있는 KBS 드라마가 상주를 배경으로 촬영됐다. 이 드라마에는 상주의 주요 관광지와 함께 농특산물이 등장한다.최근에는 상주에서 tvN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 촬영도 마쳤다. 앞서 상주시는 지난 6월14일 시청 소회의실에서 드라마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곤과 드라마 제작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앞서 2001년 10월부터 2002년 4월까지 50부작으로 방영된 MBC 드라마 '상도'도 낙동강회상나루관광지에서 주로 촬영됐다. 상도 촬영지에는 아직도 10여 개의 전통가옥이 남아있으며, 지난해 3월 드라마 세트장 일부는 상주주막으로 탈바꿈했다.상주는 K-콘텐츠 제작에 유리한 조건을 또 하나 갖추고 있다. 내륙 중심에 위치해 전국 어디에서도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서산영덕고속도로가 지나면서 나들목만 6곳에 달해 고속도로 접근성이 뛰어나다. 서울, 대전, 대구 등 주요 대도시와 이동 시간이 크게 단축됨에 따라 상주는 새로운 물류 거점 도시로도 성장하고 있다.강영석 상주시장은 "상주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을 주는 지역으로 각종 콘텐츠 제작에 좋은 장소"라며 "서울에서도 상주까지 2시간 이내 거리에 도착할 수 있어 접근성도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도 K-콘텐츠를 상주에서 제작하도록 유도해 전 세계에 상주의 명소와 농특산물을 알리도록 노력 하겠다"고 덧붙였다. 글=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지난 13일 상주 태평성대경상감영공원 일원에서 열린 '상주세계모자페스티벌' 개막식 주제 공연 모습. 사흘간 진행된 이번 행사에는 10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 축제를 즐겼다.상주세계모자페스티벌 행사장 곳곳에 설치된 한지 조형물과 한지등이 감성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드라마 '상도' 촬영지인 회상나루관광지에는 아직도 전통가옥 세트장이 남아있다.회상나루관광지에는 여행객들이 하룻밤 묵을 수 있는 객주촌도 마련돼 있다.
[별 따라 이야기 따라 영양에 취하다 .9] 종교의 성지
돌아보면 산이고 구비 돌면 천이다. 육지 속의 섬이고 오지 중의 오지다. 영양의 옛 이름은 고은(古隱)이라, 오죽하면 '숨겨진 곳' 혹은 '숨어있기 좋은 곳'이라 했겠나. 이 고은의 땅으로 산을 넘고 천을 거슬러 불교가 들어왔고 유교와 서학과 동학이 들어왔다. 산마루에서 고갯길에서 서낭당을 만난다. 물가에서 마을 한가운데서 오래된 탑을 본다. 심산 골짜기에서 동학의 치열했던 편린을 발견하고, 별과 가까운 신밀한 함지땅에서 서학의 처절한 고요를 마주한다. 뜨거운 역사적, 정치적, 사상적 힘이 영양 땅 곳곳에 은일이 자리하고 있다. 현리 모전오층석탑 있는 남악사 터사회사업가 권영성이 영성사 세워동학교주 최시형 일월산 죽현 은거영해동학혁명 참가후 터전 쑥대밭석보 머루산 천주교 복자 3명 배출을해박해때 교우촌 신자 13명 순교◆마음으로 세운 전통사찰, 현리 영성사 영양에는 탑이 많다. 대개가 신라 또는 고려시대의 것이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전탑계 모전석탑은 전국에 5개 밖에 없는데 그중 2개가 영양에 있다. 영양에 언제 불교가 전래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홀로 남은 탑들과 여러 폐찰의 기록으로 보아 한때는 불교가 융성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과거 영양의 중심은 현리였다. 영양현의 관아가 있었고 수천 호의 가옥들이 즐비한 지역의 중심이었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동악사, 서악사, 남악사, 북악사 네 개의 큰 사찰이 자리한 지역 불교의 중심이기도 했다. 고려 공민왕 7년인 1358년, 영해도호부에 왜구가 침입해 영양현과 청기현을 거쳐 내륙으로 향했는데, 그때 영양현 관아를 비롯해 현리의 네 사찰이 소실되고 만다. 1773년 편찬된 '영양현읍지'에 '동악, 서악, 남악, 북악의 4곳 사찰은 모두 현리의 옛터에 있는데, 지금도 석탑이 우뚝 솟아 있다'는 기록이 있다. 서악사 터에는 현재 1958년경 창건된 무량사가 위치하고 있다. 북악사 터에는 보물인 삼층석탑과 당간지주만 남아 있다. 그리고 우뚝 솟아 있는 석탑은 보물 제2천69호인 영양 현리 모전오층석탑이다. 석탑이 자리한 곳은 북악의 남쪽, 남악사 터다. 현재 남악사 옛터에는 1940년에 창건된 영성사(永成寺)가 자리하고 있다. '남악'은 현리의 '남쪽에 있는 산'을 가리킨다. 현리 남쪽의 큰 산은 취소산이다. 취소산의 북쪽 지맥이 내려와 작게 솟은 봉우리는 화산이다. 화산이 반변천을 만나 절벽으로 이룬 언덕에 영성사가 올라앉아 있다. 영성사를 지은 이는 일제강점기 때 사회사업가인 권영성(權永成)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법당 현판을 자암(慈庵)이라 편액하고 자신의 이름을 붙여 영성사라 했다 한다. 1881년에 영양읍 서부리에서 태어난 권영성은 집안은 어려웠지만 일찍부터 사업을 시작해 지역에서 손꼽히는 부호가 됐다. 그는 재산을 축적한 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구제 사업을 벌였고 특히 영양향교, 김천중학교, 대구의학전문학교, 영양초·중·고등학교, 화천초등학교, 대구농림학교 등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었다. 그의 장례는 영양군 사회장으로 치러졌고 그를 기리는 송덕비는 영양군 내 거의 각 면마다 세워져 있다. 지금도 그에 대한 영양 사람들의 마음은 각별하다. 영성사는 가운데 석탑을 두고 세 칸 대웅전과 한 칸 산령각, 요사채로 쓰이는 적묵당이 넉넉히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매우 소박하여 언뜻 민가의 느낌도 난다. 창건 당시에는 적묵당이 법당이었으나 1959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해 대웅전이라 편액 했다. 이후 1974년에 현재의 대웅전을 건립해 지금에 이른다. 영성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이며, 2022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중요한 우리의 유산으로 지정한 전통사찰이다. 영성사에는 삶의 철학이 된 유교와 대승불교로 꽃핀 불교가 공존한다.◆동학 교주 최시형의 은거지, 일월면 용화리 죽현 19세기 후반은 절망과 핍박의 시대였다. 1860년 수운 최제우가 인내천과 제세안민을 외치며 동학을 세웠을 때 조선 백성의 반응은 뜨거웠다. '거의 날마다 동학 이야기가 들려오지 않는 날이 없고, 주막 아낙네와 산골 초동까지 주문을 외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1863년 선전관 정운구가 최제우를 체포하러 가는 길에 4백여 리 10여 개 군현을 지나면서 백성의 모습을 목격하고 기록한 자료다. 동학의 세가 급격히 확대되자 조정은 동학을 민심을 현혹하는 사악한 학문이라 규정하고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수운은 1863년 11월 체포되었고, 이듬해 3월 '바르지 못한 도로 사회를 어지럽힌다'는 죄목으로 대구 관덕정에서 처형되었다. 이때 동학의 기본경전인 동경대전과 용담유사 초고본도 불태워졌다. 탄압이 더욱 심해지자 동학의 제2교주 해월 최시형이 관원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거처가 일월면 용화리 일월산의 죽현이다. 죽현은 영양과 봉화를 잇는 고갯길 남쪽에 자리한 마을로 고갯길은 조선중기 이후 장시의 발달과 더불어 개설되기 시작했지만 인가는 드물고 인적도 뜸했다고 한다. 최시형은 1865년경부터 1871년까지 일월산 죽현에 머물렀다고 전해지며 당시 많은 교도들이 몰려들어 동학촌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이곳에서 그는 급격히 확장된 경북 북부지역 교세를 관리하고 소실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집필했다고 여겨진다. 그러다 1871년 최초의 동학혁명인 영해동학혁명에 가담하게 되면서 일월산 동학촌은 쑥대밭이 된다. 혁명군은 3월10일 영해부 관아를 습격했다. 이후 최시형이 이끈 제1진과 본진은 퇴각하여 3월15일 일월산에서 천제를 지냈다. 다음날 일월산으로 관군이 들이닥쳤고 최시형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관군의 포위망을 뚫고 일월산 서북쪽 기슭 울연전으로 탈출했다. 혁명에 참가한 이들을 붙잡기 위해 관군이 대대적으로 잡아들인 이들은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해 셀 수 없이 많다. 영해동학혁명에 몸 바친 이는 기록에 남겨진 이름만 114명, 마지막 일월산 교전으로 사망한 이들 중 13명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2021년 최시형의 은거지로 추정되는 터가 일월산 용화리에서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일월산 정상 부근인 해발 1천m 지점에 자리한 은거지 터는 숨어 지내기에 적합한 지형적 조건을 갖춰 200여 명 이상이 집단으로 생활했다는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식수원인 우물과 샘물도 여러 군데서 발견됐고 수령 150년가량의 살구나무도 그때 식재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해혁명 이후 이어진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을 기억한다. 모두가 하느님이라는 것, 우리 모두는 존엄하다는 것. 시천주, 이 한마디가 민족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시대가 있었다.◆천주교 성지, 석보면 포산리 머루산영양군 석보면 포산리는 포도산 구릉지에 형성된 마을이다. 깊은 산골짜기에 형성된 개척마을로 예로부터 산머루가 많아 머루산, 구머리 또는 포산(葡山)이라 했다. 구머리는 머루를 일컫는 방언이고 포산은 머루산의 한자표기다. 포산 마을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구불구불 좁은 길을 가파르게 오르는 길밖에 없다. 마주 오는 차라도 만나면 망연해지고 마는 외길을 3㎞ 이상 올라가야 비로소 마을에 닿는다. 심산유곡 포산리는 함지박 같은 분지 땅에 쏙 들어 앉아 있다. 임진왜란 때는 인근 주민들의 피란처였고 1801년 신유박해 때는 홍주, 예산 등 충청도 일대의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들어와 교우촌을 이루었다. 15년 뒤인 1815년 을해박해가 일어났다. 포졸들이 머루산 교우촌을 덮쳤고 33명의 신자들이 체포되어 안동감영으로 이송됐다. 이때 20명은 풀려났으나 나머지 13명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대구감영에서 순교했다. 교우촌이 사라진 머루산에는 이후 동학교도가 성행했다. 구한말에는 신돌석 의병대장이 이곳을 드나들었으며 독립운동가 이상동 선생이 교회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2014년 8월16일, 머루산 교우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순교한 김시우 알렉시오, 이시임 안나, 김강이 시몬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로 시복되었다. 머루산은 천주교 복자 3명을 배출한 성지다. 영양군에서는 천주교 안동교구와 협력해 머루산성지를 정비하고 역사의 현장으로 보전하고 있다. 성지는 아담하고 고요하다. 성모상과 십자가 고상을 가운데 두고 나무십자가의 길 14처가 에워싸고 있고, 맞은편에는 미사와 휴식을 할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주변으로는 3백 그루의 머루나무를 심었다. 시간이 흐르면 머루나무는 자라 검붉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머루의 속(屬)명은 바이티스(Vitis)다. 이는 생명을 뜻한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참고=영양군지, 대구경북연구원.영양군 석보면 포산리에 위치한 천주교 머루산 성지. 신유박해 당시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숨어들어와 교우촌을 이뤘다.사회사업가 권영성이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영성사는 가운데 석탑을 두고 대웅전과 산령각, 적묵당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머루산 성지로 가는 길에 남아있는 반보기 터.영성사 한쪽에 세워져 있는 비석들.
2023.10.19
"자연소리 박물관 콘셉트로 가송리 매력·가치 극대화"
안동시 가송리의 지붕 없는 박물관 콘셉트는 '자연소리 박물관'이다. 가송리의 자연경관의 매력과 가치를 극대화하고 자연소리를 체험을 통해 관광명소로 만드는 것이다.마을 박물관의 경우 가송리 노인회관 뒤 공터가 적절해 보인다. 가송리에 위치한 자연부락 중 가장 크고 환경이 잘 보존됐기 때문이다. 마을 박물관에서는 자연의 소리, 풍물 열두 가락의 소리 등을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면 좋은 관광자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마을박물관 학교 교육 공간, 주민 생애 전시 공간 등으로 활용하기 적절하다.더불어 쏘두들마을 전망대의 경우 가송리의 풍광과 자연소리를 체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면 좋은 관광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가사리 공주당 아래 당산목 쉼터는 가사리 동제 진행 과정을 알 수 있도록 사진과 그림 등으로 전시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가사리 다리 입구의 경우 다리 아래 낙동강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면 자연소리 박물관 콘셉트에 잘 어울린다.이외에도 농암종택과 고산정의 각 공터의 경우 장소의 관련 인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공간으로 조성하면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가송리 주민 박수열(75)씨가 마을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 <4> 안동 가송리-자연경관 아름다운 마을
경북 안동과 봉화의 경계면에 있는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마을이다. 마을에 흐르는 낙동강과 청량산이 이뤄낸 자연 풍광에 저절로 감탄의 소리가 난다. 최근에는 드라마, 예능 등 TV 프로그램 촬영지로 가송리가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의 발길이 닿고 있다.전통문화 보존·관광 콘텐츠 개발 노력관광 안내역할 주막촌 조성도 막바지농암종택은 한옥스테이로 인기몰이일엽편주 등 특산물 찾는 이들도 많아◆고산정청량산 암벽 옆에 위치한 '고산정(孤山亭)'에 올라서니 낙동강에 윤슬이 반짝반짝 빛나 시선을 사로잡았다. 멀리 보이는 '가사리 다리'도 풍경과 잘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고산정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선 두 가지 방법으로 감상해야 한다. 고산정에 올라가 마을 전체와 풍경을 감상하는 것과 고산정 건너편에서 감상하는 방법이다. 건너편에서 본 고산정도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고산정은 퇴계 이황(1501~1570)의 제자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1530~1604)가 1564년에 지은 정자다. 학문과 수양을 위해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강물이 넘어오지 못하게 자연석으로 축대를 높이 쌓은 후 지어 올렸다. 이황도 고산정을 자주 찾아와 빼어난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금난수의 15대손 금순교(58)씨는 "할아버지가 젊을 때는 자신의 서실 성재(惺齋)에서 학문을 수양했다. 중년이 됐을 때 이황 선생을 비롯한 주변 유림과 학문을 수양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면서 "마을 풍경이 아름답지 않은가. 할아버지도 청량산을 다니다 이곳의 경치에 매료돼 자리 잡은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고산정은 1992년 경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이후 경북도와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중이다. 고산정은 다양한 TV 프로그램에 배경지로 등장했다. 2018년 tvN에서 방영한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유진(이병헌)과 애신(김태리)이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장면에 나왔다. 또 최근 ENA·SBS Plus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자기소개·마지막 선택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또 최근에는 금난수의 후손 모임인 봉화금씨 관찰공파 성재문중회가 고산정 건너편에 '고산정 주막촌'(가칭)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경북도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는 고산정 주막촌은 3개 동으로 구성된다. 고산정과 금난수를 소개하는 곳, 가송마을 관광 안내소, 특산물 판매점·무인 카페 등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현재는 공사 마무리 단계다. ◆농암종택고산정 앞 낙동강을 따라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농암종택'이 위치해 있다. 농암종택은 조선 시대 문신이자 '어부가'로 유명한 시조 작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가 태어나고 성장한 집이다. 1370년에 지어진 이 집은 농암의 고조부인 '이헌(李軒)'이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는 도산서원 인근 분천마을에 있었다. 1976년 안동댐 건설 때 마을이 수몰지에 편입돼 종택과 사당 등이 사방으로 흩어지게 됐다. 이후 영천 이씨 문중의 종손이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농암종택은 사당·안채·사랑채·별채·문간채 등이 있는 본채와 긍구당(肯構堂)·명농당(明農堂) 등의 별당으로 구성돼 있다.농암종택은 한옥스테이로도 운영 중이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기호에 따라 사랑방·내실·객실·대문채로 이뤄진 사랑채와 별채·긍구당·명농당 등 독채를 빌려 숙박할 수 있다. 숙박객들을 대상으로 매주 화요일 오후 8시 안동문화에 관한 강좌도 열린다. 사전 신청 시 종택 안채에서 종손들의 강의를 들을 수 있다.또 농암종택 종부의 손을 통해 대대로 빚어 온 가양주 '일엽편주'도 인기를 얻고 있다. 일엽편주는 이현보의 어부가 구절에서 따왔다. 감미료 없이 쌀과 물, 누룩으로만 빚어낸 전통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했다.◆가송리 자랑 '협동 정신' '자긍심' '전통문화'가송리의 자랑은 '협동 정신'이다. 가송리 입구에 들어서면 도로변에 다양한 꽃이 심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만든 꽃밭 길이다. 김향숙(여·55)씨는 "마을 볼거리 중 가장 자랑하고 싶은 건 마을 입구에 있는 꽃밭 길"이라면서 "주민들이 협동해 만든 만큼 의미가 크다. 마을의 자랑거리도 소통과 협동이 잘된다는 점"이라고 했다.주민들은 마을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2019년 '가송리 팜 카페'는 가송리 마을회관 옆에 문을 열었다. 부녀회 회원들이 공동으로 운영 중이다. '농촌 힐링 카페'를 테마로 청국장·두부 만들기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싶다면 사전 예약으로 가능하다. 전영자(여·61) 가송리 전 부녀회장은 "가송리 팜 카페에서 청국장·두부를 만들어 보신 분들은 맛에 놀란다. 다들 맛있다고 칭찬을 많이 하신다"면서 "마을이 공기와 땅 등이 좋다 보니 가송리에서 자란 곡식으로 식품을 만들면 더 맛있다"고 설명했다.마을 주민들의 '자긍심'도 높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만족도가 높다는 것. 가송리에서 평생을 살아온 박수열(75)씨는 "어느 지역을 가봐도 가송리보다 좋은 곳은 없다. 주민들 대부분도 가송리를 참 좋아한다"면서 "인구가 유출되면 빈집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 마을의 경우 빈집이 없다. 도시 사람들이 땅을 사려 해도 다들 팔지 않으려고 할 정도로 마을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했다.가송리는 전통문화도 잘 보존된 곳이다. 가송리는 예부터 공민왕의 딸을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정월 대보름날'과 '단오'에 동제를 지낸다. 제사는 마을의 제례 의식, 12채 가락, 진법치기(제관과 풍물패가 원진과 미지기진을 펼치며 윗마당과 아랫마당을 오르내리는 것) 등을 잘 보존하면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구 유출 등으로 동제를 이어받을 사람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한 주민들의 자체적인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마을에서 동제를 오랫동안 지낸 금세연(70)씨는 "동제를 보존하기 위해 악보를 직접 만들어 2018년 지역 소극장에서 주민들과 동제 공연을 했다"면서 "풍물·제물 등 실제 제사 모습을 최대한 그대로 재현했다"고 설명했다.정지윤·조현희기자※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고산정 건너편에서 내려다본 가송협곡과 청량산. 오른쪽에 보이는 정자가 고산정이다. 농암의 학덕을 기린 분강서원. 분강촌 내 농암종택 옆에 위치해 있다.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대구권 의대 교수 8명 사직서 제출…정부 대화 촉구에도 의료계 강경한 태도
의협 새 회장 강경파 임현택 당선…'의대 증원 논쟁' 고조 될듯
많이 본 뉴스
오늘의운세
용띠 3월 29일 ( 음 2월 20일 )(오늘의 띠별 운세) (생년월일 운세)
영남생생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