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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의 개념과 종류
오왕규 교수는 “소스는 나라마다 용어가 다르다. 우리는 ‘양념’이라고 하고, 프랑스·영국·일본에서는 ‘소스(Sauce)’, 이탈리아·스페인에서는 ‘살사(Salsa)’라 한다. 서양요리에서는 음식의 빛깔을 내고 맛을 돋우기 위하여 넣거나 끼얹어 먹는 액체를 총칭해 소스라 한다. 서양요리에서 음식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로 주재료와 부재료, 소스 등 3가지가 있다”고 소스의 개념을 정의했다. 소스는 냉장기술이 없었을 때 음식이 약간 변질되었을 경우 맛을 감추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설과, 품질이 좋지 않은 고기 맛을 돋우기 위하여 조리사들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설이 있다. 소스의 어원은 소금이 기본양념으로 사용된 이후로, 라틴어의 ‘소금’을 의미하는 ‘살사’에서 유래되었다. 소스는 생선, 육류, 채소 등의 재료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여 음식에 적합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국마다 고유의 특성을 지니며, 요리의 맛·향기·형태·색·농도를 결정할 뿐 아니라, 소화 작용을 도와주기 때문에 음식의 구성 요소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소스의 재료는 육류, 생선, 채소, 과일, 밀가루, 치즈, 버터, 우유, 오일, 계란, 술, 식초, 설탕, 허브와 스파이스 등 다양하다. 크게 차가운 소스와 뜨거운 소스로 나눌 수 있다. 서양요리에서 사용되는 소스를 분류해 보면 전채 및 샐러드소스(드레싱), 생선요리 소스, 육류요리 소스, 후식소스 등으로 나누어진다. ▲전채 및 샐러드 요리에 사용되는 소스= 마요네즈, 프렌치드레싱, 허니머스터드 소스, 칵테일소스, 오렌지소스, 발사믹드레싱, 사우전드 아일랜드드레싱, 이탈리안드레싱 등이 많이 쓰인다. 기본재료는 크림, 식초, 기름, 채소 및 과일 퓌레(갈아서 체로 걸러 걸쭉하게 만든 음식) 등을 들 수 있다. 샐러드 소스는 주로 기름과 식초를 기본재료로 다양한 향신료를 사용하여 만든다. ▲생선 요리에 사용되는 소스= 베샤멜소스, 버터소스, 모르네소스, 홀랜다이즈소스, 타르타르소스, 샤프론소스, 백포도주소스 등이 많이 쓰이고, 육류 요리에는 갈색 육수 소스로 데미그라스소스, 후추소스, 슈프림소스 등이 있다. 생선과 육류 소스는 그 자체의 육즙을 이용하여 만드는 경우가 많다. ▲파스타 소스= 토마토소스, 카르보나라소스, 봉골레소스 등. ▲후식 소스= 바닐라, 크림 앙글레이즈, 사바용소스, 초콜릿소스, 오렌지소스, 망고소스 등이 많이 쓰이며, 재료별로 구분하면 크림 소스와 리큐르 소스로 구분된다. 서양요리에서 기본적인 소스는 일반적으로 육수(fond·고기, 생선, 채소 등을 고아서 얻은 국물로, ‘수프스톡’이라고도 함)와 농후제로 루(roux·밀가루를 버터로 볶은 것으로 소스의 농도·맛·촉감 등을 조절), 리에종(Liaison·연결체로 계란노른자와 크림을 섞은 것, 밀가루와 크림을 섞은 것, 밀가루와 버터를 반죽한 것 등)으로 구성된다. 여기에 다양한 술과 향신료를 적당히 첨가하여 응용된 다양한 소스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소스용 냄비는 가장자리가 높고 재질이 두꺼운 금속이 좋다. 이유는 열의 분배가 잘 돼서 소스가 타거나 변질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소스의 명칭은 일반적으로 소스에 사용된 재료명, 창조자의 이름 등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소스의 양은 음식의 양보다 적게 담고, 소스의 온도와 농도에 유의해야 된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10.12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음식의 영혼을 살리는 도구, 소스
상당수 지역 오너셰프들은 ‘대구가 소스 1번지’라는 걸 잘 모른다. 수성구 수성4가동에 있는 핀외식연구소(소장 황문교)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론칭한 소스아카데미. 현재 대구에서 생겨나 지금 전국 각처로 전파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지역에선 소스를 요리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조짐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냥 기본 양념 정도로 이해했다. 2005년 6월 소스아카데미가 대구에서 생겨난다. ‘미스터 소스’로 불릴 정도로 동서양 요리의 소스체계를 나름대로 집대성한 신라호텔 주방 출신인 최수근 경희대 호텔조리학과 교수가 영남대 교수로 잠시 내려왔을 당시 영남외식연구소(현 핀외식연구소 전신) 임현철 소장(현재 대구가톨릭대 외식식품산업학부·한국향토음식진흥원장)과 만나 의기투합을 한다. 그렇게 해서 음식이 가장 맛이 없고 식성이 보수적인 대구에 선진 요리 인프라 하나가 구축된다. 차츰 양념 수준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맛을 연출하려는 셰프들이 모여들었다. 1기 때는 30여명이 모였다. 식당주는 물론 심지어 요리학원 원장, 요리과 교수 등도 있었다. 다들 소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자기 음식은 잘 알아도 다른 장르의 음식 소스에 대해서는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강사를 대구로 불러들였다. 중식의 경우 이면희 셰프(현재 서울 이면희 학원 원장), 양식의 경우 조우현 셰프(현재 서울 북촌의 레스토랑 플로아 대표), 한식의 경우 청와대 한식 담당자였던 이옥덕씨(현재 신라호텔 한식부 근무)·현석기 셰프(놀부 메뉴개발팀장) 등 70여명의 명강사가 지나갔다. 막강 강사진이었다. 15주 과정을 배우는데 한·중·일·양식 기본 70여가지 소스를 배우게 된다. 통상적으로 한 기수 당 13여명의 강사진이 온다. 소스도 세분화시켰다. 한식 중 육류 전문 소스, 한정식 전문소스, 퓨전 요리 소스, 나중에는 김치와 장아찌, 양식의 경우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 관련 소스, 중식도 지역별 소스를 알려줬다. 그것만 배우면 응용력이 생겨 자기만의 창작 소스를 만들 수 있었다. 수료식 때 수강생이 한 가지 창작 소스 발표회를 가진다. 이 과정에 여름철 물회 소스도 개발됐다. 2천만원짜리 냉면 소스도 회원끼리 공유했다. 대구에서 붐이 일자 3기가 개강되면서 서울과 부산에서도 오픈됐고 현재 대전과 광주, 청주 등 6개 지역에서 진행이 되고 있다. 거의 대구에서 직영을 한다. 현재 대구의 경우 18기(8월말~12월초)가 포진해 있다. 매년 2월말과 8월말에 개강하며 기수별로 커리큘럼이 바뀐다. 가장 열정적인 셰프는 들안길 한정식 전문점 용지봉 변미자 사장. 1기 때 등록해 아직까지 배울 게 있다면서 온다. 변 사장은 표고 탕수육은 물론 지역에서 명이나물 장아찌 붐도 일으켰다. 소스 아카데미 덕분에 그날 배운 걸 밤에 응용해 만들어 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음식에 맞는 본연의 소스를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달서구 본리동 갈비둥지의 나호석 사장도 소스의 중요성을 알고 소스 담장 직원까지 발굴하기도 했다. 아카데미 역사를 줄곧 지켜봤던 윤기호 팀장은 “소스를 배우고 난 뒤부터 식당하는 건 겁 내면서도 음식 만드는 것은 별로 겁내지 않더라.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식당 문 여는 건 겁을 안 내면서 요리는 더 어려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지역 식당 상당수는 소스에 대한 개념이 아직도 약하기 때문에 여기 와서 한 번 들으면 자기 음식이 아니라 남의 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이해도가 높아지고 그로 인해 성공적으로 식당을 꾸려갈 수 있다”고 말했다. 15주 수강료는 140만원이다. 1차 수강 뒤 재 접수하면 28만원만 내면 수업을 받도록 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12)대구시 북구 구암동 ‘녹야원’ 김명숙
대구시 북구 구암동 주택가에 ‘착한 밥상’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특히 여주인이 당도가 낮은 백년초 설탕을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얘기에 궁금증이 발동했다. 태풍 산바가 몰고온 세찬 빗줄기를 뚫고 녹야원을 찾아갔다. 녹야원 전체 분위기는 찻집이었다. 찻집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식당까지 겸하게 된 것이다. 일단 주방부터 확인했다. 화학조미료 통이 없었다. 코스음식을 시키면 디저트로 각종 차가 나온다. 일반인들이 먹기 좀 까끌한 현미밥이 나왔다. 착한 밥상은 식재료가 중요한 것이지 맛은 두 번째. 전채로 나온 샐러드의 당귀잎에 유자청이 너무 자극적인 향기를 품고, 메인 메뉴에 따라나온 물김치는 덜 숙성돼 새콤한 맛이 부족했다. 하지만 가고시마 흑돼지, 전두부 등 식재료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건강밥상 연구가인 김명숙씨(49)와 차 연구가인 남편 김상곤씨(50). 부부는 2005년 찻집 녹야원을 열었다. 차와 세트로 움직일 수 있는 착한밥상 개발에 고민을 하고 있다. “마블링 만들기 위해 학대하며 키운 가축을 인간이 어떻게 먹나” 저당도 백년초 설탕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화학조미료는 안 써 전채는 들깨 버섯죽과 당귀잎 샐러드 나와 본식은 현미밥·추어탕… 전두부·과일즙 김치 등 곁반찬 소박하나 다양 부부가 직접 만든 茶 다식과 함께 디저트 내 ‘건강밥상’ 마무리 ◆ 한때 부부는 패스트푸드 광 30대 때 부부는 패스트푸드 광이었다. 몸에 안좋다는 걸 찾아가면서 먹었다. 하루에 믹서커피를 20잔 이상 마셔댔다. 특허 관련 업무에 치중했던 남편은 건강을 자신하며 하루에 담배 네 갑, 잠도 3~4시간만 잤다. 결국 협심증 등 고질적 성인병에 걸리게 된다. 경남 양산군 출신인 아내의 아버지는 경남 기장에서 미역 양식을 개척했다. 17명이 한집에서 살았다. 가마솥 밥을 하고 항상 먹을거리가 풍성했다. 그녀의 모친은 종부 스타일이었다. 재료에 구색이 맞춰지지 않으면 요리를 하지 않았다. 오방색도 잘 이용했고 좋은 식재료 확보를 위해 타 고장으로 원정을 갈 정도였다. 90년 11월 부부는 대구로 왔다. 현모양처로 있던 그녀는 92년말부터 맞벌이부부가 된다. 이때부터 문제였다. “허구한 날 외식이었어요. 패스트푸드 중독자가 됩니다. 요리할 시간도 없으니 편한 게 주문음식이었죠. 그러다 남편이 협심증을 앓고 자연스럽게 차 전문가로 변신을 하게 된 셈이죠.” 그녀는 비염이 매우 심했고 성대 결절이 있어 조금만 피곤해도 성대가 하얗게 부풀어올랐다. 일상이 힘들어졌다. 남편의 권유로 차를 먹기 시작한다. “처음엔 차를 좀 소모적이고 사치적으로 봤습니다. 남편이 작은 잔에 준다고 핀잔을 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거실에서 차를 먹고 있는데 저도 모르는 가운데 기도하는 맘을 느끼게 되더군요. 그런 맘은 처음이었고 정말 전율이었습니다.” 그때부터 10여년간 미치도록 차와 음식에 대해 공부를 한다. 각종 차 단체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다. 나중엔 원광 디지털대 차문화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하면서 각종 자격증에 도전한다. 전통음식 약선요리 육미습생, 대체의학, 운동처방사, 테이핑요법, 웃음치료사, 레크리에이션, 꽃꽂이, 천연염색…. 무려 15개의 자격증을 취득한다. “좋은 걸 하니 잠이 오지 않았어요.” 북구 태전동 한 아파트에 차 사랑방을 열어두었다. 이웃 등 사람이 마실오듯 자꾸 찾아왔다. 매장을 열 필요가 있어 2005년 동평초등 정면 앞에서 보이차 전문매장을 연다. 그 공간도 좁고 수업도 하기 위해, 찾아오기 힘든 현재 자리로 이전했다. 한때 너무 왜곡된 중국 보이차 문화에 자존심 상해서 경남 하동에서 나온 차를 갖고 한국형 보이차를 2007년 대구전시컨벤션센터 국제차문화축제 첫회 때 선보였다. 현재는 중국 현지에 차공장까지 운영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 비위생적이고 거름더미에서 속성으로 제조되는 보이차가 어떻게 고가에 국내유통되는지도 일반인에게 고발하기도 했다. ◆차전문매장에서 착한식당으로 진화 차를 하다보니 지인들이 차와 같은 음식도 만들어보라고 권유했다. 찾아 오기 힘든 주택가였지만 본심이고 재료를 속이지 않자 팬 같은 단골이 많이 생긴다. “1만원 정도밖에 안되는 음식을 먹고 시내 5만원짜리 같다고 할 때 정말 희열을 느꼈습니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온 건 순전히 남편과 단골 덕분인 것 같아요.” “우리 음식에도 옥에 티는 있지만, 그 티가 솔직하고 배려가 담겨 있기 때문에 몸 속에 들어가서 그렇게 분탕질 치지 않는다고 봐요.” 그녀가 가루음식에 대해 비판을 한다. “밀가루 음식을 먹을 때 당이 급속도로 올라갑니다. 그래서 당의 수치가 높아지고 인슐린이 당을 분해해 지방으로 저장해버리죠. 그럼 뇌는 포도당이 필요한데 가루음식을 먹으면 인슐린이 그걸 지방으로 만들어 저장하니 뇌세포는 에너지를 사용못해서 다시 배고픔을 만들어 음식을 자꾸 많이 먹게 만들죠. 따라서 비만과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게 됩니다. 그래서 빵은 먹어도 배가 고프죠.” 그 말이 식품의학적으로 검증된 말인지 확신은 가지 않았지만, 일단 그녀가 식당을 관리하면서 영양학의 깊숙한 곳까지 터치하고 있다는 사실에 믿음이 갔다. “저는 음식은 ‘알아차림’이라고 봐요. 다시 말하면 명상이죠. 제가 뭘 먹고 있는지, 내 몸속에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알고 먹을 때 부작용이 최소화됩니다. 일반인은 맛거리에 중독되고 최면에 걸려 있어요. 그래서 화학조미료 맛에 길들여져 그게 없으면 맛없다 해서 먹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단을 짜주고 싶습니다. 특히 편식하는 우리아이들에게. 그래서 요즘 학교 등으로도 봉사를 많이 다녀요.” ◆ 사나운 물도 먹지마라 그녀는 물에 관한 철학도 확고했다. “좋은 음식요? 그건 음양의 조화를 맞춘겁니다. 맛있는 게 건강에 가장 나쁠 수 있다고 봅니다. 특히 물이 중요합니다. 폭포수도 먹으면 심성이 사나워집니다. 예전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항아리에 담아서 물을 부드럽고 순하게 해서 먹었죠. 그리고 정화수를 떠놓고 매일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 몸은 물 저장 시스템은 갖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매일 2ℓ의 물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맹물보다 좋은 차가 한 단계 숙성되고 진화됐다고 봐야죠.” 햇살, 바람, 땅 기운을 잘 받은 음양의 조화를 갖춘 음식이 건강한 밥상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니 제철음식이고 가능하면 시설재배보다 노지의 식재료가 좋은 것이다. 하지만 가축 등은 어떻게 하기 힘들다. “요즘 대다수 식육용 가축은 온갖 스트레스와 온갖 항생제로 키워지고 있죠. 그 스트레스가 조류독감과 광우병을 만들었다고 봐요. 마블링 많은 고기가 고급으로 팔리고 있어요. 그런데 그런 마블링을 만들기 위해 소기름 코팅한 항생제를 투입하고 마블링 상태를 좋게 하기 위해 가축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죠. 소가 잘 못 걷고 갇혀 지내면 좋은 마블링이 생긴다고 하니. 참 가슴이 아파요. 가축의 원한이 인간에게 전이된다고 봅니다. 동물의 원한 에너지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인간이 더 난폭하고 거칠게 되는 것 같아요.” 그녀는 대구가 너무 육식에 길들여져 있다고 걱정한다. “대구는 전국에서 가장 돼지고기를 많이 소진시키고, 막창과 곱창은 메카이며, 뭉티기 중독자도 엄청 많아요. 채식전문식당이라는 게 매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3자는 그런 식당을 원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안전한 가축을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녀는 경남 산골에서 키우는 일본 가고시마 흑돼지를 밥상에 올린다. 100% 채식식단만 고집하지 않는다. 현실을 반영했다. 흑돼지의 경우 식물 효소를 사료로 먹인다. ◆ 1만5천원짜리 현미밥상 1만5천원이면 현미건강식을 먹을 수 있다. 들깨 버섯죽과 샐러드가 전채로 나온다. 샐러드는 당귀잎 등이 들어가고 유자청 소스, 매실 진액을 사용했다. 현재 매실, 민들레, 와송이, 가지, 앵두, 오미자 등을 갖고 효소액을 만들어 뒀다. 부추전, 호박전 등 제철 부침개를 내고, 본식으로 경남 거창의 한마을에서 키우는 가고시마 흑돼지를 수육으로 낸다. 과일즙을 이용한 김치에다, 박·가지·당근채 등 세 가지 나물, 미역조림·애기고추찜·멸치볶음이 놓인다. 두유 상태에서 간수를 사용하지 않은 전두부가 나왔다. 이어 고구마줄기 김치, 물김치, 우엉잎털이, 장아찌(연근, 방풍나물, 오이), 잡채, 가자미구이가 차려졌다. 본식 먹을 때 현미밥과 추어탕(토란대·고사리·배추우거지·양파 등을 넣고, 미꾸라지를 직접 으깨 베이스 육수를 만들어 요리), 토장국 등이 나온다. 식후 디저트는 부부가 직접 만든 전통차를 내고, 이밖에 직접 만든 다식과 양갱도 준다. 샐러드와 물김치를 조금 보강한다면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가장 맘에 들었던 대목은 주방 멤버가 막강하다는 사실. 찬모 김승자씨는 요리연구가이고 사찰요리에 특히 관심이 많다. 영양사 이옥선씨가 직접 서빙을 한다. 찻물로 설거지를 자주 한다. 설탕도 거의 사용하지 않지만 굳이 사용할 경우 저당도 백년초 설탕을 쓴다. 이건 다식을 사용하고 난 후에 나오는 설탕을 물과 백황설탕을 1대 1로 끓이다가 완전히 끓어 별사탕 액화될 때 백년초 가루를 넣는다. 거기에 백년초가 물들여진다. 저어주면 각질처럼 가루화된다. (053)314-6686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9.21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11) 대구시 수성구 두산동 ‘김실장 참치’ 김덕기
부산시 서구 암남동 감천항 동편부두. 국내에서 유통될 냉동참치는 거의 여기에 다 모인다. 물론 국내 참치 전문점도 여길 통해 냉동 참치를 가져온다. 세계 최고의 참치 소비국인 일본의 냉동참치는 일본 혼슈 시즈오카현 시미즈(淸水)에서 가장 많이 팔려나간다. 시미즈는 연간 40만여t이 잡히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의 제너럴 산토스시와 함께 최고의 참치항으로 불린다. 2007년 여기서 2.74㎞ 참치초밥말이가 완성된다. 참치(마구로·Tuna). 참 처절하게 독한 놈이다.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고 오직 전진뿐이다. 온 몸이 혈관 덩어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붉은살 생선의 대명사가 될 수 있었다. 참치는 크게 4종류. 최고급 참다랑어는 일본 최대 참치 매매시장인 도쿄 스키치 시장에서 거래된다. 다음 단계는 눈다랑어, 황다랑어, 저급 어종인 새치로 분류된다. 그동안 예식장, 뷔페 등에서 슬쩍 등장했던 대구포 빛깔의 저급 ‘기름치’. 이놈은 참치과에 포함시킬 수 없는 천한 어종.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올해부터 섭취 시 급성 소화기계 장애를 일으키는 기름치에 대해 식품원료로의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혼마구로(참다랑어)는 참치 중에서 가장 귀한 대접을 받는다. 한때 자연산밖에 없었다. 이젠 양식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 소재 글로벌영어조합법인 같은 데서 나온다. 대구의 참치문화는 어떨까? (사진=대구시 수성구 두산동에 위치한 ‘김실장 참치’의 김덕기 셰프) ■ 욕 먹으면서 큰 포항촌놈 지역에서 제대로 된 참치회를 먹으려면 어디로 가야될까? 고수들이 골목마다 숨었겠지만 그래도 수성구 두산동 ‘김실장 참치(오너셰프 김덕기)’를 가장 주목한다. 일단 확인에 들어갔다. 참치 해동 노하우 때문인지 살점이 살아 있다. 모르긴 해도 김 셰프는 냉동참치의 해동비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눈다랑어 턱살, 머리눈살, 가마도로(참다랑어 목살), 오도로, 메카도로(황새치 뱃살), 머리뽈살, 눈다랑어 머리입천장살…. 사각상자에 놓인 무채 위에 꽃처럼 앉아 있는 여덟 부위의 참치. 뭐랄까, ‘8색 무지개’ 같았다. 오도로는 너무 싱싱해 기름이 거문고 소리처럼 흐르고 있었다. 포항시 북구 장성동에서 태어난 그는 16년전 북부해수욕장 근처의 한 횟집에 들어갔다. 회가 뭔지 기본기를 쌓는 시기였다. 그는 요리학원보다 실전을 익혔다. 뒤에 포항의 한 일식당에 들어가서 5년간 튀김, 초밥, 메밀소바 등 일식 전반에 대한 기본을 닦는다. 가끔 참치에 대한 공부도 했다. “난 역시 이 길이었다. 감이 오더라. 적성에도 맞고 해서 일단 일식 조리사가 돼 보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포항이 점점 좁아보였다. 그래서 경기도 분당으로 올라가서 거기에 있는 참치집 ‘이야코’에 취직한다. 거기서 해동참치에 대한 상당한 노하우를 배운다. “저는 여느 흰살생선 회 치듯이 하면 참치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더라. 참치는 보통 사람은 제대로 해동시키지도 못하고 해체는 언감생심. 자칫 크게 다칠 수 있다.” 소금물에서 참치를 너무 녹여, 또 어떨 때는 덜 녹여서 욕을 엄청 얻어먹었다. 가장 어렵다는 대가리살 발라내기. 붙은 살점을 발라낼 때도 제대로 된 크기와 굵기가 나오지 않아 버릴 수밖에 없다. 염분이 적당해야 잘 녹는데 소금을 덜 넣어 혼이 나기도 했다. 옆에서 보는 건 쉽다. 하지만 그게 손에 익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한 지를 절감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참치를 먼저 알고 회를 알면 너무 힘들고, 일반 회를 거친 다음에 참치로 와야 고수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는 포항에서 대구로 와서 대구KBS방송총국 맞은편 대마참치의 실장으로 있었다. 작년 1월 자기 이름을 걸고 동원참치를 열었고, 지난 6월 상호를 김실장 참치로 바꾸었다.(053)766-5252 마지막 해동단계 종이로 래핑 뱃살에도 좋은 부위 따로 있어 대가리에서만 네 종류 살 나와 1인분 4만원은 돼야 진미 맛봐 동공 오염…‘눈물주’ 안 권해 ■ 김 셰프, 참치비밀을 말하다 -무한리필, 이건 참치를 모독하는 말인 것 같다. “고급 해동참치는 최소 1인분 4만원 이상이다. 심지어 오도로 같은 고급 뱃살은 한 점 가격이 1만원이다. 일본 혼마구로 267㎏이 8억5천만원에 팔렸다. 어떻게 무한리필이 가능하겠는가. 일종의 호객을 위한 구호라고 봐야 된다. 물론 저가 새치류, 거기다가 먹어서 안되는 기름치를 갖고 장난친 업자들도 많았다. 일반인들은 우리 집도 그런 참치를 파는 줄 안다. 먹어보면 단번에 알지만 억울할 때가 많다.” -대구가 원래 참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얼큰·화끈한 음식을 즐기는 대구사람들. 참치는 그런 대구에서 정착하는 데 조금 힘들었다. 특유의 기름진 맛 때문에 지역민들한테는 그다지 어필되지 못했다. 다들 광어, 도다리, 가자미 등과 같은 흰살 생선에 더 매료됐다. 하지만 2000년 들어서면서부터 불포화지방산(DHA) 때문에 기능성 생선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다. 동원, 사조 등 국내 대표적 참치 브랜드가 참치붐을 일으킨다. 이와 더불어 진성참치 등 저가 무한리필 참치 브랜드가 떼지어 밀려온다. 1인분 1만5천~2만원 참치를 주문하면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고 했는데 각론으로 들어가면 그게 발목을 잡았다. 해동이 제대로 안 된 꼭 슬러시 같은 참치 앞에서 많은 실망을 했다. 사람들은 ‘싼게 비지떡’이란 말을 되뇌곤 했다.” -참치의 맛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일단 해동맛이다. 영하 60℃ 이하에서 얼려진 걸 상온에서 녹여야 하는데 이 과정에 맛이 많이 비틀어진다. 다음에는 칼맛이다. 통마리 해체쇼를 할 경우 단칼에 참치의 뼈를 중심으로 한번에 내리꽂아야 하는데 첫 칼을 앞으로 넣을지 뒤로 넣을지를 잘 판별해야 좋은 단면이 나온다. 대가리의 경우 부위별로 살을 발라내면서도 적당한 크기를 유지시키는 게 매우 어렵다. 마지막엔 생고추냉이와 간장이 맛을 좌우한다. 참치 문외한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참기름에 찍어먹거나 김에 싸먹는다. 정석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다. 완성된 맛을 10으로 볼 때 이렇게 먹으면 5정도의 맛밖에 알지 못한다.” (영하 60℃. 이 온도 이하라야 조직사이 수분이 균일하게 얼어 나중에 해동할 때 물이 흐르지 않는다.) -참치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손님도 많은 것 같다. “참치가 좋다면 생고추냉이와 진품 간장만 있으면 다른 건 별로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참치에 마늘을 걸치고 된장 바르고 상추에 싸먹으면 이건 참치메뉴에 대한 치욕스런 처사다. 소금 머금은 참기름, 김도 사족이다.” -셰프 서비스로 자주 등장하는 참치 눈물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굳이 먹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이 주긴하지만, 동공이 세균에 오염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 난 단골에게 내놓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대가리에선 몇 가지 살이 나오나. “눈·머리볼·입천장·정수리살이다.” -뱃살도 소 안심처럼 더 좋은 부위가 있다는데. “난 주로 30~70㎏급을 많이 사용하는데 뱃살은 네 토막 낸다. 그 중에서 대가리 가까운 쪽에서 두번째가 가장 좋다.” (소의 안심도 보통 다섯 토막을 내는데, 그중 단면적이 가장 넓고 제일 맛있는 부위를 ‘샤토브리앙’이라고 한다.) -김실장의 해동법이 정말 궁금하다. “부산에서 한꺼번에 1억원어치 사갖고 와서 가게 근처 내 개인 초냉동고에 보관한다. 통상 조직에 다른 영향이 미치지 않게 영하 60~70℃에서 보관한다. 영하 30~40℃면 조금씩 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너무 얼려도 문제다. 가령 영하 250℃ 이하면 색깔이 빨리 변색된다. 육즙도 빨리 말라버린다. 한 달 이상 보관해도 좋지않다. 검게 변하고 그럼 비린내가 나서 사용 못한다. 해동시키려면 해동수를 30℃로 유지하고 소금을 적당량 넣어주는데 냉동 참치가 뜰 정도면 된다. 핏기 제거하고 핏물이 스며나오면 40~50% 해동된 것이다. 이때 머리와 몸통을 분리하면서 재단을 한다. 실온에서 20~30분 90% 해동을 시켜준다. 마지막 해동절차는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데 식용 해동지(解凍紙)를 래핑해서 서서히 숙성시키듯 녹여야 된다. 그걸로 싸두면 완전하게 녹고 그걸 다시 싸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하지만 장시간 그대로 두면 검게 변한다. 1시간마다 새것으로 갈아줘야 된다. 수건은 비위생적이라서 사용하지 않는다. 말은 쉽지만 잘 녹이고 칼질을 잘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leekh@yeongnam.com
2012.09.07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10) 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뺑 드 깜빠뉴’ 박영태 오너셰프
■ ‘대한민국 제빵의 전설’ 김충복 선생에게서 배우다 그는 오른쪽 다리수술 후 입원 중이었다. 깁스도 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가 중요하니 굳이 자기 빵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빵 만드는 것처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본 모양이다. 대구시 달서구 월광수변공원 입구에 있는 ‘뺑 드 깜빠뉴(시골빵집)’ 출입구 옆 벤취에 그는 잘 숙성된 식빵처럼 앉아 있었다. 기자는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이 집의 만만치 않은 인기도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식재료는 절대 거부하고 유기농·친환경, 게다가 특허출원된 콩유산균 발효종으로 빵을 만들어 까다로운 입맛을 가진 소비자들한테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푸드블로거 사이에 확산중이었다. 스튜어디스 미소 못지않은 자상한 미소로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그의 아내가 “우리는 남은 빵은 재고로 안남기고 그날 모두 필요한 곳에 나눠준다”고 했을 때 색다른 직감을 받았다. 직접 밀가루를 갈아 사용하기 위해 일본에서 소형 목제 제분기를 수입했고, 5천만원대의 독일제 돌오븐기 미베까지 갖고 있다고 해서 ‘빵집 주인을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뺑 드 깜빠뉴의 오너셰프 박영태(50). 그는 “빵은 나를 지키는 자부심이자 자존심”이라고 했다. 그는 ‘맛있는 빵보다 건강한 빵이 더 귀하다’고 믿는다. ‘모두 맛있는 빵에 최면이 걸려 있기 때문에 건강에 안좋은 저급한 식재료가 우리의 혈관을 괴롭히고 있다’고 봤다. 건강한 빵은 재주가 아니라 ‘신념의 산물’이란다. 그는 ‘인복(人福)’이 남달랐다. 기술은 책에 있는 게 아니라 장인의 머리 속에 있다는 걸 알고 고수를 혈육처럼 섬겼다. 대한민국 제빵업계의 신화적 존재인 고(故) 김충복, 대한민국 생크림케이크의 돌풍을 일으킨 대구밀탑제과의 창업멤버였던 황일하, 화과자의 비밀을 고스란히 전수해준 일본 히로시마에 있는 제과점 ‘뿌아 부리에르’의 오너셰프 이치하라 마가누사가 모두 그의 사부였다. 32년 제빵인생 중 30년은 빵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쏟았다. 1999년 경주 황성동에서 랑꽁뜨레(프랑스어로 ‘만남’이란 뜻)를 열어 대박을 쳤다. 원래 95년 울산 서남동에서 독자적인 빵집 ‘파라로렐’을 열었는데, 아토피가 너무 심한 아이를 위해 공기 좋은 경주로 이사간다. 대구로 온 것은 일종의 진검승부였다. 서울서 내려온 공룡급 공장빵들이 대구를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엄청 상했다. 한때 대구밀탑베이커리의 승부사였던 그는 ‘명품 골목빵집이 새로운 빵 시대의 견인차가 되어야 된다’고 믿고 경주 빵집을 후배한테 주고 대구로 올라왔다. 입지전적인 인물들이 그렇듯 어릴 때 그의 가계는 바닥권이었다. 동생을 받아내던 아는 산파 할매가 소년가장처럼 살아가는 그를 위해 제빵업계로 떠민다. 할매의 둘째 아들이 울산에서 빵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곳 공장장의 추천으로 서울 김충복 사단에 들어간다. 거기서 대구밀탑베이커리의 신화를 이뤄 김충복 사단에 스카우트된 황일하를 만난다. 조선아케이드점 보조기술자로 들어온 박영태는 이후 김충복 사단에서 벗어나 1983년 대구밀탑에 입사한다. 대구밀탑은 런던·뉴욕·뉴델·맘모스 등 지역 토호급 빵집을 주눅들게 했다. 빵 나오는 시각을 입구에 공개할 정도로 업그레이드된 경영을 했다. 가스오븐 대신 전기오븐, 심지어 발효실까지 갖추었다. 또한 잠시 서울로 갔다가 88년 다시 대구로 와서 생크림케이크 시대를 개막시킨다. 현재 뺑 드 깜빠뉴는 대구에 세 곳(수변점·상인점·범어점)을 직영한다. ■ 박영태 셰프 일문일답 -경주 빵집도 잘 되는데 굳이 대구로 온 이유는 뭡니까. “대구가 원래 윈도 베이커리 전통이 깊은 곳이죠. 그런데 정형화된 프랜차이즈 빵집이 대구를 좌지우지하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입니다.” -개업 준비는 어떻게 하셨어요. “2009년 12월 오픈전 채 경력 2년도 안되는 애숭이를 데리고 오픈 준비를 했습니다. 1달간 하루 80ℓ드럼 3개 분량의 빵을 내버리면서 팀워크를 조정했습니다. 어떤 분이 ‘빵을 버리지말고 자기한테 주면 안되냐’고 했을 때 저는 ‘제대로 되지 않은 빵은 절대 남에게 먹일 수가 없다’고 보고 버린 빵을 가져가지 못하게 물을 부어놓았습니다. 도예가가 흠집있는 작품이 아까워도 모두 부수는 것과 진배없죠.” -현재 깜빠뉴가 다른 제과점에서 전혀 시도하지 않은 경영 기법은. “재료가 남다르다고 자부합니다. 국산 팥을 직접 끓여서 앙금을 만들고, 오미자·복분자·딸기·매실 등을 재워서 사용하고 밤도 직접 끓여 사용합니다. 인공향료와 냉동 제품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향이 못할 수도 있지만, 건강하다는 믿음 하나로 고수하죠. 재고관리도 좀 특별납니다. 빵 종류는 당일생산 당일판매를 목적으로 하고, 남은 빵은 다음날 재사용하지 않고 푸드뱅크를 통하여 기부합니다.” -새로운 식재료 발굴에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죠. “불어는 잘 모르지만 매월 프랑스에서 발간되는 월간지 ‘라 듀날드 파티쉐리’를 보면서 재료에 관한 이론이나 신제품 정보도 얻고 있습니다. 한때 일본의 교보문고와 같은 기노쿠니아에 가서 닥치는대로 일본요리원서를 사갖고 왔어요. 현재 외국원서 800여권, 국내 제빵 관련서 600여권을 갖고 있습니다.” -특허출원한 콩유산균 발효종이란 어떤 거죠. “원래 아토피가 심한 아이를 위해 고민하다가 개발하게 됐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콩유산균은 ‘소이팜’이란 제품으로 순식물성 단백질 식품 대두를 발효시켜 만든 콩유산균을 액체상태로 만든 콩유산균과 분말상태로 만든 파우더 제품이 있습니다. 콩유산균 이용 테스트 결과 제품 만들기에는 섭씨 35℃, 18시간 발효가 가장 적합한 것 같습니다. 식빵 1g당 모두 4천200마리의 유산균이 있는데 흥미롭게도 계란 배합량이 높을수록 유산균수는 되레 감소한다는 사실도 임상시험을 통해 검증했습니다.” -정말 잘 된 빵을 구분하는 법은. “이론상으로 유산 75%, 초산 25%의 빵이 가장 맛있고 잘된 빵이라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저도 아직 그런 빵을 먹어 보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제 빵을 유산이 몇 프로인지 초산이 몇 프로인지까지는 과학적인 검정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죠. 다만 제대로 공정과정을 거쳐서 정직하게 만들어진 빵을 드셨던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는 빵이 잘 된 빵이라고 봅니다.” -빵의 방부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제가 요즘 주제로 삼는 말이(세미나 때 마다) ‘맛있는 빵보다 건강한 빵이 우선이다’죠. 양산빵이나 냉동빵 또는 프랜차이즈빵에는 화학개량제가 안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윈도 베이커리는 대부분 빵이 당일 생산 당일 판매이기 때문에 그런 재료가 필요가 없겠지요. 혹자들이 말하는 밀가루 음식이 소화가 안 된다는 말들은 밀가루가 아니라 그런 빵 속에 들어 있는 화학 재료들 때문이죠.” -현재 우리의 생크림 문화에 대해 알려주세요. “생크림과 휘핑크림을 구분하지 않고, 마가린 크림과 버터 크림을 구분하지 않는 나라는 아마 우리나라밖에 없을 겁니다. 그 허술한 법률을 악용하여 공룡업체들은 제일 싸구려 재료로 선심쓰는 양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상당수는 코코넛 팜유 같은 것에 전지분유와 유화제 등을 넣은 휘핑크림을 사용하지만 저는 유통기한이 1주일도 안되는 생크림만 사용합니다.” -올챙이 후배들에게 성공적인 제빵인이 되기 위해 어떤 자세를 갖고 어떤 경영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3년만 미쳐봐라’고 당부하고 싶네요. 윈도 베이커리가 프랜차이즈에 비해서 모든 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근무시간, 휴무 일수, 월급 그 어떤 것도 웬만한 윈도 베이커리가 프랜차이즈를 이길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기술만은 아닙니다. 프랜차이즈의 3년은 몸도 편하고 돈은 좀 더 받을는지 몰라도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데 있어서는 윈도 베이커리가 더 경쟁력이 있겠지요.” ▨취재후기= 모르긴 해도 그는 ‘대구의 김탁구’가 될 소양을 다 갖춘 것 같다. 좋은 재료에 목숨을 걸고 재료를 속이지 않으니깐. 그런데도 그는 아직 많이 배가 고프단다. 선보이고 싶은 제품은 아직도 60%도 보여주지 못했단다. 그가 1992년 일본의 한 기술자한테 배워 감명받은 일본식 유럽빵인 ‘노와레장(호두와 건포도란 뜻)’을 택배로 보내왔다. 먹어봤다. 시큼했다. 맛있지 않고 ‘건강한 것’ 같았다. 혀보다 맘을 움직이는 맛이었다. 모닝깜(호밀과 밀가루와 전립분을 주재료로 만든 투박한 빵 ), 월넛(유기농 밀가루와 우리밀가루를 갖고 호두로 토핑한 것), 주종단팥빵(주종을 만들어 직접 끓인 팥으로 만든 빵) 등이 히트 친 이유를 알 것 같다. 지금 외래 빵 브랜드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 중앙으로 빠져나가는지 우리는 똑똑히 기억해야 된다.
2012.08.17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9) 대구시 수성3가 ‘커피인’ 이영재
경력이 있어야 커피도 좋다?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본다. 경력이란 어쩜 실력이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자들이 휘두르는 ‘칼’같다. 따라서 기본기를 익히는 절대적 시간은 사실 경력의 자장권에 포함시켜서는 안된다고 본다. 십년전이나 이십년전이나 비슷한 화풍, 가창력을 가진 화가와 가수는 실은 예술과 거리가 먼 ‘박제된 존재’들이다. 경이로움은 세월을 압축파일로 담을 줄 아는, 다시말해 절벽정신 같은 ‘집중력의 산물’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기자는 최근 지역의 바리스타 흐름에 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커피명가·다빈치·시애틀 잠못이루는 밤·핸즈커피·모캄보·브릿지·로스팅로보 등 대구발 커피 프랜차이즈보다는 평생 커피 자체에 목숨을 걸 사각지대 고수를 만나고 싶었다. 마침 한 파워블로거가 대구시 수성3가 119센터 근처에 있는 커피인(Coffee人)의 오너셰프인 이영재 바리스타를 추천해 주었다. ◆오픈 2년…핸드드립 마니아에 인지도 높아 수소문해보니 커피인은 생긴지 채 2년도 안됐다. 그런데 지역의 상당수 핸드드립 마니아들에게 꽤 인지도가 높았다. 이 셰프는 오전 7시30분쯤 일어난다. 숍에 나오면 8시30분. 가게 테이블 정리를 한다. 화장실도 실시간으로 체크한다. 위생이 무너지면 문을 닫겠다는 각오다. 내가 못 먹는 커피는 안 판다는 원칙 아래 커피 첫 잔을 직접 테이스팅한다. 요즘 우유팥빙수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토핑이 복잡하지 않은 심플한 옛날 버전이다. 그런데 이름이 재밌다. ‘사이 나쁜 팥빙수’, 혼자 많이 먹으려고 하는 과정에 한 사람이 토라질 수도 있다는 의미로 붙여진 것이다. 메뉴판 첫 페이지를 읽어봤다. ‘핸드드립 전문점, 주문 후 원두를 바로 갈아 한잔씩 손으로 내리는 대단히 슬로우 커피. 로스팅 한지 20일 넘는 원두는 버리고, 좋지 않은 원두에 인공향료를 과도하게 첨가한 헤이즐넛 같은 건 팔지 않는다’ 주변의 반응을 정리해봤다. ‘손맛이 있는 것 같다. 핸드드립이기 때문에 손맛이 있다. 재료에 대해 정직하다. 유통기한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오버된 걸 과감하게 버리는 게 너무 프로스러워 보인다. 청결도 장난이 아니다. 머신 같은 것도 다른 집에서는 대충 넘어가는데 정말 깨끗하게 닦는다. 밤중에 들러 주인 혼자서 1시간 이상 머신의 구석구석을 닦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뢰가 간다. 겸손하면서도 소신과 자존감을 갖고 있다. 원칙을 벗어나면 본인은 물론 더 나아가 선배도 정색하면서 비판한다.’ ◆아이스드립을 맛보다 이 셰프가 일본 홋카이도식 강배전(다크 로스트) 아이스드립을 한 잔 내민다. 10여분이 지났는데도 향과 맛의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마치 커피향 와인을 먹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보온병을 갖고 와 테이크아웃해가는 이들도 많다. 사실 여느 업소에서는 두배 가량 커피가 많이 소요되는 아이스드립을 경영상 꺼리고 있지만 여긴 자신있게 내민다. 그는 자신있게 로스팅 기계가 없다고 고백한다. 그 솔직함에 한 표를 주고 싶었다. 이밖에 다른 집에선 보기 힘든 에티오피아 모카·에티오피아 시다모·모카 하라도 있고, 세계 3대 커피로 불리는 예멘 모카 마타리, 하와이안 코나, 블루마운틴 넘버원 등 모두 12종류의 로스팅 원두를 지니고 있다. 토스트 하나도 생우유를 베이스로 반죽하도록 외주업체도 엄선했다. 공유와 배려 마인드를 존중한다. 그래서 골수 마니아들이 외국 갔다 고급원두 갖고 와서 선물을 주면서 드립해달라고 하면 기꺼이 서비스해준다. ◆경남 김해서 ‘진짜커피’를 만나다 이 셰프는 대륜고를 졸업하고 전문대 전자과를 나왔다. 커피집 사장, 젊은 시절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15년전 서울로 가 30명 직원을 둔 건설회사 ‘자딘’의 대표가 된다. 하지만 잘 나가던 사업이 부진에 빠지자 2006년 그만 접는다. 독신이라서 더 쉬웠다. 대구로 돌아왔다. 집에서 빈둥거리던 그에게 아버지가 요즘 커피가 트렌드라며 강력 추천한다. 일단 사업을 한번 해보자 싶어 커피 헌팅하러 전국 곳곳을 돌아다닌다. 그런데 커피에 감동 같은 게 없었다. 그냥 커피 수준이었다. 그냥 먹으니까 먹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사부가 되는 정원영 바리스타(55)를 경남 김해시 내외동의 한 커피점에서 만나 ‘진짜커피’를 접하게 된다. 6년전이었다. 에티오피아 커피 원두 중 가장 단단한 예가체프와 아이스드립, 이 두 개를 먹었다. 짐을 싸고 다음날 김해로 갔다. 원룸 잡고 설겆이부터 시작했다. 수업은 요즘 방식과 달랐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도제식 수업이었다. 1년6개월 전 현재 자리서 커피인을 차린다. 아직 그의 실력은 ‘발효중’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7.27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이영재 셰프 인터뷰
“사람의 욕심에 의한 인위적 사향커피 생산 반대 상당수 고객, 방송에 현혹 맛 등 본질 알려하기보다 그 커피점의 분위기 마셔” -요즘 몇 달만 배우고도 전문가 행세를 합니다. 커피전문가 인플레이션시대 같아요. “모든 걸 아는 것 같은데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지도 몰라요. 커피가 너무 세분화되어버렸습니다. 커핑이라고 해서 생두를 골라내는 전문가, 볶는 로스팅 전문가, 커피를 잘 갈아서 액을 추출해내는 드리퍼. 그런데 이걸 토털로 잘 하는 분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커핑전문가는 좋은 생두를 가져야 맛있다 하고, 로스터는 잘 볶아야 된다고 주장하고, 드리퍼는 잘 내려야 한다고 주장할 겁니다. 누구 말이 맞죠?” -커피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선 최소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갖춰야 된다고 믿습니까. “물과 원두가 만나는 타이밍의 절묘함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선을 긋기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하며, 10년 넘은 전문가도 한잔의 커피를 내릴 때는 진지함과 따뜻한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스프레소는 거의 무조건 쓰다는 것 이상의 담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에스프레소에는 좋은 거품(Crema·크레마)이 감지되어야 합니다. 시종일관 쓰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죠.” - 최근 고가의 ‘사향고양이 똥 커피’로 알려진 루왁이 마니아에게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희소성에 의해 비싸지는 부분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의한 것이니 고가의 커피에 대해서 어떤 답변도 못드리겠습니다. 다만 사람의 욕심이 부르는 인위적인 사향커피의 생산은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 커피숍 개점을 준비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충고와 고언을 주시죠. “기본을 모르면 반드시 흔들리죠. 초심·기본·원칙을 지키라는 겁니다. 누가 시킨다고 덜컥 오픈하지마세요. 좋은 생두와 좋은 원두를 볼 줄 아는 안목, 커피맛에 대한 미각의 훈련, 이것은 많이 마셔보고 많이 다녀봐야 합니다. 모든 걸 걸면 길이 보입니다.” -다들 로스팅룸을 경쟁적으로 설치하고 있는데. “요즘 로스팅룸이 마치 프로의 전유물인 것처럼 확대재생산 되고 있는데 저는 ‘글쎄요’란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정도 손님을 확보하면 나도 로스팅룸을 가진 것처럼 과대포장하고 싶은 욕구도 들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로스팅룸 운운하지 않는 것은 내가 커피를 평생의 업으로 갖고 싶은 맘 때문입니다. 커피 본질의 측면에서 볼 때 아직 커피의 맛이 본 궤도에 오르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로스팅룸이 자칫 치부를 감춰버리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맛을 알면서부터 겁이 나죠. 세상에 가장 맛있는 커피가 내가 볶아서 내가 내리는 커피라고들 하는데, 숍을 하는 이가 가장 경계해야 될 대목이라고 봅니다. 로스팅룸이 자칫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거죠. 저는 ‘바로 이거다’란 절대적 깨달음이 오기 전까지는 로스팅룸을 갖지 않을 겁니다. 임시적으로 로스팅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제 실험품이지 제품으로 내놓을 거란 생각도 아직 하지 않고 있어요. ” -요즘 고객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상당수 고객은 커피의 본질을 믿고 탐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취향, 자기의 트렌디한 커피 문화를 즐기러 이곳저곳을 방랑하고 있는 것 같아요. 커피 맛이 좋다고 하지만 실은 그집 커피 분위기를 마시고 있는지도 모르죠. 모 커피 브랜드의 경우 국내 가장 파워풀한 브랜드죠. 그런데 그게 어떻게 보면 방송과 언론 플레이 탓인 것도 같습니다. 다들 커피의 본질을 알려고 특정 업소에 가는 게 아니라, 다들 그 집이라고 언론 등에서 대서특필하니 아 거기가 커피를 제대로 하는 곳이겠거니 하면서 도취적으로 선택하는 겁니다. 그럼 어느 날 커피문화가 죽을 겁니다. 누가 요즘은 차문화가 대세라고 하면 모두 찻집을 차리겠죠. 대중적 취향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봐요.” (그가 ‘친하면 더 조심해라. 우리나라 사람은 친해지면 예의와 교양이 무너진다. 친한 단골에게 더 예의를 찾아라’는 말을 들려줬다. 그리고 전자동 머신에서 벗어나 수제로 넘어와 커피 추출액과 눈높이로 만나는 것. 그때부터 바리스타의 1장1막이 시작된다고 그는 믿는다. 그는 친절이 외식업의 마지막 필살기라고 본다. 프로적 우직함이 아마추어의 오도방정적인 싹싹함보다 한 수 위란 생각이다. 아직 배우는 바리스타를 굳이 인터뷰한 건 그가 커피를 배신하지 않을 거란 직감 때문이다. 그가 한눈 팔면 제보를 꼭 해달라.)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 (8) 대구시 범어동 '이자카야 휴' 김찬용
대구시 수성구 범어4동. KBS대구방송총국이 근처에 있는 여기는 참 애매한 상권이다. 대구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가장 심한 곳 중 한 군데. 식당주로선 어느 계층에 맞춰 마케팅을 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비일비재하다. 2008년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居酒屋) ‘휴(休)’를 이 섹터에서 오픈한 김찬용씨(43). 일본의 드라마 ‘심야식당’의 주인, 전직 야쿠자 출신 오너셰프가 그의 롤모델. 테이블은 5개. 8개의 통나무는 고무나무를 제재소에 맡겨 직접 만들었다. 그는 참 무뚝뚝하고 말수 없는 무미건조한 오너셰프로 악명(?)이 높다. 식당문을 열고 들어가도 살갑게 손님한테 쓰러지지 않는다. 아니 그렇게 할 겨를이 그에겐 없다. 홀 서빙 직원도 한 명 두지 않고 오직 혼자서 가게를 운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이 집 단골은 셀프서비스에 익숙해 있지만, 여느 손님에겐 참 불편하고 썰렁한 공간일 수 있다. 이런 고집스러움에 한표 주는 지역의 일본식 마니아들이 늘고 있다. ◆ 어머니의 손맛이 내 피속에 흘러 문경 출신으로 18세 때 대구로 올라온다. 옛 영남호텔 일식당에 들어가 청소와 심부름만 3년 한다. 이젠 세상이 변했다. 요즘 젊은 셰프들은 군기도 고생도 안 원한다. 되레 선배가 후배 챙겨야 한다. “요즘이 좋을 수도 있지만 저는 예전 방식에 더 믿음이 갑니다. 무식하게 가르쳐주고 잘 적응하지 못하면 얻어맞고 엄청난 수모를 당하는데 그렇게 안되기 위해 안간힘 쏟는 순간 기본기가 몸에 축적돼 훗날 독립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죠. 지금은 군기도 없고 규율도 거의 사라진 상황입니다. 이젠 첫날부터 레시피 주고 앵무새 교육 방식으로 기술을 전수시켜주죠. 이건 일종의 복사에 불과해요. 자기만의 맛의 줏대가 없고, 그 주방을 떠나는 순간 몸에 축적된 실력도 증발해버립니다. 그 결과 ‘얼치기 퓨전음식’이 난무하고 있는 겁니다.” 이어 동대구역 근처 JS호텔 주방부로 간다. 일식당에 있다가 한식부로 가서 한식을 배운다. 한식은 식재료부터 일식과 많이 달랐다. 생선, 해물류만 만지다가 나물류를 만지니 어려운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간장, 된장, 고추장, 젓갈류 등이 있는데 이게 어떤 식재료와 어떤 양으로 만나야 하는지를 알기 어려웠어요. 책에 나오는 레시피는 실제 맛과는 괴리감이 있습니다. 전골류가 특히 어려웠는데, 한식 전골은 일식 전골과 달라요. 스키야키처럼 만든 한국식 전골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습니다. 설탕, 소금, 식초, 간장, 조미료가 일식의 기본이에요. 한식에는 설탕부터 넣으면 된간장과 매치가 안됩니다. 밑간이 더 중요한데 불고기를 하더라도 기본 밑간을 고기부터 따로 해놓고, 그 다음에 전체 양념이 들어가고, 다음에 간을 총체적으로 정리합니다.” 한식은 계속 서서 음식에 집중을 해야 하는데 반면 일식은 딱 한 타임만 집중하면 된다. ◆ 서울에서 프로레시피 습득 서울로 올라간다. 1997년 선배 소개로 강남 역삼동 충현교회 근처에 있는 ‘에도스시’에 간다. 바로 옆에 한국 최고의 초밥왕 중 한 명인 남춘화 셰프가 운영하는 ‘남수사’가 있었다. 당시 그 언저리가 대한민국 일식 1번지였다. 쟁쟁한 일식 거장들이 운집해 있었다. 거기서 일식에 새로 눈을 뜬다. 가라스미(숭어알을 절여서 건조시켜 얇게 저며 김과 싸먹는다. 일본에선 고급진미요리)라는게 있는데, 그는 대구에서 그 메뉴를 듣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일식 요리사라고 으스대며 돌아다닌 지난 시절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서울 라마다르네상스 뷔페팀에 들어간다. 특급호텔의 전반적 상황을 배우게 된다. 이게 아니다 싶어 다 접고 일본으로 배낭여행을 간다. ◆ 일본 전역 답사기행 8개월간 벳푸, 도쿄, 교토, 오사카 등 신칸센 전루트를 돌아본다. 신칸센에 보이는 역이란 역은 다 내렸다. 현지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집에 가서 전반적 인테리어, 내부 음식 내오는 방식을 익혔다. “일본의 맛을 배우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기존 제가 알고 있는 맛에 일본에서 맛본 맛을 접목시켜보려고 했습니다.” 자신만의 일식 레시피라인 구축을 위한 벤치마킹 시절이었다. 하지만 일식도 맛은 별 것 아니란 믿음이 갔다. “맛 때문에 유명한 것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에 의해 더 유명해진 집이 더 많더군요. 일본 주방은 자기 것 하나만 철저하게 하면 되고, 반드시 그걸 한 뒤에 다른 것으로 넘어가는 게 장인정신으로 취급받는데 반해 한국은 한 개 하면서도 다른 것 지원사격도 해주고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맞고, 한국은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 나만의 공작소 같은 이자카야 99년 인터불고호텔 상설 뷔페를 진두지휘한다. 과감하게 뷔페라인을 바꾼다. 그는 해산물·초밥만 전담한다. 초밥과 해산물류 반응이 매우 좋았다. 야키소바, 즉석초밥, 광어회, 삶은 대게 등이 호평받는다. 이 때문에 딩컴, 시하우스 등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어느 날 나만의 식당을 꿈꾼다. 그래서 휴를 연 것이다. “현재 자리를 정한 이유는 제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인테리어와 설계도 제가 했습니다.” 어떤 메뉴가 좋을까? 일본 라멘과 돔부리 전문점으로 갔다. 생라멘을 서울로부터 공수받았다. 현재 한국에 생라면을 제대로 제조할 수 있는 데는 서울에 한 곳이 있다. 라멘 육수와 소스도 전부 그가 만들었다. 그런데 오픈 직후 손님이 들지 않았다. 밖의 인테리어가 극도의 젠스타일이라서 고급스러워 쉽게 접근하지 못했다는 걸 조금 뒤 알게 된다. ‘음식에 승부를 걸자’고 다짐한다. 시오(소금)라멘, 소유(간장)라멘, 미소(된장)라멘 한 그릇 당 7천원 정도 받았다. 당시 서울에는 1만3천원선. 제조 원가가 4천500원 이상이었다. 마이너스 행진이었다. 6개월째부터 손님이 확 늘었다. 보통 오전 11시~오후 1시, 오후 5~7시 손님이 집중됐다. 메뉴도 제각각이라서 일이 너무 힘들었다. 직원도 혼자였다. 경영합리화 측면에선 꽝이었다. 나만의 뭔가가 있어야겠다싶어 과감하게 메뉴를 정리하고 이자카야버전으로 넘어간다. 숙주볶음, 생선초밥, 장어덮밥, 장어구이, 야키소바, 청어사시미 등이 잘 팔렸다. 그런데 재료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현재 생선 종류는 이현동 수산시장, 채소는 팔달시장, 일본 직수입품은 온라인을 통해 구매한다. 오프라인 상에서도 몇몇 업체가 있지만, 없는 물품도 많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싸다. 가령 허브, 특수채소류 등을 구하려면 적어도 1~2일 선주문을 넣어야 한다.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하루만에 물건이 온다. 차조기잎(우메보시 붉게 물들일 때 사용), 식용꽃 등도 다른 선을 통해 갖고 온다. 우니(성게알)는 물론 생와다(해삼 내장) 등도 미리 비축을 안 해놓거나 갑자기 떨어지면 구할 방법이 없다. ◆ 휴의 단골 메뉴 휴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건 숙주볶음이다. 일명 ‘야사이야키’로 불린다. 일본 이자카야에 가면 숙주와 베이컨을 섞어 볶아낸 게 있는데 그는 숙주나물, 돼지목살, 양파, 청홍피망, 소스(야키소바베이스) 등을 갖고 새롭게 탄생시켰다. △쇠고기 다다키= 한우를 덩이째로 스테이크처럼 살짝 구운 뒤 식혀서 칼로 얇게 저민다. 양파, 무순, 실파, 마늘편, 소스(폰즈와 발사믹 드레싱, 와우베네싱) 등이 섞인다. 이 메뉴 개발에 하루 걸렸다. 기존 일식 육고기와 비슷한 ‘마구로 다다키’가 있는데 이를 참치 대신 쇠고기로 대체시킨 것이다. △주꾸미젓갈= 그만의 정성이 들어가 있다. 주꾸미에 소금을 넣고 영하 5~10℃ 냉장고에서 최소 15일 정도 숙성시킨다. 이후 끄집어낸 뒤 염분을 채에 걸러 씻어내고 거기에 쌀겨, 식초, 술찌끼미(팔공 불로막걸리 공장에서 가져온다)를 넣고 3일 더 숙성시킨다. 완성된 걸 걸러서 안에 묻어 있는 술찌끼미와 쌀겨를 씻어낸다. 거기에 청·홍초, 오이 염장한 걸 함께 넣고 무쳐놓는다. 슬라이스 한 문어를 곁들여 먹으면 된다. △나가사키 짬뽕= 작년부터 낸다. 채소를 볶아서 하는 건 일본식과 같은데 면이 다르다. 국내산 냉동 우동면을 사용한다. 육수가 걸쭉하면서도 시원하다. 그 이유는 닭뼈육수 때문이다. 칠성시장에서 구해 온 닭 통뼈, 생오징어 20마리 정도, 돈족 한 쌍만 넣고 7시간 정도 우려낸다. 한국처럼 무와 양파, 대파를 넣지 않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농축액을 얻기 위해서다. 한달에 1~2번 끓인다. 별도 육수도 만드는데 닭뼈, 양배추 껍질, 양파 껍데기, 무 껍데기, 대파, 다시마, 통생강, 마늘을 넣고 1시간30분 끓여 식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매일 매일 사용한다. ◆ 후배한테 한 마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한 길만 가라. 귀가 얇아서도 안된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셰프의 운명도 갈라진다. 오너셰프란 정직해야 한다.” 저녁 7시30분부터 새벽 2시까지 장사한다. 휴무는 매주 월요일. 가격은 단품메뉴당 약 1만5천원. (053)751-0180 예약전화 010-3807-6464.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6.22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日에 대구육개장 파는 ‘대구탕집’ 있다
‘대구육개장을 따로국밥과 합쳐 ‘대구탕’으로 통칭하면 어떨까.’ 그런 의견을 얼마전 지역 음식 관계자들에게 제시한 적이 있다. 반응은 별로였다. 대구시 공무원들도 대구탕은 한자로 적어놓아야 그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에 홍보용 용어로 적절치 않은 것으로 봤다. 이 지면을 통해 여러번 언급했지만, 대구탕은 의미상 3가지 버전이 있다. 따로국밥도 실은 대구육개장의 범주에 들 수 있는데 그럼 대구탕은 뭔가. 대구탕은 육개장의 옛날 명칭이다. 육개장은 일명 쇠고기국인데 소를 함부로 도축할 수 없던 예전에는 소 대신 개를 잡아먹었다. 일명 ‘구장(狗醬·개장)’이라 했는데 별칭으로 개를 대신 한 육개장이란 의미로 ‘대구탕(代狗湯)’이라고도 불렀다. 물론 생선 대구(大口)로 만든 대구탕도 있고, 일제강점기 때만 해도 대구가 전국 최고의 육개장 도시다 보니 ‘대구에서 팔리는 육개장’을 축약해서 ‘대구탕(大邱湯)’이라 했다. 따로국밥이란 말이 생긴 건 6·25전쟁 때, 그 이전 대구육개장은 대구탕으로 더 많이 불렸다. 이런 사실은 소설가 김동리, 한국 최고의 식품사학자 중 한 명이었던 대구 출신의 이성우 박사가 자신의 저서 ‘한국요리문화사’(교문사·1985년)에 잘 언급해 놓았다. ◆ 40년째 영업 ‘고베의 명물’ 아무튼 기자는 잃어버린 대구탕의 흔적이 정말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대구시 북구 읍내동 동네잔치메기탕 박경식 사장한테서 연락이 왔다. 일본 고베에서 전통 대구탕 전문점을 경영하는 일본교포가 대구에 온다고 했다. 물론 생선 대구탕이 아니고 쇠고기국 버전의 대구탕이니 호기심이 더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이종수씨(75)를 따로국밥 원조 ‘국일따로식당’에서 어렵게 인터뷰할 수 있었다. 그는 고향에 계시는 노모 생신에 입국했다. 이씨는 경북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출신으로 대구상고 1학년 때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해서 큰아버지가 있는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하지만 세상은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잘못된 인연 때문에 적잖은 돈도 잃어버렸다. 그렇게 해서 엘리트의 꿈을 버리고 조리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음식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도쿄의 ‘명성원’에 들어가서 거기서 ‘일본식 육개장’ 요리술을 틈틈이 배우게 된다. 매운 한국식 육개장과 달달한 일본식 육개장을 절충해나갔다. 아들이 없는 명성원 주인은 성실한 이씨를 양아들로 잡으려 했다. 그는 거기서 배운 음식 솜씨로 독립을 했다. 40여년전 고베시 나가다에 대구탕집 ‘마루야카’를 오픈한다. 물론 교포를 대상으로 시작한 것인데 이제는 꽤나 유명해졌다. 홋가이도, 규슈에서도 택배 주문이 올 정도로 고베의 명물이 됐다. 하지만 10년전 고베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그의 가게는 쑥대밭이 된다. 한국말을 알아서 KBS와 인터뷰도 했다. 교포 이종수씨 40년전 문 연 이후 日전역 배송 등 음식명소로 키워 양지머리 대신 소꼬리 이용해 눈길 부재료도 무 빼고 콩나물·미소된장 고사리 등 사용 얼큰한 맛보다는 시원하고 감치는 맛… 대구보다 더 뻑뻑 대덕식당 선짓국에 가까운 스타일 ◆ 감미로운 일본식으로 변주하다 이씨에게 대구탕의 유래에 대해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고향에는 아직 94세 된 노모가 살고 있다. 어릴 적 그 노모가 끓여준 경상도 육개장 맛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마루야카를 개업할 때 고향을 생각한다는 의미와 교포에게 한국식 쇠고기국의 추억을 선물한다는 의미를 담아 대구탕(大邱湯)이란 메뉴를 내건 것이다. 애향심이 남달랐던 것 같다. 마루야카 메뉴판에는 가타카나로 ‘テクタン’를 병기해놓았다. 이씨의 대구탕에는 양지머리와 같은 정육이 들어가지 않고, 소꼬리를 식재료로 사용하는 게 흥미로웠다. 채소류의 경우 대구에서는 무, 대파, 마늘이 축을 이루는데, 그는 콩나물, 젠마이(고사리), 이밖에 파와 마늘, 고춧가루, 심지어 미소된장까지 풀어넣었다. 그런데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무는 없었다. 고춧가루도 우리처럼 매콤한 마른 홍고추가 아니고 일본 고춧가루를 사용했다.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조리용 술인 미림까지 넣었다. 미소된장, 고춧가루, 간장, 맛술, 설탕 등으로 양념을 만들었다. 얼핏 보기에 토장국에 꼬리곰탕을 섞은 스타일로 보였다. 모르긴 해도 일본인들의 입맛까지 겨냥해 매콤한 것보다는 시원하고 감치는 국으로 변주를 한 것같다. 그는 청양고추 맛이 스며들면 상당수 일본인들이 먹지 못한다고 했다. 곁반찬은 김치, 오징어젓갈, 나물류로는 콩나물, 시금치, 무생채 등을 올려놓았다. 김치는 일본식 기무치가 아니라, 한국식 김치에 가깝도록 담갔다. 새우젓과 오징어젓갈을 반반씩 섞고 거기에 생강, 마늘, 쪽파, 깨, 양파를 넣고 믹서에 넣고 갈아 김치 발효용 소스로 집어넣는다. 마루야카 대구탕은 우리의 육개장보다 더 뻑뻑하다. 대구의 대덕식당 선지해장국 스타일에 가까웠다. 감미로운 쇠고기국이었다. 통상 일본에서는 젓가락으로 밥을 먹고, 국은 차처럼 들고 마시는데 그는 밥은 젓가락, 국은 숟가락으로 먹도록 유도했다. 초창기에는 일본인과 한국인 비율이 7 대 3이었는데 이젠 맛이 인정돼 일본인이 더 많이 온다. 고베시에만 이런 스타일의 대구탕 집이 몇 개 더 있단다. 한 그릇 가격은 낮에는 900엔, 저녁엔 600엔. 나름 맛을 유지하는 바람에 고베관광지도는 물론 전국음식명소에도 소개됐다. 타지에서도 찾는 바람에 냉동시켜 냉동탑차로 하루만에 일본 전역으로 배송도 하고 있다. 이씨가 소꼬리를 이용하는 이유에 대해 대답했다. “소꼬리 하나를 시장에서 사올 때 500엔 정도 준다. 약 20인분 잘라 사용할 수 있는데 뿌연 육즙을 만드는 사골과 달리 아주 맑고 담백한 맛을 내기 때문에 정육 대신 소꼬리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 장남 이규석씨(40)가 가업을 잇는 수업을 받고 있단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6.15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오너세프를 찾아서 (7) 대구 대명동 '청마루' 김옥주
그녀의 별명은 ‘미세스 결벽증’. 손길은 ‘토란잎의 물방울’ 같다. 그녀에겐 나름 음식철학이 있다. “음식은 맛으로 먹지 말고 기운으로 먹어야 하고, 따라서 ‘쌩얼’ 같은 식재료를 맛보게 해줘야 한다.” 그래서 근처 식자재백화점이나 마트의 식품코너를 절대 기웃거리지 않는다. 밥상에 올라가는 식재료는 모두 그녀의 검수를 받아야 올라갈 수 있다. 너무 ‘클린 버전’으로 살아서 주위 사람들이 항상 긴장한다. 룸과 주방의 청결도가 거의 같다고 했다. 확인하기 위해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허걱, 장판바닥이었다. 눅진거림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심지어 환풍구 근처 타일벽에서조차도 기름기가 감지되지 않았다. 매달 한번씩 대청소를 한다. 대형 냉장고에 쌓인 재고품도 다 밖으로 끄집어내고, 덕지덕지 붙은 성에도 깔끔하게 제거한다. 전남 신안군에서 갖고 온 천일염도 바로 사용하지 못한다. 대바구니에 수북하게 소금을 부어놓고 그 위에 수돗물을 끼얹어 세척한다. 그걸 말린 뒤 중금속 기운을 날려보내기 위해 프라이팬에서 볶는다. 물론 간수 빼는 건 기본. 도마 4개, 칼 7자루도 무조건 매일 삶는다. ‘청마루’는 대구시 남구 대명동 앞산순환도로 먹거리타운 이면도로 주택가에 앉아 있다. 창을 통해 앞산 정상부 봉우리 3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오전 10시부터 전투 개시. 그녀는 찬모와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 해야 될 메뉴에 대한 전체적인 얼개를 알려준다. 웃자란 손톱이 보이면 미소를 머금으면서 ‘벌초를 해주면 더욱 좋겠다’고 부탁한다. 음식 재활용은 엄금. 심지어 남은 음식을 임시로 받아두는 음식쓰레기통도 매일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주방에서는 반지도 끼지 못하고, 매니큐어도 노 생큐. 배출되는 허접 음식물도 극도로 줄여서 그런지 남구청 환경미화원들 사이에선 음식쓰레기 가장 적게 나오는 식당으로 불린단다. 한식을 더 깊게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해 1~2년 과정으로 모두 22회에 걸쳐 한식요리를 가르쳐주고 있다. ◆ 한때 동성로 왕비다방도 운영 토속한정식 전문 ‘청마루’의 김옥주 대표(67). 눈매가 매섭다. 말투에 기름기가 없다. 공과 사를 딱 부러지게 핸들링하는 캐릭터. 한때 걸스카우트 운동까지 벌여서 그런지 절도가 몸에 배어 있다. 그녀는 대뜸 자기 음식은 ‘맛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깨끗한 것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 가라면 억울해 할 거란다. 입맛 까다로운 사람들 사이에선 청마루 음식을 알아준다. 지금은 한식에 매진하지만 한때는 차와 커피 문화의 선도자였다. 김 대표는 29세 때 대구 동성로 옛 본영당 서점 근처에서 김춘수 시인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많이 찾았던 왕비다방을 운영했다. 거기 단골이었던 박일문이란 문학청년은 ‘왕비를 아십니까’란 단편소설을 갖고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왕비를 더욱 유명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훗날 그녀는 대백에서 중앙파출소 가는 길 중간에서 예전다방을 꾸려나가다가 삼덕동에서 청마루란 찻집 겸 커피숍을 꾸려갔다. 나중엔 파동으로 옮겨 8년간 한정식 전문점 청마루 시대도 연다. 그 음식은 정체불명의 퓨전 한정식이 아니고 가장 한국스러움을 간직했다. 그래서 ‘토속한정식’이란 이름을 걸었다. 두부를 만들기 위해 직접 맷돌을 돌렸고, 메밀묵도 직접 쑤어 만들었다. 현재 자리로 옮긴 지 7년째다. ◆ 조각보처럼 아름다운 구절판 우리 한식의 백미로 불리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오방색 미학이 녹아들어간 ‘구절판’. 그런데 이 음식은 워낙 잔손질이 많이 들어가고, 요리 시간도 많이 소모돼 여느 한정식에서는 엄두도 못 낸다. 고집과 열정이 없으면 시도할 수 없다. 그런데 그녀는 일상적으로 이걸 낸다. 가장 중요한 건 밀전병. 처음에 밀가루에 물을 넣고 팬에 구워봤는데 재료를 넣고 쌈을 싸먹는 과정에 자주 찢어졌다. 구절판 전문가를 만나 한 수 배운다. 밀전병 할 때 계란 흰자가 들어가면 탄력이 붙어 잘 찢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다음에는 모두 8가지 재료를 잘게 썰어야 하는데 그 길이와 굵기를 어느 정도 해야 되는지를 몰랐다. 궁중요리 전문가 김숙련씨한테서 귀한 정보를 얻는다. 구절판 재료는 너무 길고 굵으면 식감이 사라진다. 그래서 재료는 길이는 3㎝, 굵기는 1㎜가 딱이라고 했다. 손에 익지 않아 처음에는 2시간이 걸려 구절판을 완성했다. 밀전병이 잘 붙지 않게 한 장 놓을 때마다 잣가루를 살짝 뿌려준다. 구절판에 미리 장만한 재료를 놓는 법식이 있다. 일단 같은 색끼리 마주보게 한다. 북쪽에는 양파, 남쪽에는 오징어, 서쪽에는 당근, 동쪽에는 새우, 북서쪽에는 쇠고기, 북동쪽에는 달걀, 남동쪽에는 표고, 남서에는 오이를 놓는다. 소스는 겨자장. ◆ 나만의 요리 비법 1만5천원짜리를 시켰다. 모두 20여 종류의 단품 요리가 나온다. 언뜻 보기에는 그렇게 식감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냥 단출하고 단정하게 나온다는 수준. 그런데 각 메뉴를 해부해 보니 너무 귀티가 난다. 절약정신이 빛난다. 먹을 만큼만 낸다. 모르긴 해도 대구에서 가장 정갈한 밥상이다. 그래서 푸짐한 밥상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뭔가 허전해 한다. 그런 사람에겐 ‘푸짐한 집으로 가라’고 잘라 말한다. “옛날 양반가 7첩·9첩 반상을 보면 찬 그릇이 작은 게 특징이다. 그리고 코스식으로 내지 않고 한상차림으로 내는 게 한식밥상의 본질인데 이제는 그릇도 너무 크고, 너무 푸짐하고, 토속미를 전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국적불명의 메뉴가 난립하고 있다. 너무 현란해 난 한정식 전문점에 안 간다. 양식은 알맞게 나온다. 그런데 왜 한식에서만은 버릴 정도로 수북해야 되는가를 모두 고민해봐야 할 때다.” 그녀는 주 단골 시장인 칠성시장에 가도 절대 에누리를 하지 않는다. 그래야 좋은 물건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그녀만의 생활의 지혜. 고추도 빻아 놓은 걸 구입하지 않는다. 구입한 홍고추를 직접 닦은 뒤 파동에 있는 한 방앗간에서 빻아온다. 마늘도 미리 빻아놓은 걸 구입하지 않고 눈물이 나도 직접 집에서 빻아 사용한다. 요리 과정이 꼭 굿처럼 신령스럽다. 맹물을 내어서는 안된단다. “일본 본토에서는 보리차 내는 걸 원칙으로 한다. 맹물을 그냥 내는 건 예의가 아니다. 우리도 보리차, 녹차 등을 낸다.” 이날 먹은 메뉴 중 기자에게 가장 오래 감동이 남은 건 돔배기. 여느 하품 돔배기는 찰기가 없어 꼭 비스킷 씹는 맛이다. 돔배기 조직이 바스라져 살점이 푸석하게 씹힌다. 식감이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여느 한정식 돔배기가 그런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 집은 다르다. 15년째 영천 돔배기 시장 내 윤만상 가게에서 고급 돔배기를 구입한다. 짠 맛도 적당히 희석시켰고, 육질은 거의 안심 스테이크 수준. 식용유도 일반 것보다 2배 비싼 걸 사용한다. 장아찌에 대해 할 말이 많단다. 거창한 게 아니고, 디테일한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서울로 갔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 연구원장한테 2년여 장아찌 담그는 비법을 배웠다. 그 한자락을 알려준다. 일단 간장을 4번 달인다. 오이와 고추의 경우 갱물이 스며나오니 그걸 증발시켜 동질의 염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첫날, 사흘째, 닷새째, 이레째 달여준다. 서울서 배워 온 깻잎김치도 깊은 맛이 있다. 젓갈은 30년간 거래하는 마산의 한 젓갈집에서 온 액젓, 새우젓은 충남 홍천군 광천 새우를 갖고 온다. 진간장, 액젓, 설탕, 멸치가루, 생강, 양파채, 마늘 편, 파를 넣고 20여분 끓여준다. 거기에 고춧가루, 마늘 등을 섞어 만든다. 후식용 국도 철마다 바뀐다. 겨울에는 시래기국, 하절기에는 콩나물국, 봄과 가을에는 배춧국. 국물도 아주 조밀조밀 빚는다. 멸치는 오사리만 고집하고, 여기에 다시마·무·마늘·파·양파·대관령 산 황태머리·건새우를 넣고 낸다. 하지만 다시마는 너무 오래두면 시큼한 맛을 내니 중간에 건져낸다. 삶은 우거지에 된장·콩가루·들깨가루·마늘·다진 청양고추를 넣고 조물조물 무쳐 국물에 넣고 한 소끔 더 끓여낸다. 특이하게 여기선 죽을 안 낸다. 그 대신 반찬이 많다. 전채가 너무 많은 것도 토속 한식의 기본이 아니란다. 그런데 몇 사람이나 이집 식재료의 진정성을 알까? 화학조미료 교묘하게 넣은 집 음식을 분명 청마루보다 더 맛있다고 할 것이니…. 열정·미래파 셰프는 그녀에게 러브콜해 보시길. 맘에 들면 제2대 청마루 주인으로 키워보겠단다. 대구시 남구 대명6동 573-2 (053)621-4488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6.08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6) 대구 범어동 ‘알리오’ 홍중곤
누군가 기자에게 그랬다. “요즘 너무 경력이 일천한 레스토랑 오너셰프에 치중하는 것 같다”고. 하지만 기자의 생각은 다르다. 이미 검증됐고, 유명하고, 돈을 벌 만큼 번 베테랑 셰프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소림사에서 갓 검법을 배워 나와 나름 자신의 검법이 생길락 말락할 때 언론에서 조명을 해주면 더욱 욱일승천(旭日昇天)할거란 믿음이 있다. 홍중곤(28). 고르곤졸라(세계 3대 블루치즈)의 ‘곤’자가 연상된다. 현재 현대백화점에서 매주 금요일 ‘쉽고 폼나는 이탈리아 요리 코너’를 진행한다. 탤런트 장근석을 닮은 이 사내, 돈에는 좀 약하고 수완도 별로이며, 외모답지 않게 우직하다. ◆ 전도양양한 음식학도였다 대구 신암중 1년 때 읽은 ‘미스터 초밥왕’이란 만화책에 홀린다. 일식 요리사의 길을 꿈꾼다. 영진고로 입학한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조리고등학교가 없었다. 고3 때 요리학원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야간자습에 빠지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담임선생한테 되레 욕만 얻어먹는다. 첫 좌절이었다. 대구산업정보대 호텔조리학과에 입학한다. 요리가 적성에 맞았는지 2년간 올 만점이었다. 일단 미국과 일본으로 가서 접시닦이 하더라도 뭔가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일 하며 여행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Work & Travel 이란 기업에 노크했다. 일요일마다 곽병원 근처에서 정기모임을 했다. 준비 완료. 미국 콜로라도로 간다. 덴버에 있는 레스토랑(찹 하우스라는 스테이크 전문점)에 가서 스테이크와 가니시(고명)를, 바로 옆에 있는 피자전문점에서 피자를 배웠다. 하루 15~16시간 일했다. ◆ 대구와 미국의 스테이크 “대구와 미국 스테이크를 비교하면 미국이 우리보다 한 레벨 덜 익히더라. 두 감각을 익혀야 비즈니스맨들에게 실수 하지 않는다.” 미국의 미디엄이 대구로 치면 거의 미디엄 레어나 레어급이었다. 한우가 가장 맛있는 줄 알았는데 실제 가서 보니 미국 고기가 정말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능히 할 수 있는 수준의 스테이크라고 믿는다. “미국의 대표적 소스인 브라운소스는 사골 등을 4일여 고아 걸쭉하게 만들어 조금은 투박하다. 다른 소스를 응용할 수 있는 기본 소스인데 미국에서는 그 이상의 창의적인 소스법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3개월 있다가 대구로 왔다. 무얼하지? 고민하다 서울 셰라톤 워커힐 호텔로 실습 나갔다. 용인 에버랜드 식품부도 갔다. 졸업 즈음 한 교수가 그에게 지역의 한 이탈리안 식당을 소개해준다. 거기가 바로 현재의 알리오(Aglio·‘마늘’이란 이탈리아어). 올해 5년차다. 원래 주인은 청도 풍각에 있었던 갤러리 전 대표 전병화씨와 그의 여동생 경복씨였다. 기대는 했는데 막상 와보니 규모도 협소하고 후졌다. 마트 2층이란 점도 맘에 거슬렸다. 내심 1년 정도 일해 미국 가는 항공료를 벌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 첫 직장이 천직의 삶터가 됐다. 매일 알리오만의 요리 방식을 노트로 정리했다. 그런데 늘 돌아오는 말은 ‘당신이 만든 음식은 깊은 맛이 부족하다’는 지적. 엎치락뒤치락거리면서 한 달만에 파스타 14가지, 피자 6개, 샐러드 6개, 스테이크 6개를 독파했다. 다들 복덩이가 들어왔다고 좋아했다. ◆ 2년전부터 스테이크에 올인한다 2년전 이 식당의 오너가 된다. 일단 스테이크를 연마하고 싶었다. 일본의 도쿄 구치나 히라타를 견학했다. 여기는 일본적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페퍼스테이크’로 유명하다. 그 레시피를 대구로 데려오고 싶었다. 먹어봤다. 분위기는 올드하면서도 럭셔리했다. 고기를 덮을 정도로 후추를 엄청나게 많이 넣은 스테이크였는데 매운 맛이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참치 뱃살만큼 기름기가 많은 고기를 극복하기 위해 후추를 많이 넣은 거라고 분석했다. 일본 견학을 마친 후 그는 알리오에서 모두 6가지 종류의 스테이크를 낸다. 이렇게 다양한 스테이크를 한 주방에서 내는 곳도 그렇게 흔치 않다. 행사별, 연령별에 맞는 다양한 라인을 형성한 것이다. 물론 전용 소스도 개발했다. 이게 알리오만의 특징이다. △왕소금 스테이크= 고기의 맛만 즐길 때 선택하라. 최소한의 소금 후추간, 가니시는 구운 양파, 디종 머스타드를 곁들인 마늘쫑. △홀그레인소스 스테이크= 조리용 와인을 약불에서 하루 정도 달인다. 거기에 핑크 페퍼와 디종 머스타드를 섞고, 조금 더 졸이면 농도가 뻑뻑하게 되는데 그걸 사용하기 직전에 생크림에 희석시켜 와인과 크림이 믹싱된 버전으로 내는 것이다. 가니시는 머시감자, 토마토와 채소. △데리야키소스 스테이크= 이날 기자가 맛본 거다. 한국인, 특히 중년 남자들 정서에 맞게 했다. 구운 마늘, 볶은 숙주, 비트(무과라서 고기를 먹는데 소화에도 도움을 주고, 간장 소스로 인한 느끼함을 제거하기 위해 넣는다) 등을 베이스로 깐다. △케이퍼소스(연어용 소스) 스테이크= 오일에 양파와 마늘을 넣고 달달 볶다가 잘게 다진 샐러리를 넣고, 숨이 죽으면 거기에 생크림을 조금 넣고, 케이퍼 즙과 함께 곱게 간다. 푸레 형태로 크림이면서도 케이퍼의 새콤한 맛이 감돌도록 한 게 특징. 가니시는 구운감자, 워터크래스(Watercress·물냉이잎으로, 유통기한은 하루이고, 200g에 4천원선에 거래된다. 칠성시장 특수야채 코너에서 구입). △고르곤졸라 크림소스 스테이크= 다진 양파를 오일(퓨어급)에 살짝 볶다가 듬성 썬 양송이버섯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브로콜리와 볶다가 한 김 쉰 다음, 생크림을 소량 넣고, 고르곤졸라치즈를 생으로 넣어서 약불에 치즈가 다 녹을 때 까지 저어준다. 검은 통후추를 생각 이상으로 많이 넣는다. 고르곤졸라의 느끼함 때문에 매운맛으로 중심을 잡는 것. 요리시간은 5분여. △양파와인소스 스테이크= 왕소금 구이처럼 소스의 개념이 아니고 가니시를 소스처럼 활용한 것. 양파를 슬라이스 친 뒤, 30분간 약불에서 숨을 죽인다. 수분이 나오기 시작하면 조리용 와인을 부어 30여분 더 졸인다. 보랏빛 젤리 스타일의 양파가 나온다. ◆ 홍중곤의 요리 TIP 그릴보다 팬프라이 스타일을 선호한다. 그릴 직화 후 오븐에 굽는 방법도 있지만, 호텔에서 선호되는‘메달리온(작은 햄버그형태의 스테이크)’형태는 싫어한다. 두께가 얇다. 메달리온 버전을 얇게 편 것이다. 그러면 익는 템포를 빠르고 쉽게 조절할 수 있다. 두께가 얇기 때문에 육즙을 유지시키기 위해 튀기듯 굽는다. 오일을 넉넉하게 스테이크가 반 정도 잠길 정도로 붓는다. 구울 때 팬을 200℃로 뜨겁게 유지한다. 오일에서 연기가 날 정도다. 이때 고기를 내린다. 굽는 시간은 20~30초 이상 안 간다. 1분 정도 되면 미디엄 이상 웰던으로 넘어간다. 레어급은 30초, 미디엄은 1분 미만, 웰던은 1분30초~2분. 하지만 행간의 감각을 알아야 하는데 갈길이 멀다. 손님 대다수는 ‘핏기는 없고 그대신 부드럽게 구워주세요’라고 주문한다. 이건 어불성설이다. 스테이크 본질상 핏기 없이 부드럽기가 정말 힘들다. 핏기가 있다는 건 육즙을 머금고 있다는 것이고, 육즙이 없으면 자연 부드러워지지 않는데 그걸 배제하면서 부드러운 고기를 요구하는 건 잘못이다. 웰던의 경우 ‘수비드(저온조리법)’ 버전이 요즘 서울에서 유행한다. 한 세기 전 프랑스에서 유행했다. 고온 팬에 살짝 양면을 익혀 육즙 안빠지게 코팅을 한 뒤 진공 포장을 해서 50~60℃의 미지근한 물에서 20~30분간 속을 익혀낸다. 많이 바쁜 날 크리스마스에는 50~60개 구워낸다. 스테이크용 프라이팬이 8개다. 굳이 명품 팬을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좋은 팬이라도 흠집이 나면 계속 눌러붙는다. 코팅이 되는 부분은 달라붙지 않지만 흠집이 나면 그 부분이 달라붙게 된다. 뒤집을 때 고기가 뜯겨나간다. 저렴하더라도 괜찮은 걸로 자주 바꾸는 게 맞다. 팬은 보통 2~3개월 마다 교체한다. 파스타 졸업했냐 하는 질문은 우문이다. 여러 파스타는 거부한다. 스파게티만 판다.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파게티 하나라도 잘 해보자고 다짐한다. 조금 안타까운 건 샐러드를 겉절이로 알고 무한 리필을 바라는 이들이 있는 데 식재료 원가를 음미해줬으면 좋겠다. 코스 스테이크는 3만9천원과 4만9천원(가공 식빵, 수프, 샐러드, 파스타, 스테이크, 디저트, 차). 수성구 범어1동 899-22. (053)741-5989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6.01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육순의 나물소녀’ 김영화·춘옥·종필 자매와 영양 검마산 산나물 채취기
요즘 산나물 캐는 사람들 사이에는 영양군이 단연 주목을 받고 있다. 한때는 조지훈, 오일도, 이문열 등으로 인해 ‘문학의 고장’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의 옛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을 지은 정부인 안동장씨(장계향) 덕분에 ‘고조리 1번지’로도 각광을 받는다. 정부인이 평생을 보낸 두들마을에는 이문열의 광산문학관도 있고 옛 반가음식의 원형을 맛볼 수 있게 음식디미방전수관까지 마련해 놓고 음식을 예약 판매까지 하고 있다. 그러다가 요즘에는 ‘산채 1번지’로 발돋움을 하고 있다. 지난해는 국내에서 맨 처음으로 서울에서 영양 산채박람회를 열기도 했다. 영양군 면적(815.1㎢)은 서울의 1.3배. 하지만 인구는 1만8천500여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육지 속의 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영양의 대표적 산채마을로 불리는 대티골은 영양에서도 군청 소재지와 28㎞가량 떨어진 일월산 기슭의 오지에 있다. 일월면 용화2리 대티마을 권용인씨는 이제 ‘일월산의 산채 지킴이’로 각인되고 있다. 그의 이력은 특이하다. 1998년 발해 건국 1300년을 기념하려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본까지 뗏목으로 항해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동료 4명을 잃어 방황했다. 2004년 부인과 함께 이곳에 정착한 뒤 산마늘과 두메부추 등 토종 작물을 재배하며 농촌교육농장을 운영했다. 뜻을 모은 주민들은 마을 앞 도랑을 청소하고 숲길을 정비했다. 2009년 생명의 숲이 주최한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아름다운 숲길 장려상도 받았다. 해발 900m 이상서 귀신처럼 선별채취 하루 15∼20㎏ 뜯어 능선의 산나물은 빛깔부터 달라 하지만, 뭐가 뭔지 헤매자 “음식기자라면서 이것도 모르느냐, 이건 참나물이고 저건 어수리…” 점심시간이 되자 금방 딴 나물을 씻지도 않고 꿀꺽 야생의 향취 그윽 “집 텃밭서 키운 건 향이 증발하더라고… 나물 무칠 때는 마늘 절대 넣지마” ◆ 수비초를 키운 일월산 해와 달이 가장 먼저 뜬다고 하는 영양 일월산(해발 1천219m). 이 산만큼 여러 이름을 지닌 산도 드물다. 일위산(日圍山), 일우산(日雨山), 쌍요악(雙曜岳)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산이 워낙 덩치가 크고 산 안에서 벌어지는 자연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일월산 하단부에서는 취나물·두릅·참도살피·우산나물 등이, 상단부에는 곰취·병풍대·산당귀·어수리 등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4년 전부터는 다래순은 없어서 못 팔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4월말부터 영양군 전체에서 두릅이 나온다. 전국에서도 유명한 일월면 용화리 폐광산 부지에는 금낭화와 구절초 등 야생화 공원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멸종 위기 식물인 할미꽃과 하늘말나리 등도 특별히 보호되고 있다. 산촌생활박물관은 물론 전국에서 가장 맑은 공기에서만 서식하는 반딧불이를 갖고 있는 생태공원도 울진 왕피천과 인접한 수하계곡에 마련됐고, 잇따라 다양한 산채체험마을들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고 있다. 특히 영양 일월산은 국가산채클러스터의 축이다. ◆ 봄바람난 나물 캐는 세 자매 지난 주 금요일 기자는 하루 종일을 일월산 옆에 있는 자연휴양림 검마산한테 헌납했다. 영양의 산나물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고산 나물류를 직접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저지대 고장에선 4월이 봄이지만 영양군은 고지대라서 다른 데가 여름 쪽으로 기울어야 비로소 봄의 절정에 달한다. 영양군에 매년 5월만 되면 산나물 때문에 바람이 나는 세자매가 있다고 해서 수소문 해 그들과 함께 산나물 채취 동행취재를 한 것이다. 김영화(67)·김춘옥(64)·김종필(61). 첫째와 둘째는 대구로 시집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왔다. 둘째와 셋째 남편은 산채 캐는 일을 일사불란하게 도와준다. 자매는 완벽한 다이어트체형을 갖고 있었고, 입담은 만담가를 뺨칠 정도였다. 그날은 영양 산채축제 첫날이라서 자매는 무척 바쁜 가운데 산행을 했다. 미리 주문받은 나물 130㎏을 빨리 확보해서 행사장 부스로 옮기는 일이 시급했다. 이들은 많이 뜯을 경우 하루에 15~20㎏을 확보한다. 자매는 고향 연고권 등이 인정되어 비교적 쉽게 산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인은 제약이 많다. 일단 국유림 등에는 사전허가를 못받으면 입산을 할 수 없다. 무단 입산을 하면 벌금을 물게 된다. 이날 일단 산림청 관계자에게 입산 허가를 받고 해발 900여m까지 차로 이동했다. 이동중에 군데군데 자작나무 밀식지가 보여 참 운치가 남달랐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매와 같은 문중이면서 약초에 한 경지를 개척한 김제철씨가 차를 몰았다. 그는 항암약초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이날 곰취와 함께 8부 능선 등지에서 많이 발견되는 단풍취를 집중 공략할 계획이란다. 임도 옆에 차를 세우고 일을 시작했다. 정상부로 이어지는 능선자락의 산나물은 여느 도시 인근 산자락과는 빛깔부터 달랐다. 비옥해 보이는 검은 유기질 토양이었다. 셋째가 기자에게 산나물 담을 포대를 내민다. 우편행낭처럼 비스듬이 걸어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다. 하지만 기자의 눈에는 온통 녹색의 무명초 투성이일뿐 식용 산나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평소 눈여겨 봐둔 식물보감 지식은 현장에 오니 모두 헛것이 되고말았다. 모두 같은 산채로만 보였다. 하지만 자매는 새가 먹이를 낚아채듯 산나물을 선별채취하며 날렵하게 이동했다. 나는 자매가 찍어준 먹이만 삼킬 따름이었다. 자매가 기자에게 농담을 한다. “음식전문기자라면서 이렇게 산나물에 대해 모르면 어떻게 해. 내가 말하면 따라해봐요. 이건 참나물, 이건 떡취, 저건 어수리, 요건 강원도 정선에서 유명한 곤달리, 이건 우산처럼 생겼는데 일명 고깔나물이고, 밥취, 야 이건 산더덕….” 부럽기만 했다. 자매는 ‘나물의 달인’이었다. 자매의 몸은 바람처럼 가벼웠다. 이들의 포대는 1시간도 안돼 임신 7개월쯤으로 보이는데 기자의 포대는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보다 못한 자매가 자기걸 수북하게 집어넣어준다. 일단 이들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참나물, 검마산의 명물 참도살피, 떡취와 고깔나물만이라도 식별하려고 집중을 했다. 1시간쯤 지나자 눈에 익은 나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거 참도살피 맞죠?” “어 눈썰미가 좋네.” 자매가 뜯으라고 지시한 걸 복창하면서 채취했다. ◆ 뜯을 때는 나물의 물성대로 무턱대고 기분 내키는 대로 뜯으면 안된다. 나물의 물성에 맞게 순리대로 뜯어야만 했다. 가령 참나물과 홈취 같은 건 밑둥, 밥취는 줄기 중간, 고깔나물과 떡취 같은 건 잎만, 곰취 같은 건 줄기를 구부려보면서 연한 부위와 뻣뻣한 부위 경계를 부러트리면 된다. 자매는 얼추 100여종의 산나물을 식별할 줄 안다. “산나물은 관목이 너무 우거져 빛이 잘 들어오지 않으면 별로 없다. 예전에는 나무를 너무 많이 베는 바람에 산자락에 나물류가 지천으로 늘렸지만 이젠 고지대로 가야 나물이 풍부하다.” 가장 구분하기 힘든 건 참나물과 취나물류. 특히 수십종이나 되는 취나물류를 잘 구별하려면 이파리수, 이파리 가장자리 모양과 두께, 색의 밝기 등을 동시에 식별할 줄 알아야 한다. 본능적으로 구분하기 위해선 적어도 10년 세월이 흘러야만 된다고 했다. 종필씨가 독초와 약초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독초는 줄기를 끊으면 거기서 검거나 아주 뻑뻑한 액체가 흘러나오고 그 향기가 아주 역하다. 하지만 약초는 이파리가 억세지 않고 광택이 난다. 가령 참나물과 비슷한 독초인 바위취는 냄새가 고약하고 억세다. 참나물은 나물 중의 나물인 것 같다. 머위와 비슷해 보이는 동의나물도 실은 독초인데 잘 구분하지 못해 먹고 혼이 나는 이들이 많다.” 점심 때가 됐다. 자매에겐 지천으로 널린 산나물이 즉석 반찬이다. 별도로 채소를 가져갈 필요가 없다. 두 개 찬합에 가득 들어찬 밥을 보자 시장기가 밀려왔다. 자매가 어수리와 참나물, 참도살피, 곰취를 내면서 야생초 고추장장아찌를 밥에 얹어 싸먹어보라고 했다. 좀 꺼림칙했다. 계곡물에 씻어야 될 것 같았는데 자매는 꿀떡처럼 먹었다. 나는 떠밀리듯 먹었다. 순간 생애 가장 진하고 야생적 향취를 가진 산나물을 삼킬 수 있었다. 자매는 15여종의 산나물 씨앗을 받아 집 텃밭에서 키운다. 그런데 모양은 같아도 향기는 완전 증발해버렸다고 한다. 야생의 힘이란 바로 ‘현장의 힘’이다. 자매는 산나물의 미래에 대해 장담하기 힘들다고 했다. ‘산불 때문에 임도가 필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예전에 그토록 많던 희귀 산나물이 이젠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고 안타까워한다. 자매는 4월말~6월 중순 가장 바쁘다. 멀리는 강원도 태백까지 나물 캐러 간다. 이날 캐온 나물로 각종 음식을 해먹었다. 전은 역시 두릅, 장아찌는 곰취와 병풍대, 무쳐먹는 건 참도살피와 참나물, 그리고 모시딱지, 말려서 해를 넘겨 먹는 묵나물류로는 취나물류와 고깔나물이 적당하다고 했다. 수정식당은 나물철 ‘간이 나물시장’으로 변한다. 원하는 이가 많아 타지에 팔 게 없다. 집에서 잘라온 음나무, 오가피 가지를 넣어 토종닭백숙을 요리했다. 자매가 이구동성으로 나물 무칠 때 절대 마늘을 넣지마라고 당부했다. 강력한 향기의 마늘이 나물향을 죽이기 때문이란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5.25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5)대구 대명동 '미누' 박주철
일단 간판이 없다. 그래, 오너셰프라면 그 정도 고집스러움은 있어야지. 앞산순환도로 터널 구간을 지나 고가도로 바로 오른쪽으로 빠지자마자 앞산큰골6길로 우회전. 200여m 주택가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 골목 안에 고양이처럼 앉아 있는, 대구에선 상대적으로 보기 힘든 프랑스 레스토랑 ‘미누’가 나타난다. 세 번째 그 식당을 찾았는데 나름 만족도가 높았다. 프랑스 레스토랑이라고 해서 건물이 근사한 건 아니다. 퇴락한 70년대 스타일의 1층 양옥집을 자기 필 대로 리모델링해서 오픈했다. 간판은 미누란 이름을 가진 고양이 그림 하나로 대체했다. 근처 레스토랑 도도멘션 주인 김도관씨가 고양이 그림 하나를 선물했는데 박주철 오너셰프(35)는 그걸 갖고 명함을 만들고, 페인트통만한 크기의 나무통에도 부착해서 가게 입구 화장실 지붕 위에 올려뒀다. 멀리서 보면 꼭 고양이가 손님이 오는 걸 멀찍이 내려다 보고 있는 것 같다. 솔직히 미누는 어쩜 애숭이급에 속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젠 경력만이 능사는 아닌 세상이 도래한 것 같다. 자기 장르의 메뉴에 올인하면 매너리즘에 빠진 구닥다리 선배보다 더 깊이 있는 메뉴를 개발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대담하게도 프랑스 요리 전문점이라면서도 프랑스 유학 한번 다녀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양식 좀 안다는 마니아들은 이집 메뉴를 맛보고선 “대뜸 프랑스에 몇년 있다 왔느냐”고 질문한다. 트집을 잡으려면 모든 게 흠이지만, 그래도 미누는 일단 그 정도면 연착륙에 성공한 듯. ◆ 고시원에 배수진 치고 서비스 배워 영천 출신으로 계명대 환경과학과를 졸업했다. 참 말쑥하다. 피부가 정말 아이 같다. 친절이 몸에 스며들어가 있다. 알아보니 나름 서비스업계에서 산전수전 좀 겪었다. 단과대 학생회장을 지낸 그는 부모 몰래 고시원에 배수진을 치고 서울 노량진 근처 맥도날드에서 알바를 했다. 운이 좋았다. 채용이 끝났는데도 그는 감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점장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았다. 이후 대구의 TGI 대구역점, 서울 VIPS 도곡역점, 나중에는 CJ푸드에 정식으로 채용되고, 그 힘을 바탕으로 모 호텔 계열 아모제에서 운영하는 오므토라토란 오므라이스 전문점 신규매장 직원 교육도 담당했다. 그러다가 ‘이제 창업하자’고 다짐한다. 대구시 중구 동성로 금융결제원 근처 미스터피자 2층에서 보증금 5천만원에 월 300만원 임차료를 내면서 친구와 함께 ‘와인포차’를 연다. 15종류의 와인과 기본안주로 소시지를 내는 볼품없는 와인카페였다. 석달이 지나자 빚이 1천만원이 생긴다. 보증금까지 까먹는 단계에서 손님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손님이 너무 많이 오는 것도 불편했다. 초심을 잃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다시 테이블 3~4개뿐인, 허름하지만 자신들의 체취가 묻어나는 공간을 차리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황금동 복개도로 인근 원룸 주자창 옆 관리사무소를 용도변경해서 ‘모네꼴(프랑스어로 나의 학교)’을 연다. 13개 메뉴를 코스로 내며 1인분에 7만여원을 받았다. 참 대책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루의 반은 영어판 프랑스 요리책을 갖고 하나씩 요리를 독파해나가기 시작했다. 오전에 요리를 배워 밤에 메뉴로 내놓는 식이었다. 지역의 몇몇 고수의 레슨도 받았다. 선배들도 어이없어 했다. 그런데 그는 밀리지 않았다. “예전 패스트푸드점에서 배운 건 조족지혈이다. 양식당 오너셰프는 공화국 하나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챙길 게 많더라.” ◆ 미누의 풀코스 정찬을 맛보다 건물 전면을 진자줏빛으로 칠했다. 안으로 들어가면 와인빛 벨벳천이 벽체를 육감적으로 감싸고 있다. 주방에는 박 셰프와 영양사 자격증을 가진 아내 김은희씨 둘만 있다. 철저하게 예약시스템으로 운용한다. 맛보다 재료에 올인한다. 맨먼저 작은 럭비볼처럼 생긴 바게트가 나온다. 직접 구웠다. 아뮈즈 부쉬(Amuse Bouche·전채요리)는 토마토와 치즈, 바질이 어우러진 카프레제. 녹색·하얀색·빨간색이 어우러진 마치 이탈리아 국기 같은 초간편 샐러드 같다. 그리고 치킨 스테이크, 애플민트 셔벗, 스테이크, 부야베스, 퐁당 쇼콜라, 홍차 순으로 나온다. 이날은 몇 가지만 샘플링으로 먹어봤다. 사과 설탕절임을 토핑으로 한, 팬에서 구은 푸아그라(거위간)를 냈다. 푸아그라. 대구에 흔할 것 같은데 실은 수요가 거의 없다. 일부 단골이 프랑스 등에서 푸아그라 음식을 맛봤다면서 한번 메뉴로 내놓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대구에는 없어 서울과 부산 라인을 움직여 구했다. 안심의 10분의 1 크기밖에 안된다. 지난 3월부터 내기 시작했다. 냉동 푸아그라는 팩을 제거한 뒤부터 2주일 내 사용해야 된다. 포트와인에 절인 사과를 올린 건 순전히 감각 때문. 푸아그라의 겉면이 카오야(중국 베이징덕)의 껍질처럼 파삭거린다. 조금 짭조름하면서도 20%는 달콤함이 묻어 있다. 너무 익어도 조직이 손상돼 안된다. 완전히 달아있는 팬에 올리고 10초내 양면에만 불기운 주고, 나머지는 잔열이 푸아그라의 속을 익히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다음은 스테이크. 정말 덧칠을 하지 않아 꼭 여중생 ‘쌩얼’ 같다. 요리 교본에 따른 스테이크 요리인가. 탄수화물을 보충하기 위해 통감자 놓고, 올리브오일에 살짝 볶은 아스파라거스, 타원형으로 깎은 당근 등을 올리는데 그는 걸쭉한 데미글라스소스조차 붓지 않았다. 대신 표고버섯과 별사탕만하게 썬 토마토만 조금 올렸다. 고기용 씨겨자를 접시 가장 자리에 한 움큼 얹어뒀다. “대구의 상당수 스테이크가 너무 화장이 짙은 것 같다. 소스가 너무 강하고 꾸밈 음식인 가니시도 너무 현란하고 많아 스테이크 본질의 맛을 가리고 있다. 그래서 돈가스 먹는지 스테이크 먹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재료의 본질만 살리고 여타 부재료는 극소화하자는 게 제1원칙. 고기가 좋다면 굳이 꾸미지 않아도 된다는 각오. 소스를 배제한 스테이크. 과연 기존 선배들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사실 이 바닥에선 선배가 왕이고 신이다. 전수한 메뉴에 대해 그냥 답습을 한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반문도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지역 양식문화가 정체된 것 같다. 스테이크에 소스가 들어가건 들어가지 않건 그것은 우열의 문제가 아니고, 다름의 문제이기 때문에 누가 왈가왈부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 부야베스 대구에서 첫 선 마지막으로 시연을 보인 건 프랑스의 대표적 해물요리인 부야베스. 20만원짜리 프랑스제 무쇠로 만든 용기인 ‘르 쿠르제’는 열을 오래 머금고 있어 부야베스에 딱 어울린다. 들어가는 재료를 적어본다. 홍합·바지락·도미·새우·관자살·이집트콩인 칙피·페페론치노, 평균 4일 정도 걸려 우려낸 걸쭉한 스톡을 15분 남짓 끓여낸다. 육수에 노란색이 풍겨난다. 꽃수술만 따서 말린 샤프란 향신료를 넣었는데 이것도 가격이 워낙 비싸 원가만 생각하는 셰프는 쉽게 넣기 어렵다. “제가 대구에서 처음으로 부야베스를 선보인 것 같다. 이제 몇 집 더 선보이는 곳이 보이는 것 같더라. 이 음식은 세계3대 수프로 유명하며, 프랑스 김치·된장찌개 정도로 보면 된다. 일명 ‘어부의 수프’란 별명도 갖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부야베스도 수프의 일종이니 스테이크 이전에 나오는데 그는 순서를 바꿔 스테이크 뒤에 배치시켰다. 반응이 더 좋았다. 부야베스에는 소금도 첨가하지 않는다. 해산물 특유의 짠맛만 있어도 충분하단다. “우린 평범한 재료를 갖고 조금 특별한 메뉴로 만들고 싶어한다. 대다수 재료는 칠성시장 등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그는 손님 한명 한명에게 직접 내오는 메뉴의 레시피와 먹는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 친절함이 호텔 매니저급이다. 매달 새로운 메뉴도 한두 개 개발한다. 항상 칼날 위에 선 기분으로 산단다. 풀코스 정식은 3만5천~5만5천원(부가세 10% 미포함). 대명9동 484-9 (010)8773-8699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5.18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달성군은 사찰음식의 메카 될 수 있을까
사찰음식…. 웰빙·슬로푸드의 해결사 같다. 템플스테이 참가자 등 너도나도 ‘사찰음식이 좋다’고 외쳐댄다. 전통음식전문가, 궁중음식전문가, 약선음식전문가들이 사찰음식과 윈윈전략을 짜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찰음식이 처음 공론화되기 시작한 건 1990년부터. 그해 서울 리베라·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전국 비구니들이 모여 사찰음식 잔치를 벌였다. 선재스님은 94년 9월부터 불교TV에서 ‘푸른 맛 푸른 요리’란 프로를 진행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친다. 같은 해 스님은 ‘선재스님의 사찰요리(디자인하우스 간)’를 펴내면서 사찰음식 개척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2010년 ‘자연을 담은 사찰음식’을 펴낸 홍승스님도 사찰음식연구소를 내면서 부산을 축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에서도 ‘팔도사찰음식 백서’를 지역별로 취합중이다. 지난 겨울에는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종 총무원 앞에 대안스님이 꾸려가는 ‘발우공양’이란 조계종 인가 사찰음식점이 태어났다. 이밖에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윤필암은 이미 국내 최고의 사찰음식 전통을 보유한 곳으로 정평이 나있다. 고령 반룡사에도 사찰음식연구소(소장 배현주)가 생겼고, 의성 고운사에도 한국사찰음식문화연구소가 생겼는데 현재 안동 선찰사 지견 주지스님과 황은경 문경대 호텔조리과 교수가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 달성군 사찰음식 육성위원인 대구시 수성구 범어2동 수도암 승원스님 등도 사찰음식을 알리고 있다. 김천에서는 연요리 전문점 ‘바루’가 주목을 받는다. 연잎밥 전문점들도 은근히 사찰음식 전문점으로 소개된다. 경주의 ‘하연지’와 ‘향적원’은 연요리 전문점으로 알려졌다. 대구의 동구는 전국적 연근생산지(147㏊)로 각광을 받고 있다. 동구 중대동 ‘다우산방’, 북구 구암동 ‘초당’, 동구 송정동 ‘명산식당’, 수성구 상동 ‘소담정’, 동구 도동의 ‘백림정’, 달서구 본동의 ‘연빈재’, 동구 진안동의 ‘연향이 머무는 뜨락’, 달서구 두류동의 ‘돌메꽃’, 동구 백안동의 ‘팔공산뜰안채’, 달성군 옥포면의 ‘비슬농장식당’, 달성군 가창면의 ‘소풍’, 안동의 경우 직접 연지를 가꾸고 있는 ‘안동화련’ 등이 사찰음식과 직·간접 연관을 맺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음식점에는 적잖은 육류 메뉴가 있어 사찰음식 본연의 취지를 벗어나고 있다. 90년대 중반 대중화의 길을 걸은 약선(藥膳)음식도 사찰음식과 공감대를 넓게 형성하고 있다. 이제 사찰음식은 약선음식이면서 궁중음식과도 어울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발효음식, 산채음식, 로컬푸드, 힐링푸드, 유기농음식, 제철음식, 친환경음식, 자연식, 채식 등과도 공감대를 형성하게 됐다. 하지만 사찰요리는 채식이어야만 하고, 수행을 방해하고 음심을 촉발시키는 것으로 알려진 향신료인 ‘오신채(마늘, 파, 달래, 부추, 흥거)’를 사용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절도 아닌 일반 식당이 품기에는 극도로 까다로운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달성군, 사찰음식을 품다 그런데 달성군이 사찰음식에 올인해 눈길을 끌고 있다. 해인사를 둔 경남 합천과 통도사를 둔 경남 양산, 직지사를 둔 김천 등도 사찰음식에 관심을 두었지만, 직접 사업화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냥 사찰음식전문가와 특정 사찰이 MOU를 체결해 사찰음식 대중화에 나서고 있는 정도다. 그런데 달성군은 달랐다. 일단 한국 사찰음식의 양대산맥 스님부터 초청했다. 지난해 6월에는 선재스님을 초청, 달성군청 문화복지동 대강당에서 ‘이야기로 버무린 사찰음식’이란 교양강좌를 열었다. 그해 10월에는 조계종 지정 사찰음식점인 발우공양 대표로 있는 대안스님을 모셔, 달성군에서 가장 사찰음식에 관심있는 영업주 6명을 선정해 특성화교육을 실시했다. 대안스님을 비롯 정재덕 발우공양 조리이사, 전효원 이지사찰음식문화원장, 신아가 미래외식경영부설 창업아카데미 원장 등을 강사로 초빙해 사찰음식의 유래와 특징부터 약리작용, 효소, 발효음식, 현장학습, 상품화 등을 가르쳤다. 또한 연잎밥을 잘하는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수도암 주지 승원스님을 초청해 관내 음식점 영업주 40여명을 대상으로 여성문화복지센터 요리강습실에서 10주 요리강습을 실시했다. 지난해 10월 제10회 대구음식관광박람회 기간 중 EXCO 1층 전시관에서 달성군 사찰음식 품평회를 개최했다. 올해는 비슬산 참꽃축제와 연계해서 모두 52개팀이 출전한 가운데 제1회 전국 사찰음식품평회를 가졌고, 또한 사찰음식의 우수성 및 대중화 방안 토론회까지 가졌다. 달성군은 이번 품평회에서 쑥탕수·단호박찰밥·알로에오미자화채를 출품해 대상을 차지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 큰나무밥집식당(조갑연), 무려 50여가지 과채류를 갖고 장아찌를 실험적으로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장아찌 전문식당인 옥포 용연사 근처의 ‘비슬농장식당’과 비슬산자연휴양림 초입 ‘장수식당’, ‘연카페’ 등 관내 10여개 유관 음식점 중 특화된 업소를 선정, 달성군 지정 사찰음식점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 사찰음식 대중화 논란 중 이번 달성군이 주최한 사찰음식 대중화 방안 토론회에서 흥미로운 정보가 많았다. ‘한국사찰음식의 이용실태와 대중화를 위한 방안 모색’이란 주제발표를 한 문경대 호텔조리학과 황은경 교수가 대구·경북·부산·경남 지역민 248명을 대상으로 사찰음식 관련 선호도 조사를 벌였다. 이 결과 29.9%가 연간 5번 이상 사찰음식을 먹는 것으로 나타났고, 메뉴는 34.7%가 산채모듬밥, 국의 경우 26.6%가 산초잎된장국, 24.2%가 토란탕을 선호했다. 죽은 41.1%가 들깨죽, 나물의 경우 40%가 취나물, 구이는 연근전이 26.6%, 부각은 40.3%가 다시마부각, 장아찌는 두릅장아찌, 조림은 두부와 우엉조림, 김치는 더덕물김치, 참나물김치, 연근김치, 머위김치, 과일김치, 고구마김치 순으로 선호했다. 사찰음식의 대중화 방안으로는 체험행사, 인터넷활용, 전시 및 박람회, 전문식당, 방송보도, 책자배포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중화를 위해선 체험행사와 온라인 홍보가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그럼 오신채와 육류 사용 금지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육류사용이 필요하다는 비율은 33.9%였다. 그런데 남자에 비해 여자의 경우 사찰대중화를 위해 육류사용이 필요하다고 봤다. 10~20대에 비해 30대 이상이 육류사용에 관심을 보였다. 학력이 높을수록, 월수입이 높을수록 육류를 사용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는 반응이었다. 오신채 금지에 대해서는 61.3%가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럼, 대중화 방안은? 승원 스님은 “종단 차원에서 가칭 사찰음식협의체 구성을 지원하고 전통사찰음식의 조리법도 체계화시키고, 사찰음식 전수자를 육성시켜야 된다”고 강조했다. 대구공업대 박현숙 교수는 식품 관련 학과 재학생들을 공양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육류음식을 부분적으로 허락할 건지, 아니면 수행승이 먹는 완전 채식단으로 갈 건지에 대한 합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사부대중(비구, 비구니, 우바이(남자신도), 우바새(여자신도)) 중 비구와 비구니는 수행승이라서 조계종에선 육식을 금한다. 하지만 신도들은 육식이 가능하다. 신도들도 완전 채식이라면 일반 사찰음식점도 채식으로 가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분석해 보면 사부대중식도 채식과 육식으로 뭉쳐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지자체 지정 사찰음식전문점을 오픈할 때는 사찰음식 취지에 맞는 어패류와 육류에 대한 부분 허용이 전제되지 않으면 대중화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그게 어려우면 지자체에서 직접 채식 전문 사찰음식점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5.11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4)대구 삼덕동 '라 루체'의 김선일
■ 주방 살펴보니… 750㎖에 4만5천원하는 최고급 올리브오일 ‘테레 보르마네(Terre bormane)’가 보인다. 1ℓ에 1만8천원 정도 하는 데체코 오일에 비하면 엄청 비싼 것이다. 미슐랭 스리스타에 빛나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의 프랑스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와 오픈했을 때 푸드 블로거가 떼거지로 몰렸다는 서울 신사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그라노의 오너셰프 산티노 소르티노 등이 애용한다. 서울에 주문해야 구할 수 있는 파스타도 데체코 No15로 분류된 지름 3㎜ 스트로우처럼 생긴 부카티니, 원통형 파스타인 리가토니 등도 보인다. 수제 스톡(육수)이 있으면 보여달라고 했다. 젤 형태로 냉장 보관 중인 양식당 소스의 대명사로 불리는 데미글라스 소스가 보인다. 연골, 사골 등을 최소 4일 이상 약불에 고아내야 얻을 수 있다. 이건 스테이크 소스인데 일반 식당에선 너무 힘들기 때문에 공장에서 만든 소스를 사용하는 게 현실이다. 7시간 고아낸 닭육수, 채소 스톡, 조개 스톡도 보인다. 이밖에 바질 패스토와 드레싱, 로즈마리 드레싱, 발사믹 리덕션(발사믹 식초를 5~6시간 졸인 것), 카라멜로 당화시킨 양파, 샐러드용 레몬 드레싱도 직접 만들었다. 역시, 여느 레스토랑과 좀 달랐다. 마요네즈도 만들었고, 파스타용 토마토소스도 토마토홀, 양파, 소금 등을 갖고 4시간 약불로 직접 빚었다. 올리브도 남다르다. 8㎏ 한 박스에 20만원짜리 칼라마타 올리브를 사용한다. 기자는 일어서서 부산 출신으로 최근 대구 양식당계에 다크호스처럼 등장한 엘리트 오너셰프 김선일씨에게 박수를 보냈다. 김 셰프는 맛을 내기 위해 맹목적으로 사용하는 치킨 파우더 같은 걸 버렸다. 그리고 힘이 들어도, 이미 음식으로 끝을 보기로 한 마당이니 필요한 소스와 양념류는 직접 만들었다. 옆에는 어머니가 요리를 도와준다. 가지와 치즈로 만든 그리스 음식인 무사카, 스페인 요리인 볶음밥 같은 빠에야, 벨기에식 홍합스튜도 있다. 기자는 특히 밀가루, 소금, 생 이스트, 로즈마리, 올리브 오일을 갖고 만든, 꼭 바게뜨같이 생긴 식전 빵인 ‘포카치아’에 반했다. 반죽을 하루 숙성시킨 탓인지 기자가 맛본 빵 중 가장 식감이 좋았다. 인스턴트 팽창제를 사용하지 않고, 빵 표면을 바삭하게 하기 위해 오븐에서 나온 직후 굵은 소금과 올리브 오일을 뿌렸단다. 빛이 보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경북대 응급실 근처 ‘분홍빛으로’ 병원 2층에 문을 연 식당 이름도 라 루체(La Luce), 이탈리아 말로 ‘빛’이다. ■ 김선일 오너셰프 일문일답 ◆ 고생 자처한 서울대 출신 -아직 젊은데, 그동안 시행착오가 많았을 것 같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일생 동안 가장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현실의 이해타산을 고려하지 말고, 진정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자’고 결심합니다. 요리였습니다. 세칭 서울의 명문대(서울대 농경제사회학과) 학생에서 학업 도중 요리사의 길을 선택하겠다는 저의 폭탄선언에 저의 부모님은 망연자실하셨습니다.” -어떻게 극복했나. “한국에서 외식업의 가능성은 분명 저평가 되어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꾸준히 요리사라는 길을 가게 된다면 그 가능성을 충분히 끌어올려 외식업의 발전과, 문화적인 공헌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하며 완강한 부모님의 반대를 극복하였습니다.” (역시 삶은 저지르는 자의 몫인 것 같다. 그는 서울 홍대 앞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셰프의 첫 발을 딛는다. 난생 처음 보는 식재료들이 호기심을 자극했고,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식재료들 또한 저마다의 숨겨진 가치를 발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서울의 솔티노스와 마더스오피스 등에 큰 영향을 받는다. 솔티노스의 산티노 소르티노 셰프한테서 이탈리아 요리의 기본을 배운다. 산티노 셰프는 현재 서울 신사동의 그라노(Grano)에서 활동 중이다. 서울시 청담동에 위치한 마더스오피스는 그가 헤드셰프로서 첫발을 내디딘 곳. 거기서 유럽각국의 요리들을 수제버거에 접목시키는 시도를 했다. 이로 인해 세계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버거들을 선보여 수제버거 붐과 더불어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는다. 그로 인해 ‘보그(Vogue)지 선정, 한국을 대표하는 영셰프 6인’으로 소개되고 마더스오피스 또한 삼성카드 선정 국내 TOP 50 레스토랑에 선정된다.) ◆대구 레스토랑계에 한 마디 -대구 레스토랑 문화에 대해 할 말이 많겠다. “사실 대구에 내려와서 느낀 점은 특수 식재료를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질, 타임 등의 필수 허브류를 파는 업체가 거의 없었을 뿐 아니라. 버팔로 모차렐라, 특수 파스타류 등의 구매에 한계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특수 식재료 조달이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수요가 없다는 단적인 예이고, 수요가 적은 상태에서 공급받는 만큼 저희 레스토랑은 서울에서보다 높은 가격으로 허브류와 치즈류 등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구에서는 고가의 레스토랑문화가 널리 정착되지 않은 이유로, 가격은 서울에 비해 낮게 받아야 하는 지역적 한계 때문에 재료선정과 가격결정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라 루체만의 색깔은 뭔가. 우린 파스타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레스토랑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종의 ‘Contemporary European Restaurant’입니다. 프랑스 요리, 이탈리안 요리 등의 경계 없이 유럽권 내의 여러 음식들을 다양하게 선보일 겁니다. 현재 10여종류의 파스타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알리오 올리오, 봉골레 등 많이 알려진 파스타에서부터 부가티니면을 사용하는 아마트리치아나, 감자 뇨키 등 일반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파스타들도 있습니다. 현재의 외식업계는 상업성과 편리성에 의해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인건비와 단가를 낮추기 위해 사용되는 각종 가공 소스류와 육수베이스 분말 등이 그것입니다. 최고급 호텔의 레스토랑에서조차도 이러한 ‘제품’을 사용하는 세태는 분명 시급히 개선되어야할 과제입니다.” ◆ 대구에 없는 식재료 많다 -좋은 식재료가 많아 보이더라. “카프레제(카나페처럼 토마토에 치즈를 올린 것)에 쓰이는 버팔로 모차렐라를 들 수 있죠. 이탈리아 캄파니아 지방의 물소젖으로 만든 버팔로 모차렐라는 수급에 굉장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식재료의 경우 국내에 들어오는 데에 통관이 원활하지 않아 일반적으로 수급이 어려울뿐더러, 대구시내에서 쓰고있는 레스토랑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구에서 받기에는 더욱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생치즈의 특성상 유통기한도 짧기 때문에 설령 받는다 해도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이 짧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물론 대체 가능한 카우 모차렐라나 냉동 모차렐라도 있지만 최고의 식재료를 손님께 선보인다는 신념상 조금이라도 더 부드러운 촉감과 탄력감, 확실한 풍미의 존재감이 있는 캄파니아 특산 버팔로 모차렐라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에 있어서도 쓰임에 따라 달리 사용하고 있으며, 중간조리용으로는 데체코사의 올리브유, 샐러드 드레싱용으로는 향이 매력적인 콜라비타 올리브유, 파스타 조리의 마무리 단계에서는 세계적인 스타셰프 알랭 뒤카스와 필립 로샤 등이 사용하는 테레보르마네 올리브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테이크에 대해 할 말이 있는가. “우린 경산에서 올라오는 1등급을 사용하는데 10일 이상 숙성을 합니다. 200g에 3만5천원인데 가격대로 상당한 만족감을 느낄거라고 봅니다. 고기가 안좋거나 냉동 제품은 피비린네가 나죠. 좋은 고기는 절대 피가 잘 나오지 않습니다.” (그를 보좌하는 3명의 셰프도 요리에 감각이 있다. 서울 이태원 라보카란 레스토랑 출신인 써니씨는 홀매니저이고 소믈리에면서 음악을 컨트롤 한다. 써니씨와 자매간인 루치아씨는 일본 핫토리 영양전문학교 출신이고 디저트 등에 능하다. 모친은 샐러드를 담당한다. 개업식도 안하고, 전단지도 안 돌리고, 묵묵히 진검승부를 하고 있는 그가 대구를 떠나지 않고 양식의 새로운 역사를 써갔으면 좋겠다.) ▨라 루체=중구 삼덕동 45번지. (053)606-0733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4.27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대구경북권 의대 신입생 중 '지역 학생' 인원 현재보다 2배 늘듯
내년 의대증원 규모 '대구경북 575명' 전국 1천489∼1천509명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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