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창원 천주산(1)...진달래 피는 산 능선마다 분홍빛 바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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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22   |  발행일 2022-04-22 제33면   |  수정 2022-04-22 08:25

1면사용

올해 4월은 오래 기억될 것 같다. 4월 초순을 전후해 전국의 산 곳곳을 자줏빛 분홍색으로 물들이는 진달래 덕분이다. 경남 창원 천주산의 진달래 군락을 보고 온 것이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천주산 정상 북편 산비탈 수십만 평 전체가 일시에 불타고 있는 듯한 진달래꽃 천지를 잊을 수 없을 듯하다.

옛날부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해 온 진달래꽃을 소개하고 싶었다. 유명 진달래 군락지를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고, 그중 창원 천주산을 선택했다. 가본 적이 없는 곳이지만, 사진들만 봐도 대단할 것 같았다.

그곳 진달래 개화 소식을 계속 확인했다. 지난해는 예년보다 빠른 3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4월 초에 만개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3월 말부터 계속 점검하다, 꽃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할 것 같은 4월5일 가보기로 했다. 평일로 날을 잡았다. 진달래꽃이 만개했을 때, 그리고 휴일에는 사람이 너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5일 오전 대구에서 창원으로 향했다. 청도와 밀양을 거치는데, 차창 밖으로 강변의 높은 절벽 위에 진달래가 활짝 핀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바위 절벽 위에 분홍 진달래가 핀 모습이 특히 예쁘고 인상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대표적인 진달래 풍경으로 남아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높은 절벽 위의 진달래꽃 모습을 보니 향가 '헌화가' 이야기가 떠올랐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신라 경덕왕 때 일이다. 수로부인의 남편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던 중, 수로부인이 동해안의 천길 절벽 위에 핀 진달래꽃을 보고 누가 꺾어주기를 원했다. 일행 중 누구도 나서지 못했는데, 마침 암소를 몰고 가던 한 노인이 헌화가를 부른 뒤 절벽 위로 올라가 진달래꽃을 꺾어 바쳤다. 헌화가를 현대어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자줏빛 바위 끝에/ 잡은 암소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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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천주산 정상 부근의 진달래 군락지 모습(2022년 4월5일·작은 사진)과 5일 후 다시 찾아간 진달래 군락지. (2022년 4월10일)

천주산 달천계곡 주차장에 차를 주차했다. 다행히 딱 한 대 공간이 남아있었다. 주차장 주변은 수백 그루의 아름드리 벚나무들이 꽃비를 내리고 있었다. 산행을 시작해 조금 올라가니 진달래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산 아래쪽 진달래는 벌써 활짝 핀 모습이었다. 올라갈수록 개화 정도가 덜했다. '함안경계'를 지나는, 정상으로 바로 가는 코스로 올라갔다. 한 시간 정도 올라가니 연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정상(용지봉)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가슴도 설레기 시작했다.

정상 아래 진달래 전망대에 오르니, 분홍 진달래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산비탈 경사가 심한 편이라 정상 쪽에서는 진달래 군락 전체를 조망할 수가 없지만, 그래도 전망대마다 다른 진달래 풍경이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오게 했다. 정상 주변은 햇볕을 많이 받아서인지 다른 곳보다 많이 핀 편이었는데, 20~30% 개화한 듯했다.

이곳 진달래 군락은 그 밀집도가 보기 드물게 높다. 2m가 넘는 진달래나무들이 빽빽하게 밀집해 있어, 사람은 길이 아닌 곳에는 한 발짝도 들어갈 수 없다. 다른 잡목도 하나 없다. 그런 군락 자체가 대단해, 그 정도만 피었는데도 장관이었다. 올라온 길 반대쪽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며 진달래 풍경을 감상했다. 평일이고 개화가 덜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부산, 안산, 대구, 구미, 대전 등 곳곳에서 찾아왔다고 했다.

계속 내려가 군락지 끝자락에 마련해놓은 전망대에 올랐다. 이곳부터 정상 쪽으로 진달래 군락지가 광활하게 펼쳐지는데, 군락지의 70% 정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천주산 진달래 군락지 중 최대 규모다. 이 전망대 앞쪽은 햇빛이 늦게 드는 구역이라, 개화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래도 멀리 정상 부근에 피기 시작한 진달래, 앞쪽의 곧 터뜨릴 수많은 분홍빛 꽃봉오리, 옅은 갈색 진달래 나무줄기의 빛이 어우러진, 파스텔 톤의 오묘한 빛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주 특별한 풍광이었다.

진달래꽃이 더 개화하면, 만개하면 어떤 분위기일까 상상해봤다. 약간의 아쉬움을 두고 산을 내려왔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


☞[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창원 천주산(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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