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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우의 웹3.0과 밈코인] <18> 블록체인과 AI 기술 융합으로 웹3 시대 콘텐츠 혁신 주도하자
영어 단어 트레일블레이저(trailblazer)는 삼림이 울창한 곳이나 미개척지 등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길을 표시해 주는 사람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어떤 분야를 개척하는 선구자이거나 이런 역할을 하는 기술을 일컫는 말이다. 콘텐츠유니버스코리아는 2023년 11월 8일부터 10일까지 3일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행사로, 참가자들이 72시간 동안 텐트에서 캠핑하면서 콘텐츠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즐기는 축제였다.(https://contentsuniverse.com/) 이 행사는 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웹3 시대의 트레일블레이저로 주목받고 있다. 한편, 웹3 분야에서 최근의 트레일블레이저는 EDNS(Ether Domain Name Services)이다.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EDNS 도메인은 이더리움 위에 사이드체인 및 확장 솔루션인 폴리곤(Polygon)을 기반으로 구축된 탈중앙화된 이름 서비스로, 닷웹3(.web3)로 끝나는 주소를 제공한다.(https://www.EDNS.domains/) 이 주소는 웹3 서비스의 주소를 쉽게 기억하고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보다 많은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EDNS는 이메일, 저장공간, NFT, DeFi, 게임Fi, 메타버스 등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지원하기 위해 확장될 예정이다.EDNS는 대중화를 위한 첫 걸음으로, 닷이스(.eth)로 끝나는 기존 ENS 보유자들에게 닷웹3의 EDNS 도메인을 무료로 제공했다. 오픈씨(opensea.io)에 접속하면 ENS와 동일한 이름이지만 확장자가 다른 EDNS가 자신의 계정에 존재하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림). EDNS는 2022년에 시작되었지만, 2023년 연말이 다가오는 현재에도 EDNS 2.0의 본격적 출시 시기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웹3 분야의 새로운 혁신은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이다. 이미 대화형 AI 서비스는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그 대표적인 예로는 챗GPT, 구글 Bard, 메타 Llama 등이 있다. AI 기술을 웹3의 도메인, 스토리지, 통신 등에 적용하면, 사람들이 웹3에 요구하는 다양한 요구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솔루션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웹3 서비스를 입력하면, 생성형 AI가 가격과 이용 가능 여부 등을 고려하여 최적의 EDNS 도메인을 추천해줄 수 있다.이제는 블록체인과 AI 기술이 만나야만 웹3의 중추적인 로드맵을 그릴 수 있는 시기이다. 따라서 웹3의 확산에 의심 가득한 시선을 보였던 정부도 벤처 기업의 이 분야 진출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학계에서도 블록체인과 AI의 융합이 디지털 미래 구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https://www.elspub.com/journals/blockchain/special_issues/blockchain-and-artificial-intelligence-synergies-and-opportunities ) AI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기계학습을 강화하고 있다, 지능정보화의 선두주자이다. 산업 전반에 걸쳐 예측 가능한 정확성과 미래 통찰력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미래 기술 발전의 핵심이다. AI가 지닌 강점을 블록체인 분야에 적용하면, 웹3의 핵심 서비스인 디앱(dApp) 제품의 투명성과 불변성을 보장할 수 있다. 해킹에 대한 디지털 지갑의 보안을 강화할 수 있다. 또한 분산화된 원장(ledger)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AI는 미래를 예측하는 기계이다. 따라서 의료, 금융, 물류 및 제조와 같은 분야에서 최적의 확률을 지닌 분산원장기술(DLT) 구조를 알려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부산항은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 물류 시스템을 도입해 화물자동차 터미널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향후 이러한 시스템을 해외에 수출하려면, 지역적 특성이 다른 해외 개별 항구의 화물 운송 시간과 비용, 경로 추적 로그 시스템에 맞게 DLT를 재구성해야 한다. AI는 숨겨진 최적의 물류 경로를 찾아내고 안전성, 신뢰성 및 보안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소비자가 만나는 웹3 화면의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스마트 컨트랙트 시스템이 백엔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컨트랙트의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AI 알고리즘에 의해 자동으로 해당 서비스가 실행되는 지능화된 블록체인을 구현할 수 있다. 스마트 계약과 AI 기반 의사결정의 융합을 통해 웹3 서비스는 사회, 경제, 문화 전 분야로 확산될 수 있다.웹3 대중화를 위한 관건은 바로 디지털 지갑의 편리성과 보안성이다. 그러나 대화형 AI 모델을 적용하면 디지털 지갑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경험(UX)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코인과 토큰, 즉 가상자산과 관련된 개인 정보 보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 단계 더 나아가면, 블록체인과 AI의 통합 시스템에서의 데이터 수익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데이터의 생성 출처와 유통 경로가 추적되기 때문이다.또한 블록체인과 AI 기술이 적절하게 결합되면, AI 제품과 서비스는 블록체인으로부터 무수히 다양한 가능성을 얻을 수 있다. 빅데이터를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AI는 기본적으로 중앙에 위치한 서버를 중심으로 패턴을 찾아내고 알고리즘을 최적화한다. 하지만 집중성으로 인해 데이터 수집과 처리의 효율성은 높지만 신뢰성은 낮아진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분산형 AI 모델과 지분증명(PoS) 응용 서비스는 중앙성의 부작용을 줄이고 블록체인과 AI의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웹3와 AI 기술의 결합은 차세대 디지털 혁명을 가속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융합에는 도전이 따른다. 신기술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혁신곡선에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으로 불리는 시장 침체기를 극복해야 한다. 이외에도 실무자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은 환경, 사회, 거버넌스, 즉 ESG의 3대 요소이다.웹3와 블록체인을 둘러싼 에너지 소비와 사기(scam)라는 프레임은 우리 사회에 이미 깊이 자리 잡았다. 따라서 우리 앞에 놓인 디지털 ESG와 윤리의 특별한 과제를 제대로 이해하여, 웹3와 AI 기술이 융합되어 이전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이슈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영남대 교수·사이버감성연구소 소장, nft-korea.eth> 박한우 교수는?박한우 영남대 교수는 대구에서 초중고를 보내고 한국외국어대(학사), 서울대(석사), 미국뉴욕주립대(SUNY-Buffalo)(박사)를 졸업했다. 네덜란드 왕립아카데미(NIWI-KNAW)와 옥스퍼드인터넷연구원(OII) 등 글로벌 연구기관에서 근무했다. 영남대 부임 이후에 WCU웹보메트릭스사업단, 세계트리플헬릭스미래전략학회, 사이버감성연구소 등을 주도했다.물리적 경계 속에 한정되어 있던 인간관계와 시대이슈가 온라인을 통해서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기존 법칙에 도전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빅데이터 네트워크 방법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데이터 기반 주요 연구방법론인 과학계량학(scientometrics), 하이퍼링크분석(hyperlink network analysis), 웹계량학(webometrics), 대안계량학(altmetrics), 트리플헬릭스(triple helix) 등을 국내에 소개하고 선도해 왔다. 하이퍼링크 연결망은 INSNA(International Network for Social Network Analysis) Connections가 출판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 목록에 포함되기도 했다.SCImago-EPI Award, ASIST Social Media Award 등 국제 저명 학술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Quality & Quantity, Journal of Contemporary Eastern Asia 편집위원장(EIC)을 현재 맡고 있다. 최근에는 Scienceasset.com의 웹3 국제학술지 ROSA Journal의 초대 편집위원장으로 위촉되었다.사회연결망과 빅데이터를 통해서 데이터와 정보의 흐름 및 지식생산과 혁신체제 관련 이슈를 계량적으로 분석하는 전문가로서 SSCI급 저널에 100편 이상의 논문을 출판했고, 최근 2023년 5월에 국제커뮤니케이션학회(International Communication Association)가 선정하는 석학회원(ICA Fellow)으로 뽑혔다.글로벌 연구성과에 못지않게, 이미 오래 전부터 수도권과 지방간 격차가 심해지면 우리나라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고 지적하는 등 국내외 이슈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창의적 지식을 보이고 있다. 디지털 기술과 데이터 활용에 관한 중앙정부 및 지자체 자문위원으로서 이 분야에서 소외계층의 삶의 개선과 지역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특히 빅데이터로 보는 우리 지역 세상을 탐구하자는 방향에서 '빅로컬 빅펄스(Big Local Big Pulse)' 랩을 운영하면서, 데이터 기반한 이슈탐지와 융합학문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EDNS 기존 보유자에게 제공한 EDNS 주소. 박한우 영남대 교수
2023.11.12
XMZ 각 세대의 대학 생활은?…'최루탄·시위' '스펙 쌓기' '코로나19' 등 변화
젊음의 상징인 '대학 생활'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X·M·Z 각 세대는 각기 다른 대학 생활을 경험했다.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X세대의 경우 '최루탄' '시위' 등과 뗄 수 없는 대학 생활을 경험했다. 또 대학생 당시 IMF를 경험한 세대도 X세대다. M세대의 경우 '대외활동'라고 정의할 수 있다. 졸업 후 취업난이 본격화되면서 '스펙'을 쌓아야 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대학 생활을 경험하고 경험 중인 Z세대는 코로나19 시기에 '비대면' 대학 생활을 경험했다.◆X세대 '격동의 대학 생활'…최루탄·시위·IMF 등 겪어'X세대(1965년생~1979년생)'의 가장 기억 남는 대학 생활 장면은 '체류탄'이다. 대학가마다 최루탄 냄새가 늘 코를 찔렀다. 또 사복을 입은 경찰들이 강의실 곳곳에 배치되기도 했다. X세대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시기다. 대학에는 늘 최루탄의 냄새가 났다"면서 "너나 할 거 없이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선배를 따라가기도 동기를 따라서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에게 '컴퓨터'는 생소한 기기였다. 앞선 X세대의 경우 대학 생활 중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다. 후반 X세대는 강의에서 포털 사이트 가입하기 등을 배웠다. X세대는 "요즘 공대생들은 캐드(CAD)를 사용하지만 우리 때는 직접 손으로 다 그렸다. 컴퓨터가 대중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면서 "컴퓨터가 보급된 후에는 강의에서 활용 방법을 배웠다. 지금이라면 당연한 컴퓨터 사용이 당시에는 혁신이었다"고 했다. 대학생 당시 'IMF'(1997)를 경험하기도 했다. IMF가 발생하기 전에는 졸업 후 취업은 선택에 따라 할 수 있었다. 대기업, 중견기업, 공무원 중 희망 업을 선택하면 됐던 것. 그러나 IMF 이후 상황은 극명하게 변했다. 합격 후 입사를 앞두고 취소되는 경우 등이 발생한 것. X세대는 "IMF 전의 경우 원하는 직장을 골라 갈 수 있을 정도로 취업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면서 "IMF 이후 취업 취소, 등록금이 없어 휴학·퇴학하는 경우 등이 많았다. 우울한 시기의 연속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격동의 변화를 겪은 세대에도 '대학 시절 낭만'은 존재했다. 통기타를 둘러메고 무궁화호를 타고 떠나는 것. '막걸리' 역시 X세대의 대표 낭만이었다. 또 '대학가요제' 역시 해당 시대에 대표적인 문화였다. MBC에서 지난 1977녀부터 2012년까지 개최된 대학가요제는 당시 다양한 스타들을 발굴하기도 했다. X세대는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다. 통기타를 둘러메고 무궁화호를 타고 떠나는 게 우리 시대의 최고 낭만이었다"면서 "대학가마다 막걸리 집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대학가요제 수상자 무한궤도, 전람회 등 당대 스타였다"고 설명했다.◆M세대 '취업 걱정 세대'…'대외활동' '토익' 등 스펙 쌓기 열중1980년에서 1994년에 태어난 'M세대'는 본격적으로 '취업 걱정'과 함께 대학 생활을 경험한 세대다. 이들 시기에는 '대외활동' '토익' 등이 중요시됐다. 기업이 원하는 스펙을 미리 갖춰야 했기 때문. M세대는 "대외활동 2~3개는 필수적으로 해야 했다. 유명한 대외활동 프로그램은 경쟁률도 어마어마했다. 대외활동을 정리해주는 포털사이트는 반드시 접속해야 했다"면서 "합격을 위해 합격자의 자소서를 받아 보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다. 스터디, 학원 등 토익 점수를 높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M세대에게 대학 생활 로망을 갖게 해준 프로그램은 '논스톱 시리즈'다. 논스톱은 2000년부터 2005년까지 MBC에서 방영된 국내 최장수 시트콤 시리즈다. 가상의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들의 헤프닝을 그린 캠퍼스 물이었다. 방영 당시 초·중·고등학생이었던 M세대는 논스톱을 보면서 대학 생활 로망을 그렸다. M세대 "논스톱을 보면서 대학 생활의 로망을 꿈꿨다. 대학 입학을 하면 꼭 기숙사 생활을 해야지 라는 등 생각을 했다"면서 "대학에 입학 후 로망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대학 생활의 대표적인 문화는 '내일로' '워킹홀리데이'였다. 한국철도공사에서 발매하는 연속 7일 또는 선택 3일로 열차에 탑승할 수 있는 탑승권이었다. 초기 만 18~24세 젊은 층만 이용할 수 있었다. 방학 때는 무궁화·새마을호 등 기차에는 배낭을 메고 내일로를 떠나는 대학생들로 가득했다. '관광 취업'이라고도 불리는 워킹홀리데이는 외국에서 자유롭게 거주, 취업, 여행 혹은 공부 등을 할 수 있다. 당시 인기 있던 국가는 '호주'였다. 워킹홀리데이 인원에 제한이 없다는 점, 시급이 높다는 점 등이 M세대 대학생들에게 인기 요소였다. M세대는 "대학생이라면 내일로는 반드시 경험해봐야 했다. 기차 시간표에 맞춰 친구랑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옷 부피가 적은 여름이 겨울보다 훨씬 인기 있었다"면서 "워킹홀리데이 역시 인기였다. 해외에 장기간 체류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인원 제한이 있었던 다른 나라에 비해 호주는 인원 제한이 없어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Z세대 '비운의 코로나 학번'…비대면 중심 MT·OT도 못해'Z세대(1995년생~2012년생)'의 경우 '비대면 대학 생활'에 익숙한 세대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대학 생활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비운의 코로나 학번'이라 부르기도 한다. Z세대는 "대학 생활을 떠올리면 축제나 MT보다 비대면 강의가 먼저 떠오른다"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활동이 새로운 대학문화로 자리 잡았다. 강의, 학과 생활 등 관련 공지사항도 비대면인 카카오톡 등을 통해 안내받는다. 코로나19 시기 대면으로 안내 사항을 공지할 수 없다 보니 강의마다 카톡방을 만들어 공지를 전달한 것. Z세대는 "대부분 오픈 카톡방을 통해 과제나 성적 관련 질문을 한다"면서 "답변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면으로 질문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고 했다. 또 대학가에는 '줌(ZOOM)' '구글미트'등 화상회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문화도 생겨났다. 과거 조모임은 반드시 대면으로 해야 한다는 인식이 비대면이 익숙해지면서 변화가 생겨난 것이다. Z세대는 "조모임도 줌 등을 이용해서 모인다. 따로 장소를 잡지 않아도 되는 등 편하다"면서 "또 캠으로 자신이 모습을 공유하며 함께 공부하는 방식인 온라인 독서실도 인기다. 비대면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비대면이 더욱더 익숙해졌다"고 설명했다. 대학 생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MT' 'OT' '축제' 등도 이들에게는 생소한 경험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축제, MT 등이 취소되면서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Z세대는 "MT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해 아쉽다"면서 "아쉬운 마음에 동아리방에 모여 몰래 술을 마신 적도 있다"고 말했다. M세대와 마찬가지도 이들 역시 졸업 후 '취업' 걱정이 큰 세대다. 코로나19, 불경기 등이 이어지며 신입사원 모집 등이 줄어들었기 때문. 또 코로나19로 인해 현장 실습·인턴·대외활동 등을 많이 하지 못하면서 취업의 부담이 크게 작용한다. Z세대는 "경기가 안 좋다 보니 일자리 공고가 많이 없다. 지인 대부분도 취업에 대해 고민이 많다"면서 "실무 경험, 인턴 등 코로나19로 인해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가 많다. 취업 시장에서 원하는 스펙을 만들지 못해 걱정이 크다"고 했다.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이형일기자 hilee@yeongnam.com조민희 인턴기자 alsgml0656@yeongnam.com젊음의 상징인 '대학 생활'도 시대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 X·M·Z 각 세대는 각기 다른 대학 생활을 경험했다. 사진은 영남대 경산캠퍼스에서 열린 '개교76주년 기념 천마대동제'에서 학생들이 돗자리를 펴고 나무그늘에 앉자 축제를 즐기고 있는 모습.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격동의 시대를 겪은 X세대도 대학 시절 낭만이 있었다. 그중 '통기타'는 낭만의 대표 아이템이었다. 영남일보DB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았던 X세대 시기 대학 생활은 최루탄, 시위 등으로도 이어졌다. 사진은 연세대생 고(故)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장면. 연합뉴스M세대에는 '취업 걱정'으로 대학 생활을 보낸 세대다. 대외활동, 토익 등 회사 지원 스펙이 중요해졌다. IMF 전 대학 생활을 경험한 X세대 이후 취업에 대한 걱정은 늘 대학생들에게 있었다. 영남일보 DBZ세대는 코로나19와 함께한 '비운의 코로나 학번'이다. 사진은 코로나19 확산 당시 대구 북구 경북대 인근 대학로 모습.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소통이 새로운 대학문화로 자리 잡았다. 카카오톡 캡쳐
2023.11.10
[논설위원의 직터뷰] 박창원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대구경북 해방공간 민중의 삶은 지금 우리와 맞닿아 있죠"
'일요일은 쉽니다.' 영남일보 1947년 10월18일자에 보도된 기사다. 대구 달성동의 어느 기와집에 붙어 있는 글귀였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이런 글을 써서 붙였을까. 해방 이태 뒤인 그해 5월 경북에는 콜레라가 번졌다. 그해 말까지 4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졸지에 가족과 이웃을 잃은 사람들은 망연자실했다. 해방 직후부터 '삼순구식(한 달 동안 아홉 번 밥을 먹는다)'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민중의 삶은 비참했다. 식량난으로 촉발된 대구 10월항쟁은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해방의 기쁨은 온데간데없었다.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넘기기가 숨찼다. 일없이 빈둥거리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다. 희망은 희미했고 삶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했다. 그래도 살아야겠기에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부여잡으려 했다. 달성동의 그 집은 지푸라기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꼭두새벽부터 문전성시를 이뤘다. 장봉사가 주인인 점집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와 하루도 쉴 틈이 없자 '일요일은 쉽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였던 것이다. 휴일 개념조차 흐릿했던 빈한한 시절이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장봉사가 건넨 부적으로 위안을 삼았다. 아이의 저고리에 이름을 써서 세 번 절하면 돈을 벌고 병이 낫는다는 식의 기이한 처방에 감지덕지했다. 없는 살림에 적지 않은 복채를 내고 받은 대가였다. 해방공간의 신문 기사를 인용한 장봉사 이야기는 박창원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가 펴낸 책 '조금 지난 뉴-쓰'(2019)에 '달성동 장봉사'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이 책은 할머니 무릎베개로 옛이야기를 듣듯 '멀미 나는 부영뻐스' '70년 전의 스카이캐슬' 등 다양한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경북의 시간여행은 '오늘 보는 그제 뉴-쓰'(2023)로 이어졌다. 그는 앞서 '내가 네게 묻다'라는 인물 에세이를 내기도 했다. 박 교수는 신문 지면 위를 누비며 대구경북 해방공간에서 펼쳐진 숱한 이야기들을 되살려 맛깔나게 풀어낸다. 그의 글은 2017년 연재된 '영남일보로 보는 시간 여행'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박 교수의 흥미로운 시간여행 얘기를 들어봤다. 2017년 '영남일보로 보는 시간여행' 연재 2019년 '조금 지난 뉴-쓰' 책 시리즈 시작 올 4년 만에 후속여행 '오늘 보는 그제…''지금의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란 궁금증 1945~50년 지면 누비며 숱한 얘기로 풀어 내년 달서아트센터 예술아카데미 특강 ▶해방 후 삶이 힘들었던 탓에 사람들이 점집을 많이 찾았네요. "대구경북에는 당시 점쟁이가 많았습니다. 오죽했으면 '대구경북의 명물'이라는 말이 나돌았을까요. 불안한 삶의 탈출구로 점쟁이를 찾는 수요가 많으니 공급 역시 늘어난 것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불안한 현실의 또 다른 돌파구는 교육열로 나타났습니다. 중학교의 입학 문이 좁다 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수업이 성행했습니다. 음악·미술 같은 예능과목은 정규 수업에서 배제될 정도였습니다. 곧 수능이 치러지는데요, 그때도 다들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려 했습니다. 1950년 대구지역 남자중학교의 졸업생은 750여 명이었는데 졸업생 열 중에 아홉은 서울의 대학을 선호했습니다. 당시 중학교는 고등학교 기간을 합친 6년제였습니다. 같은 해 여중 졸업생인 70여 명도 엇비슷했습니다. 다만 부모들의 반응이 달랐는데요. 대학 진학을 말리는 분위기였죠. 여학생들은 중학 졸업 나이가 대개 20세를 넘었습니다. 대학 4년을 지나면 나이가 너무 많아 혼기를 놓칠 수 있다는 걱정을 했죠."▶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과 흡사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해방공간 대구경북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뭡니까."시작은 단순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어디서 왔을까'였습니다. '우리'는 대구와 경북 사람이니까 굳이 사족을 달 필요가 없겠지요. '어디'는 해방공간이었습니다. 해방은 우리가 지금 발 딛고 살아가는 노정의 첫 단추를 끼운 시기입니다. 가장 가까운 과거죠. 명망가나 위정자의 삶보다는 민중들의 일상에 눈이 먼저 갔죠. 지금의 시민들 삶과 비슷할 테니까요. 새로이 입은 옷의 첫 단추가 어찌 끼워졌는지도 궁금했습니다. 해방과 미군정기, 6·25전쟁으로 이어지는 억압과 전환의 시기에 대구경북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거창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과거는 현재를 비추고 미래는 현재를 기반으로 나아간다잖아요."▶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모형이라는 점에서 해방공간을 선택한 의미가 있군요. 그렇더라도 굳이 신문 기사로 그 시기를 조명하려는 이유는."1949년 대구의 집값이 내린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민생고를 견디다 못해 집을 담보로 고리대금업자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렸습니다. 대구부내 열 중에 여덟 집은 빚에 쪼들렸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 매물로 내놓는 집이 많았습니다. 매물은 늘어도 거래는 절벽이었습니다. 한 번 오른 집값이 내리지 않았던 탓이죠. 다수의 무주택자에게는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해방 후 일본인이 살던 빈 적산가옥은 모리배나 배경이 있는 사람들이 이미 여러 채를 소유한 상태였습니다. 이 같은 실상을 신문 기사는 낱낱이 전하고 있었습니다. 씨줄과 날줄로 엮인 기사 속에는 당시 사람들의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대구는 신문의 도시였습니다. 해방된 그해 9월 진보 색채의 민성일보를 시작으로 영남일보, 대구시보, 부녀일보, 남선경제신문 등이 잇따라 창간했습니다. 신문은 사람들 일상을 담는 또 하나의 '광장' 역할을 했죠. 신문 기사를 징검다리 삼아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저도 '오늘 보는 그제 뉴-쓰'를 단숨에 읽었는데 '가을바람에 사라진 순정' '극장 관객 실종사건' 등 내용이 기억에 남네요. 특히 서문에 "시간은 뒤로도 흐른다"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오늘 보는 그제 뉴-쓰'는 '조금 지난 뉴-쓰'에 이은 후속 여행이었는데요. 여행 시기는 1945~1950년입니다. '가을바람에 사라진 순정'처럼 신문에 연재했거나 기사를 다듬어 정담(情談)으로 엮었습니다. 정담은 주로 과거를 묻는 이야기에 어울립니다. 이런 작업에는 늘 아쉬움이 따르는데요. 해방공간 대구경북에서 발행됐던 신문은 검색할 수 없습니다. 기사를 보려면 하나하나 찾아 눈이 아플 정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판독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꽤 있고요. 여러 시기의 신문을 숙독해야 하나의 스토리 구성이 됩니다. 예상 외로 해방공간 민중의 일상 자료는 빈약한 편입니다. 정치적 격변기와 전쟁, 주류세력의 교체와도 연관이 있겠지요. 검색을 통한 신문 기사의 정보 활용은 지역의 역사 찾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관심이 필요한 대목이죠. 첨단시대에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웬 말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요. 이런 해명은 어떨까요. 사람들은 십중팔구 과거가 있는 도시로 여행을 갑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말이죠. 과거와의 동행은 즐거움과 충전, 성찰을 한꺼번에 가져다주기도 하죠."▶신문을 매개로 그 시절 민중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연구를 하고 있는데요. 그 시절의 언론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이 있는지요."1947년 3월25일 한밤중에 만경관 앞에서 영남일보 방수복 기자가 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했어요. 대구신문기자회는 5관구경찰청(경북경찰청)에 항의문을 전달하고 출입을 중단했죠. 그런데 며칠 뒤 부녀일보 최석채 편집국장이 경북경찰청에 구속됩니다. 이 사건을 권력이 저지른 테러로 규정해 연이틀 경찰 폭행을 비판하는 기사를 대서특필하자 보복이 뒤따른 것이죠. 경찰의 영남일보 기자 구타 사건 보도로 다른 신문의 편집국장이 구속된 것입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언론의 본질적 기능인 권력 비판이 침해당할 때는 언론자유 수호를 위해 기자들이 이른바 동업자 정신으로 뭉쳐 저항했습니다. 이 사건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뉴-쓰'시리즈 3편도 나오나요. "내년에 '시리즈3' 준비를 시작하려 합니다. 대구경북의 진보성이나 역동성을 제대로 전달할지 고민은 됩니다. '과거를 묻지 마세요'는 노래 제목으로는 그만이죠. 하지만 현실은 과거를 물어야 삶이 오만하지 않고 풍부해지지 않을까요. 미래 세대라고 다를까요. 과거의 대구 이야기와 친해지도록 SNS 활용을 권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최근 책 속 '대구의 연인 금달네'에 관심을 보인 젊은 기획자가 있었는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웃음) 아, 중요한 얘기를 빠뜨릴 뻔했네요. 2024년 대구경북 시간여행 스타트는 달서아트센터 예술아카데미 봄학기 특강입니다."박 교수 고향은 대구가 아니다. 대구 사람도 아닌데 대구경북 해방공간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특히 옛 신문을 일일이 찾아 당시 시대상과 지역민의 삶을 재조명하는 건 박 교수가 유일하다. 굳이 그 이유를 물었다가 핀잔 같은 농담을 들었다. "이게 돈 되는 일이 아니라서 그렇지 않을까요~" 허석윤 논설위원 hsyoon@yeongnam.com박창원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는 옛 지역 신문을 교재 삼아 대구경북 해방공간에서 펼쳐진 민중들의 삶을 연구하고 있다. 책과 신문, 시민 특강을 통해 박 교수가 들려주는 당시 이야기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아련한 추억과 함께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한다.
2023.11.08
[세계로 가는 청정관광1번지 산소카페 청송 .13] 항일의병기념공원
청송 부동면에서 주왕산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화전등(花田嶝)'이라 부른다. 순우리말로는 '꽃밭고개'다. 봄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져 고갯마루가 마치 꽃밭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과거 꽃 흐드러졌던 마루에 지금 항일의병기념공원이 들어서 있다. 청송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방방곡곡에서 들불처럼 일어났던 모든 의병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가장 안쪽에 사당이 자리한다. 독립유공자로 서훈이 추서된 전국의 의병 유공선열 2천701명 전원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입구에 탑이 높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수십만의 그들, 다만 '의병'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그들을 기리는 탑이다. 구한말 항일 의병 활동으로 희생된 분은 약 15만명으로 추산된다.보훈부 등록 청송의병 95명…기초지자체 중 최다1996년 '적원일기' 발견 계기로 각종 기념사업격전지 표지석 세우고 2011년 기념공원 만들어충의사엔 서훈추서 전국 선열 2701명 위패 모셔의병장 창의검·화승총·'불원복 태극기'도 전시◆항일의병기념공원서쪽의 안동과 의성, 남쪽의 영천, 동쪽의 영덕과 통하는 길이 화전등 아래에서 하나 되어 고개를 넘는다. 어느 길에서 고개를 오르더라도 가장 먼저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 희디흰 '무명 의병용사 충혼탑'이다. 탑 너머로 의병의 깃발들이 휘날리고 한옥 형태의 여러 건물이 적요한 가운데 단정하게 들어서 있다. '의병기념관'은 항일의병의 효시인 임진왜란과 한말 갑오개혁으로부터 경술국치까지 의병사를 보여준다. 강당인 창의루(倡義樓)는 의병정신 선양을 위한 집회와 참관단체의 강의실로 쓰이고 있다. 동재는 인의예지재(仁義禮智齋), 서재는 효제충신재(孝弟忠信齋)로 의병 선열 유족회 사무실, 자료 연구실, 의병 관련 자료와 도서 열람실 등으로 사용되며 추모제 행사 시 대기실 등의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그리고 2개의 명각대(名刻臺)가 있다. 8폭의 까만 오석판에 의병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사당은 충의사(忠義祠)다. 나란히 봉안된 2천701개의 하얀 위패 앞에서 말을 잊는다.국가보훈부 공훈록에 등록되어 있는 청송 의병은 95명, 전국의 기초 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인원이다. 청송의 의병 활동은 개인문집 등에 근거하여 많이 알려져 왔으나 오랫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1996년, '적원일기(赤猿日記)'라는 '청송의진'의 기록물이 발견되면서 당시 의병에 참여했던 선열들의 활동과 충의 정신이 비로소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된다. '청송의진'은 청송에서 가장 먼저 창의한 의진으로 1896년 3월12일에 결성, 16일에 창의를 천명했다. 참여 인원의 면모나 전력, 활동 면에서 볼 때 한말 청송지역을 대표하는 의병진이다. '적원일기'는 청송의진이 결성되기 직전인 1896년 3월2일부터 본진의 활동이 종료되는 5월25일까지 85일간의 활동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1896년은 병신(丙申)년이다. 병(丙)은 붉은색(赤)을 뜻하고 신(申)은 원숭이(猿)를 뜻하니 적원일기는 곧 병신년일기와 같은 말이다. 이를 '적원(赤猿)'이라 표현한 것은 기울어져 가는 국운을 보며 혹 이 일기가 후세에 전해지지 못할까 염려하여 비어(秘語)를 쓴 것으로 추측된다. '적원일기' 발굴을 계기로 1997년 9월 청송의병선열유족회가 구성되었고 청송군에서는 청송의병을 기리는 각종 기념사업을 추진해 나갔다. 2001년에는 화전등에, 2002년에는 감은리 등지에 항일 격전지 표지석이 세워졌다. 그리고 2011년 전국 항일 의병들을 추모하는 '항일의병기념공원'이 화전등에 세워졌다. ◆청송의진 최후의 격전지, 화전등1895년 일제는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친일정권을 사주해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추진하는 등 조선의 국권을 탈취하려는 침략정책을 가속화해 나갔다. 위기의 시대였고, 전국에서는 의병투쟁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에 청송의 유림에서는 청송의진(靑松義陣)의 결성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청송향교에 모인 유림 200여 명은 의진 결성을 결의하고 의병장으로 심성지를 추대했다. 당시 66세의 고령이었던 심성지는 향중(鄕中)의 뜻에 따라 청송의병장을 수임했다. 참모진으로는 중군장에 김대락(金大洛), 우익장에 남두희(南斗凞), 소모장에 서효신(徐孝信), 사병도총(司兵都摠)에 남승철(南昇喆) 등을 임명해 진용을 갖췄다. 청송의진은 청송도호부 객사인 운봉관에 지휘부를 두었으며 객사 앞 용전천 백사장에서 훈련에 들어감과 동시에 모량도감(募粮都監)을 설치해 군량미를 모았다.청송의진은 창의 후 주변의 안동, 진보, 영양, 의성, 영덕 등의 의진, 그리고 경기도에서 남하한 김하락(金河洛)의 이천의진 등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거나 연합부대를 편성해 활동했다. 특히 청송, 이천, 의성 등 3진 의병부대가 연합하여 청송 안덕면 감은리에서 북진하던 일본군을 무찌른 일명 '감은리(甘隱里) 전투'는 값진 승리였다. 이후 고종의 의병 해산령으로 많은 의병부대가 자진 해산하게 된다. 청송의진도 감은리 전투 이후인 5월25일 본진을 해산했지만 실제로는 의진을 소규모로 분산해 유사시 서로 조응하는 것을 계책으로 삼았고, 면군 체제하에서 활동을 지속해 나갔다. 그러던 중 7월 하순 이천의진을 돕기 위해 출전 중 마평(馬坪, 청송군 부동면 상평리)의 화전등에서 관군의 기습을 받고 패전하고 말았다. 일명 '화전등전투(花田嶝戰鬪)'다. 패전 후 관군의 추격을 받던 청송의진은 각처를 전전하다가 끝내 해산하고 말았다. ◆불원복,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항일의병기념공원 전시관에 '불원복태극기'가 전시되어 있다. 전남 광양, 구례, 보성 일대에서 의병투쟁을 벌인 고광순(高光洵) 의병장이 실제로 만들어 사용한 태극기다. 태극기로 바탕 위쪽 중앙에 붉은색 실로 불원복(不遠復)이라 수 놓여 있다.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의미다. 그의 선언대로 우리는 국권을 회복했고, 전투가 벌어졌던 화전등에서 이제 그들이 남긴 것들을 본다. 청송의진의 대장이었던 소류선생이 자신을 위로하고 부하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마음에서 지은 '강병론(强兵論)'도 볼 수 있고, 안동의 김도현 의병장이 항상 지녔던 창의검(倡義劍)도 볼 수 있다. 의병들이 암호용으로 사용하던 신표와 1907년 1월부터 7월까지 전국의 의병활동 상황을 조사한 일제경찰의 조사표도 볼 수 있다. '화승총'은 산남의진의 후봉장 서종락이 사용하던 것이다. 경술국치 이후 청송 자택의 담 밑에 묻었다가 해방 후 파내었다고 한다. '정자관'은 1906년 각 고을에서 포수와 민병을 모아 산남의진(山南義陳)을 조성하고 후봉장으로 활동했던 서종탁 선생이 사용했던 것이다. '영야음'은 '밤에 병영(兵營)에서 시를 읊음'이라는 뜻이다. 비오는 봄밤에 대장 심성지와 도총 남승철, 찬획 이문영, 서기 정진도, 심능훈, 심의식, 서효격, 참모 홍병태, 심능렬, 신동호 등이 진영에 모여앉아 답답하고 애처로운 마음과 함께 각오를 다지는 시를 한 수 씩 지어 읊은 것이다. 서기 심능훈은 이렇게 읊었다.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으니 이긴 뒤에 이긴 것이오,/ 죽을 곳에 마땅히 죽으면 죽어도 산 것이로다.' 항일의병기념공원은 2022년 1월부터 경북도독립운동기념관에서 위탁운영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8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새롭게 단장되어 3월14일 재개관했다. 전시관에서 화승권총을 직접 만져 볼 수 있다. 방아쇠를 당기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커다란 소리가 심장을 훑고 지나간다. 실감영상실도 있다. 깜깜한 공간 속에서 청송과 항일의병궐기와 항일의병공원의 이야기가 수많은 불빛으로 이어진다. 그 빛이 너무 많아 오히려 서늘하다. 공원 한쪽에는 전국 의병장들의 절명시가 전시되어 있다. 신돌석, 안중근 등 낯익은 이름들이 보인다. '탄환이 참으로 무정하도다/ 발목을 다쳐 나아갈 수가 없구나/ 차라리 심장에 맞았더라면/ 욕은 보지 않고 저 세상에 갈 것을.' 운강 이강년의 시다. 그는 국권회복을 보지 못한 채 1908년 교수형으로 순국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 그 첫째 날은 '의병의 날'이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음력 4월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라 한다. 청송 항일의병기념공원에서는 매년 6월 1일 의병의 날에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행사를 열고 있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청송 부동면에서 주왕산면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위치한 항일의병기념공원에는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충혼탑과 함께 항일의병기념관, 강당, 동·서재, 사당이 갖춰져 있다.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순국한 선열들을 기리는 무명 의병용사 충혼탑.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뒤로 항일의병기념관이 보인다.항일의병기념관 내부에는 불원복 태극기 등 의병이 사용한 물품들이 전시돼 있다.
스토리텔링 자원 풍부…'이야기 마을' 개발 적절
경주 건천읍 '금척마을'은 '역사문화유산형' 박물관으로 적절하다.역사문화자원에는 금척리고분군, 만취정, 제극정, 옥화정, 문부자신도비, 금척리 열녀각, 금옥제 등 다양한 자원이 있다. 해당 자원들을 스토리 복원을 통해 '이야기 마을'로 개발할 필요가 있다. 특히, 마을 지명의 유래인 '금척'(金尺) 이야기와 고분군에 얽힌 다양한 일화들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공간을 조성하기에 적절하다.' 300호'가 넘는 큰 마을이라는 특징도 박물관 콘셉트로 활용할 수 있다. '영천 이씨' '곡산 한씨' '순흥 안씨' 등 성씨들의 집성촌과도 연결하면 마을의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다. 또 마을 곳곳에 있는 전원주택과 자연 그대로 보존된 마을 특징을 살린 방향으로 박물관을 구성할 수 있다.더불어 신경주역 및 국도 주변으로 개발 가능성이 큰 만큼 마을을 찾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 금척마을 인근에는 건천읍 경부고속도로가 위치해 있으며, 중앙선도 건널목에 있다. 또 고속철도 신경주역과 가깝고 지방국도와 철로가 있는 마을로 접근성도 적절하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 <7>경주 금척마을 '역사문화유산형' 박물관
경주 건천읍 금척리에 위치한 '금척마을'은 '지리적'으로 매력적인 동네다. 경주의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과도 차로 약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시내와 가깝다. 마을 동쪽으로는 국도 4호선이, 서쪽으로는 경부고속도로가 있다. 고속도로 건천 톨게이트까지 마을에서 10분밖에 걸리지 않아 고속도로를 이용하기에도 편리하다. 또 신경주역과도 가깝다. 이러한 장점으로 금척마을에는 외지인들 유입이 이뤄지고 있다. 이혁택(74) 금척리 이장은 "마을이 시내와 가까우면서도 한적하다. 또 교통망도 좋아서 다른 시골에 비해 인구가 많다"면서 "최근 외부 사람들도 많이 유입돼 305여 가구가 생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을 들어서면 고분군 눈길보물 '금척' 묻혀있단 전설도굴하면 벌 받는다 전해져다양한 이야기·문화자산 보유마을 구경하는 재미 '쏠쏠'신경주역 인접 교통도 편리◆큰 농촌마을지난달 25일 취재차 찾은 금척마을은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높은 가을 하늘과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도 마을과 잘 어울렸다. 마을 골목곳곳에는 다양한 전원주택이 위치해 있어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큰 농촌 마을인 만큼 마을 구석구석을 둘러보기에 2시간도 부족했다.금척마을의 경우 세 성씨의 집성촌이다. '영천 이씨' '곡산 한씨' '순흥 안씨'가 마을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마을 위쪽에 있는 윗마을(상리), 아래쪽에 위치한 아랫마을(하리), 아랫마을 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 새각단(신리) 등이 금척리를 이룬다. 마을이 크다 보니 금척리 경로회관도 '상리 경로회관' '하리 경로회관' 2개로 이뤄져 있다. 상리 경로회관에는 주로 곡산 한씨들이, 하리 경로회관에는 영천 이씨들이 모인다.그중 하리 경로회관 뒤에는 영천 이씨 문중회에서 관리하는 '만취정'이 자리하고 있다. 만취정은 1654년 조선 중기 문신 만취 이시강(李是강)이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정자다. 영천 이씨 문중회 회의나 마을의 큰 행사는 주로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또 '화수회(花樹會)'가 열리는 날에는 수백 명의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금척리 고분군경주 시내에서 마을로 들어서다 보면 금척리 고분군이 눈에 띈다. 고분군 사이에 위치한 고목들도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 대릉원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금척리 고분군은 30여 개의 크고 작은 고분들로 이루어져 있다.금척리 고분군은 삼국시대 신라의 무덤이다. 1952년 국도 4호선 공사 당시 출토된 유물과 고분의 구조로 보아 비교적 낮은 신분을 가진 5·6세기 모량부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의하면 경주의 진기한 세가지 보물이라 해석되는 삼보 중 하나인 '금척'(金尺)이 묻혀있다고 한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받은 금자를 숨기기 위해 40여 개의 가짜 무덤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금척리 고분군의 경우 일제강점기까지 50여 개의 고분군이 존재했다. 그러나 고분군 곳곳에 농가가 들어서며 심하게 훼손됐다. 이후 1963년 대한민국 사적 제43호로 지정되면서 현재 복원 작업과 유물 토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다양한 고분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고분은 '장구조산'이다. 가운데가 잘록하게 패어 있는 모습이 장구와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장구조산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고분군 속 금척을 탐내 도굴하려다 하늘에서 천둥벼락이 치자 도망가면서 패어있는 모습 그대로 남게 됐다고 전해진다. 주민 이근택(78)씨는 "우스갯소리로 예로부터 신라 유물을 함부로 도굴하면 벌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설명했다.◆'당산목' '금척정미소' 등 마을 문화 자산들금척마을에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 제사를 지내 주는 나무인 '당산목'이 있다. 1982년 경주시 보호수로 지정됐다. 당산목 앞에 위치한 비석에는 '300년' 수령으로 표기돼 있지만, 실제 수령은 400여 년이라고 한다.주민들은 당산목에서 매년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동제를 지낸다. 주민 이씨는 "요즘 동제를 지내는 마을이 많지 않다"면서 "우리 마을에서는 계속해서 동제를 정월 초엿샛날마다 지내고 있다. 올해도 온 마을 주민들이 모여 지냈다"고 했다.금척마을 윗마을에는 '금척정미소'도 위치해 있었다. 70년 가까이 운영됐으나, 지난해 철거돼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과거부터 마을 주민들이 쌀농사를 많이 지은 만큼 정미소의 규모와 수익은 컸다. 그러나 각 가정에 정미기가 보급되면서 정미소 운영에 어려움이 생겨 문을 닫게 됐다. 금척정미소를 운영했던 이근만(83) 경로회장은 "마을 주민들의 주 생업이 농업이다 보니 쌀을 지어 돈을 많이 벌었다"면서 "지금은 농업이 사양산업이 되는 등 시대 흐름에 따라 정미소를 폐업하게 됐다"고 회상했다.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조민희 인턴기자 alsgml0656@yeongnam.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하리 경로회관 뒤에는 영천 이씨 문중회에서 관리하는 '만취정'이 자리하고 있다.경주 건천읍 금척마을의 당산목. 실제 400년 수령 보호수다.경주 건천읍 금척리 고분군의 '장구조산' 고분. 일제강점기때 일본인들이 금척을 탐내고 이 무덤을 도굴하려 하자 하늘에서 천둥벼락이 쳐 도망갔다는 전설이 있다.이혁택 금척리 이장(왼쪽), 이근만 금척리 경로회장(가운데), 이근택 주민이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023 동호인 화합 축구대회 영천서 개막
2023 동호인 화합 축구대회가 4일 영천 단포체육공원 축구장에서 영천스타클럽 등 43개팀 1천2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영천시체육회·영남일보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개막식에는 최기문 영천시장, 박봉규 체육회장, 김용문·이영우 시의원, 정순용 영천시축구협회장 등이 전국동호인들을 환영했다. 올해 대회에는 전국에서 청년·중년·장년부,여성 클럽 등 다양한 팀들이 참가했다. 특히 전국에서 유소년클럽 16개팀 400여명이 참가해 대회를 더욱 빛냈다. 이날 예선전을 필두로 5일 준결, 결승전이 펼쳐진다. 한편 대회를 주관한 영천시축구협회에서는 참가팀에게 지역 특산물인 샤인머스켓 등 푸짐한 선물을 제공했다. 최기문 시장은 환영사를 통해 "이번 대회를 통해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영천시는 축구 동호인들이 마음껏 운동할 수 있도록 축구장 시설 개선에 더욱 관심을 가지겠다"고 강조했다. 글·사진=유시용기자 ysy@yeongnam.com동호인 축구대회 2023 최기문 영천시장이 4일 개최된 동호인 화합 축구대회 개막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동호인 축구대회 2023 선수 동호인 화합 축구대회에 참가한 내빈들이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3.11.04
[노벨문학상 산책] 귄터 그라스 '양철북'…오스카르의 시각서 20세기 전반 獨역사를 꼬집다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광은 노벨문학상 선정위원회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라고 격찬한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에게 돌아갔다.그라스는 1927년 자유시 단치히(현재 폴란드령 그단스크) 변두리 랑푸르의 소시민 가정에서 태어나 2015년 독일 북부 뤼베크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가로서 창작활동을 꾸준히 해왔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비판적으로 참여하는 지식인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해왔다.그가 현실정치와 맺어온 밀접한 관계는 전통적으로 현실 참여를 꺼려온 독일 문단은 물론이고 세계 문단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독특한 것이다. 1961년 사회민주당 연방수상 후보 브란트를 돕는 선거전을 시작으로 현실정치에 뛰어든 그라스는 나치 과거청산 문제를 비롯한 독일 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반전운동, 환경운동, 인권운동 등 평화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위해 끊임없이 싸워온 전투적 지식인이자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그러나 그는 반동의 부작용과 유혈사태가 뒤따르는 급진적 혁명에는 반대했으며, 사회적 진보란 달팽이의 속도에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인내를 통해서만 진보가 달성될 수 있다는 점진적 개혁주의자의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해왔다.1958년 미완성 상태로 47그룹상을 수상함으로써 문단의 지대한 관심을 받다가 1959년에 출간된 '양철북'은 서정시로 데뷔한 그라스의 첫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양철북'은 허구적 자서전 형태를 취하고 있는 소설로서, 총 3부 46장(제1부 16장, 제2부 18장, 제3부 12장)으로 이루어져 있다.주인공이자 일인칭 서술자인 오스카르는 1952년 9월 간호사 도로테아의 살인 사건 용의자로 체포되는데 재판 후 정신 이상을 의심받아 서독 뒤셀도르프의 한 '치료감호소'에 수감 된 채 1952년 10월부터 1954년 7월까지 지내다 진범이 잡히자 석방된다. 오스카르는 치료감호소에서 생활하는 약 2년(서술시간) 동안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발자취를 가족사와 연관해 회고하는 일종의 허구적 자서전을 집필하게 되는데, 1899년 10월 어느 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만남 때부터 1954년 7월 치료감호소에서 자신이 강제로 퇴소당할 때까지 약 55년 동안의 시간이 피서술시간(=사건시간)을 이룬다.서술구조는 순환적 액자구조를 취하고 있다. 액자구조란 바깥 틀을 이루는 외화(外話) 속에 안쪽 이야기인 내화(內話)가 있는 구성 형식인데, '양철북'은 하나의 외화 속에 여러 개의 내화가 있는 순환적 액자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고, 내화와 외화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서로 넘나들고 있으며, 소설의 끝부분에 이르러서는 서로 접맥되고 있다.외화는 픽션과 메타픽션 두 차원으로 나눌 수 있다. 픽션 차원에서는 오스카르가 치료감호소에 수감 된 이래로 치료감호소 감호인, 자신을 면회 오는 변호사와 가족 및 친지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른 한편, 소설이 하나의 인공물임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메타픽션 차원에서는 오스카르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의문시하거나 성찰하는 과정이 이야기된다. 에피소드로 구성된 모든 장에서 오스카르가 자신의 글쓰기 과정에 대해 성찰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수정하는 대목이 반복적으로 나타나, 현재와 과거 사이의 긴장이 끊임없이 조성되고 있다.내화는 사적 사건에 대한 허구적 서술 차원과 공적 역사에 근거한 사실적 서술 차원, 두 차원으로 구분될 수 있다. 허구적 서술 차원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전쟁 중 단치히와 그 주변 소시민계층에 속하는 허구적 인물들의 일상적인 삶, 전후 서독의 소시민사회에서 살아가는 허구적인 작중인물들과 관련된 온갖 사건 이야기가 서술된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서술 차원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건을 중심축으로 그 앞뒤로 일어난 숱한 역사적 사건들 및 그 사건들과 연관된 역사상 실재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제1부는 1899년 10월 어느 날 감자밭에서 일하던 외할머니(안나 브론스키)가 방화범으로 쫓기던 외할아버지(요셉 콜야이체크)를 폭넓은 치마 속에 숨겨주는 기이한 사건을 시작으로 어머니 아그네스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 아그네스와 알프레트 마체라트의 결혼, 오스카르의 탄생과 그가 세 번째 생일 선물로 받은 양철북, 오스카르의 자의적인 성장 정지, 황달과 생선중독으로 인한 아그네스의 죽음 등을 거쳐 1938년 11월9일 나치의 선동으로 유대인 거주지역에서 건물 파괴와 방화가 자행된 역사적 폭력 사건('수정의 밤')에서 완구점 주인인 유대인 마르쿠스가 사망하는 11월10일까지의 시기(1899~1938)를 서술하고 있다.제2부는 독일군의 폴란드 공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 9월1일 며칠 전인 8월부터 하루 전인 8월31일 밤의 폴란드 우체국 전투, 1943년 나치 선전부대에 들어간 오스카르의 전방 위문 공연 활동, 전쟁 막바지 소련군이 점령한 단치히에서 알프레트 마체라트가 나치당 배지를 목에 삼키다 소련군에 의해 사살된 사건, 오스카르가 첫사랑이자 계모인 마리아와 그녀의 아들 쿠르트를 데리고 1945년 6월12일 화물열차로 단치히에서 탈출할 때까지의 과정(1939~1945)을 서술하고 있다.제3부는 종전 후 서독 뒤셀도르프로 피란 온 오스카르와 마리아 및 쿠르트, 그리고 주변 인물들을 비롯한 소시민들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서술된다. 전후 서독인들이 잘못된 과거를 반성을 통해 극복·청산하려는 노력은 내팽개친 채 과거를 망각해버리고 오직 물질적 풍요와 안락한 일상생활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타락한 정신적 풍토가 희화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양철북은 사물상징으로서 '군국주의의 상징'으로서 나치 시대의 선동과 파괴를 암시하는 도구, 서술의 매개체 구실을 하는 서술 도구 등 다양하고 모순된 의미를 지니는데, 특히 제3부에서는 과거를 망각해버리고 싶어 하는 전후 서독 사회에 과거를 망각하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각성시키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매체의 기능을 하고 있다.제1부와 제2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및 전쟁 시기 단치히와 그 주변 지역, 제3부에서는 전후 서독 뒤셀도르프의 소시민사회를 무대로 20세기 전반의 독일 역사를 비판적으로 그려냄으로써 기본적으로 역사·시대소설의 성격을 지니는 '양철북'이 과거청산이라는 주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힐 수 있는 이유로, 치밀한 구성능력과 기발한 착상, 특유의 유머 감각에 따른 입담 등 우선 작가 그라스의 탁월한 재능을 들 수 있지만, '양철북'에 엄청난 탄력성과 유연성, 시적인 생명력을 부여해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현실과 환상이라는 상호 보완적인 두 차원 사이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반어적 상호작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병덕 교수 (전북대 명예교수)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박병덕(朴秉德)은 전북대 명예교수로, 연구 분야는 현대독일소설이며,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특히 관심이 많다. 서울대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귄터 그라스의 '넙치'에 나타난 서술기법'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대 교수회장,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 상임회장, 전북대 발전지원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주요 저서로는 '귄터 그라스의 문학세계' '현실과 환상의 변증법. 귄터 그라스의 삶과 문학' '카프카 문학론'(공저), '독일 현대 작가와 문학 이론'(공저) 등이 있으며, 주요 번역서로는 '싯다르타'(헤세), '카프카 단편집'(카프카), '그리고 아무도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보르헤르트), '파우스트 박사'(토마스 만)(공역), '군중과 권력'(카네티)(공역), '소유냐 존재냐'(에리히 프롬)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귄터 그라스의 소설에 나타난 환상적 리얼리즘' '그라스의 역사개념과 '넙치'에 나타난 동시성의 기법'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에 대한 독서모델' '페터 바이스의 기록극 이론과 '수사'' '카프카의 '변신' 연구' 등이 있다.2002년 5월 당시 서울 남산 독일문화원에서 기자회견하는 귄터 그라스. 연합뉴스박병덕 교수 (전북대 명예교수)
2023.11.03
[무한 상상과 도전 정신으로 시대를 주도하는 상주 .3] 청년 정책
청년이 귀한 시대다. 100만명이 넘던 한 해 출생자 수가 지난해 기준 24만명까지 떨어졌다. 출생률 저하로 갈수록 청년의 수는 적어질 전망이다. 특히 비수도권은 청년들의 이탈까지 가속화되면서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이에 각 기초자치단체의 청년 정책 수립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사안이 됐다. 경북 상주도 예외는 아니다. 상주시는 지역 청년들의 유출을 막으면서 다른 지역 청년들의 유입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주거와 일자리 문제 등을 해결하며 상주에 정착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무한 상상과 도전 정신으로 시대를 주도하는 상주' 3편에서는 상주시의 청년 정책과 지역 청년들이 운영하는 협동조합을 소개한다.◆ 상주에 정착하는 청년들서민수(45)씨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전공을 살려 서울에서 브랜딩(Branding) 디자이너로 18년 동안 일했다. 브랜딩이란 브랜드에 가치와 이미지 등을 부여하는 이름, 로고, 슬로건 등을 만드는 일이다. 서울에서 자리를 잡은 그가 지난 2월, 갑자기 연고도 없는 상주로 내려왔다. 친구의 권유가 계기였다. 평소 조용하고 느린 것을 좋아하던 그는 상주가 마음에 들었다. 지난 8월에는 상주에서 살기로 작정하고 자신이 거주할 작은 집을 하나를 구했다.그는 현재 다른 청년 3명과 함께 이인삼각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이인삼각 협동조합은 2021년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인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이후 지역민과 청년이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고, 청년들의 지역 유입과 정착 등을 지원하는 등 여러 역할을 하고 있다. 이인삼각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우리들의 여름방학'이다. 다른 지역 청년들을 모아 상주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다채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행사다. 참가자들은 상주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체험을 하고 상주 청년들과도 교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인삼각 협동조합은 2박 3일 단기 상주 체험 프로그램인 '인지상주'도 운영 중이다.이외에도 이인삼각 협동조합은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청년들이 아이들과 함께 상주 거리를 벽화로 꾸미는 '상부상주', 주민들과 쓰레기를 줍는 환경정화 활동인 '줍줍 올림픽', 주말 상주에 놀러 온 청년들에게 숙소를 무료로 빌려주는 '상주스테이' 등이 있다. 이인삼각 협동조합은 오는 5일 상주시 가족센터와 함께 상주시민운동장 구관에서 '다문화 가을 운동회'도 열 예정이다. 이어 오는 10~12일 청춘 남녀들이 만나 함께 상주를 경험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프로그램인 '나만솔로'도 개최할 계획이다.서민수 이인삼각 협동조합 대표는 "다른 지역 청년들이 상주를 경험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하려고 여러 사업을 하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내년에는 지역의 가치와 매력을 전문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로컬 브랜딩'을 해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정책 수립은 청년의 눈높이에서 상주는 전국에서 귀농·귀촌인이 많은 지역 중 하나다. 최근 5년간(2017~2021) 8천596명이 상주에 귀농·귀촌했다. 귀농·귀촌인들의 연령대를 보면, 30대 이하가 2천689명(31%)으로 가장 많다. 40대도 1천323명으로 15%를 차지한다. 귀농인은 농업을 하며 지역에 정착한 사람을, 귀촌인은 농업을 하지 않으며 지역에 정착한 사람을 뜻한다.귀농·귀촌하려는 청년들은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한다.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주거와 일자리 문제다. 특히 소도시나 농촌 지역은 신규 건축이 이뤄지지 않아 새집을 구하기가 어렵고 빈집은 방치된 경우가 대부분이라 주거상태도 열악한 편이다. 인구가 적고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 보니 일자리 역시 부족하다. 귀촌한 청년들이 주로 농사를 짓는 이유다. 또 기존 주민과의 갈등을 겪는 경우도 많다.이에 상주시는 청년들을 유입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힘을 쏟고 있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지원하는 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청년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나 거주시설 등을 마련하는 것이다.상주시는 지난해 3월 성하동 '상주시 청년센터 들락날락' 운영에 들어갔다. 청년들이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는 문화공간으로 지하 1층~지상 3층, 총면적 438.76㎡ 규모다. 이곳은 오픈라운지, 소모임실, 공유주방, 쉼터 등을 갖추고 있다. 대형 TV와 화이트보드, 인터넷 등을 갖춘 소모임실(2~8명)은 대관이 가능하다. 상주시는 89억원을 들여 무양동에 '청년 드림하우스(청춘상주 모락모락)' 조성사업도 추진 중이다. 지역 살아보기 프로그램이나 청년 창업 지원사업 참여자, 정착 희망 외지 청년에게 단기 거주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시설이다. 전체 4층, 총면적 1천500㎡ 규모로 지어진다. 1층은 공유주방, 미팅룸, 운동실, 라운지 등이, 2~4층은 25실의 주거공간이 들어설 예정이다. 올해 부지 매입이 끝나면 내년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에 들어가 2025년 공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다. 상주시는 이곳에서 각종 지역체험 프로그램과 청년 프리마켓, 청년주간 행사 등도 운영할 계획이다.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상주시도 중앙부처나 경북도의 청년 주거 및 창업 지원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청년창업 지역정착 지원사업' '청년월세 특별지원사업' '생애최초 청년창업 희망키움사업' 등이다. 이와 별도로 상주시는 자체 예산을 편성해 독자적인 청년 지원사업도 펼치고 있다.'청년 주거 임차비 지원사업'이 대표적이다. 만 19~45세인 지역 정착 청년 15명을 선정해 10개월 동안 매달 30만원씩 거주지 임차비를 지원해 준다. 청년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상주시가 마련한 지원사업으로 지역 정착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을 우대한다. 5명 이상으로 구성된 청년 동아리에 모임활동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도 있다. '청년 커뮤니티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매년 10개 팀을 뽑아 문화예술, 자원봉사, 진로 탐색, 자기 계발, 공익적 활동 등에 120만원씩을 지원한다. 영어회화 공부나 각종 스포츠, 글쓰기와 토론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동아리들이 선정돼 혜택을 받았다.이외에 '청년 상생 협업 지원사업'과 '청년 구직자 자격증 취득 지원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상생 협업 지원사업은 청년과 지역 주민의 화합을 유도하는 프로그램으로 협업을 통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거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지급한다. 지난해 중앙시장상인회와 함께 노점상 어르신에게 의자를 제작한 팀과 노년층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태양광 조명 캔버스 키트를 개발한 팀 등이 대상자로 선정됐다. 차형원 상주시 미래정책실장은 "지방시대를 맞아 상주시는 청년 창업과 농촌 창업, 취업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지방소멸 대응기금·국비·시비 등 853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2025년까지 교육, 주거, 체험, 문화 등 청년들의 정주 여건 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내년도에는 지역 활력타운사업에 공모할 예정이며, 이런 사업들을 통해 청년 정책 활성화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지난달 28일 이인삼각 협동조합이 진행한 '인지상주'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상주에서 직접 농촌 체험 활동을 하고 있다. 이인삼각 협동조합은 타지역 청년들의 상주 유입과 정착을 돕는 여러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상부상주'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상주보육원 주변 벽화 그리기를 하고 있는 이인삼각 협동조합원들.서민수 이인삼각 협동조합 대표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별 따라 이야기 따라 영양에 취하다 .10] 영양 산나물축제와 조지훈예술제
포슬포슬 부풀어 오르는 대지에서 순한 싹이 돋아나고 물오른 나뭇가지에서 새순이 움트는 봄이면 영양의 산에서는 산나물들이 경쟁하듯 자라난다. 몇 차례 봄비를 맞은 산나물이 쑥쑥 눈에 보일 듯이 자라나 찬엄한 햇살에 청신한 얼굴을 씻는 5월. 땅과 하늘이 신록으로 물드는 5월이면 영양의 일월산 아래에서는 축제가 열린다. 자연에서 난 것들을 한껏 즐기는 축제, 그리고 푸른 5월에 하늘로 돌아간 이 땅의 시인을 생각하는 축제다. 영양 산나물축제매년 5월 군청·일월산 일대서 열려채취체험·가요제·먹거리촌 등 재미올해 12만명 방문 경북 최우수축제조지훈예술제2007년 처음 시작 올해 16회째 맞아전국백일장·사생대회 등 행사 풍성조지훈시낭송 퍼포먼스·승무공연도◆영양 산나물 축제5월의 영양은 산나물 천지다. 특히 일월산 기슭에서 자라는 산나물은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있고 맛과 영양소가 뛰어나 건강식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사리, 금죽, 취나물, 방풍나물, 다래순, 어수리, 싸릿대, 참딱주(잔대), 고비 등 일월산에서 나는 산나물은 모두 보물이면서 약이라고 말한다. 금죽은 일월산에서만 자생하는 희귀식물이다. 음력 3월까지 눈 속에서 자라 그 맛과 향기가 독특하다. 그래서 금죽은 산 넘고 물 건너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다. 어수리 나물은 '영양 어수리'라고 불릴 만큼 지역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원래 어수리는 700m 이상의 고산지대에서 자라 채취량이 적은 데다 맛과 향이 뛰어나 대개의 사람들은 맛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영양 일대에서 작목반이 결성되어 보다 많은 사람이 맛볼 수 있게 됐다. 어수리는 잎, 어린 순, 열매, 뿌리를 모두 먹을 수 있는데, 각종 무기질과 섬유질·비타민이 풍부하고 향이 강해 봄철 입맛을 돋우는 데 최고다. 산나물은 무침으로, 부침으로, 또 쌈으로 우리네 밥상에 올랐고 소중한 약재로 쓰이기도 했다. 일월산의 산나물로 만든 산채비빔밥은 영양의 대표 음식으로 꼽힌다. 영양의 청정 자연이 키운 산나물과 영양고추로 만든 고추장의 조합은 환상적이다. 각종 생기 넘치는 산나물을 재료로 만든 '산신 수제비'는 이름부터 근사하다. '산나물로 신체건강을 지키는 수제비'란다. 이 외에도 산나물 전, 산나물 보쌈, 산나물 국밥, 산나물 피자, 산나물 빙수 등 청정 영양의 산나물로 만든 요리는 셀 수 없을 만큼 다채롭다. 입맛 돋우는 산나물 요리를 원 없이 먹어볼 수 있는 환상적인 축제의 장이 있다. 바로 '영양 산나물 축제'다.영양 산나물 축제는 2005년부터 시작됐다. 영양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산림, 그리고 산림 도처에 널려있는 '산채'에 주목하면서 성장시켜온 축제다. 축제에서는 산나물을 이용한 새롭고 톡톡 튀는 메뉴를 맛볼 수 있고, 일월산의 높이 1천219m를 의미하는 1천219인분의 산나물 비빔밥 만들기와 같은 신나는 퍼포먼스를 즐길 수 있다. 또 산나물을 직접 채취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행사가 축제의 흥미를 더한다. 영양 산나물 축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새로운 프로그램이 더해져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특히 지난해 경북도 우수 축제에 선정된 데 이어 올해는 최우수축제로 선정되어 그 명성을 입증했다.지난 5월 제18회 영양 산나물축제가 열렸다. 11일부터 14일까지 4일간 영양 군청과 영양전통시장, 그리고 일월산 일대에서 펼쳐진 축제에서는 산나물 채취체험, 반려동물 문화축제, 비대면 마라톤대회, 산나물 전국가요제, 영양 고유 사투리 경연대회, 별이 빛나는 밤에 콘서트 등 청정영양을 직접 느끼고 체험하고 추억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해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또한 산나물 장터, 산나물 테마 거리, 산촌 먹거리 촌, 고기 굼터 등을 운영해 축제장을 찾은 이들의 눈과 입을 밤낮으로 즐겁게 했다. 축제 첫날의 풍물 공연과 개막 축하 공연에는 영양군민 절반인 8천여 명의 관람객들이 찾아와 군민 화합의 장을 연출했다. 1천219인분 산나물비빔밥 만들기 행사는 1천여 명이 한자리에서 밥을 비비고 먹는 모습을 보여 색다른 풍경을 선사했다. 특히 이번에 열린 제1회 영양 산나물가요제는 축제의 흥을 한층 높였다.48개 산나물 및 특산물 판매 부스에는 어수리, 냉이, 달래, 씀바귀, 취나물, 곰취, 두릅, 머위, 돌나물, 참나물, 원추리, 돌미나리, 봄동 등 봄나물이 넘쳐났다. 양조장 플리마켓, 이색 먹거리 촌, 영양전통시장 주막, 야시장 등에서는 산나물 요리 향기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30여 개의 각종 전시, 체험, 홍보 부스를 통해 영양 고추장 만들기, 산나물 경매, 산나물 레크리에이션 등 알찬 재미를 선사했으며 축제 기간 내내 일월산에는 산나물 채취 체험 행사가 진행됐다. 영양 산나물 축제에서는 한해 산나물 판매량의 80% 이상이 팔린다. 이번 축제에는 약 12만명이 다녀갔으며 약 6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뒀다. 방문객들로 인해 파생된 직간접적인 경제적 효과는 지역 상권의 활성화에도 큰 기여를 했다.◆ 조지훈예술제일월산 아래 일월면 주곡리 주실마을은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태어난 곳이다. 그가 첫울음을 터뜨린 호은종택이 있고, 그가 유년 시절을 보냈던 방우산장이 있고, 조부에게서 한문을 배웠던 월록서당이 있고, 그의 생애와 자취와 정신을 담은 문학관이 있고, 자연 속에서 그의 시를 만나는 시공원이 있다. 그리고 그가 수년간 계절을 맞이하고 보냈던 주실 숲과 마을을 둘러싼 영양의 자연이 있다. 이곳에서 매년 5월 조지훈예술제가 열린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청록파 시인이자 지조론의 선비인 조지훈의 문학사상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조지훈예술제는 영양군이 주최하고 한국문인협회 영양지부가 주관한다. 문향의 고장 영양에서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을 그리고, 자연을 음미하며 모두 다 함께 몸도 마음도 한 뼘 커지는 종합문화예술축제다. 조지훈예술제는 2007년 처음 시작됐다. 올해 16회를 맞이한 조지훈예술제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선비인 조지훈의 사상과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영양을 문화의 고장으로 전국에 알리며, 나아가 세계 속의 문학 명소로서 영양을 부각하고자 기획되었다. 지조와 기개를 지키며 우아하고 멋스러운 정취로 일생을 살다간 조지훈을 기리기 위해 매년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조지훈의 문학과 사상을 계승하고 현대 시와의 만남을 통한 문화예술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초·중·고 학생과 전국대학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지훈 백일장 및 사생대회를 개최한다. 그의 삶과 문학세계,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국학강좌와 지훈 문학 세미나도 열리며 그의 문학과 주실마을의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한 전시 체험 프로그램, 전통문화와 자연이 함께하는 오감만족 이색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올해 조지훈예술제는 '한국의 문학'을 주제로 지난 5월13일과 14일 이틀간 주실마을 일원에서 열렸다. 존경하는 이에게 차를 올리는 헌공다례로 시작된 예술제는 축제의 장을 여는 길놀이와 도립 국악단의 대북공연으로 이어졌고 동시에 전국 백일장 및 사생대회가 시작됐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집중과 고요 가운데 축제의 즐거움은 조지훈 시낭송 퍼포먼스와 영양원놀음 공연, 영양여고의 댄스와 연주 등으로 이어졌으며 특히 대구 오페라단의 조지훈 시(詩) 가곡음악회와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김죽엽의 승무 공연은 특별한 감흥을 심어주었다.지훈문학관 등지에서는 시인의 부인인 김난희 여사의 작품 전시회, 영양 문인협회 회원들의 시화전, 제 35회 심현전 초대전, 조지훈 도서전 등이 펼쳐졌다. 정호승 시인 초청 특별강연,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오형엽 교수와 한양대 한국어어문학과 이재복 교수의 문학세미나 특강도 열렸다. 지훈문학관 앞과 주실마을 테마 광장 등에서는 전통 놀이, 조지훈 시 탁본 뜨기, 천연염색, 목공예와 가죽공예체험, 양말목을 이용한 리사이클링, 삼도주 시음, 나만의 컵 만들기, 다도체험, 타투, 수묵화드로잉, 학교예술교육 체험, 산나물 떡 만들기 등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됐으며 농특산물 장터도 열렸다. 이번 예술제에는 3천여 명이 참가했다. 무엇보다 백일장 및 사생대회, 조지훈 시낭송 퍼포먼스대회는 지역민과 관광객, 청소년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으며 조지훈예술제는 그의 문학과 사상을 직접 체험하고 공감하는 예술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지난 5월 영양군청과 일월산 일대에서 열린 '제18회 영양 산나물축제' 참가 내빈들이 1천219인분 산나물 비빔밥 만들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양 산나물축제는 산나물 채취를 비롯한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해 방문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영양 산나물축제 체험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직접 산나물을 채취하고 있다. 각종 산나물 판매 부스와 방문객들로 북적이는 영양 산나물 축제장 모습.
2023.11.02
"마을회관 활용해 마을박물관 조성"
상주시 퇴강리의 지붕 없는 박물관 콘셉트는 '소울(Soul) 박물관'이다. 낙동강을 바라보며 살아온 순박한 강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천주교 성지의 역사를 함께 보여줘 성찰과 영혼 치유의 공간으로 조성하는 것이다.마을 박물관의 경우 퇴강리 마을회관이 적절해 보인다. 인근에 퇴강성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낙동강 생명의 숲 1호 공원이 바로 보이는 위치에 있어 마을의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 박물관에는 마을박물관 학교 교육 공간, 성당의 역사 전시 공간, 주민 생애 전시 공간, 마을 역사 공간 등으로 활용하기 적절하다.퇴강성당의 경우 퇴강성당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 및 숨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면 좋은 관광 포인트가 될 수 있다. 낙동강 생명의 숲 1호 공원은 낙동강의 풍광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더불어 낙동강 700리 이야기를 글과 사진으로도 조성하면 박물관 콘셉트에도 잘 어울린다. 이외에도 마을 꼭대기 우물터에는 마을의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사진과 이야기로 공간을 조성하면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정지윤기자
2023.11.01
[세계로 가는 청정관광1번지 산소카페 청송 .12] 야송미술관과 객주문학관
거대한 그림이 있다. 화가는 이 그림을 위해 수년간 산을 오르내렸고 6개월간 오체투지의 자세로 종이 위에 그 모습을 옮겼다. 그림이 완성되던 날 그는 감격하여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얼굴까지 던져 낙관했다. 그는 야송 이원좌다. 일평생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강산을 수묵화로 그리는 일에 매진한 한국화가다. 거대한 소설이 있다. 소설가는 수년간 거리를 떠돌며 사람들과 먹고 자며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였고 또 수년에 걸쳐 섬세하고도 뜨겁게 그들의 삶을 그려냈다. 평범한 백성들의 근력과 근성이 역사를 이끌어간다는 확고한 사관으로 글을 써온 작가, 그는 소설가 김주영이다. 이들의 세계를 담고 있는 공간이 청송에 있다. 야송미술관과 객주문학관이다.청송 군립 야송미술관2005년 개관한 경북 최초 공립미술관야송 소장 미술 작품 등 400여점 보유46m '청량대운도' 전시한 별도 건물도객주문학관폐교된 고교 건물 고쳐 2014년에 개관소설 '객주' 등 김주영 문학세계 담아문학관 내 집필실서 작가 작업 이어가◆청송 군립 야송미술관청송 진보면 신촌리에 '야송미술관'이 있다. 2000년 폐교가 된 신촌초등학교를 군에서 사들여 리모델링한 경북도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다. 2005년 개관한 미술관은 2층 규모로 이원좌 화백이 소장하고 있던 한국화 및 도예작품 등 350점, 국내외 유명 화가와 조각가들의 작품 5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야송이 수십 년간 수집한 미술 관련 서적과 희귀사료 1만5천여 점을 접할 수 있는 미술도서관도 있고 다양한 기획전시와 미술교육 강좌도 이뤄지고 있으며 운동장은 국내외 유명 조각가와 설치 작가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야외조각공원이다. 미술관 옆에는 '청량대운도기념관'이 자리한다. 봉화의 청량산을 그린 '청량대운도'라는 단 하나의 그림을 위해 나라에서 지은 전시관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움찔한다. 높이 7m, 길이 46m의 그림이 전시관을 가득 채우고 있다. 멀리 문수지맥과 덕산지맥의 출렁임 사이로 낙동강이 굽이치는 가운데 청량산이 펼쳐진다. 강렬하면서도 세밀하고 질박한 세계가 전시관이라는 공간을 스스로 지우며 확장되는데 나는 더 높은 구름 속에서 세상을 완상하는 듯하다.야송 이원좌는 청송사람이다. 그는 1939년 청송 파천면에서 태어나 지경초등학교를 졸업했다. 7세 때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아들의 재능을 꿰뚫어 보았던 아버지는 부인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아이는 그림에 특별난 재주가 보이네. 그러나 종이 수십 트럭을 쓴 뒤에야 그 재주가 피어나는 법인데, 아비 된 나는 이 아이에게 단 한 장의 종이도 사주지 못했네. 그게 한이네. 자네가 내 한을 풀어주시게. 이 아이가 종이를 요구하면 빚을 내서라도 소원을 들어주시게.' 이후 야송은 실제로 종이 걱정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야송은 중고등학교를 대구에서 다녔다. 판자촌에 살며 어머니는 국수 장사를 했고, 야송은 낮에는 우산공장에서 일을 하며 야간학교를 다녔다. 그러면서도 중학교 2년 동안 그린 수채화가 1천700장이나 된다니 그의 아버지도 그의 어머니도 소년 야송도 그저 놀랍다. 그는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중학교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리고 휴일이나 방학 때면 전국 각지의 강산을 여행하며 수묵산수화를 그렸다. 12년간 교직에 있던 그는 이후 그림에 집중하기 위해 교사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산수화에 매달리게 된다. 산과 들, 바위와 폭포, 바다, 섬, 해운과 산운, 낙조, 달빛 흐르는 밤의 소나무, 가을 달밤의 소나무, 한겨울 바람 속의 소나무, 눈 내린 산, 물고기들, 자연 속의 사람들과 집들 등 그는 한국의 산천과 만물을 사랑하고 숭배했다.그의 산수화들은 대게 볼펜 스케치라는 선행 작업을 거친 것들이다. 전국을 다니며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명산들을 스케치한 양이 2만장 정도다. 스케치 옆에는 당시를 기억하기 위한 메모가 있다. '청량대운도'는 1992년에 완성한 실경산수화다. 야송은 1989년부터 3년간 청량산 12봉을 수시로 오르내리며 수백 장의 볼펜 스케치로 산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봉화 읍내의 380평 널찍한 빈 창고를 빌려 바닥에 400장의 화선지를 펼치고 6개월 동안 두문불출했다. '청량대운도'는 1992년 10월22일 완성됐다. 야송은 감격한 나머지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얼굴까지 오체투지 낙관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1천700여 자로 적어 넣었다. 그때 야송의 나이는 54세, 머리카락과 수염은 덥수룩이 자라나 있었다. 그는 야송미술관의 개관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초대 관장을 지냈고 2019년 세상을 떠났다. '청량대운도'는 전시 공간을 만나지 못해 20년 넘게 수장고에 잠들어 있다가 2013년 전용전시관이 건립되면서 마침내 우뚝 섰다. 누군가 방명록에 이런 감상문을 남겼다. '청량은 본디 봉화에 머물러 있지만, 그 혼은 이곳 청송에 옮겨와 앉았다. 바야흐로 청량산은 두 군데가 되었으니 몸을 보았다면 이곳 청송에서 그 혼을 느껴봄이 마땅하다 할 것이다.' 미술관에서는 그의 여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작품들은 주기적으로 교체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스케치들과 메모들, 주왕산 일대를 담은 작품들, 20대 초반에 그렸던 서양화 등도 볼 수 있다. 그가 귀천한 이듬해인 2020년부터는 매년 청송야송미술대전이 열리고 있다.◆ 객주문학관청송 진보읍내를 500여m 앞둔 고갯마루에 '객주문학관'이 자리한다.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를 이름으로 내건 문학관으로 폐교된 진보 제일고등학교 건물을 고쳐 2014년 개관했다. 소설 '객주'는 19세기 말의 보부상들, 즉 장돌뱅이들의 이야기다. 1979년 6월부터 1984년 2월 말까지 4년 9개월 동안 1천46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되었고 1984년 9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3년 다시 연재가 시작되었고, 108회를 끝으로 총 10권의 '객주'가 완간되었다. 집필을 시작한 지 34년 만이었다. 문학관은 '객주'를 중심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담고 있고 소설도서관, 영상 교육실, 창작 스튜디오, 세미나실, 연수 시설 그리고 작가 집필실인 여송헌(與松軒)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제1 전시실은 '김주영 작가실'이다. 사람 좋은 얼굴로 천진하게 웃고 있는 작가의 사진 위에 '길 위의 작가, 김주영'이라 적혀 있다. 그는 '객주' 연재를 시작하기 전 5년 동안 전국 200여 개 시골 장터를 답사했다. 연재 기간에는 한 달에 20일 이상 장터를 찾아다니며 상인들과 막걸리를 나누고,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며 현장에서 글을 썼다. 그렇게 '객주'의 한 장 한 장은 '길 위에서' 완성되었다. '길 위의 작가'라는 애칭은 그의 행보에서 태어난 것이다. 전시실은 유리벽 속에 재현된 작가의 방을 중심으로 소년, 청년, 객주의 작가,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작가의 면면들로 채워져 있다. 지독히 가난했던 소년의 술회가 있고,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청년의 사진이 있고, 소설을 위해 장돌뱅이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던 시절 그와 함께했던 카메라와 철필과 노트가 있다. 전시실 한쪽에서 작가가 직접 녹취한 장터사람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의 걸음으로 채집된 우리말 노트가 11권 분량이다. 노트는 깨알 같은, 정말 깨알만 한 글씨로 채워져 있다. 소설가 이문구는 그의 노트를 보고 '이것은 그의 피다. 피를 흘리는 김주영의 모세혈관'이라고 했다. 제2전시실인 '소설 객주실'에는 소설의 인물들과 보부상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양한 조형물들과 그들 길 위의 삶과 함께했던 지게며 멍석, 저울, 사발, 목침 등이 전시되어 있다.청송의 진보면은 작가 김주영의 고향이다. 그는 진보면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달밭(月田)에서 태어났다. 이후 그는 진보장터 근처 '울타리 밖이 장터였고 울타리 안쪽은 우리 집 마당'인 집으로 이사했다. 지독히도 배고픈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는 장날마다 학교를 빼먹고 장터를 누볐다. 낯선 사람, 낯선 물건, 온갖 사투리, 작부와 사기꾼, 사이좋은 흥정과 육두문자에 멱살잡이를 보았다. 또 온갖 것들이 쏟아져 있는 난전 모서리에 앉아 도대체 이것은 어디에 소용되는 물건인지, 누가 왜 이 물건을 사 가는지를 생각했다. 진보면사무소 앞에 지금도 5일마다 장이 열리는 진보장터가 있다. 읍내 뒤로는 반변천이 흐른다. 반변천 갈밭 위로 떠오르는 태양과 흘러가는 여울 위로 내려앉는 노을은 그에게 가슴 시린 감동으로 기억된다. 이러한 무구한 감동과 순결한 경이와 땀 냄새가 배어나는 치열한 삶의 모습이 그가 잊지 못하는 고향이고 그의 소설은 이 모든 고향의 기억 속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지금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문학관의 한구석에 자리한 집필실 여송헌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객주문학관은 지역민과 소통하고 지역 사회의 문화예술 환경 조성에 이바지하며 여러 장르 예술인들의 창작 공간으로 폭넓게 운영되고 있다. 소통, 휴식, 어울림, 교육, 체험 등이 어우러지는 열린 공간이 그가 지향하는 청송 객주문학관이다. 글=류혜숙<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이원좌 화백의 작품 수백 점을 소장한 청송야송미술관은 2000년 폐교된 신촌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경북도 최초의 공립미술관이다.소설가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를 이름으로 내건 객주문학관 역시 폐교된 진보 제일고등학교 건물을 고쳐 2014년부터 운영하고 있다.제4회 청송야송미술대전 수상 작품들이 청송야송미술관 곳곳에 전시돼 있다.전시실 외에도 교육실, 창작 스튜디오, 세미나실 등을 갖춘 객주문학관 내부 모습.
[영남일보-대구경북학회 공동기획 경북의 마을 '지붕 없는 박물관'] <6>상주 퇴강리 '소울 박물관 콘셉트'
경북 상주시 사벌국면에 위치한 '퇴강리 마을'의 옛 명칭은 '물미마을'이다. 마을 앞쪽에 흐르는 영산강과 낙동강으로 집중호우 때면 물이 밀려온다고 해서 해당 이름으로 불렸다. 이러한 지리적 이유로 마을의 집들은 조암산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달 17일 취재차 방문한 마을에는 감나무들로 주황빛이 가득했다. 마을을 둘러보면 '아기자기'한 예쁜 마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또 마을 위쪽에 올라가면 영산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모습에 저절로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낙동강 700리 본류 시작점이자주민 대부분 천주교 신자인 마을수녀·신부 48명 배출 '마을자랑'성지 순례 코스인 십자가의 길14처 닿으면 낙동강 전경 한눈에◆퇴강성당'퇴강성당'은 마을입구 쪽인 옛 퇴강(물미)나루터 주변에 위치해 있다. 고딕양식의 건축물은 멀리서도 웅장한 느낌을 준다.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물로 수직 효과가 강조돼 천국에 닿고 싶어 하는 신자들의 소망이 드러나는 듯했다. 성당 남쪽의 주 현관 앞에는 '성모 마리아상'을 볼 수 있다. 성모 마리아가 죽은 후 육체도 영혼과 더불어 승천했다는 교의 '승모승천'은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 중이다. 1903년에 공소성당으로 설립된 퇴강성당은 원래 조암산 위쪽에 위치해 있었다. 1922년에는 본당으로 승격했으며, 1957년 마을 입구 쪽인 현 위치에 본당과 사제관이 새롭게 지어지면서 옮겨왔다. 이후 1970년 도시화로 인해 다시 공소가 됐다. 2007년이 돼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사벌퇴강 본당으로 재승격했다. 같은 해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20호로도 지정됐다. 퇴강리 마을 주민 대부분도 천주교 신자다. 옛날부터 선교사 없이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천주교를 받아들일 정도로 신앙 활동이 활발했다. 덕분에 수녀·신부 등도 대거 배출했다. 김용태(67) 퇴강리 마을이장은 "한 마을에서 수녀·신부가 1~2명 나오기도 어렵다. 우리 마을에는 48명이나 나왔다. 마을 최고의 자랑거리다. 안동교구청에서도 인정하는 곳이다"면서 "유서가 깊은 만큼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십자가의 길퇴강성당에서 조암산 성당으로 올라가다 보면 '십자가의 길'이 나온다. 성당의 입구 쪽에도 '십자가의 길' '구 서당' '첫 공소' '성모바위' 등으로 비석에 표시돼 있다. 십자가의 길을 둘러보는 대는 20~30분이면 충분했다.십자가의 길은 성지 순례 코스다. 퇴강성당이 처음 설립된 위치가 십자가의 길로 바뀌었다. 해당 코스에는 퇴강성당의 정신이 담겨 있다.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에서 숨지고 땅에 묻힐 때까지 수난을 기억하는 14처의 기도다. 신자들은 14개의 비석으로 이뤄진 14처를 순서대로 돌며 기도를 한다. 14처까지 다다르면 낙동강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퇴강리 마을은 마을의 천주교 역사 등을 알리기 위해 '올레길'을 추진 중이다. 십자가의 길을 중심으로 산책로를 조성하고 퇴강성당 인근에 마을 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김 이장은 "마을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계획을 구상 중이다. 퇴강성당의 역사와 마을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소개할 계획"이라고 했다.◆낙동강 생명의 숲 1호 공원퇴강리 마을 입구에는 '낙동강 생명의 숲 1호 공원'이 있다. 공원에 도착하면 낙동강과 영산강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해당 공원은 2010년에 조성됐다. 낙동강 생명의 숲은 낙동강 주변 지역마다 지역별 특성을 살리기 위해 조성됐다. 또 헌수(獻樹) 운동을 통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낙동강을 아름다운 강으로 만드는 등 낙동강 살리기 사업의 하나로 추진됐다. 공원에는 '4대강 국토 종주 새재 자전거 길'이 있다. 자전거 마니아들이라면 반드시 찾는 곳이다. 봄·가을 철이면 해당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도 많이 방문하고 있다. 또 해당 공원에는 '낙동강 700리' 표지석도 설치돼 있다. 표지석에는 낙동강의 유래가 적혀 있다. 낙동강 700리 표지석은 상류에서 각기 다른 이름으로 흐르던 여러 하천의 물길이 이곳에서 모여 낙동강 700리 본류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기 위해 설치됐다. 과거에는 낙동강 700리 물길을 따라 많은 나루터가 위치해 있었다. 낙동강 하구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소금배 등으로 사람들로 붐볐다고 한다. 덕분에 장터와 주막이 나루를 끼고 번성했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상주 퇴강리 마을에 위치한 퇴강성당.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물로 2007년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20호로 지정됐다. 십자가의 길에는 퇴강성당의 정신이 담겨 있다. 신자들은 14개의 비석으로 이뤄진 14처를 순서대로 돌며 기도한다. 퇴강성당에서 조암산 성당으로 올라가면 '십자가의 길'이 나온다. 마을 입구 '낙동강 생명의 숲 1호 공원'에는 '낙동강 700리' 표지석이 있다.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Ⅱ 대구경북 생존보고서] 양질의 교육기관, 일자리 필요
지역 소멸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청년'이다. 소멸을 극복하기 위해 산업을 재편하고, 일자리를 늘리고, 지역 대학을 발전시키는 정책은 결국 청년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 영남일보가 소개한 '생활인구'<영남일보 10월 11일자 4·5면 보도>처럼 유치할 수 있는 인구의 핵심이 청년 층이기도 하다. 허문구 산업연구원 균형발전센터장은 지방소멸 지표 관련 보고서에서 "최근 수도권으로 향하는 지방인구의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으며, 특히 청년들의 수도권 쏠림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며 "수도권은 과밀현상으로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고, 비수도권은 일자리와 인력의 수급 불균형 심화 및 경제성장 정체 현상에 직면하면서 지방소멸은 가속화되는 양상을 보인다"고 진단했다. 실제 대구경북의 경우 청년 유출로 활력을 잃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북지방통계청에 따르면 경북의 지난해 순유출 인구 7천666명 가운데 86.4%(6천626명)가 '수도권으로 빠져나간 20대'로 조사됐다. 대구 역시 지난해 순유출 인구(1만1천519명) 중 67%(7천725명)가 수도권으로 간 20대로 나타났다. 대구경북 대학 역시 이미 2021학년도 대입에서 대거 미달사태를 경험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올해 대구경북지역 고3 수험생 수가 3만9천여명이지만, 지역대학 전체 정원은 6만5천여명이다. 지역대학의 대규모 미달사태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대입 및 취업에 맞물려 거주 지역의 이동이 일어나는 데 지역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청년 인구의 역외 유출을 낮추기 위해서는 청년에게 성장과 학습 기회를 제공할 양질의 교육기관과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청년들이 지역을 찾아올 만한 매력이나 청년들이 지역을 떠올릴 수 있는 '명확한 컨셉'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었다. 정수희 덕성여대 교수는 "일자리와 산업 등 청년들의 수요를 먼저 이해하고 정책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구 유치 시대를 고려해 지역 학생들을 머무르게 하는 것은 물론 수도권의 학생을 지방으로 '유치'하는 방안도 필요할 전망이다.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 취업준비생 1천여명에게 한 설문 결과, 향후 취업 시 비수도권 지역 내 근무 의향을 물었을 때 수도권 대학생 34.3%만 긍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비수도권 대학생은 63.3%였다. 10명 중 4명은 지역을 떠날 준비를 한다는 의미다. 비수도권 대학생은 공기업·공공기관 취업을 선호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대학내일 송혜윤 연구원은 "수도권 청년들이 비수도권에 아는 사람이 없어 근무까지 수용하기 어렵다는 결과를 볼 수 있었다"며 "가족이나 지인 등이 없더라도 취향과 관심사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청년층의 특성을 고려해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찾아 가꿔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의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점, 즉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일 할 수 있는 기업'의 수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만큼 취업의 기회가 적다는 부분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라며 "비수도권에서의 생활(통근, 통학, 관광, 휴양, 업무 등) 경험 유무가 가장 중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토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전반적인 추세는 비수도권에서의 청년 인력 유출 경향이 뚜렷하지만, 청년 고용 분포를 분석한 결과 지방 도시 가운데 대구와 구미 등 일부 지역은 청년 고용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정부가 농촌의 근무·주거·보육 환경을 개선해 청년 층의 눈높이에 맞출 방침이라 거주여건이 개선될 경우 '청년 농업인'을 통한 청년 인구 유입도 가능할 전망이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일자리 박람회 모습. 영남일보DB
2023.10.31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Ⅱ 대구경북 생존보고서] 지역 대학 활성화 관건
#구미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정모(18) 군은 '서울 및 수도권의 대학'으로 진학할 계획이다. 서울권 대학 졸업 시 일자리, 문화적 등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군은 "수도권의 문화적 요소나 일자리 등으로 인해 졸업 후에도 대구경북으로 내려오지 않을 것 같다"면서 "주변 친구들 대다수도 서울권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란다. 서울권 대학 진학 시 일자리, 문화 등에서 유리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역 대학에서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대구의 한 고등학교 3학년 조모(18)군 역시 '서울권 대학'을 희망하고 있다. 조 군은 "지역의 대학은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에 비해 메리트가 없다. 지역 대학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다양한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면서 "지방대에 진학 시 취업 이점을 주는 등 취업 관련 지원을 많이 해주면 진학을 고려해 볼 것 같다"고 했다. 지역소멸에 맞서기 위해 '지역 대학'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지역 대학이 활성화되면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해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지역 대학은 위기를 맞고 있다. 학력 인구 감소에다 서울 및 수도권 대학에 진학을 희망하는 지역 고등학생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2024학년도 대구권 4년제 대학 7곳의 수시모집 ' 결과, 전체 2만여 명 모집에 14만 3천 여 명이 지원했다. 평균 경쟁률이 7.05 대 1로 지난해(7.27 대 1)보다 소폭 하락했다. 경북대 등 일부 대학을 제외하고 실질 경쟁률의 기본값으로 인식되는 6대 1을 넘지 못하는 대학들도 있다. 지역 대학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취업'과 관련한 지역 대학만의 강점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부분 학생의 대학 진학 이유가 취업인 만큼 지역 기업과의 연계 등을 통해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북의 한 고등학교 교사 권모(33) 씨는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서울권 대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많다. 큰 곳에 가야지만 기회가 많다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다"면서 "기업과 학교 간 인턴십 제도 확대 등이 필요하다. 수도권의 경우 취업 자리가 많다 보니 지역 대학 졸업 후에도 수도권으로 상경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 기업들과의 연계를 통해 청년들이 지역에 남아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대구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이모(여·20) 씨는 "지역 대학을 나와서도 취업 걱정이 없다면 수도권으로 갈 생각을 굳이 하지 않을 듯하다"면서 "지역 기업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기업과 학생들을 연계한 프로그램 등을 운영했으면 한다"고 했다. 대구권 대학들도 신입생 유치 및 재학생 정주 여건 향상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경북대는 청년 취업 지원 및 지역 정주 촉진을 위해 '알면 좋은 우리 지역 혁신 중견기업' 강의를 운영 중이다. 대구대는 지난 9월 '가족회사협의회와 취업릴레이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을 통해 재학생 및 졸업생의 취업역량 개발 지원 등이 이뤄진다. 계명대는 지난 4월 '대구 미래모빌리티산업 지역 정주형 인재양성을 위한 MOU'를 체결했고, 대구가톨릭대는 '미래 4차산업 분야의 인재양성'을 위한 사업을 유치했다. 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경북대는 청년 취업 지원 및 지역 정주 촉진을 위해 '알면 좋은 우리지역 혁신 중견기업' 강의를 개설했다. 화신 기업 강의 모습. 대구대는 '가족회사협의회와 취업릴레이 협약'을 체결했다. 해당 협약을 통해 회계학과 학생이 취업에 성공했다. 사진은 협약식 모습. 대구가톨릭대는 경북 반도체 초격차 전문인력 양성 등을 위해 교육과정 개편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 중이다. 계명대는 지난 4월 대구 미래모빌리티산업 지역 정주형 인재양성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협약에 따라 미래모빌리티 관련 교육과정을 새롭게 개설한다.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대구권 의대 교수 8명 사직서 제출…정부 대화 촉구에도 의료계 강경한 태도
의협 새 회장 강경파 임현택 당선…'의대 증원 논쟁' 고조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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