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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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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은행나무(2) ...공자가 제자 가르친 곳 '행단' 유래, 지역 향교나 서원에도 많이 심어
2억~3억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해 왔다는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진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살아있는 화석(living fossil)'으로 불리기도 한다.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로 높이 50~60m까지 자란다. 꽃은 4~5월에 잎과 함께 피는데, 눈에 확 띄지 않아서 일부러 자세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수꽃은 연한 황록색이며, 암꽃은 녹색이다. 열매는 타원형이며 가을에 황색으로 익는다. 바깥 껍질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날 뿐만 아니라, 맨손으로 함부로 만지면 옻과 같은 피부 알레르기 반응이 생기기도 한다. 은행(銀杏)이란 이름도 열매의 모양이 노란 작은 살구를 닮았고, 그 속의 핵과가 하얗다고 해서 붙여졌다. 목재는 단단하고 질이 좋아 귀한 목재로 대접을 받아왔다.야생종은 거의 없어…사람손에 번식천연기념물 25그루, 1천년 이상 9그루경기도 양평 용문사 1300년 최고 수령청도 적천사 850년된 지역대표 노거수 지눌 스님이 짚고 다니던 지팡이 심어 도동서원 수월루 아래 가지 펼쳐 장관칠곡 각산리 980년 '말하는 은행나무'보름때 떨어지는 잎 잡으면 아이 점지흥미로운 점은 야생종 은행나무는 거의 발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이 심어 키운 나무만 남아 있을 뿐, 자연에서 야생으로 번식하는 은행나무는 거의 없다고 한다. 야생에서 은행나무가 생존하기 어려운 이유는 야생 동물이나 곤충들이 이 은행나무의 번식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람의 힘을 빌려서 간신히 번식할 수 있고, 야생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것이다. 야생동물과 곤충들이 그 열매인 은행(銀杏)에 손도 대지 않는 이유는 은행에 함유된 청산(cyanide) 때문이라고 한다. 은행나무는 이렇게 사람의 손에 의해 번식하고 장수해온 나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공자의 덕을 크게 봤다고 할 수 있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친 곳에 큰 살구나무가 있었고, 공자는 그곳에 단을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래서 공자가 제자를 가르친 곳을 행단(杏壇)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살구나무를 의미하는 '행'을 은행나무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서원이나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은행나무는 병충해가 없어 오래 사는 대표적 장수목으로 꼽힌다. 2천년 이상 살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수령 1천년이 넘는 은행나무가 적지 않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 중에서도 은행나무가 가장 많다. 은행나무 다음으로 느티나무가 많다.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는 현재 25그루로 파악되는데, 그중 1천년 이상 된 은행나무가 9그루에 이른다.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중에서도 1천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나무가 적지 않다.◆수령 1천년 이상 은행나무 우리나라에서 수령이 가장 오래되고 키가 큰 은행나무는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수령은 1천100년 또는 1천300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42m나 된다. 밑둥치 부분 둘레는 15m.통일신라 경순왕(재위 927~935)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이야기, 신라 의상대사(625~702)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랐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나무는 조선 세종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는 등 조상들의 각별한 관심과 보살핌을 받아왔다.강원도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도 수령이 1천~1천200여 년으로 추정된다. 영월 엄씨의 시조인 엄임의(嚴林義)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높이 29m이고, 나무 둘레는 약 15m. 이 나무 안에 신령한 뱀이 살고 있어 동물은 물론 벌레도 감히 얼씬거리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충남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는 보석사 창건(886년) 무렵에 조구 스님이 심은 것으로 전한다. 높이는 34m이고, 나무 둘레는 약 11m. 1945년 광복 때, 6·25전쟁 때, 1992년 가뭄 때 나무가 소리를 내며 울었다고 한다. 금산군은 해마다 이 은행나무 앞에서 국태민안, 통일, 풍년 등을 기원하는 '보석사 은행나무 대신제'(올해 제27회)를 10월에 열고 있다.충북 영동의 영국사 은행나무도 수령이 1천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는 31m. 서쪽으로 뻗은 가지 가운데 하나가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리고 독립된 나무처럼 자라는 것이 눈길을 끈다.이밖에 충남 부여의 주암리 은행나무(높이 23m, 둘레 8.62m), 충남 당진의 면천 은행나무(높이 20m, 둘레 6m), 충북 괴산의 읍내리 은행나무(높이 16.4m, 둘레 7.35m), 충남 금산의 요광리 은행나무(높이 24m, 둘레 13m)도 수령이 1천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된다.◆대구·경북 은행나무 노거수대구·경북에도 은행나무 노거수가 많다. 대표적 은행나무로 청도 적천사 은행나무를 꼽을 수 있다. 적천사 앞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오른쪽 큰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다. 수령은 85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28m, 나무 둘레 11m 정도.적천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인데,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고려 명종 5년(1175)에 적천사를 다시 지은 후 짚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심은 것이 자라서 지금의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기록한 옛 비석이 나무 아래 서 있다.가을이 되면 해마다 많은 사람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이 은행나무 단풍을 보러 지난달 31일 찾아갔다. 단풍이 절정이었다. 적천사에 갔다가 오는 길에 청도 이서면 대전리 은행나무도 찾아가 보았는데, 이 나무는 아직 단풍이 많이 들지 않은 상태였다. 대전리 은행나무도 198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는데, 수령은 400년 정도. 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다.은행나무는 공자와 관련이 있는 나무여서, 서원이나 향교에 많이 심었다. 그래서 은행나무 노거수도 많이 남아있다. 대구 도동서원, 청도 자계서원, 영천 임고서원, 경주 운곡서원, 영주 소수서원, 봉화 봉화향교 등에 서원이나 향교 건립 때 심은 은행나무들이 400~500년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다. 도동서원 은행나무는 한강 정구가 도동서원을 중건할 때(1605년)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을 기리기 위해 1568년에 처음 건립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타고, 1605년 현재의 자리에 중건했다. 서원 누각인 수월루 아래에 자리한 이 나무는 다른 대부분의 은행나무와 달리 가지들이 옆으로 많이 뻗으며 자랐다. 가장 큰 가지 하나는 아예 땅바닥에 닿은 채 자라고 있다. 지난 7일 가 보았는데, 단풍이 일제히 들지 않고 부분별로 차이가 있어 보기가 더 좋았다.포은 정몽주를 기리는 임고서원의 은행나무는 수령 5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 높이가 20m, 둘레는 6m. 자계서원과 소수서원 은행나무도 수령 500년이 넘었다. 봉화 향교 은행나무도 향교를 새로 지을 때(1579년) 심은 나무라고 한다. 높이가 25m, 둘레는 6m 정도.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영주 내죽리 은행나무, 칠곡 각산리 은행나무 등도 유명하다.용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는 안동 용계리 임하호 부근에 있는데 높이가 31m, 가슴 높이 줄기 둘레가 14m에 이른다. 수령은 700년 추정. 이 은행나무는 임하댐 수몰 지역인 길안초등 용계분교 운동장 한편에 서 있던 것을 1990년부터 1992년까지 3년에 걸쳐 현재 위치에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들어 올리는 상식(上植) 공사를 완료했다. 그 후 1996년까지 관리해 정착에 성공했다. 23억원의 비용이 투입됐다. 나무줄기 주위에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철근 구조물이 복잡하게 설치돼 있다. 내죽리 은행나무(보호수)는 수령 1천100년(높이 30m)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금성대군의 단종복위 운동 사연을 품고 있는 이 나무는 오래전부터 은행나무의 별명 가운데 하나인 '압각수(鴨脚樹)'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압각(鴨脚)'은 오리 발을 의미하는데, 은행나무 잎의 모양이 오리 발과 닮았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말하는 은행나무'로 불리는 칠곡 각산리 은행나무(보호수)는 수령이 98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 높이는 30m, 둘레는 7m. '말하는 은행나무'라 불리게 된 사연이 있다.옛날에 성주에서 각산리로 시집온 새색시가 3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자, 이 은행나무를 찾아가 눈물을 훔치며 마음을 달랬다. 어느 날 꿈에 이 은행나무가 나타나 친정어머니로 변하더니 "보름달이 뜨는 날 은행나무로 가서 떨어지는 잎을 꼭 잡아라"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은행나무로 변했다. 보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꿈속에서 알려준 대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잡았다. 자세히 보니 잎이 갈라져 있었다. 그 후 그토록 소원하던 아이를 갖게 되고 아들을 낳았다.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전해지자 아이를 갖고 싶은 여인들은 모두 보름달이 뜨는 날 은행나무를 찾아가서 떨어지는 은행잎을 잡았다. 갈라진 잎을 잡은 여자들은 아들을 낳고, 갈라지지 않은 잎을 잡은 여자들은 딸을 낳았다. 그리고 마을 사람 누구나 은행나무에 남모를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고, 은행나무는 꿈속에서 가족으로 나타나 위로도 해주고 조언도 해주었다.구미 농소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수령 450년·높이 22m), 김천 조룡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수령 500년·높이 28m) 등도 유명하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대구 도동서원 은행나무(2022.11.4). 은행나무 사이로 보이는 건물이 도동서원 누각 수월루다. 도동서원을 이곳에 중건할 때(1605년) 심은 나무다.청도 적천사 은행나무(2022.10.31). 앞에 있는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인데, 수령 850년 정도.청도 적천사 은행나무(2022.10.31). 앞에 있는 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인데, 수령 850년 정도.안동 용계리 은행나무(2022.11.2). 임하댐이 생기면서 수몰될 위기에 놓인 것을 1990년부터 3년에 걸친 작업 끝에 15m 높이의 동산을 새로 만들어 이식한 것이다.
[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은행나무(1) 천년 물들인 샛노란 숨결~
올해는 벼농사를 비롯해 각종 채소나 과일도 풍년이었는데, 가을 단풍도 매우 고왔던 것 같다. 가을 단풍의 화려함을 흔히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즉 서리 맞은 잎들(단풍)이 2월의 꽃(봄꽃)보다 더 붉다는 말로 표현한다. 올해 단풍은 그렇게 표현해도 될 듯하다. 가을 단풍 중에서도 노랗게 물드는 은행나무 잎은 언제나 그 꽃보다 화려하고 아름답다. 꽃은 색깔이 화려하지 않아 존재감이 별로 없는데 비해, 풍성한 잎이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는 그 표현이 딱 어울린다고 하겠다.올해 가을은 특히 우리나라 최고의 은행나무를 제때 만나볼 수 있어 더욱 충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강원도 원주의 반계리 은행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일 가보고 왔다. 나무 한 그루가 그렇게 큰 감동을 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은행나무다.1964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반계리 은행나무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 은행나무로 꼽힌다. 수령이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는 아니지만, 1천년 정도 된 노거수인 데다 수관(樹冠) 폭이 가장 넓으면서(최대 37m) 전체적인 모양이 멋지고 생장 상태도 아주 양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을 뒤편 들판 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감상하기도 좋다.반계리 은행나무의 나이는 1천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33m. 밑둥치 줄기가 하나가 아니고 지표면에서 여러 가지로 나뉘어 자랐는데, 밑둥치 가장 아래 둘레는 14m 정도.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퍼져 전체적으로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폭이 32~37m나 된다. 이날 그 주위에 도착하니 멀리 노란 구름처럼 보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가보는 곳이지만, 단번에 그 은행나무인 줄 알 만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편도 1차로 도로변 한쪽에 차들이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모두 은행나무를 보러 온 사람들이 세워둔 차량이었다. 평일인데도 찾는 사람이 많아 은행나무가 있는 곳으로 차량이 못 들어가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주차할 곳을 찾아 차를 세워두고 은행나무를 보며 마을 길을 따라 들어갔다.나무 앞에 서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풍성한 잎들이 모두 샛노랗게 물이 든, 거대하고 멋진 은행나무가 절정의 단풍을 선사하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에메랄드빛이어서 은행나무의 노란빛을 더욱 빛나게 했다. 북적이는 사람들에 섞여 나무 주위를 천천히 한 바퀴 돌며 감상했다. 사방에서 보는 모양이 모두 달랐다. 둥근 부채 모양, 오른쪽은 높고 왼쪽은 낮은 모양, 가로로 긴 모양, 한쪽으로 쏠린 모양 등으로 변모했다.나무 밑둥치도 두세 개로 보이기도 하고, 그 이상으로 보이기도 했다. 지면 위에 드러난 수많은 뿌리가 밑둥치 주위를 수놓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나무 아래는 노란 잎들이 덮고 있어 아름다운 융단을 깔아놓은 듯했다. 오후 1시쯤이었는데, 은행나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대충 세어보니 160여 명이나 되었다. 내년에 또 시기를 잘 맞춰 보러오자고 하는 말도 들을 수 있었다. 나무 한 그루가 이보다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경우가 있을까 싶었다. 반계리 은행나무에 대해서는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성주 이씨가 이 나무를 심고 관리하다가 마을을 떠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어떤 스님이 이곳을 지나는 길에 물을 마신 후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꽂고 갔는데 그 지팡이가 자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나무 안에 흰 뱀이 살고 있어서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는 신성한 나무로 여겨왔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은행나무(2)에서 계속됩니다.강원도 원주의 반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 은행나무로 꼽히는 이 나무는 높이 33m, 수관 폭이 최대 37m에 이른다. 지난 2일의 모습인데, 4일 밤에 이 많은 잎이 모두 떨어져 버렸다.다른 방향에서 본 반계리 은행나무.
엄마와 함께 듣는 세계 어린이 동요 연주 40선
전 세계의 동요 40곡을 선별해 크로스오버 재즈로 연주하는 콰드로 누에보의 고품격 세계 어린이 동요 연주 전집 '재즈 재즈 베이비 송(JAZZ JAZZ BABY SONG)'이 2장의 CD<사진>로 음반사 굿인터내셔널이 내놓았다. 첫 번째 CD는 독일음악협회에서 선정한 어린이를 위한 좋은 음악상 '레오폴드 (Leopold) 음악상'을 수상한 '아름다운 어린이 노래' 음반(2011년 발표)이다. 20곡의 동요 연주와 악보가 담겨있다. 두 번째 CD는 지난 5월에 출시한 '어린이 노래, 재미있는 악기를 만나다(COOLE KINDERLIEDER MIT COOLEN INSTRUMENTEN)' 앨범이다. 음반에 수록된 20곡에는 현악기와 관악기 등 20여 개의 악기가 등장한다. 24쪽의 소책자에는 곡마다 악기와 곡에 대한 해설을 담은 삽화가 담겨있다. 1996년 독일에서 결성된 '콰드로 누에보'는 월드뮤직과 재즈를 넘나드는 고품격 크로스오버 밴드다. 3천 회가 넘는 라이브 공연을 통해 탄탄한 음악성과 원숙미를 자랑하며 지금까지 18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13번의 '독일 재즈 어워드', 5번의 '유럽 임팔라상'을 수상한 유럽의 대표적 월드재즈 밴드이다.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31]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
이탈리아 여행(2019년 6월) 중 피렌체는 반나절 정도 둘러봤다. 유명한 피렌체 대성당도 외관만 구경하는 데 그쳤다.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하고, 종탑에도 올라보지 못했다. 한 식당을 찾아 티본스테이크와 포도주를 맛보고, 가죽 제품 시장을 구경한 후 거리 몇 군데를 돌아봤다. 충분히 둘러보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도시다.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중심 도시인 피렌체는 중세 유럽의 무역과 금융 중심지 중 하나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본고장이기도 한 이곳은 메디치 가문의 본거지였다. 메디치가는 문화와 학문적으로 막대한 후원을 하여 피렌체에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 도서관 등을 세우면서 번성기를 이끌었다. 이러한 유산은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1982년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그리고 피렌체는 가죽 제품이 대표 특산품일 정도로 가죽 제품이 유명하다. 이곳에 명품 본사들이 모여 있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피렌체 북쪽의 밀라노가 명품으로 유명하지만, 굳이 명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적당한 상품을 마련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피렌체는 또한 가죽 공방에서 쓸 가죽을 생산하고 남은 고기를 활용하다 보니 소고기도 유명해졌다. 피렌체의 대표 먹거리는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인데, 일명 '피렌체 스테이크'라고 불리는 매우 두툼한 티본스테이크이다. 티본스테이크는 피렌체 지역의 메디치 가문이 축제 때 처음으로 뼈에 붙은 소고기 등심 요리를 선보이면서 유명해졌다고도 한다. 겉만 익혀 소고기의 신선한 육즙을 그대로 살려내는 것이 이곳 티본스테이크의 특징이다.거대한 돔으로 더욱 유명한, 피렌체의 대표적 건축물인 피렌체 대성당에 대해 알아본다. 밀라노 대성당과 맞먹는 규모로 추진1296년 첫삽, 앞면은 19C까지 미완성돔 설계 당시 얼개 틀 없이 제작 제시정신이상자 평하며 건축가 내쫓기도 목재 지지구조 없이 완성한 최초 돔고딕→르네상스 양식 새 건축물 시작돔창에 묘사된 그리스도·성모마리아 피렌체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 작품주교 지하 무덤엔 돔 설계자도 매장돼 ◆거대한 돔으로 유명한 대성당피렌체 대성당(Duomo di Firenze)의 정식 명칭은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의미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이다. 필리포 브루넬레스코가 설계한 돔이 특히 유명하다. 건물 외벽은 흰색과 녹색·붉은색의 대리석 판으로 마감되어 있다.성당을 짓는 작업은 1296년에 시작되었으나, 축성(祝聖)을 받은 것은 1436년에 이르러서였다. 이 성당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화려한 녹색·붉은색·흰색의 대리석 파사드, 르네상스 거장들의 그림과 조각 작품 컬렉션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돔 덕분에 명성이 높다.지금의 피렌체 대성당은 이전에 산타 레파라타 성당이 있던 자리에 지어졌다. 도시의 번창으로 인구가 급증하던 시기여서 기존의 성당은 너무 작았고,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세인트 폴 대성당, 밀라노 대성당 등과 맞먹는 규모의 성당이 필요했다.새로운 성당은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1296년에 처음 설계했다. 피렌체에 파견된 첫 교황 사절이었던 발레리아나 추기경에 의해 1296년 9월 첫 공사에 들어갔다. 이 방대한 프로젝트는 140여 년간 계속되었다.아르놀포가 1302년에 사망하자 대성당의 공사는 미루어졌고, 1330년 공사가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1334년에는 조토 디 본도네가 공사를 감독하게 되었다. 조토의 주요 성과는 종탑 건물을 만든 것이었다. 조토가 1337년 죽고 난 후 안드레아 피사노가 종탑 건축을 이어갔으나, 1348년 흑사병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1349년 대성당 공사가 재개되고 이후 많은 건축가가 참여해 공사를 진행했다. 1418년 오직 돔만이 미완성 상태로 건물이 완성됐다. 외벽은 수직과 수평으로 교대하는 여러 색의 대리석 배열로 되어 있다. 대리석은 여러 지역에서 가져왔다.15세기 초 대성당의 원통형 부분이 건설되었으나, 성단소(聖壇所·성당의 제단이 놓이는 공간) 위의 넓은 공간(지름 45m)은 돔을 갖고 있지 않았다. 팔각 건물 위에 만들어야 할 돔만 남아있는 상태였다.1419년 대성당 돔의 설계안 공모에서 브루넬레스코가 당선되어 설계 의뢰를 맡게 된다. 브루넬레스코(1377~1446년)는 이탈리아의 건축가로, 르네상스 건축양식의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미술 원근법을 발견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브루넬레스코의 해결책은 전례가 없는 방법이었다. 그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한다. 돔의 얼개 틀 없이 돔을 세우겠다고 한 것이다. 그러자 평가위원 가운데 몇몇은 정신이상자가 들어왔다며 쫓아내기도 했다. 그는 돔의 천장을 두 겹으로 만들어 무게를 경감하고, 더 무거운 안쪽 천장이 가벼운 바깥쪽 천장을 받치도록 했다. 한편 팔각형인 외피와 내피는 그 사이의 공간에 아치형 구조물을 내접할 만큼 튼튼했고, 그에 힘입어 안팎의 힘이 균형을 이루면서 제 무게를 스스로 지탱하는 둥근 돔이 완성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브루넬레스코의 돔'이라 불리는 팔각형의 돔이 완성되었다. 이는 고딕 양식을 역사의 저편으로 밀어내고 르네상스 양식이라 불리는 새로운 건축 양식의 출발을 의미했다.이후 이런 규모의 돔은 20세기에 들어서 초경량 소재가 발명된 후에야 만들 수 있었다. 그의 창의력이 그 시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있다.이 거대한 구조물의 무게는 3만7천t이고 400만개 이상의 벽돌이 사용되었다. 돔 공사는 1420년에 시작되어 1436년에 완성되었다. 대성당은 교황 에우제니오 4세가 1436년 3월25일 축성하였다.이 돔은 역사상 최초로 목재 지지구조 없이 지은 팔각형 돔이었고, 그 당시 가장 규모가 거대한 돔이었다. 오늘날에도 세계에서 가장 큰 석재 돔이다. 이 돔은 르네상스의 가장 인상적인 프로젝트들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돔이 세워지고서 150년 이후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이 이 규모를 뛰어넘게 된다.◆돔 설계한 브루넬레스코는 성당 지하에 묻혀대성당 건물은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의 설계안으로 시작한 후 1436년 돔까지 완성되었으나, 돔 위의 랜턴(빛을 받아들이는 첨탑)은 1469년 베로키오가 구리로 된 구(球)를 설치하면서 완성되었다. 바닥에서 돔 위 랜턴의 열린 부분까지의 높이는 90m에 이른다. 그러나 대성당의 앞면은 19세기까지도 아직 미완성이었다.원래의 앞면(파사드)은 아르놀포 디 캄비오가 디자인했으나, 여러 이유로 앞면은 19세기까지 외관이 장식되지 않은 채로 내버려졌다. 1864년 대성당의 새로운 앞면에 대한 현상 설계 공모가 진행됐고, 에밀리오 데 파브리스(1808~1883년)의 설계안이 1871년에 당선되었다. 공사는 1876년 시작되어 1887년에 완공되었다. 흰색과 녹색 그리고 붉은색의 대리석으로 된 이 고딕 양식의 앞면은 종탑 및 세례당과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피렌체 대성당은 특히 44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유명한데 이것을 만드는 작업은 14세기와 15세기 이탈리아의 스테인드글라스 제조 작업 중 가장 큰 사업이었다. 회랑 안의 창들에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나오는 성인들이 묘사되어 있고, 돔의 원통형 안과 출입구 위에 있는 둥근 창에는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가 묘사되어 있다. 이들 작품은 도나텔로, 로렌초 기베르티, 파올로 우첼로,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등 당시 피렌체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이다.대성당은 1965년부터 1974년 어렵게 발굴되었는데, 지하의 시설(볼트)은 수백 년에 걸쳐 피렌체 주교들을 매장할 때 사용되었다. 최근에 이 영역의 고고학적 역사가 재현되었다. 로마 가옥의 유적, 초기 기독교 시대의 포장도로, 이전에 있던 산타 레파라타 성당의 폐허와 뒤를 잇는 이 교회의 확장이 드러난 것이다. 입구에서 가까운 곳인 지하실 일부분에 브루넬레스코의 무덤이 있다. 이처럼 중요한 매장 장소에 묻혔다는 것은 그가 피렌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증거이다.피렌체 대성당에 붙어 있는 종탑은 조토 디 본도네가 설계했다 하여 '조토의 종탑'으로 부른다. 높이가 85m로, 414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종탑에 오르면 대성당의 돔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피렌체 대성당의 돔 부분. 지름이 45m나 되는 이 거대한 팔각 돔은 브루넬레스코가 목재 지지 구조 없이 완성한 최초의 돔으로 유명하다.피렌체 대성당의 종탑이 있는 부분. 조토가 설계해 '조토의 종탑'이라 불리는 이 종탑(85m)에 오르면 대성당 돔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피렌체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다.피렌체 시내의 가죽 제품 시장. 피렌체는 가죽 제품이 유명하다.피렌체 대성당 정문 주변 모습.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음악 'The World of Tim Burton' 2LP 출시
팀 버튼의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음악 테마를 모은 음반 'The World of Tim Burton'가 2LP<사진>로 처음 출시되었다. '괴짜 감독' '기발한 상상력의 소유자' '할리우드의 악동' '천재 감독'으로 불리는 팀 버튼(Tim Burton)은 풍부한 상상력과 독창적인 예술성으로 개성 넘치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음악도 특별하다. 그의 여러 작품을 위해 오랜 기간 창의적이며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낸 대니 엘프만 (Danny Elfman)은 팀 버튼의 영화를 성공으로 이끈 실질적인 공로자이다. 음반에는 '유령수업(Beetlejuice)'(1988) '배트맨(Batman)'(1989) '가위손(Edward Scissorhands)'(1990), '배트맨 2(Batman Returns)'(1992) '화성 침공(Mars Attacks!)'(1996)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2005)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2010) 등의 음악이 담겨있다. 또 다른 영화음악의 대가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이 음악을 맡은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Sweeney Todd: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2007), 하워드 쇼어(Howard Shore)의 '에드 우드(Ed Wood)'(1994)의 주제곡들도 수록되어 있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옛사람들의 행복콘서트] 독서, 책 통해 스스로 깨닫는 즐거움…평생 자신 지키고 유지하는 바탕
독서 인구가 2013년 이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우리나라 독서 인구(만 13세 이상) 비율은 2013년 63.4%, 2015년 56.2%, 2019년 50.6%, 2021년 45.6% 등으로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제 책을 1년 동안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는 유튜브 등 책 이외의 다른 콘텐츠 이용을 꼽은 것으로 조사됐다.독서는 언어기능을 포함한 뇌 기능과 공감 능력을 높이고, 숙면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는 등 심신 건강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행복한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독서가 점점 외면받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 옛사람들의 글을 살펴본다."사람들이 즐거워할 만한 것은 많습니다. 귀에는 소리가, 눈에는 색깔이, 입과 코에는 냄새와 맛이 그러하지요. 이러한 것들이 눈앞에 몰려들어 마음을 흔들면, 반드시 온갖 지혜를 다 짜내고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려고 하지요. 그러나 그 좋아하는 바는 불과 잠깐 사이의 일일 뿐입니다.여러 가지 음악이 떠들썩하거나 맑은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더라도, 연주가 한 번 끝나고 나면 산은 텅 비고 물만 흐를 뿐이지요. 하얗게 분을 바르고 새까맣게 눈썹을 칠하고서 웃음과 교태를 바치는 여인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이 한 번 흩어지고 나면 가물거리는 촛불과 지는 달빛만 비칠 뿐이지요. 난초와 사향이 향을 풍겨도 한 번 냄새를 맡고 나면 그만이지요. 맛난 고기가 가득 차려져 있어도 한번 먹고 나면 그만이지요. 이 모두가 태허(太虛)에 회오리바람이 먼지를 쓸어 가버린 것과 다름이 없겠지요.이에 비해 눈과 귀에도 즐겁고, 마음과 뜻에도 흡족해서, 빠져들수록 더욱 맛이 있어 늙음이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하게 되는 것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혼자 호젓할 때 적막한 물가에 있다 하더라도 문을 닫고 책을 펼치고 있노라면, 완연히 수백 수천의 성현이나 시인, 열사와 더불어 한 침상 사이에서 서로 절을 하거나 질타하는 것과 같으리니, 그 즐거움이 과연 어떠하겠습니까?사람 중에 나의 법도를 따르고 나와 마음을 함께하는 이는 거의 드물겠지요. 육예(六藝)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그만이겠지만, 종사하는 이가 있다면 책과 더불어 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 금과 옥은 보배이지만, 문장도 또한 보배지요. 백 근이나 되는 묵직한 물건은 보통 사람이라면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다섯 수레의 책도 돌돌 말면 가슴 속 심장 안에 넣어 간직해둘 수 있을 것이요, 이를 활용하면 조화에 참여해 천지에 가득하게 되겠지요.사람이 어찌 쉽게 늘 이것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지금 세상에 이것을 누릴 이가 그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가 당신과 알게 된 지는 오래되었으나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사귐이 얕은데 말이 깊은 것은 선철(先哲)께서 경계한 바지요. 그런데도 당신은 저를 못났다 여겨 멀리하지 않으셨으니, 감격스럽고 부끄럽습니다. 보답하고자 생각을 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였습니다.예전에 당신의 문장을 보았습니다. 가히 정교하고 치밀하다고 말할 만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좋아하는 것은 기뻐하는 것만 같지 못하고, 기뻐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대개 배울 줄은 알지만 좋아할 줄 모르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좋아하지만 그 뜻을 가다듬어 그 힘을 다하지 않는다면, 앞서 말한 입과 코·귀·눈이 누리는 짧은 즐거움과 그 거리가 한 치도 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와 당신이 서로 권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말이 망령되다 마시고 가려 받아들이신다면 참으로 다행이겠습니다."서울 인왕산 아래 옥류동에 살던 가난한 선비 장혼(1759~1828)이 친구 김의현에게 보낸 편지다. 가난하고 외롭지만, 책을 읽고 기뻐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참으로 책을 사랑했던 장혼이 친한 친구가 아름다운 시를 지어 보이자, 시보다 책을 더욱 사랑하라는 충고의 말을 넌지시 던진 것이다."의복과 음식이 주는 즐거움은 세상살이의 근심과 걱정을 잊도록 해 준다. 반면에 독서에서 얻는 즐거움은 스스로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몸은 의복과 음식 덕분에 보호받으며 자라지만, 그 마음과 성품은 스스로 기르고 얻어서 발전한다.사람은 평생 의복과 음식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안고 살아간다. 1년 내내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곡식과 각종 옷감이 창고에 가득 차면,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즐거움을 품는다. 그 이유는 바로 한 해 동안 의복과 음식에 대한 걱정을 잊고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독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평생 해야 할 일이다. 스스로 깨달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비록 보잘것없고 사소한 일일지라도 근거로 삼을 만한 것이 없다. 여러 해 동안 연구하거나 깊게 탐구하고 사색해 사물의 이치가 뚜렷이 드러나면, 비로소 만족할 만한 즐거움을 얻는다. 이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얻어 평생토록 자신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는 바탕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의복과 음식에 대한 걱정이나 근심이 없는 경우를 독서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일과 비교해 보자. 의복과 음식에 대한 걱정을 안고 산다면 몸이 제대로 보호되고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쉽게 안다. 그래서 이들을 구하려고 죽을힘을 쏟으므로 얼어 죽거나 굶어 죽는 경우가 자못 적다. 그러나 독서를 하여 스스로 깨달아 얻는 것이 없으면 그 마음과 성품이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알기 어렵다. 또한, 이것을 얻으려고 힘을 쏟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수많은 사람이 죽을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약 독서를 통해 스스로 깨달아 얻는 일에 음식과 의복에 대한 근심을 없애는 일처럼 힘을 쏟는다면, 반드시 스스로 깨달아 얻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이 글은 혜강(惠岡) 최한기(1803~1877)의 글 '자득(自得)' 중 일부다. 독서와 사색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하는 내용이다.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이인상 '송하독서도'.
[흥미로운 명필이야기 24] 고산 황기로 (상)... 용이 날고 호랑이가 웅크리며 귀신이 출몰하는 형태, 신묘하고 괴이함이 가히 헤아릴 수 없어
황기로(1521~1575 이후)는 '초성(草聖)'이라 불릴 정도로 초서를 잘 썼던 서예가다. 호는 고산(孤山), 매학정(梅鶴亭) 등이다. 14세(1534년) 때 진사가 되어 여러 번 벼슬에 천거되었으나,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서예에만 정진해 서예의 대가가 되었다. 특히 초서에 능했다. 모재 김안국과 같이 명나라에 갔을 때 명나라 선비들이 그의 남다른 서예 솜씨를 알아보고 '해동장옹(海東張翁)'이라 불렀다 한다. '조선의 장욱(張旭)'이란 뜻인데, 장욱은 당나라 때 초서에 뛰어나 '초성(草聖)' 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그들은 또한 황기로를 '왕희지 다음으로 첫째(王羲之後一人者也)'라 하며, 글씨 한 폭씩 얻기를 원했다 한다.그는 조부(황필)의 뜻을 받들어 벼슬을 하지 않고, 경북 선산의 낙동강 변에 있는 고산(孤山)에 매학정(梅鶴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글씨와 술로 일생을 보냈다. '매학정'이란 호칭은 중국 항저우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살아 '매처학자(梅妻鶴子)'로 불렸던 북송의 시인 임포(林逋)의 삶을 동경한 데서 비롯됐다.그가 벼슬길을 버리고 매학정을 짓고 세상을 등지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조부가 성균관 시절 익명의 투서사건에 휘말려 평생을 수모와 오욕을 감수해야만 했고, 부친이 당시 신진 사림의 거두였던 정암 조광조(1482~1519)를 처단할 것을 주장해 결국 사판(士版)에서 이름이 삭제되는 치욕을 겪는 등 조부 때 시작된 가환(家患)이 있었던 것이다.황기로의 42세 때 모습에 대해 사돈인 율곡 이이는 '빈 뜰에 매화 송이 피어오르고 깊은 못에서는 학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10여 리 떨어진 곳에서 텃밭을 일구는 신선'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젊은 나이에 외부세계와 단절된 시간을 보내야 했던 황기로에게 술과 글씨는 울적한 심사를 달래줄 수 있는 탈출구였다. 그는 술을 매우 좋아해 취흥을 빌려 글씨를 썼다는 기록이 적지 않다. 그 대표적 일화는 다음과 같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전한다."황기로는 술 마시기를 좋아하였고 초서를 잘 썼다. 그의 글씨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큰 잔치를 열어 황기로를 맞이하였는데, 원근의 손님들이 각기 하얀 비단이나 꽃무늬 종이를 수백 축씩 가지고 왔다. 황기로는 종이가 많을수록 더욱 재주를 보였다. 붓의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았으며, 자신의 집에서 좋은 붓을 가져가지도 않았다. 다만 먹을 서너 말 갈게 하고는 주인집의 몽당붓을 거두어 모았는데, 아이들이 담장 위에 버린 붓이나 부녀자들이 언문 편지 쓰다 남은 것 따위를 모두 합하여 묶었다. 몇 자나 되는 긴 붓대를 사용하였는데, 붓대의 끝부분은 잘라 끈으로 매어 묶었다.날이 저물도록 몹시 취하게 마시고 붓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았으나, 모든 손님은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술에 대취하여 붉은 것과 푸른 것을 분간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손으로 붓대 끝을 움켜잡고, 손가락은 쓰지 않았다. 먹을 묻혀 마음대로 붓을 휘두르는데, 한번 붓을 휘두름에 능히 수백 장을 써내 날이 기울기 전에 마쳤다.용이 날고 호랑이가 웅크리며 귀신이 출몰하는 형태는 천변만화하여 무어라 형용할 수가 없다. 그의 서법은 대개 장욱과 장필(張弼·명나라 서화가)을 근본으로 하였으나, 신묘하고 괴이함이 가히 헤아릴 수 없어 스스로 조화의 공을 이루었으니, 비록 중국에서도 수백 년 동안 이와 견줄 만한 이가 드문 것이다."이이는 황기로의 50여 평생을 '취묵(醉墨)과 감상(甘觴)'의 세월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술과 글씨에 묻혀 평생을 살다간 그의 삶을 보여주는 함축적 표현이다. 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보물로 지정된 황기로 초서 '이군옥시'(부분).
[동추(桐楸) 금요단상] 귀해서 대접받는 양동마을 서백당 향나무…귀한 향기 때문에 희생당한 울릉도 향나무
인간 삶(죽음 포함)과 관련되는 모든 것은 인간의 욕망이나 가치관의 영향을 받는다. 인간의 이해(利害)나 필요 여부에 따라 보호를 받기도 하고 피해를 보기도 한다. 나무 역시 그렇고, 향나무도 그 대표적 나무에 해당하는 것 같다.경주 양동마을은 월성손씨와 여주(여강)이씨 집성촌이고, 그 대표적 인물은 양민공 손소와 회재 이언적이다. 성리학 대학자 이언적은 손소의 외손이다. 손소(1433~1484)가 양동마을의 손씨 입향조(入鄕祖)이고, 그가 이 마을에 처음 지은 집이 손씨 대종택인 서백당(書百堂)이다. '서백'은 참을 인(忍) 자를 100번 쓴다는 의미다. 손소가 처음 자리 잡은 서백당 터는 '삼현지지(三賢之地)'라고 하는 명당이라는데 손소의 아들 손중돈과 이언적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한 사람의 현인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손소는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는 데 세운 공으로 적개공신이 되고, 4대 봉사(奉祀) 후에도 신주를 묘에 묻지 않고 영원히 기제사를 지낼 수 있는 불천위(不遷位)의 지위를 받았다. 서백당에는 손소의 불천위 신주(神主)를 봉안하고 제사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이 사당 아래 마당에 거대한 향나무가 있다. '서백당 향나무'다. 손소가 1459년 서백당을 지을 때 심은 나무라고 한다. 심을 당시 20여 년 된 나무였다면 지금은 수령이 580년 정도 된다. 손소의 불천위 제사를 비롯해 이 종택에서 대대로 지내온 조상 제사의 분향에 사용되어온 나무다. 후손들이 조상 제사를 위해 대대로 돌보며 키운 덕분에 멋진 고목의 풍모를 자랑하며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 향나무는 불천위 신주처럼 사람의 지극한 보호를 받으며 앞으로도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 향나무는 좋은 향기를 내는 덕분에 서백당 향나무처럼 사당이 있는 종택이나 서원, 궁궐 등에 많이 심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런 곳에 향나무 노거수가 많이 남아 있다. 이처럼 사람의 돌봄을 받으며 귀한 대접을 받아온 향나무도 있지만, 귀한 향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무자비하게 희생을 당하기도 한다. 그 좋은 예로 울릉도 향나무를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옛 기록을 보면 울릉도에는 향나무가 정말 많았던 것 같다. 조선 시대 왕실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향나무를 울릉도에서 가져와 사용했고, 1882년의 한 기록을 보면 울릉도에는 '자단(섬피나무)과 향목(향나무)이 가장 많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랬던 울릉도 향나무는 왜구와 일제의 도벌, 광복 후 연료 채취, 공예 및 분재 소재용 등으로 남벌되면서 급감하게 되었다. 일제 시절의 한 사진을 보면, 주변에 베어버린 향나무 거목들이 즐비한 산등선에 한 벌목꾼이 쉬고 있고, 벌목한 향나무 주위에 서 있는 나무도 대부분 향나무임을 확인할 수 있다.그 결과 지금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험준한 절벽 상부 등에 국지적으로 자라고 있는 현실이다. 저런 곳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버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울릉도 향나무를 보면 그 생명력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명력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여름 불어닥친 제11호 태풍 '힌남노'에 의해 울릉도 관문 도동항 절벽 위에 자라던 향나무(수령 2천년 추정)가 뿌리째 뽑혀 넘어졌다. 이 나무는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 뽑힌 그대로 현장에 존치하는 방향으로 전문가들이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울릉도에 남아있는 천연기념물 향나무들도 얼마나 버틸지 걱정이다.서백당과 울릉도의 향나무 사례를 보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인간과 자연이 서백당 향나무처럼 서로 도움을 주며 상생하는 관계가 되면 좋지 않겠는가.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경주 양동마을의 서백당 마당에 있는 '서백당 향나무'. 왼쪽에 손소 불천위 사당이 보인다.태풍 힌남노로 인해 뿌리째 뽑힌 울릉도 도동 향나무(수령 2천 년 추정).
영화 '필립의 야망' OST LP 출시
세계적인 미남 배우 알랭 들롱이 제작·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조르쥬 로트너 감독의 1977년 프랑스 누아르 영화 '필립의 야망'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이 아날로그 LP<사진>로 출시되었다. 국내에는 1980년에 '알랭 들롱의 체이사'라는 이름으로 개봉, 당시 3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영화 음악의 거장 필립 사르드가 음악을 맡았다. 필립 사르드는 영화의 색과 어울리는 악기를 생각했고, 바로 스탄 게츠의 섹스폰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스탄 게츠와 빌리 하트(데이비스의 드러머)를 파리로 초대하였고, 100여 명의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영국의 CTS 스튜디오에서 영화를 틀어놓고 영화음악을 녹음했다. '쿨 재즈'의 상징으로 불리는 스탄 게츠가 음악 전편에 참여, 특유의 감각적인 색소폰을 연주하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누아르 영화음악의 진수를 들려준다. 1977년에 처음 발매된 LP에 수록되지 않은 3곡의 보너스 트랙이 추가되었다. 전세계 1천 장 한정판.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영남선비문화수련원 선비문화체험 7만명 수료생 배출
영남선비문화수련원(원장 서상보)은 지난달 25일 선비문화체험 7만번째 수료생을 배출했다. 수련원 개원 6년만인데, 당사자인 시지중학교 1학년 최지우 학생에게 수료증과 기념품을 증정했다.
'재즈 마니아' 우디 알렌 영화 재즈음악, LP와 양장본 아트북으로 나와
''재즈 마니아' 우디 알렌 영화 속의 재즈음악 'WOODY ALLEN illustration by CORBOZ'이 LP<사진>로 나왔다. 우디 알렌은 'Take The Money And Run(돈을 갖고 튀어라)'(1969), 'Annie Hall(애니 홀)'(1977), 'Midnight In Paris(미드나잇 인 파리)'(2012) 등 주옥같은 대사와 명장면 그리고 아름다운 재즈 음악이 담긴 50여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우디 알렌은 자신의 영화에 쓸 음악을 영화음악 작곡가에게 의뢰하지 않고, 자신의 레코드 라이브러리에서 직접 선곡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Stardust Memories(스타더스트 메모리즈)'(1980)에 나오는 글렌 밀러의 'Moonlight Serenade, Manhattan Murder Mystery(맨해튼 살인사건)'(1993)에 삽입된 에롤 가너의 'Misty(미스티)'는 영화보다 음악이 더 히트했다. 1LP와 20쪽의 우디 알렌 이야기 양장본 삽화로 구성된 이 음반은 'Radio Days(라디오 데이즈)'(1987), 'Anything Else(에니씽 엘스)'(2003) 등 1980년에서 2000년대까지 연출한 9편의 우디 앨런 영화에 삽입된 재즈 명곡 13곡이 담겨 있다.LP는 2022년에 리마스터링된 1천 장 한정판.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봉화 백두대간 수목원(2) 청정 산자락에 수놓은 자생 초목…30여개 주제 정원도 색다른 재미
봉화 문수산 자락에 펼쳐져 있는 백두대간수목원은 누구나 좋아할 자연 정원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 초목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특히 좋아할 곳이다. 30여 개의 다채로운 주제 정원이 하천을 따라 펼쳐지고, 산속에는 각기 다른 분위기의 숲길이 조성돼 있다. 계절별로 수놓는 수많은 우리나라 자생 초목의 꽃과 열매를 보고 즐기면서, 해발 500~600m의 청정한 산속 자연 내음을 만끽할 수 있는 '천국'이다.지금은 가을의 자연이 펼쳐져 있다. 방문자센터를 통해 하천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수목원에 들어서니, 먼저 '덩굴정원'의 덩굴식물 터널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머루, 오미자, 다래, 조롱박 등의 잎이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다. 드물게 보이는 그 열매를 따 먹으며 달콤새콤한 맛도 즐길 수 있었다.30개 정원서 다양한 풍광수련·돌틈·암석원 등 다채롭게 조성들국화·금강송 자태 뽐내는 잔디언덕그네에 앉아 수목의 천국서 오감 세탁'비비추원'과 '원추리원'을 거쳐 '수련정원'의 연못을 보니 예쁜 수련 꽃들이 물 위에 떠 있고, 수련 주위로 맑은 하늘이 비치고 있었다. '장미정원' '약용식물원'을 지나니 '돌틈정원'이 나왔다. 말 그대로 크고 작은 돌들로 조성한 정원의 돌 틈 사이에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며 꽃을 피우는 정원이다. 모든 초목 앞에는 명패를 세워놓아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재미도 쏠쏠했다.'거울연못'은 하천 옆에 조성한 작은 못인데, 주변 경치를 마치 거울처럼 비춰주며 특별한 분위기를 선사했다. 나무데크 길을 걸으며 철 따라 변하는 다양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거울연못 옆에는 '매화원'이 펼쳐진다. 지금은 초라해 보이는 매화나무들이지만, 봄이 되면 매화 향기 가득한 별천지를 만들어낼 것이다.이곳에서 하천을 건너면 수목원의 정원 중 전체 풍경이 가장 멋진, 2022 가을 봉자페스티벌이 펼쳐진 '잔디언덕'과 '돌담정원'이다. 돌담정원은 다랑논처럼 돌담을 층층이 쌓아 조성한 정원이다. 잔디언덕에는 다양한 들국화와 가을꽃들이 금강송들이 멋진 자태를 자랑하는 잔디밭 곳곳을 수놓고 있었다.이곳에는 그네의자와 카우치 등이 곳곳에 마련돼 있었다. 그네에 앉아 맞은편의 문수산 정상 쪽 풍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오감을 '세탁'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문객의 최적 휴식처라고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건너편 산자락에 펼쳐진 '야생화언덕' '암석원' '자작나무원'도 눈에 들어오는데, 야생화언덕은 여름이면 여름꽃이 수놓는 여름 봉자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다.잔디언덕에서 한참 머물다가 야생화언덕 쪽으로 올라갔다. 야생화언덕 위의 암석원은 아주 독특한 정원이다. 크고 작은 다양한 바위를 모아 조성한 정원으로, 넓이는 1만6천424㎡.암석원은 생태적으로 고산지대의 나무가 살 수 있는 한계선인 수목한계선 주변에 자라는 식물들을 암석 위나 그 주변에 자연스럽게 심어서 보여주며 보존하는 곳이다. 고산식물을 암석과 함께 자연스럽게 배치해 놓고 있는데, 지하 1.5m까지 자갈을 깔아 풍혈(風穴)을 만들어 여름철 기온을 낮출 수 있는 구조로 조성했다. 대표 수종은 월귤(越橘), 시로미, 털진달래 등. 월귤은 블루베리의 사촌뻘 되는 과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 이북의 높은 산이나 백두산의 바위틈에 자란다. 시로미는 높은 산 정상에서 자라는 상록 관목이다. 오밀조밀 모여 자라는 시로미는 잎은 밀생하고 흰색 잔털이 있으며, 자주색 꽃이 핀다. 한라산 고산지대에서 자생하는 구상나무도 있다. 암석원 가운데로 작은 개울을 만들어 놓아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주변 풍광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색다른 즐거움이다.암석원 위는 '자작나무원'이다. 한·온대지역 산림을 대표하는 자작나무, 사스래나무, 만주자작나무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자작나무 속 식물을 심어 키우고 있다. 노각나무, 물박달나무, 흰말채나무, 개벚지나무 등도 있다. 최근에 심은 묘목들도 많이 보였다.호랑이숲과 다양한 숲길멸종위기 백두산호랑이 종 보존 서식통나무 정자서 쉬고 있는 호랑이 만남밤·호두·잣·산딸나무열매 맛보기도자작나무원 옆으로 가면 호랑이를 볼 수 있는 '호랑이숲'이다. 호랑이숲 전체 넓이는 3.8㏊. 우리 땅에서 사라진 지 100년 된 멸종위기 종 백두산호랑이의 종 보존과 그 야생성을 지키기 위해 자연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 종 보존과 체계적 관리를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곳이다. 이 호랑이숲 한 귀퉁이에 만든 철망 우리 속을 거닐며 쉬는 호랑이 두 마리를 볼 수 있었다. 한 마리는 쉼터 위에 올라앉아 있고, 한 마리는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관람객들에게 즐거움 선사했다. 통나무로 만든 정자 위에 올라가기도 하고, 통나무 놀이기구를 오르내리며 놀기도 한다. 정해진 시간에 가면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어린 시절 옛날이야기로만 듣던, TV로만 본 호랑이를 바로 눈앞에서 보는 특별한 기분을 맛보기도 했다. 옛사람들에게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면서 한편으로는 경외 의 동물이었지 않은가. 백두대간수목원은 2018년 5월부터 백두산호랑이 방사장을 운영 중이다. 현재 백두산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6마리가 살고 있다. 이들의 주식은 닭고기와 소고기라고 한다. 이 수목원이 특히 좋은 점은 호젓한 숲길이 많다는 것이다. '잣나무숲길' '명상숲길' '산수국숲길' '고산습원숲길' '돌틈생태숲길' '연수동숲길' '만병초원숲길' 등이 있다. 계절마다 다르게 펼쳐지는 숲속 자연의 모습과 기운을 만끽할 수 있다. 지금은 가을이라 이런 숲길을 걸으며 밤나무, 잣나무, 호두나무, 산딸나무, 산초나무 등의 열매를 따서 맛보는 재미도 누릴 수 있었다. 곳곳에 의자, 평상 등이 마련돼 있어 쉬어가면서 걸을 수 있다. 명상숲에는 잣나무를 이용한 해먹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등 명상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2018 개원 아시아 최대 수목원기후변화 취약한 산림생물자원 보존대재앙 대비 세계 두곳뿐인 '시드볼트'야생식물 종자 200만점 이상 저장 가능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 산하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백두대간의 중심에 자리 잡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시설로, 생태계와 산림생물자원 보전·관리를 위해 2009년부터 2015년까지 2천200억원을 투입해 조성했다. 개원은 2018년 5월.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일대에 자리한 백두대간수목원은 기후변화에 취약한 산림생물자원의 체계적 보전 및 활용기반 구축 등에 특화된 수목원으로, 국내·외 야생식물 종자의 영구 보존사업을 수행하고 산림생물자원의 수집·증식·보전·전시 및 자원화 사업을 진행해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하고 지역균형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전체 규모 5천179㏊인 이 수목원은 아시아에서는 최대, 전 세계에서도 남아공 국립한탐식물원(6천229㏊)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이 수목원의 특별한 중요 시설로 '시드 볼트(Seed Vault)'가 있다.일반인 출입이 통제되는 시드 볼트는 지구에 대재앙이 닥쳐 식물이 사라질 때를 대비해 종자를 영구 저장할 목적으로 지어진 종자 영구저장 시설이다. 전 세계에 단 두 곳, 노르웨이 스발바르와 대한민국 봉화의 이 수목원에 있다. 전 지구적 생물 다양성 보전을 목표로 야생식물 종자를 수집·보존하고 있는 이 시드 볼트는 지하 46m 깊이에 두께 60㎝ 두께의 강화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들었는데, 진도 6.9를 견딜 수 있는 내진 설계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자연재해, 전쟁, 핵폭발 등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2천100㎡의 규모의 지하 터널형으로 건립됐다.200만점 이상 저장이 가능하며, 전 세계 종자 저장 선도기관으로 2030년까지 세계 식물 종자 1만여 종을 확보할 계획이다. 종자를 장기저장하는 시드 뱅크(Seed Bank)는 많이 있지만, 영구저장이 가능한 시드 볼트는 세계적으로 스발바르 제도의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와 이 수목원의 시드 볼트 두 곳뿐이다. 또한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가 주로 식량 작물을 위주로 보관하는 데 비해, 이곳은 식량 작물 종자와 더불어 야생식물 종자도 보관하고 있다.이 수목원의 '알파인 하우스'도 다른 수목원에서는 볼 수 없는 시설이다. 세계 고산식물 자원을 수집 전시하기 위해 조성한 대형 냉실이다. 3개동의 냉실은 고산지대의 특수환경을 재현하기 위해 배수가 잘되는 토양 조건과 저온 항온습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다양한 희귀 고산식물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백두대간수목원의 '돌틈정원'.백두대간수목원의 '잣나무숲길'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숲'의 정자 놀이시설에 올라 쉬고 있는 호랑이.백두대간수목원의 '덩굴정원' 풍경.
[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봉화 백두대간수목원(1) 백두산 호랑이가 사는 가을 자연에서 힐링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天高馬肥)' 가을이다. 뭘 해도 좋은 계절이다. 독서하기도 좋고, 캠핑하기도 좋고, 차 마시기도 한층 좋은 때다. 이런 가을의 산하를 수놓는 대표적인 꽃은 들국화와 코스모스다. 청명한 날씨의 산과 들판이 사람을 유혹하고, 그곳에 가면 자연스러운 코스모스 꽃과 들국화가 가을 분위기에 어울리는 모습과 빛깔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들국화는 특정 꽃의 이름이 아니다. 구절초, 산국(山菊), 감국(甘菊), 쑥부쟁이 등이 들국화에 속한다. 대표적인 들국화인 구절초가 요즘 한창 꽃을 피우고 있다. 구절초(九節草, 九折草)라는 이름은 음력 9월9일 중양절(重陽節)경에 약효가 가장 좋아, 이때 꺾어서 약으로 쓴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구절초와 관련해서는 이런 전설도 있다. 옛날 한 여인이 결혼하고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온갖 방법을 써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큰 걱정이었는데, 한 스님이 어느 절에 가서 치성을 드리라고 알려 주었다. 여인은 그 절에서 약수로 밥을 해 먹고 구절초 달인 차를 마시면서 결국 아이를 얻었다. 그래서 구절초를 선모초(仙母草)라고도 부른다.정읍에서는 이 구절초를 주제로 한 '정읍 구절초 꽃 축제'(올해 15회)를 해마다 열고 있다. 구절초와 함께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이 쑥부쟁이다. 동생들의 끼니를 때우기 위해 쑥을 캐러 간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 죽고 난 뒤 그 자리에서 꽃이 피었다고 해서 '쑥부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 있다. 쑥부쟁이 꽃은 보통 연한 보라색이다.구절초와 쑥부쟁이의 꽃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시인 안도현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래서 '무식한 놈'이라는 시를 통해 이렇게 이야기했다.'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絶交)다!'지난 2일과 3일 구절초, 쑥부쟁이 등 다양한 가을꽃이 한창인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을 다녀왔다. 호랑이도 볼 겸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마침 '2022 가을 봉화 자생꽃 페스티벌(봉자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기간은 9월29일~10월10일.봉자페스티벌은 백두대간을 포함한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연구·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백두대간수목원이 마련한 봉화 자생식물 우리 꽃 축제다. 봉자페스티벌이 열리는 '잔디언덕'에 가을 대표 자생식물인 구절초, 산국, 쑥부쟁이, 해국, 층꽃나무, 마편초 등이 멋진 금강송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는 잔디언덕 곳곳을 수놓고 있었다. 봉화지역 31개 농가에 위탁해 재배한 17종 42만그루의 자생식물이라고 한다.그네의자, 카우치 등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는 이곳에서 그네의자에 앉아 풀 내음, 꽃 내음, 바람, 물소리 등을 온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문수산(해발 1천205m) 자락의 가을빛과 하늘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감상하는 여유를 만끽하며 더할 나위 없는 시간을 잠시 보낼 수 있었다.백두대간수목원은 여름과 가을에 봉자페스티벌을 여는데, 7월28일부터 8월7일까지는 핑크빛으로 물든 '2022 여름 봉화 자생꽃 페스티벌'을 열었다. 이번 가을에는 주요 자생식물의 색감인 '우리꽃 보라보라해'라는 주제에 맞춰 구절초, 갯쑥부쟁이, 산국 등을 수목원 곳곳에 전시해 아름다움을 선사했다.백두대간수목원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문수산 자락에 조성되었는데, 이곳은 해발 500m 이상 되는 청정한 산자락을 차지하고 있다. 하룻밤을 근처 수목원 직원 숙소에서 묵었는데, 마침 밤하늘이 맑은 편이어서 오랜만에 쏟아질 것 같은 별들이 수놓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카시오페이아자리, 북두칠성, 북극성 등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었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김봉규의 수류화개(水流花開)] 봉화 백두대간수목원(2)에서 계속됩니다.2022 가을 봉화 자생꽃 페스티벌(봉자페스티벌)이 열린 백두대간수목원의 '잔디언덕'.
[김봉규 기자의 '지구촌 산책' .30] 中 허베이성 백림선사…"끽다거" 번뇌·망상 제거 화두 던진 승려 '조주'의 佛心과 마주하다
당나라 승려인 조주 종심(778~897)은 중국의 선불교를 꽃피운 대표적 선사(禪師)다. 조주(趙州) 고불(古佛), 즉 '조주의 옛 부처'라는 칭송을 들은 그는 특히 많은 유명 화두(話頭 :불교 참선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참구하는 문제)를 남겨 지금도 많은 선수행자들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고 있다. '차 한 잔 하게(喫茶去)' '뜰 앞의 잣(측백)나무(庭前柏樹子)' '무(無)' 등이 그가 탄생시킨 대표적 화두들이다. 조주는 중국 허베이성(河北省)에 있는 지역 이름이다.보기 드물게 120세까지 장수한 그는 80세 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조주성(趙州城)동쪽 관음원에 머물며 불법을 펼쳤다. 조주라는 그의 법호가 지어진 연유이기도 하다. 조주가 오랫동안 머물며 많은 화두와 일화를 남긴 관음원은 송나라 때는 영안서원(永安禪院), 금나라 때는 백림선원(柏林禪院)으로 불렸다. 원나라 때부터 백림선사(柏林禪寺)로 불리고 있다. 이 백림선사는 2013년 12월에 들러봤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출가한 조주는 은사를 따라 여러 곳을 전전하다 18세 때 남전 보원(748~835) 선사를 만나 그의 문하에 머물며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그는 스승이 입적할 때까지 40년간 정성을 다해 모셨다. 스승 열반 후에는 60세가 넘은 몸을 이끌고 20년 동안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중국 천하를 만행했다. 그는 행각을 나서면서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일곱 살 먹은 아이라도 나보다 나은 이에게는 내가 물을 것이요. 100살 먹은 노인이라도 나보다 못한 이는 내가 가르치리라."조주는 80세 때 조주성에 있는 관음원에 정착, 120세가 되도록 40년 동안 머물렀다.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을 하며 후학들을 가르치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불법을 폈다. 선가(禪家)의 제일 화두인 '무(無)'자 화두를 비롯해 '차 한 잔 하게' '뜰 앞의 잣나무' '청주의 베옷' '진주의 큰 무' 등 번뇌와 망상을 제거하는 유명 화두들이 모두 조주에게서 나왔다.조주 스님은 20세 무렵 남전 스님의 '평소의 마음이 도(平常心是道)'라는 말에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조주의 오도송이다.'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빛 밝으며/ 여름에는 산들바람 불고 겨울에는 흰 눈 내리네/ 쓸데없는 생각만 마음에 두지 않는다면/ 이것이 바로 인간세상의 좋은 시절이로다(春有百花秋有月 夏有凉風冬有雪 若無閑事掛心頭 便是人間好時節)'◆조주 선사가 40년 동안 불법을 편 곳백림선사는 허베이성 성도 스좌장(石家壯)시 자오현(趙縣)에 있다. 한나라 헌제 건안 연간(196~220)에 건립돼 처음에는 관음원(觀音院) 또는 동원(東院)으로 불렸다.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원나라 때다. 사찰 입구 좌우에 이런 주련이 걸려 있다.'절 안에는 천년을 버텨온 조주탑이 있고/ 산문은 조주의 만리교를 마주 대하고 있다(寺藏眞際千秋塔 門對趙州萬里橋)'조주가 이 사찰의 주인공임을 말해주고 있다. 안으로 들어서면 전각들과 더불어 푸른 측백나무들이 곳곳에 서 있다. 이 주련에 나오는 '진제(眞際)'는 조주의 시호다.사찰의 중심은 측백나무 길이 끝나는 곳에 높이 서 있는 아름다운 탑이다. 조주의 사리를 모신 조주탑이다. 정식 이름은 '특사대원조주고불진제광조국사탑(特賜大元趙州古佛眞際光祖國師塔)'.조주가 별세한 후 문도들은 그의 사리와 바리때 등을 수습해 검소하게 모셨다. 세월이 지나 원나라 때 황제가 특별히 '조주고불진제광조국사(趙州古佛眞際光祖國師)'라는 시호를 내리고, 1330년에는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지금의 탑을 조성했다. 벽돌을 조화롭게 쌓아 올린 탑은 8면 7층에 높이는 33m. 마치 목탑처럼 처마와 기와지붕까지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격자무늬의 문도 세밀하게 담아냈다. 특히 층마다 용, 코끼리, 기린 등 상서로운 동물들을 조각하고 연꽃과 당초 무늬로 장식했다.탑 뒤편에 관음전이 있는데, 예전의 관음원 당시 건물은 아니고 근래 세운 전각이다. 그 앞에 측백나무 고목이 곳곳에 허옇게 속을 드러낸 채 허리를 구부린 모습으로 서 있다. 조주가 머물던 당시 '뜰 앞의 잣나무'라는 화두를 낳게 한 그 주인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주의 화두 '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를 '뜰 앞의 잣나무'라고 번역해 사용해 왔는데, 중국에서 백수(柏樹)는 측백나무를 말한다. 그러니 우리나라 옛 스님들이 백림선사의 측백나무를 확인하지 못했기에 잣나무로 오해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백림선사도 문화혁명 당시 조주탑과 몇 개의 비석을 제외한 전각들이 대부분 파괴됐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전각들이 중건되면서 지금은 경내 곳곳 많은 전각과 박물관, 연구소 등이 많이 들어서 있다. 상주 승려는 160여 명.백림선사의 문선료(問禪寮) 입구 기둥에는 이런 주련이 걸려 있다. '조주 차 향기 마음의 성품을 밝히고(趙州茶香明心性)/ 뜰 앞의 측백나무는 참된 공을 깨닫게 하네(庭前柏樹覺眞空)'◆'끽다거(喫茶去)' 화두 조주 선사의 '끽다거(喫茶去)', 즉 '차 한 잔 마시게'라는 화두는 이렇게 탄생한다.어느 날 한 수행승이 조주를 찾아와 불법(佛法)이 무엇인지 물었다."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여기에 온 일이 있는가?""한 번도 없습니다.""그럼, 차나 한 잔 마시게(喫茶去)"다음 날 다른 수행승이 들러 조주와 문답했다. "조사(祖師)가 서쪽에서 온 뜻은 무엇입니까?""여기에 온 일이 있는가?""예, 한 번 온 적이 있습니다.""그럼, 차나 한 잔 마시게."이를 옆에서 보고 있던 원주(院主: 절 살림을 담당하는 스님)가 물었다."스님, 어찌하여 이곳에 온 일이 없는 사람에게도 차 한 잔 마시라고 하고, 왔던 적이 있는 사람에게도 같은 말을 하십니까?""원주야, 너도 차나 마셔라."'끽다거'라는 화두가 이렇게 탄생했다. 조주는 수행승들에게 왜 '차 한 잔 마시게'라고 했을까. 차 한 잔을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무심하게 마실 수 있으면, 불법의 대의를 깨달은 것이라 할 수 있기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불법은 지식이나 무엇에 대한 논쟁으로 얻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 있는 것이다. '조주세발(趙州洗鉢)'이라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아침, 한 스님이 조주에게 와서 불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조주는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고 이렇게 되물었다."아침은 먹었는가?""예, 죽을 먹었습니다.""그러면 가서 바리때나 씻게(洗鉢盂去)."이 말에 그 스님은 깨달은 바가 있었다.식사를 했으면 밥그릇을 씻으라고 한 것이다. 죽을 먹었으면 항상 하던 일인, 자기 밥그릇 씻는 일을 하는 것이 선이고 도인 것이지, 불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기 때문이다. 끽다거와 같은 가르침이다.◆평소의 마음이 도조주는 '평소의 마음이 바로 도'라는 의미의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화두로도 유명하다. 마조 도일(709~788) 선사가 처음 탄생시킨 화두인데, 조주 시대에 와서 완성된 선 사상이라 할 수 있다.마조 선사가 대중들에게 말했다."여러 도반이여, 도를 닦을 필요가 없다. 오직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면 된다. 더러움에 물든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나고 죽는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별난 짓을 하는 것이 바로 더러움에 물드는 것이다. 그대들은 단번에 도를 이루고 싶은가. 평소의 마음이 바로 도다. 평소의 마음(平常心)은 어떤 마음인가. 그것은 일부러 꾸미지 않고, 단견(斷見)과 상견(常見)을 버리며, 평범하다거나 성스럽다는 생각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음이다."사람들은 도라고 하면 특별하거나 보통 사람이 다다를 수 없는 오묘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도란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는 마음과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마음 씀에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가 없으며, 범성(凡聖)의 구별이 없는 본래 마음이면 된다. 그것이 평상심이고, 곧 도라는 것이다.마조의 제자인 남전 보원도 이 가풍을 이어받았다. 조주가 수행승일 때 스승인 남전에게 물었다."도는 무엇입니까?""평소의 마음 그대로가 도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 평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까?""그것을 얻으려고 하면 곧 도에서 어그러지고 만다.""얻으려고 하지 않으면 어찌 그 도를 알 수 있습니까?""도는 알고 모르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안다는 것은 망각(妄覺)일 뿐이고, 모른다는 것은 무기(無記)일 뿐이다. 만약에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한 도를 진정으로 통달하고 나면, 그것은 허공과 같이 확연하고 걸림이 없다. 그러니 어찌 그 도에 대해 옳다 그르다 할 수 있겠는가?"이 말을 듣고 조주는 '평상심이 도'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조주의 끽다거는 평상심시도를 달리 표현한 것이다. 망상이나 집착, 고정관념 등에서 벗어난 마음이 평상심이고 도이며, 불법이다. 조주가 어떤 중생이 찾아오든 그 중생의 근기에 맞게 가르침을 준다는 의미에서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너는 돌다리'라고 수행승에게 이야기한 석교(石橋)인 '조주교(趙州橋)'도 유명한데, 백림선사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있다. 수나라 때 만들어진 이 석교는 조주가 이곳에 머물면서 유명해진 이후 언젠가부터 '조주교'로 불려 왔다. 글·사진=김봉규 전문기자 bgkim@yeongnam.com중국 허베이성 스좌장에 있는 백림선사 입구. 조주 스님이 80세 때부터 40년 동안 머물렀던 곳이다.'백림선사' 편액. 중국불교협회장을 지낸 조박초(1907~2000) 글씨다.백림선사 근처에 있는 조주교. 조주 스님의 유명세로 붙은 다리 이름이다.백림선사에 있는 조주 사리탑.
누아르 영화속의 재즈 모음집 '재즈 시네마' LP 출시
누아르 영화속의 재즈 모음집 '재즈 시네마(Jazz Cinema)'가 LP<사진>로 출시되었다. 필름 누아르는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지배적인 영화 장르이다. 누아르 황금기는 'Maltese Falcon(말타의 매)'(1941)에서 'Touch of Evil(악의 손길)'(1958)까지 수 많은 흑백영화 걸작이 개봉되었다. 지금은 추억의 배우가 된 장 가방, 리노 벤츄라, 험프리 보가트, 잉글리드 버그만 등 명 배우들이 활약하며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재즈 시네마(Jazz Cinema)' LP는 재즈의 황금기 시절과 맞물리는 누아르 영화 13편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13곡 함께 프랑스 화가 루스탈의 24쪽 삽화 사운드트랙이 담겨있다. 프랑스 영화음악의 거장 미셀 르그랑의 '낭트의 밤'을 비롯해 카사블랑카의 주제가를 둘리 윌슨이 부른 'As time goes by', 추억의 명화 '로라'의 오프닝 태마, 영국 느아르 고전 '제 3의 사나이' 주제가, 프랑스 느아루 걸작 '현금에 손대지 마라' 주제가 등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영화속의 재즈가 수록 되어있다. 1천 장 한정판 양장본.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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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위기경보 '심각' 단계 때 외국 의사 의료행위 허용…대구 의료계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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