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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 동네뉴스]
[동네뉴스] 대구 미얀마 사원 한국인 디라 스님 "이번 미얀마 민주화 투쟁은 다를 것"
지난 8일 대구 달서구 달구벌대로의 한적한 주택가에 위치한 '찟따수카 미얀마 사원'이라는 공간을 성서공동체FM '라디오 사람책' 제작팀과 함께 찾았다. 사원 입구에는 한국어와 영어로 "미얀마 군부는 시민들에 대한 학살과 탄압을 중단하라"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곳은 미얀마인들이 모여 법회를 보는 불교사원이기도 하고 미얀마인들의 커뮤니티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 계신 한국인 승려 디라 스님(49)을 만났다. 그는 한국인임에도 2008년 미얀마로 가서 출가를 하고 미얀마의 불교전통을 따라서 생활하는 스님이 돼 10여년 이상 미얀마에서 생활을 하던 중 미얀마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올해 4월 이곳으로 돌아와서 머물게 됐다고 한다. 이 찟따수카 사원은 2018년 대구와 경북 미얀마인 노동자들 100여명이 그들의 첫 월급을 고스란히 모은 돈 1억5천만원으로 매입하고 리모델링을 해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사단법인 '마나빠다이 불교센터'란 이름으로 등록이 돼 있고 그 과정에서 디라스님의 역할이 있었다고 한다. 서울이 고향이고 누가봐도 모범생이었을 것 같은 스님이 무슨 연유로 이곳 대구의 미얀마사원에서 미얀마인들과 함께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유복한 집안의 5남매중 막내로 태어나 식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그는 초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세상은 온통 풍요로운 사람들만 존재하는 곳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입학을 하고 짝이 판자촌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로 충격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빈곤'이 그의 삶의 화두 중 하나라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철학을 전공하고 싶었으나 완고한 부모님의 뜻을 꺾지 못하고 전자공학과에 진학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대학시절인 23세 때 출가를 결심했고 주위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4년이 흐른 37세때 스승의 권유로 미얀마에서 수행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미얀마의 승려들이 행하는 '의지수행기간' 5년을 채우고 승려로서의 삶의 방향을 정해야 할 무렵 출가하기 전 한국에서 해왔던 도서관 관련 교육문화 사업을 미얀마에서 펼치기로 결심을 했다. 하지만 미얀마는 전기보급, 출판산업을 비롯해 에어컨 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미얀마의 습한 기후에 책에 곰팡이가 썰기 일쑤였다. 한국에서처럼 그림책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는 한국의 그림책으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마주이야기 활동'을 할 수 있는 교사 양성 과정을 진행했다.올해 10월 첫 교사 배출을 앞두고 있었지만, 지난 2월 발생한 군부 쿠데타로 인해 안타깝게도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군부 쿠데타로 파업한 교사들이 모여 비디오클립 형태로 영상 교육자료를 만드는 등 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디라 스님은 몸은 한국에 있지만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어린이 잡지 만들기'와 '인터넷 학교 플랫폼 작업' 등 미얀마에 있는 그들에게 SNS로 소통, 끊임없이 아이디어 제공을 하고 있고 '한국의 EBS와 같은 교육방송국을 미얀마에 만드는 것이 꿈' 이라고 말한다. 대학을 다닐 때는 운동권 학생이기도 했고 30대에는 '싸움닭'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냉혹했던 그가 도서관 관련 활동을 하기 위해 그림책을 접하면서 그림책이 주는 지혜에 매료됐다. "역사 속에서 성인군자만 있었다면 그 지혜로운 말씀이 당대에서 끝났을 것이다. 그 말씀들이 그림으로, 노래로, 다양한 예술로 융합돼 풍부해졌기 때문에 오래오래 전해져 왔을 것"이라며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그림책이 해준다고 믿는다"고 말하는 그는 현재 '이야기스님'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스토리텔러로도 활동중이다. 최근에는 성서공동체FM과 연이 닿아 한국에서 미얀마의 민주화운동과정을 기록하고 세인들의 관심을 이어가기 위한 '아띤타바 미얀마'(힘내라 미얀마)'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찟따수카 사원의 미얀마 노동자와 유학생과 함께 지난달 첫방송을 했다. 이모든 과정을 블로그나 유투브, 페이스북에 기록을 남기고 그들을 독려하는 일을 하고 있다.디라 스님에게 문화교육 활동을 펼치는 이유를 물었다."미얀마의 젊은이들이 변하고 있다. K-pop이나 한국 드라마를 비롯한 한국의 문화를 접한 그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알게 됐다. 미얀마라는 좁은 공간에서 인터넷을 통해 다른 세상을 접하고 상상하는 힘이 생겼다. 그들의 상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힘이 바로 문화 예술에 있다고 본다. 과거의 미얀마 민주화 과정은 두세달 짧게 끝났지만 이번의 민주화 투쟁은 장기화 될 것이다. 그것은 이미 다른 세상을 경험한 미얀마의 젊은 세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민주화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이러한 그의 독특한 이력은 성서공동체FM 기획시리즈 '라디오 사람책 - 이주노동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오는 19일(화) 오전 11시에 소개된다. 글·사진= 진정림 시민기자 trueforest@naver.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대구 달서구 달구벌대로에 위치한 찟따수카 사원미얀마에서 온 한국인 승려 디라 스님
2021.10.11
[동네뉴스] 주택 스티로폼 상자 화분에 둥지 튼 두꺼비 한 쌍
경산시 자인면 박기환(65)씨의 집에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현관 앞 스티로폼 상자 화분에 두꺼비 한 쌍이 둥지를 튼 것이다. 꽃들이 지고 잡초가 무성한 스티로폼 화분 한 쪽에 흙을 파고 집을 만들어 놓았다. 지난달 중순 발견 당시에는 흙과 같은 보호색을 띠고 있었던 터라 언제부터 여기서 살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많은 곳 중 하필이면 힘들게 계단을 올라와서 허름한 스티로폼 상자 안에 보금자리를 만들었을까 처음에는 참 의아했다. 지금 보니 두꺼비는 이곳이 생활하기에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로 생각되어 보금자리를 만든 것 같다.두꺼비는 먹이 활동을 하지 않는 낮에는 흙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흙과 구별이 되지 않는다. 가끔 깜박이는 눈을 보고 두꺼비가 있음을 안다. 두꺼비와의 동거로 박씨네 가족은 버릇이 하나 생겼다. 항상 땅을 보면서 조심하며 집을 드나들게 된 것이다. 특히 해 질 무렵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두꺼비가 활동하는 시간은 무조건 살피고 또 살피며 발걸음을 옮긴다.기성세대들은 어린 시절 비가 오면 엉금엉금 기어 나오던 두꺼비를 종종 보았던 기억이 있다. 요즘은 개체 수가 줄어 눈에 잘 띄지 않는데 집 현관 앞 화단에 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신기하다. 박씨는 "두꺼비가 집에 들어오면 재물 복이 생긴다는 옛말이 있다. 코로나로 침체된 경기가 회복되어 코로나 전의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스티로폼 화분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두꺼비 한 쌍. 스티로폼 화분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두꺼비 한 쌍.
2021.10.10
[동네뉴스] 장인·사위 2대에 걸쳐 30년간 영남일보 화원지국 운영
이재우 영남일보 대구 달성 화원 지국장(58)의 일과는 밤 12시 30분에 시작된다.오전 1시에서 1시30분이면 모든 조간신문이 도착한다. 이 지국장이 배달하는 신문은 영남일보를 비롯해 중앙지 등 모두 18종에 달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많았던 것은 아니었다. 온라인 매체의 등장으로 구독자가 감소하면서 각 신문사는 지국을 통폐합했다. 통폐합된 신문의 배달을 맡다 보니 어느덧 18종에 이르렀다. 지역별 분류작업을 끝내고 속지 작업을 하면 1차 작업이 끝난다. 그다음은 본격적인 배달 일이다. 배달은 두 가지 방식이다. 아파트는 우유업체와 협력해서 배달하고 기관, 가게, 주택은 이 지국장이 직접 담당한다. 마치면 오전 7시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오전 8시부터 12시 30분까지 잠을 잔다. 오후가 되면 신문지국 일과 개인 일을 처리한다. 이렇게 이 지국장은 20년간 남과 다른 수면시간과 생활방식으로 지국을 묵묵히 지켜왔다.이 지국장의 신문과의 인연은 남다르다. IMF 때 운영하던 봉제공장을 닫아야 했다. 당시 쉬면서 신문지국을 운영하던 장인을 도왔다. 틈틈이 도왔던 일이 20년 업이 됐고 영남일보 화원지국은 장인과 사위의 2대에 걸친 30년 역사가 담긴 자리가 됐다.이 지국장은 "그때는 신문 속지에 나가는 광고가 저렴하면서도 효과적인 광고수단이어서 월수입이 대단했다"며 "월 400만~500만 원 광고 수입이 들어왔다. 배달원도 지금에 비하며 구하기 쉽고 어느새 세상도 변하고 벌써 제 나이 60이 다 되었다"고 신문이 한창 잘 나갔던 시절 이야기에 활짝 웃음을 보였다.이 지국장은 배달 일을 할 때면 안타깝고 난감 한 일을 목격할 때가 많다고 했다. 따뜻함을 지닌 그는 그 광경을 지나치지 못한다. "밤에 술 먹고 노상에서 잠자는 주취 꾼을 깨워주는 일은 다반사예요. 한번은 한겨울 새벽 3시쯤, 아파트 단지 안에서 4~5살 꼬마가 울며 엄마를 찾고 있는 거예요. 아이는 정신없고 주소도 모르고 난감했죠. 할 수 없이 경찰에 연락해서 인계했는데 나중에 경찰서에서 연락을 주셨는데, 부부싸움으로 홧김에 애를 재워 두고 집을 나가서 생긴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배달일이 1시간 이상 지체됐지만, 인사도 듣고 뿌듯했죠."작년 시작된 코로나 여파는 뚝심 좋은 지국장도 힘들게 했다. "작년 처음 코로나가 대구에 터졌을 때 신문에 바이러스가 묻어온다고 당분간 넣지 말라던 구독자도 있었고. 앞으로 힘들겠지만 몸 건강할 때까지 끝까지 해야죠."각 신문사의 머리기사만 봐도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보인다는 이 지국장은 영남일보 창간일도 기억한다. 그는 "영남일보가 벌써 76주년이죠. 영남일보 하면서 득을 크게 봤어요. 본사 직원, 지인을 통해 구독 신청도 들어와요. 그럴 때며 중앙일간지와 다른 지역주민들 속에 있는 신문인 걸 느끼게 하죠. 지자체에서 하는 정책 지원사업에서도 영남일보의 역할이 보이고 '팔공산 달빛 걷기대회' '바자회' 등 영남일보가 주최하는 행사도 주민들 사이에서 홍보 효과가 높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여러 행사가 다시 이어져 주민들 속에 영남일보의 활동이 돋보이길 기대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전하지 못한 속내를 전했다. 이 지국장은 "30세에 결혼해서 첫째, 둘째가 서른이 다 되고 막둥이가 어린 중 3이다"라며 "잘 커 줘서 고맙고 아내가 간호사 일을 하면서도 도와주어 큰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이 지국장은 일요일 외에는 쉴 수 없는 지국장의 애로와 가장으로서 미안함을 담아 "그동안 가족이 함께 장거리 여행을 하지 못했던 게 아쉽다"라고 했다. 글·사진=이명주시민기자 (impsee@hanmail.net)<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이재우 영남일보 화원 지국장은 장인 ·사위 2대에 걸쳐 30년간 영남일보 화원지국을 운영하고 있다.이재우 영남일보 화원지국장은 영남일보가 주최하는 주민 행사들이 다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동네뉴스-시민기자 세상보기] 김광석거리, 다시그리기
최근에 지인이 멀리에서 대구를 찾았다. 휴가의 첫 일정으로 대구의 김광석 거리를 가보고 싶어 했던 그는 가수 김광석과 동년배쯤으로, 그를 무척이나 그리워하고 있었고 김광석 거리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도 3~4년 전쯤 가족과 함께 그곳에서 주말 한나절을 즐겁게 보냈던 기억을 꺼내며 흔쾌히 앞장섰다. 하지만 우리의 설렘과는 달리 주차장에서부터 불안감이 들었다. 주차장 주변은 잡초가 우거져 있었고, 여기저기 처져 있는 거미줄을 피해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자그마한 가게들은 영업을 그만둔 지 오래된 듯했고, 손님들로 북적대던 개성 있는 카페 대부분에는 '임대' 글자만 덩그러니 붙어 있었다. 골목에 크게 자리 잡은 게임 기계들의 시끌시끌한 소리는 김광석의 노랫소리보다 더 커서 주옥같은 노래에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먼 데서 오신 손님은 잔뜩 실망감만 안은 채 떠났다. 그런데 그로부터 2주 뒤, 또 다른 지인들이 김광석 거리로 사진 찍으러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나의 대답은 단호했다. "다른 데로 가는 게 좋겠어요"라며 지난 방문 때의 이야기를 했지만, 그래도 김광석 거리를 가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으니 오겠단다. 나중에 들어보니 벽화 앞에서 인증사진만 찍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렇게 찍을 게 많았던 김광석 거리였는데 말이다. 문득 몇 해 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를 여행했던 기억이 났다. 모차르트 생가가 있는 골목뿐만 아니라 발을 내딛는 잘츠부르크 도시 전체가 모차르트를 떠올리게 했다. 바이올린 모양의 초콜릿, 모차르트 얼굴이 그려진 손수건, 악보처럼 생긴 수첩, 음식점이나 카페마다 흘러나오는 모차르트의 명곡들, 개성 있지만, 통일감 있었던 간판들. 그곳에 가니까 모차르트가 있었던 게 아니다. 모차르트를 찾아서 그곳까지 간 것이다. 최근에 대구 김광석 거리를 찾아왔을 많은 사람의 마음은 어땠을까? 물론 코로나19 영향 탓이 크리라 짐작할 수 있고, 나름대로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실적인 면에 비추어보면 이해도 간다. 하지만 왠지 씁쓸하다. 예전의 정취가 그립다. 처음 그 골목에서 많은 사람이 위안을 얻었듯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 하루빨리 회복의 바람이 다시 불기를 기대해본다. 양은주 시민기자 yej21@hanmail.net<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양은주 시민기자
[동네뉴스-스마트폰 세상보기] 대구 혁신도시에 '마스크 쓴 돌하르방'
대구시 동구 혁신도시의 어느 카페 앞에 거대한 돌하르방이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대구시민들은 지난해 2월18일 코로나 확진자가 처음 나온 이후 줄곧 마스크를 쓴 채 지금까지 1년7개월 동안 벗지 못하고 있다. '대프리카'로 불릴 정도로 뜨거운 대구의 폭염 속에서도 마스크 를 써야 했던 시민들이 딱하기도 하련만, 돌하르방과 같이 기념 촬영하며 웃고 즐기는 모습들을 보노라면 대구시민들은 반드시 코로나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글·사진=박태칠 시민기자 palgongsan72@hanmail.net<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1.10.06
[동네뉴스]경북 청도 기업 '천연염색 나지나', 로컬 스타트업으로 나래를 펴다
먹는 감이 이제 가죽으로도 탄생했다.경북 청도지역 특산물인 감을 소재로 천연염료제품과 식물성 가죽을 이용해 생활소품을 개발, 양산화 계획을 세우고 있는 '천연염색 나지나'(대표 박보화)가 신생 벤처 기업 도약을 향한 로컬 스타트업으로 부상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청도군 각북면 소재 천연염색 나지나는 감을 비롯해 한약재(오배자), 식용색소(락), 치자, 쪽 등 천연염료를 100% 적용해 천연부직포, 면, 마, 인견 등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 식물성 소재로 친환경적 비건(Vegan) 가죽 생산에도 자체 기술로 시제품을 성공적으로 제조해 차년도에 대량 생산한다고 한다. 천연기능성을 가진 식물성 가죽제품인 비건 가죽은 항균성이 강해 피부병 및 아토피 증상에도 매우 안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 악취성을 없애고 탈취성도 강해 위생적이며 유색의 천연염료를 적용해 다양한 컬러로 패션화된 실용적 작품으로도 응용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해 12월 '비효소적 갈변반응을 이용한 속성감물 염색방법' 기술을 특허 출원해 특허청 심사를 받는 중이라고 한다.지난해 2월 창업한 천연염색 나지나는 청도지역 감 생산 농가들과 상생 방안을 모색하면서 나름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현재 사업장은 영세하지만 내년까지 규모를 확대시켜 고용 창출에도 힘쓸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감 소비량을 증대시키고 폐부산물(감 껍질)을 이용한 천연염색 연구에 박차를 가해 농민들에게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도록 노력을 하겠다고 한다. 천연염색 나지나는 오는 11월 광주 KBC방송국과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주관하는 '로컬 스타트업 챌린지' 공모사업에도 선정됐다.지난 1~3일 문경 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된 제8회 경북도 평생학습박람회에 청도군 대표로 참가해 출품한 '비대면식 DIY 천연염색 체험키트'가 호평을 받아 로컬 스타트업으로 자리를 굳혔다고 한다.박보화 대표는 사회적 환원사업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지난 8월에는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기능성 천연 패션 마스크 200장을 청도군 각북면에 기탁했다. 앞으로도 취약계층과 장애인 단체 등에 지속적으로 도울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코로나 위기를 통해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나름 배운점도 많았다"면서 "지식과 기술이 앞선다고 사업이 성공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깨달았다"며 "시대적 흐름과 철저한 시장조사를 통해 고객만족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성공은 가까워 질 것"이라고 하면서 강한 도전정신을 보이기도 했다. 이외식 시민기자 2whysik@naver,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지난 8월 청도군 각북면에 기능성 천연 패션 마스크를 전달하는 박보화 천연염색 나지나 대표(오른쪽). 천연염색 나지나 제공제8회 경북도 평생학습박람회에 청도군 대표로 참가해 출품한 '천연염색 체험키트'.
2021.10.05
[동네뉴스] "책 말고 호스, 줄자, 톱 등 공구를 빌려주는 도서관입니다"
대구 달서구 월성1동 주민센터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책을 빌리는 도서관이 아니라 공구 도서관이 있다. 주민 센터의 왼쪽 한편에 마련된 큰 진열장에는 '우리 동네 공구 도서관'이라는 간판과 함께 에어 호스부터 줄자, 톱, 전정가위, 드릴, 절단기 등 우리 생활에 흔히 쓰이는 공구들이 유리문 안에 보기 좋게 걸려있어 주민 센터를 찾은 민원인들의 눈길을 끈다. "신혼집에 막 이사 와 액자를 하나 걸려고 해도 공구를 마땅히 빌릴 때가 없어서 난감했는데, 우연히 주민센터에 들렀다가 알게 돼서 빌리게 됐어요. 제가 찾던 게 딱 걸려있어서 얼마나 반가웠던지(웃음)." 30대 직장인 김기대 씨는 공구를 빌리는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며 익숙하게 담당자를 찾았다. 2018년부터 시작한 공구 대여 서비스는 달서구 총무과에서 지휘하여 월성 1동뿐만 아니라 다른 주민센터에서도 시행 중인 사업이다. 대여 대상자는 관할 주소지에 거주하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대여가 가능하며 주민번호, 이용하는 용도, 전화번호를 기입한 신청서를 담당자에게 제출하면 된다. 기자가 얼핏 살펴본 공구 대여 대장에는 20대부터 60대까지 전 연령대의 대여자가 있었으며 빌려 가는 공구도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렇게 공구 진열장이 있어서 이런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드릴과 종합 공구세트를 많이들 대여해 가시는데 빌린 공구는 최장 3일까지 대여가 가능해요." 월성 1동 김명숙 총괄팀장은 이용하는 주민이 한 달에 20명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공구를 빌릴 때가 없는 난처한 상황의 주민이 찾아와 흡족해하시며 빌려가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고 말한다. 이원욱 시민기자 judge520@naver.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동네뉴스] "시월에 적은 액수라도 작은 동아줄 하나 제발 내려오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눈시린 새파란 하늘아래 총성이 울려졌습니다/ 넓은 복들이 강토위 흐른 1년 후/ 재건에 지원하겠다건 미소는/ 슬그머니 여우 기백으로 변했습니다/ 배고파서 사람을 움직이는 노동아닌/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일달라고/ 소리치는 사람 인민들/ 입막고 총구를 겨눴습니다…총만없지 달라진 게 무엇입니까/ 잊을만하면 터지는 산업 사건사고들/ 시정하겠습니다 말을 몇번 더 들어야 합니까/(이준희 씨의 메모 '대구 시월을 아시나요?'중에서 발췌)" 10월이 시작된 첫날 대구 달성군 가창골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 인근에서 추모제에 다녀온 이준희(35·대구시 북구 칠곡)씨를 만났다. 1946년 당시 절실했던 노동자들과 지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막막한 자신의 처지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라고 했다.그는 "1946년 10월과 2021년 10월 사이 75년은 골짝서 솟은 울분들이 대를 잇고 있을 뿐이다. 꿈도 미래 설계도 꿈조차 못꾸는 저에게 시월은 소리치고 싶은 달"이라고 전했다. 뇌병변장애 1급으로, 출생당시 탯줄이 목을 감기는 바람에 '청색증'이 발생해 언어를 담당하는 뇌가 손상된 그는 말을 할 수 없어 카카오톡 메신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코로나로 고용이 더욱 불안해진 시대에 그는 "좋아진 복지라고들 하는데, 일하는 장애인이면 다달이 나오는 기초급여를 환수하겠다니 이게 진정 복지인가"라며 "이 올가미에 걸려 일하고 싶어도 사회에 뛰어들 용기와 돈 모아서 뭘 해봐야지 하는 게 꾸지 못할 꿈일 뿐"이라며 절벽같은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그는 한 때 시를 쓰고 사진을 찍어 시인 등단을 꿈꾸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게 간직하고 있는 시가 100여편은 족히 넘는다. 특히 하늘과 구름, 자연을 스마트폰 앵글에 담아 시와 사진을 연출하기를 좋아해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꽤나 즐겼다. 하지만 최근 집안 사정이 녹록지 않아지면서 그것마저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쉬고 있다.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자신의 재능과 장점을 살릴 수 있고, 사회적 참여가 가능한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올 시월에 적은 액수라도 상관없으니, 작은 동아줄 하나 제발 내려오길 기도하고 있습니다"한편 저상버스를 타고 어렵게 10월항쟁 추모제를 다녀온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테라프로메사)에 관련 영상을 올렸다. 김호순 시민기자 hosoo0312@gma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이준희씨는 지난 1일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추모제에 다녀온 뒤 현재 자신이 처한 10월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뇌병변장애 1급으로, 출생당시 탯줄이 목을 감기는 바람에 '청색증'이 발생해 언어를 담당하는 뇌가 손상된 그는 말을 할 수 없어 카카오톡 메신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준희씨 제공이준희씨는 지난 1일 '10월항쟁 등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위령탑'추모제에 다녀온 뒤 현재 자신이 처한 10월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뇌병변장애 1급으로, 출생당시 탯줄이 목을 감기는 바람에 '청색증'이 발생해 언어를 담당하는 뇌가 손상된 그는 말을 할 수 없어 카카오톡 메신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동네뉴스] '어머니 그립습니다' 유언 따라 3m 높이 돌탑 31개 쌓은 75세 할아버지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돌탑을 쌓고 있는 문형두옹(75)을 만나기 위해 경북 상주시 공성면 거배미 마을을 찾았다. 거배미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보호수로 지정된 큰 느티나무 두 그루가 손님을 맞아주었다. 거배미 마을은 남평 문씨와 경주 손씨가 대부분이다. 문옹은 1남 2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공을 들여 44세 노산에 늦둥이로 태어났지만 열 달 만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던 날 어린 아들을 두고 쉽게 눈을 감지 못했다. 아버지가 아들을 찾기에 곁에 두자 배 위로 기어 올라가니 어린 아들의 손을 잡는 순간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살이에 어린 3남매를 키우기 위해 묵 장사. 찹쌀떡 장사로 생계를 꾸렸다. 어머니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때로는 엄하게 했지만 자상한 어머니였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근검절약이 몸에 밴 문옹은 나무 장사를 해서 어머니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어머니는 허리를 졸라매고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땅을 사 모았다. 문옹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3천 500평에 복숭아와 고추 2천 400포기 농사를 손수 짓고 있다. 복숭아밭 옆 둑에는 가을 햇살에 빨갛게 익은 고추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옹은 해마다 복숭아를 첫 수확 하면 어머니가 공을 들인 장소와 부모님 산소, 평소에 즐겨 앉아 쉬시던 돌 위에 복숭아를 놓고 감사함을 드린다.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돌탑을 보기 위해 문옹이 운전한 경운기를 타고 산비탈 길을 20여 분 가니 다랑논에 세워진 돌탑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아들에게 "공덕을 잊지 말고 돌로 탑을 만들라"고 유언을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다가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문옹이 70세가 되던 해에 돌탑을 쌓기 시작해서 현재 31개의 탑을 세웠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그리워하는 마음과 정성을 담아서 만든 돌탑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각각의 돌탑에는 사연이 담겨 있다. 배 모양 돌탑은 어머니 살아생전 바다 구경을 시켜드리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정성을 쏟은 탑으로 배를 타고 세상 어느 곳이나 자유롭게 여행하시라는 뜻을 담아서 만든 탑이라고 했다. 이 외에도 가족의 무병장수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거북바위 돌탑, 동자 탑, 모자 탑 등 모두 사연을 담고 있어서 설명을 드는 내내 효심에 감동했다. 31개의 돌탑 중 가장 높은 돌탑은 '갓바위 부처님 돌탑'으로 3m 50cm이고 나머지는 3m 정도이다. 문옹의 첫 번째 목표이자 희망은 어머니가 44세 노산에 그를 낳아서 잘 성장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에 보답하기 위해 44개의 탑을 쌓는 것이다. 돌 하나하나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회한을 축적하면서 쌓고 있다. 두 번째 목표는 아버지가 54세에 세상을 떠나셨기에 54개의 탑을 쌓는 것이다. 문옹은 "앞으로 23개를 더 만들어야 하는 데 나이가 있어서 힘이 따라 줄지는 모르겠지만 완성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라고 했다. 앞으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탑을 만들겠다는 문옹은 소원을 빌기라도 하듯이 애정 어린 눈길로 돌탑을 둘러본다. 글·사진=문순덕 시민기자 msd5613@hanmail.net<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제일 먼저 세운 탑(왼쪽) 옆에 선 문형두옹.문형두옹이 세운 돌탑들.
[동네뉴스- 스마트폰 세상보기] 고운사 다람쥐는 '살딸나무 열매를 좋아해'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달 22일 의성 등운산 자락의 고운사. 산딸나무 아래 떨어진 열매를 연신 주워 먹고 있는 다람쥐. 인기척도 아랑곳하지 않고 꿀맛 같은 순간을 즐기는 모습은 마냥 행복해 보인다. 다람쥐라고 근심, 걱정이 없을까마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만큼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느끼는 감정이 비슷하다. 코로나19로 힘겨운 우리의 일상에도 문득 다가올 달콤한 순간들을 그려본다. 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 <사진촬영 강보석씨><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1.10.04
[동네뉴스] 뇌병변장애 2급 극복 초등교사 꿈꾸는 청년...그 뒤엔 어머니가 있다
"엄마의 뱃속은 너무 재미없고 지루했다. 세상이 몹시 궁금했던 나는 수정 7개월 만에 출생신고를 마쳤다. 성격 급한 나는 출생 시 몸무게 1.8㎏에 불과했다. 엄마 냄새도 제대로 못 맡고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 생후 1개월에 2번의 뇌출혈로 수술이 시작되어 4년 동안 꼬빡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내 인생 보고서에 중요한 밑줄 하나. 돌 무렵이면 누구나 떼는 발자국을 기다려온 지 어언 8년. 드디어 직립보행에 성공했다. 걸음마를 함으로써 뇌병변장애 1급은 2급으로 강등되었다. 꿈에 그리던 초등학교 입학을 아홉 살 인생에 이뤄냈다. 한글 떼는 것도 이때 이룬 쾌거였다. 초·중등시절 학교 등교일수는 거의 반타작 수준. 어린 시절은 총 15번의 수술과 재활로 얼룩진 고통의 나날들로 기억되었다." (최건의 메모에서 발췌) 지난 25일 오후 3시. 대구시 남구 앞산네거리 한 카페에서 만난 최건(21·대구교대 1년)씨는 환하게 웃었다. '교대입학 뇌병변장애 학생 1호, 문학영재원 1호'의 주인공. 분홍빛 셔츠를 입은 그는 벌떡 일어나 배꼽 인사를 했다. 동그란 안경테 너머 생기발랄한 기운이 넘쳐 보였다. 교정시력이 0.6 정도에 불과하단다. 그의 팔꿈치는 도도록했다. 넘어져서 상처가 나고, 조금씩 나으면서 살이 붙은 흔적으로 짐작된다. 시력이 약하고 다리에 힘이 없는 그로선 넘어지는 게 일상이나 다름없다. 올해 대구교대 입학한 최건씨, 대구교육청 문예창작영재원에 선발돼 중·고교 동안 활동 어머니 구미선씨는 100여권의 책 차에 싣고 다니며 재활치료 아들에 읽어주고 또 읽어줘 최씨 "뇌병변장애 환자도 선생님 될 수 있고,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최씨는 아동보호센터 돌봄교실의 멘토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5~14세 아이들은 "형아샘! 놀아줄까?" 하며 보드게임, 체스놀이를 가르쳐준다. 아이들과 게임을 할 때마다 '나는 저 때 뭐했지?'라며 실웃음을 짓는다. 최씨에게 어린 시절 추억은 거의 없다. 병원 침대나 재활 시설에서 간호사나 물리치료사들과 보낸 시간이 대부분이다. 돌봄교실에서 아이들이 아무리 괴성을 질러도 최씨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돌본다. 좋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겠다는 게 최씨의 꿈이다. 학창시절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특별한 무기가 있었다. '글쓰기 신공'과 1분에 400타인 타자 실력이다. 중학교 때 '드림클래스'에서 성적이 향상되면 문화상품권과 고교전액장학금을 지급한다고 해 공부에 열을 올렸다고 했다. 다독, 다작, 다상량 (多商量)의 영향으로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대구시 교육청 문예창작영재원에 선발돼 중·고교 6년 동안 꾸준하게 활동했다. 작가와의 만남, 문예창작 캠프 참가, 글쓰기발표회에 열정을 쏟았다. '현진건문학상'을 3년 연속 수상하는 기쁨도 누렸다. 문학적 재능의 배경은 어머니 구미선(54·대구시 남구 대명동)씨이다. 수술과 재활의 연속이었던 시절 구씨는 아들이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100여권의 책을 차 트렁크에 싣고 다녔다. 가장 좋아했던 '아기사슴 담비' '브레멘의 음악대' 등의 동화를 글자도 모르는 최씨가 달달 외울 정도로 읽어줬다. 구씨는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재활 승마를 가던 새벽길, 발을 내딛는 고통을 잊을 수 있도록 아들에게 걸으면서 시 한편을 짓도록 권유했다. 아들의 시가 고스란히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다"며라고 밝혔다. 또 "사지마비가 와서 운동신경이 전달되지 않지만, 시기에 맞는 수술과 물리치료로 근육을 하나하나 만들어 갔다. 세계적인 의료진의 실력과 물리치료사들의 정성으로 아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라며 "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부모에게 치료가 지지부진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부모가 믿어주는 만큼 재활의 효과가 극대화된다"라고 미소를 지었다. 지난 3월 대구교육대학에 장애특별전형으로 입학한 최씨는 "뇌병변장애 환자도 선생님이 될 수 있고,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아이들이 장애의 편견을 깨고 선생님에게 도움을 줌으로써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경험을 제공해 주고 싶다"고 했다. 글·사진=김호순 시민기자 hosoo0312@gmail.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올해 3월 장애특별전형으로 대구교육대학에 입학한 최건과 어머니 구미선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올해 3월 장애특별전형으로 대구교육대학에 입학한 최건과 어머니 구미선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2021.09.28
[동네뉴스-스마트폰 세상보기] 금호강 둔치 코스모스
경북 경산 하양읍 대부잠수교 옆 금호강 둔치에 조성된 꽃밭이 한들한들 춤을 추는 코스모스로 가득하다. 이곳은 봄에는 유채와 청보리, 여름에는 해바라기, 가을엔 코스모스와 홍초를 심어 계절마다 색다른 정취를 시민에게 선사하고 있다. 글사진= 천윤자시민기자kscyj83@hanmail.net<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2021.09.27
[동네뉴스]'(신)통(소)통(방)통 우리 동네 이모저모'..언택트 시대 동네 소식지
언택트 시대, 비대면으로 소통하는 동네 소식지가 있다. 매월 발행되는 '(신)통 (소)통 (방)통 우리 동네 이모저모'다. 대구 동구 신암1동(동장 김정임)은 올해 초부터 코로나19로 정체된 주민 소통과 정보 공유를 위해 매달 1회 통통통 우리 동네 이모저모 소식지를 만들어 SNS로 교류하고 있다.이 소식지는 한 달 동안 있었던 행정복지센터 소식과 미담으로 구성된다. 코로나19로 모임과 행사를 하기 어려워지면서 주민과 주민단체 구성원에게 소통 창구가 됐다. 소식지가 완성되면 각급 단체채팅방, 밴드, 동 홈페이지에 공유한다. 동네에서 진행하는 크고 작은 일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주민에게 공유되고, 소식지에 담긴 소식이 퍼져나가는 효과는 기대하는 것 이상이다.특히 '우리 동네 슈퍼 히어로를 찾아갑니다' 코너는 주민들에게 인기다. 이 코너에선 지역 주민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봉사한 숨은 인물을 발굴해 소개해, 훈훈한 마을공동체의 감동을 전한다. 주민 이창근(70)씨는 "요즘 행정복지센터에서 진행하는 행사와 일들이 궁금했다. 소식지에는 지난 한 달 동안의 일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모임과 행사가 자유롭던 때보다 더 자세하게 동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있어 꼼꼼하게 살펴본다"고 말했다.김정임 신암1동 동장은 "소식지는 일기장 같은 느낌이다. 묻힐 수 있는 작은 행사나 골목길의 건물이나 자연물 하나도 기록의 연속이 될 수 있다"며 "단체별, 단체 간 소통은 물론 작은 것이지만 참여의미의 파급효과도 있다. 매달 하는 행사 외에 장기적으로 진행된 사업은 연말에 모아서 전과 후를 비교 게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김점순 시민기자 coffee-33@hanmail.net<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대구 동구 신암1동 소식지 '(신)통(소)통(방)통 우리 동네 이모저모' 편집회의가 열리고 있다. 신암1동 행정복지센터 제공소식지 중 '우리 동네 슈퍼 히어로' 코너 신암1동 행정복지센터 제공
[동네뉴스] 시계 수리 달인 이준희씨 "스마트폰 시대 일반시계 수리는 줄고 명품시계 수리는 많아졌어요"
"중국인 명품시계 반나절 만에 수리해 줬더니 1년 후 8개 가지고와 수리해 가""'장이'로서의 자부심...한 우물을 판 기능인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 시계 수리 40년 경력의 시계 수리 달인 이준희(62)씨는 대구 중구 교동시장 내 주얼리 골목 입구에서 명품시계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다.주얼리 골목 터줏대감인 이씨는 "스마트폰이 출시되면서 일반 시계 수리는 줄었고 명품시계 수리가 많아지고 있다"라고 세태변화를 알려줬다.1970년대만 해도 시계는 부의 상징으로 손목시계 하나가 그 사람의 신분과 재력을 나타냈다. 하지만 기술 발전으로 휴대전화가 대중화되면서 시계에 대한 로망이 예전 같지 않다. 지금은 시계를 패션 아이템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이씨가 시계 수리공으로 인연을 맺은 것은 20살 때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계 가게에서 어깨너머로 수리를 배웠지만, 손재간이 뛰어나 해를 거듭할수록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명품시계 수리를 잘하기로 소문난 이씨는 1987년 자신의 점포를 마련했다. 명품시계 수리 달인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단골손님이 많아져 행복하다는 이씨는 수리를 천직으로 여기고 있다.이씨는 "요즘은 짝퉁이 정품과 거의 비슷해 수리할 때 부품이 안 맞아서 애를 먹는다. 정품이라도 보증기간이 끝난 후 시계를 고치러 오면 수리비가 많이 나오거나 단종되어 부품이 없어서 수리를 못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이씨는 시계 수리 기능사 자격증과 1998년 경상북도지방기능경기대회 은상, 제33회 전국기능경기대회(1998) 동상을 받았지만 이런 상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평생 닦아 온 실력을 중시한다. 몇 해 전 중국인 관광객이 여행 일정에 쫓기면서 명품시계를 맡겼는데 반나절 만에 수리해 줬다. 1년 후 다시 한국을 찾았을 때 8개의 시계를 수리해서 갔다고 이야기하며 이씨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명품시계를 맡기러 오는 외국인들에게도 수리비를 저렴하게 해줘 이듬해 여행길에 여러 개의 시계를 가지고 재방문했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이씨는 "돈이나 명예보다 내 손을 통해 수리된 제품을 볼 때 '장이'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고, 고장 난 시계를 고쳐 줄 뿐만 아니라 소중하게 여기는 고객들의 마음마저 흡족게 해 주는 한 우물을 판 기능인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라고 말했다. 글·사진=문순덕 시민기자 msd5613@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대구 중구 교동시장 내 쥬얼리 골목 입구에 명품시계 수리 점을 운영하는 시계 수리 40년 경력의 이준희(62)씨.
[동네뉴스]장수사진 촬영과 돋보기 지원 사업 펼치는 청도 동청도농협 '농업인 행복버스' 출발
경북 청도군 동청도농협(조합장 최희군)은 한가위를 앞두고 지난 15일 농협 본점 2층 회의실에서 관내 고령 농업인을 대상으로 '장수사진 촬영 및 돋보기 지원 검안사업'을 시행해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중앙회가 공동 주관하고 동청도농협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접근성이 열악하고 취약한 지역 농업인에게 양질의 의료·문화·복지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했다.다정한 이웃이자 동반자인 동청도농협이 어르신들을 위해 '농업인 행복버스'로 장수사진 촬영(140명)을 비롯해 검안을 통해 맞춤형 돋보기 제작(230명)이 원활하게 진행됐다.이날 운행한 '농업인 행복버스'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을 따르면서 마을별 시간 차를 두고 행사장 사전소독, 참여자 및 관계자 전원 발열 체크, 손 소독, 마스크 착용 등을 준수하면서 진행됐다. 사진 촬영은 지역 현지 업체인 명성사진관에서 대행했고 검안 및 돋보기 지원 사업은 농협중앙회와 업무 협약을한 '더 스토리 안경원(서울 소재)'에서 담당했다. 이번 행사는 관내 어르신들의 무병장수와 행복하고 건강한 노후생활에 주안점을 두고 동청도농협이 사회적 책무의 이행 차원에서 진행됐다. 이날 몇몇 어르신은 "장수사진 촬영이 왠지 영정사진 같은 기분이 든다"면서 못내 사진 촬영을 고사하는 촌극을 보이면서도 "농협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며 환한 웃음으로 고마움을 대신 하기도 했다.최희군 조합장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어려움이 많은 상황에서도 많은 농업인이 참여해 혜택을 받게 돼 매우 기쁘다"며 "앞으로도 농업인이 함께 행복하고 잘살 수 있는 고향, 항상 고마운 농협이 될 수 있도록 더욱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외식 시민기자 2whysik@naver.com<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경북 동청도농협은 한가위를 앞두고 지난 15일 농협 본점 2층 회의실에서 관내 고령 농업인을 대상으로 '장수사진 촬영 및 돋보기 지원 검안사업'을 벌였다.
202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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