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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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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17일 0시 기준 코로나 19 추가 확진 대구 17,109명, 경북 18,423명, 전국 62만1천328명
17일 0시 기준 코로나19 추가 확진(중앙방역대책본부 집계)▶대구= 추가 확진 1만7천109명, 누적 확진 32만4천347명▶경북= 추가 확진 1만8천423명, 누적확진 28만3천64명 ▶전국= 추가 확진 62만1천328명, 누적 확진 825만592명 ▶전국 재원중 위중증 환자 1,159명, 신규 사망자 429명, 누적 사망자 11,481명(치명률 0.14%) ▶시도별 추가 확진 ▶전국 백신 접종자 1차 2,209명(누적 44,917,475명), 2차 2,424명(44,446,716명), 3차 31,404명(32,217,533명) ▶ 중증 병상가동률 65.6%, 준중증은 72.3%, 중등증은 48.1%▶ 입원 대기 환자 0명▶재택치료자 현재 1,925,759명(집중관리군 285,070명), 집중관리군 관리의료기관 986개소, 재택치료 전화상담·처방 의료기관 8,465개소, 의료상담센터 239개소▶신속항원검사 시행 의료기관 전국 9,036개소중앙방역대책본부 제공
[속보]코로나 19 추가확진 대구 24115명, 경북 19551명, 전국 40만741명
[속보] 16일 0시 기준 코로나19 추가 확진(중앙방역대책본부 집계)▶대구= 추가 확진 2만4천115명, 누적 확진 30만7천239명▶경북= 추가 확진 1만9천551명, 누적 확진 26만4천641명 ▶전국= 추가 확진 40만741명, 누적 확진 762만9천275명
[속보] 14일 0시 기준 대구 12,406명, 경북 12,618명, 전국 309,790명 코로나19 추가 확진
[속보] =14일 0시 기준 코로나19 추가 확진(중앙방역대책본부 집계)▶대구= 추가 확진 1만2천406명(지역발생), 누적 확진 26만8천774명▶경북= 추가 확진 1만2천618명(지역발생 1261, 해외유입 3), 누적 확진 23만550명 ▶전국= 추가 확진 30만9천790명(지역발생 309728, 해외유입 62), 누적 확진 686만6천222명 ▶전국 재원중 위중증 환자 1,158명, 신규 사망자 200명, 누적 사망자 10,595명(치명률 0.15%) ▶시도별 추가 확진 ▶ 전국 중증 병상가동률 66.8%, 준중증은 69.2%, 중등증은 50.2% ▶ 전국 입원 대기 환자 0명▶전국 재택치료자 현재 1,611,174명(집중관리군 245,869명), 집중관리군 관리의료기관 919개소, 재택치료 전화상담·처방 의료기관 8,220개소, 의료상담센터 237개소▶전국 신속항원검사 시행 의료기관 전국 7,731개소▶3월 14일 0시 기준 신규 1차접종자 63명( 44,907,445명), 2차접종자 91명( 44,434,348명), 3차접종자 615명(32,102,960명)중앙방역대책본부 제공
[속보] 코로나 19 신규확진 대구 1만307명, 경북 1만315명.
11일 0시 기준 코로나19 추가 확진(중앙방역대책본부 집계)▶대구= 추가 확진 1만307명, 누적 확진 23만263명▶경북= 추가 확진 1만315명, 누적 확진 19만593명
[속보] 코로나 19 신규 확진 대구 11,601명 경북 11,964명, 전국 327,549명
속보] =일 10시 기준 코로나19 추가 확진(중앙방역대책본부 집계)▶대구= 추가 확진 1만1천601명, 누적 확진 21만9천960명▶경북= 추가 확진 1만1천964명, 누적 확진 18만278명▶전국= 추가 확진 32만7천549명, 누적 확진 -553만9천696명
뉴욕증시 급등...다우 2%, 나스닥 3.59% 상승 유가하락 우-러 외교적 해법 기대 커진 탓.
뉴욕증시가 급등했다. 국제유가가 10% 이상 하락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의 외교적 해법에 대한 기대가 커진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9일(현지시각)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653.61포인트(2.00%) 오른 33,286.25로 장을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보다 107.18포인트(2.57%) 상승한 4,277.88로,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460.00포인트(3.59%) 뛴 13,255.55로 거래를 마감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테슬라가 4% 이상 오르고, 알파벳의 주가도 5% 가까이 올랐다. 엔비디아와 메타의 주가는 각각 6%, 4% 이상 상승했다. S&P500 지수 내 11개 업종 중에서 에너지와 유틸리티 관련주만이 하락하고 나머지 9개 업종이 상승했다. 기술 관련주가 4% 가까이 올랐고, 금융과 통신, 자재(소재) 관련주가 3% 이상 올랐다. 에너지 관련주는 유가가 10% 이상 하락하면서 3% 이상 하락했다. 국제 유가가 산유국들의 증산 기대에 10% 이상 하락하며 배럴당 110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시장은 일단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장보다 15달러(12.1%) 폭락한 배럴당 108.7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상황이 종료되지 않은 만큼 시장의 변동성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속보] 8일 0시 기준 코로나 19 신규확진 대구 7,586명, 경북 7,374명, 전국 4,869,701명
[속보] =8일 0시 기준 코로나19 추가 확진(중앙방역대책본부 집계)▶대구= 추가 확진 7천586명(지역발생), 누적 확진 19만5천460명▶경북= 추가 확진 7천374명(지역발생 7,368, 해외유입 6), 누적 확진 15만6천27명 ▶전국=추가학진 20만2천721명(지역발생 202,647, 해외유입 74), 누적 확진 4,869,701명 ▶전국 재원중 위중증 환자 1,007명, 신규 사망자 186명, 누적 사망자 9,282명(치명률 0.19%) ▶시도별 추가 확진 ▶3월 8일 0시 기준 신규 1차접종자 7,694명(누적 44,880,845명), 2차접종자 5,704명(누적44,400,545명), 3차접종자 64,854명(31,868,296명)중앙방역대책본부 제공
[속보]7일 0시 기준 대구 7,789 경북 7,514, 전국 210,716명 코로나19 추가 확진
[속보] =7일 0시 기준 코로나19 추가 확진(중앙방역대책본부 집계)▶대구= 추가 확진 7천789명(지역발생), 누적 확진 18만7천874명▶경북= 추가 확진 7천514명(지역발생 7,509, 해외유입 5), 누적 확진 14만8천653명 ▶전국= 추가 확진 21만716명(지역발생 210,628, 해외유입 88) , 누적 확진 4백66만6천977명 ▶전국 재원중 위중증 환자 955명, 신규 사망자 139명, 누적 사망자 9,096명(치명률 0.19%) ▶시도별 추가 확진 ▶3월 7일 0시 기준 신규 1차접종자 71명(누적 44,872,590명), 2차접종자 194명( 44,394,243명), 3차접종자 1,675명(31,802,879명)중앙방역대책본부 제공
5일부터 식당, 카페 등 12종 다중이용시설 밤 11시까지 영업
5일부터 식당·카페 등 12종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이 밤 11시까지로 기존보다 1시간 연장된다. 전해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2차장(행정안전부 장관)은 4일 "현재 밤 10시까지 허용되고 있는 식당·카페 등 12종 다중이용시설의 영업시간을 내일부터 1시간 연장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관계부처, 지자체, 일상회복 지원위원회 그리고 다양한 현장 의견을 바탕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을 면밀히 검토해 왔고, 그간 추진된 손실보상 확대, 거리두기 일부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오랜기간 계속 돼온 자영업·소상공인분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이같은 결정했다는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5일부터 20일까지 유흥시설, 식당·카페, 노래(코인)연습장, 목욕장업, 실내체육시설, PC방, 멀티방·오락실, 파티룸, 카지노, 마사지업소·안마소, 평생직업교육학원, 영화관·공연장의 영업시간은 밤 11시까지로 연장된다. 이에 전 2차장은 "고위험군 관리를 중심으로 방역체계가 개편됨에 따라 방역패스 중단, 동거인 자가격리 의무 면제 등의 다양한 조치들이 시행 중인 만큼 거리두기도 이와 연계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앞으로도 위중증의 안정적 관리를 비롯한 의료 여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등을 바탕으로 코로나19 대응체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영업시간 연장 등 사회적거리두기 완화로 인한 확산과 의료 체계 붕괴 우려 등이 나오고 잇찌만, 전 2차장은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전2차장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 모두 코로나19 위험도가 '높음' 수준을 이어가고, 중환자 병상 가동률은 약 50% 수준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누적 치명률과 중증화율 등 핵심 방역지표들은 현재까지 의료대응 역량 내에서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전했다. 또 "소아응급, 분만·투석 등 특수한 상황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는 경우에도 보다 안심하고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응급의료 체계를 보완하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속보] 코로나 19 추가확진 대구 9,494명, 경북 8,382명
[속보] =4일 0시 기준 코로나19 추가 확진(중앙방역대책본부 집계)▶대구= 추가 확진 9천494명, 누적 확진 16만1천627명▶경북= 추가 확진 8천382명, 누적 확진 12만4천722명
[속보] 2일 0시 기준 코로나 19 대구 7천117명, 경북 6천969명 전국 21만9천173명 신규 확진
[속보] =3월 2일 0시 기준 코로나19 추가 확진(중앙방역대책본부 집계) ▶대구= 추가 확진 7천117명(지역발생), 누적 확진 14만4천55명▶경북= 추가 확진 6천969명(지역발생 6961, 해외유입 8), 누적 확진 10만9천807명 ▶전국=추가 확진 21만9천241명(지역발생 219,173, 해외유입 68)), 누적 확진 349만2천686명 ▶전국 재원중 위중증 환자 762명, 신규 사망자 96명, 누적 사망자 8,266명(치명률 0.24%) ▶코로나19 시도별 추가 확진 ▶3월 2일 0시 기준 백신 신규 1차 접종자 189명(44,860,559명), 2차 접종자 341명(44,370,169명), 3차 접종자 4,749명(31,510,985명)중앙방역대책본부 제공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대구대중교통 변천史 (2)...버스 토큰·회수권→IC칩 내장 교통카드→지하철까지 연계 통합카드 시대
2011년에는 환승 무료·할인 가능 시간을 최초 승차 후 60분까지에서 최초 하차 후 30분까지로 변경해 도시철도의 환승무료할인제 기준과 일원화했다. 동대구역 건너편의 동대구로에 대구시 최초의 중앙버스전용차로가 개통됐으며 2019년 3월25일 대구 최초로 신흥버스와 동명교통에 전기버스 각 5대가 시범 도입돼 운행을 시작했다. 같은 해 8월부터 영천시의 시내버스와 무료환승제를 시행하고 있다.대구지역 버스 등록대수와 버스 이용 승객 추이를 살펴보면 2001년 1천719대였던 등록버스는 2020년 1천617대로 줄었다. 버스 한 대당 1일 승객은 2001년 495.8명에서 2020년 288.9명으로 줄었다. 등록 버스 대수는 6% 정도 줄었지만 승객은 42% 정도 감소했다. 이 때문에 대구시가 버스 회사에 지원하는 세금이 2006년 413억원에서 2020년 1천819억원으로 4배 이상 증가, 시 재정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토큰, 가운데 구멍 뚫어 동전과 구분 위조범죄 사용 회수권제, 2008년 폐지출퇴근 전쟁 벗어나게 해준 도시철도 국내 3번째·세계 84번째 지하철 운행1호선 1단계 개통 이듬해 전구간 개통 대중 교통 한단계 업그레이드 2호선 대구권 대학·부동산 시장까지 들썩한국 최초 상업운행 모노레일 3호선양 종점 칠곡~범물 시속 70㎞로 46분노선 주변 옥상 5가지 하늘공원 조성◆시대에 따라 변한 요금 결제 수단 1970~80년대 정부는 버스산업 활성화와 버스 교통서비스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그중 하나가 토큰·회수권 제도다. 승·하차 시간 단축과 현금 취급의 위험성 감소가 주목적이었다. 대구시는 1983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했다. 토큰은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 이는 승객이 주머니에서 토큰을 꺼낼 때 동전과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 회수권도 사용됐는데 어떤 학생들은 10장을 11장으로 잘라서 사용했다가 적발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8장을 한세트로 대형화되기도 했다. 회수권은 초·중·고·대학·일반·경로 등으로 구별됐다. 당시 토큰과 회수권은 미리 사둘 만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겐 재산과 같은 것이었다. 때문에 요금 인상철이 다가오면 토큰 판매소에는 토큰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토큰 없음'이라는 글씨를 써 붙인 판매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토큰과 회수권 제도는 버스 안내양에 대한 인권 보호 차원에서 마련된 제도이기도 하다. 안내양들의 요금 빼돌리기를 막는다는 명목하에 이뤄졌던 몸수색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회수권을 유통하고 회수하는 과정에서는 드는 인력과 비용 부담, 고성능 컬러 프린터를 이용한 위조범죄가 점점 치밀해지면서 회수권의 사용량이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결국 대구시는 2008년 7월1일 토큰과 회수권 제도를 폐지했다. 토큰과 회수권의 빈자리를 버스카드가 메웠다. IC칩이 내장된 교통카드는 편의점, 지하철에서 충전할 수 있기 때문에 현금없이 카드만으로 버스를 탈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2000년대 접어 들면서 통합카드 시대가 열렸다. 교통카드 한 장만 있으며 지하철과 버스를 한 번에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여러 카드사와 제휴를 맺은 후불제 교통카드가 등장했다. 버스요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1984년 일반 120원, 대학·중고생 90원, 초등생 60원이었던 요금이 10년 뒤인 1994년 일반 ·대학생 290원, 중고생 200원, 초등생 140원으로 인상됐으며 좌석버스가 새롭게 도입돼 일괄적으로 600원의 요금을 받았다. 그리고 10년 뒤 2004년 각각 900원, 600원, 200원, 1천300원으로 요금이 올랐다. 교통카드를 사용할 경우 일반·대학생 800원, 중고생 600원, 초등생 200원, 좌석 1천200원으로 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이후 대구 버스요금은 3차례 더 인상됐고 현재는 일반·청소년·어린이 등 3단계로 구분, 각각 1천400원(교통카드 1천250원), 1천원(850원), 500원(400원)으로 책정돼 있다. 급행도 3단계로 구분, 1천800원(1천650원), 1천300원(1천100원), 800원(650원)씩의 요금을 내야 된다.◆'새로운 시민의 발' 도시철도 개통되다대구도시철도는 개통 24년 1개월16일(8천812일) 만인 지난 10일 누적 수송인원 25억명을 돌파했다. 이 같은 수치는 240만 대구 시민이 1천42번을 이용해야 가능하다. 열차의 누적 운행거리는 1억3900만㎞로 지구둘레를 3천475바퀴 돈 셈이다.달서구 진천~중구 중앙로(10.3㎞)를 잇는 대구 도시철도 1호선 1단계 구간이 1997년 11월26일 개통됐다. 이로써 대구는 국내에서 3번째, 세계적으로는 84번째 지하철을 운행하는 도시가 됐다. 당시 지하철 이용요금은 10㎞ 이내는 450원, 10㎞ 초과 시 550원이었다. 해당 구간의 개통으로 시내버스로 45~50분 걸리던 진천역에서 중구 중앙로역 구간을 22분 만에 갈 수 있게 됐다. 대구 대중교통의 새로운 지평을 연 셈이다. 이어 이듬해 5월2일에는 도시철도 1호선 전 구간(진천~안심 24.9㎞)이 완전 개통됐다.도시철도는 대구시민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놨다. 출·퇴근전쟁을 치르던 직장인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은 물론 동성로와 향촌동 등 도심의 상권도 덩달아 들썩였다. 이후 2000년은 대구도시철도의 기념비적인 해가 됐다. 개통 3년1개월여 만에 누적 탑승객 1억명을 돌파한 것. 2년 뒤인 1월13일에는 누적 탑승객 2억명을 넘어서면서 대중교통의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시내버스의 아성을 흔들었다. 2002년 대곡~진천 연장 구간 개통 이후 대구도시철도의 하루평균 이용객은 15만1천700명으로 급성장했다.1997년 착공된 도시철도 2호선은 8년만인 2005년 10월18일 완공됐다. 달성군 다사 문양역과 경산시 고산 사월역을 잇는 29㎞ 구간이다. 도시철도 2호선 공사에 투입된 예산만 2조2천941억원에 달했다. 2호선 개통은 대구의 대중교통을 한 단계 성장시켰고 민간자본 유치로 반월당역과 두류역의 지하공간을 개발해 유통시장의 변화도 가져왔다. 특히 2호선은 대구권 대학과 부동산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005년 12월 대구권 대학(전문대 포함)이 수시 2학기 등록을 마감한 결과 2호선 역세권 대학의 등록률 상승이 두드러져 도시철도 개통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나타났고 역세권 아파트의 매매가 역시 요동을 쳤다. 2호선 개통 이듬해인 2006년 3월2일에는 대구 대중교통사(史)의 길이 남을 기록이 수립됐다. 하루 동안 대중교통을 이용한 승객 수가 버스 70만5천41명, 도시철도 33만1천87명 등 모두 103만6천128명으로 집계돼 대중교통 이용 100만 시대를 연 것이다.대구도시철도 3호선은 북구 동호동 칠곡경대병원역과 수성구 범물1동의 용지역을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 운행 대중교통 모노레일이다. 2009년 7월24일에 착공, 2015년 4월23일에 개통했다. 3호선은 1·2호선과 달리 지상에서 운행되는 도시철도다. 열차 3대가 연결돼 운행된다. 대당 길이 15.1m, 폭 2.98m로 기존 대구지하철 1·2호선 차량보다 폭은 23㎝ 넓고 길이는 2.4m 짧다. 차체에 알루미늄 재질을 사용하고 기둥과 골조 없이 외판 하나가 골조 역할을 하도록 단순·경량화해 많은 승객을 태울 수 있다. 편성당(열차 3량) 정원은 265명이고 최대 398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시간당 수송능력은 6천750명에 달한다.3.5~4분마다 1편성씩 운행되고 열차운행 최고속도는 시속 70㎞이다. 표준속도인 시속 29.3㎞로 달리면 양쪽 종점인 북구 칠곡에서 수성구 범물까지 46분 걸린다. 모노레일 차량에 선로정보를 입력한 자동열차운전장치(ATO)를 탑재하고 열차의 가·감속을 자동제어하는 열차제어장치(TCMS)를 적용해 종합사령실에서 운행차량을 원격 제어할 수 있다. 차량 내 TCMS에는 차량의 각종 장치를 검사하는 기능이 있어 운행 전 스스로 상태를 점검해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출발한다 3호선 모노레일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고가 노선이 시가지를 통과해 도심경관을 해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개통후 이런 걱정은 잦아들었다. 시민참여를 통해 교각에 디자인이 새겨졌고 도로가 넓어졌다. 전선 지중화 구역 및 자투리땅에 쌈지공원이 조성됐다.모노레일이 지나는 노선 주변 건물 옥상에 채소원·플라워정원·소담정원·잔디정원·휴(休)정원 등 5가지 형태의 하늘공원이 들어서 3호선 승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노선 주변의 낡은 지붕 개량작업, 물탱크 정비, 간판정비사업이 이뤄졌다. 지하철의 답답한 환경을 탈피해 금호강, 신천, 범어천 등 수변공간을 지나는 다리가 도심경관을 느끼고 즐기도록 다양한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탑승객을 위한 '달리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2005년 10월18일에 열린 대구도시철2호선 개통식.대구 도시철도 3호선이 영업시운전에 돌입한 2005년 4월9일, 영업 시운전에 투입된 모노레일이 어린이회관역을 지나 용지역으로 향하고 있다.대구 전기 시내버스 시승 행사. 토큰은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 이는 승객이 주머니에서 토큰을 꺼낼 때 동전과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대구대중교통 변천史 (1) 하루 100만명 '시민의 발'
대구시민의 발은 버스와 도시철도다. 일제 강점기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구에 선을 보인 버스는 지금까지 묵묵히 역할을 수행했다. 1990년대 후반 대구에서 운행하기 시작한 도시철도는 버스의 무거운 짐을 덜어주는 건 물론 또 다른 대구시민의 발이 돼 주었다. 70여 년 동안 서민들과 애환을 함께하고 있는 대구 대중교통의 변화를 훑어본다.◆30여 년 동안 지역의 유일한 대중교통이었던 시내버스 대구에서 버스가 운행된 시기는 1912년 7월1일이었다. 우리나라 최초다. 대구호텔의 주인이던 베이무리 다마치로가 일본 버스 4대를 들여와 7전을 받고 운행했다. 대구역을 기점으로 시내 각 방향은 물론이고 팔달교와 동촌까지 운행했다.1950년대는 미군 폐차, 드럼통, 일본 중고 엔진을 이용해 수공업형태의 버스를 제작하던 시기였다. 쌍용자동차의 모체인 하동환공업사와 옛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신진공업사가 생겨났다. 1960년대는 정부의 강력한 정책에 힘입어 자동차 공업 5개년 계획이 발표되고 자동차보험도 도입됐다. 1962년 신진공업사에서 개발한 16인승 버스는 1963년부터 대량 생산됐다. 또 같은 해에는 대형버스를 규격화했는데 중간과 뒷부분 2곳에 문이 있는 형태였다. 1968년 교통부에서는 일시적으로 버스면허를 개방해 자유롭게 증차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버스 대수가 2배로 폭증하면서 노선 경쟁이 벌어졌다. 1970년대에는 리어엔진 시내버스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운행됐고 1979년에는 좌석버스 제도가 도입됐다. 리어엔진 시내버스가 도입되면서 앞문이 생겨났다. 1970년 1월 대구의 일반 시내버스 요금은 10원이었다. 현재 교통카드 기준 요금 1천250원과 비교해보면 50년간 125배 올랐다.1970~80년대 버스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유일한 대중교통인 탓에 출·퇴근 시간에는 어김없이 만원이었다. "오~라이"라고 외치던 버스 안내양은 진한 남색 등의 제복과 모자를 착용했으며 엄격한 필기시험과 구술면접을 거쳐 선발됐다. 당시 버스안내양의 인기는 엄청났다. 그러나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으로 젊은 여성들이 공장으로 몰리면서 버스 안내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결국 1980년대부터 안내양 없이 승객이 앞문 승차, 뒷문 하차하고 요금을 선불로 내는 시민자율버스 운행이 시작됐다. 대구시에서는 1982년 9월10일 직할시 승격 기념으로 국일여객, 신일여객, 관음교통, 극동버스, 동광버스, 대현교통, 영진버스 등이 시민자율버스를 운영했다. 1989년 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을 통해 버스 안내양 고용 의무조항이 삭제됐다. 애환을 함께 나누던 버스 안내양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당시에는 버스 좌석에 앉은 사람이 서 있는 사람들의 소지품을 받아주던 시절이었다. 중·고교 학생들이 도시락을 싸 간 탓에 가방 안에 반찬통을 함께 넣어두곤 했는데 좌석에 앉은 승객이 학생 가방을 받아주다 반찬통에서 김치 국물이나 양념이 흘러 옷을 버리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곤 했다. 이 시절 대구시내버스는 불친절의 대명사였다. 운전기사가 기분 좋으면 6~7분, 기분 나쁘면 최대 30분까지 벌어지는 배차 간격, 손님 옷으로 좌석 청소, 정류소 아닌 곳에서 승객 탑승 등의 행위가 빈번하게 이뤄졌다. 특히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승객을 한구석으로 몰아버리기도 했고 손님이 많은 곳에서는 오래 서고 손님 없는 곳에서는 멈추기가 무섭게 출발해 내리는 사람이 도로에 나뒹굴어 버리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지역 언론에 나온 기사다. "경북도는 1970년 10월21일부터 특별지도반을 편성해 서비스 상태를 점검한 결과, 531대의 대구 전체 시내버스 중 283대에 개선지시서를 발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의 기미가 전혀 없어 11월1일에 대다수의 차량에 대해 운행정지 처분을 내리는 강경책을 발표했다." 1990년 1월 대구에서는 시내버스 공동배차제가 시행됐다. 대구시는 1998년 5월5일 대구시 시내버스 번호를 권역별 세 자리로 바꾸면서 앞 숫자는 출발지역, 두 번째 숫자는 경유지역, 세 번째 숫자는 도착지역 이런 식으로 통일했다. 초기에는 시민들로부터 "멀쩡한 번호를 왜 바꾸냐"고 욕을 먹기도 했지만 이렇게 바뀐 덕분에 정확한 버스 번호를 모르더라도 번호가 상징하는 지역만 알면 버스 이용을 잘할 수 있게 됐다.1997년 대구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되면서 유일한 시민의 발이었던 버스는 무거운 짐을 조금씩 내려놓는다. 국민소득 향상으로 자가용 운행이 급증하면서 승객은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이 같은 환경변화는 업계의 경영난을 가중시켰고 대구시는 2006년 2월18일 시가 운영자금을 보전해주는 준공영제를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이와 함께 공동배차제를 폐지했다. 준공영제 시행과 더불어 노선 체계를 좌석·일반·마을버스로 구분하던 것을 급행·순환·간선·지선으로 구분했다. 시내버스운행관리시스템(Bus Management System, BMS)을 구축해 각 버스정류장에 LED 도착 안내기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경산시 시내버스와 환승무료할인제가 적용됐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대구대중교통 변천史 (2)에서 계속됩니다.대구도시철도 1호선. 1970~80년대 시내버스 승차 모습.
[피플] 보자르모발성형이식센터 권태정 원장, 저소득 탈모인에 모발이식 재능기부·직장인 밴드 리더 활동 "즐거운 인생"
권태정(53) 보자르모발성형이식센터 원장은 모발이식을 전문으로 하는 개업의다. 스스로를 뚜렷하게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시민이라고 하지만 조금 더 다가가 보면 일반 의사들과 사뭇 다르다. 바쁜 시간을 쪼개 모발이식 재능기부를 한다. 즐거운 인생을 찾기 위해 직장인 밴드 연습실을 운영하면서 밴드 멤버로 활동한다. 권 원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탈모로 고생하는 이들에 도움줄 수 있어 뿌듯병원 동료들도 봉사활동 적극 동참해 '감사' 모발이식 기부통해 희망·자신감·미래 심어줘 상실감 큰 젊은층엔 정신적 우울증 까지 치료중년에 접어들며 직장인 밴드 이끌며 새활력술 잔 대신, 기타 들고 음악 통한 '건강한 삶' 10년전 결성한 '블루오션' 이끌어 오며 열정멤버 탈퇴 등 우여곡절 많고 힘들기도 하지만 무대 향한 꿈 위해 멋진 밴드로 꾸리고 싶어 ◆모발이식이 좋았던 성형전문의 고등학생이던 시절 의학·신학·법학 등 세 학문이 깊이 있고 대단해 보였다. 이 가운데 의학에 더 마음이 끌렸다. 경북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학창시절 권 원장은 '의사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끊임없이 자답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렇지만 "순수한 마음과 불타는 정의로 온몸이 힘들어도 생명을 구하는 멋진 의사가 되자"고 다짐했다. 권 원장은 돈 잘 벌고 시쳇말로 잘나가는 의사가 될 수도 있었던 성형외과를 전공했다. 권 원장은 일반적인 성형의가 되기보단 당시에는 생소했던 모발이식으로 진로를 선택했다. 그는 모발이식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평가받는 김정철 경북대 의대 교수의 제자다. 권 원장은 그때를 떠올린다. "모발이식 수술 자체가 즐거웠다. 예쁘게 심기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았다. 몸은 좀 힘들지만 그걸 다 잊을 만큼 충분히 좋았다. 생명을 구하는 의사도 중요하지만 탈모로 고생하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발이식이라는 학문은 의학에서도 고도의 전문분야인 탓에 배우기가 쉽지 않았지만 경북대 출신이라는 덕분에 김정철 교수가 계신 경북대 모발이식센터를 갈수 있었고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권 원장은 모발이식에 대해 설명한다. 모발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후두부에 영구보존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 부분의 모발을 이용해서 탈모가 진행되는 부분으로 옮겨주는 작업이 모발이식 수술이다. 영구모발이 탈모 부분에 옮겨졌을 때 탈모가 다시 오지않는다. 이러한 모발의 특징으로 모발이식수술이 가능하게 됐다. 수술은 모낭분리사가 후두부 모발을 띠모양으로 채취한 후 분리하는 방법과 전동펀치드릴로 구멍내서 모낭을 하나씩 추출하는 방법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모발이식은 노동집약적 수술로 통상 한번에 3천500~4천모 정도를 심게 된다. 이를 위해 모발이식 받을 환자의 머리카락을 긴 막대기 모양으로 두피와 함께 잘라낸다. 그리고 거기서 모낭을 분리, 하나씩 심어야 하는 작업으로 통상 6시간 넘게 걸린다. 이를 위해 권 원장을 포함한 병원 전 식구가 이 과정에 참여한다. 환자가 오면 오전 10시 상담을 시작, 어떤 모양으로 이식할지 등 디자인을 결정하게 된다. 그리고 난 뒤 10시30분 정도 환자의 머리에서 이식할 머리카락을 떼낸 뒤 봉합수술을 하게 된다. 그사이에 2시간 동안 한 뭉터기로 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심을 수 있게 1개 또는 2~3개 모낭을 분리하고 2시간 동안 심기 시작하면 오후 4시에 끝난다. ◆저소득 탈모인에게 희망을 주는 권 원장2017년 권 원장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그해 4월쯤 대구사회복지재단으로부터 "모발이식이 필요한 저소득층 환자를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권 원장 스스로는 의미를 가지고 하는 활동인 탓에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병원 내 간호사 등 동료들에게는 업무 외에 일이 더 늘어난다는 걸 생각하니 선뜻 나설 수가 없었다. 오전부터 시작한 모발 이식은 오후쯤 마무리되지만 병원 식구들은 하루 종일 이 일에 매달려야 한다. 이런 탓에 병원 동료들이 일거리만 늘어난다고 생각하게 되면 봉사활동을 대충할 수도 있고 만약 그렇게 되면 재능기부인 탓에 소홀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두려웠다. 망설이며 고민한 끝에 결론을 냈다. "의사는 철저히 봉사하는 직업이다. 때론 종교적인 신념도 필요하고 자기희생이 필요한 직업이다. 머리카락이 없는 고통은 말로 설명이 안된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그런 고통이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자. 그들을 돕자." 대구사회복지재단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모발이식 재능기부 첫 사례는 30대 초반의 남성이었다. 앞머리가 없는 형태의 탈모인 탓에 늘 뒷머리를 앞으로 내렸고 그렇다 보니 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데 시술 이후 자신감이 생기면서 고개를 들게 됐고 성격도 밝아졌다. 이 남성은 직장을 얻게 됐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았다. 병원 동료들이 힘들어할 것 같다는 권 원장의 우려는 기우였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병원 동료들이 더 좋아했다. 어려운 형편 탓에 모발이식을 못받던 이들에게 함께 희망을 만들어준다고 느낀 것 같다.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인지 더 열심히 하고 더 좋은 결과를 얻었다. 모발이식 재능기부 활동을 통해 권 원장과 병원 동료 등이 얻는 가장 큰 행복은 모발이식을 받은 이들의 정신적 우울증도 치료해주게 됐다는 점이다. 권 원장은 "탈모로 힘들어 하는 이들 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피할 정도로 심리적 우울 상태를 보인다. 특히 젊은 층의 경우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는 큰 요인 중 하나로 작동한다"면서 "그런 측면에서 모발이식 재능기부는 이들에게 단순히 머리를 심어준다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자신감, 미래를 심어주는 것이다. 이식한 모발이 자라면서 희망과 자신감 등이 함께 자라나 이들의 미래도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직밴에서 찾아가는 즐거운 인생마흔 살 무렵, 권 원장은 직장인 밴드에 문을 두드렸다. 중년에 접어들면서 삶의 활력을 찾고 싶었다. 이름난 기타선생을 찾아갔다. 밴드한다고 의사가 왔다갔다 하는 걸 보고는 못마땅해했다. 두달 정도 레슨하다 그만두고 일년쯤 있다가 잊을만하면 연락하기를 반복했다. 비오는 어느날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만났다. 폭탄주 말아 주면서 "술을 끊어라. 그러면 기타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기타 선생의 말에 따라 그날부터 술을 끊고 기타 를 배웠다. 인터넷 구인난을 보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팀에 합류했다. 몇달만에 팀이 해체되고 또 다른 팀에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수성못 무대가 지금처럼 알려지지 않았을 때 초보였던 권 원장이 무대에 오르는 기회를 잡았다. 그때 수성호텔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러다 10년전쯤 결성한 게 '블루오션'이다. 아직도 이 팀에서 기타겸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뜻하지 않게도 밴드 전용 연습실을 꾸리게 됐다. 연습실 이름도 블루오션이다. 대구 최고의 프리미엄 연습실이라 자부한다. 권 원장은 이곳에서 혼자 연습하기도 하고 일찍 퇴근해 와서 쉬기도 한다. 되돌아보면 권 원장의 밴드생활은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팀이 만들어지고 어느 정도 연습이 됐다싶으면 누군가 탈퇴하고 멤버를 새로 구하면 좀있다가 또다른 사람이 나가고, 개인적으로는 밴드생활 동안 기쁨보다 힘든 시간이 더 많았던거 같다. 그래서인지 밴드와 관련된 어떤 이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회사 경영보다 더 힘든 게 밴드 운영 같다. 개미지옥과 다름없다." 음악적 기초가 부족한 탓에 아직도 제대로 된 밴드를 꾸리지 못한 채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자신을 평가한 권 원장은 연습실을 운영하면서 좀더 많은 시간을 음악에 투자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올해부터는 결실을 거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재능기부 확대하고 멋진 밴드 꾸리고 싶어"권 원장에게 의사로서 두 가지 바람이 있다. 하나는 의사라는 직업이 희생과 봉사를 필요로 하는 직업인 데다 모발이식이 노동집약적 분야인 만큼 체력 안배에 신경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평소에 시간나는대로 연습실을 가서 음악 듣고 5년 전부터 운동으로 스피닝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리고 모발이식 재능기부를 지금보다 조금 더 확대하는 것이다. 처음 모발이식 재능기부 아이디어를 낼 때도 걱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안 해본 사람은 모르는 그런 매력이 있다. 모발이식과 봉사활동 모두가 그렇다. 모발이식 재능기부를 앞으로도 계속하는 것은 물론 더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이다. 분기에 한 번 하는 것을 격월로 하는 방안, 그리고 다양한 사연을 통해 전국적으로 봉사활동 영역을 넓히는 방안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건강한 시민으로서 하고 싶은 게 있다. 자신과 같이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중년들과 멋진 밴드 활동을 하는 것이다. 블루오션 연습실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중년의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같이 밴드 해보자고 권하고 싶다. 사람사는 세상이 그렇듯이 여럿 모이면 시끄럽고 자잘한 갈등 생기고, 그리고 모여서 떠들고 즐겁게 놀고, 이와 흡사한 밴드의 매력을 이젠 도저히 떨쳐 낼 수 없다. 팀음악이 형성되고 공연이나 활동을 하게된다면 그순간이 가장 즐거운 시점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권 원장은 이젠 수성못 수변데크 무대가 너무 유명해져서 다시 오를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빠른 시간 안에 그 기회를 잡고도 싶다. 권 원장은 지난 시간을 잠시 돌이켜본다. 일반 가장이 다 그러하듯이 의사로서 개업의로서 열심히 달려왔다. 남은 인생의 계획을 세운다. 비록 생명을 구하는 의사는 되지 못했지만 행복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의사로서 사회에 해악이 안되는 한 사람으로 최선을 다해 살자고.음악적으로는 연습실이라는 공간으로 음악인들에게 도움을 주자고.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모발이식 재능기부와 직장인 밴드 활동을 통해 봉사하는 건강한 의사로 살아가는 권태정 보자르모발성형이식센터 원장.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밴드 공연때 연주하고 있는 권태정 원장.권태정 원장이 운영하고 있는 밴드연주실 '블루오션'. 지역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한 방송사 의학 프로그램에 출연해 모발이식 수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권태정 원장.모발이식 수술 중인 권태정 원장.수성못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는 권태정원장.
[위클리포유 커버 스토리] 대구 수제맥주 양대산맥 (2) "수제맥주의 참맛은 끊임 없는 시도와 변화로 완성"
◆정만기 대도양조장 대표 "인생과 수제맥주는 계속 함께한다"정만기(54) 대도양조장 대표는 술을 아주 좋아하는 공작기계 판매업자다. 식당을 운영하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어릴 적 꿈이 유명한 식당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맥주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2018년 우연한 기회에 대구시 중구 동덕로 김광석길 끝 자락에 있는 825㎡ 규모의 방치되다시피한 낡은 적산가옥을 인수하게 된다. "재건축해서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크림 맥주가게 같은 것을 해볼까" 생각하며 공사를 준비했다. 어느날 1953년 작성된 이 건물의 건축물대장을 봤다. 막걸리를 만들던 양조장이었다. '대도양도장'. 무언가가 머리를 쳤다. 몸이 먼저 움직여 건물을 다시 훑어보기 시작했다. 건물 곳곳이 막걸이 양조에 용이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 전통을 이어받아 맥주 양조장을 해보자"고 결심했다. 이 생각을 바탕에 깔고 공사를 시작했다. 한쪽에 양조장(브루어리)을 만들고 다른 한쪽에는 양조장에서 만든 술을 파는 수제맥주집(펍)으로 꾸몄다. 말그대로 '브루펍'이었다.김광석길 끝자락 낡은 적산가옥 인수양조장과 술 판매하는 '브루펍' 조성수소문으로 찾은 미국인과 의기투합 2019년 첫 맥주 '헬레스 라거' 만들어마니아들에 호평…1년만에 20여종 생산 작년 '아시아 최고 브루펍'에도 선정문제가 생겼다. 정 대표는 수제맥주에 대해 문외한이었다. 그렇지만 생각을 되돌리지 않았다. 그냥 부딪쳤다. 대구에 있는 수제맥주 판매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알려주는 수제맥주집을 갔다. 맥주집 주인을 통해 유통업자를 만났다. 그 업자에게서 대구의 수세맥주 판매시장을 알게 됐다. 수제맥주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다른 것들은 스스로 준비할 자신이 있었지만 맥주를 만드는 건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수소문했다. 미군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아내를 따라 한국에 들어와 집에서 맥주를 만드는 미국 사람, 제라드 해치를 알게 됐다. 그는 상업적인 맥주를 만들어 보진 않았지만 홈 브루어리 분야에서는 상당한 실력자였고 맥만동(맥주를 만드는 동아리) 대구지부 회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를 만났다. "나는 꿈이 있다. 맥주를 잘 만든다고 들었다. 나와 같이해보자. 당신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자 해치는 "아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 며칠의 시간을 달라"고 말했지만 바로 그날 정 대표에게 연락이 왔다. "오케이. 함께해보자." 2018년 겨울이었다.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시장조사조차 없이 시쳇말로 무식하게 들이댔다. 가게(펍)를 오픈했다. 그러나 맥주를 만들 수 없었다. 기계를 발주했지만 4개월 정도 걸린다고 했다. 할 수 없이 다른 사람이 만든 수제맥주를 팔면서 기계가 들어올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2019년 6월 처음으로 양조했다. '헬레스 라거'라 명명했다. 다른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에 익숙한 손님들에게 과연 제대로 어필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결과는 성공이었다. 마니아들이 "괜찮은 맥주다"라는 평가를 내려줬다. 자신감이 생겼다. 해치와 머리를 맞댔다. 헬레스 라거의 일정한 맛을 유지하는 한편 이보다 조금씩 퀄러티가 높아지는 맥주를 만들기로 했다. 둘은 수제맥주의 참맛은 끊임없는 시도와 변화 추구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믿었다. 1년여만에 20여 종을 만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양조를 하고 회당 1천ℓ정도 생산한다. 이 가운데 14종을 상시판매한다. 메인 맥주가 6개 정도되며 나머지는 스페셜과 시즌닝 라운드용으로 제조 판매된다. 정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단순히 돈만 생각하면 메인(맥주)만 만들면 되지만 이건 분명 수제맥주 양조장이 갈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잘나가던 양조장은 코로나19를 피해갈 수 없었다. 2020년 2월 대구에서 첫 확진자가 나오자 한 달간 브루펍을 닫았다. 당시 정 대표에게 한 달은 그냥 물리적인 기간이 아니었다. "재오픈하면 과연 손님들이 다시 찾아올까" 불면과도 같은 밤들을 지샜다. 기우였다. 다시 문을 열자 매출이 더 올랐다. '천객만래'를 실감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만만찮았지만 그때는 인원이나 시간 제한이 없었다. 호황이 이어질 줄 알았다. 정 대표의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정부가 그해 연말부터 인원을 제한하고 영업시간을 단축해 버렸다. 정 대표는 지금까지 버텨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대도양조장이 지난해 10월22~2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비어챔피언십에서 '아시아 최고 브루펍'으로 선정됐다. 대도양조장이 출품한 '대도 골든에일'은 "맥주 맛의 균형이 맞고 스타일이 이상적인 골든에일"이라는 심사평과 함께 골든에일부문 금상(1위)을 수상했다. '대도 필스너' '퍼거슨'은 각각 필스너와 스트롱에일 부문에서 은상(2위)을 거머쥐었다. '대도IPA' '메가홉스' 등도 수상작에 이름을 올리는 등 대도양조장 11개 출품작 중 7개가 수상했다. 2018년부터 시작한 아시아비어챔피언십은 아시아 전역에서 출시되는 맥주를 대상으로 20개 부문에 걸쳐 최고 품질의 맥주를 선정하는 품평회다. 올해는 15개국 80개의 브루어리가 참여해 32개 분야에서 367종의 맥주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대도양조장표 수제맥주가 해외무대에서 인정 받은 것이다. 정 대표는 오늘, 내일을 꿈꾼다. "인생과 수제맥주는 계속 함께한다. 수제맥주와 음악을 합해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대도양조장에서 만든 수제맥주가 지난해 10월22~23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비어챔피언십에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정만기 대표대도양조장 전경.대도양조장에서 만든 수제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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