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 (3)'안동화련'의 신윤남
골프를 처음 시작하면 기적 같은 샷이 잦다. 대충 쳐도 홀인원 수준으로 잘 굴러간다. 하지만 갈수록 첩첩산중. 알수록 더 치기 어렵다. 요리도 마찬가지. 시작할 때는 지상 최고의 셰프가 된 것 같다. 단순한 것은 보이지 않고 복잡하고 실험적인 걸 즐긴다. 그래서 레시피도 아주 현란하다. ‘내가 이 정도’란 걸 보여주려는 것이다. 재료 선별과 관련, 뺄셈보다 덧셈에 익숙해진다. 육수를 만들 때도 듣도보도 못한 한약재를 마구 집어넣는다. 또 누가 ‘이게 좋다’ 하면 그걸 집어넣는다. 다다익선이 아니라 ‘다다익악(多多益惡)’의 길을 걷는다. 그런데 요리 경력도 일천한데도 자기 색깔을 가진 셰프가 안동에 있다는 말을 듣고 만나봤다. ◆안동에 웬 연꽃? 2010년 12월29일.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마을 한 가운데 묘한 버전의 한정식 전문점 하나가 연꽃처럼 문을 연다. 상호도 남달랐다. 농촌진흥청과 안동농업기술센터에서 지원한 안동시의 농가맛집인 ‘안동화련(安東花蓮)’이었다. 다들 ‘안동에서 무슨 연꽃’이냐고 했지만, 주인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정갈하고 건강한 밥상을 빚자고 다짐한다. ‘부창부수(夫唱婦隨)’였다. 남편이 첫단추를 꿴다. 그는 1990년대초 유기농이란 말조차 생소하던 때 그 바닥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농사와 식재료의 상관관계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아내 신윤남씨(45)는 남편 때문에 식당을 차렸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서울 모 전자회사의 해외영업부 사원. 고향이 안동이었던 부부에게는 서울이 매력없었다. 1997년 귀향한다. 식당 때문은 아니다. 그냥 부부 농사꾼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남안동 IC에서 의성 고운사 방면 일직중 근처에 자리한 이 마을은 타계한 동화작가인 권정생의 인기 소설 ‘몽실언니’의 주무대 중 하나. 근처 폐교된 일직남부초등은 현재 권정생문학관으로 거듭나고 있다. 6년전 그 마을에 우연찮게 한 스님이 찾아와 신씨와 인연이 된다. 스님은 특히 연꽃에 대해 전문가였고 각종 야생초의 생리에 대해서도 잘 알았다. 그녀는 약골이었다. 몸도 차고 체중도 47~48㎏. 남편이 열나게 하는 부추와 현미효소액을 만들어 먹였다. 몸이 점차 나아졌다. 효소액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미나리도 키웠고, 과수원 잡초를 없애는 과정에서 크게 웃자라지 않는 금전초(긴병꽃풀)도 심는다. 이를 이용해 장아찌와 효소액도 만들었다. 다음에는 과일효소액에 도전. 산복숭아·사과·자두에 설탕을 1대 1 비율로 섞어 만들어 샐러드용으로 사용했다. 주위의 반응이 괜찮았다. 스님한테서 산야초 활용법과 사찰요리 등에 대해 배운다. 스님은 그냥 설탕이 완전 발효되지 않아 걸쭉한 상태의 정체불명 추출액을 효소액이라고 자랑하는데 기겁을 한다. 그녀가 공격적으로 효소액을 만드는 걸 경계한 것이다. 점차 뭐가 독이 되고 뭐가 약이 되는가에 대해 고민을 한다. 한번은 샐러드에 갓 따온 진달래꽃을 올렸다. 스님이 “진달래꽃 속의 수술을 제거했냐”고 물었다. “안 했다”고 하니 스님이 대뜸 “잘못하면 눈이 멀 수도 있다”면서 주의를 주었다. 그때부터 그녀는 뭘 알아도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지금도 야생초를 배우고 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사진을 찍고, 직접 연필로 스케치해둔다. 덕분에 여러 야생초를 알게 된다. “매년 양력 3월30일에서 4월5일 사이의 87종 야생초 뿌리를 이용해 백야초 효소액을 만들었습니다. 5월에 냉장고를 꺼버렸어요. 7월이 되자 진액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부패하는 줄 알았는데 계속 둬봤어요. 이상하게 향은 더 진해지고 액은 더 맑아졌습니다. 재발효가 이뤄진 것 같았어요. 그게 식품영양학적으로 어떤 효능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만 저희 부부가 6년째 상복한 결과 몸도 가볍고 피로도 빨리 풀리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 좋은거죠.” 현재 냉장고 안에는 6년된 백야초 효소액 뿐 아니라, 금전초·사포나리아(식용 알로에)·딸기·양파·사과·자두·오가피·오디·쇠비름·연꽃 효소액을 저장해 놓고 있다. 연밭 조성 100종 관리 “군자의 고장 안동과 잘 연결될 것 같아서 蓮 전문식당 차렸죠” 연잎밥은 세번 쪄내고 연저육찜·연계육찜은 꽃사과 등 섞은 액으로 졸여내 독특한 맛 동치미 같은 사과물김치 싱겁고 쓴 ‘파격적 맛’ 주변 반대 무릅쓰고 제대로 된 음식 고집해 연잎버거·돈가스 등 실험적 음식 계속 개발 ◆ 처녀 농군처럼 살아가는 신윤남 셰프 그녀의 웃는 모습은 연꽃 같다. 다소곳한 억양이다. 야생초처럼 단아하게 말한다. 꼭 명상가 같다. 연요리 전문 식당 오너셰프 자격이 있을 것 같다. 일단 기본 과일 및 채소류를 집 근처 밭에서 해결한다는 게 믿음직했다. 된장을 담그기 위한 콩은 물론, 찹쌀까지 직접 농사 짓는다. 가게 옆 정원에서는 샐러드용 채소가 자란다. 마당에 자두·매실·오가피·대추 등도 자란다. 하지만 모든 식재료를 자급자족할 수 없는 법. 맛간장·식용유·물엿·밀가루·파프리카 등은 안동 시내 가서 사 온다. 대신 화학조미료통은 없다. 6년여 노하우가 동원된 각종 산약초 효소액이 조미료와 양념 구실을 한다.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식당 전용 수천평 연밭에는 홍련, 백련 등 무려 100여종의 연꽃이 있다. 그게 있기 때문에 연을 이용한 각종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연잎차와 연비누도 만들었다. 연꽃도 함부로 채취하지 않는다. 하절기로 접어들어 꽃망울이 두 번째로 열리고 닫히는 순간 따 와, 연잎에 싸서 냉동고에 보관하면 된다. 연밭은 서울서 내려오던 때부터 조성했다. 항균 기능이 있는 연줄기는 사과과수원에 뿌려 천연 농약 구실을 하도록 했다. “안동이 군자의 고장이잖아요. 군자와 연꽃이 연결될 것 같아 연음식 전문 식당을 열었어요.” 그녀의 하루 일과를 보면 애처로울 정도다. 식당을 열기 전 그녀는 남편과 함께 농사에 전념했다. 연밭은 물론, 논과 밭, 과수원 관리를 동시에 한다는 게 결코 녹록지 않았다. “농사 참 어렵더군요. 풍년이면 가격이 흉년이고 가격이 좋으면 양이 흉년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었어요. 일밖에 없는 일상이었어요. ‘도대체 사는 게 뭔지’란 넋두리를 자주 했어요. 이러다가 밭고랑에 고꾸라져 죽겠구나 하는 불안감이 밀려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작심한 게 식당이었습니다.” ◆ 안동화련 밥상 해부 연잎밥도 다른 데와 조금 다르게 만든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 쪄낸다. 찹쌀이 약밥처럼 다 쪄졌을 때 소금물과 참기름을 적당한 비율로 뿌리는 게 요리의 포인트. 고명으로 팥·잣·연근·밤·은행알·호두·대추 등을 올린다. 연잎으로 감싸 다시 채반 위에서 찌기 위해 짚이나 실로 묶는다. 그래야 향기가 더해지고 찹쌀의 찰기가 증가된다. 이 집에선 연잎이 참 다용도로 이용된다. 간고등어를 찔 때도 연잎으로 싸고, 오겹살과 닭고기로 연저육찜과 연계육찜을 만들 때도 자신의 직감을 믿고 대추·꽃사과·양파청을 섞은 걸쭉한 액을 베이스로 오겹살과 닭다리와 닭봉을 졸여냈다. 직감이 남달랐다. 농사 짓는 대추는 몸을 따뜻하게 해줘서, 꽃사과는 한 한의사가 좋은 식재료란 말을 듣고, 양파는 깔끔한 맛을 만들어줄거라 보고 그렇게 혼합했다. 닭강정 같은 연계찜이었다. 사과과수원도 꽤 규모가 크다. 1년에 2천500박스 정도 나온다. 그래서 그걸 갖고 동치미의 변형태인 사과물김치를 만들었는데 그 맛은 가히 파격적. 여느 물김치는 일단 군둥내 비슷한 엷은 새콤함이 안개처럼 혀를 감싸는데 이 물김치는 맹물만큼 싱거웠고 쓴 맛까지 감돌았다. 시중 식당 물김치 맛에 길들여진 사람은 외면할지 모르겠다. 이 국물은 꼭 강원도 봉평식 막국수에서 즐겨 사용하는 과일육수 스타일이다. 찬모들도 물김치 맛이 너무 이상하다면서 손님상에 내놓지 말기를 원했지만 그녀는 자기 방식을 믿는다. 국물을 만들 때 특이하게 당귀와 구기자를 우려냈다. 사과 속을 파내고 그 속에 미나리와 홍고추를 고명으로 한 백김치를 박아넣었는데 나온 메뉴중 가장 예뻐보였다. 기자는 그 사과물김치 때문에 안동화련을 더 믿게 됐다. 장사치가 특이한 맛을 고집한다는 건 문닫을 각오가 아니면 실천하기 어렵다. 부부는 돈보다 뭔가 제대로 된 음식을 개발한다는 데 더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이밖에 일손이 많이 가는 구절판, 일반 무보다 더 아삭하고 단단한 순무로 만든 안동식혜, 퓨전햄버거 같은 연잎버거, 닭가슴살과 두부를 섞어 만든 두부선, 육류 대신 연근과 우엉만 이용해 만든 잡채도 돋보인다. 당면도 효소액으로 볶아서 일반 식당과 맛이 차이가 난다. 사과·양파·생강·마늘·연잎가루·사과청 등이 들어간 돈가스도 돼지고기를 아끼지 않아 식감이 상당히 좋았다. 장아찌 중에서는 과수원에서 캐온 금전초 장아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식사를 다 하고 2층으로 가면 연잎차를 마실 수 있다. 이때 디저트로 감자·사과·고구마·연근·버섯·단호박·당근 말랭이를 맛 볼 수 있다. 연잎가루가 들어간 연잎칼국수는 밀가루 비린내가 나는 일반 칼국수와 달리 부드럽고 쉽게 넘어갔다. 한 여름에는 직접 기른 과일을 디저트로 낸다. 그녀는 셰프라는 말이 싫다고 했다. 그리고 요리에는 올챙이인데 신문에 나가면 신문사가 욕을 먹는 건 아닌지 당황스럽다고 했다. 기자는 그녀의 반듯하고 정갈함 뿐 아니라, 식재료를 텃밭에서 가져온다는 것에 한 표를 던지고 싶었다. 부부는 정말 서울 생활을 잘 정리한 것 같다. 남편은 식재료를 잘 챙겨주고 아내는 맘대로 자기만의 레시피를 실험한다. 최근 만난 가장 이상적인 레스토랑 같았다. 월요일은 휴무. 예약 필수.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678-2번지 (054)858-0135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4.20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2)들안길 초밥전문점 ‘민수사’ 의 민병용
프로는 ‘사각(死角)’을 즐긴다. 일식의 경우 일본 조미료의 5인방으로 불리는 ‘사시스세소’를 안다. 그게 뭐지? 사는 사토(설탕), 시는 시오(소금), 스는 스(酢·식초), 세는 쇼유(正油·간장), 소는 미소(味曾·된장). 그게 다가 아니다. 간장도 타래(요리용 양념간장)·덴다시(天汁·덴푸라용 간장)까지 건드려야 한다. 거기다가 칠리분말·검정깨·오렌지껍질·산초·생강·김 등 7가지 재료가 들어간 꼭 ‘라면 분말수프’처럼 생긴 일본식 조미용 양념인 ‘시치미(七味)’까지 내밀면 겨우 일본 조미료 좀 안다는 소릴 듣는다. 초밥만 해도 참으로 무궁무진한 스토리가 일본 전역에 포진해 있다. 마니아는 앉는 자리도 프로답다. 셰프가 선 채로 초밥을 빚는, 작업대 구실을 하는 다이 공간을 멀리하고 구석 방으로 간다면, 그는 좋은 초밥을 먹을 자격이 없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초밥이 셰프의 손에서 떠나는 순간부터 급격하게 건조해지기 때문이다. 대구에도 ‘초밥 하면 낸데’라는 셰프가 좀 있다. 하지만 대구의 초밥문화는 서울에 비해서 왠지 설익고 조금은 무례한 것 같다. 밥 위에 생선류를 올린다고 모두 초밥인 건 아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 메뉴를 실험하고 부족함을 발견하는 상상력과 창조력 가득한 셰프가 늘 그립다. ◆ “저는 대학 안 들어갔습니다” 민병용 셰프(38). 현재 대구시 수성구 들안길 초밥전문점 ‘민수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20여년 경력의 그를 지난 9일 밤 9시에 만나 자정 무렵까지 쉼없이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자기보다 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많다”면서 인터뷰를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지난 3월20일 KBS 스펀지 ‘한점 승부’를 유심히 봤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최고의 초밥왕을 찾는 스시배틀 프로였기 때문. 우승자는 현재 서울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2번 출구 근처 두산인프라코어 지하에 있는 천상(天翔) 여의도 직영점의 셰프 정종태씨. 정씨는 고등어초밥으로 1등을 했는데 민 셰프는 “초밥왕을 찾는 자리에 대구 출신이 한 명도 뽑히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속상했습니다. 저도 그들 못지 않은 초밥을 만들어 보여줄 수 있었는데….”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식당에는 그를 포함해 모두 13명의 셰프가 있다. 그는 꼭 축구감독 같다. 3인방 공격조는 김기홍·김도완·김수중. 김기홍은 사시미와 초밥, 김도완은 초밥과 물품구입, 김수중은 각종 소스 및 탕, 조림 등을 커버하고 있다. 막내는 보조로 있는 손희철씨(25). 다이석은 모두 8개, 룸은 8개. 2005년 12월, 꿈에 그리던 자기 초밥집을 갖게 됐다. 경남 거창 출신인 그는 대학을 가지 않았다. 김영삼 정권 때 ‘신한국인’이란 말에 매료돼 요리사의 길로 들어선다. 경남 거창 가조에 있는 한 학원에서 3개월 요리를 배워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하지만 그 실력은 구구셈 하는 정도. 정식으로 식당에서 일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고향을 떠나 맨 처음 달서구 송현동 승마장 근처에 있었던 대광초밥에서 요리의 기본기를 배운다. “요리의 출발은 청소인 것 같습니다. 올챙이들은 청소를 천하게 여기는데 그래선 크게 될 수 없죠. 어찌보면 청소가 요리의 시작이자 끝인지도 모릅니다. 청소를 잘 하고 식재료를 잘 장만해야 비로소 좋은 요리가 가능합니다. 요리 후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으면 식재료를 망칠 수 있습니다. 그 시절 선배들이 왜 청소부터 엄격하게 시켰는지 이제 조금 알 만합니다.” 하지만 주인과 주방장의 갈등으로 3개월 만에 그만둔다. 이어 현재 수성구 대우트럼프월드 자리에 있었던 금강초밥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때 대구 일식문화가 뭔가 좀 이상했다. 이런 게 초밥이 아닌 것 같았다. 흉내를 내는 것 같았다. 서울의 초밥문화가 궁금했다. 서울로 간다. 강남구 역삼동 상록회관 뒷골목에 있었던 한 초밥집이었다. 현재 ‘Mr 초밥왕’으로 불리며 강남구 청담동에서 스시효 오너셰프로 있는 안효주와 쌍벽을 이루는 국내 초밥 1세대 거장을 거기서 만난다. 매일 혼이 났다. 대구식 칼질이 ‘마구잡이’라는 걸 깨닫는다. “칼질을 했는데 사부가 기겁하며 반년 이상 칼을 못잡게 하더군요. 숯돌에 칼 가는 것 하나도 정말 어렵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시미용 칼은 양 날쪽 쇠의 경도가 달라 갈 때도 더 강한 우측이 10번이라면 좌측은 2~3번 갈아야 되더군요. 일식용 칼을 ‘호죠(丁)’라 하는데 제대로 된 셰프는 최소 10여종을 가져야 하고 이들 칼도 용처가 각각 다릅니다. 생선과 육류를 자를 때는 데바호죠, 사시미를 만드는 사시미호죠, 채소류를 다듬는 우스바호죠 등으로 나눠집니다. 요리는 신성불가침 지역이었습니다. 저는 요리기구와 식재료에 대한 기본기부터 다시 배워야만 했습니다.” ◆ 대구 공짜 스키다시 천국…본 메뉴는 지옥 서울에 갔을 때 그의 나이는 28세. “서울 올라 오기 전 대구의 초밥문화는 거의 횟집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죠. 공짜 스키다시가 너무 많아지는 바람에 초밥집이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오니 일본 본토처럼 모든 개별 메뉴에 가격이 매겨져 있더군요. 공짜는 없었습니다. 달랑 초밥 한 접시 갖고 황홀한 표정을 짓는 단골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제가 선배에게 ‘스키다시를 듬뿍 줘야 불만이 없을텐데요’ 하니, 선배가 ‘회 먹을 때 회만 먹으면 되지 다른 건 필요없다’고 하더군요. 저한테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의 말대로 당시 대구의 초밥 옆엔 ‘정통’이란 말이 붙기 곤란했다. 그냥 횟집의 부대 메뉴 중 하나가 초밥이었다. 자기만의 색다른 초밥, 손님도 원하지 않고 셰프들도 매너리즘에 빠져 그건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냥 광어와 새우 정도, 저급한 분말 와사비만 발라줘도 흡족하게 먹었다. 분말보다 몇 배 더 비싼 생 와사비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러니 초밥집도 횟집의 들러리에 불과했다. “저는 서울 단골의 질문 수준에 또 한번 놀랐습니다. 평소 못 보던 메뉴가 나오면 그 식재료는 어디서 구입했고, 가격은 얼마고, 레시피에 대해서도 성가실 정도로 꼬치꼬치 물었습니다. 다이 앞의 셰프들은 전인미답의 경지를 찾기 위해 엄청 연구하더군요. 마구로초밥일 경우 참치는 죽을 때까지 헤엄치며 잠을 자지 않는 어종이란 정도의 전문적 정보를 알려주더군요. 손님수준이 높으니 자연 셰프들도 덩달아 공부하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사부는 매일 시장에 가서 재료를 사갖고 왔지만 직원보다 먼저 출근했다. 오너셰프의 권위라는 게 말이 아니라 실천에서 온다는 걸 절감한다. 공부를 하자! 민 셰프는 전문서를 사서 주경야독을 한다. 그리고 대구로 왔다. ◆ 민 셰프의 초밥라인 일단 일반 쌀보다 4천~5천원 비싼 의성 안계쌀로 초밥을 만든다. 밥을 지을 때 물과 쌀을 1대 1로 가지만, 햅쌀일 경우 수분이 많아 물을 조금 더 줄인다. 밥을 한번 할 때마다 40인분을 하는데 촛물은 설탕 3, 식초 2, 소금 1, 정종, 다시마, 레몬을 섞어 만든다. 초밥의 표준 온도는 인간의 체온과 같다고 보면 된다. 36.5℃,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실온에 노출시켜선 안된다. 그래서 초밥 전용 나무 용기인 ‘한다이(飯台)’를 사용하고, 초밥을 다이로 옮겨온 뒤에도 비닐을 깐 나무통에 초밥을 보관한다. 밥알이 마르는 걸 방지하기 위해 축축한 수건 등으로 덮어놓아야 한다. 전채 요리로 나오는 일본식 계란찜인 ‘차왕무시’도 기포를 완벽하게 제거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차왕은 ‘찻잔’, 무시는 ‘찜’이란 뜻이다. 계란은 물과 1대 1 비율로 잘 저어주면서도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된다. 한꺼번에 60~70개를 찜통에 넣어 쪄내기 위해 찻잔에 나눠 부을 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마지막에 나무종이인 ‘우수히다’로 표면에 떠 있는 거품을 완전하게 제거한다. 초밥 종류는 계란·광어·돔·우럭·연어·참치·새우·전복·쇠고기·개불·아스파라거스 등이다. 초보자를 위해 먹는 순서를 알려준다. “일단 계란초밥부터 먹고, 다음에 광어·돔·우럭 같은 흰살생선, 다음은 마구로 같은 붉은살 생선, 이어 고등어 같은 등푸른생선, 아나고, 쇠고기, 패류, 마지막엔 디저트 같은 아스파라거스 초밥순으로 먹어보세요.” 그는 밥알을 몇 개 뭉칠까? 광어처럼 오래 씹어야 되는 흰살생선일 경우 밥알을 좀 더 넣는데 보통 300알, 참치 등 부드러운 생선은 220알 정도면 충분하단다. 이는 어떤 경도를 가진 생선류가 올라가느냐에 따라 밥알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보리차가 안 보여 찾았다. 그건 여름에 내고, 대신 동절기엔 녹차류를 낸단다. 원래 이 맛에서 저 맛으로 잘 건너가도록 해주는 게 보리차인데 일식당에선 빼놓을 수 없는 메뉴이다. 점심특선은 1인분 2만원, 저녁 초밥정식은 3만(초밥 10 조각)~4만원(12 조각). 사시미초밥은 4만5천~8만원. (053)768-2727 ◆ 향후 계획 지역에서 처음으로 초밥 개인전을 갖고 싶단다. 일명 ‘초밥디너쇼’. 쉬는 날인 일요일을 이용할 거란다. 1인분에 10만원 정도 내, 단골 및 지역 미식가를 부른다. 평소 시간 등의 제약 때문에 쉽게 낼 수 없었던, ‘이게 초밥’이란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민병용류의 초밥’을 그림처럼 선보이고 싶단다. 가령 과일초밥, 된장초밥 같은….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4.13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니들이 피자맛을 알아?
이탈리아에서 피자가 대중화된 것은 1830년대. 나폴리에서 ‘피체리아’라는 이름으로 시작해 이탈리아 전역으로 번진다. 나폴리 피자는 8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지킨다. 2004년 이탈리아 농무부에서 규정을 만들었다. 나폴리 피자협회인 AVPN(Associazione Verace Pizza Napoletana)이 내건 ‘나폴리 피자의 8가지 규정’의 골자는? 전기·가스 화덕이 아닌 참나무 장작 화덕을 사용. 화덕 온도는 485℃. 예전에는 베수비오산의 뜨거운 화산암을 사용해 3분내 구워내야 하지만, 워낙 고온이다 보니 피자 밑바닥은 탄 것처럼 까맣게 되기 일쑤다. 잘 구운 감자칩 같다. 피자의 크기는 지름 33㎝, 둥근형으로 손 반죽하고, 크러스트의 두께는 2cm, 피자 가운데의 두께는 0.3cm를 넘으면 안 된다. 토핑도 토마토소스와 치즈만 인정한다. 하지만 국내는 거의 가스 화덕, 그러면서 다들 ‘본토식’이라고 외친다. 기자도 처음엔 그들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미국식 피자가 너무 폼을 많이 잡고 맛을 복잡하게 왜곡시켰다. 알칼리성 피자를 산성으로 기죽여놓은 것 같다. 19세기 후반, 많은 이탈리아인이 미국행 길에 오른다. 그속에 조반니 롬바르디라는 이탈리아인도 섞여 있었다. 그가 1905년 뉴욕에 최초로 낸 나폴리 피자 집이 큰 인기. 이후 피자는 풍부한 토핑과 큰 사이즈 등 변형을 거듭한다. 이탈리아 피자가 얇고 기름기 없는 도우 위에 치즈·토마토·바질 등만 올린 가벼운 음식이라면, 미국식 피자는 두꺼운 도우 위에 페퍼로니·소시지·고기·치즈를 듬뿍 올린 무거운 음식이다. 화덕에 굽는 이탈리아와 달리 프라이팬이나 스크린(피자를 얹는 판)에 얹은 뒤 오븐에 넣어 굽는다. 타바스코 소스와 치즈가루도 미국식 피자에서 빠질 수 없는 양념이다. 시카고의 명물 딥디시 피자의 경우 두께가 3㎝ 정도. 미국식 피자는 국내로 흘러들어와 ‘코스트코 피자’로 불린다. 지름 44㎝라는 대형 사이즈에 1.3㎝의 두꺼운 두께, 빽빽할 만큼 풍부한 토핑과 짭짤한 맛이 특징이다. 이런 맛에 길들여지면 이탈리아 본토식 피자는 비스킷 같아 못 먹겠다고 반응한다. 이탈리아 본토 스파게티는 화장기 없는 ‘쌩얼’ 같다. 적당히 잘 익은 꼭 고두밥 같은 ‘알덴테’상태의 면발 앞에서 상당수 경상도 스파게티족은 덜 익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4.06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셰프를 찾아서 (1)대구 남구 대명9동 ‘국수’의 구자덕
식당주인이 음식을 모르면 그건 ‘범죄’란 생각이다. 식당주인이 요리까지 커버하고 있다면 우린 그를 ‘오너셰프(Owner Chef)’라 부른다. 경영과 주방이 분리된 식당은 결국 주인의 탐욕 등으로 인해 역사적 식당으로 진화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대구는 아직 오너셰프 비율이 채 10%도 안된다. 분발해야 될 것 같다. 최근 빛나는 셰프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번주부터 지역에서 요리를 자신의 천직(天職)이라 믿고 혼신의 힘을 다해 요리의 진경(眞境)을 개척해가는 미래파 오너셰프를 소개한다. 남구 대명동 앞산네거리에서 벚꽃길이 멋진 충혼탑 방향으로 차를 몰고가다가 얼핏 그 집 간판을 본적이 있다. 국수(GOOKSU). 옆에 ‘이탈리안 트라토리아(Trattoria) 슬로푸드’란 수식어를 붙여놓았다. ‘이탈리아 가정식 메뉴 전문 슬로푸드’란 뜻. 하지만 상대적으로 돌출돼 보이는 국수란 용어 때문에 다들 칼국수 전문점인 줄 착각해 이런저런 촌극이 벌어진다. 2010년 6월에 오픈했다. 인테리어 비용에 1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반지하지만 앞산의 풍광을 볼 수 있게 가로 5m 세로 60㎝ 크기의 장방형 통요리창을 펼쳤다. 구자덕 오너셰프(32)는 비주얼이 좋다. 서울 홍대 파스타 오너셰프 스타일이다. 훤칠하게 큰 신장, 자신감 넘치는 맑은 눈동자…. 모델로 갔어도 성공했을 것 같은데 엄청난 노동강도 때문에 아무나 성공할 수 없는 오너셰프의 세계로 점프인했다. 10년전부터 시내 동성로 옛 국제호텔 1층에 들어선 ‘리틀 이탈리아’란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형(구자태) 덕분에 이탈리아 요리 마니아로 성장해갔다. 이탈리아 요리에 목숨을 건 오승훈·윤경수씨와 삼국지처럼 의기투합, 대구에서 가장 제대로 하는 이탈리아 식당을 만들자고 약속한다. 본토의 맛을 위해 음식 맛을 해치는 ‘피클’부터 과감하게 거부했다. 가게 앞에 ‘본토의 맛을 위해 피클을 내놓지 않습니다’란 안내문을 자신있게 내밀었다. 어떤 이들은 그것에 불만을 토로했다. 굳이 피클을 원하면 짭짤한 맛이 감도는 올리브 열매 장아찌를 건넨다. “피클은 이탈리아에는 없습니다. 일본으로 갔다가 한국으로 수입되는 과정에 생긴 변종메뉴로 보입니다. 자장면집에서 단무지를 찾듯, 우리는 무심결에 파스타와 피자 옆에 피클이 바늘의 실처럼 붙어다녀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습니다. 정말 음식이 제대로 된 맛을 갖고 있다고 하면 절대 피클을 고집하지 않을 것 같네요.” 신선한 농수산물에서 제대로 된 맛이 나오지 절대 좋은 양념과 향신료에서 오지 않는다고 믿는다. 의성군 다인면에 살고 있는 고향 부모에게 의성에서 가장 좋은 마늘을 보내달라고 했다. 국내산 재료인 경우에도 실제 어느 고장에서 온 건지도 밝힌다. 건면 파스타 및 올리브 등은 상대적으로 고가인 ‘데체코’를 사용한다. 건면의 경우 하절기에는 6분, 겨울에는 7분쯤 삶는다. 흠을 숨기기 위해 이런저런 재료를 실없이 추가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우연찮게 문희갑 전 대구시장이 이 집 스파게티를 먹고는 단번에 단골이 된다. 1년이 안돼 소문난 레스토랑으로 주목받는다. 맛있는 집보다는 제대로 된 집이었다. 해산물토마토스파게티라고 하면 해산물만 넣지 거기에 브로컬리 등과 같은 각종 채소류를 넣지 않는다. 크림류를 먹고 싶다면 건면보다는 직접 세몰리나(Semolina·파스타를 만들 때 이용되는 정제한 경질밀)에 저가 계란 대신 더 노랗고 응집력이 증가되는 유정란 노른자를 사용한다. 좋은 요리를 하려면 운명적으로 이익이 많이 남지 않는다. 하지만 덜 남아도 더 감동하고 돌아가면 그게 제대로 된 식당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얼마전 청천벽력 같은 일이 발생한다. 집주인이 집을 비우라고 한 것이다. 모 기업의 대형커피숍이 그 집을 찜한 것이다. 한참 성장중이던 국수는 눈물을 머금고 밖으로 나왔다. 현재 영양사로 활동중인 아내와 힘을 합쳐 재기를 위한 공간을 최근 마련해 현재 인테리어작업 중이다. 오는 6월 중 예전 업소 바로 근처에서 오픈한다. (053)625-1365 이춘호기자 eekh@yeongnam.com ■ 구자덕 오너셰프 일문일답 “대구 파스타 문화는 일본스타일과 결합한 퓨전형…전통있는 가게 만들고 싶어” -어떻게 해서 요리를 하게 됐나. “대학졸업 후 LG전자에 취업해 다니던 중 형님이 오너셰프로 있는 동성로 리틀이탈리아에서 틈틈이 일을 도와주며 자연스럽게 이태리 음식을 접하게 되면서 흥미를 갖게 됐다. 평소 운동에 취미가 많아서 여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스쿠버다이버와 응급구조사 자격증도 있다. -창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 “쉽지는 않았지만 준비와 계획하는 시간을 1년 동안 가졌다. 모든 것은 준비와 계획한대로 움직여줬다. 부모와 형의 도움도 있었지만 회사에서 일할 당시 미래를 위해 조금씩 모아뒀던 돈도 도움이 되었다.” -대구 파스타 문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대구 스타일은 이태리 정통 파스타보다는 일본스타일의 파스타와 결합된 퓨전 이태리음식인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통스타일을 추구함으로써 재료 본연의 맛과 담백함을 살리고자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 -국수란 이름이 참 도발적이다. “국수란…, 이탈리아 음식을 생각하면 파스타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우리나라와 비교한다면 국수와 같은 의미일 것이라 생각해서 국수라 정하게 되었다. 또 앞산에 칼국수 가게도 많고 해서….” -종일 10시간 이상 서 있어야 하는데…. “사명감 없으면 몇 개월 못 버틴다. 자주 브레이크 타임을 갖는다. 틈틈이 직원들과 함께 30분정도의 가벼운 걷기를 하고 있다.” -면발 컨트롤이 정말 힘들 것 같다. “면에도 고유의 맛이 있다. 삶을 때도 바닷물 농도 의 물로 면을 삶는데 면마다 삶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삶는 시간의 비밀이란 것은 딱히 없다.” -본토 재료 구입하는 게 어렵지 않은가. “매일 칠성시장, 매천시장 등에 간다. 그게 기본이다. 대구에도 이젠 이탈리아 음식이 보편화되면서 전문 도매상이 있기 때문에 재료를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토마토 소스는 홀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토마토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지역 외국인들한테 반응이 좋은 것 같다. “남구 캠프워커 미군부대 군인들이나 군무원들이 많이 찾는다. 외국인 전용 대구 홍보안내 책자인 콤파스(compass)를 보고도 찾아온다.” -식당 운영과 관련해 국수만의 원칙, 서비스 원칙이 있다면. “아무리 사람이 많이 몰려와도 면을 미리 삶아두지 않는다. 주문과 동시에 면을 삶고 음식을 만든다. 이태리산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과, 이태리 생치즈, 데체코면만을 사용한다.” -최근 느닷없이 문을 닫게 됐는데. “뜻하지 않게 갑자기 문을 닫게 되어 속상한 마음은 물론 있지만, 지금의 시련이 좀더 큰 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거라고 믿는다.” -돈을 많이 벌면? “다른 사업 절대 안 한다. 대대로 전해 내려올 수 있는 전통식당을 만들고 싶다. 틈나면 세계각국으로 요리 여행도 떠나보고….”
기막힌 ‘대구푸드’ 사이트
식객단과 의기투합한 대구의 대표적 음식 사이트. 바로 대구시 식품위생과에 의해 2007년 8월 개설된 ‘대구푸드(www.daegufood.go.kr)’이다. 관에서 만든 홈페이지 중에서는 눈에 띌 정도로 객관적이고 콘텐츠도 풍성. 하지만 의외로 이 사이트를 잘 모르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소개한다. 대구식객단이 ‘일당백’의 자세로 현재 2만3천여개의 지역 식당을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해부해놓았다. 개별 블로거들이 올린 괜찮은 식당을 대상으로 3차 이상 심사를 해서 추천맛집으로 포스팅한다. 일반 업소도 자신있으면 신청서를 받아 등록하면 식객단이 방문해서 판단해준다. 이때 식당주는 식객단한테 정확한 정보를 줘야 유리하다. 여러 블로거들의 재방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모두 2천923개 업소의 정보를 대구맛집으로 DB(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추천 맛집으로 분류되는 업소 516군데를 기막히게 세분화해놓았다. 연인과 데이트하기 좋은 곳(85개 업소), 비즈니스와 접대하기 좋은 곳(115), 상견례(32), 돌과 회갑잔치(18), 생일파티(16), 가족모임(301), 회식(271), 분위기 좋은 곳(27), 드라이브하기 좋은 곳(32), 스트레스 풀고 싶을 때(26), 몸보신 하고 싶을 때(51), 외국인과 함께 가고 싶을 때(42), 친구와 가기 좋은 곳(271), 일반 점심식사(228), 저렴하게 즐기는 곳(103), 해장하기 좋은 곳(30), 아침밥 먹을 수 있는 곳(31), 줄서서 먹는 집(11) 등 18가지 상황별로 정리해놓았다. 기존의 케케묵은 한식·일식·중식·양식 분류법에서 몇 단계 진화한 식당분석이다. 식객단이 있었기에 이런 작업이 가능한 것 같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3.30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식객단 '맛집 찾기' 3년째
예전 고향 부모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모든 식재료를 직접 마련했다. 농사를 짓고, 양념도 만들고, 소스와 향신료도 ‘자작(自作)’이다. 예전 어머니는 음식에 관한한 ‘지존(至尊)’이었다. 모든 걸 자급자족했다. 하지만 그 어머니들이 이젠 귀찮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외식에 매달린다. 주말에 식구를 위해 직접 요리하는 어머니가 급감하고 있다. 주말은 ‘묻지마 외식’이다. ◆ 묻지마외식공화국…식품과의 전쟁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식당주는 자신이 사용하는 식재료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는지 잘 모른다. 식재료가 좋은지 나쁜지는 중간 유통상이 제일 잘 알고 있지만, 그들의 양심선언은 언감생심이다. 식품공전에 의거 유통할 식품에는 반드시 법정 식품첨가제가 있다. 일반인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른다. 식약청(식품의약품안전청)의 지침은 최소한의 기준치만 넘지 않으면 무방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특정 첨가제가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가도 사람을 대상으로 못하고 고작 1년 남짓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다. 최소 30년 이상 임상시험을 해야 되는데 현재 예산회계법상 그게 불가능하다. 라벨에 적혀 있는 깨알 같은 첨가제 목록을 본 적 있는가. 업자들이 떳떳하다면 왜 그렇게 작게 적어놓았을까? ‘이 음식, 먹어도 괜찮은가?’ 다들 하루에도 그런 생각을 숱하게 한다. 정부는 물론 이젠 시민단체도 나서야 한다. 기자는 며칠전 축산유통업계에서 은퇴한 한 인사를 만났다. 그는 “이제 식품 관련 기자들이 봉기해야 된다”고 말했다. 환경운동가도 이제 환경보호에만 매몰될 게 아니라 ‘나쁜 식품과의 전쟁’을 선포해야 될 것 같다. ◆ 대구식객단을 아세요 의미있는 모임 하나가 나타났다. 2010년 3월 출범한 대구식객단(회장 백운수)이다. 현재 100명의 회원이 있다. 이들은 암행감찰을 벌이는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같다. 대구음식문화포럼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일을 벌이고 있다. 일차적으로 명실상부한 대구대표식당을 엄선하는 데 주력한다. 아직 대외적 인지도는 그렇게 높지 않지만 ‘대구식당 지킴이’란 각오로 나선 회원 덕분에 그동안 무기력했던 식당의 서비스 마인드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이들은 ‘대구는 맛없는 고장’이란 말만 나오면 분개한다. 일부 회원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실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대구음식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1기에는 328명, 2기 때는 192명, 지난 7일 출범한 3기는 모두 100명으로 짜여져 있다. 짝수달 첫째 주에 정기모임을 가진다. 그때 자기가 미는 모범 업소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고 크로스체킹도 한다. 묻지마외식공화국에 음식 不信 더 깊어져… 대구의 맛 대표할 식당 엄선에 ‘책임감’ 블로거 포스팅 업소로 개업 3년 넘어야 하고 오너세프여야 심사대상 세차례 이상 현장실사 크로스체크 등 거쳐… 6개월 주기로 재점 문제땐 추천맛집 제외 현재3기 100명활동 전문성 높일 연수 필요 ◆ 추천맛집 어떻게 선정하나 식객단은 2년간 시행착오를 거쳤다. 별다른 지원이 없었다. 모두 자비로 식사를 한다. 활동비라고 해봐야 분기별 1만5천원선. 그래서 현장을 밀도있게 점검하는 게 버거웠다. 대표식당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별로 되지 않아 숱한 논란도 벌였다. 자체적으로 평가를 위한 객관적 잣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식객단 취지를 잘못 이해한 업소로부터 푸대접을 받기도 했지만, 묵묵히 참고 일했다. 올해들어 회장단도 구성됐다. 회원 대다수는 푸드 블로거다. 식객단 백운수 회장(다음 닉네임은 카멜레)은 평소 소방기기 관련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명우 부회장(다음·천지), 박명규 감사(다음·BKLOVE), 이혁중 사무국장(맛소클짱), 박세준 홍보국장(다음·대구알리미) 등도 활동에 적극적이다. 식객단은 별도의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대신, 2007년 8월 론칭된 대구의 음식 전문 사이트인 ‘대구푸드(www.daegufood.go.kr)’를 사이트로 이용하고 있다. 오프라인 사무실은 없다. 이들은 개인블로그 등록원칙도 마련했다. 자신이 직접 방문한 음식점과 관련된 글과 직접 찍은 사진만 등록해야 된다. 타인의 글과 사진을 일부 인용하여 등록할 경우 출처를 밝혀야 하며, 저작권보호정책의 규정을 준수한다. 등록된 글에 대한 책임은 식객단 본인에게 있다. 일차적으로 블로거들이 포스팅한 업소를 대상으로 심사 대상 업소를 정한다. 활동에 적극적인 회원과 임원 등 모두 8명이 3차례 이상 추천맛집을 방문, 현장 실사를 통해 선정한다. 나중에 문제가 생길 경우 추천맛집에서 제외된다. 6개월 주기로 업소를 재체크한다. 요즘 온라인 홍보에 민감한 일부 업소들이 식객단에 무료 시식 기회를 주고 있다. 무료 시식이라고 해서 봐주는 건 없다. 백 회장은 “추천맛집이 되려면 문을 연 지 최소 3년이 지나야 되고, 주인이 요리까지 하는 오너셰프 업소라야 가능하다”면서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향후 음식전문가도 심사단에 포함시키는 한편, 사전에 모범업소 선별 요령 등에 대한 교육 및 연수에도 치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식객단은 ‘식객단으로 선발된 후 흐지부지 활동도 거의 안 하고 상업적으로 맛집을 이용하려고 하거나, 식객단의 가치를 평가절가할 때’ 크게 낙담한다. 적극적인 컨설팅에 대해 ‘이렇게 하면 얼마씩 받아 먹어요’ ‘당신같은 사기꾼 많이 봤다’ ‘맛없으면 다음부터 오지마세요’와 같은 ‘봉변성 험담’을 들었을 때 다들 신분증을 반납하고 싶단다. 하지만 보람이 더 많다. 박세준 홍보국장은 자신이 강력하게 밀고 있던 동구시장 내 한 감자탕집이 장사를 포기하려고 하는 찰나, 무려 20번 이상 방문해 입소문까지 내준 덕분에 이젠 잘 굴러가고 있는 걸 가장 뿌듯하게 여긴다. 식객단은 ‘고품격 간판’을 그리워한다. 다들 ‘너무 시각적 효과에만 치중한다’고 꼬집는다. 그래서 ‘중구난방 간판’이 되고 말았다. 일본처럼 자신의 음식 철학이 담겨 있고 손님을 배려한 고품격 간판과 실내 인테리어가 아쉽단다. 이들의 실력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푸드스토리텔러(Foodstoryteller)’로 활동 영역을 넓혀도 좋을 것 같다. 식당 청결도는 보는 사람마다 시간·상황별 잣대가 달라진다. 식객단 차원에서 더욱 정교하고 객관적인 ‘청결도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될 것 같다. 올챙이 블로거는 자칫 자신이 암행어사나 된 것처럼 폼을 잡으려 할 수 있다. 속이 곪았는지는 감지 못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식당을 추천할 우려도 상대적으로 높다. 이럴 경우 식객단의 공신력이 추락할 수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육개장 도시만들기 토론회
대구육개장(따로국밥)에 대한 전문가들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20일 오후 대구시 북구 소상공인진흥원 교육센터에서는 대구시가 주최하고 대구음식문화포럼이 주관한 ‘대구육개장 명성 찾기와 활성화를 위한 육개장 도시 만들기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가장 뜨거운 쟁점은 따로국밥과 육개장을 하나로 묶어 ‘대구탕(大邱湯)’이란 통칭을 사용하는 문제였다. 흥미로운 사실은 따로국밥이란 명칭이 대구육개장에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패널로 나온 정봉원 영진전문대 관광경영과 교수는 150여명의 교직원을 대상으로 ‘대구탕, 따로국밥과 육개장, 대구따로국밥과 대구육개장 중 어느 명칭이 좋으냐’는 설문 결과, 응답자의 56%가 ‘대구육개장·대구따로국밥’을 선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푸드스토리텔링과 카피마케팅전문가들은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한 대구육개장은 기존 따로국밥 수준의 반응 밖에 못 얻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자 역시 대구육개장에는 반대다. 역발상의 카피마케팅거리가 충분한 ‘대구탕’으로 가는 게 얻는 게 더 많을 것이라고 본다. ‘대구탕에 대구가 없는 이유?’ 만약, 대구시가 이런 헤드카피를 서울역에 내민다면, 그리고 그 아래에 생선인 대구에는 X표, 쇠고기에는 O표를 하고 맨 아래 먹음직스러운 대구육개장 사진을 놓는다면 어떨까? 상당수 서울역 승객들은 대구탕에 대구가 없는 이유란 카피에 끌려 그 아래 메시지를 읽을 것이다. 그럼, 빙그레 웃으면서 ‘세상에 별스런 대구탕이 다있네’라면서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대구육개장은 이제 링 위에 올라왔다. 얻어 맞아 죽을 수도 있고 챔피언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지속적으로 미칠 수 있는 마케터 발굴도 절실하다. 계속 주장하면, 계속 가면 그게 길이 되는 법. 앞으로 대구시와 대구음식문화포럼은 제3의 명칭 선택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육개장 토론회 지상중계 ▶▶▶ 정봉원 영진전문대 관광경영과 교수 향토음식 전문점 혹은 프랜차이즈 시스템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 육개장 전문점을 운영하는 경영자는 맛의 맥을 이을 수 있는 가족 중심의 전통음식 전문점으로 성장하든지, 아니면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구축하여 체인사업으로 성장하든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여야 한다. 육개장은 가정음식이라는 인식이 높게 자리잡고 있어 맛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국물음식을 회피하는 고객들에게 영양가 있는 웰빙 향토음식으로 인식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목표고객을 선정하여 고객의 필요와 욕구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조리능력과 주방 설비를 감안하여 1~2가지 여성 메뉴도 필요하다. 냉동·냉장·레토르트(Retort) 등의 물류시스템을 확보해야 된다. 육개장의 물리적 속성보다는 감성의 힘으로 식욕을 느끼도록 하여야 한다. 육개장의 메뉴나 서비스를 식별할 수 있도록 명칭·기호·디자인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그리고 SNS를 이용한 맛집의 이미지화가 필요하다. ▶▶▶ 황광해 맛칼럼니스트 서울 일반 소비자에게 ‘대구식 탕반음식’에 대한 개념은 없다. 대구는 ‘음식문화가 뒤처진 도시’라는 막연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적이다. 서울에 올라가서도 경쟁 메뉴가 많아 버티기 힘들 것 같다. 서울식 해장국 명가인 청진옥·대중옥·이문설렁탕(이문옥)·잼배옥·영춘옥이 건재하다. 설렁탕, 청진동 해장국, 속초식(동해안식) 해물해장국, 충무식 해장국, 여수·목포·강진식(서남해안식)해장국 등 대구육개장에 대한 대체재가 서울에는 많다. 서울의 음식점 창업 관련자들은 되레 안동음식인 간고등어, 헛제삿밥, 찜닭, 식혜 등에 더 관심을 둔다. 대구육개장을 띄우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우선 정확한 자리매김이 필요하다. 반가음식인지, 시장통음식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된다. 정확한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대구의 스토리텔링 대상은 대구가 아니라 전국이다. 즉 정확한 자리매김이나 정체성 확보 후 전문가 집단의 인문학적 판단력과 정보를 기반으로 스토리텔링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미리 서울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서울의 문화 소화능력을 짐작하고 설계해야 한다. 스토리텔링의 의제를 먼저 설정한 후, 역사적 사실로 겉옷을 입혀 전개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경북 지역의 음식 중 안동음식과 대구음식의 자리매김, 대구 음식의 특장점, 차별화 포인트, 대구 탕반음식에 대한 인문과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지나친 역사성 추구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차피 현재 상업화된 음식들의 역사는 다 짧다. ▶▶▶ 박무덕 옛집육개장 3대 대표 ‘대구가 육개장의 본고장’이란 건 이제 음식에 관심 있는 이들은 알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육개장은 싸구려 음식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용어도 제각각이다. 육개장, 소고기국밥, 따로국밥, 장터국밥…. 육개장은 말 그대로 육개장이다. 쇠고기를 주재료로 채소, 기름을 둥둥 띄워서 나오는 국이다. 쇠고기국밥은 쇠고기를 재료로 만든 모든 국들이 포함될 수 있어 범위가 너무 크고, 너무 흔한 가정식 국이다. 따로국밥은 옛날 시골장터에서 뚝배기에 밥을 말아주던 국밥을 양반들이 먹기 좋게 밥과 국을 구분해서 상에 차려 낸 것에서 유래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대구의 자랑 대구탕은 육개장이 되어야 한다. 전통이 중요하고 정성이 중요한건 사실이지만 고객들이 그 전통과 정성을 알게 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동인동찜갈비 같이 한 군데 모여 있다면 홍보도, 손님들의 주목도 쉽게 받을텐데 육개장 집은 구석구석 흩어져 있어 개별적으로 도움을 주기도 힘드니 대구시가 나서야 될 것 같다. ▶▶▶ 하재용 음식중앙회 중구지부장 겸 교동따로 대표 따로국밥은 그 식품의 성격이나 유래, 영양적인 측면에서 우수한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관이나 영업주들의 관리 및 투자 소홀로 인해 그 품격이 떨어져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그간 따로국밥 특유의 맛을 유지·개선하는 데 못내 아쉬운 점이 많다. 따로국밥 전문점이 영세하고 그간 지역의 경기가 어려운 탓에 전통적인 따로국밥이 아닌 다른 음식들이 따로국밥이라는 메뉴(돼지국밥, 육개장)로 영업되기도 해 소비자들의 혼선을 빚기도 하였다. 현재 지역에서 영업하는 따로국밥 전문점(국일따로·교동따로·벙글벙글식당·대덕식당·전동따로·한우장)도 그 레시피가 업소마다 약간씩 다르다. 국일과 교동따로국밥은 사골육수와 무·대파·선지로 조리하고, 벙글벙글식당은 양지머리 육수·무·대파로 조리한다. 대덕식당과 전동따로는 사골육수와 배추우거지·무·대파·선지로 조리한다. 표준 레시피 제작도 시급하다. 따로국밥은 국을 달지 않게 하기 위해 대파의 진을 뺀 뒤 솥에 넣는 등 육개장과 레시피가 좀 다르다. ▶▶▶ 안홍 대구보건대 호텔외식조리계열 교수 대구에는 현재 모두 6개 버전(대덕식당·국일식당·옛집육개장·진골목·벙글벙글·온천골식당)의 쇠고기국이 있다. 사골 육수와 우거지의 유무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일식당은 소피와 사골육수가 들어가고 우거지 대신 대파와 무만 넣는다. 사골이 들어갔다는 건 일단 장터국밥의 전통이 스며든 것이다. 옛집육개장은 처음에는 칼국수도 팔다가 나중에 육개장 전문점으로 성장한다. 초창기에는 허파, 곱창 등 온갖 소 내장 등을 푸짐하게 넣었다. 하지만 소피는 국이 탁해진다고 해서 넣지 않았다. 초창기에는 기름을 듬뿍 담았지만 이젠 건강 때문에 기름을 많이 걷어낸다. 대덕· 국일과 달리 사골육수는 사용하지 않는다. 사태 살을 1시간 삶은 물에 대파·토란대·무·고춧가루를 넣고 1시간 끓여낸다. 벙글벙글은 국일식당 스타일에 선지 대신 고기 건더기가 들어간다. 사골육수에 무와 대파를 넣고(무와 대파 비율은 1대 2) 30분 정도 쇠기름을 볶아 고추기름을 만들어 국에 넣어 양지머리와 함께 끓여낸다. 대덕식당은 예전 청도집의 우거지해장국 스타일을 이어받고 있다. 엄격히 말해 육개장과는 거리가 있다. 우거지 선지해장국이다. 진골목식당은 사골육수를 베이스로 해서 대파와 토란대, 고기는 사태와 양지머리만으로 국을 끓인다. 일명 ‘경산쇠고기국’으로 불린다. 단맛이 나는 편이고 뻑뻑한 느낌이 있으며 채소가 물러서 녹아 있다. 토란대는 빼고 무와 대파만 갖고 30~40분정도 초탕을 끓여낸다. 처음부터 너무 푹 끓이면 재료가 흐물거려 식감을 망치기 때문에 초탕 때는 75% 정도만 살짝 끓이는 게 특징이다. 정리=이춘호기자
2012.03.23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경북미식가위원회 기획 ‘대구10미 정찬’ 기자 시식평
(1) 뭉티기=보통 훈제 연어 말이 등으로 많이 나오는데 소 우둔살에서 나온 뭉티기는 자칫 너무 크고, 힘줄을 잘 제거하지 않을 경우 오래 씹어야 하고, 나중에 심이 남을 수 있는 게 폐단이다. 뭉티기를 얇게 슬라이스해서 무순이나 아스파라거스, 부추 등 적절한 채소 및 과일을 곁들이면 식감을 더욱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뭉티기는 매콤한 고춧가루와 빻은 마늘을 참기름으로 감싼 양념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소스를 접시 위에 까는 것도 좋지만 외국인들에겐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많은 대구사람들은 외국인들이 뭉티기에 대해 혐오감을 느낄 것이라고 걱정을 하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유럽에서는 아주 대중적인 메뉴다. 쇠고기말고도 타조, 양, 생선 등도 날 것으로 먹는다. 번데기의 경우 유럽에선 낯설고 남아프리카인들에게 어필된다. 뭉티기를 라이스 페이퍼로 변형, 롤 버전으로 편곡하거나 스시 형태로 변주해도 좋을 듯 싶다. (2) 따로국밥=대구육개장이란 이름으로 나오는데 이날은 수프용으로 나왔다. 무와 파만으로 제대로 된 양식 느낌이 나지 않을 것 같아 4~5㎝ 칼국수를 집어 넣었다. 야채수프 느낌이 나서 괜찮다는 기분이다. 뚝배기에 담겨져 나왔던 기존의 따로국밥이 아주 모던해지는 순간이다. 그릇 하나가 바뀌었는데 확실히 달라져 보인다. 그날 칼국수 길이가 너무 짧은 것 같았다. 1~2㎝ 더 길어도 무방할 것 같았다. 매운 버전과 맵지 않은 두 개 정도는 마련해야 될 것 같다. 식감은 으깬 선지도 좋은데 들어갈 경우 양지와 사태살 중 어느 걸 사용하는지도 결정해야 된다. (3) 빵=이날 오징어 먹물로 만든 오징어 빵은 곁에 단 팥소가 너무 많고 이밖에 감자가 들어간 고로케 등 전반적으로 전채보다는 후식의 단빵 같았다. 전채로 오려면 바게트 같은 하드롤 스타일을 내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4) 복불고기 (5) 무침회 (6) 동인동찜갈비=스테이크 대용으로 메인 메뉴로 나오는데, 동인동 특유의 양념 맛을 내려면 스테이크 요리보다 두 배는 더 공력을 들여야 제 맛이 나온다. 잘 못 하면 스테이크 먹는 게 더 낫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날 막창도 옆에 냈는데 온기가 없었다. 신선로형 워머 위에 올려놓고 온기를 유지해야 식감이 줄지 않을 것 같다. 막창을 찜갈비에 붙이기보다 간 같을 걸 넣고 순대처럼 만들어 튀긴 뒤 슬라이스 해 막창돈가스 버전으로 변형시켜도 좋을 것 같다. (7) 납작만두(튀겨서 세운 게 인상적이다.) 막장의 석탄. 이게 불로 피어나기까지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향토음식도 마찬가지다. 향토음식이 타지에 강력하게 알려지려면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구사해야 된다. 그냥 우리 지역 음식이 맛있으니 먹으러 오라고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다. 맛있고 멋있는 음식이 흘러넘친다. 탁월한 음식, 경이로운 음식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 농업기술센터 생활개선과 등이 특산물을 갖고 그 지역만의 신메뉴를 개발한다. 하지만 알리는 과정에 다들 좌절한다. 그래서 ‘푸드스토리텔링 마케팅(Foodstorytelling marketing)’을 제안한다. 스토리텔링은 대중화됐지만 아직 ‘푸드스토리텔링’은 생소한 개념이다. ◆ 전국이 푸드스토리텔링에 목매다 전주는 ‘전주10미’, 광주는 ‘광주5미’, 목포는 ‘목포5미’, 대구도 ‘대구10미(이하 10미)’를 스토리텔링 마케팅차원에서 홍보를 하고 있다. ‘숫자마케팅’의 연장이다. 전주10미는 황포묵·콩나물·열무·애호박·모래무지·민물 게·무·미나리·파라시(팔월에 수확한 감)·서초(西草·잎담배), 대구10미는 따로국밥·동인동찜갈비·납작만두·무침회·누름국수·뭉티기(쇠고기 육사시미)·복불고기·야키우동·논메기매운탕·막곱창, 광주5미는 무등산보리밥·한정식·오리탕·김치·송정떡갈비, 목포5미는 민어·갈치·꽃게·낙지·홍어다. 최근에는 DMZ관광홍보를 위해 ‘DMZ10미’도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지난해 선정한 비무장지대(DMZ) 일원 10개 시군별 가볼 만한 10곳과 먹거리 10가지를 대상으로 ‘DMZ10경10미’ 관광상품을 내놓았다. 이는 해당 지역의 현지 주민, 대표 음식문화를 접목한 1박2일 또는 2박3일 종합투어프로그램이다. 10미로 꼽힌 음식은 강화 젓국갈비, 연천 민물매운탕, 고성 물회 등이다. 푸드스토리텔링을 멋지게 꽃 피우려면 여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파워블로그·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마케팅전문가·푸드스타일리스트·컬러전문가·식기전문가·테이블전문가·조명전문가는 물론, 심지어 카피라이터 등도 필요하다. 또한 한국관광공사·국내 외교사절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주물러야 한다. 때로는 ‘스크린마케팅’으로 의외의 대박을 낼 수 있다. 또한 ‘스타마케팅’도 여전히 유효하다. ‘1박2일’팀이 왔다거나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와 10미를 연결해도 통한다. 만약에 서울 학전소극장 김민기 대표가 10미로 뮤지컬을 만들거나, 신성일씨가 10미 홍보대사로 나서면 효과가 있다. 음식을 소재로 한 연극과 뮤지컬, 영화, 그림, 조각을 만들어도 괜찮다. 10미 티셔츠를 만들어 각종 축제 때 흘려도 좋을 것이다. 아트 디렉터를 통해 토털 디자인 작업을 해야 하고 이것을 지역 언론사가 동시다발적으로 받아주고 오피니언 리더를 움직여야 한다. 이 테크닉은 한 가지 콘텐츠를 갖고 여러가지 상품을 만들 수 있는 전문가인 ‘원소스멀티유저(One source multi user) 마케터’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 식품을 띄우기 위한 단발 자문회의, 단발 용역 시스템으로는 불가능하다. ◆ 10미 마케팅 어디까지 왔나 대구시는 2006년 10미위원회를 통해 따로국밥·동인동찜갈비·막창·누름국수·뭉티기·복불고기·야키우동·논메기매운탕·무침회·납작만두를 엄선했다. 올해 11회를 맞는 대구국제음식관광박람회의 전국적 인지도가 당시 그다지 높지 않은 걸 감지한 대구시가 더욱 예리한 푸드마케팅 전략을 구사한 셈이다. 하지만 10미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았다. 술안주로 더 어울린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만찬 메뉴로는 뭔가 1% 부족하다 등 여러 지적의 말도 나왔다. 그렇지만 따지고보면 10미만큼 대구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먹거리도 없다. 이런 가운데 대구시는 2007년부터 ‘대찬맛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대구를 벗어나 서울로 입성했다. 서울역 KTX도착 출입문 앞에 ‘대찬맛’이란 로고가 찍힌 광고탑도 세웠다. 올해는 서울역 KTX 2층 손님 맞이방에 LED 전광판을 달았다. 10미 중 5가지(육개장·찜갈비·뭉티기·막창·납작만두)를 홍보하고 있다. 따로국밥과 동인동찜갈비 살리기 작전에 돌입한다. 김범일 대구시장도 시청 구내식당에서 이걸 맛보기도 했다. 대구보건대 안홍 교수 등을 중심으로 표준 레시피 개발에 들어갔다. 찜갈비의 경우 이를 담는 찌그러진 양은 냄비가 비위생적이고 혐오스럽다는 비판이 도마에 올랐다. 그래서 지난해 스테인리스스틸 용기를 개발, 업소에 돌리기도 했다. 때맞춰 2009년 대구음식문화포럼, 이듬해 10월 대구경북미식가위원회가 10미를 띄우기 위해 투톱 지원사격을 시작했다. 이에 앞서 동남아 라이온스대회 때 10미가 회원들에게 소개되기도 했다. 지난해 2011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외국인과 외지인들을 위한 ‘대구음식 정찬메뉴’를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납작만두를 이용한 샐러드, 팔공산 자연송이 콘소메, 동해안 생선요리, 청도홍시 셔벗, 선지와 후추로 맛을 낸 한우안심스테이크, 감포 멸치젓으로 맛을 낸 시저 샐러드, 사과를 곁들인 요거트 샤롯데, 커피와 떡 등 모두 여덟가지 코스 메뉴를 개발했다. 인터불고 차현식 조리부장 등 지역의 호텔 수석셰프들이 동참해 개발한 것이다. 기자도 지난해 여름 당시 노보텔 총주방장 루이스 설포테인에게 10미를 시식해 보고, 퓨전10미를 만들도록 해봤다. ◆ 10미정찬 먹어보니 지난 13일 남구 대명동 프린스호텔에서 ‘10미정찬’을 풀코스식으로 내놓고 코멘트를 받는 자리를 마련했다. 대구경북미식가위원회가 주선했고 기자도 참석했다. 이틀 뒤 김범일 대구시장이 참석하는 10미정찬 시식회를 위한 전문가 모니터링 자리도 열렸다. 미식가위원회 회원인 최영준 대구공업대 교수, 안홍 대구보건대 교수, 김충호 영남이공대 교수 등이 10미정찬 메뉴 구성을 도와줬다. 이광수 프린스호텔 요리부장이 요리해 선을 보였다. 10미정찬은 난코스였다. 10가지 음식이 워낙 개성이 강한 탓이었다. 셰프에 따라 구성은 물론 맛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10미를 풀코스 양식으로 제시했다는 시도는 좋았지만 대다수 메뉴가 실제 10미 전문식당에서 맛본 음식의 질감과 풍미를 따라가지 못했다. 10미를 전혀 맛보지 못한 이들이 그걸 대구10미로 확신하게 될 우려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미를 동시에 맛본다는 의미는 있지만 코스식으로 묶는 데에는 요리학적으로 한계를 보인 셈이다. 술안주로 어울리는 매운 메뉴가 무려 5가지(뭉티기·막창·동인동찜갈비·무침회·복불고기)나 된다. 이게 문제였다. 중화하는 ‘사이 메뉴’를 끼우지 않고 두 메뉴가 이어져 나오면 속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매운 맛을 감미롭게 만들면 식감이 떨어진다. 10미의 본질은 누름국수 정도만 제외하고는 모두 매운 것 일색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번에 맛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할 게 분명하다. 절충점을 찾기가 참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납작만두는 그 속 내용물을 달리하면 ‘대구식 라비올리(만두 모양의 파스타)’가 될 수 있고, 야키우동도 스파이시 스파게티로 각인될 수 있다. 누름국수도 매운 메뉴 사이에 잘 넣으면 균형을 이뤄줄 것 같았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할 경우는 원래 10미 스타일대로 갈 건지, 아니면 완전 퓨전 스타일로 갈 건지도 고민해야 된다. 미식가위원회에서는 일단 내국인을 대상으로 만들고 원형을 거의 유지하는 정찬으로 간다는 가이드라인을 잡았다. 일단 전채로 뭉티기, 이어 수프로는 육개장 칼국수, 다음에는 빵·복불고기·무침회, 본식에 앞서 조금 부대끼는 속을 다스려주는 동치미 슬러시를 내고, 이어 막창을 곁들인 동인동찜갈비, 후식으로 유자청 곁들인 절편과 산수유차를 내기로 조율했다. 누름국수는 육개장 칼국수에 포함됐고, 칼국수가 육개장에 들어갔기 때문에 야키우동은 뺐다. 논메기매운탕은 비린내 때문에 제외됐지만, 민물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제공될 수 있다. 미식가위원회는 일단 10미정찬을 양식 스타일에 이어 오는 5월에는 대구한의대 한방식품조리영양학부 김미림·최미애 교수의 도움을 받아 한식 스타일, 계속해 일식 버전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답을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계속 실험을 해보면서 가장 대중적인 스타일을 찾아보겠다는 심산이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3.16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국을 찾아서 (5)태안의 숨겨진 명물 ‘게국지’
충남 태안군. 갯벌 품은 해안선을 갖고 먹고 산다. 그 해안선은 이미 명품 관광상품이다. 태안은 가로림만과 천수만과 맞물려 있다. 국내에선 유일하게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 해안선 연장 길이 530㎞. 110여개의 크고 작은 섬을 거느리고 있다. 좋은 소금을 만들 수 있는 기후조건을 갖춘 지방이다.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소금(자염)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태안에서 생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소금문화가 발달해 ‘젓갈 인프라’가 탄탄할 수밖에 없다. 서산을 포함한 태안권은 국내 어리굴젓의 메카. 어리굴젓은 전남의 진석화젓과 함께 굴로 만든 명품 젓갈이다. 전남 강진의 민물새우로 만든 토하젓과 같은 위상을 갖고 있다. 작은 새우인 멸치로 만든 곤쟁이젓도 태안 명품 젓갈인데 이제 품귀현상을 보인다. 대구 식도락가에게 태안은 좀 멀다. 4시간여 걸려서 가기가 주저된다. 그래서 태안의 토속음식이 거의 경상도쪽에 소개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전권도 그걸 잘 모른다. ◆ 염장식품 ‘게국지’ 태안의 대표적인 염장식품은 뭘까? 게국지와 우럭젓국이다. 기자도 그 음식을 몰랐다. 그런데 충남농업기술원에서 ‘충남의 맛’이란 책자를 기자에게 보내줘 알게 됐다. 며칠전 서울로 취재갈 때 KTX 안에서 만난 태안에 사는 한 어르신은 ‘충남에서 가장 특색있는 음식이 바로 게국지고, 모르긴 해도 전라도 목포의 홍어, 강진의 토하젓과 비견될 수 있는 향토음식’이라고 치켜세운 기억이 났다. 게국지? 게로 만든 ‘묵은지’같다. 그런데 아니다. 태안식 게장간장문화가 피워낸 전통음식이다. 된장국처럼 너무나 일상화된 음식이라서 태안군민은 그걸 어떻게 식당에서 팔 수 있냐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랫동안 태안 식당가에서 볼 수 없었는데 최근 농가맛집 ‘곰섬나루’ 등에서 예약제로 선보이고 있다. 충남의 대표적 국이 어떤 게 있는지 알아봤다. 굴냉국, 넙치아욱국, 밀국낙지탕, 박속낙지탕, 뱅우국(실치시금치국), 세모국, 오골계탕, 청포묵국, 굴국, 꽃게알된장국, 꽃게탕, 낙지국, 대하탕, 머위들깨탕, 버섯탕, 비지국, 사슴곰탕, 선짓국, 싱어아욱국, 쑥국, 열무쇠고기국, 옻닭, 오리백숙, 우렁이국, 인삼추어탕, 장어보양탕, 해삼국, 황복국 등이 있다. 태안 향토음식연구가인 정낙추씨가 게국지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게국지는 태안의 독특한 음식이다. 얼마전 1박2일팀이 태안 게국지를 시식하면서 전국에 널리 알려진다. 하지만 그때 통 꽃게를 넣고 끓여서 일견 ‘꽃게탕’처럼 보여 지역민들에게는 그다지 큰 공감대는 형성하지 못했다. 다들 “게국지는 그렇게 사치스럽지도 풍부하지도 않다”고 귀띔한다. 게장을 담근 두 번째 게국물에 김장 때 나온 허접 우거지(태안에선 꼬갱이 배추라 한다)와 늙은 호박을 넣고 만든다. 담그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전통방식의 게국지를 담그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게국을 만들자면 게장(꽃게장)을 전통적인 방법으로 담가야 한다. 태안지방의 전통 꽃게장은 간장으로 게장을 담그지 않고 소금물로 담갔다. 양조간장으로 담근 꽃게장은 근래에 생긴 조리법이다. 전통 꽃게장은 소금물을 끓여서 식힌 다음 항아리에 넣고 그 소금물에 꽃게를 담가 숙성시키는 방법이다. 소금물에 담근 꽃게장은 간장게장처럼 꽃게의 색깔이 검지 않고 깨끗하며 단맛이 없어 꽃게 고유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꽃게는 10월부터 살이 올라 이듬해 5월이 절정. 전통 게장은 10월부터 꽃게를 담그면서 시작된다. 끓여서 식힌 소금물에 꽃게를 담갔다가 건져먹고 나서 게국에 물과 소금을 추가하여 다시 끓이고, 꽃게를 담그는 일을 이듬해 5월까지 반복하다가 꽃게 철이 지나면 칠게나 농게, 능쟁이(등딱지 지름이 5~7㎝ 정도인 새끼 게) 등을 같은 방법으로 담근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긴 앙금처럼 남은 바닥 국물이 게국이다. 게장을 담그는 과정에 우러난 게의 국물이 배여 있어 구수하고 감칠맛이 난다. 맛은 어떨까? 어릴 때부터 게국지와 동고동락해온 정지수 태안문화원 사무국장은 “목포 홍어를 처음먹으면 코를 쥐고 뒤로 물러서지만 자꾸 먹으면 중독이 되듯이 게국지도 처음에는 젓갈 냄새 때문에 부담스럽지만 먹을수록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게국지와 비슷한 항렬에 있는 우럭젓국이 담백하다면 게국지는 아주 시원하다. 보기에는 걸쭉해보이지만 실제 먹어보면 국물도 맑고 담백해 예전 태안의 대표 해장국으로 사랑을 받았다”고 게국지 자랑을 했다. 경상도에선 성급히 고춧가루를 넣고 싶겠지만 게국지에는 안넣는다. 서울경기권을 닮아서 그런지 그렇게 맵지 않다. 예전에는 게국지 식재료도 간단했다. 들어가는 채소는 우거지, 무, 호박이 전부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고 어패류는 능쟁이를 빻아 넣는다. 이때 주꾸미와 어류를 넣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곳에선 갑각류를 고집한다. 이유는 뭘까? 시원하기 때문이다. 고춧가루 대신 청·홍고추를 넣는다. 특이한 건 별도로 육수를 빼지 않고 쌀뜨물을 사용한다. 그래야 더 시원하다. ◆ 게국지 전문 ‘곰섬나루’ 현재 태안에서는 게국지 전문점은 없다. 예약을 하면 맛보여주는 식당은 있다. 충남 농가맛집인 ‘곰섬나루’(충남 태안군 남면 신온리 505). 2007년 향토음식자원화사업을 통해 식당으로 특화됐다. 곰섬이라 불리는 신온리 마을은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되고 밀물 때는 섬이 되는 곳이다. 이 작고 아름다운 마을사람들은 반농, 반어업의 형태로 살아간다. 곰섬나루는 종가집 며느리 등 네 농가가 공동으로 운영한다. 곰섬나루의 대표메뉴는 함초간장게장 정식이다. 함초간장게장은 청정해안 폐염전에서 자생하는 함초를 이용한 간장게장이다. 이밖에 장아찌, 비취묵, 샐러드, 전, 잡채 등 개발음식과 제철에 나는 농산물로 만든 부식도 별미.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사진제공·도움말=충남농업기술원·태안문화원 ■ 게국지 레시피 ① 호박은 껍질을 벗기고 속을 파내어 도톰하게 나박 썰어놓는다. ② 배추와 무청을 씻어 소금에 살짝 절인 후 물에 헹궈 물기를 뺀다. ③ 홍고추와 풋고추를 절구에 거칠게 빻아놓는다. ④ 박하지(민꽃게)와 능쟁이(새끼 게)는 날카로운 부분을 떼어내고 절구에 찧는다. ⑤ 대파, 마늘, 생강은 다지고 양파는 굵게 채 썰어놓는다. ⑥ 준비한 모든 재료를 넣어 버무린 후 젓국간장이나 젓갈로 간을 한다. 이 때, 쌀뜨물로 염도를 조절하여 끓이면 더욱 구수한 맛을 낼 수 있다. (충남농업기술원 추천) 말린 우럭포 끓인 ‘우럭젓국’도 맛 보세유∼ 젓국이란 가장 태안스러운 식품용어이다. ‘젓갈육수’의 준말로 보인다. 백령도 섬사람들로 비교하자면 까나리액젓 같은 것이다. 우럭은 예전 태안 사람에게는 아주 비싼 어류였다. 그래서 아껴 사용했다. 우럭젓국은 ‘말린 우럭포를 끓인 음식’을 뜻한다. 일견 강원도 횡성의 황태국 같은 느낌이 전해온다. 우럭젓국도 유래가 있다. 제사상에 놓았던 우럭포의 살을 대충 발라먹고 남은 뼈와 머리를 쌀뜨물을 넣고 끓여 먹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잘 말린 우럭포를 쌀뜨물로 끓이는데 두부나 무를 넣기도 한다. 간은 소금으로 하며 양념은 약간의 마늘과 파를 넣는다. 잘 끓인 우럭젓국의 맛은 비린내가 나지 않으며 담백하고 구수하다. 우럭젓국의 핵심은 우럭포를 어떻게 말리느냐에 있다. 너무 말리면 쓴맛이 나고 덜 말리면 비린내가 난다. 우럭포를 잘 말리는 방법은 좋은 소금으로 알맞게 간을 하고 우럭포에서 물기가 완전히 제거되어 노란색이 날 때까지 말리는 게 중요하다.
2012.03.09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맛집 파워블로그 ‘모모짱’과 주인장 전문양씨
이젠 품질이 아니라 마케팅, 그것도 온라인 마케팅이 최대 승부처.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마케팅에 소비자가 휘둘리고 있다. 지난해 마케팅 업계의 화두는 단연 ‘파워 블로거’였다. 홍익대·대학로·강남·건국대·가로수길·삼청동 등 젊은 소비층이 밀집한 서울의 대표상권일수록 온라인 마케팅은 생사를 가늠하는 변수. 주인들은 홈페이지를 움직이는 것보다 파워블로거를 잡는 게 더 효과적이란 계산을 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파워 블로거의 영향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젠 팸투어 초청 1순위도 파워 블로거다. 대구시는 물론 전국 각급 지자체가 관광상품을 마케팅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파워 블로거를 팸투어 형식으로 초청한다. 얼마전 기자는 일본 아리마 온천관광협회 초청으로 팸투어를 다녀왔는데 같은 흐름을 감지했다. 일본 관광 관계자 역시 일간지 기자보다 파워 블로거를 움직이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 특히 무한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식당업계는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파워 블로거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블로거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흐름은 서울·경기쪽에서 훨씬 더 공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대구는 아직 상당수 식당주가 맛집 블로거와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맛집 파워 블로거 ‘모모짱’ 전문양씨(43). 연 방문자 120만명을 넘긴 네이버 맛집 파워 블로거 중 한 명이다. 지역의 맛집 파워 블로거 중 드물게 여성이다. 그녀의 닉네임은 ‘모모짱’. 모모는 일본말로 ‘복숭아’를 뜻한다. 그녀는 원래 ‘패션통’. 패션 관련 디자인·코디네이팅·컨설팅 영역을 동시에 건드린다. 영남대 의류학과를 졸업한 뒤 1993년 일본 도쿄로 간다. 일본문화여자대 대학원에서 패션머천다이징, 다시 박사과정에서 피복환경학, 이어 도쿄모드학원에서 CAD(컴퓨터 설계의 한 분야)·패션일러스트·컴퓨터그래픽까지 배우고 대구로 돌아온다. 북구 산격동 한국패션센터, 백화점 쇼윈도 디스플레이 의상 코디네이터…. 또 푸드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와중에 맛집 블로그에 필이 꽂힌 모양이다. “일본에서 약 6년 있다 왔어요. 그들한테서 끝처리의 완벽함을 배웠죠. 패션쇼의 경우 오픈 전에는 초등학교 학예발표회 같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디테일한 장치와 분위기 조정 등을 통해 물건을 만들어내는 저력에 깜짝 놀랐어요. 일본의 세심함 같은 게 내게도 전염된 것 같아요.” 출발한지 채 3년이 안되는 후발 블로거. 하지만 살가운 고백과 배려, 치밀한 포스팅, 맛집 잣대에 대한 일관성 등에 힘입어 지역 맛집 파워 블로거로 평가받게 된 것. 조선일보 음식전문기자인 김성윤씨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때 모모짱으로부터 향토음식 취재 도움을 받았다. 그녀가 대구 교보생명 뒤편 롬바드 상가 1층 이탈리안 레스토랑 플레이트(Plate)를 추천했다. 거기서 무려 5시간 동안 마라톤 인터뷰를 했다. 플레이트 오너셰프 박대수씨는 경북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야심파. 신세계 푸드를 거쳐 이탈리아 피에몬테 소재 호텔 레스토랑 안티카 제카, 수성구 범어동 아트리움 등 7군데 레스토랑을 거쳐 최근 독립했다. 그녀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처럼 산다. 대구만 맴도는 게 아니다. 서울 강남 유명 스시바에 있다가 이내 부산 식당가를 훑고다닌다. 최근들어 자신에게 파워가 생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초등생’처럼 산다. 그게 그녀의 주특기인 셈. “맛을 넘어 제 꿈을 확인하는거죠. 블로거, 그건 제 직업도 아니고 그냥 좋아서 파고드는 건데, 그러니 누구한테 영향을 받을 필요도 없고 제 생각을 진솔하게 피력합니다. 하지만 객관적이 되기 위해선 남보다 몇 배 더 열정적으로 뛰어다녀야 하지요.” 그녀가 아끼는 들안길의 한 스시바의 경우 30여회 포스팅을 해서 주위로부터 ‘스폰을 받는 게 아니냐’하는 의심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포스팅한 식당이 1천400여개.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주유천하’ 했는지를 가늠케 한다. 번 돈을 음식 사먹는데 다 퍼붓는 것 같다. 지난주에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부티크 스시바인 ‘스시타츠’를 다녀온 모양이다. 블로그에 들어가 포스팅한 내용을 일별했다. 일본어에 나름 능통하고 일식에도 조예가 있어서 주인한테 묻지 않고도 상당수 메뉴는 이름을 안다. 일식 초보자에겐 생소한 누룩에 절인 무인 ‘베타라즈케’, 일본식 계란찜인 ‘차왕무시’ 등 오리지널과 퓨전의 차이를 정리해주고 간다. 또 색다른 메뉴가 보이면 팔로를 위해서 요리 만드는 법을 직접 관련 사이트에 서핑해서 알려준다. ◆ 나의 일상 지난해 대구육상선수권대회 때 대구시 측에서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파워 블로거들이 모여 대구 음식을 홍보해달라는 것. 그렇게 해서 바람돌이·굿뉴스·알제트·준팔근팔·깡지·짱똘아빠·조춘·액션맨 등 지역의 파워 블로거 9명이 손을 잡았다. 이중 깡지는 모모짱과 함께 지역의 대표 여성 블로거이고, 안타깝게도 액션맨은 고인이 됐다. 지역 파워 블로거 추천 대구 맛집 30선을 공개했다. “종일 블로그에만 매달려 있지는 않아요. 집중과 분산을 하죠. 한 주에 두 시간 정도 짬을 내서 주중에 가본 식당 정보를 일괄적으로 포스팅하죠. 이 콘텐츠는 매일 오전 8시40분 자동 로딩되도록 예약 프로그램을 가동합니다. 하루에 평균 30개 정도 댓글을 달아줍니다.” 그녀도 어지럽게 포스팅 된 맛집을 ‘연말정산’하고 푸드 다이어리도 공개한다. 왕중왕전을 거쳐 자신이 이 정도면 됐다 싶은 식당 리스트를 추천한다. 현재 빵집·디저트·레스토랑·분식 관련 괜찮은 식당 정보를 올려놓았다. “앞으로 6개월간 포스팅 해야 될 식당을 확보한 상태예요. 일단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에서 색출합니다. 워낙 많은 식당을 접하다 보니 ‘맛집의 공통분모’같은 게 느껴지더라고요. 길을 가다가 간판 모양이나 상호만 봐도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오죠. 지인으로부터도 괜찮은 식당을 소개받습니다.” ◆ 모모짱이 생각하는 대구 양식당 일식 못지않게 양식당에 올인한다. 새 양식당이 생겼다 하면 바로 확인에 들어간다. 어라, 그래서 그런지 지역 양식당 족보를 손금 보듯 한다. 기자와 ‘양식당 OX 배틀’을 벌였다. “대명동 앞산순환도로 상에 있는 ‘르네상스’에서는 커피 바람이 불기 전인데도 가장 근사하고 비싸면서 세련된 커피를 맛보았죠. 범어동 ‘아트리움’은 프로방스 스타일의 인테리어와 달팽이 요리를 처음 내고 동네 주택가에 진출한 첫 사례로 기억해요. 삼덕성당 뒤편 ‘디종’은 발사믹식초에 엑스트라버진 오일을 섞어 빵을 찍어 먹도록 했고 새로운 버전의 향신료 문화를 대구에 처음 상륙시킨 공로가 큰 것 같습니다. ‘테이블13’은 홍재만 오너셰프가 주방에서 나와 자기 메뉴와 식재료의 가치에 대해 직접 손님에게 설명한 첫 케이스로 기록됩니다. 최근 오픈한 남구 대명9명 카페거리에 있는 프랑스 레스토랑 ‘몽중헌’도 자기 메뉴를 잘 설명해주죠. 두산오거리 ‘라벨라쿠치나’는 스타일리시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신지평을 연 것 같아요. TBC 옆 ‘더 파리스’는 밤의 야경이 멋지고…, 셰페우스는 가장 비싼 인테리어 비용으로 오픈했으면서도 대중적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해 안타까워요. 신라레스토랑은 유기농 식단의 선봉대로 보입니다. 5년전 유림노르웨이 옆에서 오픈한 ‘알리오’의 홍준곤 셰프는 특유의 손맛을 갖고 있고 착한 가격에 착한 맛을 갖고 있어요. 남구 대명9동의 ‘파스타민’은 파스타 대중화를 선도했다고 봐요. 이밖에 대백 송죽미용실 옆 로열노씨, 동인동 찜갈비 골목 근처에 있는 비스트로 114, 앞산 고산골에 있는 안타카빌라 등이 맘에 들어요.” 그녀는 대구의 양식당 수준은 서울에 견주어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모모짱'이 맛집블로거에게… "음식 너무 세세하게 알려주면 '재미' 없어…칭찬은 절제해야" 파워 블로거가 파워만 있으면 불행해진다. 파워를 가질수록 식당주와 방문자들과 공유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답을 내려고 하지말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식당은 물론 자신에게도 냉혹하게 던져야 서로 발전할 수 있다. 일부 블로거는 칭찬일색으로 흐른다. 비판 일색도 문제지만 줏대없는 칭찬 일색은 더 문제란 생각이다. 섣부른 칭찬은 결국 그 사실만 맹목적으로 믿고 식당으로 간 사람들을 쉽게 실망시킬 수 있다. 그러면 그런 정보를 준 블로거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도 누굴 팍팍 밀어주고 싶지만 칭찬 대목에선 정말 절제를 한다. 그래서 나만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정말 맛있다’가 아니라 ‘괜찮다’로 걸쳐둔다. 너무 세세하게 알려줘도 역효과다. 영화 줄거리를 다 알려주면 영화가 재미없어지듯이. 어떤 블로거는 사진을 멋있게 보이려고 색보정을 하는데 나는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노란빛이 강하면 강한대로 놔둔다. 얼마전 이탈리안 레스토랑 빠빠베로를 포스팅 했는데 그때 지역에서 처음보는 햄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여러 요리 책을 봐가면서 햄 정보를 패키지로 알려준 적이 있다. 진정한 맛집 블로거가 되려 한다면 탄탄한 기본기와 방계 음식 지식을 계속 업그레이드해야 된다고 본다. 그냥 사진만 찍어 올리는 것 갖고는 뭔가 1% 부족한 것 같다. 일반인들이 착각하지 말아야 될 사안이 있다. 그건 맛집 블로거가 포스팅 한 식당이지, 맛집이 아니란 사실이다. 화학조미료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고 싶다. 기본 위에 조미료 올리면 뭐라 안한다. 부실한 기본을 감추려는 조미료는 일종의 음식에 대한 ‘테러’라고 본다.
2012.03.02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국을 찾아서 - (4)복어국
복어 요리는 일제 때부터 등장한 줄 아는데 아니다. 조선의 옛 조리서 ‘규합총서’와 풍속서인 ‘동국세시기’에 복어(鰒魚)에 대한 요리·손질법이 나온다. 조선 후기 이덕무가 적은 ‘청장관전서’는 ‘복어는 복숭아꽃이 떨어지기 전에 먹어야 하며, 음력 3월이 지나면 복어를 먹고 죽는 경우가 많지만 이를 알면서도 먹는다’면서 복어의 독 성분인 테트로도톡신을 경고한 대목도 나온다. 복어 요리는 이미 조선 때 대중화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더 흥미로운 고담(古談)이 많다. 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복어광으로, 그를 위한 ‘찬가’까지 남겼다. 심지어 그는 ‘목숨을 걸고 복어를 먹는다(搏死食河豚)’고 했는데 ‘하돈’은 ‘물돼지’란 말로 복어를 의미한다. 오나라 왕 부차(夫差)를 멸망의 길로 밀어넣은 서시(西施)를 거론하면서 복어의 맛을 잊지 못한 귀족들이‘서시의 젖(西施乳)’이라 했다. ◆ 대구의 복어국 역사 지구상에서 복어요리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데는 일본과 한국 정도가 고작이다. 의외로 중국은 거의 먹지 않고 한국과 일본에 수출한다. 제대로 된 복어요리 노하우는 일본에 다 있다. 에도 막부시대만 해도 워낙 많은 이들이 복어 독 때문에 죽자 한때 복어음식 금지령까지 내려진다. 오사카는 일본에서 복어 면허제가 맨 처음 도입된 도시. 파란 대접시에 대패밥처럼 얇게 나비 날개처럼 착륙시키는 복사시미는 복요리 기량을 가늠케 하는 최대 승부처다. 얼리지 않은 상태에서 종잇장처럼 얇게 써는 건 정말 어렵다. 복요리 노하우는 일제 강점기 때 한국인들에게 전파된다. 많은 이들은 부산을 복어의 메카로 안다. 하지만 아니다. 부산은 돼지국밥, 곰장어 요리, 불고기 등이 더 강세다. 그럼 어떻게 복어의 고장이 됐는가. 1992년 김영삼 대통령 측이 불법선거 모의를 하다 들켰던 남구 대연동 복어요리집 ‘초원복국’ 때문에 부산의 복어가 전국적 명물이 된 것이다. 70년대초에 등장해 이젠 기업형으로 성장한 ‘금수복국’도 부산을 복어의 도시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마니아들은 이런 집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형화 때문에 다들 육수로 맛을 낼 수밖에 없다. 복어의 진미를 만끽하기 어렵다. 복어의 진미는 뒷골목 해묵은 식당의 주방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더 높다. 광복 전만 해도 대구에서 제대로 복요리를 먹을 수 있는 곳은 중구 향촌동과 북성로의 고급 일식당이었다. 거기서 일을 하던 일식당 멤버들이 훗날 대구 일식의 주도권을 잡는다. 60년대초 아시아 극장 근처에 있었던 회 전문 ‘삼락’이 대구에서 처음으로 복국 전문시대를 연다. 당시 복국은 현재로 말하면 한 끼 100만원짜리 스테이크를 먹는 것과 진배없었다. 특권층과 미식가에게만 가능했다. 60년대 대구의 섬유공장 사장 등은 비즈니스 차원에서 대신동 진갈비 등 각종 숯불갈비집과 불고기 집을 들락거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동절기만 되면 복국집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연말연시 폭음에 시달린 호주가들은 속을 풀기 위해 약속이나 한 것처럼 복국을 찾았다. 비용이 조금 부담스러우면 대구탕으로 종목을 바꾸기도 했지만…. 향촌동의 일식집 미향에서 나와 1975년 옛 뉴대구호텔 뒷골목에서 명성식당을 연 최종하씨(66). 삼락과 함께 복사시미 전문점으로 유명했던 명성은 직접 포항에서 올라온 참복어를 동절기 지역 유지들에게만 예약식으로 내놓았다. 당시 경매가만 해도 1㎏에 8만원선. 1인분에 1만원이 넘었으니 지금 시세로는 10만원 이상이다. 최씨는 현재 7호광장 근처로 식당을 옮겨 생태 전문집을 꾸려가고 있다. 60~70년대 대구에는 골목형 복국집이 형성된다. 그 역사를 주도한 대표적인 할머니가 있다. 바로 대하림의 ‘이득천 할매’였다. 대하림은 골목형 복국집에서 시작해 나중에 매머드 식당으로 발전하다가 다른 사람에 의해 수성구 대하림 시대를 연다. 대하림은 이씨 할머니가 70년대말 서울로 올라가서 망한 뒤 대구로 내려와 재기를 노리면서 만든 상호인데 81년 당시 중구 남산동 복명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었다. 나중에 중광스님까지 단골로 왔고, 그의 그림까지 걸릴 정도였다. 70년대 대구는 복국의 메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번창한다. 대표적인 데가 대신동 동산약국 옆 골목의 자갈마당·반월당 등. 현재 나름대로 맛의 전통을 지키고 있는 곳은 4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반월당 네거리 남동쪽 모퉁이에 있는 광성복어(425-8948), 중앙고 정문 옆에 있는 대진복어(수성구 범어3동·754-6988), 원대오거리 자갈마당 복어(358-7112) 정도다. 원래 진짜 복국에는 육수가 필요없다. 맹물로 끓여야 진국이다. ◆ 전국의 이색 복어탕집 여러 종류의 복어 중에서 가장 비싼 복은 참복과 황복. 모두 1㎏에 10만원이 넘는다. 식당에서 먹으려면 1인분에 3만원 이상 지불해야 된다. 황복은 장어와 연어처럼 바다에서 놀다 민물로 올라온다. 물론 산란 때문이다. 현재 국내 황복의 메카는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강. 타계한 산악인 박영석씨와 만화 ‘식객’의 작가 허영만이 시식해서 유명해진 ‘임진대가집(대표 이선호)’이 이곳에 있다. 이 집을 비롯 황복철만 되면 무려 50여 횟집 및 매운탕집이 임진강변에서 황복국을 판다. 하지만 사철 가능하지 않다. 대충 4월 한 달 정도만 먹을 수 있다. 그 바닥에선 매년 4월20일~6월20일이 제철. 이 두달간 황복은 알을 낳기 위해 임진강으로 올라온다. 수컷은 암컷을 뒤따른다. 부화를 하면 60일 후 바다로 간뒤 정확하게 3년뒤 고향으로 온다. 산란기 황복은 낮에는 쉬고 밤 9시부터 움직이다. 이때 그물을 이용해 잡는다. 강물 안에 청진기를 대면 황복이 이빨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파주에는 황복잡이 배가 140여척이 있다. 2007년부터 황복 양식에 나서 성공을 했지만 타산성이 없어 모두 전을 거두고 있다. 최소 1㎏ 정도라야 맛이 나는데 양식산은 3년이 돼도 200~300g 밖에 안 자라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하구언이 생기기 전 낙동강, 금강, 영산강, 섬진강 등에서도 황복이 잡혔다. 현재는 하구 둑 때문에 임진강 외에는 잡기 어렵다. 부산의 경우 자갈치 시장, 부산역 근처 영주 터널 근처에서도 황복이 팔렸다. 금강 하구인 충남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강경포구에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 된 복어집으로 불리는 ‘황산옥(041-745-1836)’이 있다. 1915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2대 사장 한상례 할머니가 18살에 시집와 시어머니에게 전수해 57년동안 운영하다가 며느리 모숙자씨에게, 다시 모씨는 아들에게 4대째 손맛을 전수했다. 시동생이 대전에서 지점을 꾸려간다. 시유지 하천부지에 있었기 때문에 2000년 황산나루터 앞에 4층 건물을 지어 옮겼다. 오래 황복 전문점이었다가 하구에 둑이 생기면서 금강 황복을 못팔게 된다. 충남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갈산시장 인근에서는 특이하게 ‘건복어탕’을 맛볼 수 있다. 홍성군 갈산면 상촌리 갈산시장 인근에 자리한 44년 전통의 삼삼복집(041-633-2145)에서다. 이정옥 할머니(75)에 이어 막내딸 김용주씨(39)가 손맛을 이었다. 건복어는 조막만한 졸복을 해풍에 시나브로 한 달 이상 말려 사용한다. 마치 황태를 말리듯 눈과 찬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맞게 한다. 요즘 서해안에서는 이를 다시 건조창고에서 1년에서 길게는 3~4년씩 숙성시켜 탕거리로 사용한다. 오래 숙성된 것일수록 깊은 국물맛을 낸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 복어 TIP 중국도 94년부터 양식복어를 한국과 일본으로 수출한다. 양식 복어에는 독성이 거의 없다. 그런 복어는 서로의 꼬리를 무는 습성이 있다. 꼬리에 상처가 있으면 대개 양식이다. 현재 6천~7천원대 복어국은 거의 중국 등지의 수입산 냉동 은복을 사용한다. 복국이라고 할 수 없다. 진미는 거의 참복이 갖고 있다. 그런데 수입도 안되고, 자연산 복어는 자연산 홍어처럼 귀해 일반인은 거의 먹기 힘들다. 거제도산 양식 참복도 있다. 생복은 매운탕은 금물. 지리로 먹어야 제맛이다. 육수에 의존하면 프로 요리사가 아니다. 식당에 가서 물어보라, 육수를 갖고 끓이는지. 확률상, 복국은 번듯한 큰 집보다 허름한 집이 더 맛있다.
2012.02.17
대구로 온 외지음식들 <하>새재묵조밥 대구 입성기
그 식당의 수문장은 식초 냄새.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식초향이 반색한다. 꼭 예전 초당(草堂)에 들어온 것 같다. 요즘 식당은 너무 ‘실험수’ 같아 뭔가 아쉽다. 문경새재 전통음식인 새재묵조밥. 이게 수성구 대구시교육청 근처에 자리 잡은 건 8년전. 이 생소한 음식이 지역민에게 어필하기까지 장성우씨는 여러 차례 힘든 고비를 겪었다. 외지 음식에 대해 보수적인 대구에서 뿌리내리는 게 얼마나 지난한 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식초와 효소, 소스 등 지역의 대표적 발효음식 연구가로 활동중인 장성우씨(40). 그의 부모는 문경새재 초입에서 가장 유명한 묵조밥 전문점 ‘소문난식당’을 꾸려간다. 장씨는 어릴 때부터 묵과 동고동락하면서 성장했다. 부모가 묵을 만들 때 전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훗날 대구로 와서 대학에 다닌 그는 식당을 열기 전 온라인 비즈니스를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장씨는 묵말랭이를 만들기 위해 볕에 묵을 말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어쩌면 그에게는 사업가적 기질보다 음식연구가 캐릭터가 더 강했는지도 모른다. 점차 고향의 청포묵을 대구에서 꽃 피울 결심을 한다. “엄마, 대구서 청포묵이나 팔아 볼란다.” “성우야, 지발∼ 하던 사업이나 열심히 해라.” 하지만 자식 이길 부모가 누가 있을까. 어머니(박남복)에게 부탁을 해서 청포묵을 직접 받아 대구서 팔기로 했다. 고향에서 묵을 보내주면 그가 북부터미널에 가서 수령해 온다. 당시 대구의 묵은 도토리 아니면 메밀묵이었다. 청포묵은 생소했고, 있다고 해도 오리지널 청포묵과는 질감이 사뭇 달랐다. 꼭 투명한 젤리 같았다. 하지만 문경의 청포묵은 옥빛이 감돌고 아이 엉덩이처럼 탱글탱글했다. 청포묵은 묵 중에서 가장 비싸고 갈무리하기도 어렵다. 하절기엔 만든지 2시간 만에 상해버린다. 재고관리가 참으로 힘든 음식이었다. 몇몇 시장에 물건을 내놓았지만 주인들이 선도를 위해 냉장고에 보관하는 바람에 소비자가 제대로 접하기 힘들었다. 재고가 생겨났다. 남은 묵을 재활용하기 위해 묵말랭이로 만들었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별로였다. 묵이 왜 이렇냐? 왜 이렇게 비리냐? 어묵 아니냐? 등등…. 청포묵을 알아보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 “안되겠다, 직접 식당을 운영하자” 그는 결심을 한다. 2004년 12월 직접 청포묵 전문점 ‘새재묵조밥’을 연다. 부모는 극구 말렸다. 그는 배수진을 쳤다. 홀린 듯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2시간 남짓 차를 몰고 고향 집의 묵을 받아 대구로 와서 팔았다. 일단 고향의 재료를 100% 사용하자고 다짐한다. 물은 물론 반찬과 양념, 묵, 심지어 된장찌개까지 모친이 장만한 걸 가져왔다. 도토리묵도 분말을 이용하면 당일 만들 수 있지만, 그는 전통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4일이나 걸린다. 주위에서 다들 ‘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다들 이 식당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상당수가 ‘묵조밥이 뭐냐’고 물었다. 장씨는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이해시켜야만 했다. 그는 어느 순간 청포묵 전도사가 돼 있었다. 자신이 직접 홀서빙을 하면서 묵조밥을 알렸다. 처음에는 코스식이 아니라 묵비빔밥 같은 묵조밥 하나만 팔았다. 채 썬 묵에 조밥을 섞어 비벼 먹도록 했다. 조밥을 빼고 멸치 육수만 수북하게 부으면 ‘경상도식 묵사발’ 같았다. 이 집 비빔밥에는 안동 헛제사밥처럼 고추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느끼하다고 생각하는 손님들은 고추장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이 음식은 간장과 된장찌개만으로 간을 해서 먹는다’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이들이 있었다. 가슴이 아팠다. “다들 비빔밥에는 고추장이 들어가야 되는 줄 알더군요. 문경음식이 대구에 잘 먹히지 않는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 3년만에 찾아 온 고비 3년이 됐다. 하지만 볕이 들 기미가 없었다. 아내는 옛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했다. 돈도 많이 까먹었다. 하루 10만원도 못 파는 날들이 허다했다. 사면초가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툭 하면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우야, 문경은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데 대구는 왜 그 모양이냐. 대구는 문경 음식이 아닌가보다. 빨리 접어라.” 그는 한발 양보를 한다. ‘대구에 맞는 음식으로 묵조밥을 새롭게 변신시켜야 된다’면서 전략을 수정한다. 기존 묵조밥을 베이스로 코스식 한정식 메뉴를 새롭게 개발한다. 죽·샐러드·채소요리·볶음·탕·구이·계절메뉴, 메인요리로는 청포채, 그리고 청포묵비빔밥과 여덟 가지 반찬을 냈다. 반찬은 문경에서 내는 것과 동일하다. 다시마부각·가지볶음·멸치무침·망초나물·호박볶음·물김치·오이지 등을 낸다. 탕평채 같은 청포채는 청포채·오이·당근·표고·황지단·목이버섯·숙주나물·김채·묵은지를 섞어 만드는데 중식당의 해파리냉채 못지않았다. 그때부터 대구가 조금씩 반응을 한다. 장씨는 때맞춰 불기 시작한 웰빙음식 붐을 잘 활용한다. 육고기와 해산물 사용은 최소화하자고 다짐한다. 계절별 음식도 엄선했다. 봄에는 봄나물, 여름에는 생나물 절임음식, 가을에는 버섯류, 겨울에는 묵나물류를 특선으로 냈다. 가급적 모든 식재료는 고향 것을 사용하자고 결심한다. 참기름만 해도 고집스럽게 신토불이 버전만 올린다. 국산깨는 문경에서 온다. 주변마을 기름집을 통해 2∼3일마다 한번씩 짠다. 중국산이 국산보다 3∼4배 저렴하다는 걸 알지만 그는 그걸 사용할 수 없었다. 조선간장을 이용한 궁중떡볶이, 부추콩가루 무침을 선별적으로 냈다. 어느 날 모 기업의 회장이 그에게 쓴소리를 한다. “니맛도 내맛도 아닌 묵요리는 난생 처음 본다”면서 그의 코스 요리에 낙제점수를 주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건강 식초와 두부, 옥수수수염차, 뽕잎차 등을 선물로 보내 끝내 단골로 만든다. ◆ 대구식 변형 메뉴도 개발 물론 묵요리는 먹다보면 느끼해진다. 지역 단골을 위해 조금 매콤한 신메뉴도 만들었다. 겨울용 홍합찜이다. 봄에는 무침회, 여름에는 회를 뺀 물회, 가을에는 먹버섯·능이버섯·꽃바랭이·새송이·느타리버섯·표고버섯 등으로 버섯볶음을 낸다. 우엉도리뱅뱅이도 아이디어가 빛난 메뉴다. 원래 도리뱅뱅이는 피라미를 이용하는데 그는 튀기면 비슷한 질감을 보이는 우엉을 이용했다. 또한 ‘전가복’ 같은 오복탕도 개발했다. 5가지의 어패류, 5가지의 버섯류, 5가지의 채소류를 넣고 전분은 찹쌀·현미·견과류·좁쌀 등을 이용해 올렸다. 디저트도 좀 특별나다. 도토리·청포묵·좁쌀밥 누룽지다. 이건 시간과의 싸움을 거쳐서 빚어낸다. 묵을 끓이고 나면 누룽지가 생긴다. 하지만 잘 벗겨지지 않아서 물을 부어 하룻밤을 불려야 한다. 긁어내 양지에서 1주일 남짓 말려야 한다. 그런 다음 180℃ 식용유에서 10초만에 튀겨낸다. 조만간 허가를 받아 식자재 직거래 장터도 만들 계획이다. 문경 과수원의 사과는 물론 재래식 식초, 백초·오미자·오디 효소, 시금치와 황태 등 10종 이상의 별난 장아찌, 제철 나물류, 이밖에 간장·된장·고추장 등도 내놓을 방침이다. “고진감래라고 봅니다. 대구문화와 잘 접목한 결과 이젠 단골이 꽤 늘었습니다. 환자는 물론, 건강을 지키려는 단골이 늘고 있죠. 매운 걸 좋아하던 이들도 이젠 우리집의 싱거운 메뉴에 잘 적응하는 것 같습니다.” 그는 돈을 버는 맘이 아니라 ‘도(道)를 닦는 맘’으로 음식을 대한다. 절벽까지 내몰린 그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우직한 ‘장인정신’ 덕분이 아닐까. (053)753-6969
2012.02.10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대구로 온 외지음식들 -<중> 제주 고기국수와 안동 헛제사밥
■ “매콤하지 않은 제주맛 지켜라” ◇…대구에서 ‘제주’란 말이 들어간 상호로 나름 입지를 굳힌 식당은 수성구 범어동 법원옆에 있었던 제주가든이다. 1979년 시내 반월당 덕산탕 옆에서 ‘제주옥’으로 출발했는데 제주도 관광 특수를 누리기 위해 일부러 상호에 제주란 말을 넣었다. 이후 동인호텔 근처로 갔다가 90년대초 범어동으로 옮겨 적잖은 돈을 벌었다. 나중에 그 부지는 두산위브더제니스에 팔린다. 제주갈치 전문점은 2000년 들면서 붐을 이룬다. 국내 갈치는 크게 제주도의 은갈치와 목포의 먹갈치로 분류된다. 은갈치는 낚시로, 먹갈치는 그물로 잡는데 모두 9~11월이 제철이다. 대구의 경우 90년대까지만 해도 항공 수송료 때문에 ‘당일바리(‘그날 잡은 갈치’란 뜻의 제주도 선주들의 은어)’는 언감생심, 냉동갈치만 유통됐다. 89년 남구 봉덕동 봉명파출소 근처에서 출발, 현재 들안길로 이전한 정아갈치(대표 이상면)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갈치전문점. 뒤에 중구 삼덕동 제주테우갈치, 들안길 성산포갈치 등이 뒤따른다. 삼덕동 테우갈치는 ‘테우’란 제주 방언을 지역민들에게 전파한다. 테우는 ‘뗏목’을 가리키는 제주도 방언. 통나무 10여개를 나란히 엮어서 만든다. 길이는 5m, 너비는 2m 정도. 테우갈치는 테우에 실은 조리 모양의 그물로 잡은 갈치를 말한다. 본래 테우는 한라산에서 캐어 온 ‘구상나무(香木)’로 만들었다. ◆대구 첫 제주음식 전문점 수성구 상동의 ‘제주 고기국수’ 수성구 상동에 있는 ‘제주 고기국수’는 제주음식 전문점이라 해도 될 정도로 제주풍이 짙다. 다들 어탕국수는 알아도 고기국수는 뭔가 잘 모른다. 돼지국밥에 밥 대신 소면을 넣은 ‘돼지육국수’ 스타일이다. 얼핏 경북 북부지방에서 유행하는 묵과 돼지를 넣은 전골처럼 끓인 ‘태평추’와 비슷하다. 국수 대신 모자반(톳)을 넣으면 제주도의 대표 국인 ‘몸국’이 된다. 제주 올레 특수 때문에 인기절정인 음식이 바로 고기국수. 제주시 삼성혈 바로 옆에 ‘제주 고기국수거리’가 15여년 전부터 형성됐다. 고기국수는 돼지사골 육수에 중면을 넣고 고명으로 삼겹살을 7~8점 얹은 것이다. 사장 유성현씨(53)는 서울 출신인데 사업차 제주도에 갔다가 된장을 베이스로 한 제주식 해물탕의 하나인 ‘오분자기(새끼 전복) 뚝배기’ 등 제주음식에 반해 결국 대구로 와서 전문식당을 연다. 유씨는 제주도 고기국수 골목에 있는 삼대국수로부터 2개월간 요리 비법을 전수했다. 2008년 7월 수성구 경신고 입구 로데오골목 근처에서 대구 첫 제주국수를 오픈했고 지난해 6월 지금 자리로 왔다. 얼큰한 육개장에 길들여진 마니아들은 ‘처음본다’ ‘설렁탕 같다’ ‘일본 라멘인 돈코츠 같다’ 등 반응이 다양했다. 어떻게 만들까? 사골 4개로 곤 초·재·삼탕 육수를 알맞게 섞어 기본 베이스 육수를 만든다. 제주식은 냄새 제거를 위해 약초 등을 넣지 않는다. 중면 사리도 제주 것이 더 굵다. 당근·유부·쪽파를 고명으로 얹고 고춧가루·깨·김가루를 올린다. 잔치국수 육수보다 훨씬 두껍다. 육지 족발보다 몇 배 더 쫄깃한 ‘아강발’도 낸다. 아강발은 제주식 족발요리. 족발 중 발목 아랫 부분만 사용한다. 바다 고둥의 일종인 보말을 갖고 끓인 보말미역국도 있다. 보말은 제주도 표선 시천리 어촌계에서 온다. 5~6월이 제철. 삶아서 속만 빼서 사용한다. 도마에 올린 암퇘지 삼겹살인 ‘돔배고기’도 대구에선 아직 낯설다. 유 사장은 “된장에 박아 삭힌 고추 장아찌를 내는 것 외 거의 제주도 본토식”이라면서 “일부 손님들은 더 매콤한 걸 원하지만 제주식 식당을 선언한 만큼 원칙을 고수할 작정”이라고 다짐한다. (053)761-3877 ■ “고추장 없는 비빔밥 사수하라” ◇…비빔밥만큼 지역색이 강한 음식도 드물다. 특히 반가의 비빔밥은 요리 과정이 무척 까탈스럽고 엄격하다. 안동의 한 문중은 들어가는 나물 크기와 색깔까지도 정해놓았다. 안동찜닭과 간고등어, 그리고 안동국시는 이미 대구음식으로 편입됐지만 ‘안동식 비빔밥’은 아직 대구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 10여년전 팔공산 자락에 안동 헛제사밥 전문점 2곳이 론칭됐지만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하고 문닫고 말았다. 대신 강원도 정선발 곤드레밥 정식이 헛제사밥 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 달서구 대곡동 ‘제비원’ 안동비빔밥의 본질은 뭘까? 달서구 대곡동 대진중·고 근처에 ‘안동비빔밥’ 전문점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2009년 오픈한 ‘제비원’이다. 제비원은 숱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옛날 관리들이 묵고 가던 여관의 일종인 원(院)이었던 제비원은 안동시 이천동 연미사에 있는 보물 115호 12.38m 마애여래입상을 의미한다. 국내 대표적 무가(巫歌)로 불리는 ‘성주풀이’에도 ‘성주의 본향이 바로 제비원’이란 구절이 나온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장군은 지맥을 끊기 위해 칼로 석불의 목을 잘랐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는 안동주조회사의 소주 이름도 제비원. 본관이 안동인 안주인 김은숙씨가 남편 문경훈씨와 함께 안동비빔밥을 축으로 한 안동헛제사밥 정식을 차려내왔다. 박달나무 같이 야물고 오디빛 툇마루를 보는 것 같다. 쇠고기전, 황태구이, 홍합조림, 간고등어전, 동태·부추전, 두부선 등이 스테인리스스틸 제기에 담겨져 나왔다. 비빔밥에 등장한 나물을 분석해봤다. 오이·고사리·도라지·표고버섯·숙주나물·얼갈이 배추·콩나물 등이 한 줌씩 도리뱅뱅이처럼 앉아 있었다. 그런데 고추장이 없다. 김씨는 “안동비빔밥에는 절대 고추장이 들어가면 안된다”고 말했다. 헛제사밥용 비빔밥에 고추장을 넣는다는 건 된장에 물엿을 넣는 것과 진배없다고 본다. 밥을 넣고 젓가락으로 비벼 한 줌 먹어봤다. 나물간이 예사롭지 않다. 짭짤하면서도 담백하고 그러면서도 느끼하지 않다. 여느 식당 비빔밥은 나물을 별도로 간을 하지 않는다. 그냥 잡다한 재료를 넣고 고추장에 비벼먹도록 해서 풋내가 나고 결국 나물 맛은 사라지고 고추장 맛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동에선 그런 비빔밥을 ‘본배없는 밥’으로 멀리한다. “안동 선비들은 식사할 때 절대 말을 하지 않습니다. 머리를 뒤로 젖히면서 숟가락 아래로 길게 드리워진 나물을 입 안으로 넣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입에 들어가기 쉽고 입술에 걸리지 않도록 나물을 1~2㎝ 짧게 썰어냅니다. 그게 여느 비빔밥과 다른 점일 겁니다.” 오이도 속을 파서 잘게 썰어 소금으로 약간 절여 30분간 둔 뒤 이를 꽉 짜 다시 센불에서 참기름으로 볶아낸다. 배추도 물이 나지 않도록 데쳐 꽉 짠 뒤 사용해야 하고, 콩나물도 굵은 건 맛이 없어 숙주처럼 가는 게 원칙이다. 콩나물은 다른 나물보다 더 오래 익혀야 제맛이다. 여름철에는 말린가지도 별미로 낸다. 김씨가 특별하게 여기는 고명이 있다. 김가루처럼 보이는 미역가루다. “친정 어머니는 늘 ‘미역숙지’라고 했어요. 미역을 잘게 썰어서 참기름 두른 프라이팬에서 10분 정도 볶으면 우전차처럼 잘게 말려듭니다. 그냥 해초류를 넣으면 다른 나물과 잘 섞이지 않죠. 집안 어른들은 이 고명이 없으면 안동비빔밥이라 하지 않을 정도로 귀하게 여깁니다.” 전주비빔밥에 나오는 당근도 안동에선 천박스럽게 여겨 넣지 않는단다. 개업할 때 부친한테 눈총도 많이 받았다. “개업 현수막에 안동김씨 무슨 무슨 파라고 알렸더니 아버지가 ‘집안 팔지마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부부는 제대로 된 안동비빔밥을 만들자고 다짐하면서 안동댐 근처 유명 헛제사밥집을 찾았는데 자신들이 생각한 반가의 맛이 아니라서 무척 실망했단다. “우리 비빔밥은 나물마다 간이 잘 배이도록 나물 한 가지씩 프라이팬에서 볶아 내는 게 특징이죠. 나물 모두 제 맛이 나면서도 먹을 때는 어우러진 한 가지 맛이 나야 됩니다. 이게 요리의 포인트입니다.” 부부가 가장 안타까울 때는 손님들이 너무 싱겁다면서 고추장을 갖다 달라고 할 때다. 잘 설명해주면 다들 이해한다. 이집 육개장은 옛날 맛이 감돈다. 더 깊고 맑은 맛을 위해 일반 쇠기름 대신 갈비뼈에 붙은 기름만 고집한다. 일반 안동비빔밥은 6천원. 곁반찬까지 맛보려면 하루 전에 예약해야 된다. 헛제사밥정식은 1만2천원. (053)633-5338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2.03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국을 찾아서-(3)경상도 갱시기(일명 김치국밥)
갱시기. 이것만큼 경상도적인 음식도 없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음식이 ‘대구십미(大邱十味)’에 선정되지 않아 무척 아쉽다. 기자도 어릴 때 모친이 점심 무렵 이웃 아줌마들을 불러 모아 갱시기 파티를 열 때 옆에서 한 그릇 얻어먹기도 했다. 춘궁기 나물죽이 조금 부유해진 버전으로 진화한 것 같았다. 갱시기 맛의 원천은 ‘묵은지’다. 김치찌개처럼 겉절이 김치로는 맛이 안난다. 김장 김치가 푹 삭아 시큼한 맛이 절정을 이룰 때 갱시기 맛도 절정을 이룬다. 썬 가래떡, 거기에 콩나물, 멸치 육수 등이 섞이면 진미가 나온다. 물론 하절기보다 동절기가 적격이다. 아침과 저녁은 아니고 점심 때 먹어야 제격이다. 식은 밥을 넣기도 하고 불린 살을 이용하기도 하며 소면이나 칼국수를 넣어 먹을 수도 있다. 쌀이 많이 들어가면 꼭 죽 같다. 콩나물 비중이 늘어나면 전주 콩나물국밥 같은 느낌이 든다. 응용은 무한하다. 소면 대신 묵채가 들어가면 경주의 명물 팔우정 해장국 스타일로 변주된다. 대구시 동구 신천동 옛 국제회관 동쪽 골목 안에 갱시기 전문 고령식당과 어탕국수 전문 거창식당이 마주보고 서있다. 요즘 워낙 프랜차이즈가 강세이고 올챙이 조리사들이 요리를 제대로 배우질 않고 밑반찬 마련 솜씨도 형편없어 머잖아 고령·거창 식당 같은 토속미 가득한 이런 백반집이 멸종될 것 같다. 고령식당의 별미는 콩나물갱시기. 거창식당은 거창식 어탕국수가 잘 팔린다. 이 어탕도 꼭 퓨전 갱시기 같다. 국물을 조금 맑게 하고 국수를 조금 줄이고 찬밥을 넣어 끓이면 잡어 육수를 베이스로 한 갱시기가 될 것 같다. 어탕국수 육수는 잡어, 갱시기는 멸치로 뽑아낸다. 20년전 전국 최초의 라면 전문점이란 기치를 내건 중구 남일동 중앙시네마 맞은편 골목에 자리잡은 청춘라면은 라면 사리를 이용한 ‘라면 갱시기’ 시대를 열어 10~20대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 957-3번지로 가면 별난 칼국수집이 나온다. 모리국수 전문점 까꾸네이다. ‘모리’란 한꺼번에란 의미를 담고 있다. 아귀, 홍합 등 온갖 잡 해산물에 콩나물과 칼국수를 넣고 끓인다. 꼭 구룡포식 갱시기처럼 보인다. 가래떡·콩나물·멸치육수에 식은 밥이나 불린 쌀 넣어 소면·칼국수 넣어 먹기도 점심시간 때 먹어야 제격 전주 콩나물국밥과 닮은 꼴 소면 대신 묵채 쓰면 경주식 어탕국수 변신하면 거창식 가래떡 대신 감자 쓴 포항식 해산물+칼국수의 구룡포식 콩나물 대신 톳 쓰면 제주식 라면갱시기 등으로 응용돼 10∼20대 입맛 사로잡기도 ◆ 노태우 전 대통령이 무척 좋아한 갱시기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때 발탁, 김영삼 대통령을 거쳐 김대중 대통령 임기 초기인 98년 10월까지 청와대 주방을 책임지던 이근배씨. 그가 여성조선이라는 잡지에서 ‘대통령들의 식단’을 공개했다.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입맛이 없는 점심 때 무척 즐겼던 음식이 바로 갱시기였다. 갱시기는 일명 ‘김치밥국’으로 불린다. 그럼 국밥과 밥국의 차이는 뭘까. 국밥은 역시 고기가 축을 이루고 밥국은 밥이 축이 된 국이다. 그런데 육수로 멸치를 많이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국은 선비들한테는 참 난감한 음식이었다. 유교적인 문화의 영향으로 그릇에 입을 대지 않는 것이 기본처럼 인식되어 왔다.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에서처럼 국은 먹는(食) 게 아니라 마시는(飮) 것이었다. 중국에서 국이란 ‘탕(湯)’을 말한다. 마라탕(麻辣湯), 싼라탕(酸辣湯), 샤러탕(蟹肉湯) 등이 있는데, 중국의 국물요리는 대부분 녹말을 풀어 걸쭉하다. 그래서 스푼으로 떠먹는 음식이다. 하지만 일본어에서 탕(湯)은 ‘유(ゆ)’라고 읽으며 보통 컵라면에 부어먹는 ‘뜨거운 물’을 가리킨다. 국을 말할 때는 대신 ‘시루(汁)’로 쓴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밥을 먹을 때 미소시루(味增汁·된장국)를 훌훌 마신다. 지역에 따라 생선맑은국도 있지만 보통 된장을 풀어 끓이는 것이 기본이다. 두부와 미역 같은 해초류를 넣은 것이 많으며, 장어 등 값비싼 특산 재료가 들어가면 가격 또한 천차만별로 올라간다. 사실 전주의 콩나물국밥과 경상도 갱시기는 너무 닮은 꼴이다. 또한 제주도에서 가장 토속미를 갖고 있는 몸국도 얼핏 제주도식 갱시기 같다. 육지 관광객들은 아직 몸국의 정체에 대해 잘 모른다. 몸국의 주 재료는 모자반(톳), 묵은지, 돼지 육수가 축을 이룬다. 잔칫날 돼지고기 삶은 물을 넣는다. 어떻게 만들까. 준비할 재료는 쌀 1컵, 김치·콩나물 100g씩, 참기름 1/2큰술, 멸치육수 5컵, 국간장(소금) 약간. 일단 쌀을 씻어 불린다. 김치는 송송 썰고 콩나물은 씻어 건진다.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김치와 불린 쌀을 넣어 볶는다. 콩나물을 넣고 멸치육수를 부어 센 불에서 뚜껑을 덮고 끓이다 차츰 불을 약하게 해서 쌀알이 퍼질 때까지 끓인다. 국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 포항시 죽장면에서는 감자를 넣기도 지난주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의 한 집에서 포항식 갱시기를 맛봤다. 묵은지, 콩나물, 쌀, 멸치 다시 등은 같았지만 가래떡 썬 게 없어 감자를 대신 넣어 요리를 했다. 가마솥에서 끓였는데 솥 안에 있을 때는 양이 얼마 안되는 줄 알았더니 족히 15명이 동시에 요기할 수 있었다. 가마솥 인심이 갱시기에서 피어나는 것 같았다. 할머니들도 멸치 육수와 묵은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칠곡군에서는 ‘갱죽’이란 말을 즐긴다. 갱시기는 ‘국시기’라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갱식이, 김치죽 등이라고도 한다. 국시기는 서민 가정에서 70년대 이전의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많은 식구들의 끼니를 때울 때 흔히 해먹던 음식이다. 당시 식구는 많고 양식은 부족했다. 그래서 양식을 조금이나마 절약하기 위해 남은 밥이나 곡식 등에 김치나 콩나물 등 기타 채소류를 듬뿍 넣고 물을 많이 부어 멀겋게 끓여서 먹었다. ◆ 제주도 갱시기 몸국 제주도 토박이를 만나 ‘몸국’을 안다고 하면 더 살갑게 대해준다. 몸국에는 전라도의 홍어처럼 그들의 얼과 삶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묵은지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몸국과 갱시기는 비슷하다. 콩나물 대신 모자반(톳)을 넣으면 몸국으로 변한다. 제주도에서는 모자반을 ‘몸’이라 부른다. 이 몸을 넣고 끓인 국이라서 몸국이라 칭한다. 돼지고기와 내장, 순대까지 삶아 낸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이면 느끼함이 줄어들고 독특한 맛이 우러난다. 혼례와 상례 등 제주의 집안 행사에는 빠지지 않고 만들었던 행사 전용 음식이다. 행사용 음식이었던 만큼 한때 가정의례 간소화 정책에 따라 돼지 추렴 자체가 많이 사라지면서 거의 사라졌던 음식이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마을단위의 행사에서 다시 나타나면서 일반 식당들 가운데도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몸국은 생선이나 어패류 이외의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섭취하기 힘들었던 제주 사람들이 귀한 돼지고기를 온 마을사람들이 알뜰하게 나눠먹었던‘특별식’이었다. 만드는 법도 쉽다. 돼지고기와 뼈는 물론이고 내장과 수애(순대)까지 삶아낸 국물을 버리지 않고 육수로 사용한다. 그리고 겨울에 채취해서 말려놨던 모자반을 찬물에 불려서 염분이 제거되도록 잘 빤다. 모자반의 염분이 제대로 제거되지 않으면 국물에 쓴맛이 난다. 염분을 제거한 모자반을 촘촘히 칼질한 뒤 준비한 육수에 넣고 끓여서 만든다. 몸국을 끓일 때는 내장 일부와 ‘미역귀’라고 부르는 돼지의 한 부위인 장간막을 잘게 썰어 넣어야 제 맛이 난다. 신 김치를 잘게 썰어 넣어 간을 맞추기도 하며 국물이 너무 맑은 경우 메밀가루를 풀어 넣어 약간 걸쭉한 상태로 만들기도 한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1.13
[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국을 찾아서- (2) ‘대구 논메기매운탕 1번지’ 달성군 다사읍 부곡·문양리
쇠고기가 끓는 물에서 육개장이 된다. 이를 본 물고기도 덩달아 뛰어든다. 민물고기는 ‘매운탕’, 바다고기는 ‘해물탕’이 된다. 매운탕 중에서 가을 민물고기로 만든 걸 ‘추어탕’이라고 하는데, 이중 미꾸라지가 제일 사랑을 받는다. 청도에서는 미꾸라지가 들어가지 않는 추어탕이 유명하다. 이밖에 쉬리, 동자개, 빠가사리, 뿌구리, 꺽지를 비롯한 온갖 민물잡어로 만든 건 잡어탕이 된다. 잡어탕에 국수가 들어가면 ‘어탕국수’, 쌀이 많이 들어가면 ‘어죽’이다. 매운탕 요리의 핵은 ‘비린내 잡기’. 특유의 비린내 때문에 된장, 고추장, 초피, 들깻가루, 청주, 심지어 수제비, 민물새우 등을 넣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대구에서 논메기매운탕이 대구십미로 유행중인데, 미향(味鄕)인 전북 전주에 메기로 만든 ‘오모가리탕’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 연장선상에 강릉 연곡면의 ‘꾹저구’탕이 있다. 추어탕도 경상도와 전라도가 스타일이 서로 다르다. 경상도는 맑은데 비해, 전라도는 팥죽처럼 걸쭉하고 뻑뻑한 게 특징이다. 육개장 전통 탓인지 경상도는 대파와 토란대, 전라도는 시래기가 축을 이룬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매운탕이라고 하면 잉어와 붕어가 대세였다. 탕과 찜이 불티나게 팔렸다. 계문화도 함께 춤을 췄다. 나중엔 향어 붐까지 가세한다. 하지만 80년대 중·후반 전남 해남, 전북 김제 등에서 양식 메기가 다크호스로 등장한다. 90년대초 달성군 다사읍 부곡리에서는 논메기란 이름의 식당까지 나온다. 유통되는 메기는 모두 논메기다. 그런데 전라도 등에서는 그냥 메기란 말을 사용했는데, 부곡리에서는 논메기를 독점함으로써 마케팅에 성공을 했다. 메기매운탕도 경상도와 전라도 버전이 서로 다르다. 양식장 하던 토박이가 그냥 촌스럽게 끓였는데 낚시꾼에 입소문 '대박' 현재 부곡·문양리에 무려 22개 식당 산재해 전라도서 올라온 메기 축양장에 6t 보관 전주선 오모가리탕 불려 시래기·민물새우 첨가 당면·청주는 사용 않아 대구식과 조리법 차이 ◆ 박정희와 대구 매운탕 62년 2월3일. 그날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5·16 거사 전날보다 더 들떠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울산에서 한국 근대화의 상징적 프로젝트인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이날 발진됐기 때문이다. 울산은 한국 첫 공업지구로 설정돼 정유·비료·자동차·조선 산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자릴 잡기 시작한다. 그 힘이 70년대 새마을 운동으로 이어졌다. 훗날 중앙정보부장이 되는 이후락도 자기 고향인 울산 살리기에 적극적이었다. 61년 5월20일 군정 초대 대구시장에 부임한 당시 대전 2사단 참모장이었던 강원채 대령은 혁명 성공 후 박 소장의 첫 지방 나들이에 빠질 수 없어 새벽같이 기차를 타고 울산으로 향했다. 행사를 마친 박정희는 기분이 너무 좋은 나머지, 일행들과 기차를 타고 대구로 와서 잠시 회포를 푼다. 연회장은 대구의 여걸 마담, 김태남이 버티고 있던 청수원(현재 중구 곽병원 남쪽 입구 모퉁이 태남빌딩). 혁명 거사 자금까지 대준 김태남은 박정희를 위해 진수성찬을 차려준다. 청수원은 박정희 혁명 거사 모의 장소여서 남달리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반주로 정종을 거나하게 마신 박정희는 갑자기 강창(江滄·대구시 달서구 파호동) 매운탕이 먹고 싶다면서 차를 대기하라고 했다. 50년 12월12일 대구 계산성당에서 육영수와 결혼식을 올릴 때도 그는 광복 직후 금호강변 첫 매운탕 집격인 대구관(현재 달서구 파호동 49의 1)을 기억하고 있었다. 예정에 없던 일정이라 경호팀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는 그날따라 로맨티스트로 변했다. 운전석엔 강원채 시장을 앉혔다. 지금과 달리 비포장이었던 그날 박정희는 덜컹거리는 자리에서 속이 무척 불편했을 것이다. 먼지도 적잖게 덮어 썼다. 박경원 경북도지사, 2군사령관 등과 경호팀도 거리를 두고 비포장 길을 뒤따랐다. 강창의 금호식당을 찾았다. 금호식당은 근처에 있었던 대구식당과 함께 강창 매운탕 시대를 풍미한다. 금호강의 야경과 대구관 매운탕을 앞에 한 박정희는 피말렸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며 막걸리를 연거푸 마셨다. 박정희는 건더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속풀이할 요량으로 국물만 몇 번 떠넣었다. 박정희는 원래 과식을 하지 않는다. ◆ 대구 논메기매운탕 70년대 대구의 매운탕 문화는 전국적 명성을 자랑했다. 70년 강창교가 생기고 물이 오염되면서 매운탕 거점은 강 건너 달성군 다사읍 강정으로 옮겨간다. 금호·경산·다사·대동·대구·낙동식당, 부동댁 등이 전성기를 맞았으며, 현재 8집이 모여 있다. 아직 추억이 어린 잉어매운탕을 팔고 있다. 강창 뱃사공 출신의 한동호씨는 경산식당을 이끌다가 5년전 작고했다. 강창과 강정, 그리고 청천·동촌·화원유원지, 옥포 용연사, 심지어 남구 대명동 즉결재판소 근처에 향어회 타운이 조성되면서 대구 매운탕 전성기는 80년대말까지 이어져갔다. 90년대 들면서 도심에 매운탕 명가가 생겨난다. 예전에는 잉어와 붕어가 인기였지만 양식 논메기 매운탕으로부터 습격을 당한다. 달성군 다사읍 부곡리의 논메기매운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종점인 문양역 인근 부곡리. 마을 토박이 손중헌씨가 우연한 기회에 논메기매운탕을 개발하게 된다. 농가소득을 찾다가 메기 양식장을 한 것이다. 유료낚시터에서 건져올린 메기로 요리를 했다. 손씨는 매운탕 요리가 뭔지도 몰랐다. 그냥 촌스럽게 메기탕을 끓였는데도 낚시꾼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다. 나중에 영업 허가를 내 간판을 걸고 메기매운탕 영업을 시작한다. 현재 논메기매운탕마을 문산번영회(회장 배종열)도 생겼다. 부곡·문양리에 무려 22개의 논메기매운탕집이 산재해 있다. 문양역 앞 청국메기매운탕 주인 최진곤씨(53)는 90년대초 지역에서 처음으로 전라도 양식 메기를 대구·경북에 유통시킨다. 현재도 식당 옆 축양장에 6t의 메기가 놀고 있다. 요즘에는 지역 실버들의 ‘논메기 투어’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문양역 광장에 내려서면 셔틀버스 구실을 하는 승합차가 식당까지 태워주고 역까지 모셔다준다. 문양역은 졸지에 실버들의 만남의 광장이 됐다. 역사 3층에는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실버카페 ‘나우’도 있다. ◆ 전주 오모가리탕 ‘오모가리탕이라니.’ 도대체 무슨 음식일까. 바로 전주의 명물 음식이다. 오모가리탕은 전주는 물론, 전라도의 대표적 매운탕이다. 전주시 교동 전통문화센터 맞은편에 세 집이 나란히 손잡고 있다. 한벽·남양·화순집이다. 다들 반 세기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오모가리탕은 메기·쏘가리 등 각종 민물고기를 주 재료로 하는 민물매운탕이다. 그럼 왜 하필이면 오모가리탕일까. 각종 민물고기를 탕으로 끓여 내놓는 용기를 전주에선 ‘오모가리’라 한다. 오모가리는 뚝배기의 전라도 사투리. 이제야 의문이 풀렸다. 그릇 이름이 음식명이 된 것이다. 오모가리탕은 전주지역 목욕문화와 함께 했다. 목욕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50년대에 지금의 한벽보가 있는 한벽루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목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곳이다. 반도 등으로 잡은 잡어를 현재 한벽집 주인 할매한테 부탁해 요리를 해먹었다. 해장술로 모주(母酒)도 먹었다. 전주의 명물 중 하나인 모주는 막걸리에 생강, 대추, 칡을 비롯한 8가지 한약재를 넣고 끓인 해장술이다. 막걸리에 한약재를 넣고 끓이다 마지막에 계피를 넣어 만든다. 계피의 향이 진하게 남아 있어 수정과와 맛이 흡사하다. 알코올 도수가 1.5%라 낮에도 부담없기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전주천에서의 낚시가 금지되면서 용담호를 비롯해 운암호 등지에서 오모가리탕의 주 재료인 메기, 동자개, 쏘가리, 피라미 등을 공급받는다. 가장 오래된 식당은 70여년 역사의 한벽집, 다음은 남양집, 막내가 화순집. 고부 간에 60년 전통의 깊은 오모가리탕 맛을 만들어내고 있는 남양집. 시할머니부터 시작된 남양집 오모가리탕은 시어머니(신점례)를 거쳐 10년 전 시집온 며느리(곽연희)에 의해 그 맛이 이어지고 있다. 남양집 오모가리탕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쌀뜨물과 갖은 양념을 넣어 만든 이 집만의 특별한 육수가 깊은 맛을 우려낸다. ◆ 경상·전라도 메기매운탕 레시피 전라도는 경상도와 매운탕 끓이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전라도에서는 시래기와 실가리(우거지)가 중심을 차지한다. 시래기가 조금 더 차지한다. 한벽집의 레시피를 문틈사이로 엿봤다. 시래기와 실가리를 6대 4 정도로 섞고 거기에 대파, 양파, 마늘, 생강, 새우와 들깨가 들어간다. 된장을 조금 더 넣기도 하고 고추장도 첨가하지만 이럴 경우 국물이 텁텁해진다. 한벽집은 칼칼한 맛을 위해 다시를 별도로 빼지 않고 생수를 이용한다. 또한 고추장 대신 고춧가루를 넣는다. 더욱 깊은 맛을 위해 민물새우가 들어간다. 경상도 매운탕에는 당면이 중요한 구실을 하지만 전라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경상도는 냄새를 잡기 위해 청주를 이용하지만 전라도에서는 이 방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2012.01.06
의료대란으로 번진 의대 증원
대구경북권 의대 신입생 중 '지역 학생' 인원 현재보다 2배 늘듯
내년 의대증원 규모 '대구경북 575명' 전국 1천489∼1천509명 전망
많이 본 뉴스
오늘의운세
토끼띠 5월 3일 ( 음 3월 25일 )(오늘의 띠별 운세) (생년월일 운세)
영남생생 News