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범물동 카페촌을 찾아서
◇ 카페, 그 오묘한 공간 1689년 프랑스 최초의 카페 '르 프로크프(Le Procope)', 1886년 일본 최초의 커피숍 '세수정(洗愁亭)'이 도쿄에 생겨납니다. 1902년 서울 정동 러시아 공사관 옆에 2층 적벽돌조 손탁호텔에서 고종이 커피에 매료되고, 그 커피향이 대구로 흘러든 건 1936년. 그 해 중구 아카데미극장 옆 대구 첫 커피숍 '아루스'를 요절한 천재화가 이인성이 오픈합니다. 그 다방은 수필가 이화진 등 여러 손을 거치다가 60년대 의사 박태환이 인수해 다방을 허물고 그 자리에 박내과를 짓습니다. 카페는 일제 때부터 서울 명동 등지에 즐비했고, 대구에도 북성로 초입에 가게츠(花月) 등 몇 개가 있었습니다. 79년 카페풍의 외식 공간이 서울에서 태어납니다. 서울 대학로 난다랑, 소공동 롯데리아 1호점입니다. 한국산 카페는 유럽과 달리 커피보다 술에 더 무게가 실립니다. 다방과 레스토랑보다는 덜 착한 것 같고, 바(Bar)보다는 더 착할 것 같죠. 카페는 정체가 참 애매합니다. 다방, 레스토랑, 바, 비어홀, 식당, 카바레, 클럽 등과 맞물려 있습니다. 현행법상 카페는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돼 있습니다. 술과 음식은 팔 수 있지만 여종업원이 손님 시중을 못 들게 돼 있습니다. 하지만 서비스와 시중의 경계는 분명치 않아 단속도 쉽지 않습니다. 카페 여주인들이 단골에게 던지는 야릇한 미소, 그건 단속 대상입니까? 그 질문에 한 구청 식품위생과 직원이 빙그레 웃기만 하네요. 88년 서울 올림픽 직후, 직할시의 유흥문화가 '메이저급'으로 성숙됩니다. 두드러진 움직임 중 하나가 '개성파 카페'의 출현입니다. ◇ 낮 커피는 ↓ 밤 술은 ↑ 90년대초 벚꽃처럼 화려하게 핀 골목이 있습니다. 바로 수성구 범물동 카페골목. 아파트촌으로 변한 수성구 시지·범물동. 파생 특수를 노리려고 용지네거리 남동쪽 거리에 카페촌이 생깁니다. 그때 사람들의 소비 스타일도 컬러풀해집니다. 좀 폼을 내고 싶었던거죠. 낮엔 주택가 미시족이 모여 수다를 떨었고, 밤엔 오렌지족 및 감각파 중년들이 돈을 뿌렸습니다. 하지만 여기도 IMF 외환위기 때 좌초됩니다. 상당수 손님들은 그곳을 떴고 초기 사장들도 가게를 팔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지금 어떻게 돼 있을까요. 듬성듬성 진은 치고 있지만 아주 쇠진한 모습입니다. 남측 거리에 카페델(이탈리안 커피 전문), 줌, 파라솔, 나폴리(파스타 전문), 오래된 미래, 라벤더, 앱솔루트, 조이럭(칵테일 바), 게스(칵테일 바), 네이처(중국차), 찰스 채플린, You & I, 오렌지 향기, 북측 거리엔 설탕창고, 세븐, U2, 로마의 휴일, 하얀목련 등이 산재해 있었다. 전성기 때의 반 정도입니다. 남쪽 거리의 경우 카페델과 줌, 파라솔, 나폴리 정도가 낮에 커피 손님을 받고 나머지는 밤에만 영업을 합니다. 이들 업소 사이에는 횟집 등이 섞여 예전 골목 분위기가 아닙니다. '범물동 먹거리촌' 같달까요. 그들은 압니다. 각종 노래방·유흥주점·단란주점이 자신들의 숨통을 조인다는 것을. 논란 중인 상인~범물 도로가 뚫린다면 또 판세가 달라지겠죠. 동쪽 거리는 87년 문을 열어 계속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설탕창고가 있어 겨우 체면을 유지합니다. 진밭골 초입에서 U턴해 내려오다 첫 골목 주택가에 족보있는 카페 3인방이 있습니다. 설탕창고·세븐·U2입니다. 낮엔 설탕창고와 세븐만 문을 엽니다. 이 골목 터줏대감격인 설탕창고는 참 매력적입니다. 실내 분위기가 꼭 주황색 스웨터 같은 질감입니다. 2002년 서울에서 내려온 임모씨가 6번째 주인이 됩니다. 화가였던 초대 사장이 카페를 촌티나게 하려고 상호를 '설탕공장'으로 지으려고 했죠. 20년간 실내를 전혀 손대지 않았습니다. 합판톤의 바닥과 바텐은 숱한 발·손길이 닿아 낡은 것 같으면서도 윤기가 흐릅니다. 그걸 즐기는 추억의 단골들이 이 집을 살립니다. 8년전 두 번째 사장을 만난 세븐. 예전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커플 등이 자주 들락거렸지만 지금은 아니라네요. 하여튼 파이팅, 범물동 카페촌!
2007.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