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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에서 로봇투자까지…대구 산업성장과 함께한 57개국 804개사
대구에 굵직한 '외국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이 많지 않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경쟁력있는 기업이 곳곳에 숨어 있다. 향후 군위에 신공항시대가 열리고 공항첨단산단이 조성되면 외투기업의 관심은 배가될 것으로 기대된다. 55년간의 대구 외투기업사(史)를 반추해 보면 기술 및 연구개발 역량 강화 , 사내복지 개선, 건전한 노사관계 정립 등의 효과는 보다 선명해진다. ◆각국 투자액 최근 영남일보와 대구시는 외국인 기업이 처음으로 투자를 신고한 1968월 2월부터 올해 4월 말까지 대구지역 외투기업 현황을 파악했다. 그 결과 대구에 투자를 한 외국기업은 57개국 805개사로 나타났다. 투자규모는 1천264건에 미화 33억500만달러(한화 4조3천361억원)였다. 국가별 대구 투자액은 중국이 6억1천900만달러로 가장 많았고, 이어 일본(4억6천700만달러), 미국·네덜란드(각 4억600만달러), 홍콩(3억300만달러), 싱가포르(1억9천200만달러) 등 순이다. 반면 투자 건수에서는 일본(216건)이 중국(170건)보다 많았다. 지난해 7월 민선 8기 출범 후에도 외국기업의 투자는 이어졌고, 제법 굵직한 건도 있었다. 평화발레오·카펙발레오 등 합작투자를 통해 대구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온 글로벌 차부품기업 '발레오'가 눈에띈다. 발레오는 지난해 7월26일 대구시와 '발레오 모빌리티 코리아(프랑스·728억원) 투자유치' 협약을 맺었다. 민선 8기 대구 1호 외투다. 당초 다른 지역에 투자하려 했지만 노사관계가 비교적 안정적인 데다 모터밸리 조성 계획이 추진되는 점을 고려해 대구로 방향을 틀었다. 같은 해 이케아코리아(네덜란드·1천800억원 ), 보그워너DTC(미국·620억원 ) 등도 대구 투자를 결정했다. 올해는 미국 서비스 로봇기업인 베어로보틱스(683억원)와 인연을 맺었다. 대구에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조성사업'이 진행된다는 점에 끌렸다고 한다. 6월 말 현재 대구의 외투기업 수는 폐업 등으로 줄면서 367개 정도로 파악됐다. ◆역사적 투자 대구 외투기업 1호는 농업용 약제 제조사인 한미합자제일화학<주>으로, 경북도 관할 하에 있던 1968년 2월 초 투자액 5만달러를 신고했다. 규모는 작아졌지만 동구 대림동에서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직할시 승격(1981년 7월) 후 첫 외투기업은 대중사우스밴드<주>다. 미국 공작기계업체 '사우스밴드'와 '대구중공업'이 합작했다. 1981년 8월10일 북구 노원동에 뿌리를 내렸고 초기 투자액은 23만3천달러다. 하지만 설립 10년만인 1991년 폐업했다. 1995년 1월 '광역시'로 개칭된 뒤엔 니카코리아(일본·화학제품)가 첫 외투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1995년 4월 306만3천달러 투자를 신고했으며, 달서구 대천동에 주력 사업장이 있다. 외투 규모가 가장 큰 곳은 '대구텍(달성 가창면)'으로 이스라엘계 글로벌 절삭공구 기업인 IMC그룹(본사 소재지 네덜란드)의 자회사다. 지금까지 3억1천40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연매출액은 8천억원 이상이다. IMC그룹은 대한중석 인수 후 1998년 대구텍으로 명칭을 바꾸고 첫 투자금으로 7천170만달러를 내놨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93·버크셔 해서웨이 CEO)이 IMC그룹의 지분 전량을 갖고 있다. 워런 버핏은 현재 대구텍 옆 부지(5만8천여㎡)에 7천만달러를 투입해 항공기부품 제조용 공구생산기업인 'IMC엔드밀'을 건립 중이다. ◆업종 다양화 대구 투자를 결정한 외국계 기업의 업종과 기술력은 계속 다양화 ·고도화하고 있다. 대구상공회의소에 확인한 결과, 최근 대구의 '매출천억클럽'에도 외투기업이 적잖다.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뿌리를 확실히 내린 해외기업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에스트라오토모티브시스템(달성1차산단)은 국내 기업에서 외투기업으로 분류된 케이스다. 한국델파이가 2015년 이래CS그룹에 인수된 뒤 이래오토모티브(공조장치)와 이래AMS(전장부품)로 분리되고, 이후 2018년 '중국상하이항천자동차기전' 자금이 유입되면서 이래오토모티브도 외투기업 목록에 올랐다. 대구국가산단 한국알스트롬(핀란드)은 생산품목(자동차용 여과지)이 특화돼 있다. 2차전지 핵심소재인 분리막 제조사인 SSLM(다사읍 세천리)은 삼성LED와 일본 스미토모화학의 합작사로 지금까지 3천600억원을 투자했고, 직원은 355명이다. 지금은 스미토모화학이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케이비와이퍼시스템(대구국가산단)은 경창산업과 보쉬(독일)가 합작했지만 지금은 보쉬가 지분을 모두 갖고 있다. 의약품 유통기업인 '경동사'도 스위스의 의약품유통 글로벌 기업인 '쥴릭파마 홀딩스'의 자본이 들어가 있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대구의 대표 외투기업인 대구텍 본사 전경.
2023.07.10
[외투史 아픈 손가락 '한국게이츠'] 현대자동차도 쩔쩔 맨 기술력…'흑자 폐업' 논란
대구 외투기업사를 보면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큰 기대를 가졌지만 사업을 철수한 기업도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대구 달성1차산업단지(논공읍)에 소재했던 한국게이츠<주>다. 미·일 자본이 투입된 이 기업은 자동차 구동에 필요한 타이밍 벨트와 팬 벨트, 연료호스 등을 생산해 국내 완성차 업체에 공급했다. 1995년 1월 대구에서 공장등록 신고를 한 뒤 한동안 승승장구했다. 지역 차부품업계에 따르면 한국게이츠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납품단가를 함부로 못 깍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6월26일 가동을 중단하고 그해 8월 초 공장을 폐쇄했다. 직원 150명은 뿔뿔히 흩어졌다. 폐쇄 전인 2019년 한국게이츠의 연 매출액은 1천100억원, 연 수출액은 240만달러였다. 당시 공장폐쇄와 관련해 한국게이츠 측은 "2019년부터 본사가 추진하는 사업 구조조정 일환으로 대구공장 폐쇄를 추진해 왔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하고, 코로나19 확산으로 그 시기를 앞당기게 됐다"고 말했다. 매년 흑자를 내면서도 공장을 폐쇄하자 한동안 대구에선 '먹튀' 논란이 일었다. 차부품업계에선 잦은 파업과 불안전한 노사관계가 공장폐쇄의 결정적 요인으로 본다. 한국게이츠의 공식 폐쇄 신고일은 2021년 12월1일이다. 대성산업<주>이 게이츠 공장부지(1만3천200여㎡)와 건물(1만800여㎡)을 37억원에 인수했다. 입주계약은 완료한 상태이고 조만간 가동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불안전한 노사관계로 대구사업장을 철수한 옛 한국게이츠 건물 전경.
[지역 대표 외투기업 도약 '대구텍'] 탄탄한 직원복지…지역대생 입사 선호 1위
대구를 대표하는 외투기업으로 누구나 첫 손가락에 꼽는 곳이 바로 대구텍(달성 가창면)이다. 지역 대학생이 가장 입사를 선호하는 기업으로, '워런 버핏이 투자한 기업'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매력적 요소가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직원복지를 최우선시한다는 점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근무시간은 안정적으로 고정돼 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다. 외국계 기업이다 보니 업무상 외국인을 만날 기회가 많다. 자연스레 이 회사에 근무하면 영어실력도 향상된다. 이채로운 점은 전 직원이 사내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는 것이다. 점심도 마찬가지다. 셔틀버스 등 출퇴근 교통편의도 제공한다. 자가용 출근족을 배려해 600면의 주차공간도 확보해 두고 있다. 전체 직원 1천300명이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근무 여건이 조성된 셈이다. 사회공헌활동도 눈에 띈다. 2006년부터 매년 취약계층(200가구)의 건강보험료를 지원한다. 한현준 대구텍 대표는 올 초에도 보험료 지원을 위해 1천200만원을 내놨다. 대구텍의 모기업은 이스라엘 테펜에 있는 IMC그룹으로 1952년 설립된 세계 2위 절삭공구 생산기업이다. 이스카(이스라엘)·대구텍(한국)·탕갈로이(일본)·잉가솔(미국) 등 전 세계에 13개 대표 계열사와 130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IMC그룹은 1998년 대한중석을 인수해 대구텍을 설립했다. IMC그룹은 대구텍 바로 옆 부지에 7천만달러를 투자해 항공기부품제조용 절삭공구를 생산하는 'IMC엔드밀' 공장을 짓고 있다. 내년 완공되면 '형제기업'이 탄생하게 되는 셈이다. 최수경기자 justone@yeongnam.com대구의 대표 외투기업인 대구텍 본사 전경.
[상권 다변화시대 북성로] 근대건축물 허물고 아파트…살아나던 상권의 맥이 끊겼다
대구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북성로'는 근대와 현대의 시간이 공존하는 곳이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과 현대적 감각을 입힌 건물이 뒤섞여 있어서다. 표현상으론 그럴 듯하지만 근대건축물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탓에 이도 몇 년 뒤에는 옛말이 될지 모른다. 2019년 시작된 일부지역 재건축 여파다. 일제강점기 근대 목조 건축물의 원형을 살린 카페나 식당 등이 대거 철거되고 있는 것. 버려진 공장이나 창고를 개조한 상인들은 터전의 변화를 실감한 지 이미 오래다. ◆재개발, 과거·현재 공존을 허물다 북성로 시작점은 대구읍성이다. 대구읍성은 조선시대 경상감영을 둘러싸고 있던 성곽이었지만 1906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2012년부터 중구청에서 옛 대구읍성의 일부를 관광자원으로 복원하면서 2017년엔 중구 북성로1가 대우빌딩 인근에 옛 대구읍성 성벽 형태의 미디어 조형물이 세워졌다. 이 조형물을 따라가면 공구골목이 나온다. 1.5㎞ 남짓한 도로에 북성로 공구골목이 형성돼 있다. 이 골목은 일제강점기 대구읍성 북쪽 성곽을 허물고 길을 내면서 생겼다. 아이러니하게 대구 첫 근대상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는 구상·이중섭 등 문인과 예술가들의 주 활동무대가 됐다. 이후 공구와 군수물자 등이 몰리면서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든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로 '산업용 기계거리'로 명성을 쌓았다. 통상 북성로는 이 도로를 중심으로 밀집한 상업지역을 의미한다. 1990년대 들어 점포가 외곽으로 속속 빠져나가면서 상권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중구청이 근대건축물 보호를 위해 2014년부터 총 14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보존 가치가 높은 1960년대 이전 건축물의 외부 경관 개·보수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자 청년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을 거쳐 산업화시기를 버텨낸 오랜 건물이 특색 있는 상점으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위기는 또다시 찾아왔다. 2019년부터 800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 공사가 시작되면서 재정비를 거친 근대건축물 4채가 자취를 감췄다. 이 중 '백조다방'은 시인 구상이 글을 쓰고 화가 이중섭이 그림을 그렸다고 알려진 곳이다. 한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건축물로 꼽혔지만 재개발에 사라졌다. ◆재개발, 상권 형성도 망가뜨리다 재개발 열풍은 북성로를 비롯한 주변 상권을 기형적 형태로 만들었다. 지속적 소비와 수요를 이끌어낼 상권 형성이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이름만 유명해져 땅값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3일 북성로 일대 건물 10곳의 공시지가(한국부동산원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를 살펴본 결과, 10곳 모두 2019~2023년 공시지가가 재건축 전인 2014~2018년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또 재건축 공사 부지에서 멀수록 증가율이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북성로에 젊은 관광객들이 카메라를 들고 몰려들어 줄을 서거나 불야성(不夜城)을 이룰 정도로 밤늦게까지 손님들이 찾는 상가는 거의 없다. 땅거미가 지면 거리를 채우던 공구상마저 사라졌다.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지면서 골목은 한산해진다. 대구읍성의 북쪽 성을 허물고 낸 북성로와 이어진 수제화골목에서 6년간 식당을 운영해 온 김모(41)씨는 "상권이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부동산 가격이 치솟았다. 여기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크게 위축된 경향이 크다"면서 "2년 전에 새로운 상점이 생긴 뒤로는 조용하다. 상권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곳에 누가 큰돈을 들여 사업을 하겠느냐"고 했다. 김씨와 마찬가지로 6년 전 디저트 가게를 연 최모(38)씨는 "지자체에서 적산가옥 정비사업을 한 뒤로 북성로라는 공간에 매력을 느낀 젊은 고객, 상인, 예술가가 많이 들어오는 추세였다. 하지만 재개발이 일어나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며 "근대와 현대가 뒤섞인 풍경이 북성로의 매력 포인트인데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소비자의 n차 방문을 이끌 '콘텐츠'가 사라져 버렸다. 토지 거래만 활발하고, 임대료만 높아졌다"고 쓴소리를 했다. 최시웅기자 jet123@yeongnam.com 이남영기자 Iny0104@yeongnam.com◆북성로 일대 ㎡(평)당 공시지가 현황 <한국부동산원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 제공>주소/2014년/2018년(2014년 대비 증감율)/2023년(2018년 대비 증감율)/2014~2023년 증감율북성로1가 76-1/179만6천원/203만2천원(13.1%)/256만7천원(26.3%)/43%↑북성로1가 75-3/166만4천원/188만2천원(13.1%)/237만7천원(26.3%)/42.8%↑북성로1가 63/174만6천원/180만4천원(3.3%)/222만원(23%)/27.1%↑북성로1가 40-6/158만4천원/164만1천원(3.6%)/207만1천원(26.2%)/30.7%↑대안동 1-1/110만1천원/129만6천원(17.7%)/214만5천원(65.5%)/94.8%↑대안동 1-2/106만7천원/125만6천원(17.7%)/208만원(65.6%)/94.9%↑대안동 10-5/146만원/175만원(19.8%)/229만2천원(30.9%)/56.9%↑대안동 14-3/101만원/122만원(20.7%)/196만원(60.6%)/94%↑대안동 65-7/84만원/101만8천원(21.1%)/153만3천원(50.5%)/82.5%↑대안동 21-1/69만6천200원/99만5천300원(42.9%)/179만1천원(79.9%)/157.2%↑지난 8일 옛 정취가 살아 있는 대구 중구 향촌동 수제화 골목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북성로 상권의 위축은 인근의 수제화 골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현덕기자 / 그래픽=장수현기자
2023.07.09
[상권 다변화시대 북성로] 최신유행에 살짝 비껴나간 근대식 레트로
지난 3일 대구 중구 서문로1가 '넌테이블'. 평일 낮이지만 이 곳은 젊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카페 내부에는 빈 자리가 없었고 앞 도로에선 인증사진을 남기는 이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가게에서 대각선 방향에 있는 '대구근대역사관(일제강점기 조선식산은행 대구지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요즘 대구근대역사관은 MZ세대에게 '사진맛집'으로 통한다. 실제 사진 공유 SNS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면 '넌테이블'이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게시물 1만1천개 중 대부분은 대구근대역사관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힙(hip)'한 건물들 사이에 근대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 '레트로(복고풍)' 감성과 연계된 덕분이다. 넌테이블 사장 유경호(36)씨는 "대구근대역사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길 바란 의도가 잘 먹혔다. 처음 가게를 열 때는 MZ세대가 올 만한 가게가 없었는데, 지금은 근대건축물 주변에 식당과 카페가 많이 생겼다. '근대화'가 문화 콘텐츠로 되면서 관광요소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성로 상권을 이해하기 위해선 향촌동·대안동·수창동 등 이 일대 상가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넌테이블에서 북성로 공구골목까지 새롭게 생겨난 카페들은 최근 상업공간을 압도하는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흐름이나 레트로 열풍과 맞닿아 있다. 알루미늄과 철 등 금속재료를 사용한 깔끔한 디자인, 공연 무대처럼 연출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디자인들이 대거 가미된 흔적이 엿보인다. 반면 수제화골목과 북성로 공구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매끈한 레트로 디자인과는 동떨어진 상가가 즐비하다. 적산가옥 특징을 그대로 담아 공간을 설계한 탓이다. 의자와 테이블을 비롯해 벽면도 가구처럼 근대건축물과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인테리어 소품은 과거의 틀을 하나씩 짜맞췄다. 일제강점기 도시 풍경을 떠오르게 하는 고전적인 디자인을 연상케한다. 그러나 근대와 현재의 유행은 동거하지 못한다. 넌테이블을 비롯한 레트로 디자인으로 무장한 상가는 '소비 콘텐츠'로서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수제화골목과 북성공구골목의 상가는 MZ세대들이 눈도장을 찍고 가는 수준에 그친다. 최신 유행에서 살짝 비껴 선 탓에 소비자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받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최시웅기자 jet123@yeongnam.com 이남영기자 Iny0104@yeongnam.com
[상권 다변화시대] 재개발에 밀려 독특한 정취 사라지는 북성로
대구 중구 북성로일대는 한때 국내 도시재생의 모범 선례로 주목받았다. 퇴락한 근대건축물 외관을 원형에 가깝게 개·보수하는 사업이 펼쳐지면서다. 도시재생은 낡은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재개발·재건축과는 달리 역사성에다 미래 가치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쉽지 않은 사업이다. 역사적 가치를 띠지만 금전적 가치가 낮은 건물을 신축 비용보다 웃돈을 주고 리노베이션(Renovation)해야 해서다. 근대골목을 둘러보는 여행가들이 알음알음 들르던 북성로 일대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2014년쯤이다. 당시 대구 중구청은 근대건축물 보호를 위해 보존 가치가 높은 1960년대 이전 건축물의 외부경관 개·보수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공사비용 범위 80%에서 4천만원까지 지원해 북성로 일대의 근대건축물 35채를 재정비했다. 현재 건축에선 적용하지 않는 아치형 창문, 1930년대 아르데코 양식 외관, 1920~1960년대 주거구조 변천사를 한눈에 엿볼 수 있는 개량형 한옥이 현대적 감성으로 새롭게 단장됐다. 근대와 현대의 풍경이 어우려져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 덕분에 '전국구 관광지'로 유명세를 치렀다. 이같은 변화는 청년 상인을 하나 둘씩 북성로 일대로 끌어들였다. 이들은 옛 정취를 남긴 건물을 그대로 살려, 카페와 식당 등을 운영했다. 북성로는 좁은 대지 면적과 적산가옥 등으로 신축 대형 매장이 아닌 소규모 매장에 적합했다. 기존 건물을 살린 인테리어는 '빈티지 감성'과 맞아떨어졌다. 당시 국내 가입자 수를 늘려가던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 감성과도 부합했다. 북성로의 인기몰이도 오래가지 못했다. 근대 건축물 4채의 부지에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던 골목 분위기도 시나브로 없어지게 됐다. 뒤늦게 밀어닥친 '도심 재개발 광풍'에 북성로 일대의 땅값만 치솟았다. 덩달아 임대료도 들썩이자 젊고 창의적인 상인들은 하나 둘씩 다른 곳으로 떠났다. 소비자들의 n차 방문을 이끌 콘텐츠 역시 사라졌다. 결국, 북성로는 주상복합견물 개발에 밀려 기형적 형태의 상권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주변 상인들의 견해다. 대신 교동·대봉1동·삼덕동이 새로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북성로에서 만난 한 상인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소비 지향적인 마케팅으론 소비자의 n차 방문을 이끌어낼 수 없다"면서 "문화, 감성적으로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될 때 소비자는 다시 그 골목을 찾게 된다"고 했다. 손선우·최시웅·이남영기자 Iny0104@yeongnam.com8일 대구 중구 북성로의 곳곳에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근대와 현대가 어우러져 독특한 정취를 자아내던 골목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노벨문학상 산책] 가와바타 야스나리의'설국'…허무주의가 그려낸 선명한 아름다움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일본의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에서는 선정이유로 "일본인의 마음 정수를 뛰어난 감수성으로 표현하는 그 서술의 능숙함"을 꼽았다. 이러한 선정이유는 당시 69세였던 가와바타 문학 전체를 통괄하는 평가였기에 상당히 의미 있다고 하겠다. 이 평가에 부합하는 작품은 여럿 있을 터인데, '설국'은 첫 번째로 꼽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가와바타 자신도 '설국'에 대해 "해외에서 읽으면 회향의 마음을 가지게 한다"('독영자명')고 평하고 있어 일본적 분위기, 전통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와바타의 모든 작품이 '일본적'으로 평가해도 좋은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초기에 가와바타는 신감각파 작가로 활동했다. 신감각파의 목표는 표현의 혁신이었는데, 그 방법으로 서구문예에 의지하는 바가 컸다. 또한 당시 유행하고 있었던 영화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시각이미지의 활자표현에도 다양한 관심이 많았고, 영화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1921년에 문단에 등단한 가와바타는 1926년에는 '이즈의 무희'로 대중적인 인기도 얻었다. 1931년에는 신심리주의 작가로도 활동했다. 이러한 다양한 시도와 모색을 거친 후 1935년부터 발표하게 된 것이 '설국'이고, 완성은 1947년에 가서야 이루어진다. '설국'은 그때까지의 가와바타의 문학적 경험의 축적을 자양분으로 삼아 독자적 세계를 구축하게 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마무라의 허무, 비현실적인 미 '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가자 설국이었다'라는 일본 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설국'의 서두 문구로, 현재에도 끊임없이 패러디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여기에서 터널은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인 설국의 경계를 가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경계는 시마무라(島村)의 생활의 공간 도쿄와 설국을 나누는 것이며 일상과 비현실의 세계, 도시화와 전통의 세계를 구분한다. '설국'은 시마무라가 '설국'을 세 번 방문하며, 게이샤 고마코(駒子)와의 사랑, 신비로운 소녀 요코(葉子) 등과의 관계가 그려진 소설이다. 설국을 들어서며 묘사되는 차창에 그려지는 신비로운 소녀의 모습은 이 소설이 그려낼 미적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두운 차창에 비치는 환영 같은 비현실적 상징 미를 찾아 떠나는 것이 설국으로의 여행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시마무라는 부모의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의 일은 서양무용에 대한 평론을 쓰는 것이었는데, 직접 무용을 보는 것이 아닌 사진, 그림을 보며 글을 썼다. 그는 원래는 일본무용계에서 활동하였는데, 무용계의 혁신을 위해 행동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서양 무용계로 터를 옮겼다. 즉, 시마무라는 현실적인 움직임, 타인에 영향을 끼쳐야 하는 무게를 거부하며 생활하는 환영을 좇는 허무주의자인 것이다. 그의 생에 대한 그러한 태도는 '설국'에서 고마코를 대한 자세에도 드러난다. 고마코를 만나러 설국을 방문하였음에도 정작 그녀의 열정이 그를 향해 달려옴을 느끼면 설국을 떠나고 만다. 현실의 일상을 떠나 비현실의 세계를 찾아온 시마무라였지만, 설국에서의 관계에 충족하고 그것이 넘쳐 또 하나의 자신을 얽어맬 일상이 될 여지가 있으면 떠나버리는 것이다. ◆'헛수고'이기에 아름답다작품 첫 부분에서 시마무라가 '설국'을 향하는 목적은 '손가락이 기억하는 여자'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그 여인은 고마코였다. 고마코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게이샤가 아니었다. 두 번째 방문하니 그녀는 게이샤가 되어 있었다. 시마무라와의 관계는 첫 번째 방문부터였는데, 방문횟수를 거듭할수록 그녀는 시마무라에게 열정적으로 다가온다. 고마코는 정혼자인 유키오(行男)를 위해 게이샤로 나섰다고 한다. 우연히 들른 그녀의 집에서 고마코의 담담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일기장을 본다. 관심 있는 공연, 하루하루의 일상들을 꼼꼼히 적어 내려 간 것인데 그것을 보며 시마무라는 '헛수고'임을 느낀다. 자신의 헌신적인 행위, 삶과 사랑에 열정적인 모든 것이 헛수고임을 알았을 터인 고마코를 보며 그녀의 삶이 헛수고이기에 아름답다고 감동하고 만다. 그녀의 시마무라에 대한 사랑 또한 '헛수고'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자신을 향해 뜨겁게 달려오는 그녀의 마음을 느낄 때 시마무라는 설국을 떠나버린다.◆'은폐'의 세상 '설국''설국'은 철저하게 시마무라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시마무라가 보고, 듣고, 느낀 것, 그가 알고 있는 것만이 그려진다. 예를 들어 시마무라가 설국을 떠나있을 때 설국의 상황은 독자들에게는 전혀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전지적 입장을 거부당하며, 독자들은 시마무라의 눈과 심리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고마코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고마코와 요코, 유키오의 관계는 사실은 어떠한지 알 수가 없고 추측에 의존하게 만든다. 작품 속에 그려지는 것은 시마무라가 설국에 와서 본 고마코, 요코 그리고 설국의 자연과 풍속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설국'이라는 이야기는 반쪽이 숨겨진 모습으로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 '숨김'의 방법은 서술 시점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의 창작 시기는 1935년부터 1947년에 걸쳐져 있는데, 그 시기는 일본의 전쟁 확장기 그리고 패전의 시기를 거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시대상이라는 일상이 제거되어 있고, 지명조차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 소설 창작에 관해 가와바타는 소설의 창작지와 배경이 니가타현의 '에치고 유자와(越後湯澤 )'임을 밝히고 있고, 작품에 그 지역의 자연과 풍속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그러면서도 지명이 아닌 '설국'이라는 일반명사로 일관하고 있다. 이것은 시마무라의 일상제거와 같은 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서, 당시 질곡의 시간을 거쳤던 사회상을 '은폐'하는 것에도 유효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설국'은 현실 세계의 에치고유자와 온천이면 안 되는 것이었다. 눈이 많이 쌓인 '설국'이라면 어디나 괜찮은 것이었고,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그 눈 속에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삶도 사랑도 시대도 모든 것이 뒤덮여 흰 눈의 세계로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뒤덮인 눈 속에서 시마무라의 눈과 심리를 통해 고마코의 사랑도, 요코의 신비스러움도 그리고 설국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속도 선명하게 그려낸 것이 '설국'인 것이다. 정향재 교수 (한남대) 공동기획: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 HK+사업단현재 한남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일본 근현대문학을 전공했다. 세부전공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이다. 가와바타를 전공으로 삼은 것은 가와바타의 서정적이면서도 처연한 슬픔이 느껴지는 문장, 죽음을 다루는 독특한 시선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연구분야는 가와바타 문학과 주변예술, 특히 영화와 무용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그 외 일본 패전기의 문학자들의 인식, 원폭문학에 대해 힘을 기울이고 있다. 문학연구, 교육 이외에 좋은 일본문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번역자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할 희망을 가지고 있다.대표논문으로 '1930년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단상-영화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설국과 그 시대 -은폐된 배경으로서의 공간과 시대성' '일본 현대문학에 있어서의 패전' 등이 있다. 번역으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 원작 '잠자는 미녀'(현대문학), 하라 다미키의 '하라 다미키 단편집' 외 다수가 있다.
2023.07.07
[경북,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열다 .8]지속 가능한 원자력을 위한 노력
원자력 발전 산업은 단순히 원자력발전소(원전) 건설과 운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넓게 보면 방사성폐기물(방폐물)의 안전한 처리, 수명이 다한 노후 원전의 해체 등도 원전 산업의 한 분야로 볼 수 있다. 원전을 만들어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고, 발생한 폐기물은 물론 운전 수명이 종료된 원전까지 안전하게 처리·처분하는 모든 과정이 산업에 포함되는 셈이다. 특히 원전의 경우 사고 발생 시 다른 발전에 비해 피해가 클 가능성이 높은 만큼 안전 관리는 더욱 중요하다. 결국 원자력 발전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기 위해선 관리의 안정성 확보는 물론 사용후 안전한 처리가 동반돼야 한다. 이를 위해 경북도는 원자력 안전 관리시설과 시스템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경북, 원자력 르네상스 시대를 열다' 8편에서는 지속 가능한 원자력을 위한 노력에 대해 다룬다.방사성폐기물분석센터 2025년 준공2단계 표층처분시설 내년 12월 완공전세계 해체시장 규모 2050년 500조경주 양남면에 원전해체기술원 설립원전 全주기 기술력 구축 토대 마련한울권 방사능방재지휘센터도 추진원전사고 등 비상사태시 총괄 역할◆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 시스템 강화2019년 6월, 경주시 문무대왕면에 위치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경주 방폐장)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동안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경주 방폐장에 보낸 방폐물 드럼 중 일부에서 핵종(Nuclide) 농도가 잘못 표기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행히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오류 값을 정정한 결과 방폐물의 핵종 농도는 경주 방폐장의 처분 농도 제한치 이내로 나타났다. 하지만 경주 시민과 국민들의 불안감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방사성폐기물 반입이 중단됐고, 민·관 합동조사단이 수차례 현장 조사를 벌였다. 이후 경주 방폐장은 1년여 만에 재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경북도는 이를 계기로 '방사성폐기물 분석센터' 설립을 추진했다. 경주 방폐장에 반입되는 방폐물을 체계적으로 교차 분석할 전문기관을 만들고, 이를 통해 방폐물 안전관리 시스템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회와 산업통상자원부도 경북도의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면서 사업 추진에 가속도가 붙었다.2021년 6~12월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을 마치고, 올해부터는 127억원을 들여 분석센터 연구시험 및 분석장비를 구축하고 있다. 방사성폐기물 분석센터는 대지면적 4천㎡에 지상 4층 규모로 지어진다. 준공은 2025년 예정이다.특히 경주 방폐장이 확장을 앞두고 있어 방사성폐기물 분석센터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경주 방폐장은 2단계 표층처분시설(6만7천490㎡)을 추가로 만들고 있다. 2021년 1월부터 올해 12월까지 2천600억원을 들여 공사가 진행 중이다. 2단계 표층처분시설은 내년 12월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시설이 완공되면 한국은 동굴처분 기술과 표층처분 기술을 모두 확보한 세계 여섯 번째 국가가 된다. 앞서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동굴처분시설(206만㎡)을 갖춘 경주 방폐장을 건설해 2015년부터 운영 중에 있다.◆원전 해체 산업 육성에도 팔 걷어원자력 발전 산업에서 해체 분야도 하나의 큰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전 세계 600여 기의 원전 가운데 영구정지 원전만 200여 기에 달하지만 현재까지 해체된 원전은 단 21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 컨설팅 업체 베이츠화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원전 해체시장 규모는 2050년을 전후로 500조원대로 커질 전망이다.국내에서도 2017년 6월 부산 기장 고리 1호기, 2019년 12월 경주 월성 1호기가 원전 노후화로 잇따라 영구정지되며 원전 해체 산업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정부는 고리 1호기 해체를 계기로 원전해체 기술 고도화를 통해 원전 전(全) 주기 기술력을 구축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부산과 울산의 경계지점과 경주 양남면 등 두 곳에 원전 해체 전문기관이 들어선다. 부산과 울산 경계에 들어서는 '원전해체연구소'(2022년 10월 착공·2026년 준공 예정)는 주로 경수로 노형 해체를 위한 전문기관이다. 반면 경주에 들어서는 '중수로 해체기술원'은 중수로 노형 해체를 맡는다. 산업통상자원부, 경북도, 경주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한전 KPS 등이 재단법인 '원전해체연구소'를 설립해 '해체기술원' 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 해체기술원 위치는 경주 양남면 일대다. 경북도는 해체기술원 설립을 계기로 경주에 원전 해체 산업생태계 기반이 구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북도와 경주시, 한수원은 2019년 4월 해체기술원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한 데 이어 2021년 5월 설계를 마쳤다. 지난해 6월에는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에 선정되며 국비도 확보됐다. 현재는 양남면 나산리를 사업부지로 확정하고, 부지 매입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착공은 올해 12월, 준공은 2026년 12월이 목표다. 기후위기와 원자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국립 탄소중립 에너지 미래관' 설립도 추진되고 있다. 경북도는 2020년 9월, 대구경북연구원에 의뢰해 미래관 설립 기본구상 정책연구과제를 발표했다. 이미 미래관 설립 타당성 용역을 마쳤고, 설립에 필요한 국비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전시, 체험, 교육, 연수 등의 시설을 갖춘 미래관은 탄소중립 시대 원자력이 왜 꼭 필요한 에너지원인지에 대한 교육과 홍보 등 소통을 전담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방재 지휘센터부터 실시간 방사선 감시망까지1979년 3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스리마일섬, 1986년 4월 소련 체르노빌,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등 그동안 세계 각국에서 수차례 끔찍한 원전 사고가 있었다. 원전 사고는 한 번 발생하면 인적, 물적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사고 가능성이 아무리 낮더라도 평상시 각종 원전 사고에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은 부산 기장군의 고리 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한 1978년 4월 이래 45년 동안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었다.경북도는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정부와 각종 원자력 안전관리시스템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울진군 평해읍 일원에 들어서는 '한울권 현장방사능방재지휘센터'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130억원을 들여 지하 1층~지상 3층 규모로 건립 중이다. 현장방사능방재지휘센터는 앞으로 원전 사고 등 비상사태 발생 시 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원안위는 올해 안에 착공에 들어가 2025년 1월쯤에는 완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북도는 2021년부터 원안위와 함께 '경북 원자력안전 감시시스템'도 확충하고 있다. 이는 원전 주변 지역의 환경방사선 감시망을 경북 전역으로 확대하는 사업이다. 경북도는 2026년까지 경북 23개 시·군 전역에 방사선 감시시스템 53곳을 구축할 계획이다. 사업이 마무리되면 경북 전역에는 실시간 방사선량 모티터링이 가능한 환경방사선 감시망이 구축된다. 이와 더불어 경북도는 방사능방재훈련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경북도 주관으로 2년에 한 번 합동훈련이, 각 시·군 주관으로 매년 한 차례씩 주민보호훈련이 진행된다. 지난달 29일에도 경북 울진에서 방사능방재 합동훈련과 주민보호훈련이 동시에 열렸다. 당시 주민 대피와 사고 수습, 관계기관 대응 등 체계적인 훈련이 이뤄졌다. 장상길 경북도 환동해지역본부 동해안전략산업국장은 "원자력이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위한 꼭 필요한 에너지원이지만 안전에 대한 주민공감대가 먼저 형성돼야 한다"며 "원자력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주민 홍보, 비상시를 대비한 다양한 훈련, 관련 안전 장비의 확충 등 촘촘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일우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운영 중인 경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시설 전경. 206만㎡ 규모의 동굴처분시설을 갖추고 있다. 경주 방폐장 내 하역동굴 내부 모습. 국립 탄소중립 에너지 미래관 조감도. 〈경북도 제공〉경주 방폐장과 2단계 표층처분시설(오른쪽) 조감도. 표층처분은 지표면 가까이에 인공 구조물을 설치해 방폐물을 처분하는 방식이다.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경주 양남면 일대에 들어서는 해체기술원 조감도. 〈경북도 제공〉
2023.07.06
[논설위원의 직터뷰] 김기호 W아너소사이어티 대구 대표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세상에 꼭 필요한 일에 쓰이길 바라"
세계 최고 '기부왕'은 투자 귀재인 워런 버핏(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다. 미국 경영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버핏이 지난해까지 의료·빈곤 퇴치 등 기금으로 쾌척한 돈은 무려 63조6천억원이다. 소규모 국가의 한 해 예산보다 많다. 쉽게 상상이 안 되는 금액이다. 버핏의 순자산이 131조원쯤 되니 단순히 계산하면 지금까지 전 재산의 절반가량을 기부한 것이다. 버핏의 뒤를 이어 2위(47조원4천억원)에 랭크된 빌 게이츠를 비롯해 세계적인 부호들의 재산 대비 기부 수준도 엇비슷하다. 우리나라 역시 고액 기부자들이 많지만, 대부분 기업인이나 자산가들이다. 그렇다고 기부가 부자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평범한 우리 이웃 중에서도 베풂을 운명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은 진정한 '기부 천사'도 있다. 그들이 우리 사회에 감동과 울림을 주는 건 선행의 크기가 아니라 그 마음이리라.헬렌 켈러는 "가장 큰 부자는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나누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대구에서 손꼽히는 부자는 단연 김기호 W(여성)아너소사이어티 대구 대표다. 김 대표는 2013년 10월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다. 그 전 해 작고한 남편 박찬수(예비역 육군 준장)씨도 나중에 가입시켰다. 대구에서 처음으로 고인(故人) 및 가족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된 것. 부부의 가입비 2억원은 김 대표가 평생을 모은 노후자금이었다. 김 대표는 "우리가 떠날 때 작은 돈이라도 남으면 베풀고 떠나자고 했던 남편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했다. 부창부수의 나눔정신이다.김 대표의 기부 목록에는 지금 살고 있는 집도 포함돼 있다. 이른바 유산기부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영남대병원에 시신 기증 서약까지 했다. 정말 남기는 것 하나 없이 남에게 다 내어주는 것. "왜 그렇게까지 하시느냐"는 우문에 돌아온 대답은 단순명료했다. "즐겁고 행복하니까요!" 김 대표에게 행복한 일은 기부만이 아니다. 새마을단체 등을 통한 봉사활동에도 바쁘다. 누가 황혼을 쓸쓸하다고 했나. 편견일 뿐이다. 김 대표의 노년은 나눔과 비움으로 더 충만해지는 듯하다. 지난달 26일 김 대표를 만나 그의 나눔인생 스토리를 들어봤다.기부는 먼저 간 남편과의 약속 대구 첫 고인·가족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생전에 '떠날 때 남김없이 베풀자' 다짐 끝내 못 간 크루즈여행비는 장학금 기탁 아껴 쓰며 모아둔 노후자금 2억도 기부"'나눔의 빛'으로 더 충만한 황혼 '유산 기부' 이어 최근 시신 기증 서약 다양한 단체 직책 맡아 봉사도 이어가 "나눔은 실천할수록 즐겁고 행복해져 더 많은 사람이 그 기쁨을 알게 되길"▶나눔DNA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일까요."그런 듯합니다. 저는 서울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나 부모님의 큰 사랑을 받고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아버지가 제 이름을 남자처럼 지은 건 귀한 딸이 행여나 일찍 죽을까 봐 그랬다네요. 그 시절에는 라디오가 무척 귀했어요. 동네에서 유일하게 라디오가 있던 우리 집은 신기한 방송을 들으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였습니다. 그리고 걸인들도 참 많이 찾아왔는데, 어머니는 그들을 그냥 보내는 법이 없었어요. 먹을 것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을 매일 보면서 나눔은 특별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이죠."▶대구에 정착하신 계기와 생활은 어떠셨는지."제가 중학교 3학년 때 6·25 전쟁이 터졌어요. 그때는 서울을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1·4후퇴 때 피란을 왔던 게 대구와의 첫 인연이었죠. 전쟁이 끝난 후 서울로 돌아가 살다가 다시 대구에 내려오게 된 건 군인 남편 때문이었어요. 제가 23세에 결혼하고 보니 남편의 근무지 이동이 무척 잦았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지치기도 하고 아이들(1남 1녀) 교육 문제도 있어서 남편 근무지와 상관없이 저는 대구에 정착했습니다. 그 이후로 못다 한 공부도 조금씩 하면서 사회활동에도 차츰 발을 들였어요. 1980년대 초에는 국공립어린이집인 새마을협동유아원 원장을 맡았습니다. 처음엔 무보수 봉사였습니다. 당시 그 어린이집은 남구 대명동에 있었는데, 한 마디로 텅 빈 시설이었어요. 피아노를 비롯한 필요한 물품을 자비로 구입했습니다. 20년 동안 운영했네요. 그 외에 다른 봉사단체들과도 인연이 닿아 활동한 덕분에 새마을훈장(근면장), 대구시민상, 남구 구민상 등 과분한 상도 받았어요."▶생각나는 기부활동과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계기는."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때 성금 500만원을 냈던 게 기억나네요. 그 외에도 여유가 되는 대로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어요. 그러다 2012년 남편이 갑자기 급성 폐렴으로 생을 마감하자 너무 고통스러워 인생이 허망했습니다. 돈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남편과 함께 크루즈 여행을 하려고 모았던 돈 2천만원을 남구청에 장학금으로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가 떠날 때 남김없이 베풀자"던 남편과의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남편 모르게 생활비를 아껴 저축한 노후자금 2억원을 기부하려 했는데, 구청에선 받을 수 없다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에 기부를 주선해 줬어요. 우리 부부가 아너소사이어티에 동시에 가입하지 않은 덴 이유가 있어요. 저는 대구에서 여성 1호, 전체 13호로 먼저 가입했지만, 1929년생인 남편은 대구 29호로 가입시키려고 미뤘던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괜한 짓 같은데, 남편과의 추억을 하나라도 잊어버리기 싫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대구의 '나눔 전도사'로 알려져 있습니다."제 주변 사람들에게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권유를 많이 했습니다. 우리 동네 살던 정휘진 경동기업 대표는 2015년에 가족까지 5명이 가입했어요. 이외에도 여러 기업인, 친지 등을 합치면 10명 넘게 가입시킨 것 같네요. 저는 늘 아너소사이어티 홍보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랑의 열매' 배지를 달고 다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을 때까지 나눔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물론 내 몸도 세상에 꼭 필요한 곳에 쓰이길 바랍니다."▶본인의 나눔철학과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우리 부부는 평생을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요즘 말로 'BMW'(버스·지하철·걷기)족이었지만,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기부와 봉사는 특별히 마음 먹었다기보다 남편과 제 생각이 비슷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 노후 자금 전액을 기부한다고 하자 주변에서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남편의 유족 연금으로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해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막상 기부하고 보니 마음이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적극 지지해 준 것도 큰 힘이 됐어요. 며느리까지도 "어머님, 참 잘하셨어요!"라며 응원해줘 고마웠어요. 사실 남에게 베푸는 일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 더 큰 기쁨이 생긴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여성이 가진 섬세함과 따뜻함이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고 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데 큰 힘이 된다고 믿습니다."김 대표는 바쁘게 산다. W아너소사이어티 외에도 젊은 시절부터 발을 들인 여러 단체에서 여전히 활동 중이다. 대구시새마을회 이사, 새마을문고중앙회 이사, 일하는 여성연합회 부회장, 남구민주평화통일 위원 등 맡고 있는 직책도 다양하다. 봉사나 외부 활동이 없는 날에는 취미로 배운 국궁을 연습하거나 등산을 간다. 구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친다. 김 대표는 인터뷰가 끝난 뒤 필자에게 LED양초를 건넸다. 만나는 사람에게 나눠주는 선물이라고 했다. 문득 김 대표야말로 나눔의 빛으로 우리 사회를 밝히는 양초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게 가능한 건 가진 재산이 아닌 충만한 사랑일 게다. 소설가 앙드레 지드의 말처럼 '나눔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니까. 허석윤 논설위원 hsyoon@yeongnam.com나눔과 봉사를 실천할수록 즐겁고 행복하다는 김기호 W아너소사이어티 대구 대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도 누구보다 충만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2023.07.05
[정문태의 제3의 눈] 캄보디아 훈 센 총리 '권력 대물림 공작' 마무리
'삼덱 아꼬 모하 쎄니아 바떼이 떼쪼 훈 센', 이걸 우리말로 풀면 '총리 겸 군 최고사령관 훈 센 나리'쯤 될 법. 여기서 '삼덱'에 어울리는 우리말이 없어 '나리'로 썼지만, 사실은 캄보디아 국왕이 나라에 중요한 일을 한 정치인이나 종교 지도자 같은 이들한테 내리는 최고 경칭이다. 으레 캄보디아 총리 훈 센을 일컫는 공식 호칭이고. 2016년 꼭 이맘때였다. 캄보디아 정치판을 취재하던 내게 총리실 공보관이 "우리 언론처럼 외신도 총리 이름 앞에 공식 호칭 삼덱을 붙여 달라"고 닦달했다. 공보부가 막 자국 언론에 '훈 센 총리 공식호칭 사용' 명령을 내린 뒤였다. 거북함을 느낀 현지 기자들이 수군대자 훈 센 총리가 나서 "기자들이 (공식호칭) 쓰기 싫다면 필요 없다. 다만 기자들은 윤리 강령을 존중해야 한다"며 얄궂게 되박았다. "쓰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이게 더 무서운 말이다. 정부가 총리 호칭까지 명령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교도뉴스' 프놈펜 지국 기자 뿌이 끼어 같은 이들이 웅성댔으나 현실은 딱 거기까지였다. 말이 되든 말든, 주눅 든 캄보디아 언론은 여태 이 공식 호칭을 써왔다. 참고로 국경없는기자회(RSF)가 해마다 내놓은 언론자유지표에서 캄보디아는 180개국 가운데 늘 140~150위 언저리였다. 삼덱 훈 센이 쥐락펴락해온 캄보디아, 압제사회란 뜻이다. 훈 센이 7월23일 총선을 앞두고 다시 외신판을 달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훈 센'은 내가 기자로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이 입에 올린 이름이 아닌가 싶다. 30년 넘도록 아시아 정치판을 취재하면서 변함없이 불러온 이름이다. 캄보디아를 침공한 베트남의 괴뢰정부 시절인 1985년 서른셋에 세계 최연소 총리가 되어 올해로 38년째 세계 최장기 총리 기록을 이어가는 훈 센이고 보니. 그사이 나는 훈 센과 4번 단독인터뷰를 하며 제법 인연을 쌓았다. 가장 기억에 박힌 건 1997년 당시 제2 총리였던 훈 센이 쿠데타로 노로돔 라나리드 제1총리를 몰아내고 꼭 1주일 뒤 마주 앉았던 인터뷰다. "이보게. 내 나이 이제 마흔다섯이다. 은퇴하고 쉬라는 건 너무 지나치지 않는가? 나는 인민이 원할 때까지 캄보디아를 위해 일할 생각이다." 이미 12년째 총리를 해온 훈 센이 되받아친 말에 나는 섬뜩함을 느꼈다. 훈 센이 영구집권을 노린다는 낌새를 챈 자리였다. 올해 일흔인 훈 센은 그 영구집권 꿈을 이룬 셈이고 이제 권력의 대물림을 향해 가고 있다. 바로 이번 7월23일 캄보디아 총선의 고갱이다. 그리고 이 총선의 결과는 볼 것도 없다. 훈 센이 이끄는 캄보디아인민당(CPP)의 하원 125석 싹쓸이로 결판났다. 새로울 것도 없다. 훈 센은 제1 야당이었던 캄보디아구국당(CNRP)을 해산시키고 의장 껌 소카를 정부 전복 혐의로 불법 구금한 채 치른 2018년 총선에서 125석 독점의회를 구축했으니. 다른 말로 훈 센의 전체주의 정치가 이미 작동해왔다는 뜻이다.이번 총선은 그 2018년의 되박이판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22%를 차지한 캄보디아구국당 후신인 촛불당(CLP)이 지난 5월 말 해산당해 캄보디아인민당은 또 야당 없는 선거판을 실현했다. 캄보디아인민당을 제외하고 이번 총선에 참여한 17개 정당은 모두 실질적인 선거운동 불능 조직이거나 훈 센에 빌붙은 곁다리들이고 보니.캄보디아인민당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힌 촛불당이 꺼진 이번 총선은 무늬만 다당제 선거일 뿐이다. 지난 5월15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 등록 문서의 사본을 첨부하지 않은 촛불당의 총선 참여 신청을 거부했다"고 밝힌 데 이어, 5월25일 헌법위원회 의장이자 캄보디아인민당 중앙위원인 임춘림이 "촛불당의 항소는 불법, 위법임으로 기각했다. 이건 최종 결정이고 더 이상 항고는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촛불당은 "정당 등록 원본을 정부의 2017년 캄보디아구국당 본부 공격 때 잃어버렸다"고 외쳤으나 먹히지 않았다. 훈 센은 "정당 등록증을 잃어버렸다는 걸 안 믿는다. 추측건대, 질 게 뻔한 사실을 아는 그들은 총선 참여를 원치 않았다. 대신 그들이 진짜 바라는 건 외세가 캄보디아 정치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라며 되레 촛불당과 외세를 싸잡아 나무랐다. 그게 끝이었다. 으레,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촛불당의 문서를 아무도 꼬투리 안 잡았다. 이번 총선을 앞둔 훈 센의 정치적 공작이란 뜻이다. 7월1일, 970만 유권자를 향해 공식적인 선거운동 막이 올랐지만 정작 시민사회가 떨떠름한 까닭이다."누군들 흥이 나겠냐? 찍을 데도 없고 결과도 뻔한데. 지난 30년 동안 제대로 된 선거도 없었지만 이번은 그야말로 최악 가운데 최악이다." 프놈펜에서 인권운동가로 일해 온 내 친구 아운 끼엇은 이번 총선을 "자유도 공정도 없는 선거, 허울뿐인 민주주의로 포장한 권력 대물림의 출정식"으로 규정했다.이번 총선 싹쓸이를 통한 훈 센의 권력 대물림 야심은 "앞으로 두 임기(2028년까지)를 더 하고 총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지 2018년 총선 때 이미 드러났다. 그로부터 훈 센은 틈날 때마다 장남 훈 마넷을 '차기'로 입에 올리며 주요 직책을 맡겼다. 그러더니 2021년 12월 공식적으로 훈 마넷을 후계자로 선언했다. 올해 마흔다섯 살 훈 마넷은 미국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인트를 거쳐 영국 브리스톨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현재 육군대장으로 캄보디아군 부사령관과 캄보디아인민당 상임위원을 겸하고 있다. 말하자면 훈 센의 뒤를 이어 벌써 군권과 정권의 정점에 오른 셈이다. 훈 마넷은 하원의원 가운데 총리를 뽑도록 명시한 헌법에 따라 이번 총선에서 프놈펜 지역구에 출마했다. 차기를 향한 총총걸음으로.앞서 훈 센은 훈 마넷으로 대물림을 위한 중대한 발판을 깔았다. 캄보디아인민당이 100% 의석을 지닌 하원은 총선 한 달을 앞둔 지난 6월23일 만장일치로 새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총선을 비롯한 모든 선거의 입후보자는 반드시 최소 두 번 직전 투표에 참여해야만 자격이 있다고 못 박았다. 2028년 권력 대물림을 노린 훈 센의 야당 제거용 법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훈 센의 정적인 삼 랭시를 비롯한 캄보디아구국당 지도자들이 해외 망명 중이거나 투옥 상태인 현실이 그 증거다. 새 선거법에 따르면 이번에 투표할 수 없는 훈 센의 정적들은 2028년 총선 입후보가 불가능하다. 손 안 대고 코 풀기, 이제 '체포' '구금' '정당 해산' 같은 전통적인 훈 센식 선거도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셈이다. 이렇게 2018년에 이어 올 총선뿐 아니라 2028년 총선까지 훈 센이 이끄는 캄보디아인민당의 하원 싹쓸이가 결정되었다. 훈 센의 정치 공작은 모두 끝났다. 영구집권에 이은 권력 대물림에 남은 건 시간문제다. 이르면 내년 2024년 상원의원 선거 뒤가 될 수도 있고, 늦어도 2028년 언저리쯤에는 아버지 훈 센의 후광을 업은 훈 마넷이라는 이름이 캄보디아를 쥐고 흔들 수도.돈과 인력이 넘쳐나는 캄보디아인민당은 선거운동 첫날부터 프놈펜을 비롯한 캄보디아 전역의 상징인 푸른색과 흰색 윗도리로 메웠다고 한다. 훈 센은 수천 지지자들이 모인 컨벤션센터에서 "우리 국민은 오롯한 평화를 이뤄냈고 독립, 단결, 주권, 영토를 지켜낸 나와 캄보디아인민당이 제7대 입법부를 이끌도록 투표할 것"이라며 목청껏 소리 질렀다고.선택은 캄보디아 시민 몫이지만, 유효기간이 끝난 이른바 민주선거제도의 한계를 다시 떠올리는 아침이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이 자조적인 말을 오물거리며 캄보디아 시민의 건투를 빈다. 〈방콕특파원·국제분쟁 전문기자〉훈 센 캄보디아 총리가 지난 1일 프놈펜에서 열린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 총선 집회에서 비둘기를 날리고 있다. 캄보디아 총선은 오는 23일 실시된다. 연합뉴스지난 1일 열린 총선 집회에서 훈 센(뒷줄 왼쪽) 총리가 장남 훈 마넷(뒷줄 오른쪽)에게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 깃발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훈 센 총리의 장남인 훈 마넷이 지난 1일 프놈펜에서 총선을 앞두고 열린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의 집회에서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 훈 마넷은 육군대장으로 캄보디아군 부사령관과 캄보디아인민당 상임위원을 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남철 고령군수 인터뷰 "쉼없이 군민목소리와 현장 찾아…고령을 글로컬의 표본 만들겠다"
▶민선 8기가 시작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는데."정체된 고령에 활력을 불어 넣고 지역을 살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고령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고령을 위하는 길은 무엇일지 고민할 때마다 해답은 늘 '군민의 목소리'와 '현장'에 있었다. 지난 1년을 군민과 함께 군정 속에서 쉼 없이 보냈다."▶오는 9월 가야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 날 것으로 보인다."앞으로 가야문화권 시장군수협의회를 통해 '가야문화권'이라는 지역 간 동질성 및 역사적 가치를 확보하고 상호 교류협력해 공동발전 방안을 모색하려고 한다. 미지의 고대왕국인 가야에 대한 연구복원사업을 함께 하고 가야문화권 모두가 상생하는데 고령군이 주도적으로 정책 및 사업 건의에 나서려 한다. 고령군은 모든 행정력을 집중, 세계유산 홍보부터 관광 및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준비하고 있다. 특히 숙박 관광객에 대한 기반시설 확충, 그와 연계된 먹거리·볼거리 등에 철저히 대비하겠다."▶젊고 힘 있는 고령을 강조했다. 성과는. "고령군의 민선 8기 공약은 6대 분야 56건이다. 만족할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씩 양질의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공약을 차질없이 추진해 군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민선 8기 2년 차의 군정 운영 방향은."청년 행복의 씨앗을 뿌려 청년희망을 키울 수 있는 고령을 만들겠다. 미래를 이끌 역동적인 힘, 청년층을 위한 정책을 중점 추진해 지역에 생동감을 불어 넣겠다. 역사문화와 천혜자연을 활용해 글로컬의 표본, 빛나는 고령관광시대를 열겠다. 대도시권과 연계되는 영향력 있는 도시로 일취월장하는 고령발전의 토대를 닦겠다. 군민과의 소통창구는 변함없이 활짝 열어두겠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
'관광 고령' 날개 달고 '젊고 힘 있는 도시'로 飛上(비상)한다
경북 고령군이 민선8기 2년 차를 맞아 '고령관광시대'의 막을 연다.지난해 7월 '인구감소지역'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출범한 민선 8기 고령호는 녹록지 않은 현실을 딛고 '젊고 힘 있는 도시'로의 부상을 위한 1년을 보냈다. 군민은 물론 현장과의 소통, 변화하고 역동적인 고령 만들기가 키워드였다. 고령군은 이를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생활 인구를 증가시켜 명실상부한 '젊고 힘 있는 도시'로의 부상을 꿈꾼다.◆활력 넘치는 지역으로의 변화, 청년희망도시고령군은 민선 8기 2년 차부터 지향점에 좀 더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 중심에 이남철 군수가 있다. 이 군수는 자칭 '고령군 1호 영업사원'이다. 이 군수는 지난해 취임한 이후 50여 차례에 걸쳐 3천여 명의 각계각층 인사를 만나고 이들의 생각을 군정에 반영했다.민선 8기 고령은 인구증대와 지역발전을 위한 역점시책 '5·5·5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인구·청년·투자유치 전담부서를 신설하고 '고령사랑 주소갖기' 운동을 전개한 결과, 인구가 소폭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인구·청년·투자유치 부서신설고향 사랑 주소갖기 운동 성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되면생산 등 경제파급효과 급증기대귀농·귀촌 통합플랫폼 구축 등살기좋은 농촌만들기 다각노력대구 제2국가단지 지정에 맞춰다산 일대 신규 주거단지 계획고령군은 청년 주거안정 지원사업과 청년정착 행복공제 사업 등 지역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층을 위한 여러 정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청년복합귀농타운 조성사업과 청년마을만들기 지원사업 등의 공모사업에 선정돼 지역으로 타지 청년들이 들어오고 그들이 정착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을 만들 예정이다. 청년창업 인센티브 제공의 일환으로 임대료와 리모델링비를 지원하고 금빛마실어울림센터 내 일자리·창업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에 관심 있는 청년 CEO를 육성·지원하는 한편 전통시장 내 청년몰 사업을 추진해 청년특화거리를 조성할 방침이다.◆국제적 관광도시 꿈꾸는 고령고령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령의 국제적 브랜드 가치를 격상시킬 것으로 보인다. 고령가야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 첫 한 해 동안 88만2천394명의 방문객이 찾을 것으로 추산된다. 2020년 한국은행에서 발표한 경북지역 부문별 유발계수를 산출 분석한 '투자에 따른 지역경제 파급효과'에 따르면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 한 해에만 생산파급효과 456억원, 부가가치파급효과 186억원, 고용창출효과 269명이 될 것으로 관측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가야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1년여 미뤄졌다. 이 때문에 그동안 각종 사업 추진에 차질이 빚어졌다. 등재 기념식, 조형물 설치 등이 연기됐다. 또 문화재청이 시행하는 각종 세계유산공모사업 및 세계유산보존관리 지원사업, 세계유산 홍보 및 지원사업, 세계유산축전 등 많은 사업이 함께 미뤄지면서 국비 신청에도 어려움이 발생했다.하지만 고령군은 세계유산 등재가 연기된 기간에 고분군을 활용한 다양한 관광콘텐츠 사업이 내실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가야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 때 관련 사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활용 콘텐츠 연구용역'을 완료했다.◆6차 농업 융·복합 선도, 살기 좋은 스마트농촌농업과 식량안보의 중요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고령군은 농가경영 안정을 지원하고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 필리핀 루바오시와 칼라판시, 베트남 하이즈엉시 등 3개 시와 외국인 계절근로자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같은 노력은 농번기 인력 수급난을 일부 해소해 농가에 보탬이 되고 있다.농촌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해 시설현대화 지원과 농기계 임대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스마트팜 임대농장을 갖춘 귀농·귀촌 통합플랫폼을 구축하는 한편 농산물가공지원센터를 조성 중이다. '고령딸기 농업융·복합 산업지구 조성사업' 공모에 선정돼 주력작물 미래전략 6차 산업화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과학영농종합시설 설치 등 과학기술 기반의 스마트농업 혁신생태계를 구현할 계획이다. 2023년 경북 6대 우수브랜드 쌀에 선정된 '고령옥미'를 비롯한 지역 우수농산물의 판로 확대를 위해 대도시와 인접한 다산면에 직거래장터를 개설하고 농산물 산지유통센터와 고령몰 활성화 지원을 통해 농업인 소득 창출을 이끌어 낸다는 복안이다. ◆산업인프라 구축으로 고령경제 재도약고령군은 지난 1년 동안 공격적인 투자유치 세일즈로 4건의 투자유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대도시권과 연접해 지리적 이점을 갖춘 고령군은 대구 제2국가산업단지 지정에 따라 배후도시로서 다산면 일대 신규 주거단지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 지역의 개발제한구역 해제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사통팔달 광역교통망을 갖춘 '산업물류 교통요충지' 고령군은 국지도 67호선 조기 완공과 지방도 905호선 확장 및 도시계획도로 정비, 대가야 하이패스 IC설치사업 등으로 접근성을 한층 더 높여 지역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지역상권의 중심인 고령대가야시장이 올해 초 특성화시장육성지원공모사업에 '문화관광형 전통시장'으로 선정됨에 따라 야시장 등과 같은 다양한 시장·상가 활성화 방안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고향사랑기부제를 활성화하고 기부자에 대한 예우를 갖추고자 고령군은 홈페이지에 온라인 명예의 전당을 개설했으며 하반기에는 청사 내 명예의 전당을 마련해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유선태기자 youst@yeongnam.com초록빛이 싱그러운 여름의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가야고분군. 오는 9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 대구경북 소멸 보고서] 골다공증걸린 대한민국, 지방이 살길이다
아이 울음 소리가 끊긴 지 오래다. 청년은 떠나고 노인만 남은 마을이 부지기수다. 농산어촌마다 빈집이 즐비하다. 고령화와 인구 유출의 직격탄을 맞은 지방의 풍경이다. 최근에는 지방 대도시 일부 지역마저 소멸 위기 진단을 받아 충격을 주고 있다. 대한민국이 '국토 골다공증'에 걸렸다는 소리도 나온다. 골밀도가 줄어들어 뼈 곳곳에 구멍이 생기는 것처럼 지방 곳곳이 텅 비어간다는 의미다. '지방 식민지론'도 일찌감치 나왔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면서 지방은 '수도권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0.24%가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절반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셈이다. 특히 청년층(20~39세)의 경우, 수도권 거주 비율이 54.5%로 가장 높다. 대구경북 역시 지방소멸 위기의 한복판에 있다. 지난해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K-지방소멸지수'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 가운데 소멸위기 지역은 59곳으로 나타났다. 경북 울릉, 봉화, 청송, 영양군은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됐고 청도, 영덕, 울진, 의성, 군위는 소멸 우려 지역에 포함됐다. 또 지난 2021년 정부가 지정한 인구감소 지역에 경북 16개 시·군이 들어갔다. 전남과 함께 가장 많다. 대구의 서구와 남구도 인구감소 지역으로 지정됐다. '550만 대구경북 시대'는 이제 옛말이 됐다. 지금 대구와 경북을 합친 인구는 5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다. 경북은 300만 명에서 250만 명, 대구는 250만 명에서 230만 명으로 줄었다. 지방소멸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다. 국토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것을 넘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윤석열 정부는 '진정한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표방한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지방분권 및 균형발전 특별법에 따라 지방시대위원회도 곧 출범한다. 영남일보는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를 주제로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대구경북 소멸 보고서'라는 부제를 달았다. 특별취재팀을 꾸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지방소멸 문제를 살펴보고 정부 정책을 진단한다. 정부는 지난 30년 여간 지역 균형발전 정책을 펴왔지만, 지방소멸이라는 현실에서 알 수 있듯 실패했다. 중앙부처 주도의 균형발전 정책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지방이 주도권을 가져야 대한민국이 바뀔 수 있다. 특별취재팀과 함께 자문위원단도 구성했다. 지방소멸 관련 전문가들이다. 대한민국신문협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공동 수행 프로젝트에도 선정됐다. 지방소멸을 극복한 해외 선진 사례를 소개해 대구경북이 가야 할 방향도 살펴볼 예정이다. 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서울뿐인 대한민국?'.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 정책을 꼬집는 광고천재 이제석씨의 공익광고다. 2023년 오늘, 대한민국의 중차대한 화두는 지방소멸이다. 청년은 서울로 떠나고, 저출산과 맞물려 지방의 인구절벽은 가속화 되고 있다. 이대로면 대구경북은 물론 비수도권은 자칫 대한민국 지도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끔찍한 전망이 나온다. 해법은 '지방'에 있다. 지방의 발전 없이는 국가발전도 없다. '지방시대'는 이제 대한민국 대전환의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다름없다.
2023.07.02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 대구경북 소멸 보고서] 대구에도 지방소멸이 현실화 된다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과연 살아있는 동안 대구에 '소멸' 위기가 닥칠까요?" 대구 수성구에 거주하는 한 30대 청년의 말이다. 위기가 현실화 된 농어촌 지역 소규모 시·군과 달리, 광역도시인 대구에서 지방소멸은 거리가 먼 이야기로 들린다는 것이다. 최근 공개되는 연구 결과와 통계들은 달리 말한다. 대구 인구 순유출은 꾸준히 일어나면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있고, 고령인구 비중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대구는 이른바 '인구조로'(人口早老) 현상에 직면해있다. 취약한 인구구조는 지역 차원의 경쟁력과 생산력을 크게 저하시킨다. 지역 경제 성장은 인구구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결국, 대구 역시 해법을 찾지 않는다면, 시기만 차이날 뿐 지방소멸의 마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작년 대구 순유출 1만1500명7700여명이 20대의 수도권행5월 기준 고령인구 비율 18.8%가파른 증가 속 전국평균 상회 지역 내 생활·교육환경 등 격차서·남구민 他구·군 전출도 지속 ◆ 줄어드는 대구 인구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대구지역 주민등록 인구수는 지난 2012년 250만5천644명, 2017년 247만5천231명, 지난해 236만3천 691명으로 집계됐다. 5월 기준 인구는 235만7천32명이다. 유출인구를 살피면 상황은 심각하다. '순유출'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 순유출이란 전입보다 전출이 많은 전출 초과상태를 뜻한다. 지난 4월 동북지방통계청이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대구가 광역시로 승격된 1995년 대구 순유출자는 3천279명이었는데, 지난해엔 1만1천519명으로 약 2.5배 (8천240명) 증가했다. 순유출은 20대 이상 대부분 연령층에서 발생하는데, 특히 청년층 순유출이 두드러진다. 특히 20대의 수도권 순유출자는 1995년(4천919명) 대비 지난해 7천725명으로 57%(2천806명) 증가했다. 30대는 1995년 대비 1천362명이 증가했다. 고령자 비중은 점점 늘어난다. 지난 5월 전국의 평균 고령인구 비율은 18.4%였는데, 대구는 18.8%로 평균치를 넘어섰다. 통상 경기도를 제외한 도(道) 지역을 중심으로 고령자 비율이 현저히 높은 특성을 보이지만, 대구와 부산(22.0%) 만큼은 예외였다. 전국 수준보다 빠르게 소멸이 진행되고 있는 '유이'한 도시 지역인 셈이다. 통계청의 2022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 도달 연수(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 14%→20%)는 고작 7년이었다. 오스트리아(53년), 영국(50년)에 비해 7배 이상 차이 났고, 미국(15년), 일본(10년)보다도 짧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의 고령인구 비중이 2030년 27%, 2040년 36.7%, 2050년 42.1%로 늘어날 것으로 보는 통계청의 예측 결과도 발표돼 눈길을 끈다. 학계에서는 대도시 역시 지방소멸 위기에서 예외일 수 없다고 일찌감치 이야기 해왔다. 지난해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지방소멸 시대의 인구 감소 위기 극복방안: 지역경제 선순환 메커니즘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통해 "이들 지역(대구, 부산)은 현재 지방소멸의 상당 부분이 진행됐다"면서 "다른 지역과 달리 변화 속도도 빨라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는 지역이다"고 밝혔다. 또 "비수도권의 많은 지역이 초고령화로 인해 이미 지방소멸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에 더해 수도권 및 광역시도 빠른 속도로 지방소멸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지방소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이유"라고 짚었다. ◆ 인구감소지역, 대구 서구와 남구대구시 내부적으로도 소멸은 진행 중이다. 지난 2021년 대구 서구와 남구는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인구감소 지역의 경우 △ 연평균 인구증감률 △ 인구밀도 △ 청년 순이동률 △ 주간인구 △ 고령화 비율 △ 유소년비율 △ 조출생률 △ 재정자립도 등 8개의 인구감소지수를 바탕으로 지정된다. 인구감소지역 지정 시 지방소멸대응기금 차등배분, 국고보조사업 공모 우대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낙후 도시'라고 한 번 달린 꼬리표를 떼기란 쉽지 않다. 최근 3년간 서구와 남구에는 꾸준하게 전출인원이 발생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서구를 떠난 인구는 1만7천894명, 2021년 2만1천955명, 지난 2020년은 2만4천344명이다. 남구의 경우 지난해 2만986명, 2021년 2만3천756명, 지난 2020년 2만5천897명이었다. '2030세대'의 이동의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서구를 떠난 2030세대는 7천317명으로 전체 전출 인구(1만7천894명)의 59.1%를 차지했다. 지난해 남구를 떠난 젊은 층은 9천736명으로 전체 전출 인구의 53.6%다. 이러한 인구 유출의 원인은 생활, 교육환경 등인 것으로 보인다. '2021 대구 사회지표' 구군별 생활·교육환경 만족 격차 발생에 따르면, 주택·기반시설·주차장·보행환경에 대한 만족이 가장 낮은 지역은 서구였으며 다음으로는 남구인 것으로 분석됐다. 교육 환경 부분에서도 서구와 남구가 만족도가 낮은 지역에 포함됐다. 공교육·평생교육 등 분야에서 서구와 남구가 만족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2021년 서구 내당동에서 수성구 범어동으로 거주지를 옮긴 이모(38)씨는 "교통·마트 등 생활 인프라가 서구보다 수성구가 우수하다는 점이 이사를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다"면서 "향후 서구의 정주 여건이 괜찮아진다고 해도 서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했다. 또 지난 2022년 남구 봉덕동에서 달서구 이곡동으로 이사한 김모(여·43)씨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 남구를 떠나게 됐다. 달서구의 경우 남구보다 학원가 형성이 잘 돼 있다"면서 "남구는 낙후된 이미지가 강해 현재로는 이사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 대구 인구 계속 감소하나2020년 대구시가 공표한 '대구시 장래 인구 추계'에 따르면, 대구 인구는 2030년 219만 7천348명으로 줄어든다. 2035년에는 211만 857명, 2040년에는 202만 271명이 될 것으로 분석됐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통해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는 대구 서구와 남구도 인구 감소 상황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으로 분석된다. 해당 통계에 의하면 2023년 서구는 15만4천851명, 남구는 13만 7천790명이다. 7년 뒤인 2030년에는 서구는 13만 1천443명으로 약 15.1% 인구가, 남구는 12만 5천 330명으로 약 9%의 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해가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어 2040년 서구 인구는 11만4천429명, 남구 인구는 11만4천745명이 될 것으로 예고됐다. 인구 감소세를 한동안이라도 피할 수 있는 대구 기초 지자체는 달성군이 유일하다. 현재 26만8천8명인 달성군 인구는 2030년 28만1천360명, 2035년 28만1천975명으로 증가세를 유지하다가 2040년 소폭 줄어든 27만6천7명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정지윤기자 yooni@yeongnam.com
[대한민국 대전환, 지방시대- Ⅰ. 대구경북 소멸 보고서] '250만' 시대 돌입한 경북도, 그많던 도민은 어디로 사라졌나
경북은 올 들어 하루에 45명꼴로 인구가 사라지고 있다. 27일 경북도에 따르면 경북의 인구는 5월 말 기준 259만 726명이다. 1월의 주민등록상 인구수가 259만7천527명이었단 점을 고려하면 최근 5개월 사이 7천 명 가까운 인구가 빠진 것이다. 경북은 대구와 분리된 1981년 인구수 319만 명을 찍은 이후 인구 감소세가 지속하고 있다. 2016년까지 인구수 270만명대를 유지하던 경북은 지난 2017년 1월 269만8천803명을 기록하며 '270만' 선(線)이 무너졌고, 올해 1월에는 '260만'선 마저 깨졌다. 산업연구원이 국내 인구의 지역 간 이동 특성을 고려해 개발한 'K-지방소멸지수'를 토대로 전국 228개 시·군·구의 인구 변화를 조사한 결과, 지방소멸 위험도가 높은 소멸 위기 지역은 총 59곳으로 나타났다. 경북은 9곳으로 전남(13곳)·강원(10곳) 다음으로 소멸 위기 지역 분포도가 높았다. 소멸위기지역은 소멸지수에 따라 '소멸위험지역'(0.5 이하·9곳)과 '소멸우려지역'(0.5 이상~0.7 이하·50곳)으로 구분되는데 경북에선 울릉·봉화·청송·영양군이 소멸위험지역에 분류됐다. 전국에서 소멸 위험 지수가 가장 높은 9곳 중 4곳이 경북이었다. 산업연구원은 경북 소멸위험지역의 경우 고령 인구 비중은 높은 반면 청년들이 일하고 활동할 수 있는 교통 및 산업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시 그리는 경북 인구지도도대체 그 많던 경북 도민은 어디로 떠난 것일까. 경북도가 집계한 2022년 인구이동통계 따르면 지난해 경북의 총인구수는 260만492명으로 2021년(262만6천609명)과 비교해 2만6천117명이 감소했다. 지자체 인구 감소는 통상 출생·사망과 같은 자연적 요인과 더불어 전입·전출 등 사회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데 경북에선 해당 기간 사망자는 늘어난 반면, 전·출입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경북에선 총 26만3천156명이 전입했고, 27만 822명이 전출을 해 7천666명이 순유출됐다. 전출자는 주로 직업과 교육, 주택, 주거환경 등을 이유로 경북을 떠난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출생자는 1만1천300명 신고됐지만, 사망자는 2만 7천800명이 집계되는 등 자연 감소도 한몫했다. 만성적인 청년 유출도 경북의 '인구절벽' 현상을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경북 청년(19세 이상 39세 미만) 전입자는 10만8천833명인 반면 전출자는 12만616명으로 집계됐다. 전출 청년들의 절반 이상은 경북(5만8천263명) 내에서 이동하거나 대구(1만8천948명)로 떠났지만, 서울(9천741명)·경기(9천720명)·인천(1천834명) 등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비율 역시 17.6%에 육박했다. 청년이 지역을 등지면서 대구경북 지방거점국립대인 경북대조차 학생들의 중도이탈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경북대의 재학생의 중도 자퇴율은 지난 2021년 기준 전국 9개 지방거점국립대 중 전북대(25.6%), 경상국립대(20.3%), 강원대(19.4%)에 이어 4번째로 높았다. 경북대 자퇴생은 수도권 등 타 대학 진학을 염두하고 대학을 포기한 것으로 분석된다.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역소멸의 위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단면이다. 경북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지난해 수도권 회사로 취직한 김모(30) 씨는 "수도권에 양질의 일자리가 많으니까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 생각한다. 주변 친구들을 봐도 규모가 큰 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수도권으로 몰려든다"라며 "교통, 인프라,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수도권 생활이 만족스럽다"라고 말했다. 지역 내 청년 인구 감소는 산업 생산성 감소로 전이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중위) 추계에 따르면 경북의 생산연령(15~64세) 인구 비율은 2021년 67.3%에서 2040년 50%, 2050년 44.1%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기준 경북의 65세 이상 인구는 23.78%로 이미 초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인구 소멸, 더 이상 지방만의 문제 아니다.지난 2021년 감사원은 보고서를 통해 "2047년이 되면 전국 시·군·구의 약 70%에 해당하는 157개 시·군·구가 소멸위험 고위험 단계에 들어간다"고 경고했다. 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진 2018년도 합계 출산율(0.98명)이 지속한다는 가정하에 미래 지역 소멸을 예측했다는 점을 미뤄볼 때 지방의 위기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당장 작년 한국의 작년 합계출산율은 0.78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당시 감사원은 청년의 수도권 집중과 출산율의 상관관계에 주목했다. 청년층이 양질의 교육과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이동했지만, 과도한 경쟁과 미래 불안 등으로 비혼이나 만혼을 선택함에 따라 전체 출산율이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의 합계 출산율은 0.59로 국내 출산율 저하를 이끌고 있다. 수도권 집중화가 지방 소멸은 물론 국내 생산성 감소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방증이다.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해선 실질적인 균형발전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에 대폭 넘겨야 한다. 더 큰 '대한민국'을 그리려면 지방에 힘이 실려야 한다. 최근 안동에서 2023년 지방분권 강화 정책 포럼'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지방에 행정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연방제 수준의 분권을 통해 국가의 경쟁력이 지방에서 창출될 때 진정한 지방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 위원장은 곧 출범한 지방시대위원회와 관련, " 자치권을 확대하고, 지방의 자립적 역량은 강화하는 분권형 국가경영시스템을 설계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인재 양성, 청년 유입이 활발한 지역 경제를 꿈꾼다"라며 "지역의 현안인 지방소멸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겠다"라고 말했다. 오주석기자 farbrother@yeongnam.com ※ 이 지면은 대한민국신문협의회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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